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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3 14:44:11

빠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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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1. 야구방망이, 타자 또는 야구를 뜻하는 비속어2. 체벌 용어
2.1. 개요2.2. 역사2.3. 어원2.4. 파생2.5. 사례
3. 기타

1. 야구방망이, 타자 또는 야구를 뜻하는 비속어

어원은 야구방망이의 영어 단어 배트(Bat). 이것이 일본어의 발음상 '밧토'(バット)로 변한 것이 한국에서 다시 변형된 비속어. 의외라면 의외라 할 수 있는데, 국어사전에도 "빠따"라는 표제어로 등재되어 있다.

야구방망이를 부를 때 빠따라고 하기도 하고, 그 외에 한국에서 파생된 의미로 넓게는 야구 전체를, 좁게는 야구에서 타자들을 뜻하는 비속어다. 더 나아가 타자들이 공을 잘 칠 때는 '불빠따', '핵빠따' 등으로 표현하며 타자들이 공을 잘 못 칠 때는 '물빠따', '솜빠따'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비속어가 흔히 그렇듯이 이 빠따라는 표현 또한 접두사 ''를 붙여 사용하거나 인터넷 용어 중 하나인 ''을 접미사처럼 붙여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더 나아가 야구선수들이 순서대로 공을 친다는 점에서 비롯되어 순서를 정할 때 1빠, 2빠… 또는 1빠따, 2빠따… 등의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를 순화하여 1타라 표현하기도 한다. 학원 광고에서 '대치동 일타강사' 같은 게 그 흔적이다.

2. 체벌 용어

2.1. 개요

야구방망이나 비슷한 모양의 몽둥이[1] 엉덩이 허벅지를 폭행하는 행위를 말한다. 단어의 유래는 후술되어있지만 일본 해군의 체벌에서 비롯되었다.

2.2. 역사

주로 옛날 군대[2][3], 조직폭력배, 학교, 운동부 등에서 교사 선임 또는 선배가 학생들, 후임이나 후배교육하거나 군기를 잡을 때 자주 쓰인다.[4] 일반인이라면 엉덩이를 치더라도 10번이라도 다리가 풀리고 30번 정도면 데꿀멍하게 된다. 나무 배트보다 알루미늄 배트 쪽이 훨씬 세다. 대신 나무배트는 무거워서 멍이 깊게 들고 뼈가 상하기 쉽다. 가끔씩 물이 가득찬 드럼통에 나무배트를 물에 불려서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참고로 물 먹인 몽둥이는 중세 때 전투용으로 애용된 기술이다.)

20세기 말 군대에서 공공연하게 자행되던 행위였다. 이 시기 군생활을 하던 사람들의 경우 "어쩌다 빠따질이나 기합없는 날에는 밤 늦게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라고 말하곤 하는데, 흔히 빠따나 가혹행위는 취침소등 이후 선임병들이 후임병들을 집합시켜 행하는 경우가 매우 빈번했기 때문이다. 즉 일단 하지 않은 상황이면 언제 밤에 깨워서 갈굴지 모르니까 차라리 먼저 끝내는 편이 심적으로 편했다는 소리이다. 그 외에도 이 시기 군생활은 참으로 황당해서, 병장급의 병사 최선임이 초급 간부를 패는 등의 사건사고도 발생했다. 병사가 간부를 패면 병사는 하극상으로 처리되고 징계를 받았었으나, 피해 간부의 경우 제대로 된 보상 하나 못 받고 되려 "사병에게나 얻어 터지고 다니는…"라는 소리를 들으며 간부들에게 집단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피해 간부들은 얻어터지면서도 자기 혼자 참고 있어야 했다. 이런 상황이 곪고 곪아 10여년 이상 후에 터진 것이 문민정부 시기의 53사단 장교 무장탈영 사건. 사실 사람마다 신체적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간부보다 신체능력이 월등한 병사는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까놓고 말해서 그 멍청한 엘리트 의식으로 유명한 일본군이라 해도 부사관 후나사카 히로시와 장교 기무라 헤이타로가 싸웠다면 누가 이겼겠는가?[5] 이런 현상은 군의 고질적인 '병보다는 간부가 무조건 뛰어나야 한다.'는 왜곡된 간부 엘리트 의식이 발생시킨 비극이다.

또한 이 시기에는 '빠따가 오히려 인간적이다.'라는 참으로 괴상한 인식도 있었는데, 이유는 선임병들이 후임병들을 샌드백 삼아 사정없이 두들겨패는 경우도 허다 했기 때문이다. 이는 러시아군이 했다는 '데도브시나'와 같다. 이 외에도 분이 아니라 시간 단위로 가혹행위를 하는 등의 막장 상황도 넘쳐나서 이런 것들에 비하면 엎어놓고 끝내는 빠따가 차라리 나은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했던 것.

또한 1990년대까지 관리교육이 이루어진 보수적인 학교에 다녔던 일본 학생들도 당했다고 한다.[6] 이들은 체력증진과 공동체 의식 강화로 운동부에 강제 가입됐는데, 운동부 교사들에게 극단적인 체벌(이라쓰고 구타라고 읽는다.)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도구는 속이 빈 야구방망이(킥츠 배트), 죽도. 여학생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노출이 심한 부르마, 스쿨미즈를 입은 여학생의 엉덩이를 즐기는 변태교사들도 많았다고. 다만 체벌남용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21세기에 체벌금지가 정착되어 사라지게 되었다. 교육현장에선 체벌 논란으로 인해 2021년 기준으로는 일어나도 조용히 끝나지를 않는다. 허나 사회 전반적으로 빠따가 없어졌다고 보기도 어려운 것이, 일부 집단에서는 여전히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빠따를 맞고 자란 학생들이 졸업 후 성인이 되어 사회로 나가면서 예술계, 체육계, 경호업계 등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져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나이 든 사람이나 상술된 똥군기 환경에서 세뇌된 젊은 사람 중에는 빠따를 숭배하는 사람도 있다. 숭배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게 빠따에 대해 거의 영혼의 정화의식처럼 여기고 심리적인 안정마저 얻는다. 무력 행사가 많기로 유명한 1980년대에는 "분필만 드는 놈은 학원강사고, 빠따를 들어야만 진정한 선생이 된다"는 기괴하고 악마적인 격언이 나돌기도 했다.[7]

2.3. 어원

해당 용어는 구 일본 해군의 체벌 방법에서 비롯되었다. 과거 일본 해군의 대표적인 체벌은 주먹으로 턱을 수평으로 후려갈기는 '턱(アゴ)'과 방망이로 엉덩이를 치는 '해군정신주입봉(海軍精神注入棒)'이 있었는데, 이 중 해군정신주입봉의 약칭이 '밧따(バッター)'. 유래는 영국 해군에서 기인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영국 해군에서도 장교들과 부사관들과 군무원들이 크리켓 배트로 병사들을 구타하는 체벌 방법이 있었는데,[8] 이것이 영국 해군과 교류했던 일본 해군으로 넘어온 것. 일본 해군 출신의 소설가 아가와 히로유키의 체험담에 따르면 '나를 원망하지 말고 영국 해군을 원망해라!'라며 밧따를 드는 인간도 있었다고(…). 한마디로 원래는 야구 배트가 아닌 크리켓 배트를 가리키는 말이었다.[9]

그런데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수병들의 대우와 전투력이 직접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영국 해군은 모든 체벌을 폐지했고, 수병의 대우를 대폭 신장했다. 하지만 일본 해군은 이런 것은 전혀 배우지 못했고 결국 제2차 세계 대전까지 19세기의 악습을 반복한다.

한 번 당하면 내출혈로 인해 엉덩이가 시커멓게 피멍이 들어, 일상생활은커녕 잠조차도 제대로 잘 수 없게 되는 최고 강도의 체벌이었다.

사실 말이 체벌이지 딱히 잘못이 없어도 정신이 해이해지는 것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일상적으로 댔던 모양이다. '밧따로 해가 뜨고, 밧따로 해가 지고, 밧따로 잠든다. 닭이 울지 않는 날은 있어도 밧따가 멈추는 날은 없었다.'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 정확히는 장교들과 하사관들과 군속들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었다(…).

또한 군인으로 임관되어 자대배치를 받지 않은 일본 육군 직속 간호학교의 예비 여생도들도 이러한 구타를 당한 듯하다. http://momojiribunko.blog.fc2.com/blog-entry-57.html #스압주의 맨 아래의 PANTA 문단에 증언이 있다.[10]

이 '밧따'라는 것이 일제강점기 시절, 또는 구 일본군 출신들에 의해 한국에 '빠따'라는 명칭으로 전해져 '빠따 든다', '빠따 친다'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의미가 파생되어 방망이를 이용하는 행위만이 아닌 방망이 그 자체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의미가 현대에 와서 더욱 더 확장되어 후술할 2번문단의 의미까지 갖게 되었다.

2.4. 파생

줄빠따라는 변종이 있는데 이것은 체벌 대상들을 줄세워놓고 순서대로 서로 다음 사람을 폭행하게 하는 체벌이다.[11] 주로 군기가 중요시되는 옛날 군대나 체육 팀 등에서 사용되었다고 하며 서열 순서대로 줄을 세우거나 더 악랄하게는 서열 순서 반대로 줄세우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살살 치면 무자비한 가혹행위와 구타를 가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옆 사람을 세게 쳐야만 했다.

줄빠따에서는 등수놀이처럼 순서대로 "1빠따, 2빠따…" 처럼 큰소리로 세기도 한다. 이것 때문에 일본야구보다는 체벌에 의해서 빠놀이로 변질되어 퍼진 것으로 보고 있다. 즉, 현재 인터넷상에서 볼 수 있는 "1빠, 2빠…" 와 같은 등수놀이는 일본의 잔재이다.

2.5. 사례

3. 기타

전직 야구선수이자 범죄자 이호성은 내연녀와 그 가족[12]을 야구배트로 폭행해 살해했으며, 그 때문에 넷상에서 호성드립이 유행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김유진의 별명이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으로.

전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앰비션' 강찬용의 별명이자 상징으로 사용된다. 사나운 눈매와 무서운 인상으로 인해 팀원들이 잘못을 할 경우 숙소에서 빠따질을 할 것 같다는 밈이 생겼다. 자세한 내용은 강찬용/밈 문서로.

어째서인지 월드 오브 탱크 유저들 사이에서는 150mm 이상의 주포를 칭하는 말로 쓰인다. 혹은 클랜전에서 졸전을 펼치는 경우 지휘관이 보이스 챗 등으로 참가자들을 불러서 반성회를 하는 것이 위의 군대에서의 빠따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빠따맞는다, 빠따친다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하드코어 헨리의 악역 아칸은 " 러시아에서는 야구배트가 1년에 10만 개가 팔려. 그에 비해 야구공은 5만 개 밖에 안 팔리지."라는 대사를 했다. 빠따를 야구용품으로서가 아니라 무기로서 사용하는 사례를 비꼬는 블랙 유머.

축구선수의 킥력, 특히 중거리 슛 능력을 뜻하는 은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격투기에서는 선수의 타격력을 찬미하는 용도로 빠따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보통 펀치력이 강한 선수들에게 붙는 수식어이다. 의미는 말 그대로 주먹이 아니라 빠따로 치는 수준의 충격이 온다는 뜻.


[1] 주로 삽자루나 곡괭이 자루, 각목, 당구 큐대, 하키스틱 등. 주로 나무. 정 재료가 애매하셨던 분들은 적당한 나무가지를 테이프로 둘둘 말기도 했다. [2] 요즘은 구타가 금지되고 점차 없어져가고 있기 때문에 "옛날" 군대라고 써놓았다. 지금 군대는 폭행이 금지된 대신 후임이 대들거나 하면 분대장으로부터 상관에게 보고하여 "군 풍기 위반"으로 군기교육대(2020년 8월 4일까지는 영창에 보냈었다.)에 보낼 수 있는 제도가 있다. 물론 그 옛날 군대라는 것도 생각해보면 고작해야 2000년대 그 이전이고 지금도 일부 잔존하기는 한다. [3] 2016~2017년에 현역부사관 출신인 중사한테 들은 사례로 해당 간부가 GOP부대에서 이등병으로 병사 생활을 하던 2010년 당시 빠따를 맞았다는 증언이 있다. [4] 가족이나 지인이 그 빠따 들고 폭행한 교사에게 찾아가서 복수하려고 시도만 해도, 바로 눈 돌릴 틈도 없이 체포되던 시절이다. 다만 CCTV가 없던 시대였던 만큼 밤 중에 폭행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기는 했다. [5] 게다가 기무라 헤이타로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의 개전을 모두 조력한 악질 전범이었던 주제에 정작 버마 방면군 사령관으로 재직할 적에는 영국군의 버마 침입을 알고는 공포에 질려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아무런 작전지휘를 못 내린 것을 넘어 몰래 탈영할 정도로 겁쟁이였다. [6] 애초부터 군국주의 교육의 원조가 일본이니… [7] 그런데 공교육에서 체벌이 공식적으로 금지된 지금은 일부 학원에서 학원 강사가 빠따 등 체벌을 하기도 하여, 그 상황이 반대가 되었다. 더욱이 이런 교육 방식을 학부모나 학생이 원하기도 한다니 가히 엽기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8] 미국도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주인공 학생이 교장실에 끌려가 교장에게 직접 크리켓 배트로 빠따를 맞는 걸 볼 수 있다. [9] 심지어 함에 따라서 달랐지만 1호, 2호, 3호.. 이런 식으로 해군정신주입봉에도 급수가 있었다.. 1호는 얇은 막대기 2호는 굵은 봉 3호는 쇠봉 이런식 (...). [10] 사이트 자체는 스팽킹 관련이지만, 사용자들의 댓글은 1960-1980년대 전반의 군국주의 사회에서 발생한 체벌 자체를 다루고 있다. [11] 다만 일부 지역에선 줄빠따는 그냥 체벌 대상을 줄줄이 엎어놓고 차례대로 패는 걸 그냥 줄빠따라고 했다. [12] 야구배트로 살해한 사람은 첫째딸(1987년생)만 해당된다. 나머지는 구타가 아닌 목을 졸라서 호흡을 차단해 살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