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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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Blue Bird Café fireL'incendie du Blue Bird
1972년 9월 1일 캐나다 자치령 퀘벡주 몬트리올의 블루 버드 카페서 발생한 방화 사건.
2. 사건 당시
1972년 노동절 블루버드 카페와 웨건 휠 바에는 휴일을 맞아 청년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블루 버드 카페는 1970년대 청년들의 핫스팟이었는데 1층엔 칵테일을 파는 라운지, 2층엔 웨건 휠(Wagon Wheel)바가 있었다. 웨건 휠 바는 당시 컨트리 뮤직으로 유명해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당시 두 곳을 합쳐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는데 유명 가수가 와서 공연도 했고 모두들 분위기에 맞춰 춤을 추고 노는 등 평범히 흘러갔어야 했다. 그런데 청년 3명 길리스 에클스(Gilles Eccles), 제임스 오브라이언(James O’Brien) 그리고 쟝 마르크 부탱(Jean-Marc Boutin)이 위의 웨건 휠 바로 올라가려고 했지만 너무 취했단 이유로 제지당했다. 이에 화가 난 이들은 근처 주유소로 가서 말통에 휘발유를 담아 왔으며 불을 지를 계획을 세웠다.오후 10시 45분 이들은 다시 블루 버드 카페로 돌아와 웨건 휠 바로 올라가는 유일한 계단으로 갔다. 한 명이 기름을 뿌리며 말통을 다 비우는 사이 다른 한 명은 밑에서 대기했고 위에서 기다리던 나머지 한 명이 내려와 성냥으로 불을 질렀다. 아무것도 모른 채 춤과 음악을 즐기던 고객들은 갑자기 내부에 연기가 가득 차자 당황했다. 유일한 출입구에 불이 붙어서 탈출이 불가능해지자 2층의 사람들은 당황했다. 창문도 햇빛을 가려 인공 조명만으로 가게를 밝힌다고 다 막아 뒀고 비상구도 미성년자들이 종종 들어오고 무전취식하는 사람이 나온다는 이유로 밖에서 잠겨 있었다. 사람들은 비상구를 아예 부숴서 나가려고 해 봤다. 빠져나가는 방법은 불길을 가로질러 계단으로 향하거나 주방에 있는 비상계단으로 도망가거나 여자 화장실에 달린 한 사람이 겨우 통과 가능한 창문을 통해 주차장으로 뛰어내리는 것밖에 없었다. 높이는 약 6m로 사람들은 다리가 부러질 각오를 하고 뛰어내려야 했다. 주방의 비상계단으로 간신히 탈출한 사람들도 있었으나 사람이 너무 몰리면서 비상계단이 무너져 버렸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이 잠긴 비상구를 부수는 데 겨우 성공해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화재를 진압하러 소방관 50명이 출동했다. 당시는 소방관용 산소호흡기 장비가 귀하던 시기라 불을 끄던 소방관 중 5명이 연기를 들이마셔 부상을 입었다. 불은 다음날 오전 2시 30분이 돼서야 잡히기 시작했고 아침이 돼서 다 꺼졌다.
결국 이 화재로 37명이 사망하고 54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망자 중 가장 어린 희생자는 당시 13살이었다. 사망자 중엔 당시 생일이라 안에서 파티를 벌였던 부부도 있었다. 마지막 희생자는 비상계단이 무너질 때 입은 부상으로 인해 사고 다음 주 주말에 사망했다. 사망 원인은 대부분 유독가스에 의한 질식사였다.
3. 사건 이후
사건으로부터 2주 뒤 퀘벡을 벗어나 밴쿠버로 도주한 범인들이 잡혔다. 이들에겐 전부 살인 혐의가 적용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10년 뒤인 1982년에 가석방됐다.유가족과 부상자들은 카페 점장과 건물주, 그리고 몬트리올 소방 관리 측에 총 900만 불 가량의 소송을 제기했는데 건물에 비상구가 적게 설치되어 있던 점 등 소방관리가 부실해서 희생자가 많이 나왔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들은 소송에서는 패소했고 유가족들에겐 1,000 ~ 3,000달러 가량의 위로금이 지급됐다.
이 사건 이후 바를 방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먼저 비상구를 확인하는 문화가 생겼으며 캐나다에선 건물에 필수적으로 비상구를 만들도록 법으로 지정했다.
이 사건의 범인 중 제임스 오브라이언은 1982년 가석방된 뒤 음주운전과 절도, 대마초 재배, 경찰관 습격 등을 저질러 다시 체포됐으며 2007년에도 또 음주운전을 저질러 체포됐다.
화재 이후 건물은 철거됐고 주차장으로 현재까지 남아 있다.
2012년 9월 1일 사건 40주기를 맞이해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비가 공개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