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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06 20:31:05

브라우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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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배경3. 추이
3.1. 모자이크 브라우저 전쟁(Mosaic Wars, 1993~1994)3.2. 제1차 브라우저 전쟁(1995~2004)3.3. 제2차 브라우저 전쟁(2009~2015)
3.3.1. Firefox의 대항3.3.2. Chrome의 등장
3.4. IETab 전쟁(한국 등 일부 지역에만 해당)
4. 관련 문서

1. 개요

웹 브라우저의 점유율을 두고 여러 회사가 벌인 치열한 경쟁을 가리켜 브라우저 전쟁(Browser Wars)이라고 부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2020년 기준 Chrome이 압도적으로 승리(전세계 점유율 평균 약 64%)했다.[1] 국내 또한 데스크탑 기준으로는 크롬의 점유율이 70%를 넘어섰으며, 모바일은 Safari 브라우저가 선탑재되는 아이폰과 안방시장인 삼성 갤럭시 시리즈 스마트폰의 영향이 있지만 그럼에도 40%에 육박한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2] 이 "전쟁"의 결과에 따라 오늘날 JavaScript에 대한 기술이 통째로 바뀌었을 것이며 이는 HTML, CSS 등의 표준화 속도에도 큰 지장을 주었을 것이다.

쉽게 말하면 SCSS 등의 탄생은 꿈도 못 꾸고 범용성이 떨어진 결과 Sass 1~2만을 사용하는 등이라던가, MutationObserver, ServiceWorker 같은 고급 표준 기술들의 제정 역시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당장만 봐도 근래 인지도가 많이 상승된 Node.js가 탄생조차 안했을거라 생각하면 그 여파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일반인들에게 적합한 예시로는 애드블록의 부재라던가.

또한 ActiveX[3]를 비롯한 여러 플러그인들이 널리 사용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브라우저 전쟁에 의해 비표준 기능이 늘어나고 브라우저 회사 사이에서 최적화는 뒷전이 된 탓에 웹 사이트 개발이 복잡해지자 성능이 좋고 어느 브라우저에서나 동일한 출력이 나오는 어도비 플래시나 자바 애플릿 같은 리치 인터넷 애플리케이션을 널리 사용하게 된 것이다. 2000년대에 등장한 수 많은 플러그인은 2010년대에 들어 HTML5가 완전히 자리를 잡고 난 이후에야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브라우저 전쟁은 크게 3개 시기로 구분되며, 모자이크, 1차와 2차 브라우저 전쟁으로 나뉜다.

2. 배경


의 아버지인 팀 버너스 리 하이퍼텍스트 시스템을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에 걸쳐서 개발하였다.[4] 그는 최초의 브라우저인 WorldWideWeb[5]을 만들었으며, 이후 91년 NeXT에서 개발한 OS NeXTSTEP에 탑재하기 위한 버전을 개발한다.[6]

이것이 시발점이 되어 1992년 말을 기점으로 libwww, Line Mode Browser, ViolaWWW, Erwise, MidasWWW 등등 여러 브라우저들이 탄생함으로서 경쟁이 심화되기 시작한다.

3. 추이

3.1. 모자이크 브라우저 전쟁(Mosaic Wars, 1993~1994)

최초로 브라우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모자이크 브라우저였다. 1993년에는 Cello, Arena, Lynx, tkWWW, 모자이크 등 여러 브라우저가 등장하였고 이 중 모자이크는 뛰어난 편의성과 성능으로 1994년에는 90%가 넘는 점유율로 경쟁자들을 압도하였다. 그래프 참조

3.2. 제1차 브라우저 전쟁(1995~2004)


섬네일의 브라우저는 Internet Explorer 4 ~ 5.5로 추정된다.

넷스케이프 사의 브라우저는 1994년에 개발되어 1995년에는 모자이크를 제쳤으며 1996년에는 80%에 가까운 점유율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이 사태를 그냥 두고 볼 빌 게이츠가 아니었다. 1995년 8월, 마이크로소프트는 모자이크 브라우저에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고 Internet Explorer 1.0을 개발하였고[7], 3개월 뒤인 11월에 2.0을 출시하였다. 이 Internet Explorer 2.0은 모자이크 브라우저가 상업적 이용에 대해 비용을 청구했던 것과 달리, 비해 일반인들을 포함한 어떤 목적의 회사에게라도 무료 제공을 하였다.

이듬해인 1996년, 넷스케이프는 자신들의 기술력을 더 강화시켜 넷스케이프 3.0을 출시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공격적인 마케팅을 방어하기 위해서 자바스크립트 CSS를 구현하는 등 후발 주자들과의 큰 격차를 두었다.[8] 특히 CSS의 등장은 당시 웹 개발에 있어서 가히 혁명이라 할만큼의 개발 생산성을 증진시켰다.

1997년 10월, 마이크로소프트는 Internet Explorer 4.0을 샌프란시스코에서 발표하며 출시하였다. 넷스케이프 72%, 익스플로러가 18%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Internet Explorer는 4.0을 기점으로 해서 브라우저 전쟁의 방향을 크게 틀어버린다.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시장을 장악하게 된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어떤 기술적 강점이나 매력이 있던 것이라기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적인 행동 덕분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다음 3가지 자신의 강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고, 이는 넷스케이프의 결정적인 패착요인이 된다.

결과적으로 넷스케이프는 처참하게 패배했다. 2001~2004년 Internet Explorer의 한때 점유율이 90%에 육박했었으며 2002년의 경우 96%의 시장 점유율에 육박하게 된다. 넷스케이프의 후계자들은 오픈소스 기반의 웹 브라우저를 세우고 마이크로소프트 타도를 외치게 된다. 이들이 바로 오늘날의 모질라 재단이며, Firefox를 개발하였다. 파이어폭스 브라우저는 정당한 기술력에 의한 패배가 아니었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석권을 인정할 수 없었으며, 호시탐탐 그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기회를 보게 된다. 제1차 브라우저 전쟁 추이

하지만 제2차 브라우저 전쟁은 1998년 캘리포니아에 세워졌으며 까닥하면 야후!에 팔릴 수도 있었던 어떤 인터넷 검색 회사에 의하여 그 판도가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3.3. 제2차 브라우저 전쟁(2009~2015)

3.3.1. Firefox의 대항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 브라우저는 1차 브라우저 전쟁으로 인해 도태되었다. 그 하락이 시작되었을 시점에서 소스 코드를 공개하였으며 비영리 재단인 모질라 재단에 의해 이 코드들은 계승된다. 커뮤니티를 통한 수 년간의 개발은 지속되었고, 그 대표적인 기능이 Search Bar의 개발이다.[10] 모질라는 이 브라우저의 이름을 처음에는 Phoenix 로 정했지만 상표권 문제로 FireBird로, 나중에는 결국 Firefox로 변하게 되었고 2004년 11월 9일 1.0을 발표하게 된다.

넷스케이프의 실패는 모질라 재단에 '비영리'라는 교훈을 주었다. 그리하여 0.x 버전부터 시작한 Firefox는 자본의 문제에 전혀 구애받지 않은 환경이 되었다. 특히 ECMAScript[11] 제정 정통성, 우수한 개발 도구 지원 등으로 Internet Explorer를 상대로 꽤 선전적인 대항을 해나갔다.

그러나 Microsoft 또한 아웃룩 등과의 연계, 표준화 거부, XAML의 웹 기술 제정, WPF(Windows Presentation Foundation) 의 설립으로 대항하였다.

파이어폭스는 꾸준히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었지만 Internet Explorer에 길들여진 사용자층에게는 막강한 파급력을 미치기에는 힘들었다.[12] 2007년 아이폰의 등장으로 개발 표준에 대한 불안성이 증대되던 중 크롬이 등장한다.

3.3.2. Chrome의 등장

당시 구글 CEO였던 에릭 슈미트는 1차 브라우저 전쟁을 두고 구글은 아직 덩치가 작아 타격을 크게 입을 수 있다는 이유로 6년 간 반대했었다.[13] 결국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은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증명해야했다. 크롬 브라우저의 프로토 타입 개발을 위해 모질라 재단의 인재들을 고용했고, 에릭 슈미트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바꾸도록 하였다.

모질라 재단에서는 Chrome에 대한 발표(2008년 9월)를 듣고 격하게 반대하였다. 자신들은 Microsoft에 대해 충분히 대항 중이고 크롬의 출시는 되려 파이어폭스의 점유율만 갉아먹으리라 여겼기 때문이었다.[14] 그리고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모질라가 2000~10년 동안 꾸준히 쌓아왔던 30%의 점유율을 구글은 개발을 시작한지 불과 3년 만인 2011년 11월에 돌파했고, 2012년 5월을 기점으로 Microsoft의 점유율을 꺾었기 때문이다. Internet Explorer에 비해 압도적인 편의성, 경이적인 속도,[15] 날마다 혁신적인 개발 도구 제공 등으로 개발자부터 모든 사용자에 아우르게 되었다. ECMA 등의 표준을 충실하게 지켰고 그보다 더 나아가 실험적인 기술들을 적극 도입[16]함으로서 모두의 지지를 받게 된다.

또한 크롬이 이렇게 성공할 수 있던 이유 중 또 하나는 크롬의 출시 시기이다.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시장을 장악했을 즈음 파이어폭스, 오페라 등의 사용자들은 인터넷 익스플로러 위주로 만들어진 웹 사이트 때문에 불편을 겪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웹 사이트들도 인터넷 익스플로러 이외의 브라우저의 점유율이 점점 높아지고, 동시에 스티브 잡스의 어도비 플래시 반대 발언 이후, 리치 인터넷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지 않고 다양한 브라우저를 지원할 수 있는 웹 표준을 지키는 사이트로 차츰 변화하였다. 그리고 마침 대부분의 사이트들이 그러한 방향으로 변화했을 때 쯤 크롬이 출시했기 때문에 크롬은 새로운 브라우저임에도 이전의 다른 브라우저가 나왔던 시기에 비하면 웹 사이트들를 이용하는데 큰 불편이 없었다. 즉 상 다 차려진 곳에 나온 강자가 최초의 강자를 이긴 상황.[17]

또다른 이유로는 크롬 출시 전 이미 구글이 검색엔진 분야에서 정상에 올랐다는 것이 있다. 점유율 뿐만 아니라 신뢰성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크롬 또한 사용자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었으며, 각종 구글 서비스와의 연동성으로 인해 제공하는 편의성도 한 몫을 하였다. 검색하러 가서 쉽게 다운로드할 수 있었던 것은 덤. 이후에도 구글의 모바일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가 자리를 제대로 잡고 널리 쓰이게 되면서 안드로이드의 기본 탑재앱으로 들어간 크롬이 세를 불리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국내의 경우 2016년 4월을 기준으로 크롬이 점유율 1위를 차지하였다.[18] 제2차 브라우저 전쟁 추이(StatCounter 자료)

이렇게 제2차 브라우저 전쟁은 모질라도, Microsoft도 아닌 구글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3.4. IETab 전쟁(한국 등 일부 지역에만 해당)

2차 브라우저 전쟁은 무거운 Internet Explorer를 몰아내기 위한 전쟁이었다. 세계 시장에서는, 2차 브라우저 전쟁을 통해 Internet Explorer의 점유율을 크게 떨어트렸다. 그러나, 2차 브라우저 전쟁을 벌이며 파이어폭스가 Internet Explorer의 점유율을 점점 뺏고 크롬이 점유율 1위를 차지할 동안, 한국에서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19][20].2015년까지만 해도, 한국 민관 사이트의 70%가 ActiveX를 사용했는데, 이러한 환경에 맞는 브라우저가 Internet Explorer밖에 없었기 때문. 게다가 그 때는 인터넷 쇼핑을 할 때에도 ActiveX 사용이 필요한 공인인증서가 필요하여 더더욱 Internet Explorer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현재는 많이 바뀐 편이지만 많은 한국의 사이트들이 Internet Explorer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결국 한국에서는 Internet Explorer를 포기할 수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국에서는 Internet Explorer를 대체하기 위한 각종 브라우저와 프로그램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즉 세계에선 Internet Explorer를 몰아낸 전쟁을 이미 끝낸 상황이었지만, 한국에서는 그와는 조금 달리 Internet Explorer를 대체하는 새로운 양상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었다.

2013년, 줌 인터넷에서는 Internet Explorer를 대체하기 위해 스윙 브라우저를 출시했다. 스윙 브라우저는 크롬의 블링크 엔진과, Internet Explorer의 트라이던트 엔진을 탑재하여, 듀얼 엔진으로 작동한다. 크롬과 같은 패스트 모드와 Internet Explorer처럼 ActiveX를 지원하는 모드를 번갈아가며 사용하게 된다. 하지만, 크롬과 Internet Explorer를 완전히 통합하지 못했던 점, 스윙 브라우저의 기타 여러 단점에 더해, 한국의 여러 정부 사이트나 은행 사이트들에서도 ActiveX를 버리기 시작하며 스윙 브라우저는 결국 서비스를 종료했다. 이 외에도, 크롬에서 Internet Explorer에 맞춰져있는 사이트를 열 수 있게 한다든지, 아니면 아예 Internet Explorer를 빠르고 가볍게 만들어주는 프로그램도 등장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Internet Explorer가 HTML5 지원에 취약한게 드러나고 유튜브의 지원이 종료되자 크롬의 사용률이 예전보다 올라갔다.

2014년 1월 이후부터는 한국의 Internet Explorer 점유율이 계속하여 떨어지기 시작했다. 2015년에도 작은 등락을 거듭하여 우하향 그래프를 그려오다가 2016년 1월을 기점으로 Internet Explorer의 점유율이 드라마틱하게 급격히 떨어졌고, 드디어 2016년 4월 statcounter 기준 한국에서도 크롬이 1위가 되었다! 시기상 박근혜 정부가 소위 천송이코트 논란으로 ActiveX 폐지를 발표했고 이에 맞춘 최소한의 꼼수로 기존의 보안 프로그램들을 exe로 다운받아서 실행하는 것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대놓고 꼼수라서 액티브 EXE니 하고 욕먹었어도, 윈도우 한정으로 Internet Explorer 독점이던 환경을 크롬만 추가호환이거나 파이어폭스에서도 호환되는 등 개선된 점도 있기 때문. 자세한 건 Chrome의 점유율 분석 부분도 참고할 것.

2016년, 네이버에서 출시한 웹 브라우저 네이버 웨일은, 아직 Internet Explorer를 완전히 버리지 못한 한국의 상황을 감안해, Internet Explorer에 맞춰져있는 사이트도 지원할 수 있도록 호환 모드를 적용시켰다. 또한 네이버 메인 상단에 눈에 띄는 배너를 강제적으로 표시하는 등 점유율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Internet Explorer로 네이버를 접속한 유저에게는 ‘보안에 취약한 브라우저’라면서 웨일로 전환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2021년 들어서는 Internet Explorer가 마이크로소프트 엣지에도 크게 밀리는 것은 물론 웨일보다도 점유율이 낮아진 2%대까지 떨어졌다. #

2022년 이후로는 마지막 보루이던 한국의 관공서마저도 IE를 버리게 되었고 사실상 이제는 IE가 한국에서 퇴출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21]

4. 관련 문서



[1] W3C 기준. 여기서의 C는 Counter이고, W3Consortium의 산하기관이다. 출처 [2] 웹 브라우저 시장 점유율 현황 (2020년 최신) [3] Netscape의 NPAPI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다. [4] HTTP 기술이 정식으로 명세된 것은 1999년 RFC2616에 의해서이다. [5] 후에 Nexus라고 불리게 된다. [6] 그 당시 팀 버너스 리는 스티브 잡스와 함께 NeXT에서 일하고 있었다. [7] 영문 위키 Browser Wars의 근거 참조. Elstrom, Peter (22 January 1997). "MICROSOFT'S $8 MILLION GOODBYE TO SPYGLASS". Bloomberg Businessweek.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9 June 1997. Retrieved 9 February 2011. [8] W3C에서도 CSS의 등장 이전에는 웹 문서 작성이 '악몽'Nightmare 라고 표현하고 있다. W3Schools의 CSS Intro 페이지 참고. [9] 이러한 기술은 나중에 개발자들에게 있어 악의 축으로 취급된다. attachEvent 등의 표준을 개무시한 API 등이 그러하다. [10] 오늘날 대부분의 브라우저들은 URL을 제외한 텍스트를 자동검색해주지만, 당시에는 URL 입력만 작동하였다. [11] JavaScript의 표준이다. [12] 그러나 이 파이어폭스가 없었다면 브라우저 자체가 Microsoft의 횡포로 인해 유료가 되는 등의 막장 사태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에 대한 견제 장치로 모질라 재단은 그 역사의 큰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13] 구글은 텍스트 광고의 도입으로 2000년 즈음 돼서야 흑자 전환했다. [14] 그러나 파이어폭스 재단이 W3C와의 협력으로 WHATWG를 결성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어도 판세를 뒤집는데는 쉽지 않았고 특히 사용자층에 대한 돌파는 더더욱이 어려웠다. Internet Explorer가 툴바 도배 등으로 병크를 저지르는 상황과 모바일의 출현 등을 생각해보면 점유율이 굳혀질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15] 멀티코어 프로세서 적극 지원이 대표적이다. 메모리를 많이 먹는 문제가 있었으나 속도와 안정성 측면에서 유리했다. 이후 다른 브라우저도 멀티코어 프로세서를 지원하기 시작했으나 크롬에 비하면 한참 늦었다. [16] 대표적인 것이 console 객체이다. 파이어폭스의 경우 FireBug 등의 확장 프로그램으로 제공하였으나, 크롬은 이를 기본적으로 내장시킨다. 결국 편의성을 인정받아 표준화가 된다. [17] 사실 웹 표준을 지키는 방향으로 웹 개발이 변화한 것 자체는 기존의 브라우저들도 공유하는 이익이기는 하지만, 다른 브라우저들처럼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맞춘 웹 사이트들로 인해 '잘 안 되는 사이트가 많다'는 악평을 듣지 않은 것만으르도 이익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18] koreahtml5로나 statCounter로나 결과는 같다. 검색 점유율 역시 17년 기준 의심할 바 없이 구글이 1위이다. 대체적으로 국내 통계에 비해 해외 쪽이 더 공신력이 있다. 한 예로 피치원뷰 등의 통계사이트는 600% 의 상승이 이뤄졌다는 둥의 불안정한 데이터가 나오기 때문이다. [19] 심지어 Internet Explorer vs 파이어폭스가 한창일 때 파이어폭스 개발 주체인 모질라 재단은 점유율에 대한 민감한 질문을 회피할 때 독일(파이어폭스 점유율이 가장 높았던 나라)과 한국을 거론하는 식으로 빠져나가기도 했을 정도. [20] 다만 파이어폭스의 대한민국 점유율은 (전세계 점유율과 달리) 5%를 넘은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거의 단 한 번도 유의미한 수준을 기록하지 못했으나, 크롬은 단숨에 20% 초반으로 치고 올라간 후 몇년동안 15~25%에서 왔다갔다 했다. 크롬 등장 이전엔 Internet Explorer의 90% 점유율이 단 한순간도 깨진적이 없는 거의 유일한 국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저 정도도 대격변이긴 하다. 단지 외국에선 크롬 대세를 넘어 크롬 독점 수준으로 승기가 굳어지는 상황에서도 저 수치에서 정체되었던 게 특이했던 것. [21] 물론 이것은 단순히 보안 지원이 종료되었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엣지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관공서에서 쓰이는 수많은 내부 인트라넷 등은 아직도 IE 기준으로 맞춰져 있기 때문에 크롬 쓰는 건 언감생심이고 상당수가 엣지 내의 'IE 모드에서 페이지 실행' 기능을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