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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5 06:52:04

방사형 도시


도로망 형태에 따른 도시 분류
선형 격자형 방사형 방사환상형
직교방사형
파일:파리 항공사진.png 파일:워싱턴 D.C. 위성사진.jpg
프랑스 파리 미국 워싱턴 D.C.
放射形都市

1. 개요2. 역사3. 특징
3.1. 교통망3.2. 토지 이용
4. 한국의 적용 사례5. 목록6. 일본이 진해에 욱일기를 심었다?

1. 개요

도시 계획에서, 어느 한 지점을 중심으로 도로망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모양의 도시를 말한다. 전근대 도시가 근대 도시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많이 적용된 도시 계획으로, 대표적인 예로 프랑스 파리 미국 워싱턴 D.C.가 있다.

이와 달리, 도로망이 십자(十字)로 교차하여 바둑판 모양을 이루는 도시는 격자형 도시라고 하고, 격자형과 방사형이 혼합된 형태의 도시를 직교방사형 도시라고 한다.

2. 역사

방사형 가로망이 처음 적용된 시점은 18세기 미국 워싱턴 D.C. 19세기 프랑스 파리 개조 사업이었다. 두 도시는 모두 베르사유 정원과 같은 프랑스식 정원에서 모티브를 얻어 도시 계획에 적용한 것이다. 이로써 기존에 구불구불하고 좁았던 도로들을 없애고, 직선으로 뻗은 대로(大路)를 건설하고, 도시 내 여러 중심지들을 직선으로 연결하고, 도심에서 외곽을 직선으로 연결하는 여러 개의 이 생겨난 것이다.

한편, 이렇게 도시의 구획이 새로 정해지면서 생기는 부지에 근린 녹지와 광장, 공공 시설 등을 구축하여 도시민의 생활 편리를 추구함과 동시에 도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효과를 얻었다. 또한 궁전· 의사당· 시청· 기념물 등의 랜드마크를 중심으로 방사형 가로망을 배치함으로써, 도시 어디서나 랜드마크를 관람하고 접근을 용이하게 하였는데, 이러한 방식으로 도시의 미관을 조성하는 것은 지도자의 권위를 높이려는 목적도 있었다. 실제로 파리 개조 사업 역시 나폴레옹 3세의 명을 받아 시행한 것으로, 이 또한 왕조 건축의 또 다른 양식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1]

파리와 워싱턴 D.C.의 모델은 전 세계적으로 도시 계획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근대화를 이루던 국가들에서는 이촌향도 현상이 발생함에 따라 도시 개조는 도시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 꼭 해야 하는 사업이었고, 이때 많은 도시들이 파리와 워싱턴 D.C.의 모델을 참고하여 도시 계획을 세웠다. 특히 국가의 지도자 입장에서는 방사형 도시의 공간 배치를 매혹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아래 다루듯 한국 역시 이 시기에 방사형 도시를 시도한 예가 있다.

이외에도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을 겪은 뒤에 도시를 재건하거나, 세계 대전 이후에 산업화를 이룩한 국가들도 도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도시 개조 과정에서 방사형 도시 모델을 채택한 도시가 많았으며, 이렇게 18세기에 시작된 방사형 가로망 구축은 20세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두 세기를 넘도록 전 세계 도시 개발 모델의 표준이 되었다.

그러나 방사형 도시는 중심지와 주변 지역 간의 이동은 편리했으나, 주변 지역과 주변 지역의 이동은 고려하지 않은 계획이었다. 20세기에 이르러 대도시들은 단핵 도시에서 다핵 도시로 변모하게 되는데, 방사형 도시는 단핵 도시에는 적합할지언정, 다핵 도시에는 부적합하였다. 따라서 방사형 가로망에 순환선을 추가하여 방사형 도시를 계승한 방사환상형 도시가 현대에는 각광을 받고 있다.

3. 특징

방사형 도시는 확산·집중·연결에 초점을 맞춘 도시 계획이다. 여러 개의 도로가 모이는 교차로 내지 원형의 구획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여러 방향에서 오는 사람과 차량이 한곳에 집중되며 교차하고, 다시 여러 방향으로 갈라져 나가는 구조이다. 또한 두 개의 주요 지점을 연결하는 도로를 따라서 상권이 연담회되면서 연결축 자체가 도심이 되기도 하는데, 에투알 개선문 콩코르드 광장을 연결하는 샹젤리제 거리가 그렇다. 반면에 (面, Grid)으로 넓어지는 격자형 도시의 경우는 교차 지점이 매우 많으면서도, 하나의 교차 지점에서 연결되는 도로는 2개 밖에 안 되므로, 유동인구가 일정한 곳으로 집중되지 않고, 도심 형성이 중구난방으로 되는 경향이 있다.

방사형 도시는 선형 도시의 확장 모델이기도 하다. 산과 산 사이에 있는 도시는 폭이 좁은 시가지를 선형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마련인데, 이렇게 도시 내에서 선형 시가지가 여러 방향으로 생겨나고, 그곳들이 연결되면서 방사형 도시가 만들어진다. 대표적으로 부산이 이러한 형태의 방사형 도시로 발전한 곳이다.

3.1. 교통망

방사형 도시는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 거의 직선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동 거리가 크게 단축되고, 또 거의 직진만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반면에 격자형 도시에서는 도로를 여러 번 갈아타야 하고, 커브가 많이 때문에 방사형 도로망에 비해 이동 거리가 크게 늘어난다는 단점이 있으며, 특히 대각선 방향으로 이동할 경우에는 거의 배로 늘어난다. 다만 격자형 도시에서는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경로가 다양하여 교통 체증이 발생할 때에는 경로를 우회할 수도 있으나, 방사형 도시는 격자형 도시에 비해 훨씬 적은 교차로와 도로에서 교통량을 처리해야 하는 관계로, 우회 도로랄 게 거의 없고, 교통 체증이 심하게 발생할 수도 있다.

한편, 방사형 도시의 키워드인 '확산·집중·연결'은 철도 교통의 키워드와 거의 일치한다. 때문에 지하철 건설에 있어서도 다른 모델의 도시들보다 훨씬 유리하다. 다른 노선과 연결하기 위해 굳이 노선을 심하게 꺾을 필요가 없이, 지상에 있는 교차로만 이어도 직선으로 부드럽게 노선 설계가 가능하다.

3.2. 토지 이용

반대로 방사형 도시는 토지 구획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격자형 도시는 구획이 사각형으로 나오므로, 필지도 사각형으로 딱 떨어지는데, 인간이 생활에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물건이 사각형인 관계로, 건물도 사각형일 때 물건을 배치하기가 가장 수월하고 동선도 안정적이다. 그러나 방사형 도시에서는 구획이 삼각형, 사다리꼴 등으로 다양하게 나옴에 따라, 필지도 애매한 모양으로 나뉜다. 도시의 기능적 측면에서는 방사형 도시가 격자형 도시보다 월등히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도시민 개개인이 사유지에서 영위하는 공간적 생활은 불편해지는 것이다.

애매한 토지 구획으로 인해 격자형 도시에 비해 자투리 땅도 많이 나오는 편인데, 이는 장단점이 모두 있는 것으로, 택지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나, 소형 공원이나 시설을 설치하여 공공용지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도시의 택지 면적 자체는 줄어든다는 단점도 있다.

4. 한국의 적용 사례

본디 한국의 도시들은 전통적으로 수당시대 장안성을 본떠 만든 도성제(都城制)의 영향을 받아 격자형 도시로 설계되었다. 근대 이후로는 도시의 발전 단계에 따라 격자형→방사형→ 방사환상형으로 변화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늦어진 산업화로 인해 격자형에서 곧장 방사환상형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방사형 도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닌데, 주로 대한제국 시기에서 일제강점기 때까지의 근대 기간에 지어진 곳들이다.

1897년 고종 덕수궁으로 이어하고, 전통적으로 경복궁 앞에 있던 서울의 중심지가 덕수궁 앞으로 이전되는 과정에서 새 시가지를 구축할 때 방사형 도로망을 적용했는데, 서울시청 소공동 일대에 이 당시 도시 계획의 흔적이 남아 있다. 혹자는 이것이 워싱턴 D.C. 내셔널 몰을 참고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제기하기도 한다. 다만 형태로 보자면 방사형이 아니라 방사환상형에 가까운데, 조선 초부터 있었던 남대문로를 순환선으로 삼아 방사형으로 뻗어 나가는 세종대로· 소공로· 을지로를 연결하고 있다. 1907년에는 숭례문의 좌우 성벽이 헐려 회전교차로로 바뀌고, 일제강점기에는 서울역 앞으로 5개 방향의 도로가 연결되면서 시청-숭례문-서울역으로 이어지는 방사형 도로망이 구축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본격적으로 시가지가 구축되기 시작한 부산 진해도 방사형 도시 계획이 적용된 곳으로, 진해는 한국에서는 흔치 않게 정석적인 방사형 도로망이 구축된 곳이고, 부산은 지형 장애물을 극복하고 시가지를 확장시키다 보니 방사형 도시로 발전한 것이다. 서면교차로 연산교차로가 이러한 설계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1970년대 들어서는 서울이 팽창하게 됨에 따라 사대문 안을 중심으로 외곽 지역으로 향하는 도로를 개설하고, 그 도로들을 방사 ○호선이라 불렀다. 이 일환으로 건설된 도로들이 동작대로· 강남대로· 송파대로· 천호대로 등인데, 사실상 방사환상형 도시 계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서울 도시 계획이 유독 방사형 도시 계획이라 일컬어지는 것은, 당시에는 강남 영등포가 지금처럼 개발되기 전이라서 순환형 노선보다는 사대문 안과 외곽을 잇는 방사형 노선의 중요성이 부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서울은 도심 부도심이 환상형으로 형성되면서 방사환상형 도시로 발전하였지만, 아직도 순환 노선은 서울 지하철 2호선을 제외하고는 부실해서 지역 간 연결이 다소 미비한 경향이 있다.

5. 목록

6. 일본이 진해에 욱일기를 심었다?

진해의 중원로터리는 방사형 도시계획의 일환으로 8개 방향의 도로와 연결되는 원형 교차로로 건설되었는데, 하필이면 지어진 시기가 일제강점기였고, 방사형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형 교차로가 하필이면 욱일기를 닮은 탓으로 일제가 진해 땅에다가 욱일기를 박아 놓았다는 낭설이 퍼진 적이 있었다.[2] 개중에는 진지하게 믿는 사람들도 있는데, 다시 말하지만 낭설에 불과하다. 그때 반론으로 많이 나왔던 것이 파리의 개선문 로터리였는데, 진해 중원로터리가 욱일기라면 파리 한복판에도 욱일기를 박아 놓은 거냐는 식의 말들이 오갔었다.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방사형 도로망이라서 오해를 할 수도 있다.
[1] 실제로 절대 군주 독재자 도시의 공간을 재배치하고, 도시의 미관을 창조하는 도시 계획으로써 권위를 높이곤 하였으며, 때문에 도시 계획에 매우 신경을 쓰곤 하였다. [2] 일제강점기와 관련해서 이와 비슷한 낭설은 많다. 서울 서대문형무소, 중앙청, 서울시청 자로 형상화하여 서울 한복판에다가 대일본(大日本) 세 글자를 떡하니 박아 놨다는 설이었는데, 이 또한 당연히 사실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