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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03:48:11

목제(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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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진 제5대 황제
목제 | 穆帝
출생 343년
동진 양주 단양군 건강현
(現 장쑤성 난징시)
즉위 344년 11월 18일
동진 양주 단양군 건강현
(現 장쑤성 난징시)
사망 361년 7월 10일 (향년 18세)
동진 양주 단양군 건강현 황궁 현양전
(現 장쑤성 난징시)
능묘 영평릉(永平陵)
재위기간 동진 황태자
344년 11월 15일 ~ 344년 11월 17일
동진 제5대 황제
344년 11월 18일 ~ 361년 7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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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00080><colcolor=#ece5b6> 본관 하내 사마씨
담(聃)
부모 부황 강황제
모후 강헌황후
형제자매 외아들
배우자 목장황후
팽자(彭子)
묘호 효종(孝宗)
시호 목황제(穆皇帝)
연호 영화(永和, 345년 ~ 356년)
승평(升平, 357년 ~ 361년)
섭정 태후 저산자 ( 344년 ~ 35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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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여담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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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나라(晉)의 제9대 황제이자, 동진(東晉)의 제5대 황제. 자는 팽자(彭子)

2. 생애

건원 원년(343년)에 사마악 저산자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건원 2년(344년) 8월, 강제 사마악의 병세가 위급해지자 중서감 유빙과 정서 장군 유익 형제는 회계왕 사마욱[1]을 후사로 세우기로 했다. 하지만 표기장군 하충은 겨우 2살 밖에 안되는 사마담을 태자로 봉하자고 했는데 왠지 사마악은 어린 아들을 태자로 봉했다. 9월, 사마악이 사망하자 황제가 되었는데 저태후가 섭정하고 하충이 보좌했다. 하충은 재능과 식견이 있고 도량이 넓었으며 친족이나 지인을 사사로이 돌보지 않고 나라를 잘 다스렸다.

영화 2년(346년) 정월, 하충이 죽고 좌광록대부 채모와 사마욱이 정사를 보좌했다. 이때는 중원 지역이 혼란에 빠져 갈족의 후조를 한족의 염민이 멸하여 염위를 세웠고, 저족이 세운 전진 부건이 천왕에 즉위했으며[2] 선비족 전연 모용준이 염위를 멸망시켰다. 이 틈을 타서 동진의 유력한 형주 군벌 환온이 서정을 감행했다.

영화 3년(347년), 성한을 쳤다. 환온은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결국 성한을 멸망시키고 후주 이세를 사로잡았으며 서촉 지방을 수복했다.

영화 10년(354년)에는 환온이 본격적으로 전진을 쳐서 장안, 낙양을 함락시킬 작정을 했으며 평승루에 올랐다. 양주자사 사마훈과 함께 장안을 수복하기 위해 관중을 쳤는데 촉한 위연이 제안했다는 그 전설 자오곡 계책을 그대로 활용했다가 보급로가 끊겨 철수했다. 사실 환온은 구도인 장안과 낙양을 함락시킬 마음이 만만했고 북벌 전 표문에서도 그런 마음을 표명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자 결국 관중 지역 백성들 3,000여 명만 이끌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3]

사실상 형주의 지배자였던 환온이 북벌을 행한 궁극적인 목적은 큰 공을 세워 동진을 찬탈하는 것이었는데, 결국 그의 꿈은 그의 아들 환현이 이루다가 말았고, 유유가 그 꿈을 이룬다.

영화 12년(356년), 환온은 두 번째로 이어진 북벌 시도에서 4년 전 은호를 꺾었던 요양(姚襄)의 군세를 격파했다. 그리고 나서는 수복한 낙양으로 수도를 이전하자고 건의했지만 사마담의 무관심과 강남(중국)에 뿌리를 박은 사대부들의 반대, 환온의 찬탈 의도를 깨닫고 견제하려는 대신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철수한다. 사실 당시 낙양은 동진의 변경에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북쪽의 이민족에게 빼앗겨서 환온 본인도 진지하게 제안한 주장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정북 대장군 저곤, 중군 장군 은호 등도 북벌 러시에 뛰어들었으나, 모두 실패했다. 일단 본인들의 능력은 장군이라기에는 너무나 허접했고 오히려 청담가에 가까웠으며 국고가 비었고 치밀한 계획도 없었다.

승평 5년(361년) 5월, 사마담은 재위 18년 만에 19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7월에 영평릉에 안장되었다.

3. 여담

참고로 1980년 영평릉으로 추정되는 무덤이 남경 막부산에서 발견된다. 사실 짧은 기록과 출토 유물 등으로 추정하는 것이긴 하지만, 역대 동진 황릉이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볼 때는 중요한 발견이다.

4. 둘러보기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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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제기(帝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1권 「선제기(宣帝紀)」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사마의 사마사 · 사마소(昭) 사마염
4권 「혜제기(惠帝紀)」 5권 「회제민제기(懷帝愍帝紀)」 6권 「원제명제기(元帝明帝紀)」
사마충(衷) 사마치 · 사마업 사마예 · 사마소(紹)
7권 「성제강제기(成帝康帝紀)」 8권 「목제애재폐제기(穆帝哀帝廢帝紀)」
사마연(衍) · 사마악 사마담 · 사마비 · 사마혁
9권 「간문제효무제기(簡文帝孝武帝紀)」 10권 「안제공제기(安帝恭帝紀)」
사마욱 · 사마요 사마덕종 · 사마덕문
※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 31·32권 「후비전(后妃傳)」 ||
[ 재기(戴記) ]
||<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width=33%> 101권 「유원해재기(劉元海戴記)」 ||<-2><width=34%> 102권 「유총재기(劉聰戴記)」 ||<width=33%> 103권 「유요재기(劉曜戴記)」 ||
유원해 , 유화 · 유선, 유총 , 유찬 · 진원달, 유요
104 · 105권 「석륵재기(石勒戴記)」 106 · 107권 「석계룡재기(石季龍戴記)」
석륵 , 석홍 · 장빈, 석계룡 , 석세 · 석준 · 석감 · 염민,
108권 「모용외재기(慕容廆戴記)」 109권 「모용황재기(慕容皝戴記)」
모용외 , 배억 · 고첨, 모용황 , 모용한 · 양유,
110권 「모용준재기(慕容儁戴記)」 111권 「모용위재기(慕容暐戴記)」
모용준 , 한항 · 이산 · 이적, 모용위 , 모용각 · 양무 · 황보진,
112권 「부홍등재기(苻洪等戴記)」 113 · 114권 「부견재기(苻堅戴記)」 115권 「부비등재기(苻丕等戴記)」
부홍 · 부건 · 부생 , 왕타, 부견 , 왕맹 · 부융 · 부랑, 부비 · 부등 , 삭반 · 서숭,
116권 「요익중등재기(姚弋仲等戴記)」 117 · 118권 「요흥재기(姚興戴記)」 119권 「요홍재기(姚泓戴記)」
요익중 · 요양 · 요장 요흥 , 윤위, 요홍
120권 「이특등재기(李特等戴記)」 121권 「이웅등재기(李雄等戴記)」
이특 · 이류 · 이상 이웅 ·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여광 · 여찬 · 여륭
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걸복국인 · 걸복건귀 · 걸복치반 · 풍발 , 풍소불,
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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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제 사마예의 막내 아들로 강제 사마악의 숙부. 훗날의 간문제. [2] 부건은 죽을 때까지 황제가 되지 않고 천왕이라고 칭했는데 그의 아들 부비가 그를 황제로 추존했다. [3] 부견의 재상으로 유명한 왕맹(王猛)을 이때 만났는데 왕맹은 를 잡으면서 태연히 환온과 의견을 교환하며 엄청난 학식을 자랑했다. 이에 환온은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는데 왕맹은 자신의 스승에게 물어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승은 환온 따위를 따라 나서지 말라고 했고, 이에 왕맹은 모친 모시는 것을 핑계로 환온의 제안을 거절한 후 부견을 따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