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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5 19:08:28

멜리나 메르쿠리

멜리나 메르쿠리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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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Greatest Greeks
※ 2009년 그리스 Skai TV 방송이 그리스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그리스인 100명'을 선정
TOP 10
1위 2위 3위 4위 5위
알렉산드로스 3세 게오르요스 파파니콜라우 테오도로스 콜로코트로니스 콘스탄티노스 카라만리스 소크라테스
6위 7위 8위 9위 10위
아리스토텔레스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요안니스 카포디스트리아스 플라톤 페리클레스
11위~100위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콘스탄티노스 카라테오도리 멜리나 메르쿠리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니코스 카잔차키스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오디세아스 엘리티스 호메로스 마노스 하지타키스 레오니다스 1세 히포크라테스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피타고라스 콘스탄티노스 카바피 마리아 칼라스 아르키메데스 아리스토틀 오나시스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하릴라오스 트리쿠피스 엘 그레코 콘스탄티노스 11세 요르기오스 세페리스 리가스 페레오스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아리스 벨루키티오스 요안니스 메탁사스 니코스 갈리스 게오르기오스 카라이코스 데모크리토스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게오르기오스 게미스토스 플레톤 디오니시오스 솔로모스 야니스 마크리야니스 아다만티오스 코라이스 야니스 리트오스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테미스토클레스 헤라클레이토스 투키디데스 유클리드(에우클레이데스) 파블로스 멜라스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아테네의 크리스토둘로스 아타나시오스 디아코스 테오도로스 자고라키스 디미트리 나노풀로스 무명용사
51위 52위 53위 54위 55위
페이디아스 아리스토파네스 코스티스 팔라마스 에톨리아의 코스마스 마놀리스 안드로니코스
56위 57위 58위 59위 60위
소포클레스 니코스 벨로야니스 코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 요르요스 파판드레우 니콜라오스 마르지오리스
61위 62위 63위 64위 65위
알렉산드로스 파나굴리스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 에피쿠로스 알렉산드로스 파파디아만티스 오톤
66위 67위 68위 69위 70위
반젤리스 솔론 클레이스테네스 아이스퀼로스 바실리오스 2세
71위 72위 73위 74위 75위
콘스탄티누스 1세 이온 드라구미스 코스타스 시미티스 니콜라오스 플라스티라스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
76위 77위 78위 79위 80위
테오 앙겔로풀로스 니코스 실루리스 스텔리오스 카잔티디스 차릴로스 플로라키스 에우리피데스
81위 82위 83위 84위 85위
카롤로스 코운 유스티니아누스 1세 라키스 라조폴로스 헤로도토스 다나시스 벤고스
86위 87위 88위 89위 90위
헬레네 글리카츠아흐와일러 카티나 팍시누 알리키 부지욱라키 마르코스 밤바카리스 그리고리스 람브라키스
91위 92위 93위 94위 95위
바실리스 치차니스 피로스 디마스 마노스 로조스 마노리스 글레조스 엘레나 무잘라
96위 97위 98위 99위 100위
필리포스 2세 디미트리스 혼 라스카리나 부불리나 탈레스 프락시텔레스
출처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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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칸 영화제 로고.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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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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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멜리나 메르쿠리
Μελίνα Μερκούρη | Melina Mercouri
파일:melinamercouri.jpg
본명 마리아 아말리아 메르쿠리
Μαρία Αμαλία Μερκούρη
출생 1920년 10월 31일 (그레고리력)[1]
그리스 왕국 아테네
사망 1994년 3월 6일 (향년 73세)
미국 뉴욕
최종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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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배우, 가수, 정치인
활동 기간 1945년 - 1977년
신장 173cm
소속 정당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
지역구 피레아스 B -> 비례대표
의원대수 7
배우자 파노스 하로코폴스 (1939년 결혼~1962년 이혼)
줄스 다신 (1966년 결혼)

1. 개요2. 생애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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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그리스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명배우이자 그리스 민주화의 영웅으로 꼽히는 정치인.

그리스인 조르바의 영화판 등으로 20세기 중반을 풍미한 명배우이며 동시에 모국인 그리스의 민주화를 성공시키고 장관까지 지낸 먼치킨이었다. 지금도 그리스에서는 그녀를 자국의 위인으로 추앙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그리스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톱스타였다가 군사정권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모국에서 추방당하기도 했고 그러면서도 끝내 굴하지 않고 자국에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 간 사람이었다.

2. 생애

아테네에서 부유한 정치 명문가의 영애로 태어났던 그녀는 1945년에 그리스 국립극장에 입단하면서 연극 배우로 데뷔했는데 이때 유진 오닐의 희곡인 《 엘렉트라의 비탄》에서 엘렉트라 역을 맡았다. 그녀의 리즈 시절은 영화 배우 시절이지만 당시로서는 상당히 늦은 시기인 35살 때에야 영화 《 스텔라》를 통해 영화 배우로 전업했다. 이후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영화판에 출연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평생을 같이하게 되는 미국 출신 감독 줄스 다신[2]을 만나게 된다. 당시 줄스 다신 매카시즘 블랙리스트를 피해 미국을 떠나 유럽을 전전하고 있었다. 그들의 첫 협업작인 일요일은 참으세요는 1960년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결국 둘은 서로의 배우자랑 이혼한 뒤 결혼했다.

그렇게 세계적인 배우로서 승승장구하던 와중에 1967년에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 군사독재정권이 수립되자 군사독재정권을 규탄하는 성명문을 발표했다가 이것이 트집잡혀서 그리스 국적이 말소되었다. 결국 자국에서의 활동이 금지된 그녀는 프랑스에 잠시 정착해서 샹송 가수로 활동하다가 미국으로 이민가서 시민권을 얻었다. 그러면서도 모국인 그리스의 민주화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중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그리스가 민주화되자 좌파 정당인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 창립자 중 한명으로 중앙집행위원회 내 지내다가 당시 총리였던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에 의해 그리스의 문화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두 번이나 장관 직을 수행하였다. 장관 재임 동안 유럽 문화 수도를 만드는 업적을 가졌다.

장관으로 재직하던 중이던 1994년에 미국 뉴욕에서 지병인 폐암으로 사망하였고 그녀의 시신은 그리스 제1묘지[3]에 매장되었다.

3. 기타

파나티나이코스 FC 서포터였다.

배우 시절부터 상당한 골초로 유명했다. 이것 때문에 말년에 폐암으로 쓰러졌고, 그녀의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다.

엘긴 마블의 반환 문제와도 연관이 깊다. 배우로 유명하던 1962년에 영국 런던을 방문했다가 대영박물관에 자국의 유물인 엘긴 마블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 격분했고, 이 문제를 공론화시켰다.[4] 그녀는 생전에 엘긴 마블이 모국에 반환되는 것을 꼭 봐야겠다고 생각해서 문화부 장관 시절 엘긴 마블의 반환을 위해 영국 정부와 협상을 시도했다. 영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 유물들은 엘긴의 조각이 아니라,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들"이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국 정부의 적반하장식 태도에 치를 떤 그녀는 죽을 때까지 엘긴 마블의 반환을 거부한 영국 정부를 통렬히 비판했다.

배우자 줄스 다신에게 여러모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줄스 다신을 본격적인 필헬레니즘으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5] 다신 본인도 그녀가 이끌었던 그리스 민주화와 엘긴 마블의 반환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했고 다신과 그녀가 할리우드 배우들을 끌어들어 만든 영화들도 그리스 영화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때문에 줄스 다신도 그리스에서 평판이 매우 좋다.

한국에서도 일요일은 참으세요라던가 페드라가 인기를 끌면서 기성세대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 정작 이 영화들을 감독한 줄스 다신은 인지도가 낮다.


[1] 율리우스력으로는 1920년 10월 20일이다. 당시의 그리스 율리우스력을 쓰고 있었다. [2] 멜리나를 만나기 이전에도 이미 여러 필름 느와르와 범죄 영화들로 영화사에 명망있던 감독이었다. 대표작으로는 리피피, 밤 그리고 도시가 있다. [3] 한국으로 치면 현충원 같은 곳이다. [4] 엘긴 마블에 서술된 것처럼 본래 문화재 보존을 목적으로 영국으로 옮겼지만 그리스가 안정화된 현재도 영국 정부가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5] 다신의 영화 세계도 멜리나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뉠 정도다. 멜리나를 만난 후 다신의 영화는 친그리스적인 성향을 띄면서 좀 더 밝고 유쾌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