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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27 00:05:08

멕시코 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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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대륙의 유대인 디아스포라
미국 캐나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

1. 개요2. 역사
2.1. 멕시코 독립 이후
3. 분포4. 여담5. 인물6. 관련 문서

1. 개요

유대인 민족 정체성을 보유하면서, 멕시코의 시민권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현재 멕시코에 존재하는 유대인은 40,000명 정도로 추정된다.

2. 역사

1492년 이베리아 반도 카스티야 연합 왕국 그라다나 아미르국을 멸망시키고 레콩키스타를 완료한 것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자국 내 모든 유대인들에게 4개월의 기간을 줄테니 전부 다 기독교로 개종하거나 아니면 스페인에서 나갈 것을 명령하는 "알함브라 칙령"을 발표한다. 한 편으로 같은 해 스페인 왕실의 지원을 받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함대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다. 알함브라 칙령과 콜롬부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은 같은 해 이루어졌는데, 이를 계기로 상당수의 스페인 유대인들이 박해를 피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서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게 되었다.

스페인은 아즈텍 제국을 정복한 이후 오늘날의 멕시코와 쿠바, 과테말라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누에바에스파냐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누에바에스파냐의 관할 구역은 남쪽으로는 코스타리카에서 북쪽으로는 오늘날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에 이르렀다. 하지만 스페인인 정착민들은 고산지대 중에서도 온난한 지역[1]을 선호하였는데, 해당 지역에는 이미 아즈텍이나 잉카 시대 건설된 사회 간접 자본이 있어서 개발이 쉬웠던데다가, 코스타리카와 파나마 일대[2]는 말라리아 때문에 스페인인 입식자들도 정착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떼죽음을 당하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한 편 대항해시대 당시 카스티야 연합 왕국에서 동쪽 해안 지대에 해당하는 아라곤 왕국 주민들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드물었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민한 사람들 상당수는 카스티야-레온 왕국의 하급 귀족들이 많았다. 카스티야-레온과 바스크 일대는 대부분 산지였기 때문에 해당 지방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해온 사람들은 고산 지대를 선호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3] 스페인 콘베르소[4] 역시 멕시코 고산 지대 등을 중심으로 정착하였다.

대항해시대 당시 배를 타고 장거리 이동을 하는 것은 다소 위험한 일이었고,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성이었다.[5] 당시 여성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하는 경우는 유대인 같은 종교적 소수자에 속하는 경우가 많았다. 누에바에스파냐로 이민 오는 유럽인 여성들은 대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콘베르소 출신이 많았는데, 한동안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콘베르소들을 대상으로 한 종교 재판, 추방 및 재산 몰수가 빈번했기 때문이었다.
신대륙 발견 이후 스페인 왕실은 유대인의 이민을 엄격히 금지했고 지속적으로 이민금지령을 공포했다. 그러나 이런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돈으로 면제부를 살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아메리카 대륙에 갈 수 있었다. 스페인 왕실이 이렇게 주기적으로 이민 금지와 허용을 반복한 것은 스페인 왕실의 재정 수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스페인 왕실이 이민 규정을 강화할 때마다 유대인 신분을 세탁할 증명서의 값도 상승했고 이에 따라 국고 수입도 늘어갔다. 이런 점에서, 당시 유대인의 이민은 전적으로 국왕의 손에 달려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군인, 선원 그리고 종들은 이런 증명서가 없이도 스페인을 떠날 수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이런 직업으로 바꿔 신세계에 갈 수 있었다. 한편, 많은 수의 유대인 후손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스페인식으로 개명한 , 16세기 중반 누에바에스파냐에 정착하게 된다.
(...)
17세기 포르투갈 출신의 유대인들이 이곳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누에바에스파냐의 유대인 디아스포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당시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사람들의 대부분은 스페인의 포르투갈 합병(1580~1640)으로 야기된 유대인 박해를 피해 도망쳐 온 포르투갈 유대인들로서, 이들 대부분은 브라질, 아르헨티나, 페루 및 누에바에스파냐에 거주하고 있었다. 포르투갈 유대인들은 여러 분야에서 상업 활동을 했었는데 이들로 인해 누에바에스파냐에 살았던 유대인들의 직업은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라이킨 엘킨이 언급한것을 보면, 이들이 지녔던 직업이나 종사했던 일은 상인, 탄광 소유자, 배 목수, 고기 납품업자, 승려, 장의사, 울타리 장인, 신발 제조업자, 행상인, 목수, 광부, 재단사, 참모, 여관주인, 앙돈업자, 약제사, 성직자, 공공서기관, 과자제조인, 중국과의 무역상인, 도미니크 교단 수도사, 아프리카 노예상인, 비서, 시장, 사탕공장주, 의사, 군인, 주교대리, 목축판매업자, 농민, 은세공인, 가게주인, 마술사, 직공, 보석상, 아시엔다 소유자, 치안 책임자 등이었다(2014: 8). 당시, 포르투갈 유대인들이 대규모적으로 종사했던 분야는 노예무역이나 갤리언 무역과 같은 국제 해양 무역이었다(Quiroz, 1986: 244). 이런 무역은 스페인의 새로운 경제정책에서 나온 것으로서 대서양이나 태평양을 통한 이런 국제무역 시스템에 가장 적응을 잘 했던 사람들이 바로 이 포르투갈 유대인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멕시코 유대인 이민과 종교재판 - 식민시기 초기 누에바에스파냐

이렇게 수백여 년 전 멕시코에 정착한 콘베르소들의 후손들은 집에서 몰래 유대교 예배를 드리곤 했으나, 세대가 지나면서 유대교 교리나 예배를 잊어버렸고, 여타 크리오요들과 동화되었다. 멕시코 독립 이후 한참 이후 시점에 해당하는 1900년 멕시코 내 유대교 신도 인구는 134명으로 조사되었다.

2.1. 멕시코 독립 이후

19세기 초반 라틴아메리카 각지의 크리오요들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스페인은 쿠바와 푸에르토 리코를 제외한 대부분의 영토를 상실하였다. 원래 멕시코와 쿠바에서는 1821년까지 국왕 충성파들이 독립을 거부하였었다.[6] 그러나 1821년 스페인 본토 카디스에서 쿠데타가 발발하여 스페인 국왕은 자유주의적 개혁에 동의하자, 해당 지역의 기득권 세력은 스페인 왕실에 여기에 실망하고, 총구를 바꾸어 독립을 결정하였다. 이는 다시 말해서 멕시코 사회는 독립 이후에도 스페인 식민 시절 기득권들이 보수적인 태도를 유지했다는 말이 된다. 이 보수적인 태도는 유대인 관련한 정책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멕시코의 유대인 관련 차별 조항은 프랑스의 개입으로 생겨난 외세인 멕시코 제2제국 막시밀리아노 1세에 의해 철폐되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 유럽이나 중동에서 남미로 이민이 유행하는 과정에서 멕시코는 예외였다. 유대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대량 이민한 계기는 19세기 말 러시아 제국에서 유행했던 반유대주의 폭동( 포그롬)이었다. 그러나 미국, 아르헨티나, 캐나다, 브라질로 대규모로 이민하는 가운데, 멕시코로 이민을 희망하는 유대인은 극소수에 불과했는데[7] 당시 멕시코는 기후도 기후거니와 강도가 하도 들끓어서 이주민들이 생명을 보장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유한 프랑스인 사업가들도 지방으로 출장 갔다가 비명 횡사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거나 아니면 열차 강도[8]가 날뛰던 당시 멕시코 상황보다는 오히려 포그롬이 발생하던 동유럽이 더 안전했다.

이러한 연유에서 멕시코의 유대인 사회는 시리아에서 이주해 온 유대인들이 중심이 되었는데, 오늘날에도 멕시코의 유대인 사회는 미국이나 캐나다, 아르헨티나와는 다르게 미즈라힘 위주로 굴러간다. 1930년대 당시 이들은 자신들의 선조가 다마스쿠스 출신인가 아니면 알레포 출신인가를 가지고 서로 나뉘어져 반목하곤 했다. # 그러나 이들 시리아 출신 미즈라힘 유대인들은 인구도 2천여 명 정도로 소규모였던데다 가난한 행상인들이 많았고 특출나게 부유한 것도 아니었다.

유대교를 믿지는 않지만, 자신이 유대인 후손임에 자부심을 느끼는 경우도 있었다. 대중적으로는 널리 알려진 사례로는 디에고 리베라의 가족이나 친구들 사례를 들 수 있다. 디에고 리베라의 할아버지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 유대인이었으며, 할머니는 포르투갈 콘베르소 였다가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다시 유대교 신앙으로 원복한 경우였다. # 이 외에도 리베라의 친분관계가 있던 유대인 중 스탈린에 의해 추방되었던 레프 트로츠키[9]는 리베라의 도움으로 1937년부로 멕시코로 망명할 수 있었다.[10] 이후 레프 트로츠키는 디에고 리베라의 부인 중 하나였던 프리다 칼로와 멕시코에서 불륜 관계를 맺는 것으로 보답했다.

멕시코 독립 이후 유대인들의 대량 이민 관련한 구체적인 기록이 남아있는 유일한 사례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유대인 난민 수용이다.[11] 1937년 일단의 독일 유대인 난민들을 싣은 배가 쿠바에 입항하려 했으나, 쿠바 측에서 이들의 입국을 거부하면서 배는 멕시코로 향했고 이를 계기로 멕시코 정부 측은 홀로코스트의 위협을 겪던 유대인 난민들을 상당수 수용하기 이른다. 이렇게 멕시코로 난민이 되어 유입된 유대인 대다수는 후일 언어나 구직 문제 등으로 기회가 닫는데로 미국으로 이민하였으나, 멕시코에서 괜찮은 직장을 찾는 경우는 아예 정착하는 경우도 나왔다.

3.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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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멕시코 내 유대인들은 수도 멕시코 시티, 아니면 멕시코의 유명 관광 리조트들이 밀집한 킨타나 로오 칸쿤과 플라야 델 카르멘, 툴룸 일대를 중심으로 분포한다. 미국 유대인 인구가 밀집한 미국 북동부[12]는 겨울 날씨가 무척 우울한 편이기 때문에, 겨울이 되면 칸쿤이나 툴룸 등으로 놀러오는 미국인들이 많고, 이들 중에는 미국 유대인들도 많다. 멕시코 내 유대인들은 이들을 대상으로 코셔 푸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편이다.

4. 여담

오늘날 멕시코 사회에서는 유대인이 그렇게까지 존재감이 있는 존재는 아니지만,[13][14] 대신 멕시코에서 파나마로 재이민한 시리아 유대인들의 존재감이 큰 편이다. 파나마는 이스라엘을 제외하고 20세기에 유대인 대통령이 3명 이상이 당선된 유일한 나라이다.

5. 인물

6. 관련 문서


[1] 오늘날의 멕시코 중부 고원지대와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등 [2] 다리엔 갭 문서 참조 [3] 오늘날 스페인은 국토 1/3이 산지로 평균 해발고도는 660m로 스위스 다음으로 평균 해발고도가 높은 나라이다. 특히 카스티야-레온 왕국에 속했던 영토들은 산지가 많았다. [4] 세파르드 유대교에서 가톨릭으로 반강제로 개종된 사람들. 종종 마라노(Marrano)라고도 불린다. [5] 유럽인 남성들이 현지 원주민 여성들과 통혼하는 과정에서 낳은 혼혈인들 중 금발이나 벽안은 극히 드물었고, 바로 이 때문에 누에바에스파냐 사회에서 금발벽안은 고귀한 신분이나 혈통을 나타나는 척도 역할을 했다. 오늘날에도 멕시코에서는 금발이나 벽안을 가진 배우나 모델 관련한 수요가 큰 편이다. [6] 해당 지역들은 상술했던 것처럼 고산지대에 위치하여 과거부터 스페인들의 이민이 집중되었던 [7] 러시아계 멕시코인 문서의 통계 참조 [8] 서부영화 대열차강도를 생각해보면 된다 [9] 유대인 혈통을 이어받았다 뿐이지 무신론자였다. 오늘날 미국에서 이런 경우는 유대인이 아니라 Enlarged Jewish population 등으로 분류된다. [10] 당시 멕시코 대통령 라사로 카르데나스가 직접 트로츠키를 마중나온 후 항구에서 멕시코 시티로 이동하는 특별 열차까지 마련해 줄 정도로 환대를 받았다고 한다. 디에고 리베라가 당시 이미 멕시코의 거물급 예술가였고, 그가 트로츠키에게 호의를 베풀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11] 이미 1930년대 당시 멕시코 시티에 상당한 규모의 시리아 미즈라힘 유대인 공동체가 운영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지만, 이들은 여러 가지 다양한 루트로 개별적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이들의 이민 정착 관련한 구체적인 데이터는 찾기 힘들다. [12] 뉴욕과 필라델피아, 펜실베이니아 일대 [13] 미국에서 유대인/아르메니아인들이 가지고 있는 위상을 멕시코에서는 레바논인들이 가지고 있다. [14] 2024년부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파르도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나름 존재감이 올라가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