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의
- Mexicanos blancos
- Güeros(속어)
멕시코 백인이라는 뜻은 멕시코인 중 유럽계 백인 혈통이 우세한 사람을 뜻할 때도 있고, 백인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도 있다. 인구 통계상으로는 10%~20% 내외를 차지하지만, 메스티소와 백인의 범주를 어느정도로 정하느냐에 따른 차이가 크다.
2008년 브라질의 브라질리아 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평균적인 멕시코인의 유전자는 백인 29.6%, 원주민 60.1%, 흑인 10.1%로 이루어졌다. #
멕시코 백인이라는 어휘는 멕시코 사회에서 상당히 민감한 주제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원인으로는 스페인의 멕시코 식민 지배의 역사, 그리고 오늘날 미국과 멕시코의 밀접한 관계와 여기서 차이를 가르는 인종 문제를 들 수 있다.
2. 유색인종과 백인 사이의 정체성
멕시코가 스페인의 식민지였을 당시 유럽에서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온 스페인인들은 거의 다 남성이었고, 이렇게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스페인인 남성들은 현지 원주민 여성들과 자녀를 낳았다. 이렇게 나온 혼혈인들 중 금발이나 벽안은 극히 드물었고, 바로 이 때문에 누에바에스파냐 사회에서 금발벽안은 고귀한 신분이나 혈통을 보증하는 척도 역할을 맡았다. 다시 말해서 멕시코의 백인 인구는 희소했으며, 사회 기득권층으로 우대를 받아왔다. 자세한 내용은 페닌술라르와 크리오요 문서 참조
멕시코가 스페인의 식민 지배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멕시코 사회의 뿌리깊은 백인 우월주의는 타파되기는 커녕 오히려 미국-멕시코 전쟁을 계기로 더 심화되었다. 미국은 멕시코와 국경을 마주한 경제 대국이고, 초강대국이다.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관계는 한일관계나 한중관계 이상 수준으로 밀접한데,[1] 멕시코인들이 이웃인 미국인들에게 유색인종 아니 단순한 유색인종 취급을 넘어 열등인종 취급을 받는다는 사실은, 멕시코의 빈곤 문제 및 멕시코계 미국인 불법체류자 문제, 미국-멕시코 전쟁에서의 굴욕적인 졸전과 패배의 역사[2] 등과 버무려져 멕시코인들의 자존심이나 국민 감정에 깊은 상처를 입혀올 수밖에 없었다.
명백한 운명속에 잠재되어있던 제국주의적 요소가 발현되면서 함께 나타난 최악의 부작용은 인종(차별)주의였다.
텍사스 정신을 대표하는 지도자로 추앙받는
샘 휴스턴(Sam Houston)은 멕시코 전쟁의 승리를 자축하는 한 연설에서“미국의 개척자들이 인디언 부족들을 무찌르고 텍사스에서 그들을 쫓아냄으로써 야만의 황야를 문명인의 터전으로 개조할 수 있었듯이,”“미국인은 이번에도 멕시코인들로부터 빼앗은 땅에서 문명인을 위한 행복과 번영을 일구어낼 것이다”라고 자부했다(Hietala 194쪽에서 재인용). 멕시코 정복을 프런티어 신화의 알짜 중의 하나로 보는 미국학자 리처드 슬랏킨(Richard Slotkin)은 당시의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보다 명쾌하게 정리한다.
19세기 미국의 파워 엘리트들은 멕시코 전쟁을“규모가 확대된 인디언 전쟁”(a grand-scale Indian war)으로 간주했고(181), “야만을 정복한 신세계에 민주주의와 경제 진보의 장을 건설하 는 일이 앵글로색슨족의 사명”이라고 못 박았다(175). 과달루페이달고 조약이 체결될 당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상원의원이었던 존 칼훈은 한술 더 떠서 “만약 멕시코가 합병되어 미국의 준주가 된다면 멕시코의 잡종 인구들이 인종적으로 순혈인 미국인들과 평등한 위치에 놓이게 될 것이므로 결단코 거기까지 가서는 안 된다”(Hine and Faragher 211쪽에서 재인용)고 목청을 높였다. 다음장에서 논의하겠지만, 미국의 사병(私兵) 집단과‘ 명백한 운명’간의 연관성을 파헤치는 로버트 메이(Robert May)가 지적하듯이, “명백한 운명의 인종주의적 경향은 멕시코와의 정전 이후 중미 지역으로 급속히 퍼져나간 여러 군소 군사원정에서 더욱 확연하게 드러났다”(163)
국경의 틈새에서‘명백한 운명’을 욕망한 희생양과 사생아 —코맥 매카시의『핏빛 자오선』다시 읽기 #
19세기 미국의 파워 엘리트들은 멕시코 전쟁을“규모가 확대된 인디언 전쟁”(a grand-scale Indian war)으로 간주했고(181), “야만을 정복한 신세계에 민주주의와 경제 진보의 장을 건설하 는 일이 앵글로색슨족의 사명”이라고 못 박았다(175). 과달루페이달고 조약이 체결될 당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상원의원이었던 존 칼훈은 한술 더 떠서 “만약 멕시코가 합병되어 미국의 준주가 된다면 멕시코의 잡종 인구들이 인종적으로 순혈인 미국인들과 평등한 위치에 놓이게 될 것이므로 결단코 거기까지 가서는 안 된다”(Hine and Faragher 211쪽에서 재인용)고 목청을 높였다. 다음장에서 논의하겠지만, 미국의 사병(私兵) 집단과‘ 명백한 운명’간의 연관성을 파헤치는 로버트 메이(Robert May)가 지적하듯이, “명백한 운명의 인종주의적 경향은 멕시코와의 정전 이후 중미 지역으로 급속히 퍼져나간 여러 군소 군사원정에서 더욱 확연하게 드러났다”(163)
국경의 틈새에서‘명백한 운명’을 욕망한 희생양과 사생아 —코맥 매카시의『핏빛 자오선』다시 읽기 #
이런 차별과 선입견에 대해 멕시코인들의 반응도 조금씩 다른데 이는 멕시코인들이 아즈텍 메스티소 후손이라는 자부심도 강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또 보상심리 형태의 백인 우월주의도 강한 편이기 때문이다.[3] 멕시코계 미국인 중 고학력자들 상당수는 미국 민주당의 진보 성향을 따르는 편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 백인에 동화되려고 하며 심한 경우 앞장서서 흑인이나 무슬림, 아시아계 이민자들을 차별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
3. 브라질 백인/ 아르헨티나 백인과의 차이
오늘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백인 인구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까지 기간에 급격히 증가한 인구 집단이다.[4] 특히 유럽에서 가족 단위로 이민오는 경우가 많았고, 이민자의 남녀 성비가 그렇게 심하게 차이가 나는 편은 아니었으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유럽에서 각각 430만, 640만명 단위로 이민인구를 받아들일 동안, 멕시코는 해당 기간 동안 유럽에서 이민오는 인구는 1821년부터 1931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50만명 내외로 비교적 적었으며,[5] 이 중 상당수가 이웃한 미국으로 금방 재이민했다. 결정적으로 멕시코로 이민 오는 외부인들은 유럽인/아랍인/동아시아인/흑인/동남아시아인 할 것 없이 대부분이 남성이었다는 차이가 있다.4. 관련 문서
[1]
2021년 기준 멕시코의 수출의 83퍼센트, 수입의 45퍼센트가 미국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홍콩이나 마카오 경제가 중국에 의존하는 것보다 더 심한 수준이다.
#1
#2
#3
#4
[2]
오늘날 멕시코에서 자국의 국부로
산타 안나 대신
미겔 이달고를 추켜세우는 것은 그만큼 미국-멕시코 전쟁의 패배가 상처가 컸다는 것을 반증한다. 미겔 이달고는 한국으로 치면 동학농민운동 지도자 전봉준 같은 포지션이다.
[3]
멕시코 현지에서 멕시코인들을 상대해보면 '적어도 나는 반쯤은 백인인데 한국인 너네들은 동양인이니 원주민과 똑같이 대우하겠다' 이런 심보로 나오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사족으로 한국인 입장에서도 멕시코인들이 만만해보이기 때문에 멕시코 사회 내 이런 백인 우월주의+보상심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한국인과 멕시코인들 사이에 싸움이 나기 쉽다.
[4]
오늘날 아르헨티나 인구의 절반 이상이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사이에 이민 온 이탈리아계 혈통을 물려받았다. 브라질의 경우는 근현대 유럽발 대량 이민을 받기 이전에는 흑인이 인구의 과반에 도달한다는 통계가 나왔을 정도로 평균적인 인종/인구 구성이
아이티의 이웃 국가인
도미니카 공화국과 비슷했고, 아르헨티나 또한 브라질 만큼은 아니지만 흑인과 몰라토, 메스티소 인구 비율이 제법 높았다.
[5]
멕시코 역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사이 칠레나
우루과이,
아르헨티나처럼 백인 국가로 개조시키고자 시도하며, 유럽 각국에 대사관을 세우고 강력하게 푸시를 넣은 적이 있었으나 유럽인들은 남미의
팜파스나
파타고니아 같은 온대 초원 지대에 정착하는 것을 선호했다.
포르피리오 디아스 정권기 동안 유럽에서 멕시코로 이주해온 사람은 대략 11만여명 정도로 멕시코 인구의 1%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그나마 20세기의 멕시코 인구 증가율이 연 2% 내외로 굉장히 높았기 때문에 이들 후손의 수는 상당한 편이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