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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계 아르헨티나인

러시아인 디아스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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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러시아계 아르헨티나인.jpg

1. 개요2. 이민사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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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시아계 아르헨티나인들은 아르헨티나인 러시아 제국에서 이민했던 사람들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어휘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독일계 아르헨티나인, 폴란드계 아르헨티나인으로 이중 집계된다.

러시아에서 아르헨티나로의 이민은 상술한 1881년 키시너우 포그롬부터 러시아 혁명 이후 러시아 내전 사이의 기간인 1921년 사이에 집중되었다. 1990년대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에서 아르헨티나로 이민한 경우는 비교적 소수인데, 20세기 말 무렵 아르헨티나의 상황도 보리스 옐친 시대의 러시아 수준으로 시원찮았기 때문이다.

2. 이민사

러시아 제국에서 아르헨티나로의 이민 인구
1857년~1859년 80명
1860년~1869년 407명
1870년~1879년 464명
1880년~1889년 4,155명
1890년~1899년 15,665명
1900년~1909년 73,845명
1910년~1919년 48,002명

아르헨티나로의 러시아인의 이동은 시기와 이민 배경을 바탕으로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후술하는 2가지 이민 케이스가 동슬라브 계통의 러시아인 이민이며 이민 비중도 크지 않다. 러시아에서 아르헨티나로 이민한 사람들은 주로 볼가 독일인 계통과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이다. 아르헨티나로 이민 온 유대인들은 대개 우크라이나나 벨라루스, 혹은 폴란드 동부 출신이 많았지만 입국 당시 러시아 제국 여권을 들고 왔기 때문에 스페인어로 러시아인을 의미하는 Ruso, Rusa로 불리곤 했다. 유사 사례로 레바논이나 시리아 일대에서 아르헨티나나 브라질로 이민 온 아랍계 기독교인들 역시 오스만 제국 여권을 들고 왔다는 이유로, Turco(튀르키예인)라고 불리곤 했다. 비교하자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 오스만 제국 여권을 들고 아르헨티나에 입국한 사람들 중 튀르키예인은 극소수이고 절반 가까이가 레바논 시리아 일대의 아랍계 기독교인 혹은 아르메니아인이었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정교회를 믿고 러시아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일반적인 러시아인이 아르헨티나로 이주하는 경우는 흔하지는 않았다. 1901년 러시아 제국의 지원으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정교회 성당이 건설되었으나, 예배보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리스인이나 아랍계 기독교인[1]들이었다고 한다.

3. 관련 문서



[1] 아랍계 기독교인들 중 정교회 신도들,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정교회), 예루살렘 총대주교(정교회) 문서 참조 [2] 이들 중 상당수는 원래 프로이센 동부 영토에 거주하던 재침례파들로, 프로이센에서 병역을 이행하지 않은 남성이 토지를 구입하는 것을 막는 법을 제정하는 바람에 빈곤 문제에 시달리다가 18세기 말 예카테리나 대제가 "군대 안 가도 되니까 우리나라의 비옥한 풀밭들 좀 개간해주렴"이라고 초청한 케이스였다. [3] 폴란드 분할에서 1차대전 사이의 기간동안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4] 참고로 이런 조직폭력배들은 포그롬이 확대될 것을 우려하여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을 대상으로는 인신매매를 시도하지는 못한 듯 하다. [참고] 러시아 제국에서 이주해온 경우보다 폴란드 제2공화국에서 이주해온 경우가 훨씬 많았음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