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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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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 방영된 SBS 수목 드라마에 대한 내용은 딴따라(드라마)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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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징3. 해외의 경우4. 매체5. 기타6. 관련 문서

1. 개요

나는 딴따라다. 영원히 딴따라의 길을 가겠다.
송해, 보관문화훈장 수상 소감 中
나는 딴따라야 계속 그럴 거야
박진영, <No Love No More>
한국에서 가수, 무용가, 배우, 코미디언 연예인 낮잡아 일컫는 말. 넓게는 예체능인 전반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순우리말 표현으로는 '풍각쟁이'가 있기는 하지만 '딴따라' 같은 멸칭은 아니다. 기사

이들 직업을 천하게 여기던 20세기부터 쓰던 멸칭이며 50~60대 이상인 기성세대에서 많이 사용한다.

클럽이나 행사장 등의 무대 위에서 하는 춤추고 노래 부르고 연주하는 음악적 공연인들을 모두 포함하며 더 넓게는 예체능인 전반을 포함하기도 한다.[1] 2010년대 들어서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들도 연예인에 준하는 위치가 되면서 이렇게 불리기도 한다.

2. 특징

'딴따라'라는 말은 관악기 소리를 나타내는 영어 의성어 'tantara'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으며 주한미군을 거쳐 해당 영어 표현이 한국에도 퍼진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 기사 1958년부터 신문지상에서 '딴따라조(調) 유행가', '딴따라풍 유행가' 등의 표현이 나오며 1960년부터는 이런 음악을 하는 사람들을 '딴따라'로 부르는 용례들이 나오고 있다.

예를 들면 연예인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때 '못 배워먹은 딴따라 놈(년)'이란 식으로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또한 유독 연예인들이 상대적으로 비난이 큰 건, 음주운전, 마약 등 물의를 일으키고도 잠시 자숙하다가 활동을 하는 행위로 인해서 연예인이라는 벼슬을 통해서 온갖 부를 누린다는 것 때문이다. 그 때문에 성실하게 사는 연예인들도 의도치 않게 비난을 받는 경우가 있다.

게다가 같은 소신 발언이나 어떠한 주장을 해도 다른 직업들은 칭송을 받는 경우가 많지만 연예인이 하면 "딴따라 주제에 사람한테 가르치려고 하는 거야?" 또는 "딴따라 주제에 뭘 알아?" 식의 무시와 비난을 받고 한다. 신해철 100분 토론 등에 출연했을 당시에 받던 악플 중에는 이런 식인 것도 많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신해철이 서강대를 졸업했기 때문에 토론회에서 의견 개진이나마 할 수 있었다고 봐야 한다. 내세울 만한 간판이 없는 연예인이었다고 하면 그런 곳에 나올 기회를 잡기는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연예인을 천하게 보는 풍조는 생각보다 뿌리있는 관념으로서 조선 시대에는 현대의 연예인 비슷한 사람들인 놀이패, 광대, 기생 등을 팔반사천, 팔반잡류라고 하며 천민에 선망이라곤 없던 천한 사람들로 여기기 일쑤였다. 이렇게 자리잡은 풍습이 청산되지 않은 채 20세기 전반에 써진 일기에도 "젊은 남녀들이 불 밝힌 다리에 여럿 모여 꽹과리를 치고 노래 부르며 흥겹게 논다. 요즘 것들 참 까졌다."라는 글이 있을 정도로 20세기까지 이어졌고 특히 한강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고도의 성장 시기에 산업화와 국가 재건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생산성은 없는 엔터테인먼트는 뒷전으로 밀려난 데다 미풍양속을 해치는 불건전한 패거리라는 인식으로 당시 박정희 정부 등 군사독재 정권에까지 찍히던 처지라서[2] 사람들의 경멸을 받기 일쑤였고 단속의 대상으로 여겨지곤 했다.

그러면서도 권력자들은 파티를 할 때마다 예능인들을 불러서 공연을 시켰고 공연 요청을 거절하면 마약 남용, 풍기문란 등 별별 이유를 들어가며 처벌했듯이 아랫사람으로 취급했다. 예컨대 10.26 사건 당시의 궁정동에 불려가 박정희의 옆에서 노래를 불렀던 가수 심수봉도 당시 기성세대 기준으로 보면 '딴따라'로 분류되고 실제로 그런 취급을 받았다. 심수봉 본인도 자신이 가수 생활을 시작했을 때 '방송국에서 만난 남자들은 나를 술시중 상대로만 취급했다'라면서 이 당시의 고충을 토로한 바 있다. 사실 일반 대중들도 이러한 예능인들을 한편으로 선망하면서 한편으로 역마살, 도화살 등과 연관해 측은하게 여기거나 경멸하는 분위기가 이미 있었다.

딴따라와 관련한 당시의 대표적인 스테레오타입으로는 클럽 밤무대에서 연주하는 트로트 가수나 색소폰 연주자 혹은 길거리에서 누더기 차림으로 신문지깔고 통기타만 들고 띵가띵가 연주하면서 깡통에 돈받아 구걸하는 가수 등이 있으며 이런 클리셰가 1960~90년대의 한국 만화와(주로 명랑만화) 드라마(주로 어린이 드라마), 영화 등지에서 많이 등장하기도 했다. 2000년대 이후였다면 그럴싸한 설정(개연성이나 핍진성)이 없으면 당연히 예술계 직업 비하로 포화를 받을 것이다. '천하고 가난한 직업'이라는 인식, 당시의 금지곡과 가사 검열 등 시대상 때문에 당시 아침 드라마 등에서 가부장제 집안 어르신이 아들이 용돈을 모아 통기타를 사지 못하게 막거나 부수면서 '기타치며 놀면서 딴따라 될 거야? 공부해서 금뱃지 달 거야?' 잔소리 하는 장면이 간간이 등장하기도 했다.

예로부터 소속사 및 레코드사나 공연장 사장은 철저하게 갑이었고 엔터에이너는 을이었다. 각종 행사비나 계약금, 음원 수익들은 불투명한 정산속에 어딘가로 빼돌려지기 일쑤였고 아예 정당한 수익을 보장받질 못하는 등의 악폐습은 당연하다는 듯이 횡행했음에도 일감이 끊길 걸 우려하던 가수나 배우의 입장으로선 항변조차 하지 못하던 처지였다. 그 예로 터보 김종국 김광수에게서 폭행과 학대를 당한 일이나 서지원 사망 사건 이승기 후크엔터테인먼트 계약 논란 등이 있으며 일련의 사건들을 계기로 차차 개선되어 가는 형국이지만 예능인들은 한때는 호구로 여겨졌다.

비단 가수나 뮤지션들만이 아니라 배우들도 마찬가지로서 경극이나 가부키 같은 연극 문화가 빈약하던 한국에서는 비슷한 고초에 시달리곤 했다. 이순재, "'딴따라가 더럽힌다'는 말도 들었다"

200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연예인은 진짜 누구 뒷배가 있지 않는 한 기자들 앞에선 그냥 일개 광대 취급을 받았다. 기자가 기사 한 줄만 작심하고 써도 힘 없는 연예인은 잘못하면 연예계에서 강제 은퇴당할 수도 있을 정도로 권력의 추가 언론에 기울어진 시대였다. 그러다가 2008년 나훈아가 자신과 관련된 헛소문이 너무 돌자 이런저런 의혹에 답변하고자 1시간짜리 기자회견을 열었고, 그 자리에서 정말 엄청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렇게 대한민국 전 언론사 기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자기 할 말 하고 더 이상 다른 사람 괴롭히지 말라고 기자들에게 일갈한 나훈아의 퍼포먼스 덕에 당시 돌았던 여배우 K나 고자 스캔들은 한 방에 묻혀 버렸다. 반면 기자들은 이전에 루머 유포에 앞장선 것도 있고 이 때 나훈아가 저렇게까지 하는데도 사진이나 찍느라 바빴다는 것 등도 포함해 기레기 소리를 들으며 욕만 실컷 먹었다. 나훈아는 추가로 인터뷰에서 "여러분(기자)들이 펜으로 사람(연예인들)을 죽이는 겁니다."라고 다시 한 번 강하게 비판하기까지 했다. 대중문화 기자 백은하는 이 퍼포먼스를 "땅으로 내려왔던 셀러브리티가 그렇게 다시 하늘에서 빛나는 별로 올라갔다."라고 했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일반 네티즌이나 기자들의 명예훼손, 허위사실유포, 모욕 등에 대해서 연예인들이 무대응하는 것이 관례[3]였으나 나훈아의 이 기자 회견 이후로 서서히 법적대응을 하는 기조로 바뀌었다.

꼰대와 반대되는 사람들, 특히 예체능 지망생과 팬들은 동화 개미와 베짱이를 상당히 싫어하는 의견도 꽤 보이는데 당시 기성세대들이 연주자와 가수를 '천하고 못배운 직업'으로 보는 것과 비슷한 편견 및 고정관념들이 이 작품에서 묘사하는 베짱이와 유사해서 이 동화를 문화 산업을 천시하는 근시안적인 작품이라는 비판이 있다. 그래서 만화, 음악 등 대중문화 등으로 동화를 패러디한 작품들 중에서도 유독 이 동화만큼은 비꼬거나 결말을 비트는 경향이 크다.

이렇게 보면 연예인을 폄하하는 건 당시 기성세대들의 전유물로 잊혀질 듯하지만 의외로 청년 세대에서도 시기와 질투 어린 목적으로 쓰는 멸칭이기도 한다. K-POP이 뜨면서 2010년대 이후에도 자신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는 '신흥 기득권층'이라는 인식과 취급, 이에서 비롯된 질투 때문에 오히려 '딴따라' 취급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당장 2010년의 타진요 사건과 이 사건의 힙합이나 하고 다니고가 가장 대표적 사례이자 유명한 사례며 2019년 설리 구하라가 세상을 떠났을 때 일부 네티즌들은 '딴따라 광대 따위가 죽은 게 뭐가 불쌍하냐'며 고인드립을 하고 이에 동조하며 연예인 무시 및 고인비하 여론을 조성하려 하기도 했는데, 이 사람들의 논리 가운데 하나가 "연예인들보다 자기들이 더 불쌍하다."였다.[4]

방탄소년단 지민이 고가에 집을 사자 한 블라인드 앱에서 삼성 SDI 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이에 대해 비난하는 글을 썼는데 내용은 수능도 안 보고 운이 좋아 된 것 아니냔 것. 자신은 죽어라 공부해 대기업에 들어갔는데, 자기 좋아하는 음악 하다가 운이 좋아서 부자가 된 것이 싫단 것이다. 곧 자신의 노력의 산물인 수능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성공하는, 그것도 차원이 다른 성공을 해내는 모습에 자신의 노력이 부정됐다고 생각하여 분노한 것으로 보이는데 당연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버는 방법은 공부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글이다. 단, 이와는 별도로 해당 직원은 백신 4종 다 맞고 백신휴가 4번 다 쓸 수 있냐고 물어본 것 등 때문에 어그로꾼으로 추정된다.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5]에서는 실존 인물에 대한 발언은 조심하자고 하면서 정작 연예인들에게는 대놓고 딴따라 취급하는 증오발언을 하고 연예인들은 공인이라고 주장하며 공인의 역할을 요구한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말하는 공인의 역할은 어떤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고소 안 하고 호구처럼 당하고만 있는 감정 쓰레기통인 것이다. 다른 감정노동 직업들은 존중하면서 똑같이 감정노동을 해야 하는 연예인은 무시한다. 즉, 20세기 기성세대의 꼰대들은 \'천한 직업'이라며 경멸해서 욕했고 21세기 젊은 꼰대들은 \'나보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질투하면서 욕한다. 그 때문에 선술했듯이 ' 연예인들은 많은 것을 가졌으니 그만큼의 짐을 지는 벌도 받아야 한다'는 잘못된 명분으로 연예인 공인론을 주장하곤 한다.

그래도 2010년 대에 접어들면서 한류[6]와 같은 문화적 영향력( 소프트파워)이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취급됨에 따라 연예인에 대한 멸칭은 사실상 퇴색된 상황이다. 단편적으로 대통령 초등학생 단골 장래희망이었던 과거는 저물고 연예인이나 아이돌 가수로 세대가 교체되어가는 점을 미루어 선망되는 직업이 달라진다는 예시가 있으며 일류 연예인의 소득도 남부럽지 않을 수준까지 치솟았고 연예인의 사회적 영향력 역시 대중매체의 보급으로 증대되었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7] 그래서인지 연예인들도 이런 용어를 종종 사용하곤 한다.[8]

3. 해외의 경우

서양에서는 풍류 관련 직업을 천하게 여기지 않아서 그런지 사람들이 연예인을 딴따라라고 폄하하는 것을 동양인의 스테레오타입 가운데 하나로 여기기도 한다.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에서 와이먼 고(켄 정 분)는 아들에게 눈이랑 엉덩이만 크고 머리에 든거 없는 K팝 아이돌보다 레이첼 추(뉴욕 주립대 교수) 같은 며느리를 들여야 한다고 레이첼을 치켜세운다. 이는 K팝 아이돌을 모욕한 것보다는 소위 딴따라로 폄하하는 연예계 출신 여성을 싫어하는 동양인 부모의 모습을 보여준 것으로 보인다.[9]

전통적으로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루트비히 판 베토벤 등의 역사적 작곡가들도 귀족들의 비호와 지원을 한몸에 받던 인물들이었으며[10] 영국에선 배우 직종은 오히려 연극 전문이었던 윌리엄 셰익스피어 이래로 귀족 직업이라고 정평나 있다. 현대적 소프트 파워를 각인시키던 비틀즈 역시 천한 워킹클래스 계급에 가까웠던 출신들이었지만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고 기사 작위 서훈까지 받은 대우를 톡톡히 받기도 한다.[11] 서구 사회 자체가 개인주의가 강해 한국보다는 직업에 대한 인식보다는 사람을 평가하는데 직업의 인식보다는 사람 그 자체를 보는 인식이 강한 경향이 있다. 스미소니언 선정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들 100인에서는 팝 아이콘이나 운동 선수 전체가 대통령보다 더 역사상 중요하게 여겨지는 인물의 수가 많으며 BBC 선정 위대한 영국인에서도 존 레논이 헨리 8세나 알프레드 대왕을 앞지르고 디스커버리 선정 위대한 미국인 순위에서도 엘비스 프레슬리[12], 오프라 윈프리가 쟁쟁한 위인들까지 제치고 최상위권에 안착했다.

다만 자체 여론조사 사이트 해리스 인터랙티브의 2007년 선망 직업 순위에서 배우, 연예인, 운동선수들이 최하위권을 기록한 걸 보아[13],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국익엔 도움이 될지라도 일부 종사자들이 보여주는 논란과 가십거리들에 대해선 대중들이 좋지 않게 보는 건 서양에서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미국에서도 락스타들이 그저 기타만 띵가거리면서 수익을 쓸어담는 일면만 보고서 시샘 또한 한몸에 받았던 일면도 록의 전성시대에 존재했던 모양이다. 노동자들의 이러한 험담을 직접 듣던 다이어 스트레이츠 마크 노플러가 이를 주제로 노래를 쓰기도 했으니, 제목은 Money for Nothing이었다.

4. 매체

5. 기타

6. 관련 문서



[1] 미술인의 비칭으로는 ' 환쟁이'가 따로 있다. [2] 대마초 파동이 대표적인 사건이다. [3] 백은하, 차우진의 발언이 인용된 기사에서 나오듯 아이비도 이런 식으로 무대응하는 바람에 장기 활동 중단이 되기도 했다. [4] 논점은 다르지만 영화 유튜버 발없는새가 영화 기생충 스포일러 리뷰에서 " 가난 미화시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이 없으면 우리가 살아가는데 기본이자 필수 의식주조차 해결이 안 됩니다. 만에 하나라도 가난한 사람이 더 행복해보인다면 그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그렇게라도 현실을 위로하고 부정해야 견딜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는 일침으로 비판했다. # 곧 연예인 등을 딴따라로 몰아서나마 위안을 얻는 것이다. [5] 루리웹 유머 게시판에서도 이 점이 해당 게시판의 대표적인 문제점 가운데 하나이다. 자세한 건 해당 문서 참고. 물론 이는 루리웹만 아니라 디시인사이드, 에펨코리아, 클리앙, 여성시대, 네이트판 등 남초·여초 커뮤니티를 가리지 않고 규모가 큰 커뮤니티 사이트는 다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기도 하다. 설리 사망 때 이를 비하하며 고인드립을 하던 게시글은 디시인사이드에 처음으로 올라왔다. 해당 게시글은 여러 커뮤니티에 퍼졌으며 수많은 2차 가해자들이 양산되었고, 인터넷 커뮤니티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6] 한류 스타들이 사회적으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가치를 인정 받는 경우가 생겨났다. [7] 사실 이런 혜택을 누리는 연예인은 그렇게 많지 않으며, 일부는 무명의 삶을 살아가다가 연예인의 삶을 접는 경우도 있다. [8] 그 중 박진영 자신을 딴따라라고 지칭하면서 후술하는 오디션에도 이 용어를 사용했다. [9] 다만 작중에 등장하는 연예계 인물인 키티 퐁은 연기는 더럽게 못하면서 앨리스터 영과 사귀다가 돈이 더 되는 버나드 타이와 관계를 맺는 전형적인 꽃뱀으로 등장한다. [10] 허지만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음악인도 학력을 길러야 귀족들에게 무시되지 않는다는 언급을 하던 점을 미루어 마냥 존대만이 있지는 않았나 보다. [11] 훈장 수훈자 목록만 보더라도 지미 새빌, 폴 매카트니, 엘튼 존 등 음악 및 방송인들도 포진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12] 다만 엘비스 프레슬리는 후대의 재평가에 가까운 기류였을 뿐 당대로서는 로큰롤을 천하게 여기던 기성 세대 사람들에게서 상상 이상의 비토와 멸시를 받곤 했다. [13] 상위권엔 소방관, 경찰관, 군인, 간호사 등 봉사와 공공이익 성격이 세다거나 과학자, 농부 등 직접적 국익에 이바지한다는 직업들이 포진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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