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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마의 황제로 회귀하다/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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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의 황제로 회귀하다의 설정을 정리한 문서.

2. 역사적 배경

이 작품은 도입부 기준 1250년대 후반~ 126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하며, 이 시기는 동쪽에선 쿠빌라이 칸 예케 몽골 울루스의 대칸으로 집권하고 압바스 왕조를 멸망시키는 등 몽골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권이 크게 번영한 반면 서쪽에선 대공위시대가 일어나고 키예프 공국, 불가리아 제2제국의 몰락으로 타타르의 멍에가 시작되는 등 유럽, 특히 동유럽이 크게 쇠퇴한 시기이다. 작중에서의 니케아 제국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몽골의 압박은 압박대로 받고 유럽의 혼란도 혼란대로 겪으며, 거기에 더해 동방에서 쇄도해오는 유목민 러쉬까지 막아내야 하는 큰 딜레마에 놓인다.

한편, 당대의 자연환경을 살펴보면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지속되어 고중세(High Middle Age)의 대규모 문명 발전을 견인했던 온난화의 시기인 중세 온난기(Medieval Warm Period)가 유사 이래 최대의 화산 폭발 중 하나인 1257년 사말라스 화산 분화로 인해 촉발된 13세기 후반~14세기 초반의 소빙하기로 급격한 종말을 맞이했고, 이는 1315년에 시작되어 1317년에 끝나는 유례없는 규모의 대기근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거기에 더해 찾아올 흑사병 크리는 보너스. 실제로 이때 일어난 급격한 기후 변화는 팔레올로고스 왕조가 여러 차례에 걸친 정치적 삽질을 해댈 무렵 변방에서 목축과 교역으로 근근히 먹고 살던 유목민들의 성향을 적대적으로 변화시키고 아나톨리아 내륙과 그 너머에서 더 많은 유목민들을 유입시켜 제국의 동부 방어선을 붕괴시키고 끝내는 오스만 제국의 흥기까지 이어지는 커다란 나비효과를 만들었다.

따라서, 작중에서 유일하게 미래 지식을 보유한 주인공 요안니스 4세[1] 안드로니코스 2세의 치세에 이르러 제국을 급격하게 쇠퇴시킨 주요 요인인 주변을 둘러싼 정치외교적 혼란, 유목민들의 끊임없는 유입 및 적대화와 지하드의 선포, 기후변화 때문에 벌어진 13세기 말~14세기 초의 극단적인 재정난의 3가지 문제를 최우선적으로 해결하려 시도하며, 이와는 별개로 개인적인 트라우마 때문에 의료제도를 크게 혁신하면서 의도치 않게 미래에 닥쳐올 흑사병까지 어느 정도 대비하는 데 성공한다.

3. 관직

작중에 등장하는 주요 관직들 및 그 서열은 요르요스 코디노스[2]가 1347년에서 1368년 사이의 시점에 궁정의 관직들과 의전에 대해 집필한 문서인 데 오피키스(De Officiis)의 내용에 따른 것이다.[3] 또한, 관직명 번역은 작가의 블로그에 업로드된 적이 있는 연재글과 작중에서 등장한 관직명을 절충한 것을 따른다.

3.1. 작위급 관직

품계 원 명칭 번역 명칭 주요 역임자
군호
1위 데스포티스(Despotes) 군주 미하일 2세
2위 세바스토크라토르(Sebastokrator) 존엄군
3위 카이사르(Kaisar) 부제
4위 메가스 도메스티코스(Megas Domestikos) 육군총사령관 요르요스 무잘론
5위 판휘피르세바스토스(Panhypersebastos) 초전존자
관작
6위 프로토베스티아리오스(Proto-vestiarios) 수석의상관 카리야니티스
7위 메가스 둑스(Megas Doux) 연합함대제독 카코스 세나히림
8위 프로토스트라토르(Proto-strator) 기병대장 요안니스 앙겔로스
9위 메가스 로고쎄티스(Megas Logothetes) 총리대신 요르요스 무잘론
10위 메가스 스트라토페다르키스(Megas Stratopedarches) 대군영관
11위 메가스 프림미케리오스(Megas Primmikerios) 대수석관
12위 메가스 코노스타블로스(Megas Konostaulos) 대용병관 미하일 팔레올로고스
13위 프로토세바스토스(Proto-sebastos) 수석존자
14위 핀케르니스(Pinkernes) 상주관 야코보스
15위 쿠로팔라티스(Kouropalates) 시위관 미하일 팔레올로고스
16위 파라키모미노스 테스 스펜도니스(Parakoimomenos tes Sphendones) 궁내장관 니키포로스
17위 파라키모미노스 투 키토노스(Parakoimomenos tou Koitonos) 침전숙위환관
18위 로고쎄티스 투 예니쿠(Logothetes tou Genikou) 재무부장관 필론
19위 프로토베스티아리티스(Proto-vestiarites) 수석의상원
20위 도메스티코스 테스 트라페지스(Domestikos tes Trapezes) 수라내부경
21위 에피 테스 트라페지스(Epi tes Trapezes) 수라관
22위 메가스 파피아스(Megas Papias) 대수문관
23위 에파르코스(Eparkos) 판윤 엑프라시스
24위 메가스 드룬가리오스 테스 비글리스(Megas Droungarios tes Vigles) 대경비파수관
25위 메가스 이테리아르키스(Megas Hetairearches) 대용병관[4]
26위 메가스 카르툴라리오스(Megas Chartoularios) 대사무관
27위 로고쎄티스 투 드로무(Logothetes tou Dromou) 체신부장관 마누일 참플라콘
28위 프로토세크리티스(Protosekretis) 대서기관
29위 에피 투 스트라투(Epi tou Stratou) 마부관
30위 뮈스티코스(Mystikos) 밀직관 시몬
31위 도메스티코스 톤 스콜론(Domestikos ton Scholon) 근위대장 미하일 글라바스
32위 메가스 드룬가리오스 투 스톨루(Megas Droungarios tou Stolou) 중앙함대제독 리카리오
33위 프림미케리오스 테스 아블리스(Primmikerios tes Aules) 궁정수석관
34위 프로토스파싸리오스(Protospatharios) 수석호위관 에르토르

3.2. 기타 주요 관직

지역 주요 역임자
변경군사령관(둑스)
아드리아노폴리스 세바스티아노스
파플라고니아 미하일 글라바스
군관구사령관(스트라티고스)
트라키아 알렉산드로스
마케도니아
테살로니키
테살리아
이피로스
엘라도스
메소튀니아 아가피티스
파플라고니아
아르메니아코스
카라만드로스
트로아스
마게돈
트라키시오스 니키포로스 타르카니오티스
프뤼기아
카리아

4. 국가

4.1. 동방 국가

4.1.1. 로마 제국

로마 제국의 국기
파일:바타치스 가문 문장.png [5]
국명(한국어) 로마 제국 건국년도 기원전 753년[6]
국명(원어) Βασιλεία Ῥωμαίων
Basileía Rhōmaíōn
수도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7]
정치체제 로마식 전제군주정 통치자 황제 요안니스 4세 종교 정교회
주인공인 요안니스 4세가 통치하는 나라이자, 그와 동시에 작중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사건과 서술시점이 집중된 주인공격 국가.

일반적으로 이 시기의 동로마 제국은 해봤자 제4차 십자군 전쟁 크리로 폭삭 망해가다가 마지막 여력을 쥐어짜내서 콘스탄티노플 수복하고 그대로 200년간 쇠퇴일로를 걷다가 멸망... 이런 식으로 잘 알려져있지만, 실상은 크게 다르다. 당시 테오도로스 1세, 요안니스 3세, 테오도로스 2세라는 훌륭한 능력을 가진 군주들이 줄줄이 집권하면서 크게 발전한 제국은 작중에서 묘사되듯 인구 700만에 1년 국가예산이 금화 270~80만 개에 달하는 강대국으로 다시금 발돋움했으며, 이는 유럽 전체를 통틀어봐도 봉건제의 정착으로 국력의 집중 투사가 힘든 신성 로마 제국 프랑스 왕국, 거기에 더해 수많은 도시국가들로 쪼개져있던 이탈리아 왕국 정도만이 비견할 수 있는 정도였다.

군사력 측면에서도 상비군인 중앙야전군(타그마타)+정예 예비군인 비튀니아/파플라고니아 군단 등을 합친 규모가 최소 1만 4천[8]에다가 각지의 방위군까지 모두 동원했을 경우 무려 3만에 달하는 정병을 투입 가능하며, 펠라고니아 전투에 참전한 4개국 연합군이 농번기에 농민과 농노를 긁어모으면서까지 동원한 잡병까지 포함해도 2만이 될까말까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격의 차이가 느껴진다.

하지만, 이러한 국력과는 별개로 내부 분열이 상당히 심각하기도 하다. 태생부터 테오도로스 1세가 유럽 출신 대가문들과의 타협을 통해 재건했고, 요안니스 3세가 각종 유화책을 통해 아시아에 새로 자리잡은 대가문들을 잘 구슬리면서 원만한 통치를 이어나간 반면 요안니스 3세가 말년에 뇌전증으로 몸져누울 때부터 일선에 나섰던 테오도로스 2세는 아버지나 외할아버지와는 달리 대가문들을 혐오하다시피하는 인물이었으며, 그가 비록 제국의 각종 학문과 문화를 다시금 꽃피우는 명군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귀족들에 대해 일관적이지 못한 공안정국을 펴고 소가문 또는 평민 출신의 인사들을 낙하산 인사에 가까울 정도로 지나치게 중용, 정책 면에서도 앞서 언급한 군사력 증강을 위해 특별세를 남발하기까지 하자 결국 사회 각계각층이 등을 돌리고 말았으며, 특히 그에게 가장 많이 부조리한 탄압을 받은 미하일 팔레올로고스 형제를 중심으로 반황제 성향 대귀족들이 집결하면서 마치 암군 이사키오스 2세의 말년이 생각나게 할 정도로 정국이 막장이 된다.[9]오죽하면 주인공이 원로원에서 반황제 성향 대귀족들을 한차례 쫓아내고 그 자리에 근황파 신진인사들을 기용했는데도 원내 세력균형이 비등비등해질수 있을지 장담을 못하는 상황.

거기에 교회 문제까지 얽히면 정쟁은 더욱 심각해진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수복 및 라틴 제국의 멸망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문제인 교회통합은 선대 황제들이 그렇게 큰 신경을 쓰지 않는 바람에 그야말로 나라를 두쪽으로 갈라놓았으며, 심지어는 (작품 내에서는 없는 일이 되었지만) 미하일 8세의 킹메이커나 다름없는 큰누나 이리니 팔레올로기나가 남동생을 교회통합을 위해 서방에 굴종한다는 이유로 규탄하고 적국인 불가리아 제2제국에 붙어 모국을 그야말로 박살내놓는 만행을 저지르게 만들 정도였다. 이 때문에 제국 내의 정파는 근황파-중도파-반황제파의 3대 파벌에 더해 친통합파-중도파-반통합파[10]의 3대 파벌까지 사분오열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미래지식을 보유한 주인공의 등판으로 대부분 해소된다. 우선 근거지를 뉨페온에서 니케아로 옮겨 대부분 아나톨리아 서해안 일대에 정착한 대가문들의 영향력을 다소 완화시키고, 원로원 내의 불순분자들을 합법적인 방식으로 최대한 쓸어낸 뒤 할아버지인 요안니스 3세의 선례를 본받아 일부 대귀족 유화책을 펼치면서 특별세를 완전히 폐지하는 대신 간접세를 소폭 올리는 방식으로 세수 확보와 대중의 지지라는 2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데 성공한 주인공은 일부러 니케아에서 폭동을 유도해 반교회통합 세력을 일망타진한 뒤 교회통합 떡밥에는 전혀 의존하지 않은 채 콘스탄티노폴리스 수복에 성공함과 동시에 교황청과의 커넥션도 유지한다. 덕분에 작중에서 주인공의 외교관이나 종교관에 대한 것이라면 몰라도 교회통합 자체에 크게 반발하는 정파는 씨가 마르다시피 했으며, 미하일의 동생으로 대귀족들 사이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요안니스 팔레올로고스가 제 살길을 찾아 중도파로 돌아서는 등 반황제파 또한 분열을 일삼다 못해 지리멸렬하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의 계략으로 반황제파들은 모조리 숙청당하고 그 중심인 미하일 팔레올로고스가 비참하게 죽고 청색당은 황제의 거수기로 만들게 된다.

게다가 주치 울루스, 제노바, 맘루크 연합군을 무찌르고 십자군 전쟁을 준비하면서 잉글랜드 왕국과 프랑스 왕국과 함께 십자군의 주축이 되면서 주가가 상승했으며 이후 외전을 보면 나스레딘 호자 사후 룸 술탄국이 내전과 혼란으로 붕괴된 이후 아나톨리아 대부분을 수복했다. 그리고 주인공 사후 오스마노스 가문이 황가가 되면서 사실상 원역사 오스만 제국의 길을 갈 가능성이 높으며그럼 티무르에게 한 번 갈리겠네? 아나톨리아 북서부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부족이라는 미약한 스타팅과 달리 시작부터 그리스와 아나톨리아를 호령하는 안정된 국가를 그대로 물려받았기 때문에 팽창에 있어서는 원역사보다 훨씬 쉬운 난이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4.1.2. 룸 셀주크 왕조

룸 셀주크 왕조의 국기
파일:룸 셀주크 국기.png
국명(한국어) 룸 셀주크 건국년도 1077년
국명(원어) سلجوقیان روم
Saljūqiyān-i Rūm
수도 콘야
시바스
정치체제 봉건군주정 통치자 술탄 클르츠 아르슬란 4세[11]
술탄 카이카우스 2세[12]
술탄 기야스 알딘 메수드 2세
종교 수니파
정교회
4차 십자군 당시 마브로조미스 가문을 중심으로 니케아의 킹메이커 역할을 하고, 카이카우스 1세의 치세 동안 흑해 연안을 정복하며 동방으로도 영향력을 끼치는 등 강력한 리즈시절이 있었지만 선제인 카이휘스레브 2세의 치세 중간에 터져나온 '바바 이스하크의 반란'으로 나라가 크게 휘청이더니 끝내 쾨세다으 전투에서 몽골 제국에 크게 패해 변변찮은 2류 국가로 전락한 나라. 이후 카이휘스레브가 유언으로 나라를 세 아들에게 나눠줬지만 대권에 가장 근접해있던 막내 카이쿠바드가 의문사하자 완전히 쫄은 장남 카이카우스가 니케아로 도망치는 등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게다가, 가뜩이나 훌레구인 울루스에게 완전히 종속당해서 등골을 빨아먹히고 있는데 내부 정파간의 투쟁도 장난이 아닌 수준이다. 주치인 울루스에게 인정받아 술탄 자리에 오르고 싶어하는 술레이만을 제외하고도 중앙정부에서 사실상 각지의 토후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으며, 종교적 분열도 장난이 아니다. 술탄국령 각지에서 군웅할거하고 있는 이들 정파를 성향에 따라 정리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5개 정파로 나눌 수 있다.

원 역사대로라면 아르슬란 4세가 사망하고 뒤를 이은 카이휘스레브 3세의 치세에 사실상 멸망하겠지만, 이러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주인공이 적극 개입해 룸을 대몽골 방파제 고기방패로 존속시키려 하면서 가까스로 내전에 가까운 정치적 투쟁을 봉합하고 카이카우스의 어린 아들인 메수드를 차기 술탄으로 추대해 생존에 성공한다. 하지만 카이휘스레브 2세의 그리스계 정비인 프로둘리아 태후,[15]'카이카우스의 계모이자 카이휘스레브 2세 사후 술레이만과 재혼한 귀르지 하툰,[16] 카이카우스의 후처인 우르바이[17] 세 왕대비간의 알력다툼이 심해지면서 대외 강경파가 다시금 고개를 들려 하고 있으며, 주인공 또한 룸을 언제든 무혈합병 가능한 한끼 식사거리로 보면서 시노피를 포함한 흑해 연안 일대는 물론 파플라고니아 내륙[18]을 통째로 떼어내어 영토를 병합하는 행보를 보여줬기 때문에 현실처럼 완전한 붕괴까지는 아니더라도 배드 엔딩 확정. 다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 괴짜 수피승 나스레딘 호자가 재상으로 발탁되면서 어느정도 희망이 보이는 중. 그러나 결국 외전에서 1307년 나스레딘 호자와 왕대비가 죽은 이후 메수드 2세가 암살당하면서 나라가 멸망한다.

4.1.3. 주치인 울루스

주치 울루스의 국기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20px-Golden_Horde_flag_1339.svg.png
국명(한국어) 킵차크 칸국 건국년도 1237년
국명(원어) اولوس جوجي
Ulūs-i Jūchī
수도 사라이
정치체제 군주정 통치자 베르케 칸[19]
몽케 테무르
종교 수니파
텡그리
로마의 주요 가상적국으로, 주인공에겐 내부의 적인 팔레올로고스 일당과 함께 1부 최종보스에 해당. 바투 칸 칭기즈 칸에게 물려받은 막강한 병력이 아직 건재한 만큼[20] 작중 등장하는 정부인사 및 장군들이 어떻게 해서라도 1대1 상황은 피하려고 들며, 칼리폴리스에서 대패를 겪고 메소포타미아에서 베르케가 전사한 이후에도 강국으로 계속 남는다. 또한, 전쟁이 끝난 뒤엔 휴전조약 때문에 주인공과 대놓고 적대하지는 못하지만 바이바르스의 사주를 받고 차가타이 울루스과 함께 훌레구 울레스의 발목을 잡는 등 십자군의 집결을 방해하는 무시 못할 존재감을 보여주기도 한다.
4.1.3.1. 불가리아 제2제국
불가리아 제국의 국기
파일:불가리아 제2제국 국기.svg
국명(한국어) 불가리아 제국 건국년도 1185년
국명(원어) ц︢рьство бл︢гарское
ts'rstvo bl'garskoe
수도 터르노보
정치체제 전제군주정[21] 통치자 차르 콘스탄틴 아센 1세
차르 이반 아센 3세[22]
종교 정교회
로마 제국, 신성 로마 제국과 더불어 유럽에 존재하는 단 셋뿐인 제국 중 하나이자 로마의 영원한 맞수...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실상은 국가 막장 테크를 착실히 밟고 있는 전형적인 실패국가. 1240년에 벌어진 몽골의 대규모 침략과 이듬해에 명군인 이반 아센 2세가 덜컥 죽어버린 일이 겹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극도로 무능한 차르들이 귀족들 간의 권력암투를 통해 연이어 즉위하면서[23] 나라꼴이 엉망이 되었으며, 수도인 터르노보 인근과 그나마 야전군이 남아있는 트라키아쪽 국경지대를 제외한 서부와 남부 지방에서는 세르비아와 보고밀파 일당의 지원을 받는 군벌들이 준동하는 등[24] 행정과 군사 양면으로 국토 대부분이 마비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나마 주인공의 누나인 이리니가 차르와 결혼해서 일종의 불가침을 맺은 덕분에 현실과는 달리 미하일 8세의 대규모 침공으로 인한 트라키아 영토의 상실을 막고, 거기에 주치 울루스의 패전으로 반쯤 독립에 성공하면서 국체 보전에는 성공한 것이 위안. 거기에 주인공의 지원을 대가로 세르비아와 대군벌인 사무일, 미하일로비치 일가를 견제하기 위해 제국의 병력을 빌리기로 하면서 그 대가로 서부 마케도니아의 대부분을 고스란히 내어주지만, 오히려 애초부터 군벌들의 지배하에 있던 지역들을 대부분 쳐내면서 국력을 결집한 데에 더해 루테니아 국왕 다닐로와의 협력을 통한 대몽골 북방동맹의 결성으로 완전한 독립을 목전에 둔다. 거기에 미초 아센과 이바일로로 대표되는 국내외의 불안정 요소 또한 일단은 제거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이며, 외전에선 마리아 칸타쿠지니가 의붓아들인 이반 아센 3세를 보좌해 수십년간 안정적인 통치를 이어나가는 것으로 묘사된다.
4.1.3.2. 노브고로드 공국
4.1.3.3. 블라디미르 공국

4.1.4. 예루살렘 왕국

예루살렘 왕국의 국기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Vexillum_Regni_Hierosolymae.svg.png
국명(한국어) 예루살렘 왕국 건국년도 1099년
국명(원어) Regnum Hierosolimitanum 수도 아크레 예루살렘
정치체제 봉건군주정 통치자 콘라딘
샤를 당주
종교 가톨릭
4.1.4.1. 안티오키아 공국
안티오키아 공국의 국기
파일:Coat_of_Arms_of_Prince_Bohémond_VI_of_Antioch.png
국명(한국어) 안티오키아 공국 건국년도 1098년
국명(원어) Principatus Antiochenus 수도 안티오키아
정치체제 봉건군주정 통치자 보에몽 6세 종교 가톨릭
4.1.4.2. 소 아르메니아 왕국
소 아르메니아 왕국의 국기
파일: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 국기.svg
국명(한국어) 소 아르메니아 왕국 건국년도 1198년
국명(원어) Կիլիկիոյ Հայոց Թագաւորութիւն 수도 시스
정치체제 전제군주정 통치자 헤툼 1세 종교 가톨릭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4.1.4.3. 키프로스 왕국
키프로스 왕국의 국기
파일:Royal_banner_of_Janus_of_Cyprus.svg.png
국명(한국어) 키프로스 왕국 건국년도 1192년
국명(원어) Royaume de Chypre 수도 니코시아
정치체제 봉건군주정 통치자 위그 3세 종교 가톨릭

4.2. 서방 국가

4.2.1. 신성 로마 제국

4.2.1.1. 시칠리아 왕국
시칠리아 왕국의 국기
파일:1600px-Flag_of_the_Kingdom_of_Sicily_(Hohenstaufen).svg.png
국명(한국어) 시칠리아 왕국 건국년도 1130년
국명(원어) Regno di Sicilia
Regnu di Sicilia
수도 나폴리
정치체제 봉건군주정 통치자 만프레디
콘스탄체
종교 가톨릭
4.2.1.2. 제노바 공화국
제노바 공화국의 국기
파일:제노바 시기.svg
국명(한국어) 제노바 공화국 건국년도 1005년
국명(원어) Repubblica di Genova[25] 수도 제노바
정치체제 귀족공화정 통치자 민중대장[26] 굴리엘모 보카네그라 종교 가톨릭
팔레올로고스 시기 제국이 붕괴할 당시 베네치아와 함께 각지의 영토를 뜯어먹어 붕괴를 가속한 장본인이지만, 이 시기에는 아직 에게 해와 흑해에 단 한 군데의 식민지도 얻지 못했기 때문에[27] 베네치아에 비해 비중이 덜하다. 그나마 베네치아와의 잦은 충돌로 상당한 규모의 함대를 건설했다는 점 때문에 주인공의 협력 대상이 되지만, 그마저도 베네치아를 견제할 도구 수준으로만 취급된다.

거기에 작중 시점 몇 년 전에 벌어진 제1차 베네치아-제노바 전쟁[28]은 물론 맘루크 왕조 주치인 울루스과의 적극적인 협력, 심지어는 십자군 국가를 공격할 무슬림들의 병력과 물자를 수송하는 배편을 제공하는 등 각종 막장 행보를 보이면서 지중해 일대의 기독교 국가들에게 완전히 찍혔으며, 반교황 운동의 중심인 시칠리아와도 협력 각을 보는 중이라 교황령 주도로 파문-전쟁-멸망 테크트리를 탈 가능성이 있어 여러모로 앞날이 밝지 못하다.

4.2.2. 교황령

교황령의 국기[29]
파일:교황령 국기(754-1803).svg
국명(한국어) 교황령 건국년도 754년[30]
국명(원어) Stato della Chiesa 수도 로마
정치체제 신정 통치자 교황 알렉산데르 4세 종교 가톨릭
원역사대로 시칠리아와 대립하면서 새로운 십자군과 이를 위한 동로마와의 협력을 강구하고 있다. 타이밍 맞춰서 주인공도 교황-훌레구의 동서동맹에 합류하기로 마음을 먹었기에 적당한 타이밍에 손잡을 대상을 잘 고른 샘. 실제로 머지 않은 시기가 8차 십자군 전쟁이 선포되는 시기인지라 이 시기가 교황령의 권위가 상승할 기회라고 독자들은 보고 있다.

4.2.3. 베네치아 공화국

베네치아 공화국의 국기
파일:베네치아 공화국 국기.svg
국명(한국어) 베네치아 공화국 건국년도 697년
국명(원어) Serenissima Repubblica di Venezia
Serenìsima Repùblica Vèneta
수도 베네치아
정치체제 귀족공화제 통치자 도제 레니에로 제노 종교 가톨릭
라틴 제국과 함께 주인공의 초반 주적으로 등장했으며 그 짱짱한 해군력으로 아스카니오스 호수까지 침투해 니케아를 봉쇄하고 무역로도 압박할 정도로 막강함을 보였다. 그러나 주인공에 의해 테르모필레에서 패배하고 제노바의 개입과 흑해 무역노드를 개척한 주인공에 의해 해상 봉쇄도 효과가 떨어졌으며 해상전에서도 그리스의 불을 부활시킨 주인공에 의해 초반 이후로는 재미를 보지 못했다. 결국 이 모든 것의 피크는 콘스탄티노플을 빼앗기며 라틴 제국이 몰락한 것이었다. 이후 교황-훌레구 울루스의 동서동맹에 가담하려는 주인공에 의해 제노바를 대신할 새로운 파트너로 결정되어 아군이 되었다. 하지만 양국간의 에게해의 섬들에 대한 분쟁등의 이유로 언젠가는 한번 맞붙어야 할 상대로 생각이 되었으나 콘스탄티노플 탈환 이전 초반 충돌 이후로는 본편 전체에서도, 그리고 외전에서도 베네치아와의 특별한 충돌은 없었다.

4.2.4. 프랑스 왕국

프랑스 왕국의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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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명(한국어) 프랑스 왕국 건국년도 987년[31]
국명(원어) Royaume de France 수도 파리
정치체제 봉건군주정 통치자 국왕 루이 9세[32]
국왕 필리프 3세[33]
국왕 필리프 4세
종교 가톨릭
실질적인 유럽 최강국. 신성 로마 제국에서 콘라트 4세 교황과 척을 졌다가 파문당한 뒤 27세의 나이로 덜컥 병사해버리고 대공위시대 크리가 터져 지지부진하는 동안, 능력과 운 양면으로 매우 훌륭했던 '존엄왕' 필리프 2세를 시작으로 잉글랜드 왕국과 알비파를 박살내고 부유한 랑그도크 지방을 평정한 '사자왕' 루이 8세, 아예 사후에 시성이 예정된 루이 9세에 이르기까지 명군들이 연타석으로 들어서면서 국력이 크게 신장했다. 특히 필리프 2세가 존 왕을 탈탈 털면서 겸사겸사 아키텐을 제외한 대부분의 잉글랜드령을 병합하고 행정 개편에서도 대성공을 거둔 덕분에, 루이 8세가 나머지 외적들까지 일소한 뒤엔 십자군에 수천~수만 명의 병력을 여러 차례 파병하고도 돈이 썩어넘칠 정도가 되었다. 덕분에 루이 9세는 수 차례나 십자군 원정을 떠나면서도 소르본 대학교 고등법원을 건립하고 교회 문화를 크게 발전시키는 등 내치 면에서 수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실제 역사에선 2차례의 십자군이 실패하고 꿩 대신 닭으로 시칠리아 왕국을 장악하지만, 이 때문에 오히려 주변국의 어그로만 잔뜩 끌고 앙주쪽 분가까지 반쯤 이탈해버리는 결과를 맞이한다. 하지만 주인공의 모략을 통해 제8차 십자군이 성공을 거두었고, 거기에 나비효과로 시칠리아 대신 예루살렘 왕국이라는 막대한 대토보상과 성묘수호자 타이틀, 교황 주관하에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치러지는 대관식까지 챙기면서 당장 호엔슈타우펜 가문이 박살나게 생긴 신성 로마 제국과는 달리 장기적으로 쏠쏠하게 이득을 본 세력. 거기에 덤으로 블랑헤를 통한 백록동맹 체결로 로마와 우호적인 관계를 마련하나 싶었는데, 루이 9세 사후 즉위한 필리프 3세가 야심만만한 인물이라 백록동맹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고 그래도 사돈지간이라고 최후의 선은 안 넘은 필리프 3세와 달리 그 뒤를 이은 필리프 4세 시기에 오면 교황령을 침공하는 것으로 모자라 일개 기사가 당대 교황인 보니파시오 8세의 뺨을 때리는 일명 '아나니 사건'이라는 대형사고를 저지르며 제국의 여론을 그대로 폭발시켜버린다.[34] 시칠리아 안보동맹을 명분으로 양국간에 전쟁이 발발하면서 상황이 급격히 악화된다. 결과는 주인공에게 덤빈 만큼 당연히 작살이 나는데 제3차 가릴리아노 강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개박살 나고[35] 로마를 포함한 중부 이탈리아 각지를 제국군에게 고스란히 넘겨주는 등 대외정책에서 실패를 거둔다.

4.2.5. 잉글랜드 왕국

잉글랜드 왕국의 국기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국명(한국어) 잉글랜드 왕국 건국년도 927년
국명(원어) Kingdom of England 수도 런던
정치체제 봉건군주정 통치자 국왕 헨리 3세
국왕 에드워드 1세
종교 가톨릭

4.3. 중동

4.3.1. 훌레구인 울루스

훌레구인 울루스의 국기
파일:일 칸국 국기.svg
국명(한국어) 일 칸국 건국년도 1256년
국명(원어) ᠬᠦᠯᠦᠭ ᠦᠨ ᠤᠯᠤᠰ
Hülegü-yn Ulus
수도 마러가
타브리즈
솔터니예

테오폴리스
[36]
정치체제 군주정 통치자 훌레구 칸[37]
아바카 칸
종교 텡그리
불교
네스토리우스교
이슬람
최신화 기준으로 주인공의 가장 강력한 아군세력. 주인공이 원역사에서 남북동맹을 택했다 망해버린 팔레올로고스의 전례를 피하기 위해 선택한 아군이다. 아인잘루트 전투에서 패배하긴 했어도 그건 훌레구 칸이 직접 온것이 아니었기에 주인공에게서 정보를 얻은 훌레구가 직접 바이바르스를 잡으러 온다는 말에 위의 아인잘루트 전투의 영웅인 바이바르스도 일단 피하려고 할 정도로 강력함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훌레구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다음 칸인 아바카 칸까지 협력관계가 이어질지는 미지수. 원역사에서는 동로마인과 결혼해서 친유럽적 태도를 보이기는 했으나 여기서는 그 결혼한 가문인 팔레올로고스가 원역사의 위세는 아닌지라… 다만 최신화 기준으로는 아바카 칸 측에서 네스토리우스 파의 사제를 사절로 보내는 등 나름 접근을 꾀하고 있어 협력관계가 한동안은 이어질 듯 하다. 이후 원역사대로 팔레올로고스 가문과 맺어지며 8차 십자군 전쟁에도 참전하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8차 십자군 성공 이후 정식으로 네스토리우스교로 개종하고 기독교 세계의 일원이 되지만 국가는 종교 갈등으로 혼란을 빚고 있다.

외전에서 페르시아 제국으로 이름을 바꾸고 룸 술탄국이 내전과 사루 바투의 난동으로 붕괴하자 로마 제국과 함께 개입하여 튀르크 세력을 몰락시키는데 일조 한다.

4.3.2. 맘루크 왕조

맘루크 술탄국의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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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명(한국어) 맘루크 술탄국 건국년도 1250년
국명(원어) سلطنة المماليك‎
Salṭanat al-Mamālīk
수도 카이로
정치체제 전제군주정 통치자 술탄 쿠투즈[38]
술탄 바이바르스
종교 수니파
팔레올로고스 세력이 제국 내부의 최종보스라면 이쪽은 외부에서 제국을 위협하는 외부의 최종보스 포지션. 원역사에서 제국이 동서동맹 대신 맘루크-주치 울루스의 남북동맹을 편들었다가 결국 망한 것을 알고 있던 주인공이 이번에는 적으로 선택하면서 적이 된 케이스인데 바이바르스는 초기에는 화약을 얻으러 온 제국의 첩자들을 붙들었으나 오히려 화약을 퍼 줄 정도로 제국에 우호적으로 나가려 했었다. 다만 바이바르스의 야망을 알던 주인공이었기에 우호적으로 나갈리 만무했고 결국 룸 술탄국 내전을 기점으로 적으로 돌아선다. 이후 8차 십자군이 발동되고 본인 역시 안티오크를 공격하지만 아파미아 회전에서 대패를 당하고 이집트에서는 칼라운이 반란을 일으키며 아라비아 서부 해안지대로 밀려나고 만다.

5. 연표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동로마의 황제로 회귀하다/연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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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 역사에선 1305년에 사망하며, 작중에서 회귀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50대 초중반이라 1300년 이전에 벌어진 주요 사건을 대부분 기억하고 있다. [2] 일명 위-코디노스(Pseudo-Kodinos). 이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과거에 존재했던 코디노스라는 인물의 필명을 빌려 작품을 집필했기 때문이다. [3] 작중에서 등장하는 관직들은 군사조직의 붕괴로 소멸한 소아시아쪽 군관구사령관들이나 그 반대급부로 떡상한 대제독 정도를 제외하면 13세기 중후반에도 거의 동일하게 기능했다. [4] 12위의 메가스 코노스타블로스와는 다른 관직이니 유의할 것. [5] 이 깃발은 정확히는 바타치스-라스카리스 가문의 문장으로, 이 당시엔 '국기'라 할 만한 물건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기에 실질적인 국기로 쓰였다. 참고로 황금색 쌍두독수리 자체가 국장으로 쓰이기 시작한 건 대략 이사키오스 1세의 치세즈음의 일이다. [6] 공화정 수립부터 따지면 기원전 509년, 제정수립으로 할 경우 기원전 27년, 동서분할을 기준으로 했을 경우엔 서기 395년. 애초에 고대 로마에서 쭉 이어지는 연속성 때문에 어떠한 년도가 건국 시점이라고 정확히 찝어서 정하기가 힘들다. [7] 친로마 저항세력인 '염원단'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라틴 제국을 멸망시키는 데에 성공한 뒤 주변세력들과 교황의 간을 본 뒤 1년간의 초기 복구기간을 거쳐 완전히 천도한다. [8] 원래 테오도로스 1세 요안니스 3세 시절 상비군 병력규모가 8천이었던 것을 테오도로스 2세가 전선의 추가로 인한 병력소요의 증가와 귀족들의 사병에 대한 우위 확보, 향후에 있을 고토 수복 등의 갖가지 이유를 대어가면서 5할 가까이 병력을 증강, 여기에 주인공 요안니스 4세 에르토르를 중심으로 한 유목민 순민들을 아주 싼값에 동원하는 데 성공하면서 작중의 규모가 된다. 물론 테오도로스의 대규모 군사력 증강은 막대한 세입 지출과 각종 특별세의 소요까지 동반했기에 주인공이 예산을 절감하기 위해 몸을 비틀어야 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한다. [9] 이에 대해 소설상에서도 테오도로스 2세의 충신들이 테오도로스 2세가 이 점에서는 어설펐다고 한탄하기도 한다. [10] 참고로 이들은 제국 내의 수도사들을 중심으로 뭉쳤으며, 실제 역사에선 헤시카즘을 비롯한 각종 신비주의 신학을 추종하면서 교회통합운동에 최종적인 사형선고를 내린다. [11] 술레이만에게 조종당하는 신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대적 성향의 토후들을 마구 숙청하던 도중, 궁정 쿠데타를 일으킨 술레이만에게 살해당한다. [12] 아르슬란 4세가 살해당하자 주인공의 지원을 받아 옹립되었으나, 자기 나라가 타국의 꼭두각시 신세로 전락할 것이라는 위기감에 지나치게 성급한 공세를 감행했다가 술레이만에게 매복을 당해 전사한다. [13] 묘사상으로는 중앙 민회에서 그리스계와 힘을 합치면서 3분의 2에 달하는 압도적 과반수를 차지했다는 듯. [14] Ghazi - 성전이라는 뜻으로, 특히 정통 칼리프 시기와 오스만 팽창기에 무슬림들이 펼친 전쟁을 의미한다. [15] 튀르크식으로는 바르딜리야. 일단 제국 출신이긴 하지만 순수하게 룸을 살리려는 의도만 가진 참애국자로 묘사된다. [16] 술탄 일가에 적대적이고 술레이만에게 헌신적인, 룸 버전의 테오도라 팔레올로기나라고 할 수 있다. 조지아에서 성군으로 추앙받는 타마르 여제의 친손녀로 본명은 타마르 바그라투니이며, 훌레구인 울루스의 두 주요 봉신인 조지아와 룸 셀주크의 연결고리 역할을 맡고 있다. 카이휘스레브의 세 아들 중에서는 카이쿠바드를 지지. [17] 베르케 칸의 여식으로, 함께 크리미아에서 고생한 프로둘리아와 사이가 좋긴 하지만 출신 때문에라도 주치 울루스의 편을 들 수밖에 없다는 점 때문에 정치적으로 대립한다. [18] 작중에서는 옛 부켈라리온 군관구의 이름을 따온 부켈라리온 통치령(archontia)을 설치한다. 앙카라 공화국이 해당 지역에서 자치권을 부여받긴 했지만, 앙카라가 게르미얀과는 다르게 제국 정치에 밀접하게 관여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면서 사실상 실효지배중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19] 휴전을 깨고 바그다드 공략을 목표로 원정에 나섰다가 눈먼 화살을 맞고 사망 [20] 역사상으로 바투 칸이 수여받았던 만호들이 튀르크화 및 약체화되는 것은 베르케가 사망하고도 한참 뒤에 벌어진 일이었다. [21] 다만, 이 시기엔 몽골의 침략으로 차르의 권위가 크게 약화된 것에 더해 각지의 보야르들이 혼란을 틈타 세력을 키우면서 사실상 봉건제로 기능했다. [22] 외전에서 블랑헤의 후원 하에 계모인 마리아와 함께 불가리아로 향해, 차르 자리를 거머쥔 것으로 나온다. [23] 단적으로 사실상 불가리아의 초대 차르로 취급받는 칼로얀은 10년간, 이반 아센 2세는 23년간 권좌에 있었던 반면, 이반 아센 사후 약 16년간 차르 자리가 5번이나 갈아치워졌다. [24] 오죽하면 이웃나라의 황제인 주인공의 귀에까지 소문이 들어가 대놓고 '불가리아 접경 지역엔 군벌들이 득시글거린다'라고 깔 정도. [25] 리구리아 방언으론 Repúbrica de Zêna. [26] Capitano del Popolo. 1257년에 처음으로 생겨난 국가원수 직책으로, 도시귀족 및 대상인들 간의 권력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맡았다. [27] 제노바의 첫 식민지는 1261년에 룸 술탄국으로부터 할양받은 아마스트리스 항이었는데, 룸의 흑해 연안 및 크리미아 영토를 제국이 고스란히 가져갔고 에게 해의 도서지역을 지킬 해군력도 건실한 이상 레반트 식민지로 눈을 돌린다면 모를까 제노바가 현실처럼 식민제국으로 도약할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28] 또는 성 사바스 전쟁. 1256년부터 1270년에 걸쳐 벌어졌으며, 제노바가 티레 백작령을 중심으로 잔존 십자군 국가를 갈라치기하면서 안그래도 약체화돼있던 예루살렘 왕국에 상당한 내상을 입혔다. 결국 몽골과 맘루크라는 강대한 적을 앞두고 자기들끼리 싸우는 십자군 국가를 보다못한 교황 알렉산데르 4세 1258년에 개입해 반강제로 4년간의 휴전을 체결시킨다. [29] 일반적으로 교황령의 국기가 베드로의 열쇠에서 따온 깃발인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성 베드로의 열쇠는 교황령의 '국기'가 아닌 '국장'에 해당하고 백황기 또한 '일단은' 근대에 사용한 것이다. 이 시기의 교황령 국기는 적황기였고 이는 현재 로마시의 상징이기도 하다. [30] ' 피핀의 기증' 기준 [31] 카페 왕조의 시작 기준 [32] 제8차 십자군에서 귀환하자마자 풍토병이 악화되어 사망. [33] 실제 역사에서처럼 샤를 당주와 함께 아라곤을 공략하려다 실패하고 병사한 것으로 추정. [34] 이걸 현대에 비유하자면 중국군 장교가 한국 대통령의 뺨을 갈긴, 그야말로 최악의 무례다. [35] 얼마나 크게 털렸으면 안드로니코스가 개선 행렬에 노획한 프랑스 군기를 앞세울 정도. [36] 아바카 칸이 정식으로 네스토리우스교도로 개종하면서 천도 및 개명을 실시한다. 하필 테오폴리스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바그다드의 원 의미가 '신이 내려준 도시'라는 설이 유력하기 때문. [37] 원 역사대로 사망함 [38] 원 역사대로 아인 잘루트 전투 이후 귀국하던 도중 바이바르스에게 살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