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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3 02:38:40

뉴욕 메츠/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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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창단2. 어메이징 메츠의 기원, 1969년3. 1986년 두 번째 우승4. 1990년대와 서브웨이 시리즈5. 어메이징 메츠
5.1. 2001년 ~ 2004년5.2. 2005년5.3. 2006년5.4. 2007년5.5. 2008년5.6. 2009년5.7. 2010년5.8. 2011년5.9. 2012년5.10. 2013년5.11. 2014년
6. 드디어 찾아온 전성기
6.1. 2015년6.2. 2016년
7. 돌아온 어메이징 메츠
7.1. 2017년7.2. 2018년7.3. 2019년7.4. 2020년
8. 스티브 코헨의 등장
8.1. 2021년8.2. 2022년8.3. 2023년8.4. 2024년8.5. 2025년



메츠의 24년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비디오 (1986 作)

1. 창단

1962년 뉴욕에서 창단되었다. 당초 뉴욕에는 뉴욕 양키스 브루클린 다저스, 뉴욕 자이언츠 모두 세 개의 야구팀이 존재했으나 1958년에 다저스와 자이언츠가 서부로 떠나버렸고 뉴욕엔 양키스 혼자 남게된다. 미국을 상징하는 도시이자 야구의 발상지로 여겨지기도 하는 뉴욕같은 대도시에 유서깊은 내셔널 리그[1] 팀이 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 인사들[2]이 팀 창단을 계획했다. 이 때 팀 창단에 앞장선 사람이 윌리엄 셰이라는 변호사로, 메츠가 창단되고 새 구장을 갖게 되자 홈 구장 이름을 셰이 스타디움이라 명명하는 것으로 그의 공적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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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 스타디움 (Shea Stadium)

1960년대 브랜치 리키가 주도한 제3의 리그인 컨티넨탈 리그의 출범 계획에 뉴욕의 신생팀 창단이 있었지만, 이 새 리그 출범은 메이저리그의 저지로 무산된다. 하지만, 새 구단에 대한 수요를 언제까지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단행된 1962년의 메이저리그 확장드래프트에서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제2기 워싱턴 세네터즈, 휴스턴 콜트 포티파이브즈와 더불어 프랜차이즈를 획득해 창단했다. 초대 구단주는 조앤 쉽맨 페이슨이었다.
팀 명은 '대도시 사람들'이라는 뜻의 'Metropolitans'에서 줄여서 Mets로 결정.[3] 자이언츠와 다저스의 뉴욕을 대표하던 두 내셔널리그 팀의 전통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팀의 상징색은 자이언츠의 주황색과[4][5] 다저스의 파란색으로 결정. 대체적인 분위기나 역사 의식은 다저스에 가까운 편이다. 브루클린 시절을 기억하는 다저스 팬들은 다저스 대신에 메츠를 응원하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도 브루클린 옆에 퀸스가 있어 찾아가기도 쉽다.

창단 초창기 최약체였던 전력이였지만 뉴욕 양키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6] 명감독 케이시 스텡겔을 영입해서 차근차근 팀을 강화해 나가는것이 목표였으나.... 스텡겔 감독은 너무 늙은데다가 팀에는 너무 어리고 경험없고 실력미달인 선수들만 가득했다. 뉴욕 언론들은 메츠를 '스텡겔의 유치원'이라고 불렀고 스텡겔 감독의 메츠는 4시즌 연속 꼴찌 및 세자리수 패배를 기록했다.[7][8] 단, 흥행은 정말 대단했다. 그 형편없는 성적에도 꾸준히 관중들이 찾아줬다고. 이유는 하나. 양키스를 진짜 싫어하는 사람들은 무조건적으로 메츠를 응원했다. 메츠 창단 전에는 아예 보스턴 레드삭스를 응원했을 정도였으니.[9]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단년도의 메츠 성적은 내놓기도 뭐한 수준이었다. 창단 첫해 성적이 40승 120패였는데 이는 20세기 메이저리그 단일시즌 최다패배 기록이었고 승률 .250 역시 1935년 보스턴 브레이브스가 기록했던 승률 .248보다 약간 높은수치였을 정도였다.

이러던 와중에 1966년 전체 1번으로 뽑은 스티브 칠콧은 두 가지 이유로 레전설이 되었는데, 첫 번째 이유는 그는 역대 최초로 전체 1번이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지 못하는 불명예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로는, 전체 2번으로 뽑힌 선수는 다름 아닌 명예의 전당 첫 턴 입성자 레지 잭슨이였다.

2. 어메이징 메츠의 기원, 1969년

메츠에게도 서광이 비추기 시작하였으니 바로 1967 시즌 내셔널리그 신인왕이자 훗날 311승을 올리게 되면서 98.8%라는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 최고 득표율 선수가 되는 톰 시버의 등장이 바로 그것.[10] 1966년에는 또다른 대투수 놀란 라이언도 19세의 나이로 데뷔하지만.... 놀란 라이언은 메츠에서는 별 특출난것 없는 투수에 불과했고 그가 대투수의 반열에 오르는것은 1972 시즌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로 이적하면서부터이니 일단 논외. 아무튼 톰 시버는 22살인 데뷔시즌에 251이닝을 소화하면서 16승 13패 2.76의 평균자책점이라는 신인치고는 무시무시한 성적을 찍어주면서 혜성과도 같이 등장했다. 투수 친화적인 홈구장인 셰이 스타디움의 특성을 감안하여 팀도 톰 시버를 주축으로 좋은 투수들 위주로 팀 전력을 강화한다는 작전을 세운다.

그리고 1969년, 주전 야수들 전원이 20대이고 투수진에서도 두명빼고 죄다 20대라는 엄청나게 젊고 역동적인 선수들을 앞세운 메츠는 창단최초의 100승이자 창단최초의 지구우승을 차지하면서 창단이후 최초의 포스트시즌에 진출한다. 챔피언쉽 시리즈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간단히 스윕하고 월드시리즈에 올라가 만난 팀은 훗날 586개의 홈런을 치게되는 프랭크 로빈슨, 역사상 최고의 공수겸장 3루수 브룩스 로빈슨, 23승과 20승을 올린 원투펀치 마이크 퀘이야 - 데이브 맥널리를 앞세운 당대 최강팀 볼티모어 오리올스였다.[11] 모두들 볼티모어의 우세를 점쳤지만[12] 메츠는 의외로 간단히 볼티모어를 4승 1패로 꺾고 1969년 창단후 7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루는 쾌거와 동시에 '어메이징 메츠'라는 명칭을 얻는다. 이 당시 시카고 컵스와의 1위다툼은 그야말로 치열했었다. 심지어 컵스는 한때 메츠에 14경기차로 앞서고 있던 때도 있었다. 더구나 시즌 중반 컵스가 메츠에게 9경기차로 앞서고 있었기도 했다. 그러나 시즌 마지막 48경기 가운데 메츠가 37경기를 이기는 동안, 컵스는 무려 20승 28패라는 처참한 몰락을 기록하면서 시즌내내 지키고 있던 1위자리를 내주는 비극(?)을 연출했고 메츠는 창단 7년만에 월드시리즈 진출이라는 경사를 맛봤다.

첫 우승 이후에도 꾸준한 투자와 선수들의 분발이 있었으나 이상하리만큼 성적은 따라주지 않았다. 1973년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한 번 차지한 것 외에는 전부 중하위권에서 맴돌았다. 에이스인 톰 시버는 1968년부터 1976년까지 평균 274이닝씩을 소화하며 제일 적게 던진게 1974년 엉덩이 부상으로 인한 236이닝이라는 진짜 말이 안 나올 정도의 무시무시한 이닝을 소화하면서 그야말로 팔이 빠져라 던져댔지만 팀 성적은 신통찮았고 결국 1977 시즌 도중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됐다. 당연히 팀성적도 스타도 별 볼것없는 팀으로 다시 쪼그라들었다. 이후 톰 시버는 1983 시즌 다시 메츠로 돌아와 한 시즌 소화하지만 231이닝 3.55라는 준수한 이닝과 평균자책점에도 팀 타선이 워낙 막장이라 9승밖에 못챙긴다. 한 시즌만 뛰고 다시 메츠를 떠나야 했고 이후 1986년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은퇴한다.[13] 그 사이 조앤 구단주는 1975년에 사망했고, 이후 남편 찰스가 팀을 이어받았다가 1980년에 출판사 '더블데이 사' CEO 넬슨 더블데이와 부동산업자 프레드 윌폰에게 지분을 팔았다.
1969년의 메츠의 활약과 관련하여 여러 영화에서도 자주 언급되었다. 프리퀀시에서는 미래의 아들과 교신하다가 나온 1969년의 메츠의 플레이를 듣고 나중에 체포되었을 때 언급하면서 탈출하는 장면이나, 맨 인 블랙 3에서는 과거로 돌아간 제이가 결정적인 힌트를 얻기도 하고 보리스와 잠시 미래 예지로 월드 시리즈 우승 재현 장면을 보기도 한다.

3. 1986년 두 번째 우승

하지만 1983년과 1984년, 기나긴 침체의 터널에서 헤매던 메츠에게도 드디어 또 한 번 서광이 비추기 시작했으니 바로 1983년 신인왕인 외야수 대럴 스트로베리[14]와 1984년 19세의 나이로 17승 9패 2.60평균자책점 276삼진을 기록하면서 사이영 2위와 신인왕을 석권한 닥터 K 드와이트 구든의 등장이 바로 그것. 메츠는 1984년과 85년 2년 연속 지구 2위를 기록하면서 그동안의 침체기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1986년 드디어 108승으로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차지, 실로 오랜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게 된다.

내셔널리그 챔피언쉽 시리즈에서는 메츠에서 데뷔했었고 기나긴 세월을 지나 이제는 39세의 나이로 선수생활 황혼기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했지만 훼이크다 이 야구팬들아 앞으로 7년 더 뛸 예정 놀란 라이언과 이해에 인생투를 보여준 손가락 벌렸죠? 스플리터에요. 스플리터의 장인이자 1986년 사이 영 상 수상자 마이크 스캇을 앞세운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4승 2패로 격파. 월드시리즈에서 만난 팀은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밤비노 영감탱이의 망령에서 벗어날 절호의 기회를 잡은 보스턴 레드삭스. 게다가 당시 레드삭스에는 그 해 41세가 된 뉴욕 메츠의 레전드 톰 시버가 있었다![15]

시리즈는 매우 치열하게 전개되었고 5차전까지 3승 2패로 보스턴 우세.

6차전은 3:3 동점상황에서 연장전으로 돌입하였고 연장 10회초에서 2점을 뽑아낸 보스턴이 드디어 지긋지긋한 밤비노 영감탱이의 망령에서 벗어나나 싶었다. 1점을 내줘 5-4로 따라붙었으나 경기는 보스턴쪽으로 기울고 무키 윌슨이 타석에 들어선다. 그리고 매우 어메이징한 상황이 일어났으니... 1986 New York Mets Tribute

이 역사적인 알까기이후 빌 버크너 펜웨이 파크로 돌아가는데 19년이 걸렸다. 이어진 7차전에서도 메츠는 보스턴을 8-5로 꺾고 두번째 월드시리즈 정상에 오르게 된다. 보스턴 레드삭스팬들 입장에서 2004년 이전까지 최고로 통탄할 순간이라면 바로 저때.[16]

4. 1990년대와 서브웨이 시리즈

1988 시즌에도 다시 한 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만 LA 다저스와 접전 끝에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3승 4패로 석패. 이후 또다시 메츠는 팀 전통대로 기나긴 침체의 늪에 빠진다. 투타의 에이스였던 드와이트 구든 대럴 스트로베리는 각각 지나친 혹사와 마약으로 인해 젊은 시절의 훌륭한 재능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일찍 시들어버린다.

이후 1997 시즌 이 때만 해도 명장 바비 발렌타인을 감독으로 임명하고 LA 다저스의 역대 최강의 공격형 포수 마이크 피아자를 영입하는 등 전력을 꾸준히 보강하면서 1999년 와일드카드로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 디비전 시리즈에서 당시 최고 승률 팀이었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꺾고 챔피언십 시리즈에 오르지만 지구 라이벌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게 패배한다. 이어진 2000 시즌에는 전 시즌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22승을 올린 좌완 마이크 햄튼을 영입하여 햄튼- 알 라이터 원투펀치를 구축하였다. 투수진에 확실한 에이스 카드를 장착하면서 다시 한 번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디비전 시리즈에서 당시 최고 승률 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잡아내고,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잡아내면서, 드디어 뉴욕의 터줏대감 뉴욕 양키스 월드 시리즈에서 '서브웨이 시리즈'를 성사시켰으나 1승 4패로 장렬하게 패하며 준우승에 만족했다. 특히나 5차전에서 선발투수로 나와 역투했지만 9회초 2-2 동점 상황에서 추가점을 허용하고 강판된 뒤 눈물을 흘리는 알 라이터의 모습은 메츠 팬들에게는 잊기 힘든 장면. 더불어 마무리 아르만도 베니테즈[17]의 불쇼가 백미. 이 놈이 불놀이만 안했어도 5차전에서 이미 8회까지 120구 가까이 던진 알 라이터가 9회에 던지지는 않았겠지

5. 어메이징 메츠

뱁새가 황새를 따라하다가 다리가 찢어저버린 전형적인 사례. 결론적으로 2001년부터, 투자에 비해 결과가 심히 좋지 않고, 선수들의 부상도 자주 일어나며 결정적인 순간에 운도 안 따라주는 팀이다. 2001년부터 10년간 그들은 총연봉 전체 2위에서 6위 사이를 왔다갔다했지만, 포스트시즌 진출은 한 번밖에 못 했고 5번은 5할도 못 넘었다. 같은 기간동안 부진했던 다른 팀들은 돈이라도 조금 썼지 메츠는 먹튀들 좋은 일만 시켜줬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탬파베이 레이스로 대표되는 저비용 고효율 팀과 달리, 어메이징 메츠는 고비용 저효율 팀의 상징처럼 되었다. 비슷한 분위기의 팀으로 단장 대인배였던 모 팀이 있다[18]

5.1. 2001년 ~ 2004년

준우승 직후 시즌인 2001년 82승 80패로 뭔가 좀 아쉬운 성적을 기록하자 프런트진은 다시 과감한 투자를 시작한다. 우선 메츠에서 11년차를 맞는 프랜차이즈 좌완 투수인 존 프랑코를 게리 카터에 이은 팀 사상 세 번째 주장으로 임명하였다.[19] 당시 투타 FA 대어였던 알렉스 로드리게스 박찬호 영입에도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그들은 트레이드를 중심으로 전력을 보강한다. 로베르토 알로마, 모 본, 제로미 버니츠 등 강타자들을 잇따라 영입하여 투수친화 구장인 셰이 스타디움빨을 등에 업은 투수진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계획을 세웠다.[20] 그런데 저 선수들이 처절하게 시즌을 망쳤고, 2002년 75승으로 무너졌고, 모 본을 보낸 애너하임 앤젤스는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다. 고마워요 메츠 어메이징

그 사이 윌폰 공동구단주가 더블데이의 지분을 사들여 단독 구단주로 승격했고, 2003년에는 바비 발렌타인 대신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에서 감독으로 활약하던 아트 하우를 새로 감독으로 앉히고, 애틀랜타 선발 3인방 중 하나인 톰 글래빈도 모셔오면서 투자를 강화했지만 66승으로 더 부진했고, 2004년에는 오클랜드에서 데려오라는 단장은 안 데려오고 선발 3인방을 키워낸, 릭 피터슨 투수코치도 영입하고 일본에서 MLB에 제일 잘 적응할 5툴 플레이어로 평가받던 마쓰이 가즈오를 데려온다. 하지만 릭 피터슨은 제구 난조를 보이던 탬파베이 레이스의 빅터 잠브라노를 '10분이면 고친다'면서 영입하고 유망주 투수를 내준다. 그는 스캇 카즈미어.[21] 마쓰이도 공수에서 삽을 들었다. 71승. 메츠는 결국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동안 정말 처절한 성적을 보여준다. 2003 시즌 중반 서재응이 혜성처럼 등장해 투수진에 힘을 보탰지만 역시 별 무소용. 이때쯤 활성화된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메츠답다','셰이 스타디움엔 수맥이 흐른다'는 말이 처음 등장했다. 역시 어메이징

이 시절 메츠를 요약한 최훈의 카툰
팀별 총정리 2004 뉴욕 메츠

5.2. 2005년

아트 하우 감독하에서 처절한 성적만 올리자 팀은 2005 시즌을 앞두고 몬트리올 엑스포스 단장 출신의 오마 미나야를 단장으로, 윌리 랜돌프를 감독으로 선임한다, 그리고 미나야는 히스패닉 팬[22]들을 공략하기 위해 당시 FA 투타 최대어였던 카를로스 벨트란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영입, 팀 내에 톰 글래빈 뿐인 좌완 선발투수 보강을 위해 오릭스 버팔로스에서 3년간 뛰고 FA가 된 구대성을 1년 1.3M에 계약했다. 구대성은 원포인트 릴리버로 33경기 동안 23이닝을 뛰고 3.91의 방어율에 승패없이 6홀드 2세이브를 올렸다. 2005년 83승 79패로 드디어 괜찮은 성적을 올린다. 벨트란은 첫해에 대차게 말아먹었지만, 페드로 마르티네즈는 비실비실 거리던 보스턴 마지막 시절과 달리 15승에 2점대 방어율이라는 외계인 시절 모습을 다시 회복하며 성공적으로 안착한다.[23] 게다가 메츠의 전통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기나긴 침체기 끝에 등장하는 혜성과도 같은 신인이 드디어 등장하는데 바로 '어린 왕자' 3루수 데이비드 라이트와 쾌속의 스위치 히터 유격수 호세 레이에스. 데이비드 라이트는 .300-30-100에 근접한 .306-27-102타점을 기록하였고 레예스는 60도루에 99득점..그외에도 클리프 플로이드가 34홈런을 때리며 분전했으나 FA 카를로스 벨트란은 크게 망했다. 투수진은 외계인과 톰 글래빈, 크리스 벤슨까지 3명의 10승 투수와 14경기를 선발로 나와 2.59의 방어율과 8승 2패를 기록한 서재응까지 짭짤한 활약을 보였으나 30세이브도 못 하는 마무리 브랜든 루퍼의 꾸준한 불질로 날려먹은 승수가 많았다.

최훈 MLB 카툰 2005 뉴욕 메츠

5.3. 2006년

이같은 성적에 고무된 프런트는 다시 현질타임 거금을 들여 말린스에서 .300-30-100을 기록한 1루수 카를로스 델가도, 지난해 필리스 올해의 투수인 빌리 와그너, 등등 이름값있는 선수들은 죄다 끌어모아서 반격을 노리게 되고 2006년, 팀은 시즌 내내 에이스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부상 이외에는 이렇다 할 마이너스 요소 없이, 게다가 첫 해 부진했던 벨트란마저 41개의 홈런을 때리며 완벽히 부활하면서 순풍에 돛단듯 시즌내내 잘나가면서, 97승으로 넉넉한 격차로 내셔널리그 승률 1위를 했다. 당시 내셔널 리그 최강전력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6년만에 서브웨이 시리즈를 재현하는가 하는 기대감을 품게한다.

저쪽에서 일단 뉴욕 양키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게 나가떨어지고, 메츠는 83승으로 플레이오프에 간신히 올라온 세인트루이스와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맞닥뜨린다. 1차전은 벨트란의 투런 홈런으로 2-0 신승. 하지만 2차전 유리한 상황에서 철벽 마무리 빌리 와그너가 일본인 대수비요원 다구치 소[24]에게 홈런을 얻어맞으면서 넉아웃. 이후 번갈아가며 번갈아 1승씩을 주고 받으면서 7차전까지 가게 되었는데, 7차전에서 스캇 롤렌의 홈런 타구를 엔디 차베즈가 펜스 위로 점프하여 잡아내고 이어진 공격에서 스캇 롤렌의 에러로 만루 상황을 만드는 등 좋은 흐름을 탔지만 점수를 내지는 못했다. 결국 9회초 포수 야디어 몰리나에게 2점 홈런을 맞고 9회말에도 2사 만루 상황에서 웨인라이트가 벨트란을 커브로 삼구삼진을 잡아내며 시리즈를 내주었다. 역시 어메이징 서브웨이 시리즈 그런거는 우리한테는 있을수가 없어. 덕분에 웨인라이트와 야디어 몰리나는 메츠 홈경기만 가면 야유 받는다.

이 경기가 셰이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마지막 포스트시즌 경기가 되었다.

사실 이 시즌 NLCS에서 비록 세인트루이스에게 7차전까지 가는 대접전끝에 아쉽게 패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전문가들은 이 시즌이 메츠 왕조를 여는 첫 걸음이 될거라고 예상했다. 이 예상이 그리 허황된 것도 아니었던 것이 이 때 매츠는 톰 글래빈, 페드로 마르티네즈 같은 레전드들이 버티고 있고 존 메인과 올랜도 에르난데스가 가세한 선발진과 하일먼, 빌리 와그너가 축을 이루고 있는 계투진을 갖췄다. 야수진에는 데이비드 라이트, 호세 레이에스로 대표되는 재능넘치고 젊은 5툴 플레이어들이 꽃피고 있었고 카를로스 벨트란, 카를로스 델가도의 중심타선이 건재했으며 오프시즌에 영입한 호세 발렌틴, 폴 로두카, 엔디 차베즈가 선전하며 뎁스마저 두터워졌다. 어느 면모를 보더라도 메츠는 2006 시즌 종료시점에 있어 내셔널리그에서 독보적인 전력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누가 알았겠는가.. 2015년 이전까지 이 시즌이 뉴욕 메츠의 마지막 플레이오프 진출 시즌이 될 줄 이야... 이런 메츠가 2015년에 사고칠뻔한 건 안비밀....

5.4. 2007년

2006 시즌이 끝나고 오프시즌에 당시 일본 최강 마쓰자카 다이스케와 계약이 순조로워 보였으나 보스턴 레드삭스에게 빼았겼고 FA 최대어인 배리 지토의 계약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제안으로 결국 큰 보강이 없게 되었다.[25] 타선에서는 클리프 플로이드를 대신해 40세의 모이세스 알루를 영입하였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히스 벨과 로이스 링을 주고 외야수인 벤 존슨과 릴리버 존 애킨스를 영입하였으나 팀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전력만큼은 여전히 내셔널리그 최강으로 평가받았다. 존 메인과 올리버 페레즈는 15승을 올리면서 포텐을 터뜨렸고 톰 글래빈은 여전히 건재한 모습, 5선발 펠프리의 부상은 호르헤 소사가 뜬금 등장해 메꾸며 로테이션이 잡음없이 돌아갔고 펠리시아노, 헤일먼, 조 스미스의 계투진과 마무리 빌리 와그너가 단속한 뒷문 등 등 투수진이 약진했다. 타선에서는 숀 그린 카를로스 벨트란이 부활하고 데이비드 라이트는 .325-30-107, 호세 레예스는 78도루 119득점을 기록하며 2007 시즌에도 역시 시즌내내 순항하나 싶었지만, 9월 12일 시점에서 7경기차로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앞서던 것을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3연전 스윕패 포함 이후 5승 12패... 결국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엄청나게 내달리면서 시즌 마지막 경기만 남겨둔 상태에서 결국 동률. 이 마지막 한경기에서 필리스는 이기고 메츠는 선발인 톰 글래빈이 1회에 떡실신 당하면서[26] 결국 필리스에게 통한의 역전 지구우승을 내주게 된다. 2011년 보스턴 레드삭스 못지 않은 추락이었다. 161경기동안 1위하다가 1경기 2위해서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역시 어메이징

88승 74패 (NL 5위)
타/출/장 : .275(2)/.354(3)/.437(7), 득점 4위, 도루 1위, 홈런 5위
팀 평균자책점 4.26(7위), 선발 5위, 불펜 8위
팀 수비력 5위 (팬그래프 팀 필딩 UZR/150기준)

박찬호가 FA 계약이 종료된 후 이 해 뉴욕 메츠에 1년 30만불로 입단했다가 5선발 경쟁에서 밀린 뒤, 4월 30일에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경기에 한 차례 콜업되어 선발로 등판했지만 4이닝 7실점으로 시원하게 말아드신 후 마이너로 내려갔다. 박찬호가 은퇴할 때, 지금까지 입은 유니폼들을 모두 공개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공주중, 공주고에 내셔널리그 올스타 유니폼도 있었지만 메츠 유니폼은 없었다. 그야말로 박찬호의 흑역사(...)

5.5. 2008년

전년도 막판, 14년만에 포스트 시즌 진출에 성공한 만패팀에게 1위를 내준 충격을 딛고 야심차게 오프시즌을 준비한다. 숀 그린, 엔디 차베즈를 비롯한 외야 자원이 많이 이탈하고 톰 글래빈이 친정팀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와 계약하며 선발진에 구멍이 생겼다. 우선 예비 FA인 모이세스 알루와 유틸리티 자원인 대미언 에슬리와 옵션 실행 및 재계약을 했고 폴 로두카가 라이벌 팀 워싱턴 내셔널스로 떠나감에 따라 락토버의 기적 콜로라도 로키스의 포수 요르빗 토렐바와 3년 14.4M에 계약 했으나 메디컬 테스트 도중 발견된 어깨 부상으로 계약이 나가리가 되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FA로 풀린 2루수 데이비드 엑스타인에게 관심을 보였으나 지난 시즌 트레이드로 데려온 루이스 카스티요와 4년 25M 계약을 맺으며 호세 발렌틴의 은퇴로 생긴 2루수 공백을 메웠고 백업 외야수 라스팅스 밀리지[27]로 포수인 브라이언 슈나이더와 좌타자 라이언 처지를 워싱턴 내셔널스로부터 데려온다. 외야수 앙헬 파간 시카고 컵스와의 트레이드로 2년만에 다시 데려왔다. 또 AL 사이영상 2회에 빛나는 제2의 외계인 요한 산타나까지 데려와[28] 시즌내내 순항하지만...

89승 73패 (NL 4위)
타/출/장 : .266(4)/.340(4)/.420(6), 득점 2위, 도루 2위, 홈런 7위
팀 평균자책점 4.07(6위), 선발 5위, 불펜 13위
팀 수비력 3위 (팬그래프 팀 필딩 UZR/150기준)

또다시 9월 들어서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내달리고 메츠는 또 가라앉으면서 2년연속 대역전(...) 언론은 또다시 이런 제목을 뽑는다. 어메이징 메츠. 역시 어메이징 참,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9월 필리스가 단 1개의 블론 세이브만 내주는 단단한 불펜진을 바탕으로 17승 8패만 기록한 반면 메츠는 같은 기간동안 13승 12패, 불펜은 11번의 세이브 기회에서 5번을 불 지르며 망했다... 젊은 피로 보강한 외야 자원은 부진하진 않았지만 부상이 거듭되어 빈사상태가 되었으며 시궁창을 해결하기 위해 애리조나 디백스로 부터 데려온 트롯 닉슨 마저도 부상으로 딱 11경기 출전... 역시 수맥이 흐르나 보다. 선발은 요한 산타나-올리버 페레즈-마이크 펠프리 셋이서 629이닝을 책임지며 분전해주었으나 나머지는 다 불을 질렀고 불펜은 빌리 와그너 빼고 다 망했다.

5.6. 2009년

2009 시즌을 앞두고 정든 셰이 스타디움을 떠나 새 구장인 시티 필드로 홈을 옮겼다. 오프시즌에는 지난 시즌 내내 뒷목 잡게 만들었던 불펜을 뜯어 고치고자 리그 최고의 클로져인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를 3년 37M이라는 괴랄스러운 금액으로 영입을 하였고 지난 시즌에는 망했지만 3년간 80세이브 이상을 해낸 시애틀 매리너스의 J.J. 퍼츠를 셋업맨으로 쓰기 위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삼각 트레이드를 했는데[29] 불펜 보강하려고 그나마 쓸만했던 불펜 자원들을 보내버리냐는 말이 많았다. 부상병동이었던 타자 쪽은 유격수인 알렉스 코라와 외야수 게리 셰필드를 영입하며 뎁스를 좀 더 두텁게 했다.

70승 92패 (NL 13위)
타/출/장 : .270(2) / .335(7) / .394(12), 득점 12위, 도루 1위, 홈런 16위
팀 평균자책점 4.45(12위), 선발 12위, 불펜 8위
팀 수비력 15위 (팬그래프 팀 필딩 UZR/150기준)

시티 필드가 개장할 즈음에 시티금융그룹 정부지원을 받고 있던, 코가 석자인 상황에서 구장명 사용권을 철회하겠다고 얘기했다가 결국 철회는 없었던 일로 넘어가는 등 시즌 개막도 하기 전부터 뒤숭숭하더니, 어떻게 팀을 꾸리나 싶을 정도의 참담한 부상행렬[30][31]수맥 흐르는건 여전한가보다 정규 타석을 채운 선수는 3명뿐[32]이었고 이 때문에 제대로 힘도 못써보고 70승 92패로 동부지구 4위로 마감했다. 카를로스 벨트란은 처음으로 3할 시즌을 기대하게 할만큼 3할을 한참 웃도는 타율을 기록하였으나 부상으로 7월과 8월을 날려먹었고 앙헬 파간은 반대로 시즌 초반 부상과 부진으로 고생했으나 부상복귀 벨트란이 빠져있던 시기에 터졌고보는 사람 제대로 답답하게 만드는 엇박자 시즌 중반 트레이드로 데려온 제프 프랑코어가 잘해주었기에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투수 쪽도 마찬가지로 불펜은 펠리시아노 배고 다 맛탱이가 갔다. 빌리 와그너는 부상으로 시즌 아웃에 웨이버로 보스턴 레드삭스로 갔고, J.J 퍼츠와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는 지난 시즌보다 못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부상 때문에 11명의 선발 자원을 썼고 200이닝을 채운 선수가 단 한명도 없었다... 게다가 시즌도중 구단주인 프레드 윌폰이 버나드 메이도프에게 무려 7억달러짜리 사기도 당했다[33]. 묵념(...) 2009 시즌 최고로 어메이징한 장면은 다름 아니라 이것과 이것[34]이었다. 물론 두 경기 다 패배 어메이징

5.7. 2010년

2009 시즌을 시원하게 말아먹은후 오프시즌에 FA시장 타자 최대어인 제이슨 베이를 영입하는 등 이번에도 어김없이 투자에 의욕적으로 덤벼들었다. 핵망한 J.J. 퍼츠는 시즌이 끝나자마자 팀 옵션으로 방출되었고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팀을 옮기게 된다. 포수 브라이언 슈나이더는 라이벌팀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계약했다. 알렉스 코라와 재계약 뿐 아니라 파드리스의 포수인 헨리 블랑코로 슈나이더의 빈자리를 메꾸게 된다. 그리고 불펜투수로 일본에서 활약한 이가라시 료타와 2년 계약을 맺으며 퍼츠를 대신해 셋업맨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덤으로 메이저 리그에서 계속 실패를 보고있는 너클볼러 R.A. 디키를 마이너 계약으로 구원해주는데 이것이 나중에 로또대박이 된다.

2010년 초에는 카를로스 벨트란이 무릎 수술을 하고 올스타 브레이크가 돼서야 돌아왔고 시범 경기에는 호세 레예스가 갑상선 이상으로 시범 경기를 소화하지 못하며 다시 수맥이 흐르는가 싶었지만 요한 산타나가 부활하고, 올리버 페레즈의 부진으로 시범삼아 콜업한 R.A. 디키가 2점대 자책점과 11승을 기록하고 마이크 펠프리가 타자들에게 덜 두들겨 맞으며 팀 내 최다인 15승을 기록하고 기대주 존 니스도 첫 풀타임 시즌을 잘 소화해주며 지난 시즌과는 딴판인 모습의 선발진을 갖춘 모습에 중간계투진도 마지막 불꽃을 태운 엘머 데센스나 올 시즌 각성한 바비 파넬을 주축으로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도 제몫을 해주며 지난 시즌 방어율 20위(4.45)였던 팀이 7위(3.70)으로 상당히 좋아진 모습을 보였다. 타자는 호세 레예스 데이빗 라이트 등 주축급 선수들이 제몫을 해줬고 신인 아이크 데이비스와 앙헬 파간이 본인의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이며 잘해 주었으나 정작 중심타자인 카를로스 벨트란은 부상으로 말아먹었고 FA로 영입한 강타자 제이슨 베이가 똑딱이로 변신하는 부진한 시즌을 보냈다. 결국 지난 시즌 9위였던 팀 타율 순위는 20위까지 추락하며 이번 시즌에도 불협화음... 게다가 시즌 하반기엔 K-로드가 장인 폭행건으로 인해 출장정지 징계를 먹었고 요한 산타나는 시즌 아웃으로 수술대에 올랐다. 역시 어메이징

79승 83패 (NL 13위)
타/출/장 : .249(13) / .314(14) / .383(12), 득점 13위, 도루 1위, 홈런 13위
팀 평균자책점 3.70(6위), 선발 6위, 불펜 5위
팀 수비력 5위 (팬그래프 팀 필딩 UZR/150기준)

결국 2010 시즌은 워싱턴 바로 위...그 선수들을 가지고 플로리다보다 못했다. 그나마 단장에서 X맨 노릇이나 하던 미나야를 히스패닉 커넥션이 좀 도움이 될 국제 스카우트 쪽 일로 돌려서 그나마 희망(!)이 보인다고 해야하나. 그나마 신인인 아이크 데이비스 존 니스, 너클볼러 R.A. 디키가 희망이 되어주었다. 그야말로 리빌딩 상태. 2011 시즌을 앞두고 오마 미나야를 해고하고 빌리 빈의 멘토라 할 수 있는 샌디 앨더슨을 단장으로, 콩단장의 오른팔이였던 폴 디포데스타를 부단장으로 데려왔다.

오마 미나야의 히스패닉 팬층 공략은 백인 팬들의 외면을 불러왔고, 영입한 히스패닉 선수들도 부상으로 골골대서 미나야의 한계를 드러냈다. 미나야가 몬트리올 엑스포스 시절에 적은 돈으로도 괜찮은 성적을 냈다는 것에 주목해 메츠에서 데려왔는데 결과론적으론 실패였다. 미나야 입장에서도 어떻게 해서든 월드 시리즈 우승 한번 하고 나면 어느 정도의 재량권을 가지고 팀을 운영해 볼 수 있었을 텐데, 메츠 입장에선 돈은 돈대로 쓰고 우승을 못했으니 비판받는 것도 어쩔수 없는 일.[35]

5.8. 2011년

2010 시즌이 끝나자마자 무능한단장과 감독을 자르고 머니볼의 샌디 앨더슨을 단장으로 테리 콜린스 감독을 선임한다. 또 구단주인 프레드 윌폰이 아직 끝나지 않은 폰지 사기 사건의 소송 판결로 다시 돈이 궁하게 되었고 무능한 단장 시절때 만큼 많은 돈을 쓰지 못하게 된다. 어쩌면 앨더슨을 단장으로 선임한건 선견지명이 아닐까 싶다. 오프 시즌 동안 영입 없이 줄창 방출만 반복되었는데 존 메인과 션 그린, 크리스 카터, 루이스 카스티요, 올리버 페레즈가 팀을 떠나게 된다. 그 외에도 작게 마이너 스카우팅 디렉터를 팀내 스카우터였단 타미 테이너스로 승진시키는데, 이 사람이 팜을 책임지면서 메츠 팜에 변화가 일어난다.

2011년에는 요한 산타나가 어깨 부상으로 1년 내내 결장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고, 제이슨 베이도 시즌 초반부터 부상으로 DL에 오르면서 불길한 미래를 암시했다. 산타나가 일찍이 로테이션에서 빠지면서 5선발 로테이션은 마이크 펠프리, 존 니스, R.A. 디키, 크리스 영 그리고 크리스 카푸아노로 정해졌다.
지난 시즌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주워온 저스틴 터너가 5월의 활약으로 구단 역사상 2001년 이후 처음으로 이달의 신인상을 받게된다. 다니엘 머피 또한 전반기 타율 .320로 NL 3위에 랭크될정도로 불방망이를 휘둘렀으나 부상으로 시즌을 접게되었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로 떠난 아이크 데이비스의 후임인 루카스 두다 부터 조쉬 톨리, 루벤 테하다 같은 신예들도 이번 시즌을 성공적으로 보냈고 졸렬왕 호세 레예스는 타격왕의 클래스를 보여주며 빛과 소금이 되었다. FA로이드를 빨고 그 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 가치를 올리던 카를로스 벨트란 뉴욕 메츠와 손잡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게 사기를 쳤고, 제이슨 베이는 똑딱질도 못하고 데이비드 라이트는 부상과 부진으로 최악의 커리어 시즌을 보낸다. 그럼에도 팀 타율은 리그 6위... 투수는 K-로드가 올해도 사기를 치고 시즌 중반에 트레이드로 떠나고 지난 시즌 선발 방어율 7위였던 선발진은 17위로 뚝 떨어지고 계투마저도 개판이 되어버리면서 팀은 나락으로 떨어지며 결국 워싱턴 내셔널스에도 밀리며 지구 4위로 마감했다.
시즌 중반, 리빌딩과 샐러리 덤핑 차원에서 밀워키 브루어스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를 팔았고 카를로스 벨트란에게 연봉조정신청이 불가능하여 보호 픽을 잃을 위기에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의 트레이드에 성공했다. 타격왕에 오른 호세 레예스는 부상으로 점철된 시즌을 보낸데다 마지막 날의 졸렬한 타율관리[36]로 인해 명성에 흠집이 간채 FA가 되었다. 결국 레예스도 마이애미 말린스와 6년 $106M의 계약을 맺고 떠나고 말았다.

5.9. 2012년

2011년 시즌이 끝나고 코칭스텝들을 물갈이하고 불펜 진을 보강에 열을 올렸다. 그 결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뛰던 우완 계투 라몬 라미레즈를 쩌리 중견수 안드레스 토레스와 함께 유리몸 앙헬 파간을 트레이드해서 데려오고 팀의 클로저와 셋업맨 자리를 FA로 데려온 프랭크 프란시스코와 최장신 투수 존 라우치로 물갈이했다. 중간 담장 높이가 2배나 높아졌고 병으로 명을 달리한 게리 카터를 기리기 위해 그의 등번호를 팀의 50주년 패치와 함께 오른쪽 소매 패치로 사용했다.

하지만 2012 메츠는 전반적으로 말이 필요없는 수준의 막장 팀이었다. 6월까지는 워싱턴, 애틀랜타와 지구 우승을 겨루는 수준이었지만 그 이후로 나락에 빠지더니 7월 중순부터는 호흡기가 끊어지며 아예 망해버린 것이다. 이 기간에 거둔 성적은 눈 뜨고 못봐줄 수준인 1승 12패. 메츠의 타선은 근래 몇 년돋안 리그 최악의 타선을 자랑했다. 특히 2010년대 넘어선 이후로, 홈 구장을 시티 필드로 옮긴 후에는 장타력이 급감하며 미네소타 트윈스 수준이 되었다. 이 문제를 고쳐보겠다고 펜스를 당겨서 효과를 보긴 했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팀 홈런 개수는 11위, 가뜩이나 팀 순위도 낮은 데 두 자리수 홈런 타자는 딱 4명에 불과했다. 그리고 타율 3할 달성 타자는 데이비드 라이트 한 명 뿐. 팀 타율로 10위로 저조했고 공격 부문 각종 지표에선 10위권 내에 드는게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라이트를 중심으로 루벤 테하다, 다니엘 머피, 아이크 데이비스, 스캇 헤어스톤 등이 힘을 쓰긴 했지만 2% 부족했다. 아이크는 30개가 넘는 홈런을 쳐냈지만 개공갈이었고, 헤어스톤은 출루율이 너무 낮았으며 머피는 장타력이 부족한 똑딱이였다.

투수진은 더 심각해서 R.A. 디키 존 니스를 뺀 선발진은 모두 나가 떨어졌다. R.A. 디키는 6월까지 16경기동안 12승을 기록한 디키는 7월 2승 1패로 주춤한 모습을 보였지만 8월부터 다시 승 쌓기를 시작하며 20승으로 다승 리그 2위, 방어율 2위, 삼진 1위, 피안타율 4위를 기록하며 NL 사이 영 상[37]을 수상했고, 존 니스는 전반기와 후반기 두루두루 잘해주며 190이닝을 소화하고 13승을 했다. 요한 산타나는 초반엔 진짜 산타나 복귀를 보여주며 노히트노런까지 보여주더니, 필립 험버마냥 그걸 천운으로 다 썼는지 그 이후로는 부진을 면치 못하며 2012년에도 가짜 산타나가 되어 버렸고, 크리스 영은 퇴물이었고, 딜론 지도 얼마 못 버티고 시즌아웃 해버렸다. 그래도 맷 하비가 후반부에 올라오며 좋은 모습을 보여줘 메츠 팬들에게 기대를 품게 만들었다. (59.1이닝, 3승 5패, 평균자책점 2.73) 이렇게 선발이 망했으면 불펜이라도 버텨야 하는데 마무리인 프랭크 프란시스코는 란시스코였고 (42.1이닝, 1승 3패, 평균자책점 5.53)나머지도 그저 방화범들. 덕택에 팀 평균자책점 11위를 달성했다.

5.10. 2013년

오프시즌에 프랜차이즈 스타 데이비드 라이트와의 7년 138M의 연장계약에 성공했고 데이비드 라이트는 존 프랑코에 이은 뉴욕 메츠의 4번째 주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간 메츠 팬들 뒷목을 잡게한 먹튀 제이슨 베이를 21M의 바이아웃을 행사하여 방출시켰고 R.A. 디키와의 연장계약에는 실패하며 R.A. 디키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트레이드했다.[38] 다만 이 트레이드는 전문가 팬 공히 메츠의 윈으로 평가하는 트레이드이다. 아무리 사이영 위너이고 선수생명이 긴 너클볼 피처라지만 나이 40 가까운 투수를 보내주면서 상대 팀 팜을 싹 털어먹어서 본격적 리빌딩 행보로 들어간 메츠에 힘을 실어주는 트레이드라는 평가이다. 실제로 토론토 포럼 내에서도 전력 강화는 좋은데 너무 퍼줬다는 의견이 대세이고 메츠 포럼은 3년 뒤를 기대해볼만 하다는 반응.

74승 88패 (NL 공동 10위)
타/출/장 : .237(14)/.306(13)/.366(14), 득점 11위, 도루 3위, 홈런 11위
팀 평균자책점 3.77(8위), 선발 7위, 불펜 12위
팀 수비력 6위 (팬그래프 팀 필딩 UZR/150기준)
팜 유망주 랭킹 30개 팀 중 16위 (2013년 8월 1일 기준)

시즌 초반인 4월부터 팀은 여전히 흔들렸다. 처음 10경기를 6승 4패에 딜론 지와 제레미 헤프너로만 4패를 했기에 로테이션 상 기대할 만한 여지는 있었다. 하지만 이후 4승 11패로 꼴찌로 꼬꾸라졌고 필승조가 가동되기도 전에 이미 지고있던 경기가 많아서 선발진의 분전이 필요해보였다. 그래도 맷 하비는 6경기 4승을 기록하며 한줄기 희망이 보인다. 그래도 5월 6월 모두 승률 5할 이하의 성적을 보이고 후반기인 7월 들어서 반등하나 했으나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의 독주로 포스트 시즌을 힘들어보인다. 시즌 100패를 기록한 마이애미 말린스를 밑에두고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싸우는 중 결국 패넌트레이스 1경기 차이로 지구 3위를 함. 팀은 여전히 리빌딩 상태였다.선발진은 시즌 초 요한 산타나가 다시 어깨부상으로 시즌아웃당하는 악재 속에서도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는 2012년 후반에 데뷔한 맷 하비가 에이스로 거듭난 영향이 컸다. 그는 시즌 초반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와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등 제대로 폭주하며 사이영 레이스에 끼어들어 메츠 팬들을 설레게 했다. 시즌 성적은 9승 5패 평균자책점 2.27. 여기에 딜론 지가 팀내 최다인 199이닝을 책임지며 12승으로 의외의 활약을 해주고 존 니스 역시 잔부상이 있었지만 큰 슬럼프 없이 잘 시즌을 마무리 지어주었다. 여기에 카를로스 벨트란의 유산, 잭 휠러도 시즌 중반 승격되어 7승 5패 3.42의 준수한 데뷔 시즌을 보냈다. 그런데... 8월말에 맷 하비의 팔꿈치 인대 부상 소식이 들려왔다. 지친다 지쳐 처음에는 수술을 피하고 재활하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결국 10월 22일 토미 존 서저리 받았다. 2014 시즌은 재활로 날리게 되었다. 동시에 2014년도 리빌딩 확정

불펜은 클로저 바비 파넬이 8월에 부상으로 시즌을 접으면서 72년생의 라트로이 호킨스가 마무리를 봐야 했을 정도로, 스캇 애치슨, 스캇 라이스, 카를로스 토레스 같은 노장들을 중심으로 간신히 막는 수준이었다. 타선은 여전히 데이비드 라이트와 아이들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다니엘 머피가 분전했지만 그럭저럭 해주는 주전 2루수 이상은 아니었으며, 아이크 데이비스는 공갈포도 쳐주지 못했다. 오히려 노장 말론 버드와 존 벅의 깜짝 활약이 그나마 팀 타선을 이끌어 줬다. 시즌 후반 유망주 타자들이 상당수 메이저에 올라왔지만 유망주 포수 트래비스 다노 외에는 대활약을 할만한 선수는 많지 않은 상태였다.

이 시점에서 뉴욕 메츠 시카고 컵스는 공통점이 많다. 리빌딩 중인 빅마켓 팀으로서 두 팀의 단장은 모두 머니볼과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는 인물들. 그리고 두 팀 모두 팀 사정상 2015년이 타겟이다. 현재 컵스의 리빌딩이 타자 유망주 수집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면 메츠는 테이너스 매직인지 젊고 싱싱한 강속구 유망주들이 쏟아져 나온 덕에 선발진을 젊고 우수한 선수들로 리빌딩을 거의 마칠 수 있었다. 기존 맷 하비- 잭 휠러-딜론 지- 존 니스에 또 다른 유망주 노아 신더가드 헨리 메히아 그리고 올해 좋은 모습을 보인 제레미 헤프너의 복귀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이때만 해도 평범한 선발 유망주일줄 알았던 제이콥 디그롬까지 해서 2-3년 뒤 메츠 선발진이 NL 탑에 올라도 전혀 놀랍지 않은 수준.

반면 타선은 데이비드 라이트도 나이를 먹어가는 상황에서 중심을 잡아줄 선수가 반드시 필요하며, 동시에 타선을 구성하고 있는 슈퍼스타급은 아닌 젊은 선수들이 꾸준히 노력하며 성장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불펜 역시 클로저 바비 파넬 외에는 믿을 만한 선수가 없는 상태에서 적절한 보호와 영입이 필요한 상태. 그리고 중요한 것은 자라나는 선수들을 보호하는 일이다. 올해만 해도 에이스와 중심타자, 마무리와 중간 선발이 모두 크고 작은 부상을 겪었다. 시티 필드에도 수맥은 흐른다 게다가 타자 쪽 유망주가 쌓여 있는 컵스와 달리 메츠는 더이상 올라올 유망주는 많지 않은 상태. 완성 단계에 올라온 리빌딩의 마무리를 위해 단장과 감독이 공들여야 하는 상황.

5.11. 2014년

팀의 영건 맷 하비가 일치감치 시즌을 쉬는것이 확정된 가운데, 메츠는 오프시즌에 바톨로 콜론을 2년 20M, 커티스 그랜더슨을 4년 60M, 크리스 영을 1년 7.25M에 각각 영입했는데, 하나같이 노장이거나 부진했던 선수들이라 비싸다는 평이 많다. 그럼에도 넘치는 1루수 자원은 아직 트레이드시키지 못했고 구멍인 유격수와 불펜은 강화하지 못했다. 선발진이 준수해도 성적을 내려면 타선과 불펜의 뒷받침이 필요할 텐데 현재까지의 영입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많은 편.

이 외에도 선발과 불펜진의 뎁스를 강화하기 위해 호세 발베르데, 마쓰자카 다이스케, 존 래넌, 카일 판스워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스프링트레이닝에 초청하였다. 호세 발베르데와 래넌은 개막전 로스터에 들었고 마쓰자카 다이스케 카일 판스워스는 우선 마이너리그로 내려보낸 채 시즌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마무리 투수였던 바비 페넬이 1경기만에 팔꿈치에 문제가 생겼고 결국은 토미 존 수술을 받기로 하면서 일치감치 시즌아웃되었고, 발베르데가 마무리를 맡게 되었다. 결국 파넬은 60일 부상자 명단으로 이동하였고 빈 자리는 판스워스가 벤치 클리어링 리더로서 채우게 되었다. 하지만 이도 얼마 못가 선발 유망주이며 5선발로 뛰던 헨리 메히아가 갑자기 제구가 무너지던 차에 보직을 바꿨고 주전 마무리 투수는 헨리 메히아로 시즌을 보내게 된다. 다른 초청선수 출신이었던 래넌은 4이닝을 던지면서 7실점을 하며 15.75라는 위엄돋는 방어율을 기록한 체 4월 16일 결국 트리플A로 강등되었고 그 빈 자리를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채우게 되었다. 다만 선발투수진은 제이콥 디그롬이라는 신인을 발굴해 낸 것이 큰 수확이라 하겠다. 4월 18일에는, 1루수로서 그닥 좋은 활약을 보이지 못했던 아이크 데이비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로 트레이드 되었다. 2명의 유망주를 받는 조건이며 1명은 추후지명선수인데 이 추후지명선수가 메인선수이며 2013 드래프트 출신이라는 점으로 볼 때, 추후지명선수는 2013년 피츠버그의 상위 순번에서 지명되었던 선수일 가능성이 매우 크며 그는 6월 이후에나 트레이드가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다사다난한 4월은 15 10패라는 의외의 성적으로 순항하였다. 하지만 5월부터 거듭 연패를 기록하며 망조를 보였고 6월 18일 기준으로 31승 40패로 리그 꼴지를 기록하고 있다. 기존의 영입인 호세 발베르데, 카일 판스워스, 존 래넌은 시즌 중간에 방출될 정도로 팀에 별 도움이 안되었고, 타자쪽의 영입인 크리스 영이나 커티스 그랜더슨도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내고 있다. 다만 바톨로 콜론은 40이 넘은 나이에도 이닝소화 능력이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고, 신인 제이콥 디그롬의 깜짝 활약과 기존의 존 니스와 부상으로 뒤늦게 로테이션에 합류한 딜론 지도 짭짤한 활약을 보여주고 마쓰자카 다이스케도 이전과는 다르게 계투와 선발을 넘나들며 좋은 모습을 보이는 중이다. 마무리로 변신한 헨리 메히아는 마무리 투수로서 여태보지 못했던 안정감을 보이는 중 타자는 뛰어난 수비력으로 단숨에 주전으로 거듭나며 결국 2014 NL 골글 수상자인 후안 라가레스 다니엘 머피를 빼면 2할8푼도 못쳐주고 커티스 그랜더슨은 공갈포 그리고 데이비드 라이트를 포함한 주전 타자 대부분이 낮은 타율과 장타력도 별로 뛰어나지 못해 NL 하위권에 드는 득점력을 보여주고 있는것이 아직도 문제. 투수진은 타자진에 비하면 크게 나쁘지 않은편.[39]

79승 83패 (NL 공동 7위)
타/출/장 : .239(13)/.308(9)/.364(12), 득점 8위, 도루 7위, 홈런 9위
팀 평균자책점 3.49(6위), 선발 8위, 불펜 4위
팀 수비력 9위 (팬그래프 팀 필딩 UZR/150기준)

이 팀도 좋아지고 있다. 선발진이 강한 것이 장점인데 기존의 존 니스와 딜론 지, 여기에 잭 휠러가 풀타임 선발로 첫 시즌을 잘 소화해 냈다. 무엇보다도 신인 제이콥 디그롬까지 터진 게 고무적이다. 라파엘 몬테로도 시즌 끝무렵에 선발 수업을 받았고, 2015 시즌 맷 하비도 돌아오면 선발은 젊고 질과 양 모두 충분하다. 튼튼한 선발진이 예상되었던 바라면 불펜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토레스, 쥬리스 파밀리아, 블랙 등이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마무리 헨리 메히아도 선발에서 마무리로 돌아간 이후로는 좋은 모습을 보였다. 다만 멤버들 다수의 경험이 적다는 것은 잠재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타력도 나아졌다. 아이크 데이비스를 보내고 주전 1루수로 낙점받은 루카스 두다가 30홈런 92타점으로 빛났고 다니엘 머피는 수비가 부족하긴 해도 컨택 장타 주루 두루 갖춘 플러스 플러스 공격력의 2루수로서 꾸준한 모습을 보였다. 수비 괴물 중견수 후안 라가레스는 공격에서도 한단계 더 나아갔다. 새로운 주전포수 트래비스 다노 역시 새로운 공격형 포수의 등장을 알렸다. 문제점은 커티스 그랜더슨이 몸값에 비해 아쉬운 활약을 했고언제까지 외야FA잔혹사가 이어질지, 유격수 루벤 테하다가 분전했지만 역시 강팀 유격수로는 조금 아쉬우며, 좌익수 자리는 사실상 마땅한 주전감이 없었다는 것. 그리고 팀의 코어인 데이빗 라이트 역시 다시금 부진한 시즌을 보냈다. 워싱턴 내셔널스 외에 같은 지구 팀들이 헤매는 중이기도 하고, 맷 하비만 건강하게 돌아오면 2015 시즌 당장 돌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 다만 좌익수는 반드시 보강해야 한다. 유격수도 보강하면 더 좋다. 이닝소화력은 아직 여전한 바톨로 콜론을 트레이드하거나, 아니면 다른 선발자원을 트레이드해서 좌익수와 유격수를 보강하는 트레이드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특히 대형 유격수와 좌익수를 보유했지만 투수진이 후달리는 어느 산동네 팀이 많이 언급되는 중.

6. 드디어 찾아온 전성기

6.1. 2015년

뉴욕 메츠/2015년 문서 참조.

6.2. 2016년

뉴욕 메츠/2016년 문서 참조.

7. 돌아온 어메이징 메츠

7.1. 2017년

뉴욕 메츠/2017년 문서 참조.

7.2. 2018년

뉴욕 메츠/2018년 문서 참조.

7.3. 2019년

뉴욕 메츠/2019년 문서 참조.

7.4. 2020년

뉴욕 메츠/2020년 문서 참조.

8. 스티브 코헨의 등장

이후 메츠는 조지 스타인브레너도 기겁할 만한 투자의 본좌 스티브 코헨이 구단주로 등장하며 역사에 남을 돈지랄을 하는 중이다. 코헨은 이와 같은 대규모 투자에 대해 현재 팀의 팜 상태가 좋지 않아 팜 시스템이 정립되고 안정될 때까지 팀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투자하고 있는 것이라 밝혔다. 또한 야구를 모르는 사람도 뉴욕 양키스를 알고 양키스 모자를 쓰는 것과 같이 양키스가 사실상 뉴욕의 상징이 된 것처럼 메츠도 야구 구단을 넘어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잡기를 원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를 위해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한 슈퍼볼 중간 광고에 돈을 때려박으며 메츠 광고를 집어넣은 것으로 보인다.[40]

8.1. 2021년

뉴욕 메츠/2021년 문서 참조.

8.2. 2022년

뉴욕 메츠/2022년 문서 참조.

8.3. 2023년

뉴욕 메츠/2023년 문서 참조.

8.4. 2024년

뉴욕 메츠/2024년 문서 참조.

8.5. 2025년

지난 시즌 NL 챔피언십서 패배했으나 결과가 좋은 리툴링을 통해 대권가도 가능성을 본 메츠는 소토 영입에 뛰어들었고 코헨은 소토에게 최고가를 부른 구단보다 5M을 더 주겠다고 공언하였다. 그렇게 소토를 15년 765M 디퍼 없고 5년 뒤 옵트 아웃 이라는 파격적인 대우로 영입에 성공하며 우승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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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셔널 리그는 아메리칸 리그보다 20년 앞서 출범했으며 그래서 한동안 내셔널 리그가 신참인 아메리칸 리그를 깔보는 풍조가 있었다. 지금도 미국 야구 속어로 내셔널 리그는 유서깊은 고참들의 리그라는 뜻으로 시니어 서킷(Senior Circuit), 아메리칸 리그는 급작스레 모인 신입 듣보잡들이 모인 리그라는 뜻의 주니어 서킷(Junior Circuit)이라는 용어가 쓰이고 있다. [2] 그나마 점잖은 분들이 이렇게 생각했지, 다저스의 역사 항목에서 볼 수 있듯이 연고지 이전에 반발하는 여론이 장난이 아니었다. 연고지 이전을 주도한 다저스의 오말리 구단주에 대해서는 브루클린 팬들이 총으로 쏴죽여야 한다고 대놓고 씹고 다닐 정도였다. [3] 1880년부터 1887년까지 존재한 New York Metropolitans 에서 이름을 따온듯 [4] 참고로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중반에 자이언츠의 메인컬러인 검은색을 같이 쓰기도 했었다. 모자의 머리 부분이나 얼트 홈·원정 유니폼 바탕이 검은색이었다. 모자의 NYM 로고는 자이언츠와 비슷하다. [5] 다만 뉴욕시의 시기(市旗)를 보면 알겠지만 원래 청색과 주황색은 뉴욕시를 상징하는 색이다. 다저스와 자이언츠가 두 색을 나눠가진 것이라 보면 된다. 실제로 NBA 농구팀 뉴욕 닉스 역시 팀 컬러가 청색과 주황색이다. [6] 사실 양키스 역사에서 베이브 루스 영입 이후 전성기가 아닌 시점은 1960년대와 1980년대 중반~1994년까지 밖에 없긴 하지만. [7] 40승 120패, 51승 111패, 53승 109패를 세 시즌 연속 기록하고 31-64를 기록한 1965 시즌 도중 경질. [8] 메이저리그 역사상 4시즌 연속 세 자리수 패배를 당한 기록은 세 번이다. 그 중 하나가 메츠의 창단 이후 4년, 텍사스 레인저스의 창단 이후 4년, 1909~1912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이다. 5시즌 이상 연속으로 세 자리수 패배를 기록한 구단은 1938년부터 1942년까지 세 자리수 패배를 당한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유일하다. [9] 뉴욕 주민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양키스를 응원하는 팬들이 절대다수라 생각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사실 뉴욕 역시 보스턴 레드삭스 팬이 존재한다. 사실 이것도 빠가 까를 만든다의 한 좋은 보기인데 월드시리즈를 무려 20회 넘게 했으면서도 월드시리즈 아니면 안된다는 일부 빠들 때문에 진저리가 나 돌아선 경우도 있고 보스턴 지역에 살다가 이주한 이주거민들도 섞여있는 터라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약자에 대해 동정심이 생기는 건 인지상정이기도 하고. [10] 지금은 마리아노 리베라 켄 그리피 주니어 때문에 3위로 밀려났다. [11] 이 당시 볼티모어는 109승 53패를 거둬 전년도 월드시리즈 우승팀이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무려 19경기차로 따돌리고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여담으로 이 당시 가장 흥미를 이끌었던 팀이 바로 현 텍사스 레인저스의 전신인 워싱턴 세네터스였는데 86승 76패를 기록, 1961년 메이저리그 신생팀으로 합류한 이후 선보였던 첫 위닝 시즌이었고 이때의 세네터스 감독이 바로 현재도 깨지지 않는 한시즌 4할 타율기록을 보유한 테드 윌리엄스였다. [12] 다만 타선은 비교가 안됐지만....투수력만큼은 25승 2.21의 톰 시버와 17승 2.28의 제리 쿠즈만등을 앞세운 메츠가 좀 더 낫다는 평가였다. [13] 한가지 아이러니한 점이라면, 1986년이 메츠의 두 번째로 월드 시리즈 우승을 거머쥔 해인데, 이 해의 월드시리즈가 바로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메츠의 대결이었다는 점. [14] 뉴욕 메츠가 1980년 드래프트에서 미래의 올스타급 외야수라면서 확신에 차서 선택했던게 바로 대릴 스트로베리 빌리 빈이었다. 당시 대릴 스트로베리는 1픽 그리고 빌리 빈은 23픽. 그러나 빌리 빈은 선수로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15] 레드삭스에 톰 시버가 있었던 것은 맞지만, 월드시리즈에 출전하지는 않았다. [16] 여기에 레드삭스 팬들이 고혈압을 일으킬만한 일화가 있는데 당시 빌 버크너는 경기를 뛸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이때 버크너는 발목부상등 여러가지 부상을 당한 처지라 1루수로 데이브 스테이플튼을 기용했었는데 당시 감독이던 존 맥나매라가 통 크게 쏘시겠다고 느닷없이 버크너를 기용한 것. 이것은 맥나매라 감독이 저지른 삽질중 하나다. [17] 근데 이 시기는 베니테즈가 리그 최고의 마무리로 군림하던 때였다. [18] 단장이 갈려나간 2011년부터는 리빌딩이 시작되었으나 2011-2013년은 팀 사정이 여전히 많이 좋지 않았기에 한데 묶는다. [19] 2001년부터 2005년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떠나기 전까지 주장을 맡았다. [20] 근데 정작 에이스인 마이크 햄튼은 콜로라도에 뺏겼다. 그 결과는.... [21] 카즈미어는 탬파베이를 나가서는 부진했지만 탬파베이에서 5년간 53승을 올린 준수한 선발이 되었다. 반면 잠브라노는 메츠에서 10승 14패. 못 고쳤다. [22] 메츠의 팬덤이 집중된 퀸즈와 브루클린 등은 도미니카 공화국, 푸에르토리코 등에서 온 히스패닉 이민자들이 많은 곳이다. [23] 물론 이 시즌만 그렇다. 이후로 벨트란은 각성하고 마르티네즈는 부상으로 골골 거리지만... 적어도 이 시즌 만큼은 벨트란이 먹튀, 마르티네즈가 성공적인 영입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24] 미국 진출 이전에는 오릭스 블루웨이브에서 이치로와 함께 외야의 핵으로 뛰던 선수였다. 카즈에서는 붙박이 주전까지는 아니지만 쏠쏠한 대타, 대수비요원을 거쳐 꽤 많은 출장경기수를 보장받았고 찬스에 강한 면모를 보이며 처음 진출했을때의 기대치에 비해 좋은 성적을 거뒀다. [25] 뭐 결과적으로는 메츠에게 있어서 신의 한수가 되긴 했지만. [26] 정확히 0.1이닝 동안 8실점 했다.... [27] 뛰어난 운동능력으로 탑 유망주로 각광받았지만 지랄맞은 멘탈이 문제가 되어 결국 대성하지 못했다. 결국 일본프로야구의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늦게나마 재능을 꽃피우는가 했으나 한 해 반짝 활약을 보인 뒤 그곳에서도 먹튀화. [28] 미네소타 트윈스에 대가로 카를로스 고메즈, 퍼펙트 사나이 필립 험버 외 쩌리 투수 2명을 준다. [29] 엔디 차베즈, 애런 헤일먼, 투수 제이슨 바르가스와 3명의 마이너리거로 퍼츠와 중견수 제레미 리드[41], 릴리버 션 그린을 받았고, 와후네에게는 조 스미스를 줌. [30] 베스트 9중 데이비드 라이트를 제외한 8명과 에이스 1선발인 요한 산타나 및 마이크 펠프리 등 로테이션의 반이 '동시에' DL에 있기도 했다(...) [31] 2009년 총 20명의 선수가 DL에 올랐는데 데이비드 라이트, 존 메인, 존 니스, 페르난도 니에베, J.J. 퍼츠, 빌리 와그너, 브라이언 슈나이더, 카를로스 델가도, 앙헬 파간, 개리 쉐필드, 올리버 페레즈, 라이언 처치, 라몬 마르티네즈, 호세 레예스, 알렉스 코라, 카를로스 벨트란, 페르난도 마르티네즈.. [32] 데이비드 라이트, 다니엘 머피, 루이스 카스티요. [33] 근데 사기를 '당했다'고는 하지만 윌폰은 메이도프의 폰지 사기 행각을 묵인하고 투자자들을 끌어들인 혐의로 소송도 당했다... [34] 특히나 후자의 사건은 120년이 넘어가는 MLB 역사상에서도 단 세 번밖에 나오지 않은 진기록인 끝내기 무보살 삼중살이다. [35] 테오 엡스타인이 2004년 우승 청부사들 불러모아서 월드 시리즈 우승을 했기 때문에 그 이후 자신의 재량권을 가지고 레드삭스를 운영했던 예가 있다. [36] 하지만 타격왕 경쟁자이던 라이언 브론 바이오제너시스 스캔들이 폭로되며 약쟁이였던 것이 밝혀지자 이 졸렬한 타율관리도 나름의 재평가(?)를 받았다. [37] 2019년 현재까지 사상 유일의 너클볼러 사이영이다. [38] 포수 조쉬 톨레, 마이크 닉캐스를 보내고 트래비스 다노, 노아 신더가드, 윌머 베세라, 베테랑 포수인 존 벅. [39] 사실 투수진은 타자진에 비해 준수한 편이다. 조너선 니스, 잭 윌러, 그리고 올 시즌 무서운 신인으로 돌풍을 일으킨 재이컵 데그롬등 타팀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수준이다. 여기에 수술을 받고 재활중인 맷 하비까지 복귀하면 그야말로 남부럽지않는 선발진을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불펜의 보강과 타자진 강화인데 데이비드 라이트가 노장으로 변해가는 중이라 이를 보완할 타자들의 수급이 당면과제가 될 전망이다. [40] 뉴욕 근교 지역 한정으로만 볼 수 있는 광고라고 한다.


[41] 빌 버베이시가 애지중지하던 탑 외야수 유망주였으나 결국 실패로 끝났다. 참고로 시애틀이 외야 유망주를 저울질하다 리드를 택하면서 다른 팀으로 버린 선수가 추신수 애덤 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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