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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0 20:27:36

스캇 롤렌

스캇 롤렌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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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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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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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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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코니 맥 지미 폭스 레프티 그로브 알 시몬스 미키 코크런
지미 다익스 에디 플랭크 루브 워델 에디 콜린스 월리 모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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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 샨츠 에디 주스트 에디 롬멜 페리스 페인 빙 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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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필리스
로빈 로버츠 리치 애시번 척 클라인 그로버 클리블랜드 알렉산더 델 에니스
짐 버닝 에드 델라한티 사이 윌리엄스 그래니 햄너 폴 오웬스
스티브 칼튼 마이크 슈미트 래리 보와 크리스 쇼트 커트 시몬스
딕 앨런 윌리 존스 샘 톰슨 자니 캘리슨 그렉 루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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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칼라스 대런 돌튼 존 크럭 마이크 리버설 커트 실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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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 아브레우 매니 트리요 베이크 맥브라이드 론 리드 룰리 카펜터
존 퀸 스캇 롤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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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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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보텀리 켄 보이어 루 브록 잭 벅 거시 부시
디지 딘 짐 에드몬즈 프랭키 프리시 밥 깁슨 칙 헤이피
제시 헤인스 화이티 허조그 로저스 혼스비 토니 라 루사 마티 마리온
윌리 맥기 조 메드윅 자니 마이즈 스탠 뮤지얼 브랜치 리키
레드 션다인스트 마이크 섀넌 에노스 슬로터 아지 스미스 빌리 사우스워스
브루스 수터 커트 플루드 밥 포쉬 조지 키셀 테드 시몬스
샘 브리든 크리스 카펜터 테리 무어 조 토레 페퍼 마틴
팀 맥카버 마크 맥과이어 해리 브러킨 빈스 콜먼 레이 랭포드
모트 쿠퍼 제이슨 이스링하우젠 스캇 롤렌 톰 허 존 튜더
빌 화이트 키스 에르난데스 찰스 코미스키 맷 홀리데이 훌리안 하비에르
맥스 레이니어 호세 오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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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LB 로고.svg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스캇롤렌HOF.png
스캇 롤렌
헌액 연도 2023년
헌액 방식 기자단 (BBWAA) 투표
투표 결과 76.3% (6회)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97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신인왕
토드 홀랜스워스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스캇 롤렌
( 필라델피아 필리스)
케리 우드
( 시카고 컵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98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3루수 부문 골드 글러브
켄 캐미니티
(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스캇 롤렌
( 필라델피아 필리스)
로빈 벤추라
( 뉴욕 메츠)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2000년 ~ 2004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3루수 부문 골드 글러브
로빈 벤추라
( 뉴욕 메츠)
스캇 롤렌
( 필라델피아 필리스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마이크 로웰
( 플로리다 말린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2006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3루수 부문 골드 글러브
마이크 로웰
( 플로리다 말린스)
스캇 롤렌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데이비드 라이트
( 뉴욕 메츠)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2010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3루수 부문 골드 글러브
라이언 짐머맨
( 워싱턴 내셔널스)
스캇 롤렌
( 신시내티 레즈)
플라시도 폴랑코
( 필라델피아 필리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200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3루수 부문 실버 슬러거
알버트 푸홀스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스캇 롤렌
( 필라델피아 필리스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마이크 로웰
( 플로리다 말린스)

필라델피아 필리스 등번호 6번
진 샬
(1995~1996)
스캇 롤렌
(1996)
더그 글랜빌
(1998~2002)
필라델피아 필리스 등번호 17번
데시 렐라포드
(1996)
스캇 롤렌
(1997~2002)
리드 브리그낙
(2014)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번호 16번
레이 랭크포드
(1990~2001)
스캇 롤렌
(2002)
이반 크루즈
(2002)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번호 27번
플라시도 폴랑코
(1998~2002)
스캇 롤렌
(2002~2007)
론 빌론
(2008)
토론토 블루제이스 등번호 33번
채드 허만센
(2004)
스캇 롤렌
(2008~2009)
조시 로니키
(2009)
신시내티 레즈 등번호 27번
드류 서튼
(2009)
스캇 롤렌
(2009~2012)
브레난 보세치
(2015)
}}} ||
파일:1000004019.jpg
스캇 롤렌
Scott Rolen
본명 스캇 브루스 롤렌
Scott Bruce Rolen
출생 1975년 4월 4일 ([age(1975-04-04)]세)
인디애나 주 에반스빌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재스퍼 고등학교
신체 193cm / 111kg
포지션 3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3년 드래프트 2라운드 (전체 46번, PHI)
소속팀 필라델피아 필리스 (1996~2002)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2002~2007)

토론토 블루제이스 (2008~2009)
신시내티 레즈 (2009~2012)

1. 개요2. 선수 경력
2.1. 필라델피아 필리스
2.1.1. 마이너리그 시절2.1.2. 1996 시즌2.1.3. 1997 시즌2.1.4. 1998 시즌2.1.5. 1999 시즌2.1.6. 2000 시즌2.1.7. 2001 시즌2.1.8. 2002 시즌
2.2.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2.2.1. 2002 시즌2.2.2. 2003 시즌2.2.3. 2004 시즌2.2.4. 2005 시즌2.2.5. 2006 시즌2.2.6. 2007 시즌
2.3. 토론토 블루제이스
2.3.1. 2008 시즌2.3.2. 2009 시즌
2.4. 신시내티 레즈
2.4.1. 2009 시즌2.4.2. 2010 시즌2.4.3. 2011 시즌2.4.4. 2012 시즌
3. 플레이 스타일4. 명예의 전당 입성
4.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5. 연도별 기록6. 여담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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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동했던 3루수로 현재 골드 글러브 16회 수상의 브룩스 로빈슨과 10회 수상의 마이크 슈미트, 놀란 아레나도에 이어 골드 글러브를 8회 수상해 역대 3루수 골드 글러브 수상 횟수 4위에 올라 있다.

2. 선수 경력

인디애나 주 에반스빌에서 태어나 재스퍼 고등학교에 진학한 롤렌은 고등학교 농구 코치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야구와 농구를 병행했으며 두 종목에서 모두 뚜렷한 두각을 나타냈다.

롤렌은 고등학교 농구팀의 주전 포인트 가드로 활동하면서 농구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줘 인디애나 주의 Mr. Basketball을 뽑는 투표에서 3위에 입성하기도 했다. 롤렌이 나온 학교가 소위 깡촌에 있는 학교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매우 대단한 일이었다.

한편 롤렌은 고등학교 야구팀의 에이스 투수이자 유격수로 활동하면서 야구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줘 인디애나 주의 Mr. Baseball에 뽑히기도 했다. 그러나 야구팀의 코치였던 테리 고버트는 롤렌의 어깨와 팔꿈치에 걸리는 피로를 고려해 고등학교 마지막 해에 그의 포지션을 3루수로 옮기게 했다.

롤렌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앨라배마 대학교 조지아 대학교에서 농구 장학금을 제시받았지만 그의 재능을 알아본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스카우트인 스캇 트르카가 롤렌의 부모님을 설득했고 롤렌 역시 야구에 대해 열정을 보이면서 자신의 진로로 야구를 택하게 되었다.

롤렌이 참가신청을 내었던 1993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에는 알렉스 로드리게스, 트롯 닉슨, 토리 헌터, 대런 드라이포트까지 대어들이 많았던 드래프트였다. 롤렌은 이 해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전체 46순위로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지명되었다.

2.1. 필라델피아 필리스

2.1.1. 마이너리그 시절

입단 이후 롤렌은 마이너 리그를 한 단계씩 차근차근 씹어먹으면서 올라갔다. 1994년 싱글A에서 야구선수로서 첫 풀타임 시즌을 보낸 롤렌은 .294 .362 .462 14홈런 72타점의 뛰어난 성적과 함께 코치들의 조언을 빠르게 흡수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탑 유망주로서 주목받게 되었고 이듬 해에도 하이A에서 주눅들지 않고 .290 .392 .487 10홈런 39타점이라는 성적을 낸 롤렌은 후반기에 더블A로 승격되었다.

1995년 후반기 더블A로 승격된 롤렌은 .289 .353 .447 3홈런 15타점을 기록했고 1996년에는 더블A에서 .361 .445 .591 9홈런 42타점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보이면서 트리플A로 승격되었다. 1996년 롤렌은 트리플A에서도 .274 .376 .411 2홈런 19타점의 성적을 내고 있었다.

2.1.2. 1996 시즌

1996년 7월 31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에서 메이저 리그로 콜업된 롤렌은 이후 꾸준한 기회를 부여받았지만 9월 7일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 중 상대 투수의 투구에 오른쪽 팔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고 시즌을 마감해 최종적으로 .254 .322 .400 4홈런 18타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부상으로 인해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한 롤렌은 아직 신인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2.1.3. 1997 시즌

1997년 메이저 리그에서 첫 풀타임 시즌을 맞이한 롤렌을 당시 필리스의 감독이었던 테리 프랑코나는 팀의 주전 3루수로 낙점했고 롤렌은 .283 .377 .469 21홈런 92타점이라는 화려한 성적과 함께 만장일치로 내셔널 리그 신인왕에 선정되었다. 이 해 아메리칸 리그에서도 만장일치로 신인왕이 선정되었는데 수상자는 노마 가르시아파라였다.

2.1.4. 1998 시즌

주전 3루수로 완벽하게 정착한 롤렌은 풀타임 2년차에 1998년 .290 .391 .532 31홈런 110타점을 기록하면서 팀의 간판 타자가 되었고 커리어 첫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다.

2.1.5. 1999 시즌

1999년에는 등 부상으로 50경기를 결장했음에도 .268 .368 .525 26홈런 77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핵심 멤버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2.1.6. 2000 시즌

2000년에도 롤렌은 .298 .370 .551 26홈런 89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중심 타자로 자리를 견고히 했다.

2.1.7. 2001 시즌

그 당시 필리스에서 롤렌은 팀의 현재이자 미래였다. 그러나 2001년부터 롤렌은 팀과 갈등을 빚게 된다. 당시 팀의 감독이었던 테리 프랑코나는 지금은 유명한 명장이지만 당시에 필리스의 감독을 맡던 시기에는 감독 경력이 부족한 초짜였고 결국 2000년 시즌 도중 해고당하게 된다. 이후 팀의 암흑기를 지탱해오던 커트 실링마저 팔아버리는 프런트를 본 롤렌은 팀에게 실망하게 되었다.

2001년 감독으로 부임해 온 래리 보와는 롤렌과 물과 기름처럼 다른 성격의 사람이었고 곧 롤렌과 갈등을 빚게 되었다. 보와는 시즌 초반 팀의 중심 타선에 있던 바비 어브레유와 롤렌이 부진하자 곧바로 그들을 비난했고 이에 롤렌도 지지않고 대들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을 본 필리건들은 롤렌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프런트에서도 롤렌을 공격했다. 에드 웨이드 단장의 선임 보좌관이었던 댈러스 그린이 지역 라디오에서 보와를 두둔하면서 롤렌을 깎아 내리는 발언을 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롤렌은 .289 .378 .498 25홈런 107타점이라는 훌륭한 성적을 보여줬다.

롤렌은 필리스의 운영에 대해 불만이 많았고 팀이 과연 우승할 생각이 있는 것인가라는 발언을 공식 석상에서 하기 시작했다. 이에 필리스는 롤렌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10년 140M의 대형 계약을 제시했지만 롤렌은 이를 거절했다.

필리스의 리빌딩 타이밍에도 롤렌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필리스는 롤렌을 중심으로 바비 어브레유, 팻 버렐, 지미 롤린스 같은 유망한 타자들로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었지만 투수진은 진짜 답이 없던 상황이었다. 즉 필리스는 투수진에 돈을 써야 했던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필리스는 2004년 시티즌스 뱅크 파크의 개장에 맞추어 리빌딩을 진행하고 있었고 1996년 데뷔한 롤렌은 데뷔 9년차가 되어서야 팀이 포스트시즌에 도전할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2.1.8. 2002 시즌

2002년 스프링 트레이닝 첫 날부터 롤렌은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구단의 운영을 비난했다. 이 인터뷰에서 롤렌은 (1) 사실 140M이라는 거액을 거절하는 바보는 어디 있겠나. (2) 그러나 나에게는 돈보다 승리가 중요하다. (3) 나에게 돈을 퍼주느라 다른 선수들을 영입하지 못한다면 이 팀은 절대 이길 수 없다. 라는 발언을 했다.

인터뷰가 있고 며칠 후 래리 보와는 롤렌에게 다가가 말다툼을 벌였는데 이 대화가 언론에게 노출되어 버렸고 곧 보와는 에드 웨이드 단장에게 롤렌을 트레이드 시킬 것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기 동안 .259 .358 .472 17홈런 66타점을 기록했고 커리어 첫 올스타에도 선정되는 등 롤렌은 자기 할 일을 하였다.

2.2.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파일:rolen.jpg
필리스가 롤렌을 트레이드 시장에 내놓았지만 FA까지 고작 반 년 남은 선수를 그 어떤 팀도 유망주를 주고 데려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심장마비로 에이스 데릴 카일을 잃었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자신들의 에이스에게 월드 시리즈 우승을 헌정하고 싶어했고 이에 월트 자케티 단장은 기존의 3루수였던 플라시도 폴랑코 마이크 팀린, 버드 스미스를 얹어 더그 니클과 롤렌을 데려오는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2.2.1. 2002 시즌

롤렌은 카디널스로 건너와 남은 경기 동안 .278 .354 .561 14홈런 44타점을 기록해 2002년을 .266 .357 .503 31홈런 110타점으로 마무리했다. 그러나 팀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게 덜미를 잡히면서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탈락했다.

카디널스로 건너올 당시 롤렌은 지속적인 등 부상으로 인해 배트 스피드가 줄어들면서 우려를 보이고 있었지만 카디널스에서 스윙 각도를 바꾸면서 다시 배트 스피드를 회복하게 되었다. 또한 인조 잔디를 사용하던 베테랑스 스타디움에서 천연 잔디를 사용하는 부시 스타디움으로 넘어오면서 부상 우려를 덜 수 있게 되었다.

2.2.2. 2003 시즌

오프 시즌 카디널스는 롤렌에게 8년 90M의 계약을 선사해주었고 롤렌 역시 .286 .382 .528 28홈런 104타점이라는 성적으로 팀의 기대에 보답해주었다.

2.2.3. 2004 시즌

2004년 카디널스의 타선은 그야말로 살인타선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수준이었다. 알버트 푸홀스를 중심으로 짐 에드몬즈, 에드가 렌테리아, 토니 워맥, 래리 워커, 레지 샌더스가 뭉쳐있던 카디널스의 타선에서 롤렌 역시 .314 .409 .598 34홈런 124타점을 기록하면서 살인타선에 한 몫을 보탰다. 그러나 팀은 월드 시리즈에서 밤비노의 저주를 깨려는 팀에게 패배하게 된다.

2.2.4. 2005 시즌

2005년 자신의 커리어 하이 시즌을 뒤로 했던 롤렌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의 경기에서 투수 땅볼을 친 뒤 1루로 전력 질주하고 있었는데 투수의 악송구를 받기 위해 1루 선상에 나와있던 빅초이와 부딫치게 된다. 어깨가 탈골된 롤렌은 시즌 중 복귀를 시도했으나 건강하게 복귀하지 못한 채 시즌을 마감하게 된다.

2.2.5. 2006 시즌

2006년 건강하게 복귀한 롤렌은 .296 .369 .518 22홈런 95타점이라는 훌륭한 성적을 보여주었으나 어깨 부상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롤렌은 이 시즌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를 끼는데 성공한다.

2.2.6. 2007 시즌

하지만 2007년 어깨 부상의 후유증으로 인해 커리어 로우를 보냈던 롤렌은 알버트 푸홀스과 토니 라 루사 감독과의 갈등, 라 루사 감독과 월트 자케티 단장간의 파워 게임 등 여러모로 악재가 겹치자 팀에 트레이드를 요청하게 되었다.

2.3. 토론토 블루제이스

2.3.1. 2008 시즌

트로이 글로스와 트레이드 되어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온 롤렌은 하필 인조 잔디를 쓰는 로저스 센터에서 뛰면서 계속 부상에 시달렸다. 2008년은 그렇게 부상으로 얼룩지며 완전히 말아먹었다.

2.3.2. 2009 시즌

그래도 2009년에는 부활하는 모습을 보여 가치가 웬만큼 오르는 모습을 보이자 시즌 중반에 에드윈 엔카나시온, 조시 로니키, 재크 스튜어트를 상대로 월트 자케티 단장이 있는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 되었다.

2.4. 신시내티 레즈

2.4.1. 2009 시즌

다시 돌아온 내셔널리그 중부지구에서 2009년에는 상대적으로 부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2.4.2. 2010 시즌

2010년에는 .285 .358 .497 20홈런 83타점을 기록하면서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조이 보토, 제이 브루스와 함께 신시내티 레즈의 지구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2.4.3. 2011 시즌

그러나 롤렌 역시 노쇠화를 피하지 못해 2011년에 커리어 로우 시즌을 보냈다.

2.4.4. 2012 시즌

2012년에도 노쇠화를 피하지 못하고 연이어 성적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토드 프레이저가 레즈의 3루수로 정착하게 되면서 은퇴를 선언했다.

이 시기 롤렌은 경기 외적으로도 보토에게 클럽하우스 리더의 모범을 보였다는 것, 그리고 프레이저의 수비를 개인적으로 훈련시키며 명품으로 만들었다는 것으로 팀에 기여했다.

3. 플레이 스타일

파일:external/lh6.googleusercontent.com/rolenmagic.gif

롤렌을 평가할 때 모두가 주목하게 되는 것이 바로 골드 글러브 8회 수상으로 증명된 수비력으로, 빠른 타구판단과 그에 대응하는 풋워크로 인한 무지막지하게 넓은 수비 범위에 훌륭한 핸들링과 강견이 더해진 롤렌의 3루 수비는 당대 최고로 평가 받았다. 놀란 아레나도 이전 메이저 리그 최고의 3루 수비수라고 하면 롤렌이나 아드리안 벨트레를 떠올리는 팬이 많았다.

하지만 롤렌은 수비뿐만 아니라 공격에서도 수준급의 장타력과 컨택 능력을 갖춘 전천후 3루수로 타율 3할은 단 두 번[1] 뿐이지만 통산 .281, .364 .490의 비율 스탯을 기록했고 2000안타, 500 2루타, 300홈런, 1200타점을 모두 기록한 역대 세 번째 3루수였다. 앞선 두 명은 다름아닌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조지 브렛 치퍼 존스이며 이들은 롤렌을 포함하여 모두 명예의 전당 입성자이다.
주루 능력도 젊었을 때는 괜찮았던지라 한시즌 두 자리 도루 정도는 해내곤 했지만 인조 잔디에서 뛴 후유증으로 인해 주력이 감소하게 되었다.

또한 롤렌의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자식들에게 종종 "뭔가를 잘했을 때 다른 이들에게 이를 알리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은 다 안다." 라고 누차 가르쳤는데,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롤렌 역시 겸손하고 우직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 실제로 롤렌과 같이 뛰어왔던 선수들과 감독들 모두 롤렌의 성실함과 진지함을 모두 높게 평가해왔다.

신인 때와 변함없이 베테랑이 된 이후에도 홈런을 치면 고개 숙이고 묵묵하게 베이스를 돌았고 클럽하우스에서도 다른 선수들의 모범이 되는 등 팀에 많은 도움이 된 선수로서 높게 평가 받는다.

4. 명예의 전당 입성

연도 득표율(%)
2018 10.2
2019 17.2
2020 35.3
2021 52.9
2022 63.2
2023 76.3
특유의 허슬 플레이로 인해 잦은 부상을 겪었어도 수준급의 장타력과 컨택 능력, 골드 글러브 8회 수상이라는 실적까지 갖춘 전천후 3루수였지만 누적이 아쉬운 탓에 잘 쳐춰야 다회 투표 입성~베테랑 위원회 입성이 예측되었다. 실제로 2018년 첫 해 투표에서 10.2%의 득표율에 그쳤고 다음 해에도 17.2%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세이버 스탯 덕분에 재평가가 이루어지며 지지도가 상승했고, 특히 젊은 팬들을 중심으로 온라인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중. 전성기에는 공수 겸장의 리그 정상급 3루수로 활약했으나 하필 스테로이드 시대를 관통한 탓에 임팩트가 다소 부족했는데, 이후 전성기 시절 8년 연속으로 wRC+ 120을 넘긴 꾸준함이 발굴되며 타격 평가도 올라갔다. 골드 글러브를 독식했을 정도로 현장 평가가 높았던 수비 역시 세이버 지표로 봐도 UZR, DRS 등에서 그 평가와 큰 차이 없는 S급 기록을 남겼다. 여기에 전성기에서 꺾여 준수하나 2% 부족한 기록을 남긴 2009년과 2010년에도 이 수비력 덕에 WAR이 4를 넘길 정도였고, 그 결과 누적 WAR이 bWAR 70.1 fWAR 69.9에 달한다. 보통 HoF 도전에 필요한 커트라인이 50, 입성을 위해서는 60은 필요하다고 본다면 롤렌은 이를 충분히 상회하는 것이다.

덕분에 첫 2년 간 20% 아래에 머무른 득표율이 2020년에 35.3%, 2021년에는 52.9%. 2022년에는 63.2%로 크게 뛰면서 6~7년차 입성이 거의 확실해졌다. 오히려 롤렌보다 득표율이 높은 선수 중, 입을 잘못 놀린 커트 실링이나 약을 빤 로저 클레멘스, 배리 본즈는 2022년이 본투표에서는 마지막 기회였으나 탈락하여 베테랑위원회의 구제를 기다려야 한다. 또 2020년까지만 해도 롤렌 앞에 있던 오마 비스켈은 전 부인과 구단 직원을 폭행 및 감독 시절 배트보이 성추행 건이라는 악재로 2021년에 오히려 득표율이 3%나 빠지며 롤렌 뒤에 있는 상황이다. 한편 위의 인물들과 함께 신입 약쟁이 후보인 알렉스 로드리게스 데이비드 오티즈 등에 대한 반발심리 때문에 득표율이 좀 더 상승한 점도 있다.[2]

결국 2023년 6번째 투표에서 76.3%의 득표율로 마침내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다음해인 2024년에 포지션이 겹치는 아드리안 벨트레가 입후보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적절한 때 입성한 셈.

동판에 새길 모자 로고에 관해서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WAR을 가장 많이 쌓아올린건 필라델피아 필리스이나 결별하면서 사이가 완전히 틀어져[3] 가능성이 아예 없었다. 그래서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가능성이 높았지만, 이쪽은 토니 라 루사 감독과의 극심한 갈등 끝에 블루제이스로 트레이드됐기 때문에 변수가 있었다. 일각에서는 아예 로고 없는 모자를 쓸 가능성도 제시했을 정도.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모자를 쓰고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4.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블랙잉크 그레이잉크 HOF 모니터 HOF 스탠다드
스캇 롤렌 0 27 99 40
HOF 입성자 평균 27 144 100 50
career WAR 7yr-peak WAR JAWS
스캇 롤렌 70.1 43.6 56.9
3루수 HOF 입성자 평균 68.3 43.0 55.7

5. 연도별 기록

파일:MLB 로고.svg 스캇 롤렌의 역대 MLB 기록
<rowcolor=#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96 PHI 37 146 33 7 0 4 10 18 0 13 27 .254 .322 .400 .722 -0.2 -0.3
1997 156 657 159 35 3 21 93 92 16 76 138 .283 .377 .469 .846 4.2 4.5
1998 160 711 174 45 4 31 120 110 14 93 141 .290 .391 .532 .923 7.0 6.7
1999 112 497 113 28 1 26 74 77 12 67 114 .268 .368 .525 .893 4.8 4.7
2000 128 541 144 32 6 26 88 89 8 51 99 .298 .370 .551 .920 4.6 4.5
2001 151 653 160 39 1 25 96 107 16 74 127 .289 .378 .498 .876 5.6 5.6
<rowcolor=#FFEF00>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2002 PHI/ STL 155 667 154 29 8 31 89 110 8 72 102 .266 .357 .503 .860 6.5 6.4
2003 STL 154 667 160 49 1 28 98 104 13 82 104 .286 .382 .528 .910 6.2 4.7
2004 142 593 157 32 4 34 109 124 4 72 92 .314 .409 .598 1.007 9.0 9.2
2005 56 223 46 12 1 5 28 28 1 25 28 .235 .323 .383 .706 1.1 1.6
2006 142 594 154 48 1 22 94 95 7 56 69 .296 .369 .518 .887 5.5 5.9
2007 112 441 104 24 2 8 55 58 5 37 56 .265 .331 .398 .729 2.4 1.8
<rowcolor=#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2008 TOR 115 467 107 30 3 11 58 50 5 46 71 .262 .349 .431 .780 2.7 3.4
<rowcolor=#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2009 TOR/ CIN 128 535 145 36 1 11 76 67 5 45 62 .305 .368 .455 .823 4.1 5.2
2010 CIN 133 537 134 34 3 20 66 83 1 50 82 .285 .358 .497 .854 4.6 4.1
2011 65 269 61 20 2 5 31 36 1 10 36 .242 .279 .397 .676 1.1 1.6
2012 92 330 72 17 2 8 26 39 2 30 62 .245 .318 .398 .716 0.8 0.6
MLB 통산
(17시즌)
2038 8518 2077 517 43 316 1211 1287 118 899 1410 .281 .364 .490 .855 69.9 70.1

6. 여담

7. 관련 문서



[1] 2004년 .314, 2009년 .305 [2] 문제는 저 약쟁이들 중 오티즈만 단독으로 입성에 성공했다. 비약물 선수들의 득표율은 둘째치고 같은 약물 복용자끼리도 표 차별이 이루어지며, 로드리게스의 득표율이 상대적으로 저조했기에 이는 결국 역대 최악의 HoF 투표로 욕을 먹은 것은 물론 HoF 투표의 신뢰도가 급전직하됐다. [3] 이쪽은 구단 뿐만 아니라 필리스 팬들하고도 완전히 척을 졌다. 필리스 팬들에게 롤렌은 J.D. 드류급 금지어. [4] 카디널스를 더러운 암캐...라고 디스하기도 했으며 2000년대 후반 들어 카디널스 팬들 사이에선 공적 1순위로 꼽힌다. 오죽하면 토니 라 루사 감독이 필립스에게 "카디널스 출신 애들이랑 자케티 단장한테 민망하지 않냐"면서 적당히 까라고 했을 정도. 롤렌 말고도 레즈에는 카디널스 출신 선수들이 굉장히 많으며 월트 자케티 단장도 카디널스 출신이다. [5] 영상에서는 롤렌이 껴안고 있다가 갑자기 배틀이 벌어지는데, 이건 롤렌이 싸움을 건게 아니라 카펜터를 껴안고 있다가 갑자기 뒤에서 자니 쿠에토가 펀치를 날린 것이다. 실제로 카펜터와 롤렌은 친한 사이이며 잘 보면 해설자가 오해를 하는 영상에서도 싸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카펜터와 함께 빠져나온다. [6] 다만 이 판정에 대한 보상판정 성격으로 제이 브루스가 풀카운트에서 볼넷을 골라 나가는 바람에 퍼펙트 게임이 무산되었다. 그나마 노히트 노런으로 끝난 게 다행. 그런데 필리스 팬덤에서는 두번째 퍼펙트게임을 무산시킨 원흉으로 롤렌을 조리돌림했다. [7] 물론 어틀리가 좀 더 빨리 풀타임 2루수로 터졌을 지는 모르지만 만약 좀 더 일찍 터졌다면 본인의 HOF 입성에 가장 큰 걸림돌인 누적 문제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었을 것이다.....고는 하지만 야만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