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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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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제14대 대통령 김영삼의 어록을 모아놓은 문서.

2. 목록

어제 한잠도 자지 못하고 여러가지 정신적으로 피로합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 김영삼이가 목숨이 끊어지지 않는 한[1] 바른 길, 정의에 입각한 일, 진리를 위한 길, 자유를 위하는 일이면 싸우렵니다. 싸우다가 쓰러질지언정 싸우렵니다.
1969년 6월 23일 초산테러 당시 국회연설 中
이 정권은 피를 보고 머지 않아서 반드시 쓰러질 것이다, 쓰러지는 방법도 비참하게 쓰러질 것이다.
1979년 봄 YH 사건
나를 해외로 보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나를 시체로 만든 뒤에 해외로 부치면 된다.
1983년 5월 29일, 5.18 민주화운동 3주기 단식농성 후
날 감금할 수는 있어. 힘으로. 이런 식으로 힘으로 막을 수는 있어. 그러나 내가 가려고 하는 민주주의의 길은 말이야. 내 양심은, 마음은 전두환이가 뺏지를 못해! 영상
1985년 2월 8일 상도동 자택 앞에서[3]
헵상은 겔렐되었다. (협상은 결렬되었다.)
1987년 6월 24일, 6월 항쟁이 한창이던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과 회담을 가진 후 했던 말. 김영삼이 어떤 인물인가를 단적으로 가장 잘 보여준 말이다.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였던 김영삼은 전두환과 회담을 가지며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후 문을 박차고 나오며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로 저런 말을 했다고. 이에 대해선 유시민 작가의 '나의 한국현대사'에 나와 있다.
선거혁명을 통한 민주화가 내 지론이었으나, 이 정권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젯밤과 오늘 내내 생각한 끝에 이 정권을 완전히 타도할 것을 결심했다. 나는 박정희 정권을 타도시킨 사람이다. 기필코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타도할 것이다.
1987년 대통령 선거 직후 기자회견에서
아주 악재만 아니면, 정치인이 언론에 다양하게 노출되는 게 나쁜 일만은 아니다.
야당 총재 시절, 여권에서 일부 언론을 통해 공격을 시도하자 했던 말. 여기에 그치지 않고 기자들과 자주 모임을 가지면서 이야기를 화통하게 경청, 이들 대부분을 우군으로 끌어들이는 수완을 발휘한다. 훗날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장이 "YS를 대통령으로 만든 건 언론"(16:24초부터)이라 평했을만큼 YS의 친화력이 십분 발휘된 것.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
3당 합당 이후
오늘 탄생되는 정부는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불타는 열망과 거룩한 희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제14대 대통령 취임사 中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이념이나 어떤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제14대 대통령 취임사 中
우리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먼저 깨끗해져야 한다. 우리가 먼저 고통을 기꺼이 감당해야 한다. 나는 대통령인 나 자신이 솔선해야 한다는 각오 아래 오늘 나의 재산을 공개하는 바이다.
1993년 첫 국무회의 中, 이후 공직자 재산공개 시행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
1993년  하나회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군부가 " 무신의 난이 왜 일어났는 줄 아는가"라며 반발한 것에 대한 대답.
이 시간 이후 모든 금융거래는 실명으로만 이루어집니다. 금융실명제가 실시되지 않고는 이 땅의 부정부패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가 없습니다.
금융실명제 긴급 명령 담화문 中
우째 이런 일이...
1994년, 자신의 최측근인 최형우 전 내무장관의 아들이 대입 부정입학 논란에 휘말리자 남긴 말.
그래서 이번에 그 버르장머리를 기어이 고쳐놔야겠다.
1995년 한중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 일본 정치인의 거듭된 망언을 언급하며 영상 이에 일본에서는 '버르장머리'라는 한국어 단어 자체가 해석이 안 돼서 당황했었다는 후문이 있다.
지난 시대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국민적 여망을 실천에 옮기고 있습니다.
1995년 12월, 전두환, 노태우 수사 중
우리는 북한의 어려움을 진정으로 돕는 길을 찾아내고 실천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첫째 북한의 식량난을 구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실질 협력이 필요합니다.나는 북한 당국이 민족의 앞날은 물론 스스로를 위해서도 개방과 개혁의 역사적 대세에 지체없이 합류할 것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1997넌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김영삼 대통령 연설[4]
영광의 시간은 짧았지만, 고통과 고뇌의 시간은 길었습니다.
1998년 2월, 퇴임사 中
박정희 정권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 남았으며 결코 미화돼서는 안 된다.
1999년 5월 17일, 4.19 국립묘지 참배 이후 인터뷰[5]
경력도, 사상도 다른데도 대통령 후보가 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단일화는 100% 될 수 없다. 혹시 되더라도 문제가 안 된다. 경험도 없는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길 수도 없다.
2002년 11월 21일, 노무현 정몽준의 단일화 시도를 비판하며 #[6]
나도 예전에 단식을 해봤지만, 굶으면 죽는 거거든요. 확실히.
2003년 12월 3일, 특검법 거부에 항의하며 단식하던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북한동포 여러분, 여러분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힘을 모아 북한 정권을 타도하고 북한 땅에 민주주의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싸웁시다. 인권과 민주주의가 보장되지 않은 사회는 오래가는 법이 없습니다. 이런 사회의 지도부는 타도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싸우는 길 밖에 없습니다. 자유는 목숨보다 귀중하며 자유를 위해 싸울때만 자유가 찾아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2005년 1월 4일, 자유북한방송 신년메시지 #
"다 죽어가는 김정일 독재정권을 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지금까지 연명시킨 것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저지른 역사적 죄악이다."
2006년 발언. #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 함께 ‘먼저 인간이 되라’고 말해야 한다.
2007년 11월 23일, 이회창의 대선 출마를 비판하며 #
만약 내가 하나회를 깨끗이 청산하지 않았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했을 것이다.
2008년 우석대학교 초청 강연 中[7]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야. 지금도 몇 십명씩 데리고 산에 다니고 골프치러 다니는데 그 돈이 어디서 나오겠어요.
2009년 4월, SBS와의 인터뷰에서 전두환 29만원 발언을 비판하며 #
김대중 대통령하고 나하고 관계는 6대 국회부터 동지적인 관계에 있었고, 오랜 동지적인 관계로 있었지만, 경쟁 관계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애증이 교차하는 관계입니다. (기자들이 두 분이 화해한 것으로 받아들여도 되냐고 묻자) 아 그렇게 봐도 좋죠. 이제 그럴 때가 된 것도 아닙니까?
2009년 8월 10일, 병상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문병하며 남긴 인터뷰. 다만 안타깝게도 당시 DJ는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기 때문에 직접적인 대화는 못했고, 이희호 여사와 환담을 나눴다고 한다. 이것이 생전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8]
수많은 국민들이 유신독재의 무자비한 탄압과 고문에 의해 비명에 죽어갔다. 18년 장기독재를 한 박정희가 이 나라 군사독재 정권의 원흉이다.
2011년 1월 20일, 민주동지회 신년회에서의 발언 中 #
이집트 시민혁명의 승리를 민주주의와 자유를 사랑하는 세계인들과 함께 환영한다. 독재정권은 반드시 붕괴된다는 역사의 진리를 거듭 확인시켜줬다. (중략) 사랑하는 조국에 군사쿠데타라는 죄악의 씨를 뿌린 원흉이 바로 박정희 육군 소장이다. 이 후 일제 치하 36년에 버금갈 만한 32년 동안 군사정권이 이 나라를 지배했고, 독재자 박정희는 18년간 장기 집권하며 국민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2011년 2월 13일, 이집트 대통령 호스니 무바라크의 퇴진 축하 성명 中
홍준표 대표, 아유 축하해요. 참 장해요. 압도적으로 이기고 말이야. 내가 역시 공천 잘했단 말이야!
2011년 7월 6일, 홍준표 신임 지도부의 예방을 받으며 #
박근혜는 별 거 아니다. 아주 칠푼이다.
2012년 7월 11일, 김문수 새누리당 경선후보를 예방한 자리에서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돼서 세계 역사에 자랑스런 여성 대통령이 됐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
2013년 1월 23일, 민주동지회 신년회에서의 발언 中 # 경선 기간에는 둘이 각을 세웠지만, 대선 본투표에 들어가자 표면상으로는 박근혜를 지지했다고 알려져 있다.[9]
통합과 화합.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2014년 10월, 서울대학교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아들 김현철에게 남긴 사실상의 유언.

2.1. 제14대 대통령 취임사

친애하는 7천만 국내외 동포 여러분, 노태우 대통령을 비롯한 전직 대통령,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내외 귀빈 여러분.

오늘 우리는 그렇게도 애타게 바라던 문민 민주주의의 시대를 열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오늘을 맞이하기 위해 30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마침내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를 이 땅에 세웠습니다. 오늘 탄생되는 정부는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불타는 열망과 거룩한 희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저 자신의 열정과 고난이 배어 있는 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오늘 저는 벅찬 감회를 억누를 길이 없습니다. 우리 국민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저는 국민 여러분들에게 뜨거운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또한 험난했던 민주화의 도정에서 오늘을 보지 못하고, 애석하게 먼저 가신 분들의 숭고한 희생 앞에 국민과 더불어 머리를 숙입니다.

국민 여러분. 저는 14대 대통령 취임에 즈음하여, 새로운 조국건설에 대한 시대적 소명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 이 땅은 지층 깊은 곳으로부터 봄기운이 약동하고 있습니다. 지난날 우리 민족에게는 번성했던 여름도, 움츠렸던 겨울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민족진운의 새봄이 열리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결단, 새로운 출발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신한국 창조의 꿈을 가슴 깊이 품고 있습니다. 신한국은 보다 자유롭고 성숙한 민주사회입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입니다. 더불어 풍요롭게 사는 공동체입니다. 문화의 삶, 인간의 품위가 존중되는 나라입니다. 갈라진 민족이 하나되어 평화롭게 사는 통일조국입니다. 새로운 문명의 중심에 우뚝 서서,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진보에 기여하는 나라입니다. 누구나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는 사회, 우리 후손들이 이 땅에 태어난 것을 자랑으로 여길 수 있는 나라, 그것이 바로 신한국입니다. 우리 모두 이 꿈을 가집시다. 우리는 일찍이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에서 기적을 이루어 낸 민족입니다. 우리 다시 세계를 향해 힘차게 웅비해 나갑시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그러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여건은 우리에게 결코 유리하지만은 않습니다. 냉전시대의 종식과 함께 세계는 실리에 따라 적과 동지가 뒤바뀌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경제전쟁, 기술전쟁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변화하는 세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선진국의 문턱에서 주저앉고 말 것입니다. 도약하지 않으면 낙오할 것입니다. 그것은 엄숙한 민족생존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신한국을 향해 달릴 수 있는 체력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병을 앓고 있습니다. 한국병을 앓고 있습니다. 한때 세계인의 부러움을 샀던 우리의 근면성과 창의성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전도된 가치관으로 우리 사회는 흔들리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국민은 자신감을 잃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위기가 있다면 그것은 외부의 도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안에 번지고 있는 이 정신적 패배주의입니다.

이대로는 안됩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좌절과 침체를 딛고 용기와 희망의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폐쇄와 경직에서 개방과 활력의 시대로, 갈등과 대립에서 대화와 협력의 시대로 바꾸어야 합니다. 불신의 사회에서 신뢰의 사회로, 나만을 앞세우는 사회에서 더불어 사는 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말하는 변화와 개혁의 방향입니다. 제도만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과 행동양식까지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변화와 개혁을 회피한다면, 우리는 역사로부터 외면당할 것입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개혁은 먼저 세 가지 당면과제의 실천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첫째는 부정부패의 척결입니다. 둘째는 경제를 살리는 일입니다. 셋째는 국가기강을 바로 잡는 일입니다.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는 안으로 나라를 좀먹는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부정부패의 척결에는 성역이 있을 수 없습니다. 결코 성역은 없을 것입니다. 단호하게 끊을 것은 끊고, 도려낼 것은 도려내야 합니다. 이제 곧 위로부터의 개혁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러나 국민 모두가 스스로 깨끗해지려는 노력없이 부정부패는 근절되지 않습니다. 깨끗한 사회의 실현은 국민 여러분의 손에 의해서만 완성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경제의 활력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정부는 규제와 보호 대신에 자율과 경쟁을 보장할 것입니다. 민간의 창의를 존중할 것입니다. 정부가 먼저 허리띠를 졸라맬 것입니다. 국민은 더 절약하고 더 저축해야 합니다. 사치와 낭비는 추방돼야 합니다. 근로자는 더 열심히 땀 흘려 일해야 합니다. 기업은 대담한 기술혁신으로 국제경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정부와 국민, 근로자와 기업, 모두가 신바람나게 일함으로써만 우리는 경제를 살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주창하는 신경제입니다.

국민 여러분. 흐트러지고 있는 국가기강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부정한 수단으로 권력이 생길 때, 국가의 정통성이 유린되고 법질서가 무너지게 됩니다. 목적을 위해서 절차가 무시되는 편법주의가 판을 치게 됩니다. 이 땅에 다시는 정치적 밤은 없을 것입니다. 또 우리 사회에 있어야 할 권위를 다시 찾아야 합니다. 우리의 자유는 공동체를 위한 자유여야 합니다. 백범 선생의 말처럼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꽃을 심는 자유여야 합니다. 땅에 떨어진 도덕을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의 교육은 미래를 준비하는 과학기술교육과 함께 사람다운 사람,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인간교육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교육입니다.

국민 여러분. 오늘부터 정부가 달라질 것입니다. 이제 청와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국가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일터가 될 것입니다. 청와대는 바로 국민 여러분의 친근한 이웃이 될 것입니다. 저는 국민이 일하는 현장, 기쁨과 고통이 있는 현장에 함께 있을 것입니다. 국민과 함께 기뻐하고, 함께 아파할 것입니다. 기쁨은 나눌수록 커지고, 고통은 나눌수록 작아지기 때문입니다.

정치 역시 달라져야 합니다. 정치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국민에게 희망과 행복을 안겨 주는 생활정치여야 합니다. 국민의 불편을 덜어 주는 정치, 국민의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정치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정부가 달라지고, 정치가 달라질 때, 변화와 개혁을 통한 살아 있는 안정이 이 땅에 자리잡게 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정의와 화해로 새시대의 문을 활짝 열어 나갑시다. 지난날 우리는 계층으로 찢기우고, 지역으로 대립되고, 세대로 갈라지고, 이념으로 분열되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벽은 허물어야 합니다. 한은 풀어야만 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그늘 속에 살아온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들은 위로받아야 합니다. 많이 가진 사람은 더 많이 양보해야 합니다. 힘있는 사람은 더 큰 것을 양보해야 합니다. 너무나 성급하게 내 몫만을 요구하지 맙시다. 먼저 우리 공동체 전체를 생각합시다. 그리고 우리가 더 많은 몫을 갖기 위하여 더 큰 떡을 만듭시다.

7천만 국내외 동포 여러분. 저는 역사와 민족이 저에게 맡겨준 책무를 다하여 민족의 화해와 통일에 전심전력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상적인 통일 지상주의가 아닙니다. 통일에 대한 국민적 합의입니다. 김일성 주석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진심으로 서로 협력할 자세를 갖추지 않으면 안됩니다.

세계는 대결이 아니라 평화와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다른 민족과 국가 사이에도 다양한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이념이나 어떤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김 주석이 참으로 민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그리고 남북한 동포의 진정한 화해와 통일을 원한다면, 이를 논의하기 위해 우리는 언제 어디서라도 만날 수 있습니다. 따뜻한 봄날 한라산 기슭에서도 좋고, 여름날 백두산 천지 못가에서도 좋습니다. 거기서 가슴을 터놓고 민족의 장래를 의논해 봅시다. 그때 우리는 같은 민족이라는 원점에 서서 모든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 도처에서 민족의 긍지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5백만 해외 동포 여러분, 금세기안에 조국은 통일되어, 자유와 평화의 고향땅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국내외에서 힘을 합하여 세계 속에서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자랑스런 한민족 시대를 열어 나갑시다.

국민 여러분. 신한국의 창조는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많은 신한국인이 참석했습니다. 땀흘려 일하는 근로자, 새로운 작물로 소득을 올리는 농민,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 연구에 몰두하는 과학도, 시장개척에 동분서주하는 회사원, 신제품 개발에 성공한 중소 기업인, 그리고 밤새워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이 자리에는 또 묵묵히 국민에게 봉사하는 공직자도 있습니다.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야말로 신한국 창조의 주역이요 주인입니다.

특히 이 땅의 젊은이 여러분. 세계를, 그리고 미래를 바라봅시다. 방관에서 참여로, 비난에서 창조의 길로 나갑시다. 미래는 여러분의 것이며, 신한국은 바로 여러분의 세상입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 모두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가집시다. 신한국을 창조합시다. 신한국의 창조는 대통령 한 사람이나 정부의 힘만으로 이룩될 수 없습니다. 신한국으로 가는 길에는 너와 내가 없습니다. 오직 우리만이 있을 뿐입니다. 모두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러나 신한국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인내와 시간이 필요합니다. 눈물과 땀이 필요합니다. 고통이 따릅니다. 우리 다 함께 고통을 분담합시다. 우리는 해낼 수 있습니다. 반드시 해내야만 합니다.

자, 우리 모두 희망과 꿈을 안고 새롭게 출발합시다.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힘차게 함께 달려갑시다.

감사합니다.
1993년 2월 25일 대한민국 대통령 김영삼


[1] 연설을 들어보면 '끊어지는 한'으로 들린다. [2] 원본을 들어보면 비틀지라도베틀지라도로 들린다. 김영삼 특유의 발음. [3] 이 날은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 이후 미국의 구명으로 망명 중이던 김대중이 귀국하는 날이었고, 김영삼은 김포국제공항으로 김대중을 마중 나가려 했으나 이미 경찰 병력이 집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 앞에서 경찰들에게 일갈하던 중 나온 명언이다. [4] 김영삼 대통령, 한반도 평화와 남북 협력의 4대 원칙 제시 1997.8.15 mbc 뉴스 [5] 이는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박정희기념관 건립 계획을 발표한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에 박근혜(당시 한나라당 부총재)는 반박성명을 내고 "자신이 한 일은 모두 옳고, 다른 사람이 한 일은 모두 그르다는 반사회적인 성격"이라며 YS를 맹비난했다. [6] 노무현과 정몽준은 결국 후보 단일화에 성공했고, 단일화 후보가 된 노무현은 1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YS의 정치적인 판단이 빗나간 몇 안 되는 케이스 중 하나다. [7] 실제로 하나회 숙청을 통해 군부가 다시 정권을 장악하는 것을 차단했기 때문에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하나회 숙청은 김영삼의 최고의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8] YS와 DJ는 1987년 대선 당시 단일화 과정에서 갈라선 이후 줄곧 반목하며 지내왔다. 특히 국민의 정부 이후에는 YS가 DJ의 정치적 행보에 끊임없이 반기를 들며 공격했기에, 두 사람의 사이는 말년까지 회복되지 못했다. [9] 다만 선거기간동안 적극적으로 지지 표명을 하진 않았다. 또한 YS의 계파인 상도동계 인사들이나 민주동지회의 일원들은 개인별로 지지후보가 갈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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