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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1:42

기문포 해전

원균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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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관련 원균옹호론 · 원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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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정유재란 전투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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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일본군 대규모 상륙), 일본군 진격 시기
1592년 <colcolor=#f0ad73,white>
음력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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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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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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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합군 진격 시기
1593년
1월
제4차 평양성 전투[朝明] · 수원 전투[朝] · 성주성 전투[朝] · 벽제관 전투[日]
2월
웅포 해전[朝] · 죽주 전투/상주 전투[朝] · 행주 대첩[朝] · 노원평 전투[朝]
전선 고착화 및 국지전 시기, 정유재란 (일본군 대규모 재상륙)
1593년
6월
제2차 진주성 전투[日]
1594년
3월
제2차 당항포 해전[朝]
7월
거제도 진공작전[朝]
1597년
2월
부산 진공작전[朝]
3월
기문포 해전[朝]
6월
가덕도 해전[朝]
7월
칠천량 해전[日]
일본군 진격 시기
1597년
8월
고령 전투[朝] · 남원 전투[日] · 황석산성 전투[日] · 어란포 해전[朝]
9월
벽파진 해전[朝] · 직산 전투[明] · 명량 해전[朝] · 제1차 석주관 전투[日]
사로병진책, 조명연합군 진격 시기
1597년
11월
제2차 석주관 전투[日]
12월
제2차 경상좌병영 탈환 전투[朝明] · 제1차 울산성 전투[日]
1598년
7월
절이도 해전[朝明]
9월
사천성 전투[日] · 제2차 울산성 전투[朝明] · 왜교성 전투[日]
11월
노량 해전[朝明] · 남해왜성 소탕전[朝明]
각주: [朝]: 조선군의 승리 / [日]: 일본군의 승리 / [明]: 명나라군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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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전개3. 의의4. 출처
[clearfix]

1. 개요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첫 행보이자, 조선 수군의 피해 뿐인 승리.

2. 전개

1597년 3월 9일(음력)
1597년 3월 25일

3. 의의

졸전이었지만, 거제도에 일본군이 넘어오는 것에 대한 강력한 항의로도 볼 수 있다. 조선 수군이 한산도에서 부산포를 공략함에 있어서 중간 정박지점은 반드시 필요했고, 안골포-가덕도에 일본군이 왜성을 짓고 버티는 이상, 조선 수군은 거제도 북부인 장문포/영등포/기문포 등을 중간 정박지점으로 사용했다. 불과 1달 전인 2월 10일, 이순신 통제사가 장문포를 중간 정박지점 삼아서 부산포를 강습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일본군이 거제도 북쪽에 넘나드는 일은 점차 늘어나서, 조선 수군은 부산포 강습 때 장문포/영등포/기문포가 아닌 칠천량과 외해 옥포 쪽에 정박하게 된다.

4. 출처

2016년 6월, 이문영 작가의 매일경제 기고

2020년 1월, 김의부 소장의 기문포 위치 추정


[1] 거제도 북부, 장문포~영등포 부근으로 추정. [2] 다만 강화협상 중에도 제2차 진주성 전투 등 국지전은 있었다. 또한 이미 1월에 일본군이 대거 재상륙하며 협상이 파기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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