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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이란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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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이란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고대2.2. 고대 말2.3. 중세~근세2.4. 21세기
3. 여담4. 관련 문서

1. 개요

그리스 이란의 관계에 대해 서술한 문서.

그리스는 의외로 과거 페르시아 전쟁 및 알렉산드로스의 페르시아 정벌, 그리고 동로마-페르시아 전쟁[1] 때 치고박은 이란과는 적대적이지 않다. 튀르키예인들과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비교하면 의외인데 사실 오스만 제국의 지배와는 달리 페르시아 전쟁 자체가 까마득히 먼 오래전 일이기 때문인 데다 지금은 둘 사이에 굴러들어온 돌 튀르키예가 생겨서 지리적 거리가 매우 멀어졌다. 한국사로 치면 고려시대에 몽골 제국이랑 치고 받다가 둘 사이에 한족 왕조가 떡 하니 생긴 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인들의 이란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은데[2] 이는 역사적 악연보다는 대표적인 반서방 국가인 이란을 친서방 국가인 그리스가 아니꼽게 보는 것에 가깝다.

2. 역사적 관계

2.1. 고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페르시아 전쟁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고대 아케메네스 페르시아가 오리엔트 일대를 통일한 후 아나톨리아 반도 서부 해안지대의 밀레투스 등 여러 그리스 폴리스들을 예속화하였다. 아케메네스 페르시아는 여세를 몰아 그리스 반도를 침공했는데 이를 페르시아 전쟁이라고 한다. 페르시아인들은 자체 역사기록을 주로 석주에 단편적으로 남기는 편이었고 페르시아 역사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그리스인 헤로도토스가 페르시아 전쟁을 서술하는 역사서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남게 되었다.

페르시아 전쟁이 그리스 폴리스 연합군 측의 승리로 끝난 후 아테네는 페르시아의 추가 침입을 예방한다는 명목으로 델로스 동맹이라고 하여 동맹국들로부터 막대한 양의 조공을 징수하였다. 여기에 대한 반발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페르시아 측은 아테네에 맞서 스파르타를 지원하였다.

스파르타가 테베의 공격으로 몰락한 후 그리스 반도의 세력 공백이 이루어진 틈을 타서 북쪽의 마케도니아가 그리스 반도 일대로 세력을 팽창하기 시작했다. 마케도니아의 황제 알렉산드로스 3세는 그리스-마케도니아 연합군을 이끌고 역으로 아케메네스 페르시아를 정복한다. 현 이란의 대부분의 지역은 헬레니즘 시대에 놓였다가 기원전 2세기 중반쯤 셀레우코스 제국 파르티아에 밀려 레반트 인근으로 축소되고 두 번 다시 오늘날의 이란 고원 지역에는 발을 들이지 못하게 되었다.

파일:하트라 이라크 1.jpg

2.2. 고대 말

파르티아가 멸망한 이후 이란 고원 지역에는 사산조 페르시아가 들어섰다. 사산조 페르시아의 근거지 이란 고원은 인구를 대규모로 부양하기 힘든 지역이었고 메소포타미아로 팽창을 시도하면서 로마 제국과 계속 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로마 제국은 디오클레티아누스 시대 국방상 이유로 행정 구역을 동서로 구분해서 관리하기 시작한 이래 테오도시우스 왕조 시대에 사실상 동서 분단이 고착화되었다.

서로마 제국에서는 라틴어가 주로 사용되었으나 동로마 제국에서는 일상 공용어로 사실상 그리스어가 사용되었고 라틴어는 주로 행정 등 공용 업무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동로마 제국을 사실상 그리스의 역사로 보기도 한다. 동로마 제국은 이라클리오스 황제 시대에 이르러 행정과 사법 관련하여 라틴어 대신 그리스어를 사용하도록 법률을 개정하였고 동로마 제국에서는 그리스어가 사실상 국어 역할을 하게 되었다. 즉 동로마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와의 전쟁은 그리스 문명과 이란 문명의 싸움, 즉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연장선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사산 왕조는 초창기에는 고대 아케메네스 왕조의 역사에 대해 거의 몰랐었다. 아케메네스 왕조는 역사 기록을 대개 석조에 남기곤 했는데 사산 왕조는 아케메네스 왕조 멸망으로부터 수백여년 후에 들어선 세력이었고 당시 페르시아인들은 자신들이 태어나기도 전인 수백년 전에 석조에 새겨진 글자를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아는 지식은 알렉산드로스 3세 관련한 전설에 반영된 단편적인 사실 정도였다. 사산 왕조 치세 중반 페르시아에서 기독교가 번창하고 이들에 의해 고대 헬레니즘 세계 관련 지식이 전달되고 나서야 페르시아인들은 한 때 자신들의 조상이 지중해 동부 세계를 석권했던 대제국을 건설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한때 사산조 페르시아는 명장 샤흐르바라즈의 지휘 하에서 동로마 제국의 가장 부유한 속주였던 시리아와 이집트를 빼앗고 예루살렘을 유린하고 성십자가를 빼았았으며 인구 밀집지대였던 아나톨리아 칼케돈 일대까지 병합하고 아바르 칸국 연합군과 함께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성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사산조 페르시아의 호스로 2세는 샤흐르바라즈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세력이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측근들에게 샤흐르바라즈를 숙청할 것을 명령하는 서신을 보냈는데 동로마 제국 측에서 이 서신을 입수하여 샤흐르바라즈 측에 넘겨주었다. 분노한 샤흐르바라즈는 자신이 점령했던 아나톨리아와 시리아, 이집트 일대 영토를 동로마 제국 측에 그대로 다시 양도하는 조건으로 안전하게 퇴각하고 사산조 페르시아로 돌아와 호스로 2세를 폐위시킨 이후 스스로 샤한샤 자리에 올랐다. 이후 샤흐르바라즈가 암살당하면서 사산조 페르시아는 극심한 혼란에 시달리다가 결국 멸망하기 이른다.

2.3. 중세~근세

그리스, 이란 모두 이후 아랍, 튀르크 등 중동 세력에 의한 지배와 탄압의 역사가 계속되다 보니(...) 서로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은 자연히 희석되었다. 때문에 인터넷에서 그리스인과 이란인이 만나면 간혹 "그래 그때는 우리 서로 치고받고 하곤 했지!" 하며 반갑게 회포를 푼다(...). 가끔 이란에 대해 긍정적인 글을 쓴 그리스인에게 댓글로 ‘우릴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의외다’라는 반응을 보이는 이란인도 있고 그러면 그리스인들이 뭐 그렇게 오래전 일을 아직도 담아두냐고 웃으며 화답하곤 한다.

이슬람 제국 압바스 칼리프조 시대에 칼리파 알 마문은 그리스어 서적을 아랍어로 번역하는 사업을 후원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고대 그리스의 학문이 중세 페르시아어권으로 급속히 흡수되기 시작하였다. 그리스어권과 페르시아어권의 학문 교류가 왕성하게 이루어졌으나 몽골 제국의 침략으로 압바스 칼리프조가 멸망하고 이란이 사막화된 것, 그리고 수백여 년 후 근세 이란 고원에 들어선 사파비 제국이 지중해 동부의 오스만 제국과 대치하면서 교류가 제한된 것을 계기로 그리스 문화권과 이란 문화권 사이의 활발한 교류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2.4. 21세기

양국 모두 교류가 일부 존재하며 그리스에도 소수의 이란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2020년 1월,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가 미국 가셈 솔레이마니 암살을 지지하자 이란이 항의했다. #

2022년 5월 27일에 이란 혁명수비대가 그리스 유조선 2척을 나포했다. #

3. 여담

그리스인들은 멋진 모습으로, 이란인들은 괴물 같은 모습으로 왜곡되어 나온 영화인 300이 개봉했을 때 이란은 물론이고 그리스에서도 평가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에 나온 스파르타의 고증도 엉망이기 때문에 그리스에서도 불쾌해할 만했다.

4. 관련 문서



[1] 동로마의 역사적 귀속권을 굳이 보자면 그리스가 가장 높다. 그리고 전쟁 중에 이라클리오스가 그리스어로 공용어로 체택해서 그리스 국가로 봐도 무방하다. 아예 호스로 2세가 동로마인들을 그리스인이라고 불렀을 정도다. [2] 그리스인의 73%가 이란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표명한 반면 호의적인 견해는 19%에 불과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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