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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롤스터/스타크래프트/2008년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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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Rolster/스타크래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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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2. 진행 결과
2.1. 2003년 ~ 2004년 스카이 프로리그 2R2.2. 2004 3라운드 ~ 2005 통합 리그2.3. 2006년 ~ 2008년 전기리그

1. 소개

프로게임단 kt 롤스터의 2008년 이전의 프로리그 경기기록.

2. 진행 결과

2.1. 2003년 ~ 2004년 스카이 프로리그 2R

프로리그 원년 대회인 KTF EVER Cup 온게임넷 프로리그에는 동양에게 플레이오프에서 밀리며 탈락했으며, neowiz Pmang Cup 온게임넷 프로리그에서는 하위권에 머물렀다. 이후 SKY 프로리그 2004 1Round 2Round에서도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한 채 세월은 지나갔다. LG IBM 팀리그 결승에서는 최연성에게 3킬을 당하면서 2:4로 패해 준우승을 하였으며[1], 투싼 팀리그, MBC MOVIE 팀리그 시절에는 각각 패자조 결승 탈락, 준PO 탈락으로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2.2. 2004 3라운드 ~ 2005 통합 리그

그러나 2004년 3Round부터는 본격적으로 각성을 시작하였다. 프로리그에서는 23연승을 기록하며 역대 최다 연승을 기록했다.[2] 하지만 3Round 결승전에서 KOR를 만나서 준우승을 거두는 비극을 맞아야 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열린 2005년 전기리그는 10승으로 전승 진출하였지만 SKT T1을 맞이하여 전승준.

이러한 성적의 원인은 승리를 얻을 때도 상대 팀을 완벽하게 몰아부치며 압승을 거둘 때보다 에이스 결정전까지 가면서 똥줄 타는 승부를 매번 펼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시기에 3:0 승리는 1번밖에 없었다. 사실 최전성기였던 2005년 전기리그에서도 정작 개인전 승률은 5할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3전제였던 스카이 프로리그 2004 3Round도 2:0 승리는 정규시즌 8경기 중에서 5경기만 기록했을 정도로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IBM 팀리그 때도 4:0 올킬 승리는 없었다. 다만 팀플레이가 사기급으로 강했으며,[3] 이 시기에 에이스 결정전 9연승을 기록한 강민이 정말 대단했고[4], 어찌 보면 기적에 가까운 연승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각 팀의 에이스급 선수였던 박태민, 이주영, 김준영, 이윤열, 최수범, 임요환 등등을 격파한 기록이기에 더 값진 기록. 이 기록은 후에 2005 후기리그에서 삼성전자 칸 박성준에게 깨지게 되며, 이후 연승 기록은 박지호가 다시 깨게 된다.

2004년 3Round에서는 KOR(현재 하이트 스파키즈)을 상대로 해서 3:4로 패배한다. 엔트리 싸움에서 강민vs 전태규, 박정석vs 한동욱 등 엄청나게 유리한 경기가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광박이 다 패배하는 등 이뭐병스러운 경기력을 선보였고, 결국 조용호가 7세트에서 차재욱에게 인큐버스에서 무너지며 준우승에 머무른다. 마지막 세트는 조용호가 충분히 차재욱의 본진 올인[5]을 막고 이길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앞마당에 버로우시켜놨던 러커 2기를 본진이 쑥대밭이 되고 나서야 데려오는 치명적인 실수[6]를 저질러 패배했다. 김동수 해설이 "앞마당 러커 왜 안 오나요! 앞마당 러커! 으아아아아아!"라고 절규하는 모습은 압권이었다.

2005년에 열린 MBC MOVIES 팀리그 준플레이오프에서는 SouL에 4:2로 패해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된다. 이때 풀리그에서 같은 팀을 상대로 강민이 3:0 예고 올킬을 달성하면서 팬들은 다시 한 번 그런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정작 강민은 출전하지도 않았다. 당시 강민의 대장 엔트리가 공개될 때 정수영 감독의 결정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강민이 압권이다.

2005년 전기리그에서는 SKT T1을 상대로 1:4 대패. 엔트리 싸움에서 정수영은 전면전을, 주훈 감독은 스나이핑 엔트리를 제시했고 여기서 승부가 갈렸다. 1세트에서 전상욱이 박정석을 상대로 본진 2배럭 치즈러쉬를 시전하여 박살냈고,[7] 2세트에서는 김성제 팀플레이에서 리버를 선보이며 관광. 3세트에서는 변길섭이 천적 박태민에게 패배하며 사실상 경기는 기울었다. 그나마 4세트에서 루나 불패를 선보이며 '어?' 하는 듯했으나 5경기에서 역시나 강민이 당시까지의 천적 박용욱[8]에게 무너지며 광안리에서 준우승이라는 쓰라린 아픔을 다시 겪는다.

2005년 후기리그에서는 2위로 진출하여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전자 칸을 만나 0:4 대패를 당한다. 개인전, 팀플레이 모두 삼성전자에게 압도당하였으며, 이 충격으로 인해 빠따정 정수영의 지시하에 조용호 이병민 등을 제외하고 모두 삭발을 하게 된다.[9]

2005년 그랜드 파이널에서는 2위로 진출하여 GO를 4:2로 제압, 그러나 결승에서 T1에게 2:4로 패하며 또다시 콩라인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이때는 역으로 주훈이 정공법, 정수영이 스나이핑[10] 전법을 내면서 이기는가 싶었지만 5경기에서 변길섭이 박용욱을 상대로 OME 경기를 선보이며 패배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기울어져 버렸다. 결국 이 경기 후 정수영은 사임했고, 후임으로 당시 코치였던 이준호가 감독 대행을 맡게 된다.

전체적으로 보면 정수영 감독의 엔트리는 제법 훌륭한 편이었고 KOR과의 결승전에서는 그야말로 예술적인 신트리를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홍진호, 조용호, 박정석, 강민, 변길섭 등 팀을 대표하는 스타 선수들이 프로리그와 팀리그 포스트시즌만 가면 막장스러운 성적( 프로리그에서는 저그 라인 전패, 프로토스 라인 1승 제외하고 전부 패배, 팀리그에서는 저그 라인 3승 6패, 프로토스 라인 2승 3패)을 낸 것이 큰 문제였다. 이때 팀단위 리그 포스트시즌에서 김정민이 없었으면 정말 처참한 스코어가 나왔을 것이다. 타 팀에서 이적한 주요 선수들이 KTF 소속으로 출전한 팀단위 리그 포스트시즌 개인전 성적은 홍진호 프로리그 1승 3패, 팀리그 3패, 조용호 프로리그 2패, 팀리그 3승 3패, 박정석 프로리그 3패, 팀리그 1승 2패, 강민 프로리그 1승 4패, 팀리그 1승 1패, 변길섭 프로리그 1승 3패, 팀리그 2승 4패로 5할 언저리거나 5할 미만에 해당한다. 반대로 김정민은 팀단위 리그 포스트시즌에서 프로리그 3승, 팀리그 4승 2패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성적이 좋았음에도 신인을 육성하지 못했던 문제점이 있었고, 이것이 바로 이후 KTF가 호성적을 거두기 힘든 요인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이후 팬들은 KTF의 성적이 좋지 않을 때마다 정수영을 데려오라는 항의를 많이 하였다.

2.3. 2006년 ~ 2008년 전기리그

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에서는 원게임 플레이오프[11]를 통해 3위로 리그를 마쳤으며, 준플레이오프에서 MBC GAME HERO를 만났으나 또 다시 0:4 대패. 특히 4경기에서는 이병민 서경종의 1해처리 저글링 히드라에 털리면서 완패했다.

이준호는 이 결과로 인해 감독 계약이 사실상 물건너갔으며, 사임했다.

후임으로는 김철이 정식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SKY 프로리그 2006 후기리그에서는 11개 팀 중에 10등, 2007 시즌에는 12개 팀 중에서 전기리그에는 7위, 후기리그에는 9위를 기록하여 전혀 포스트시즌에 가보지도 못하게 된다. 이로 인해 타팀 팬도 그렇고 KTF 팬도 그렇고 하나같이 "역시 빠따정이야말로 진정한 명장이었어!"라는 조롱과 한탄 섞인 목소리를 내게 된다. 그나마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에는 5위를 하여 희망을 갖게 하였다.

김철 감독은 결국 계속된 성적 부진을 사유로 2008년 상반기를 마지막으로 짤렸고, 후임자는 KTF 시절 피파 게임 레전드이자 당시 KTF의 수석코치였던 이지훈이 감독으로 승격하였다. 물론 선임 당시에는 이 듣보는 또 누구냐면서 김철 때처럼 욕을 무진장 얻어먹었다. 물론 지금은 까는 사람이 거의 없다. 어차피 우승해 주면 그 동안의 모든 욕은 다 없애주는 사람들이 바로 KT빠들이다!!


[1] 당시 KTF가 상대팀의 선봉을 지목할 권한이 있었는데 최연성을 지목했다. 그러나 변길섭, 박정석, 조용호가 제압당하고 올킬 위기에 몰린다. 그러나 김정민이 최연성과 박용욱을 연달아 이기면서 희망의 불씨를 살렸으나 김성제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무른다. [2] 이 기록은 오버워치 팀인 러너웨이가 24연승을 기록하기 전까지는 한국 e스포츠 팀 단위의 최다 연승 기록이었다. [3] 루나 불패의 전설이 이 시즌에 쓰였으며, 김정민- 조용호 조합과 박정석- 홍진호 조합이 주를 이뤘다. 참고로 루나에서의 유일한 1패는 2005년 그랜드 파이널에서 당시 GO(현 CJ Entus)에 패한 기록이다. [4] 이 당시 강민은 몸이 좋지 않았는데 정수영 감독이 몸을 충분히 회복할 것 그리고 에이스 결정전만을 맡을 것을 지시했고 감독의 기대에 강민은 부응했다. [5] 마린 사업 및 스팀팩 장착 후 첫 러시를 갔는데 첫 러시에서 승부가 결정됐다. 차재욱은 훗날 회고하기를 첫 러시가 막혀도 막힌 이후의 운영까지 다 짜서 나왔다고 한다. [6] 러커가 본진으로 오는길에 마린과 메딕이 길목을 지키면서 러커의 본진 회군을 지연시킨 것도 한 몫했다. [7] 맵은 레퀴엠, 더군다나 각각 6시, 9시 상황. [8] 당시까지만 해도 큰 경기에서 강민은 박용욱의 밥이었다. 그러나 프링글스 MSL 시즌1에서 셧아웃시킨 후 지금은 스코어가 비슷해 많이 희석된 상황. [9] 조용호는 우승을 해서 면제, 이병민은 리그를 뛰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병민 문서 참조. [10] 사실 전기리그도 그랬고 정수영은 나름 생각을 하고 카드를 낸 것임에는 분명했다. [11] CJ와 승패, 득실이 같았다. 마재윤 변길섭을 발라버리며 CJ는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 그러나 플레이오프에서 엠겜에게 패배해 사실상 도찐개찐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