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24 02:19:26

Tu-144

이 문서는 현재 운항이 중단된 항공기를 다룹니다.

이 문서에서 서술하는 항공기는 현재 퇴역하여 더 이상 운항하지 않는 항공기입니다.

파일:로고 투폴레프.png
{{{#!wiki style="margin: 0 -10px;"
{{{#29387d,#8091d8 {{{#!folding [ 투폴레프 항공기 목록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000,#e5e5e5
민항기
터보제트 터보팬 터보프롭
<colbgcolor=#ffffff,#191919> 쌍발기 Tu-104 Tu-124 Tu-134 Tu-204 Tu-334 -
3발기 - Tu-154 -
4발기 Tu-144 Tu-244 Tu-114
전투기
프로펠러기 I-15, I-15bis, I-153
제트기 Tu-128
폭격기
프로펠러기 TB-6 SB TB-3 Tu-2 Pe-8 Tu-4 Tu-95
제트기 Tu-16
초음속기 Tu-22 Tu-22M Tu-160
대잠초계기
프로펠러기 Tu-142
※ 제조사별 항공기 둘러보기 }}}}}}}}}}}}}}}

파일:아에로플로트 Tu-144.jpg
아에로플로트 소속 Tu-144 SSSR-77110기[1]
파일:external/imgproc.airliners.net/1089077.jpg
Tu-144의 조종실
Tupolev Tu-144 Charger
Туполев Ту-144
뚜빨례프 뚜-스또쏘록쪠쯰례

1. 개요2. 상세3. 개발4. 콩코드와의 비교5. 사고와 조기 퇴역6. 현황7. 미항공우주국의 도입과 이후 거취8. 같이 보기9. 참고 링크

1. 개요

구 소련의 투폴레프 설계국이 개발한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와 비슷한 생김새 때문에 '콩코드스키'라는 별칭이 있다. 초도비행은 콩코드보다 앞섰으나 취항일자는 콩코드보다 늦다.

2. 상세

승조원 3명
승객 140명
최고 속력 마하 2.35
최고 고도 20,000m

한때는 소련에서 / 프랑스 합작의 콩코드 설계 계획을 듣고 자극 받아 설계도를 몰래 입수해 만들어낸 초음속 기라는 설이 있었고, 콩코드를 표절한 짝퉁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개발 소식을 듣고 질 수 없다는 생각에 열심히 참고하여 만든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이 개발하던 XB-70에 대항하려고 소련이 만든 수호이 T-4의 기술을 응용해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으로 초도 비행 날짜를 보면 콩코드가 1969년 3월인데 반해서 Tu-144가 1968년 12월로 오히려 앞선다.[2]

Tu-144는 이후 Tu-160을 위한 기술적 토대를 마련한 과도기적 기체이기도 하다.

3. 개발

초기 목표는 콩코드와 흡사한 마하 2로 6500km의 비행거리를 100~120명이 타고 날 수 있는 기체였으며, 1963년 기본 형상이 투폴레프에서 나왔는데, 이는 80~100명이 타고 2,300~2,700km/h로 4000~4500km를 날 수 있는 것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아에로플로트 파리 지사에 위장 파견돼있던 KGB 첩보원이 콩코드 설계도 일부를 빼돌려서 러시아에 넘겼고, 이를 Tu-144에 적용했단 설도 있다. 한층 더 뛰어넘어서 파리 에어쇼 사고는 프랑스의 의도적 복수극이란 얘기도 있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

파일:external/www.avsim.com/tupolev_tu144_02.jpg
위가 콩코드, 아래가 Tu-144

오히려 첫 비행은 1968년 12월 31일 이뤄졌으며 이는 콩코드의 기록(1969년 3월 2일)보다 2개월 가량 앞섰었다. 형상이 콩코드와 거의 동일한 관계로 심지어 전술했듯 KGB가 관련하여 프랑스에서 콩코드의 설계도를 훔쳐 제작했다는 의심을 받았으나 실제로는 콩코드와 개발목적 자체가 비스무리하다보니 비슷한 형상과 기술을 갖추게 된 것. 뒷날 미국의 우주왕복선과 소련의 부란이 추진부를 제외하면 완벽히 똑같은 외형을 갖춘 것도 같은 이치다.
[그러나 1971년 파리 에어쇼에서 TU-144가 데모 비행중 추락하자 프랑스의 복수라는 음모론까지 나왔었다.]

1971년 서방세계에 처음 알려진 것은 파리 에어쇼...라지만 최초로 서방 세계에서 이 항공기의 존재가 확인된 것은 1970년 5월 닐 암스트롱이 모스크바에서 열렸던 국제 우주연구 회의에 참석했을 때였다. 한편 이 때 등장한 기체는 프로토타입으로 훗날의 양산기와 다른데, 이는 비행거리 부족(초음속으로 2,920km밖에 비행 불가), 엔진 진동 등 구조적 문제로 개량을 거친 것 때문이라고 한다.

양산기 개량은 두가지 방향으로 이뤄졌다. 하나는 애프터버너 없이 초음속 운항이 가능한 콜레소프 RD-36-51 터보젯 엔진을 장착하고 공기역학 설계 및 구조를 변경한 기체(Tu-144D가 됨), 또 하나는 기존 NK-144에서 연료소모율을 줄인 NK-144A 엔진을 장착하고 마찬가지로 설계수정을 한 개량형(Tu-144S)이었다.

4. 콩코드와의 비교

5. 사고와 조기 퇴역

73년 파리 에어쇼에서 테일넘버 77102가 기체 한계를 넘는 과도한 공중 기동을 선보이다가 실속, 엔진이 꺼져 버렸고 비상 재점화를 위해 급강하 중 접이식 카나드가 부러지면서 주익을 강타해 공중분해했다.[3] 1973년 파리 에어쇼 Tu-144 추락 사고 참고.

이 사고에 대해선 여러가지 음모론적 주장이 있다. 당시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제대로 조사가 안되고 덮인 것도 원인이지만. 프랑스 공군 소속 미라주 전투기가 촬영을 위해(혹은 사고를 유발하기 위해 고의로) 지나치게 접근해서 이를 피하려다 사고가 났다는 프랑스 원인 제공설, 부조종사가 조종석에서 카메라를 떨어뜨리면서 조종간을 만져서 급상승했다는 설, 덤으로 급기동을 위해 리미터를 해제한것이 기체에 무리를 주는 급상승의 원인이었단 설 등등이 있다.

참사 후 75년 파리 에어쇼에서도 재등장했고, 1975년 12월 26일 콩코드보다 먼저[4] 첫 상업비행을 하긴 했는데... 사고 이후 문제점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다. 마하2로 날거나, 4,000km를 날거나, 100명을 태울 수 있지만 동시에 세 가지를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모스크바-알마티간 우편 및 화물용으로 쓰였다. 77년 11월에야 같은 노선으로 여객 비행을 시작했지만 승객 수는 80명으로 제한됐고 여러 기능상 난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1978년 6월 1일에 원인 알수 없는 추락 사고가 발생하자 여객용으로는 완전히 퇴역하고 만다.

Tu-144D형이 늦게 제작돼서 이를 이용해 상업비행을 재개하려 했다. 이 기체의 시제기가 78년 4월 27일 초도 비행을 했고, 아에로플로트로 인도되기 위한 시험 비행으로 하바롭스크까지 갔다가 모스크바로 돌아가기 위해 이륙 후 상승 도중 연료 누유로 인해 APU 및 엔진 화재가 발생, 회항도중 예고리에프스크(Yegorievsk)에 비상 착륙했으나, 승무원 8명 중 기관사 2명이 착륙 도중 조종석으로 뚫고 들어온 기수부에 깔려 숨지는 참사가 일어나면서 Tu-144D형은 여객 수송도 못하고 퇴역해버려서 시험 비행용으로만 써먹는 상태가 된다.

시험 비행과 상업용으로 잘 써먹고 생산중이였으나, 1983년에는 생산이 중단되고 상업(광고) 서비스용으로도 퇴역하고 만다. 1999년 6월 이후로는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허나 이때 경험과 기술이 초음속 전략 폭격기 Tu-160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기에 완전한 삽질은 아닌 셈이다.[5]

또한 해당 기술력을 토대로 완성형이라 할 수 있는 초음속 여객기인 Tu-244는 1993년에 계획이 완전히 취소되었다.

6. 현황

현재 8대가 보존·전시 중이다. 파일:Tu-144-CCCP-77115.jpg
2007년 MAKS 에어쇼에 전시된 CCCP-77115.[8]

파일:zhkovsky-144.jpg
그 외에도 테일넘버 77115와 함께 테일넘버 불명의 Tu-144 1대(상단 기체)가 주코프스키 국제공항 한구석에 방치주기되어 있다.

7. 미항공우주국의 도입과 이후 거취

영국, 프랑스 합작인 콩코드로 인해 열폭한 보잉에서 초음속 여객기를 만들기 위해 돈이 궁한 투폴레프의 Tu-144 최신버전을 사려 로비를 펼첬으나, 이를 통해 폭격기인 Tu-160의 약점이나 기술력이 빠져나갈 것을 걱정한[9]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되었다.[10]

파일:external/www.flankers-site.co.uk/tu-144_05.jpg
결국 미국 도입이 성사되긴 해서 구형 Tu-144(기체 번호 CCCP-77114)를 3억 5천만 달러나 들여서 최신 사양으로 개수한 후[11] Tu-144LL로 명명하여 NASA 소속으로 "Supersonic Flying Laboratory(초음속 이동 연구소)" 이라는 이름까지 붙여 고고도 연구용으로 굴렸다. 현재는 고속도로 분기점에 전시 중인 그 기체이다.

이를 기반으로 보잉은 미국-러시아 합작 초음속 여객기를 설계할 예정이었지만 후발주자인 일본이 초음속 엔진 기술에서 두각을 보이자 보잉은 러시아를 버리고 일본과 손을 잡았다. 여담으로 프랑스 또한 일본과 함께 콩코드의 후계기인 Zehst를 공동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초음속 엔진 기술에 두각을 보이는줄 알았던 일본은 근 20년간 거의 전진이 없는것 처럼 보이면서 사업이 중단됐다. #

그후 러시아가 부활하긴 했지만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과의 공조는 없고 9.11의 여파로 초음속 여객기보단 저렴한 항공기가 인기를 끌자 미국 독자적으로 초음속 여객기 보다는 연료비가 훨씬 적은 전익기 형태의 차세대 여객기를 개발하는 중이며, 러시아의 Tu-144 후속기의 Tu-244 사업도 흐지부지 되고 아음속 중형 여객기( MC-21 같은) 사업으로 전환한다.

8. 같이 보기

9. 참고 링크



[1] СССР는 영어로 CCCP가 아니고 SSSR에 해당하는 키릴문자로, 뜻은 'Сою́з Сове́тских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их Респу́блик(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약자, 즉 소련이다. 생긴 모양 때문에 영어로 착각하기 딱이므로 주의. 참고로 현지에서는 기체번호를 부를 때 보르뜨(борт)-기체번호 형태로 부른다. 예를 들어 1989년 추락한 소련 공군 Il-76 76569기에 장착되어 작동한 경보 시스템이 무선 작동과 함께 내보낸 화재 통보인 "я- борт 76569 пожар!"를 보면, борт 76569 라는 부분이 있다. 이게 구소련 가맹국들의 기체번호 호출법이다. [2] 그러나 초도비행을 먼저 했다는 이유만으로 설계 사상에 있어 처음부터 완전히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3] 탑승자 6명 뿐 아니라 지상의 주민 8명도 사망했다. 비슷한 대형 초음속 기체인 미국 XB-70 발키리 역시 F-104와의 공중충돌 사고로 추락했고, 콩코드 중 1기도 파리 샤를 드골 국제공항 인근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다. [4] 콩코드는 1976년 1월 12일. [5] 미국의 B-1과 유사한 Tu-160때문에 설계도를 베꼈느니 하는 루머나 또는 반대로 Tu-160은 B-1참고 따윈 안하고 오로지 Tu-144를 기반으로 한 것이라고 잘못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애초 Tu-144와 Tu-160은 기체 공력특성부터 전혀 다르기에 Tu-144를 기반으로 했다는건 완벽한 헛소리다. Tu-144의 대형 초음속기 설계 노하우나 엔진을 비롯한 일부 요소가 Tu-160 개발에 중요하게 쓰인건 맞지만 Tu-144 설계가 Tu-160의 전신이란건 과장일 뿐이다. 엔진 배치 등의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기수부 부터 다른 점이 너무나 많다. 또한 미국의 설계도를 훔치거나 베꼈다는것 역시 과장일 뿐이지만 초음속 침투가 가능한 전략폭격기라는 점에서 B-1A에 위협을 느껴 영향을 받아 개발했다. [6] 좌표는 55°49'18.2"N 49°08'05.9"E [7] 과거 에어 프랑스 소속의 F-BVFB. [8] 여담으로 해당 기체는 보존 중인 현재까지도 아에로플로트 도장을 하고 있는데, 막상 해당 기체는 단 한번도 아에로플로트에서 운용된 적이 없다. 실제로는 부란 계획 당시 부란 조종사들을 훈련하는 용도로 사용되었고, 아에로플로트 도장은 퇴역 후 에어쇼에서 홍보 차원으로 사용하기 위해 나중에 입힌 것이라고 한다(...) [9] 엔진도 같은 쿠즈네초프 NK-321엔진을 썼다. [10] 허나 후에 미국은 Tu-160을 우크라이나에서 입수해 단독으로 해체하며 기술을 파악한 것으로 추정된다. [11] 보잉 777-300 하나 새로 뽑는 것보다 많이 썼다! 심지어 보잉 747-8i보다도 비싸다. 그래도 초음속기 중 이정도 내부공간을 갖춘게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