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 운송 중 망실된 410대를 포함하여 총 1,386대가 1941년부터 1943년 사이에 공여되었다. 그러나 이미 포탑에 76mm급 포를 탑재하고 충분한 방호력을 갖춘
T-34-76이 존재했던 소련군에게는 평이 좋지 않았고, 단지 2선급 보조전력으로 활용되었다. 소련군은 M3 전차에"М3 средний(M3 중형)" (М3с, "с"= "средний" = medium)이라는 공식명칭을 부여했지만 병사들은 이 전차에 БМ6라는 냉소적인 별명을 붙였다. БМ6는 Братская могила на шестерых, 이는
여섯 동무의 공동묘지라는 뜻이다.[2]
한편, 소련이 M3 전차에 "coffin for seven comrades, 일곱 동지를 위한 관"이라는 별명을 붙였다는 이견이 있고,[3] 그렇게 소개된 사례가 있다. 가령 1999년에 초판 발행된
이대영의
알기 쉬운 세계 제2차대전사 시리즈 4권의 136페이지에 나오는 파괴된 M3 리 사진 밑의 설명 중 "소련군은 이것을 가리켜 '일곱 전우의 무덤'이라고 불렀다. 소련군은 원래 5인승인 이 전차에 7명의 승무원을 탑승시켰고 이 구식전차는 독일전차의 사격에 아주 쉽게 격파되었기 때문이다"라는 부분이 그렇다.
이런 이견은 M3 전차가 7인승과 6인승 두 가지로 제작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데, 원래 M3 리 전차는 7인승으로 설계, 제작이 되었지만, 영국은 차체 무전병 좌석을 빼고, 6인승으로 설계를 변경하도록 요구하여 6인승이 제작(그랜트), 납품되었다.
이후 미군도 차체 무전병이 불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6인승으로 설계를 변경 조종수가 무전기를 맡았기 때문에 미군용 M3 리 전차는 7인승과 6인승 두가지 모델이 존재하며, 이후로 제작된 M3A1~M3A5 전차는 모두 6인승으로 제작되었다.
소련에는 7인승과 6인승 두 가지 형태의 M3 전차가 공여되었기 때문에 일곱 또는 여섯 동무의 무덤이라는 두 가지 별명이 붙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4]이 밖에도 소련군은 M3 리를 "모노폴리"라거나, "칼란치", 혹은 "2층", "3층" 등의 다양한 별명을 붙였다고 한다.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그랜트 전차 및 리 전차를 노획해 운용하여 "Pz.Kpfw M3 747(a)"라는 제식명으로 운용하다, 엘 알라메인 전투 패배 이후 해당 노획차량들을 다수 유기하고 떠났으며, 이후 벌어진
독소전쟁 당시 동부전선에서 소련군이 운용하던 M3 중형 다수를 노획해 운용한 기록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