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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9월 26일 11집 Abbey Roa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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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5월 8일 12집 Let It B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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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 스톤 선정 500대 명반 2003년 86위 ||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fffbbb><tablebgcolor=#fff,#191919><width=90><#b18904> ||
올 타임 탑 1000 앨범 1998년 561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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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보드 200 역대 1위 앨범 | |||||||||||||||||||||||||||||||||||||||||||||||||||||||||||||||||||||||||||||||||||||||||||||||||||||
McCartney | → | Let It Be(4주) | → | Woodstoc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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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번_앨범=Bridge Over Troubled Water,
전번_아티스트=사이먼 앤 가펑클,
이번_앨범=Let It Be,
이번_아티스트=비틀즈,
1위_기간=3주 연속,
후번_앨범=Bridge Over Troubled Water,
후번_아티스트=사이먼 앤 가펑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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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It Be | ||||
<colbgcolor=#000><colcolor=#ff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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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매일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1970년 5월 8일 [[미국| ]][[틀:국기| ]][[틀:국기| ]] 1970년 5월 18일 |
|||
녹음 | 1969년 1월 2일 - 1969년 1월 31일[3] | |||
장르 | 팝 록, 블루스 록 | |||
재생 시간 | 35:10 | |||
곡 수 | 12곡 | |||
프로듀서 | 조지 마틴, 글린 존스, 필 스펙터 | |||
스튜디오 | EMI, 애플, 올림픽, 트위커넘 | |||
레이블 | 애플 레코드 | |||
싱글 발매곡 |
Get Back (1969년 4월 11일) Let It Be (1970년 3월 6일) The Long and Winding Road (1970년 5월 11일) For You Blue (1970년 5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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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 악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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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e A | |||
트랙 | 곡명 | |||
1 | Two of Us | ♫ | ||
2 | Dig a Pony | ♫ | ||
3 | Across the Universe | ♫ | ||
4 | I Me Mine | ♫ | ||
5 | Dig It | ♫ | ||
6 | Let It Be | ♫ | ||
7 | Maggie Mae | ♫ | ||
Side B | ||||
트랙 | 곡명 | |||
1 | I've Got A Feeling | ♫ | ||
2 | One After 909 | ♫ | ||
3 | The Long and Winding Road | ♫ | ||
4 | For You Blue | ♫ | ||
5 | Get Back | ♫ |
[clearfix]
1. 개요
비틀즈가 마지막으로 발표한 정규 앨범.[4] 영국에는 1970년 5월 8일, 미국에는 열흘 뒤인 1970년 5월 18일에 발매되었다. 폴 매카트니의 서면 인터뷰로 인한 비틀즈 해체 보도가 1970년 4월 10일이었으므로 해체 이후에 발매된 앨범이라 볼 수 있다.2. 평가
The only Beatles album to occasion negative, even hostile reviews, there are few other rock records as controversial as Let It Be.
부정적이고 심지어 적대적인 리뷰를 받은 유일한 비틀즈 앨범으로, Let It Be만큼 논란의 여지가 있는 다른 록 레코드는 거의 없다.
올뮤직, Let it Be Album Reviews
비틀즈의 아쉬운 마지막 음반으로 평가받는다. 먼저 발매된
Abbey Road가 해체를 예감한 멤버들이 마지막 의기투합으로 뭉친 만큼 밴드의 일시적 화합으로 엄청난 시너지와 함께 제작되었던 것과 달리, 계약 상의 문제가 두드러지고, 멤버들간의 자의식이 충돌하던 시기에 제작된 Let It Be는 멤버들 간 불화가 심화되어 서로를 불신하는 상황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부정적이고 심지어 적대적인 리뷰를 받은 유일한 비틀즈 앨범으로, Let It Be만큼 논란의 여지가 있는 다른 록 레코드는 거의 없다.
올뮤직, Let it Be Album Reviews
특히 페퍼 상사와 Magical Mystery Tour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프로젝트를 주도한 쪽은 폴이었는데, 이 때문에 존과 조지[5]는 폴의 독주가 심해진다며 불편한 심기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게다가 최종 프로듀서로 낙점된 필 스펙터의 오버더빙은 기존 팬들에게 이질감을 주었고 비틀즈의 마지막 작품으로서는 다소 실망스러운 결과물로 남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비틀즈 음반 치고’ 아쉽다는 얘기이고, 발매와 동시에 미국과 영국에서 앨범 차트 1위에 올랐고, 싱글 컷된 Let It Be, The Long and Winding Road 역시 1위를 차지하며 건재한 인기를 과시했다.
비평적인 측면에서도 호불호가 극명히 교차되지만, 호의적인 평가를 하는 비평가도 늘어나는 추세이다. 롤링 스톤 선정 500대 명반 342위에 랭크되는 등 개별 곡들의 퀄리티가 워낙 뛰어나, 음악적 완성도도 상당히 인정 받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배경이 4분할 되어 밴드 멤버 개개인의 얼굴 사진이 실려 있는 앨범 커버가 상당히 유명한데, 핫피 엔도의 風街ろまん, 퀸의 Hot Space, 들국화의 들국화, 고릴라즈의 Demon Days, 빅뱅의 봄여름가을겨울 (Still Life) 등 여러 뮤지션의 앨범 커버에서 오마주되기도 했다.
3. 제작 과정
초기에 의도했던 "Get Back" 앨범 아트와 그에 쓰였던 사진.[6] '초기 시절로의 회귀'를 표방하며 Please Please Me 앨범 커버를 재현했다.[7] |
멤버들의 갈등이 심해진 1968년 후반, 폴 매카트니는 밴드의 와해를 막아보기 위해 '초기의 로큰롤 음악 시절로 돌아가 투어를 재개해보자.'는 취지에서 앨범 '겟 백( Get Back)' 및 앨범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안하게 된다. 이듬해 1969년 초 추운 겨울날 비틀즈가 모인 곳은 녹음스튜디오가 아닌 런던 근교의 영화 촬영장인 트위크넘 스튜디오였다. 좁은 녹음실 안에는 촬영 기재를 설치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Get Back' | 'I've Got a Feeling' |
결국 모든 프로젝트가 무산될 처지에 놓였다.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 링고 스타는 조지 해리슨을 설득하기 위해 여러차례 비공개 미팅을 가졌다. 끝내 조지 해리슨은 멤버들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제안에는 새로 개장한 애플 스튜디오로 옮겨 녹음을 진행한다는 조건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지지부진했던 앨범 작업을 진전시키기 위해 빌리 프레스턴을 키보드 세션으로 초대했다. 새로 스튜디오에 합류한 빌리 프레스턴에게 멤버들은 친화적인 태도를 보였고, 이는 세션의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개선시키는 효과를 낳기도 했다. 이윽고 촬영은 재개되었지만 영화는 텔레비전용 다큐멘터리로 변경 되었다가 다시 극장용 영화로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겪는다.
재개된 프로젝트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3년만에 열릴 비틀즈의 라이브 공연이었다. 당시 멤버 네 명 모두 무대에 대한 향수와 뮤지션으로서 라이브에 대한 욕구를 느끼고 있었지만 3년간 무대에 서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투어를 중단했던 1966년과는 업계 환경이 너무 많이 변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선뜻 나서질 못하던 상황이었다. 논의 끝에 대중적인 콘서트가 아닌 역사적인 명소에서 일회성으로 공연을 하고 이를 필름에 담기로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멀리 나가야 한다는 귀차니즘 때문에 무산되었다. 결국 역사적인 명소가 아니라 애플 스튜디오에서 매우 가까운, 애플 스튜디오의 옥상으로 결정이 났다. [8]
1969년
1월 30일 옥상(Rooftop) 공연에서 선보인 '
Don't Let Me Down' Get Back 싱글의 B사이드로 싱글컷 되며 앨범에는 미수록된다. |
이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Get Back' 프로젝트는 옥상 공연과 함께 종결되었지만 앨범 작업은 간단히 끝나지 않았다. 비틀즈 멤버들은 결과물에 만족하지 않았고 두 번이나 앨범용 마스터를 만들었지만 모두 OK사인을 받지 못했고 트랙 순서 조정과 곡 분위기에 대해서도 멤버들 사이에 말이 많았다. 발매는 두 번이나 취소되었고, 실제로 세 번의 발매 계획들을 보면 곡 순서와 수록곡이 조정되어 있다. 대표적인 예로, 첫 번째와 두 번째 계획에는 "Don't Let Me Down"과 폴 매카트니가 만든 "Teddy Boy"가 수록되어 있지만 마지막 계획에서는 제외되었다. 또한 두 번째까지는 계획에 없던 "Across the Universe", "I Me Mine"은 마지막 계획에 포함되었다. 이렇게 계획의 진전이 지지부진해지면서 'Get Back' 프로젝트의 완성은 점점 귀찮은 짐처럼 여겨지게 된다. 이 녹음들이 발매가 될 수 있을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영화 제작도 계속해서 늦춰졌다.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계속 되자 폴은 멤버들에게 그해 여름 새로운 앨범의 제작을 제안했다. 이번에는 영화나 콘서트 같은 번거로운 것들을 고려하지 않았고 방향도 지금껏 해오던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프로듀싱도 비틀즈와 늘 함께 해오던 조지 마틴이 맡기로 했다. 이렇게 완성된 Abbey Road는 'Get Back' 세션과 비슷한 때 작곡된 것들이고 녹음한 시기도 큰 차이가 없었지만, 비교가 어려울 정도의 완성도를 자랑한다. 오히려 녹음이 늦게 시작되어 마지막 음반으로 계획하고 있던 Abbey Road가 먼저 발매되었고, 'Get Back' 앨범의 완성 여부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이처럼 'Get Back'의 완성을 둘러싼 충돌은 이전의 프로듀서이던 조지 마틴 대신 필 스펙터가 앨범의 프로듀싱을 맡게 되면서 두드러지게 된 것이다.[10] 대부분의 곡에 코러스와 오케스트레이션을 추가하면서 곡의 분위기가 웅장해져, 오버더빙과 멀티레이어 레코딩을 배제하고 '날 것'과 같은 밴드의 초창기 사운드를 재현하려던 프로젝트의 본래 취지와는 정반대가 된 샘이었다. 이러한 완성물을 듣고 폴 매카트니는 앨범의 발매를 막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반면 존 레논은 "그는 최악으로 녹음된 짐들을 받았지만 거기서 뭔가를 만들어냈다. 내가 들었을 때는 나쁘지 않았다"라고 필 스펙터를 두둔했다. 실제로 존 레논과 조지 해리슨은 비틀즈 해체 이후 솔로 커리어 초기에 필 스펙터를 프로듀서로 기용하기도 했다.
결국 'I Me Mine' 녹음 이후 모든 멤버들이 각자의 갈길을 가고 있던 1970년, 비틀즈 멤버 네 명 사이에 파여진 감정의 골은 깊어만 가고 있었고 솔로활동과 사생활의 비중은 더욱 높아지고 있었다. 폴 매카트니가 자신의 솔로 앨범 McCartney 발매 보도자료를 통해 비틀즈 활동을 지속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고[11] 다음 날인 4월 10일, 언론을 통해 비틀즈의 해체 사실이 공식적으로 보도되었다. 비틀즈의 열세 번째 앨범은 이름이 'Let It Be'로 바뀌어 비틀즈가 해체된 이후인 5월 8일에야 발매되었다.
이로써 비틀즈의 여정은 막을 내렸다.
여담으로, A면 끝곡인 ‘Maggie Mae'는 비틀즈가 종종 장난삼아 넣곤 했던 개그송 정도로 치부하기 쉽다. 허나 이 곡은 비틀즈가 스키플 밴드 ‘쿼리멘‘이었던 시절 존과 폴이 종종 불렀던 영국 민요였다. 밴드의 해체를 앞둔 비틀즈의 리더 존과 폴이 옛날 쿼리멘 시절을 그리워하며 넣은 곡인지도 모른다.
4. 스페셜 에디션
2020년까지만 해도 이전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The Beatles, Abbey Road와 마찬가지로 새로 리믹스한 음원을 공개할 것인지 앤솔로지처럼 단순 세션 레코딩을 공개하는 형태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었다. 한창 50주년 앨범 발매 이야깃거리가 불거질 때쯤, 이전까지의 50주년 리믹스 작업을 해오던 자일스 마틴이 트위터 프로필에 '필 스펙터의 아들이 아님.'을 띄워놓았는데, Let It Be는 아버지 조지 마틴이 프로듀싱에 관여한 작품이 아니므로 이전 50주년 기념반과 같이 자일스 마틴이 리믹스 작업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결국 새 다큐멘터리 영화 " 비틀즈: 겟 백" 자체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개봉이 1년 이상 연기되고, Let It Be 관련 음원을 담은 음반이 기존 앨범 발매 50주년에 맞춰 공개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후, 2021년 8월 26일 비틀즈 유튜브 공식채널에 10월 15일 스페셜 에디션 발매 예정이라며 프로모션 영상이 올라왔다.[12] 장장 반 세기 이상 묻혀 있던 글린 존스 버전 Get Back 앨범도 처음으로 슈퍼 디럭스 버전에 담겨서 공식 발매되었다.
같은 날 Let It Be 2021 Mix, Don't Let Me Down First Rooftop Performance[13], For You Blue 1969 Glyn Johns Mix[14]가 업로드되었다. 앨범 커버도 기존 앨범에 비해 채도를 낮춘 이미지를 사용했다.
2021년 10월 빌보드 200 차트에서 5위를 기록했고, UK 차트에서는 2위를 기록했다.
5. 트랙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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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It Be
트랙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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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e A | ||
<rowcolor=#FFF> 트랙 | 곡명 | 재생 시간 | |
1 | Two of Us | 3:36 | |
2 | Dig a Pony | 3:55 | |
3 | Across the Universe | 3:49 | |
4 | I Me Mine | 2:26 | |
5 | Dig It | 0:51 | |
6 | Let It Be | 4:04 | |
7 | Maggie Mae | 0:40 | |
Side B | |||
<rowcolor=#FFF> 트랙 | 곡명 | 재생 시간 | |
1 | I've Got A Feeling | 3:38 | |
2 | One After 909 | 2:55 | |
3 | The Long and Winding Road | 3:37 | |
4 | For You Blue | 2:33 | |
5 | Get Back | 3:09 | |
6. 참여자
- 존 레논 - 리드 보컬, 배킹 보컬, 리듬 기타, 리드 기타, 랩 스틸 기타, 어쿠스틱 기타, 6현 베이스 기타, 휘파람
- 폴 매카트니 - 리드 보컬, 배킹 보컬, 베이스 기타, 어쿠스틱 기타, 피아노, 하몬드 오르간, 일렉트릭 피아노, 마라카스
- 조지 해리슨 - 리드 보컬, 배킹 보컬, 리드 기타, 리듬 기타, 어쿠스틱 기타, 탐부라, 6현 일렉트릭 기타
- 링고 스타 - 드럼, 퍼커션
- 빌리 프레스턴 - 일렉트릭 피아노, 하몬드 오르간
- 조지 마틴 - 셰이커
- 린다 매카트니 - 배킹 보컬
7. Let It Be... Naked
자세한 내용은 Let It Be... Naked 문서 참고하십시오.
8. 메이킹 과정 영화
자세한 내용은 Let It Be(영화) 문서 참고하십시오.
[1]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존 레논→폴 매카트니→조지 해리슨→링고 스타 순서다.
[2]
하단에 'SUPER DELUXE' 문구가 삽입된 것 외에도 사용된 사진의 채도가 전반적으로 낮아졌다.
[3]
녹음 자체는
Abbey Road보다 빨랐는데
필 스펙터와
폴 매카트니의 갈등 때문에 발매가 1년이나 늦어졌다.
[4]
실제 마지막으로 제작된 앨범은
Abbey Road이지만, 사정으로 이 앨범의 발매가 1년 이상 밀렸기 때문에 비틀즈 명의로 발표된 최후의 앨범이 되었다.
[5]
특히 조지의 반발이 있었다.
[6]
Clayton Hickman이 네거티브 필름을 복원했다
#
[7]
Please Please Me 커버와 해당 커버를
합성해놓은 사진도 있다. 해당 합성 이미지는
비틀즈: 겟 백의 공식 포스터로 사용됐다.
[8]
역사적 명소에서 무관객 공연을 펼친다는 최초의 아이디어는 훗날
핑크 플로이드에 의해
Echoes를
폼페이에서 선보이며 실현된다.
#
[9]
아직
Abbey Road는 녹음 조차도 안 들어간 시기
[10]
애당초 발매 예정이던 "Get Back"의 프로듀서는 글린 존스(Glyn Johns)였다.
[11]
밴드 멤버들에게 탈퇴 의사를 먼저 밝힌 쪽은 존이었으나, 앨범과 영화 홍보에 차질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폴 매카트니와 앨런 클라인이 공식 발표는 자제할 것을 설득하였다. 어찌 보면 공식적 탈퇴 발표 선방(...)을 빼앗긴 셈이라 존 레논은 폴 매카트니의 인터뷰에 상당히 분개했다.
[12]
그래서 이전과 달리 공식 명칭도 50주년 기념반이 아닌 스페셜 에디션이다.
[13]
기존
Let It Be... Naked와
1+에 실린 버전은 옥상 공연에서 부른 첫 버전과 두 번째 버전을 혼합해 믹스한 것이다. 첫 버전 3절에서 존 레논이 가사를 잊어버려 얼버무렸기 때문에 3절 부분은 두 번째 버전을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50주년 기념반에는 가사를 얼버무린 오리지널 버전이 실렸다.
[14]
1969년 믹스라고 써 있지만 실제로는 1970년 마지막 버전의 Get Back 앨범에 실린 버전이다. 1969년 믹스는 조지의 보컬이 초기 버전이다. 반면 1970년 믹스는 조지의 보컬이 새 버전으로 오버더빙되어 1, 2절에 사용되었다. 3절은 두 버전 모두 초기 믹스가 사용되었으며,
Let It Be 앨범에는 초기 버전은 완전히 배제된 채 오버더빙용으로 녹음한 보컬이 전체 수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