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 1998년 아르헨티나 금융 위기 1998 Argentina Financial Cris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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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 명칭 |
1998년 아르헨티나 금융 위기 1998 Argentina Financial Crisis |
발생 기간 | 1998년~ 2002년 |
국가 | 아르헨티나 |
원인 | 고정환율제 실패,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및 1998년 러시아 금융위기의 여파 |
피해 규모 | GDP 20% 하락, 실업률 25%, 빈곤율 50% 이상 |
결과 | 아르헨티나 디폴트, 사회 혼란, 경제 체제 개편 |
관련 사건 | 1998년 러시아 금융위기, 2002년 남아메리카 경제 위기 |
1. 개요
1998년 아르헨티나 금융 위기는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아르헨티나에서 발생한 경제 위기이다. 이 위기는 외채 증가, 고정환율제 유지, 1998년 러시아 금융위기 등 국제적 요인의 복합적 영향으로 인해 발생했다. 결과적으로 2001년에는 국채 디폴트를 선언하며 전 세계 금융 시장에 큰 충격을 주었다.2. 원인
1976년부터 1983년까지 지속된 아르헨티나 군사 독재는 경제에 큰 부담을 주었다. 독재 정권은 호세 알프레도 마르티네스 데 호즈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해 외채를 증가시키고 산업 기반을 약화시켰다. 그 결과 1983년까지 외채는 80억 달러에서 450억 달러로 증가했으며, 실업과 실질 임금 하락 등 경제적 혼란이 심화되었다.1991년, 도밍고 카바요는 고정환율제를 도입해 아르헨티나 페소를 미국 달러에 10,000:1로 고정시켰다. 초기에는 인플레이션 억제와 외국 자본 유입에 성공했으나, 환율 고정으로 인해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고 외채가 급증했다.
3. 경과
아르헨티나는 1990년대 동안 고정환율제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억제했지만, 외부 경제 위기가 시작된 1998년에는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1998년에 브라질 헤알이 평가 절하되고 1998년 러시아 금융위기로 인해 주요 무역국들과의 경쟁력이 떨어졌고, 외국 자본이 유출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GDP 성장률은 -3%로 하락하며 3년간의 경기 침체로 접어들었다.페르난도 데 라 루아 대통령은 1999년에 취임하며 국제통화기금의 가이드라인을 따라 긴축 정책을 강화했지만, 경제 회복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부는 공공 부문 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인상했으나, 이는 국민들의 불만을 고조시키고 실업률을 14%까지 상승시켰다. 경제는 디플레이션에 빠지며 내수 시장이 약화되었고, 빈곤율이 점점 증가했다.
2001년, 정부는 대규모 메가스왑(Megaswap)으로 외채 구조조정을 시도했으나, 이는 이자 부담을 늘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12월에는 약 1320억 달러의 국채 디폴트를 선언하며,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디폴트 사례로 기록되었다. 정부는 뱅크런을 저지하기 위해 코랄리토라는 정책을 통해 1주일 간 250 아르헨티나 페소 이상 출금하지 못하게 막았고 이 때문에 국민의 저축을 묶어버렸고, 대규모 폭동과 카세롤라소 시위가 발생했다.
2002년, 에두아르도 두알데 대통령은 2002년 고정환율제를 폐지하고 아르헨티나 페소를 평가절하했다. 평가절하로 인해 수출 경쟁력이 회복되었으나, 수입 물가가 급등하며 인플레이션이 치솟았다. 실업률은 25%를 초과했고, 빈곤율은 50% 이상에 달했다. 정부는 LECOP이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파타콘과 같은 채권형태의 보조 화폐를 도입해 유동성을 유지하려 했다.
4. 이후
2003년, 두알데 대통령 정부 마지막에 경제는 회복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고 선거가 진행되었다. 5월 25일, 네스토르 카를로스 키르치네르 대통령 취임 후, 아르헨티나는 급격한 경제 회복 과정을 시작했다.평가절하된 페소화 덕분에 아르헨티나의 농산물과 공산품 수출 경쟁력이 강화되었다. 이에 미국 등 여러 나라들은 아르헨티나의 농산물이 자국 시장을 해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해 수입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국과의 교역 확대 및 국제 시장에서 대두 가격 상승으로 인해 무역 흑자가 지속되었다. 2005년까지 약 3년간 외환보유고 또한 2.5배가 증가하는 등 경제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