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의 주요 인물이자
뜨거운 감자이기도 한 인물이므로
사극의 단골 등장인물이다. 다만
주인공으로서 발탁된 적은 거의 없다.[1] 흥선대원군 역은 선악의 구도를 떠나 대부분 카리스마있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대체역사소설에서 이 시기를 무대로 할 때는 주인공을 도와주는 역을 많이 한다.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는 크게 새로운 해석없이 일반적으로
역사학계에서 해석하는 흥선대원군으로 묘사된다. 전해오는 이야기처럼 상갓집 개나 파락호로 불리며 경제 기반까지도 나쁜 막장 생활을 한 것까지는 아니고 오히려 경제 기반은 나쁘지 않은 정도였으며
철종 때까지만 해도 신중히 처신하다가 집권기 직전인 철종 말년에 세도가에게 돈을 빌리고, 관직을 청탁하거나, 신분이 낮은 사람과 어울리는 등 야심을 감추기 위해 체면을 떨어뜨리는 행동을 했던 정도로 설명한다. 집권 후에도 다른 여러 대중매체처럼 전면에 나서
국무회의를 주도하는 식의 묘사가 아니라
신정왕후(조 대비)와
고종의 배후에서
흑막스럽게 정국을 움직이며
개혁을 실행하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흥선대원군의 개혁 정책에 대해서는 왕정 시대의 정치 개혁가로서는 높이 평가하면서도 한계도 설명하고 있고 민심의 이반이나
사대부들의 지지를 잃어서 실각한 것이 아니라 흥선대원군 실각의 원인은
왕조 국가의 기본 명제인 '권력의 중심은 왕'이라는 명제를 너무 가벼이 봤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여기서 묘사되는 흥선대원군은 전면에 나서는 정치인이라기보다는 흑막형
정치인. 마지막 권인 20권에서
박시백이 흥선대원군에 대해서 내리는 총평은 '그는
국가의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는 지도자였으며 그랬기에 권력을 원했다.' 실각 후의 각종
쿠데타 시도와
권력욕에 대한 비판 역시 하고 있지만 아들이나 며느리에게 그가 내린 짠 평가와 비교해 보면 전체적으로 아주 훌륭한 찬사에 가깝다. '차라리 아들이 아니라 그 자신이 왕이 되었으면 좋았으리라'라는 평가도 내린다.
유승진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편으로, 이유는 작가가 좋아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
한섬세대》에서는 시대적 배경이 (신)안동 김씨
세도정치기라서 파락호로 살고 있으면서
주인공 한섬을 곤경에 빠뜨린 적도 있지만, 한섬에게 세상 물정을 알려 주면서 결과적으로 한섬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인물로 나오며 〈
포천〉에서는 도입부를 장식하는 인물 중 1명으로 등장한다. 작중 시점은
임오군란 이후
청나라에게 피랍되어
톈진에 유폐된 상태이다. 막 집권했던 시절에 고산자
김정호에게 이시경의 예언서를 받았으며 한 청나라 사람(사실은 이홍장이 붙인 감시꾼)에게 예언서에 대해 썰을 풀어 하루하루를 사는 위태로운 노인네이다. 감시원은 흥선대원군이 이제 늙어 쓸모가 없다고 판단하고
이홍장에게 보고하러 가는데 아무도 없자 그 직후 흥선대원군은 썩소를 지으며 사실은 언제 자신이 귀국할지도 예언서에서 보았다고 밝힌다. 이후 흥선대원군은 귀국에 성공했고 훗날
을미사변 당시 잠깐이나마 권력을 틀어잡는다. 이외 박유붕을 다룬 별전과 단행본판에만 나오는 별전에서도 등장한다.
에가와 타츠야의 《러일전쟁 이야기》에서 등장한다.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조선이 제법 다뤄지고 있고 그 속에서 흥선대원군도 등장하는데 왕권 강화를 모토로 하기는 하지만
카리스마있고 성질있으며
나라를 생각하는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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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9176e> 《러일전쟁 이야기》에서 흥선대원군이 등장하는 장면 중 하나.[2]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
왕도의 개》에서는
카츠 카이슈의 입을 빌어 "대단한 인물"이라고 평가된다. 일본 공사관 무관인 오카모토 류노스케의 공작에도 무응답으로 일관하다가 결국 지친 나머지 조선을 넘보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만다. 결국 역사대로
갑오개혁 주도를 위해
경복궁을 점령한 일본군에 의해 꼭두각시로 내세워진다.
카카오페이지의 웹툰 〈
요괴난전〉에서 등장하며,
명성황후의 계략에 빠져 권좌에서 물러나 있지만 다시 재기를 노리며 명성황후와 싸우고 있다.
김동인은 흥선대원군에 대한
야사들을 바탕으로 《운현궁의 봄》이라는 전기적 역사
소설을 쓰기도 했다. 야사를 기본으로 쓴 소설이기 때문에
고증은 당연히 개판이지만 김동인이 쓴 역사 소설 중에는 그나마 읽을만한 작품이다. 이 소설의 내용이 흥선대원군의 진짜 삶으로 오인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편이며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흥선대원군 관련 책은 대부분 이 책의 내용을 따서 쓰고 있다. 《운현궁의 봄》에 등장하는 흥선대원군은
와신상담이 뭔지 보여주는 인물인데
왕위를 되찾기 위해 견제 세력에게
숙청당하지 않도록
백수 건달 행세를 하며
양반들의 다리 밑으로 기어가는 등의
굴욕을 당하고도 아무렇지 않은 채하며 집에 와서는 굴욕의 쓴
눈물을 삼킨다. 그러다가도 불의를 못 참으면 위엄 넘치는 일갈이노오오오옴!!을 내리고는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난봉꾼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카리스마
폭풍간지의 인물로 그려진다. 사실
듣보잡이나
흑역사에 가까워서 그렇지, 김동인은 《운현궁의 봄》 외에도 《교상(橋上)의 국태공》과 《젊은 그들》이라는 두 편의 흥선대원군 관련 소설을 썼다. 전자는
임오군란 직후를 다룬 작품이고 후자는 청나라에
납치되는 흥선대원군을 다룬 작품이다. 특히 《젊은 그들》의 일부 대목은 1980년대까지 출판된 흥선대원군
위인전에서 마지막 부분에 나올 정도였다.[3]
소설 《대원군》은 묵사 유주현(1921~1982) 작가가 1965년 7월 1일부터 1967년 8월 13일까지 <
조선일보>를 통해 연재한 대하역사소설로 1967년 7월부터
삼성출판사가 총 5권짜리 단행본을 냈다. 이후 1993년 신원문화사에서 복간한 바 있다.
대체역사소설 《
한제국건국사》에서는 권철상 일행을 도와 조선 내부의
개혁을 이끌며 대등한 개항을 준비한다. 물론 정치 싸움 도중에 어쩔 수 없어서 제거하려고도 했지만[4] 흥선대원군이 없었다면 권철상 일행이 큰 역할을 맡을 수 없었을테니 이것도 참작이 되는 행동. 2부 말미에서는 일부러
권력을 내세우며 오만하게 구는데 이는 자기가 스스로 물러나면 오히려 아들이 제대로
왕권을 행사 못할 것이니 자신을 스스로 축출하여 왕의 권위를 세우라는 깊은 뜻. 그러나 3부가 출판되지 않아보인다.[5]
대체역사소설 《
봉황의 비상》에서는 조기 개항으로 부강해진 조선의 위치를 다지기 위해 1부와 2부에서
청나라와
일본을 상대로 차례로
전쟁을 벌인다. 2부에서는 서구 열강의 요구로
헌법을 준비 중인데 당초 관선
의회를 설치하는 안에서 사실상
영국식
입헌군주제로 가는 안으로 선회하려 한다. 이는 섭정이 끝나고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들인
황제가 미덥지 않아서이다.
대체역사소설 《상왕 흥선》에서는 미래의 대학 교수가 사고를 당해
영혼째로
타임슬립. 열병에 걸려 죽은 진짜 이하응의 몸에
빙의해 조선의 현 상황을 파악하고 상업의 길을 가면서 동방의
로마 제국과 비슷한 위치로 조선을 만들게 된다.
대체역사소설 《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에서는 비범한
능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상당한
권력욕의 소유자로 등장한다. 왕이 되면서 바뀐 아들(?) 이형과 서로 협력과 견제를 오가며 암투를 벌이게 된다. 아들에게 밀려난 후
미국 캘리포니아를 방문했는데 자신을 환영하는
아시아계 주민들에게 감명받은 후
캘리포니아에 정착을 결심한다. 이후에는
대한제국계 마피아 조직
검계 보스로서 자신의 세력을 키울 가능성이 보이고 있다. 그러다가 손주를 본 이형이 아주 박람회에 초대하면서 대한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이형에게서 사실 자신이 미래인이라는 진실을 들으면서 임종을 맞게 되는데 이형이 황제로 추존하며 고종이라는
묘호를 올려 이 세계에서 '고종 이하응'이 된다.
대체역사소설 《
고종, 군밤의 왕》에서는 주인공 귀남의 노력으로 원래 역사보다 훨씬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하였고 때로는 악역을 맡아 조선의 개화를 이끌었다.
공산당을 창당하여 세도가들을 견제하고 있으며 며느리인
명성황후를 자신이 죽고 나면 종실을 이끌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다.
웹소설 《
임금님의 첫사랑》에서는 여주인공 박선영의 첫사랑이며 그녀를 '추선'이라 부르며 짝사랑하는 조력자로 나온다.
대체역사소설 《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에선 평범한 왕족 중 한 명인 흥선군으로 등장하며 연구내용을 발표하다 사고를 낸 뒤[6] 주인공들의 유도로 농업연구로 전환하였고
감자역병을 막기위해 유럽 순방을 다니며 100만여명이 아사했을
아일랜드 대기근의 피해를 수만명 단위로 최소화시키는 업적을 세웠다. 이런 까닭에 아일랜드에서는 프린스 썬(Sun)[7]이라 부르며 추앙하고 있다. 깨알같은 아일랜드인들의
프레이즈 더 썬은 덤.
1959년작 영화 〈대원군과 민비〉와 1965년작 〈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에서는 배우
김승호가 연기했다. 그의 연기 커리어 중 악역을 맡은 얼마 안된 작품이었다.
# 관련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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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9176e> 〈청일전쟁과여걸민비〉의 흥선대원군
1968년 개봉한
신상옥 감독의 영화 〈
대원군〉에서는 배우
신영균이 연기했다. 흥선대원군은 노골적으로
박정희를 모델로 했는데 친정부 영화는 절대 아니고 당시 야권(
민주화 세력)에 대한 노골적인 찬사를 보냈다는 평이 있다. 또한 이 작품은 1960년대에 나온 것들 중 유일하게 동시녹음을
시도한 바 있다. 당시 제작진은 신축된 안양촬영소에서 나그라 녹음기와 지향성 마이크로 동시녹음 작업을 한 것이다.
흥선대원군을 다룬 최초의 TV 사극은 1966년작 TBC 럭키극장[8] 〈
대원군〉이다. 극본은 장덕조, 연출은 최상현 PD이며 주제가 작곡은 당대 유명 작곡가
박춘석, 노래는 명가수 이미자가 각각 맡았다. 또한 당시 대원군 역할은 배우 김성옥이 맡았다. 그러나 방영 당시 유주현 작가가 《조선일보》에 연재한 동명의 소설과 이름이 겹친다고 하여 유 작가와 조선일보사가 한국방송윤리위원회에 제소한 바 있으나, 방윤 측은 11월 3일에
이를 기각했다. (
참고 기사)
1972년에는 유주현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일일연속극 〈대원군〉이 MBC에서 방영되었다. 극본은 이은성, 연출은 표재순 PD였으며 배우
전운이 대원군 역을 맡았다.(
참고 기사)
1975년
TBC 〈이조여인 5백년사〉 '임금님의 첫사랑' 편과, 1976년 〈풍운백년〉 - '횃불'에서는 배우
백일섭이 연기했다.
1982년
KBS 대하드라마 〈
풍운〉에서는 배우
이순재[9]가 연기했다. 이 드라마에서는 대원군이 공식석상에서 스스로를 '여(余)'라고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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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9176e> 〈풍운〉의 흥선대원군
1982년 한미
수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MBC에서 제작한 단막극 〈한미백년〉에서는 배우
최불암이 연기했다. 작중
이미지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꼬장꼬장하면서도
카리스마 있는 이미지이다. 작 중 흥선대원군의
나이는 50대 안팎인데 이보다 더 늙게 분장하여 나온 것이 특징.
1995년 KBS 대하드라마 〈
찬란한 여명〉에서는 배우
변희봉[12]이 연기했다. 실제 흥선대원군과 비슷한
외모로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오죽하면 사람들이 당시 변희봉을 볼 때 국태공(흥선대원군의 별칭)이라고 불렀다는 일화도 있을 정도이다.
베트남 관복 복장(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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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9176e> 〈찬란한 여명〉의 흥선대원군
2001년 KBS 특별기획 드라마 〈
명성황후〉에서는 배우
유동근[13][14]이 연기했다. 40대 초반부터 사망까지 연기하기 때문에 극이 진행되면서 차츰차츰 늙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드라마가 명성황후를 미화한 것으로 악명 높은 작품이지만 대원군도 적잖게 미화되어 나오는데, 특히 말년에 황후와 화해하여 함께 일본에 맞서는 모습으로 나오는 것이 압권이다. 이 때문에 을미사변에도 참여하지 않으려 했는데 일본 측이 강제로 끌고 간 것으로 그려지며, 고종과의 사이도 원만해서 실제로는 대원군의 장례에 고종이 참석하지 않은 것과 달리 임종을 지키지 못했을 뿐이지 황급히 달려오다가 곡성을 듣고 망연자실해하는 고종의 모습이 묘사된다. 다만 자기 형인 흥인군이 백성들에게 살해 당했을 때 슬퍼하는 기색도 없이 '사람도 아닌 짐승을 묻을 수 있냐, 대역죄로 다스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지. 생각 같아선 사지를 절단내 효수하고 싶다' 라며 막말까지 하는 것을 보면 냉혹한 모습도 없지 않다.
[1]
1982년
KBS 대하드라마 《
풍운》과 1990년
MBC 드라마 《
조선왕조 오백년 - 대원군》이 있기는 하지만 둘 다 너무 오래 전 작품이라 586 내지 X세대 이후 사람들은 골수 사극 매니아가 아닌 이상 아예 모른다고 봐도 된다.
[2]
다만, 고증 오류가 몇 개 있다. 대원군은 지위상으로는 종친일 뿐이기에, 고종과 명성황후에게 반말을 할 수 없고, 고종에게서 '아바마마'라고 불릴 수도 없다.
[3]
대표적인게
금성출판사 《한국 위인전》.
[4]
결과적으로 제거는 안했다.
[5]
공개된 3부 내용을 보면 아들은 그렇게 찾은 왕권으로
나라를 망칠거라 결과적으로 실수가 될 일이 된다.
[6]
우연히
백린탄을 만들어서 화제가 발생했다.
[7]
조선의 왕족이므로 프린스 흥선이라 부르다가 발음하기 힘들다고 프린스 선으로 줄여부르게 된 것.
[8]
당시
락희화학공업사가 스폰서였다.
[9]
이순재는 2019년 KBS 〈
인간극장〉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흥선대원군 역할을 맡을 때
금연을 했다고 하는데 만조백관을 앞에 두고 4분간 몰아치는 연설문이 있었으며 제대로 표현하려면
목에 불편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흥선대원군 역을 연기 인생에서 제일 인상깊은 배역이자 또 연기하고 싶은 배역이라고 회고한 바 있으며 이 드라마 자체를 '양질의 드라마'였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10]
김흥기는 이후
용의 눈물에서 정도전을 연기한다.흥선대원군이 정도전을 복권한 것은 자기 전생이었기 때문이다.
[11]
1982년 KBS 대하드라마 《
풍운》에서는 흥선대원군(
이순재 분)의 지기인
김병학 역.
[12]
〈
조선왕조 500년 11화 - 대원군〉에서는 흥선대원군(
임동진 분)과 가까웠던 대신
홍순목 역.
[13]
유동근은 이 작품으로
용의 눈물의
태종 이방원 역할로 받은 1997년
KBS 연기대상에 이어 2번째로 2002년 KBS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14]
유동근은
용의 눈물에서 정도전을 죽이는 이방원을 연기했는데 여기서는 정도전을 복권하는 흥선대원군을 연기했다. 훗날
정도전에서 정도전을 등용하는 이성계까지 연기하면서 정도전을 등용하고 죽이고 복권한 것은 전부 유동근(...)이라는 배우개그가 성립했다.
[15]
# 초기
# 관복복장
# 노년
# 최후의 상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