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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1 02:40:53

한섬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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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줄거리3. 연재 현황4. 등장인물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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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시대극 웹툰. 작가는 포천으로 알려진 팬텀 하록의 네이버 정식연재 등단작이다. 네이버에서는 닉네임 대신 유승진이라는 본명으로 연재했다.

'포천'처럼 조선시대가 배경이며(안동 김씨 세도나 서학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정확한 배경은 철종대), 양반가 자제인 한섬을 주인공으로 하여 당시의 생활상과 이런저런 풍습 등을 보여주고 있다. 제목인 '한섬세대'는 아무래도 88만원 세대에서 따온 듯. 첫 화에서 설명한 바에 따르면 종 9품 벼슬아치의 녹봉을 대략적으로 계산했을 때 한 달에 곡식 한 섬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에서 힌트를 얻은 것 같다.

2. 줄거리

연재 초반에는 생활상에 대한 소개 및 현대 한국 사회에 대한 자잘한 패러디, 철없는 한섬의 일상생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지만, 20화 전후로 시대 변화에 휘말리며 줄거리가 급 전개되기 시작해 한섬이의 모험, 갱생기로 변했다.

그러나 한섬의 행동반경와 마음가짐이 180도 달라지고 전체적인 스케일이 크게 변화한 것에 대해 독자들이 납득할 수 있을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뭔가 억지로 스토리를 그런 쪽으로 몰고 간다는 느낌이 강했다. 스케일 묘사는 주몽(드라마)을 보는 듯 하다 게다가 운과 우연, 인맥에 의해 주인공의 운명이 좌우되는 조짐이 보이다 결국 39화~40화의 폭풍전개로 소드마스터 한섬이란 오명을 들으며 마무리되어 버렸다. 포탄을 몇 개 던져 봐라! 운요호. 우와아아앙![1] 이에 대해 작가는 어차피 과거를 통한 세태 풍자와 한섬의 내면 성장이 주된 이야기였기 때문에 본인이 의도한 만족스러운 엔딩이었다고 밝혔다. 그래도 너무 급작스럽게 끝낸 결말이라 좀 석연치 않은 것은 사실. 네이버 웹툰에서 그리 반응이 신통치 않았던 점으로 보아 자의/타의에 의한 조기완결 처리 혹은 분량 조절 실패라고 볼 여지도 있다. 네이버 웹툰에서 별점과 실제 인기 여부는 별개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28화에서는 김주영의 대하소설 '객주' 의 주인공 천봉삼이 특별출연한다. 시대배경이 비슷한 걸 이용한 절묘한 크로스오버.

3. 연재 현황

네이버 웹툰에서 2011년 11월 7일부터 매주 월요일에 연재됐다.

2012년 8월 12일 후기 포함 총 41화로 완결되었다.

4. 등장인물



[1] 마지막화의 작가의 말이다. 대원군의 측근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 뒤는 시궁창이라는 뜻? [2] 서당에서 원하는 벼슬을 묻는 질문에 왕이 되고 싶다고 했다. 진지하게 취급하면 이건 역모감이다. [3] 대원군이 실세로 있을 수 있던 시절도 이후 명성황후와 고종이 실권을 잡으면서 결국 물건너가게 된다(...) 이 상황에서 대원군의 측근이었다면 대원군이 완전히 몰락한 후 물갈이를 잽싸게 하지 않은 한 민씨 일파에 찍혔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보인다. 그 이후까지 살아남는데 성공한다 쳐도 결국 외세에 흔들리는 나라와 직장을 봐야했을 것이다. 젊은 날에 출세한 건 좋으나 여러모로 훗날이 걱정되는 인물. [4] 이는 서래가 한섬을 도와 주고 옥바라지도 해준 것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일반적으로 주인이 잡혀가면 당장 먹고 살기에 힘겨워 도망치고 돌아오지 않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5] 중국 당나라 때부터 있었던 것이라 '다당계'라고 한다고 하며 수레와 말을 이용한다 하여 '거마상'이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물론 정말 그런 건 아니고 다단계 판매 거마대학생을 풍자한 것이다. 조선시대에 진짜 이런 거 있었다고 생각하면 골룸. [6] 실제 조선 후기에 유행했다고 하는 일종의 복권. 이 양반 왈 두마리 토끼를 쫓는다 해 로토擄兎라고.. [7] 처음 업데이트 되었을 때에는 대원위라고 되어 있었다. 물론 이 시절의 흥선군은 아무리 봐도 대원군이 되기 전(...). 작가의 실수였던지 수정되었다. [8] 실제 역사에서도 불우한 흥선군을 극진히 예우하였으며, 흥선군 집권 후에도 요직에 등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