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노 탱리고도선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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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흉노 선우
호록고선우 狐鹿姑單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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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호 | 좌현왕(左賢王) | |
성 | 난제(攣鞮) | |
휘 | 호록고(狐鹿姑) | |
아버지 | 저제후선우(且鞮侯單于) 난제저제후(攣鞮且鞮侯) | |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85년 |
재위 기간 | 기원전 96년 ~ 기원전 85년 |
흉노의 제10대 선우. 저제후의 아들로 원래는 좌현왕이었다가 선우에 올랐는데, 병이 있었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좌대장이었던 동생을 여러 사람들이 선우로 세웠다가 좌대장이 이를 양보하자 병이 들었다는 핑계로 사양했다.
좌대장이 다시 사양하자 선우가 되었으며, 좌대장인 동생을 좌현왕으로 삼았지만 몇 년 후 병들어 죽었다. 그의 아들인 선현탄이 선우 자리를 양보하자 일축왕으로 삼고, 자신의 아들인 호연제를 좌현왕으로 삼았다.
또한 오선막이 투항하자 자신의 조카인 일축왕 선현탄의 누이를 처로 삼게 하면서 그 무리를 통솔하여 흉노의 동부 지역에 살게 하였다.
기원전 90년에 흉노에서 한나라의 오원, 주천 등을 침입했다가 한나라에서 마통, 이광리, 상구성의 군사 등이 공격하기 시작하자 한나라의 군사가 대거 출동했다는 소식을 듣고, 치중을 북쪽으로 옮기게 하여 질거수(울란바토르의 북쪽)에 이르게 하였다.
좌현왕에게 사람들과 함께 여오수를 건너 6, 700리로 가서 두함산에 머물도록 지시하면서 스스로 군사를 이끌고 고차수를 건넜으며, 이후 흉노의 군대는 한나라의 군대와 싸우다가 불리하자 철수하였다.
이광리가 무리하게 추격하였다가 연연산으로 돌아가자 한나라의 군사가 피로했다는 것을 알고, 직접 5만의 기병을 이끌고 공격하지만 양 군의 피해가 컸다고 한다.
밤 중에 한나라의 군사들이 가는 길에 깊은 참호를 파서 뒤에서 공격하자 혼란에 빠졌으며, 그 결과로 한나라 조정으로부터 의심을 받고 있던 이광리가 항복하자 자신의 딸을 주어 처로 삼게 하는 등 후한 대우를 한다.
기원전 89년에 한나라에게 서신을 보냈다.
예의 차리기 번거롭고 교역 열어서 여자를 보내면 처로 삼고, 매년 물품을 보내면 침범 안할게.
한나라에서 이 서신에 대해 사자를 보내서 화답했다, 그 자리에서 이광리에게 들은 대로 한 무제의 태자가 반란을 일으킨 것을 들어 한나라를 비난했다가, 사자가 반격으로 흉노는 묵돌이 아버지 두만을 죽였다고 말하자 빡쳐서 이 사자를 억류하였다가 3년 뒤에 보냈다고 한다.
이광리를 매우 총애하였는데 그를 시기한 위율이 선우의 어머니가 병이 들었을 때, 흉노족 무사를 시켜서 옛날에 출병할 때 늘 이사를 잡아서 제사를 지냈는데 그 제물로 쓰지 않냐고 말하자 이광리를 잡아가둬 죽인 후 제사를 지냈다.
이광리가 죽은 후 몇 날 동안 눈비가 내리면서 가축이 죽거나 백성들이 병에 걸렸으며, 곡식이 여물지 않자 두려워하여 이광리를 위한 사당을 세웠으며, 기원전 85년에는 한나라와 화친하고자 했지만 마침 병이 들었다.
자신이 좌대도위로 삼은 이복동생을 후계자로 세울 염려를 한 연지가 좌대도위를 살해해서 좌대도위의 동복 형이 원한을 품자 선우를 만나지 않으려고 한 일이 있었는데, 아들이 어려서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는 이유로 동생인 우곡려왕을 후계자로 세우라는 말을 남기고 그 해에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