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북흉노 선우
어제건선우 於除鞬單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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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 난제(攣鞮) | |
휘 | 어제건(於除鞬) | |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후 ?년 ~ 기원후 93년 |
재위 기간 | 기원후 91년 ~ 기원후 93년 |
1. 개요
북흉노의 4대 선우. 북선우(어제건의 형)의 동생으로, 전전대 선우인 우유(북흉노)의 이복동생이다.2. 생애
영원 3년(91년) 북선우(어제건의 형)가 후한 우교위(右校尉) 경기(耿夔)와의 싸움에서 도망쳤다 실종되자 당시 우곡리왕(左谷蠡王)이었던 어제건이 스스로 즉위해 선우가 되었다. 선우로 즉위한 어제건은 온우건왕(溫禺鞬王), 골도후(骨都侯) 이하 부중(部衆) 수천 명을 거느리고 포류해(蒲類海)[1]에 머무르면서 후한과 우호관계를 맺었다.안제(후한)은 어제건을 북선우로 삼자는 대장군(大將軍) 두헌(竇憲)의 의견에 따라 어제건(於除鞬)을 북선우(北單于)로 인정해주었다. 영원 4년(92년), 안제는경기(耿夔)를 파견하여 곧바로 옥새(玉璽)와 새수(璽綬)를 주고, 옥구검(玉具劍) 84개와 깃털 장식의 수레 덮개가 달려 있는 사(駟)와 량(輛)을 하사했다. 중랑장(中郞將) 임상(任尙)을 시켜서 [황제의] 부절(符節)을 지니고 [북선우를] 호위하여 이오[현](伊吾縣: 오늘날 감숙성 安西縣의 서북쪽이다.)에 주둔하도록 하였는데 남선우의 전례와 같도록 했다.
후한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어제건은 북흉노의 선우정이 있었던 곳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같은해 대장군 두헌이 주살했다. 이듬해인 영원 5년(93년), 어제건이 제멋대로 북쪽으로 돌아가려하자 안제는 장병장사(將兵長史) 왕보(王輔)에게 기병 1천여명을 주고 임상(任尙)과 함께 추격하여 어제건을 유인한 후 그를 참수하고 부중을 격파했다.
[1]
오늘날
신장 위구르 자치구 바리쿨호(巴里坤湖: 바르쿨-노르)로 비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