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7-22 23:47:45

행령

진서(晉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color: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제기(帝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1권 「선제기(宣帝紀)」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사마의 사마사 · 사마소(昭) 사마염
4권 「혜제기(惠帝紀)」 5권 「회제민제기(懷帝愍帝紀)」 6권 「원제명제기(元帝明帝紀)」
사마충(衷) 사마치 · 사마업 사마예 · 사마소(紹)
7권 「성제강제기(成帝康帝紀)」 8권 「목제애재폐제기(穆帝哀帝廢帝紀)」
사마연(衍) · 사마악 사마담 · 사마비 · 사마혁
9권 「간문제효무제기(簡文帝孝武帝紀)」 10권 「안제공제기(安帝恭帝紀)」
사마욱 · 사마요 사마덕종 · 사마덕문
※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 31·32권 「후비전(后妃傳)」 ||
[ 재기(戴記) ]
||<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width=33%> 101권 「유원해재기(劉元海戴記)」 ||<-2><width=34%> 102권 「유총재기(劉聰戴記)」 ||<width=33%> 103권 「유요재기(劉曜戴記)」 ||
유원해 , 유화 · 유선, 유총 , 유찬 · 진원달, 유요
104 · 105권 「석륵재기(石勒戴記)」 106 · 107권 「석계룡재기(石季龍戴記)」
석륵 , 석홍 · 장빈, 석계룡 , 석세 · 석준 · 석감 · 염민,
108권 「모용외재기(慕容廆戴記)」 109권 「모용황재기(慕容皝戴記)」
모용외 , 배억 · 고첨, 모용황 , 모용한 · 양유,
110권 「모용준재기(慕容儁戴記)」 111권 「모용위재기(慕容暐戴記)」
모용준 , 한항 · 이산 · 이적, 모용위 , 모용각 · 양무 · 황보진,
112권 「부홍등재기(苻洪等戴記)」 113 · 114권 「부견재기(苻堅戴記)」 115권 「부비등재기(苻丕等戴記)」
부홍 · 부건 · 부생 , 왕타, 부견 , 왕맹 · 부융 · 부랑, 부비 · 부등 , 삭반 · 서숭,
116권 「요익중등재기(姚弋仲等戴記)」 117 · 118권 「요흥재기(姚興戴記)」 119권 「요홍재기(姚泓戴記)」
요익중 · 요양 · 요장 요흥 , 윤위, 요홍
120권 「이특등재기(李特等戴記)」 121권 「이웅등재기(李雄等戴記)」
이특 · 이류 · 이상 이웅 ·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여광 · 여찬 · 여륭
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걸복국인 · 걸복건귀 · 걸복치반 · 풍발 , 풍소불,
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800080><tablebgcolor=#800080> ||
}}} ||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幸靈
생몰연도 불명

동진의 인물. 강주(江州) 예장군(豫章郡) 건창현(建昌縣) 출신.

2. 생애

행령은 말수가 적고, 난쟁이 무리와 어울려 함께 살았다. 그는 모욕을 당해도 화내지 않았기에, 마을 사람들은 그를 바보라 불렀고, 심지어 그의 부모와 형제들도 그를 바보로 여겼다. 어느 날, 행령은 부모로부터 벼를 지키는 임무를 맡았는데, 소떼가 몰려와 벼를 먹어도 이를 제제하지 않고, 소들이 떠난 후에야 남은 벼를 정리하였다. 이를 본 그의 부모가 화를 내자, 행령이 이렇게 답했다.
"만물이 세상에 태어나면 모두 먹고 싶어 합니다. 소들이 먹고 있는데 어찌 쫓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그의 아버지는 더욱 화를 내며 말했다.
"네 말대로라면 왜 망가진 벼를 정리했느냐?
이에 행령이 다시 답했다.
"이 벼 또한 자신의 생을 다하고 싶어 합니다. 소들에게 범해진 이후에 어찌 제가 수확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당시 순양(順陽) 사람 번장빈(樊長賓)은 건창현령을 지내고 있었는데, 그는 백성들을 동원하여 건성산(建城山)에서 관용 배를 건조하게 하였고, 현의 관리들은 백성들에게 젓가락 한 쌍씩을 만들게 하였다. 행령 또한 젓가락 한 쌍을 만들었고, 그것을 아직 제출하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도둑맞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도둑이 심한 복통을 겪으며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니, 행령이 그를 찾아가 물었다.
"그대가 내 젓가락을 훔치지 않았소?"
도둑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후, 통증은 더욱 심해졌고, 행령은 다시 말했다.
"그대가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정말 죽게 될 것이오."
도둑은 그제서야 급히 고백하며 젓가락을 내놓았다. 그러자 행령이 그에게 물을 마시게 했고, 병은 즉시 나았다. 이 일로 인해 사람들이 행령을 두려워하는 동시에 존경하게 되었다.

마침내 관용 배가 완성되어 물에 띄우려고 했을 때, 관리들은 200명을 동원해 배를 움직이려고 했으나 배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을 징집하려 하니, 행령이 말했다.
"이 인원으로도 충분하나, 다만 분배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제가 직접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손에 젓가락을 들고 단 100명의 사람만을 동원해 배를 움직였고, 배는 마침내 물 위에 띄워져 물살을 가르며 나아갔다. 모두가 크게 놀라며 행령을 신성한 인물로 여기게 되었고, 그의 명성은 널리 알려졌다.

어느 날, 공중유(龔仲儒)의 딸이 오랜 병에 걸려 숨이 끊어질 지경에 이르자, 행령은 그녀의 병세를 살핀 뒤에 물을 마시게 했고, 그녀는 곧 힘을 되찾아 병으로부터 회복되었다. 이후 행령은 10여 년간 마비병을 앓고 있는 여의(呂猗)의 어머니 황씨(皇氏)를 치료하기로 하였다. 행령은 황씨로부터 몇 자 떨어진 곳에 앉아 눈을 감고 조용히 있다가, 잠시 후에 여의에게 말했다.
"부인을 일으켜 세우시오."
여의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어머니께서는 오랫동안 병을 앓아오셨는데, 어찌 갑자기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행령이 다시 말했다.
"그냥 시도해 보시오."
그래서 두 사람이 그녀를 부축하여 일으키자, 잠시 후 행령이 부축을 풀라고 했고, 황씨는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되면서 완전히 회복되었다. 이후로 백성들은 행령을 따르기 위해 물밀듯이 몰려들었고, 그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황씨는 병을 오랫동안 앓아왔기 때문에 재발을 두려워했지만, 행령은 물 한 그릇을 남겨두고 그것을 매일 마시게 하였다. 황씨가 매번 물을 마신 뒤에는 새로운 물로 채워졌고, 20여 년 동안 그 물은 항상 맑고 깨끗했으며, 먼지나 티끌도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고회(高悝)의 집에는 귀신이 들어, 말로 꾸짖고, 물건을 던지고, 내외를 어지럽혔으나, 사람의 형체는 보이지 않았고, 물건은 저절로 움직였으며, 자주 화재가 발생하였다. 무당들은 여러 차례 주술로 이 귀신을 몰아내려 했으나 모두 성공하지 못하였다. 때마침 행령이 고회의 집을 지나가게 되자, 고회는 그에게 자신의 집을 한번 봐주기를 청하였다. 행령은 길가에서 그의 집을 보고 말했다.
"이 집이 당신의 집이오?"
고회가 맞다고 답하니, 행령은 알았다는 답변만 하고 갈길을 마저 가려 하였다. 하지만 고회가 계속 간청하여 마지못해 그의 집으로 들어갔다. 행령은 문에 덕지덕지 붙여있는 부적들을 보더니 말했다.
"마땅히 올바른 것으로 사악함을 물리쳐야 하는데, 사악함으로 사악함을 다스리려 하니 어찌 그칠 수 있겠습니까!"
그런 후에 부적을 모두 불태우게 하고, 그저 현관에 잠시 앉았다가 떠났다. 그리고 그날 밤, 귀신은 즉시 사라져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행령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많은 사람을 구했으나 보답이나 사례를 받지 않았다. 그는 말을 타지 않은 채 걸어다녔으며, 결혼도 하지 않았다. 사람됨이 매우 공손하여 사람을 만나면 먼저 인사하고, 말할 때는 항상 자기 이름을 밝히며 말하였다. 산림에서 다치거나 병든 초목을 보면 반드시 돌봐주었고, 길에 쓰러진 물건을 보면 바로세웠다. 한번은 강주(江州) 일대를 유람하고 다니며, 그곳의 호족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하였다.
"천지에 있는 만물은 모두 같아서 그 본성을 잃지 않기를 바라건만, 어찌하여 사람을 노비로 삼습니까! 여러분이 복을 많이 누리며 건강을 유지하고 싶다면, 그들을 모두 해방하십시오."
그렇게 10여 년 동안 행령의 도움을 받은 이들이 매우 많았으나, 어느정도 시간이 더 지난 후에는 행령도 마침내 결혼을 하고, 노비를 사들이고, 금품을 받고, 선물을 주고받게 되었다. 그러자 그의 능력이 점점 쇠퇴하여, 치료하는 것이 반쯤 성공하고 반쯤 실패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