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4-08 14:53:44

한국프로야구/2002년/신인 드래프트

파일:KBO 로고(세로형/화이트).svg 신인 드래프트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


1. 개요2. 1차 지명3. 2차 지명
3.1. 지명방식3.2. 지명 결과
4. 드래프트 평가5. 이모저모

1. 개요

2002년 KBO 신인 드래프트 (공식 명칭: 2002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는 1차 지명과 2차 지명으로 진행되었다.

2. 1차 지명

2001년 6월 5일까지 각 팀에서 팀별 연고지 고교 출신 선수 중 1명을 뽑았다.
1차 지명자 계약금
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 조순권 (유신고, 투수)[1][2] 0.2억 원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1999~2009).svg 이재영 (선린정보고-영남대, 투수) 1억 원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 권혁 (포철공고, 투수) 1.5억 원
파일:LG 트윈스 엠블럼(1990~2005).svg 김광희 (성남고, 내야수) 3.2억 원
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1996~2002).svg 이정민 (경남고-동아대, 투수) 1.8억 원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96~2001).svg 김진우 (진흥고, 투수) 7억 원
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1994~2006).svg 신주영 (청주기계공고, 투수) 1.3억 원
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0~2005).svg 김지완 (인천고-건국대, 투수) 1억 원

3. 2차 지명

2001년 6월 15일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개최되었다.

고등학교 및 대학교 졸업 예정자, 상무 소속 선수들 등 총 663명이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했다.[3]

3.1. 지명방식

1라운드부터 12라운드까지 진행되며 각 팀은 최대 12명의 선수를 지명할 수 있다. 단, 지명을 원치 않는 팀의 경우 해당 라운드에서 패스할 수 있다.

지명방식은 각 라운드마다 1명의 선수를 전년도 순위의 역순대로 지명하는 방식이다. 예외로, SK는 신생팀 혜택을 받아 1라운드에서 3명의 선수를 지명할 수 있다. 대신 11, 12라운드에는 참여할 수 없다.[4]

3.2. 지명 결과

라운드 SK 한화 해태 롯데 LG 삼성 두산 현대
1 제춘모
(동성고,
투수)
유혜정
(포철공고,
투수)
신용운
(전주고,
투수)
고효준
(세광고,
투수)
김우석
(인천고-홍익대-포스틸-상무,
내야수)
조동찬
(공주고,
내야수)
고영민
(성남고,
내야수)
배힘찬
(서울고,
투수)
윤길현
(대구고,
투수)
박창근
(경기고,
투수)
2 곽철병
(경주고-경남대,
투수)
정병희
(휘문고,
투수)
문현정
(선린인터넷고,
투수)
이명우
(부산공고,
투수)
박영복[5]
(경북고,
포수)
김현수
(신일고,
외야수)
박종섭
(배명고,
내야수)
허웅
(부산고,
포수)
3 김용섭
(한서고,
내야수)
정구연
(배재고,
포수)
※@
홍찬영
(군산상고,
투수)
허일상
(덕수상고-단국대,
포수)
이시몬
(인천고,
투수)
손주인
(진흥고,
내야수)
이경환
(경기고,
포수)
이현승
(동산고,
투수)
4 서성종
(광주일고,
포수)
임재청
(경남고,
투수)
장준영
(세광고,
내야수)
김풍철
(동래고-동아대-포스틸-상무,
투수)
김주형
(공주고,
외야수)
※@
노병오
(청주기공,
투수)
황덕균
(선린인터넷고,
투수)
소중형
(배재고,
외야수)
5 박두일
(영흥고,
내야수)
송혁
(선린정보고-제주산업정보대-탐라대,
외야수)
김규태
(성남고,
외야수)
이승재
(마산고,
포수)
이현석
(동산고-경희대,
투수)
안지만
(대구상고,
투수)
이민택
(배명고-탐라대,
포수)
장태종
(한서고,
투수)
6 박희수
(대전고,
투수)
최주녕
(부산고,
내야수)
박상중
(마산고-제주관광대,
투수)
신종길
(광주일고,
내야수)
김수한
(성남서고,
내야수)
최형우
(전주고,
포수)
이승엽
(부산고,
외야수)
윤성귀
(경남고,
투수)
7 송정훈
(경북고,
외야수)
김경선
(진흥고,
투수)
조태수
(배명고,
투수)
강경희
(세광고,
투수)
민경재
(경남고,
포수)
임세업
(서울고,
외야수)
박훈범
(중앙고,
외야수)
윤승현
(경기고,
내야수)
※@
8 박재혁
(성남서고,
투수)
김태완
(중앙고,
내야수)
조용원
(진흥고,
투수)
손호광
(동산고,
투수)
최종성
(경북고,
투수)
이태호
(경동고,
투수)
최종군
(강릉고,
투수)
홍종원
(인천고,
외야수)
9 유희상
(경남고,
내야수)
변정민
(대전고,
내야수)
조민철
(광주상고-대불대,
포수)
추경식
(전주고,
내야수)
손명래
(배명고,
투수)
정홍준
(경북고,
투수)
오주헌
(신일고,
투수)
이운영
(영흥고,
외야수)
10 이한진
(인천고,
투수)
송광민
(공주고,
내야수)
황연선
(동산고,
내야수)
문재화[6]
(군산상고,
내야수)
곽병모
(부산고-탐라대,
투수)
박정현
(배재고,
내야수)
이상원
(중앙고,
투수)
※@
김규섭
(덕수정보고,
투수)
11 없음[7] 안영진
(북일고,
투수)
이성민
(강릉고,
투수)
이상현
(경남상고,
투수)
※@
김동휘
(동성고,
내야수)
최무영
(춘천고,
외야수)
하정인
(서울고,
내야수)
장원삼
(마산용마고,
투수)
12 없음 연경흠
(청주기공,
외야수)
남궁훈
(덕수정보고,
투수)
신원주
(부산고-고려대-포스틸-상무,
투수)
김준호
(광주상고-동국대,
외야수)
김일희
(서울고,
외야수)
김명효
(배명고-대불대,
내야수)
송선목
(부천고,
투수)

4. 드래프트 평가

4.1. 선수별 총평

4.1.1. SK 와이번스

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0~2005).svg
SK 와이번스
RD 지명자 평가
1차 김지완
(인천고-건국대 / 투수)
애초에 1차 지명치곤 기대치가 높은 편이 아니었으며 입단 2년만에 방출되었다.
2차 1RD 1번 1 제춘모
(동성고 / 투수)
입단 직후 이승호, 채병용을 잇는 토종선발로 자리잡는가 했으나 이후 지속적으로 성적이 하락세를 타다가 큰 활약 없이 2군 붙박이로 전락했다. 2014년 구단의 코치 제안을 수락하며 은퇴했다. 2015년에서 2021년까지 팀에서 코치로 재직했다. 선수 시절 평과는 반대로 코치로서의 평가는 꽤 좋다. 선수들 사이에서 인망이 두터웠던 편.
2차 1RD 1번 2 윤길현
(대구고 / 투수)
상무 입대 기간을 제외하면 SK 1군에서 꾸준히 출장하며 꾸준한 활약을 보여줬다. 별 잡음 없이 롯데로 이적한 이후로는 성적이 급락하여 먹튀로 전락했고 족발게이트 사건으로 롯데 팬들에게 좋지 못한 인상만 남기고 은퇴했다.
2차 1RD 1번 3 박창근
(경기고 / 투수)
계약금 1억6천만원을 받을 정도로 기대를 모았으나 성장하지 못했고 은퇴했다.[8]
2차 2RD 1번 곽철병
(경주고-경남대 / 투수)
2차 3RD 1번 김용섭
(한서고 / 내야수)
1군에서 거의 기회를 받지 못하다가 07년, 11년 각각 1군에서 1타석씩만 서보고 2012년 방출되었다.
2차 4RD 1번 서성종
(광주일고 / 포수)
2007 시즌 종료 후 SK에서 방출되어 LG에 입단했다. LG에서는 1군 3타석 1안타만 기록하고 방출되었다.
2차 5RD 1번 박두일
(영흥고 / 내야수)
2003년 1군에서 한 타석을 소화한 후 2005년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2차 6RD 1번 박희수
(대전고 / 투수)
지명 후 동국대에 입학, 졸업하고 2006년 SK에 입단했으나 1군에서 유의미한 성적은 거두지 못하고 상무에 입대했다가 전역한 2010년부터 약간의 기회를 받기 시작했다. 2012년에는 리그 최고의 셋업맨의 모습을 보여줬으나 이때의 혹사로 구속이 급감했다. 하지만 2013년, 16년 마무리로 좋은 활약을 보이는 등 준수한 활약을 했다. 2020년 팀에서 은퇴를 권유했으나 현역 생활 연장을 선택해 방출되었다가 결국 팀을 구하지 못하고 상무 투수코치로 부임하며 은퇴했다.
2차 7RD 1번 송정훈
(경북고 / 외야수)
2차 8RD 1번 박재혁
(성남서고 / 투수)
지명 후 중앙대 입학, 미 입단
2차 9RD 1번 유희상
(경남고 / 내야수)
지명 후 단국대 입학, 미 입단
2차 10RD 1번 이한진
(인천고 / 투수)
지명 후 건국대 입학, 2007년 1군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적지 않은 기회를 받았으나 혈행장애로 2009년부터는 1군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이후 1군에서 시즌 한 자리 수 이닝만을 소화하며 입지를 완전히 잃었고 2015년 방출을 요구한 후 팀을 찾지 못하다가 경찰 야구단의 투수코치로 부임하며 은퇴했다.
2차 11RD 1번 없음
2차 12RD 1번 없음

4.1.2. 한화 이글스

파일:한화 이글스 화이트 엠블럼(1994~2006).svg
한화 이글스
RD 지명자 평가
1차 신주영
(청주기계공고 / 투수)
언더핸드, 2012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2차 1RD 2번 유혜정
(포철공고 / 투수)
고교시절 혹사로 재능을 못피웠다. 2005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2차 2RD 2번 정병희
(휘문고 / 투수)
2005시즌 후 SK로 이적하였고, 2010시즌 후 방출되었다.
2차 3RD 2번 정구연
(배재고 / 포수)
지명 후 고려대 진학, 미입단
2차 4RD 2번 임재청
(경남고 / 투수)
지명 후 동아대 진학, 2008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2차 5RD 2번 송혁
(선린정보고-제주산업정보대-탐라대 / 외야수)
2003시즌 후 방출되었다. 은퇴 후 2019년에 부산정보고 코치로 재임하였다.
2차 6RD 2번 최주녕
(부산고 / 내야수)
지명 후 중앙대 진학, 2007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2차 7RD 2번 김경선
(진흥고 / 투수)
지명 후 고려대 진학, 2012년 방출 후 정읍인상고 투수코치로 활동중이다.
2차 8RD 2번 김태완
(중앙고 / 내야수)
지명 후 성균관대 진학, 독특한 타격폼이 유명하다. 자유로이 뒀으면 성적이 더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선수다. 감독 코치 등이 폼을 바꾸려 손을 많이 댄 선수이다. 2016시즌 후 웨이버 공시되었고, 이후 넥센에 입단했지만 별 확약 없이 2018 시즌 후 방출됐다. 방출 후 넥센의 코치 공모에 응시, 합격하면서 현재도 키움의 코치로 재직 중이다.
2차 9RD 2번 변정민
(대전고 / 내야수)
지명 후 동아대 진학, 미 입단
2차 10RD 2번 송광민
(공주고 / 내야수)
지명 후 동국대 진학, 김태완과 더불어 당해 최고의 지명 선수. 지명 후 동국대로 진학, 졸업한 뒤 2006시즌부터 경기에 투입되었다. 2020시즌 후 은퇴하였으며 통산 1,060경기에 출장하였다. 2010 시즌 중 군입대를 하여 구단의 선수 군대 경력의 오점을 스스로 증명한 선수이다.[9]
2차 11RD 2번 안영진
(북일고 / 투수)
지명 후 성균관대 진학, 안영명 투수의 친형으로, 2012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1군 등판 역시 커리어 막바지인 2011~2012년이 전부. 현재는 주니어리그 심판으로 활동하고 있다.
2차 12RD 2번 연경흠
(청주기계공고 / 외야수)
지명 후 인하대 진학, 2013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4.1.3. 해태 타이거즈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96~2001).svg
해태 타이거즈
RD 지명자 평가
1차 김진우
(진흥고 / 투수)
계약금 7억원과 영구결번으로 지정됐던 선동열의 등번호를 해제하고 물려줄 계획도 있었을 만큼 기대치가 높았던 투수였고, 그에 부응해 입단 첫 해부터 용병 투수 다니엘 리오스와 함께 KIA의 호성적에 공을 세웠으나 2004년 정신적 지주인 어머니를 여읜 이후 한동안 프로 무대에서 떠나 방황했고, 2011년 선수단으로 복귀하였으나 입단 초기의 그 모습은 보이지 못하다 2018년 방출됐다.
2차 1RD 3번 신용운
(전주고 / 투수)
지명 당시 빠른 공을 던지는 사이드암으로 전천후 투수로 활약하다 김성한과 서정환에 의해 혹사당한 후 토미존 수술을 받으며 경찰 야구단에 입대해 군복무를 해결했다. 전역 후에는 거의 2군에서만 있다가 2012년 2차 드래프트로 삼성에 이적했고, 삼성 트레이닝 센터의 도움으로 재기에 성공해 롱릴리프로 활약하다 팔꿈치 재부상으로 결국 2017년 방출되어 은퇴했다.
2차 2RD 3번 문현정
(선린인고 / 투수)
나름 괜찮은 커브를 던지는 투수로 기대를 받았으나. 특유의 새가슴 기질을 끝내 극복하지 못해 2011년 방출되었고, 삼성과 NC를 거쳐 은퇴했다.
2차 3RD 3번 홍찬영
(군산상고 / 투수)
2차 4RD 3번 장준영
(세광고 / 내야수)
2차 5RD 3번 김규태
(성남고 / 외야수)
2차 6RD 3번 박상중
(마산고-제주관광대 / 투수)
2차 7RD 3번 조태수
(배명고 / 투수)
2차 8RD 3번 조용원
(진흥고 / 투수)
2차 9RD 3번 조민철
(광주상고-대불대 / 포수)
2차 10RD 3번 황연선
(동산고 / 내야수)
2차 11RD 3번 이성민
(강릉고 / 투수)
지명 후, 미 입단
2차 12RD 3번 남궁훈
(덕수정보고 / 투수)
지명 후, 미 입단

4.1.4. 롯데 자이언츠

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1996~2002).svg
롯데 자이언츠
RD 지명자 평가
1차 이정민
(경남고-동아대 / 투수)
입단 2년차인 2003년에 당시 이승엽의 56호 홈런을 맞아 아시아 신기록의 허용투수로 불렸고[10]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불펜으로 활약하다가 군 전역 후 2010년부터 2013년까지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해 잊혀지는 듯 싶었지만 2014년부터 다시 기회를 얻기 시작해 2016년에는 팀 불펜의 중심으로 활약해줬다. 그 뒤 2018시즌 후 은퇴 후 잔류군 코치를 맡았고 시즌 후 해임됐다.
2차 1RD 4번 고효준
(세광고 / 투수)
10년간 이어진 롯데 1라운드의 잔혹사의 시삭이다. 입단 후 볼 컨트롤이 잘 되지 않아 백인천 감독에게 "선수도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당시 신체검사에서 심장 박동이 불규칙하다는 소견을 받아 방출되고 SK에 입단해 2009년부터 중용되면서 활약했고 2016년 KIA로 트레이드 돼서 2017년 우승을 맛봤다. 2018년 2차 드래프트로 롯데로 복귀했고 2019년에 롯데 불펜의 마당쇠 역할을 했다. 시즌 후 FA를 선언했고 진통 끝에 계약을 했으나 2020년엔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방출되고, LG로 이적했으나 LG에서도 별다른 모습은 보여주지 못한 채 다시 방출되었다. 2022년에 친정팀인 SSG에서 현역연장을 하게 되었고 좌완이 부족한 팀 내에서 알토란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다.
2차 2RD 4번 이명우
(부산공고 / 투수)
좌완 불펜에 한자리를 차지했으나 2014 시즌부터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2017 시즌 후 팀에서 방출된 후 은퇴했다.
2차 3RD 4번 허일상
(덕수상고-단국대 / 포수)
2차 4RD 4번 김풍철
(동래고-동아대-포스틸-상무 / 투수)
2차 5RD 4번 이승재
(마산고 / 포수)
2차 6RD 4번 신종길
(광주일고 / 내야수)
2차 7RD 4번 강경희
(세광고 / 투수)
2차 8RD 4번 손호광
(동산고 / 투수)
2차 9RD 4번 추경식
(전주고 / 내야수)
2차 10RD 4번 문재화
(군산상고 / 내야수)
2차 11RD 4번 이상현
(경남상고 / 투수)
지명 후, 미 입단
2차 12RD 4번 신원주
(부산고-고려대-포스틸-상무 / 투수)

4.1.5. LG 트윈스

파일:LG 트윈스 엠블럼(1990~2005).svg
LG 트윈스
RD 지명자 평가
1차 김광희
(성남고 / 내야수)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방출된다.
2차 1RD 5번 김우석
(인천고-홍익대-포스틸-상무 / 내야수)
LG 시절 김성근의 최대 삽질로 꼽힌다. 그저 그런 백업 내야수로 머무르다 2007년 팀의 4강행을 좌절시킨 히 드랍더볼을 시전했다.
2차 2RD 5번 박영복
(경북고 / 포수)
2차 3RD 5번 이시몬
(인천고 / 투수)
지명 후, 미 입단
2차 4RD 5번 김주형
(공주고 / 외야수)
지명 후, 미 입단
2차 5RD 5번 이현석
(동산고-경희대 / 투수)
2차 6RD 5번 김수한
(성남서고 / 내야수)
지명 후, 미 입단
2차 7RD 5번 민경재
(경남고 / 포수)
2차 8RD 5번 최종성
(경북고 / 투수)
지명 후, 미 입단
2차 9RD 5번 손명래
(배명고 / 투수)
2차 10RD 5번 곽병모
(부산고-탐라대 / 투수)
2차 11RD 5번 김동휘
(동성고 / 내야수)
지명 후, 미 입단
2차 12RD 5번 김준호
(광주상고-동국대 / 외야수)
지명 후, 미 입단

4.1.6. 삼성 라이온즈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화이트).svg
삼성 라이온즈
RD 지명자 평가
1차 권혁
(포철공고 / 투수)
대구고 윤길현과 경쟁하다가 피지컬 + 좌완이라는 메리트로 선택되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성공이었다. 선발로 데뷔했지만 선동열의 불펜 선호에 의해 불펜으로 이동하였고, 이후 핵심 좌완 불펜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부진한 이후 다소 기세가 꺾였고, 기회를 보장받기 위해 FA를 선언하고 한화로 이적했다. 한화에서는 기회를 보장받았으나 엄청난 혹사를 당했고 2018 시즌 후 팀에서 방출되었고 두산에서 2시즌 더 뛰다가 은퇴했다.
2차 1RD 6번 조동찬
(공주고 / 내야수)
2루와 3루를 오가며 멀티 내야 유틸 플레이어로 국가대표까지 당선되는 등 쏠쏠한 활약을 했다. 그러나 2013년 문선재와의 충돌로 큰 부상을 입게 되고, 장점인 수비와 주루가 굉장히 안 좋아지고 타격마저 침체되었고 FA 대박을 내긴 했으나 오래지 않아 은퇴한다. 은퇴 직후 바로 삼성의 코치로 부임하였다.
2차 2RD 6번 김현수
(신일고 / 외야수)
2차 3RD 6번 손주인
(진흥고 / 내야수)
뚜렷한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으나 내야 전 포지션을 백업하며 그럭저럭 자리를 지켰다. 트레이드로 LG로 넘어갔다가 2차 드래프트로 삼성으로 복귀하였으며, 은퇴 후에는 프런트 일을 하다가 코치로 선임되었다.
2차 4RD 6번 노병오
(청주기계공고 / 투수)
2차 5RD 6번 안지만
(대구상고 / 투수)
통산 홀드 1위의 레전드 불펜 투수. 고교시절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해 신인지명전 까지 프로입단이 불투명 했지만, 갸날픈 몸에서 최고구속 144km를 찍는것을 본 삼성 스카우터가 깜짝 지명을 단행했다. 오승환이 없었다면 단연코 마무리로 활약하였을 수준의 대투수로 FA로 무려 65억이라는 초대박을 쳤으나, 원정 도박, 불법 도박 사이트 개설 등 여러 구설수에 휘말려 불명예스럽게 선수생활을 마감하였다.
2차 6RD 6번 최형우
(전주고 / 포수)
포수로 입단하였으나 애매한 타격과 수비로 방출당한 후 경찰청에 입대했는데, 경찰청에서 외야수로 전향한 후 대폭발하였다. 2군에서 7관왕을 달성하고 외야수로 다시 입단, 선수생활 내내 붙박이 4번 타자로 활약하며 KBO 최초로 FA 100억 시대를 열었다. 비율 스텟과 누적 성적 모두 KBO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의 위대한 타자. 다만 FA로 이적한 후 삼성에 대한 부정적인 발언으로 삼성 팬들 사이에서의 이미지는 별로 좋지 않다.
2차 7RD 6번 임세업
(서울고 / 외야수)
2차 8RD 6번 이태호
(경동고 / 투수)
2차 9RD 6번 정홍준
(경북고 / 투수)
2차 10RD 6번 박정현
(배재고 / 내야수)
2차 11RD 6번 최무영
(춘천고 / 외야수)
2차 12RD 6번 김일희
(서울고 / 외야수)
지명 후, 미 입단

4.1.7. 두산 베어스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1999~2009).svg
두산 베어스
RD 지명자 평가
1차 이재영
(선린정보고-영남대 / 투수)
입단 첫해부터 불펜에서 활약하다가 군복무 후 기량이 떨어지고 LG로 트레이드 되었다. 하지만 LG에서도 예전 모습을 찾지 못하고 SK로 또 다시 트레이드 되었지만 큰 활약없이 2015 시즌 후 방출되었고 은퇴했다.
2차 1RD 7번 고영민
(성남고 / 내야수)
데뷔 초엔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다가 안경현이 팀을 떠난 후 주전 2루수에 안착했으며 2007시즌 골든글러브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의 주역 등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후 부상과 부진으로 성적이 급락하면서 오재원에게 주전 자리를 넘겨줬고 2016 시즌 후 은퇴했다.
2차 2RD 7번 박종섭
(배명고 / 내야수)
2차 3RD 7번 이경환
(경기고 / 포수)
2차 4RD 7번 황덕균
(선린인고 / 투수)
2차 5RD 7번 이민택
(배명고-탐라대 / 포수)
2차 6RD 7번 이승엽
(부산고 / 외야수)
2차 7RD 7번 박훈범
(중앙고 / 외야수)
지명 후, 미 입단
2차 8RD 7번 최종군
(강릉고 / 투수)
지명 후, 미 입단
2차 9RD 7번 오주헌
(신일고 / 투수)
지명 후, 미 입단
2차 10RD 7번 이상원
(중앙고 / 투수)
지명 후, 미 입단
2차 11RD 7번 하정인
(서울고 / 내야수)
지명 후, 미 입단
2차 12RD 7번 김명효
(배명고-대불대 / 내야수)

4.1.8. 현대 유니콘스

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
현대 유니콘스
RD 지명자 평가
1차 조순권
(유신고 / 투수)
지명 후, 한양대 진학, 2006년 입단, 현대가 정몽헌 자살 이전의 최후의 1차 지명
2차 1RD 8번 배힘찬
(서울고 / 투수)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다가 2015시즌 SNS 논란으로 이미지가 안좋아졌고 시즌 후 2차 드래프트로 KIA로 이적했다. 하지만 KIA에서도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2017 시즌 후 방출되었다.
2차 2RD 8번 허웅
(부산고 / 포수)
현대에서 2군에 있다 방출당한 이후 군 복무, 일본 독립리그를 거쳐 SK에 입단, 2011년 박경완,최경철의 부상으로 잠시나마 1군 백업포수로 활약했다.
2차 3RD 8번 이현승
(동산고 / 투수)
인하대 졸업 후 입단, 불펜과 선발에서 괜찮은 활약을 하다 2009년 시즌 후 두산으로 현금 트레이드되었는데 트레이드 초반 미미한 성적을 거둬 10억 군인이라는 비아냥을 들었지만 상무 제대 후 두산의 핵심 불펜으로 활약하여 두산 왕조에 기여했고 2022 시즌 후 은퇴했다.
2차 4RD 8번 소중형
(배재고 / 외야수)
2차 5RD 8번 장태종
(한서고 / 투수)
2차 6RD 8번 윤성귀
(경남고 / 투수)
2차 7RD 8번 윤승현
(경기고 / 내야수)
지명 후, 미 입단
2차 8RD 8번 홍종원
(인천고 / 외야수)
지명 후, 미 입단
2차 9RD 8번 이운영
(영흥고 / 외야수)
지명 후, 미 입단
2차 10RD 8번 김규섭
(덕수정보고 / 투수)
지명 후, 미 입단
2차 11RD 8번 장원삼
(사마초-신월중-용마고 / 투수)
당시에는 대학을 가도 지명권이 유지되었기 때문에 경성대 체육학과로 진학했고, 대학 리그를 평정하고 프로 데뷔 시즌에도 웬만한 신인왕들 다 씹어먹는 성적을 거뒀지만 하필 류현진과 같은 해 데뷔하는 바람에 수상은 실패했다. 현대가 해체된 후 선수단을 인계받은 히어로즈 초창기에도 선발투수로 활약했으나 2009년 트레이드 파동에 휘말려 부진했다. 결국 2009년 시즌 후 삼성으로 트레이드되어 준수한 선발로 활약하며 FA도 대박을 쳤다. 하지만 2015 시즌부터 노쇠화가 시작되어 성적이 급락했으며 2018 시즌 후 삼성에서 방출됐고, LG와 롯데에서 한 시즌씩 보낸 후 은퇴했다.
2차 12RD 8번 송선목
(부천고 / 투수)

4.2. 팀별 총평

5. 이모저모



[1] 1차 지명 후 한양대 진학, 한양대 졸업 후 입단 [2] 이 다음 해부터 현대는 연고지 문제로 1차 지명에서 제외되어 현대 유니콘스 사상 마지막 1차 지명자가 되었다. [3] 주의해야 할 것은 고교, 대학 졸업 예정자들은 전원 자동 지명 대상이다. [4] 최대 지명 가능 선수가 12명이므로, 10라운드에서 이미 12명의 선수가 차 버린다. [5] 박도현으로 개명. [6] 후에 문규현으로 개명함. [7] 각 팀마다 12명을 지명할 수 있기에 SK의 11, 12라운드 지명은 없었다. [8] 2022년 현재 경기고 수석코치를 맡고 있다. [9] 대학 재학중인 동생만 믿다가 동생이 대학을 졸업한 후인 2010년 6월에 통보를 받고 현역으로 입대했는데, 발목 문제로 훈련소에서 퇴소 조치됐고 공익근무요원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시간을 추가로 허비하면서 2011년 6월에야 병역 의무를 시작했다. 이 때문에 소집해제된 시점 역시 시즌 중인 2013년 6월이었다. [10] 그 경기는 이정민의 데뷔 첫 선발승 경기였다 [11] 2001년 초까지 LG 2군 감독이었던 김성근 감독이 김우석을 지켜보고 2차 지명에서 김우석을 뽑아달라 했다고 한다. 상무 복무 시절 김우석은 수비를 잘 하기로 유명한 선수였지만, 문제는 나이도 서른을 코앞에 둔 데다가 2군 리그에서도 타격이 약한 편이어서 2차 1라운드에서 뽑힐 감은 아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12] 팀이 스코어 1:2로 앞선 9회초 2사 3루 상황에서 2루수 내야플라이를 놓쳐서 동점을 허용하였다. 결국 이 경기를 이긴 SK는 기세를 얻어 1위를 굳혔고, 반대로 삼성과 한창 4위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이던 LG는 이 경기를 기점으로 연패에 빠져버리며 포스트시즌 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신다. [13] 선수 본인도 지명은 생각도 안했다고 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