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피트 번즈 Pete Bur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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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피터 조제피 번즈 Peter Jozzeppi Burns |
출생 | 1959년 8월 5일 |
영국
잉글랜드
체셔 주 포트 선라이트 (現 잉글랜드 머지사이드 주 위럴 포트 선라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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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2016년 10월 23일 (향년 57세)[1] |
영국 잉글랜드 런던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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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싱어송라이터 |
소속 | 데드 오어 얼라이브 (1980~2016) |
활동 | 1979년 ~ 2016년 |
키 | 173cm |
가족 |
아버지 프란시스 번즈 어머니 에바 번즈 형 토니 번즈 |
배우자 |
린 콜렛 (1980년 ~ 2006년, 이혼) 마이클 심슨 (2007년 결혼 ~ 2016년, 사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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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가수이자, 밴드 데드 오어 얼라이브의 보컬이다.2. 생애
2.1. 데뷔 전
1959년 8월 5일에 영국 포트 선라이즈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인 에바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당시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태인 귀족이고, 아버지인 프란시스는 리버풀에서 태어난 독일계 영국인으로 군에서 복무하고 있었다. 이후 프란시스와 에바는 차를 마시면서 춤을 추는 카페인 Tea Dance에서 만나고 결혼하여 토니와 피트를 얻는다.피트와 어머니인 에바. |
피트와 에바의 관계는 매우 각별하다. 에바는 일찍부터 피트를 재능이 넘치는 아이로 키우고자 히였으며 피트는 물론 토니에게도 남들의 시선을 신경쓰며 살지 말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라고 가르쳤다. 11살 많은 형인 토니와는 자주 만나지는 못하였지만 음악듣는 것을 좋아하여 같이 음악을 들으면서 지냈다. 토니 역시도 음악을 향한 열정이 있었지만 스스로 포기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피트가 청소년기에 접어들 무렵에 에바에게 홀로코스트로 인한 PTSD가 생기고 말았다. 에바의 병은 술에 중독되고 지속적으로 자살을 시도할 만큼 깊어졌고 피트는 집에만 들어오면 곳곳에 널려 있는 에바의 자해 흔적을 봐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인 프란시스는 이런 아내를 돕기는 커녕 계속 방치하였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피트는 청소년기의 집을 지옥이라고 표현할 만큼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래도 에바는 피트의 양육을 소홀히 하지는 않아서 피트는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만든 건 어머니라며 존경심을 표하고 에바가 사망을 앞둔 시기에 가족사진을 촬영하엮다.
피트의 가족사진. |
피트의 자서전에 의하면 어린 시절부터 물감으로 얼굴을 화장하는 등의 독특한 행동으로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놀림받고 교사들에게도 업신여김을 당하자 에바는 피트를 집에서 가르치기로 결정하고 학교를 그만두게 한다. 피트는 이 일을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회상하였다. 이후 피트는 리버풀의 유명 레코드사인 Probe의 직원으로 일하며 음악가의 길을 걷는다. 또한 Probe의 오랜 단골이자 미용사인 린 코레트와 만나 결혼하게 된다. 결혼식이 열리는 날 한 하객은 피트와 린을 보고는 대체 누가 신부냐며 농담을 쳤다고 한다. 당시에도 피트는 양성적으로 치장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원래 린의 부모는 피트를 딸의 별난 게이 친구 정도로 이해하고는 상냥한 사람이라며 좋아했지만, 린과 피트가 연인 사이라는 걸 알고서부터는 피트를 경멸하게 되었다고 한다. 린의 아버지는 언제나 같이 축구 경기나 관람할 정도의 사위를 원하지 피트처럼 별난 사람을 사위로 원하는 게 아니라며 린을 다그쳤다고 한다.
2.2. 데뷔 후
데뷔 직후의 피트.[2] |
Probe에서 일하며 만난 사람들과 1979년에 리버풀에서 Nightmares In Wax라는 밴드를 결성한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그의 인터뷰에 따르면 1976년 레코드 가게의 사장이 그를 강제로 음악을 시켰다고 한다.
당시 Nightmares In Wax가 발표한 곡 중 하나인 Flowers. 아직 성숙하지 못한 피트의 가창력이 엿보인다. 이때는 유명하지도 않았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하류 밴드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후 밴드 이름을 Dead or Alive로 바꾸고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한다. 이 무렵 밴드 멤버들도 일부 교체되며 현재의 라인업을 갖추었다.
1982년에 Dead or Alive가 발표한 The Stranger가 영국 인디차트 7위를 석권하면서 스포트라이트에 오르게 된다. 이때 에픽 레코드가 Dead or Alive의 앨범 발매를 도운다. 이후 It's Been Hours now를 발표하고 나서 Dead or Alive는 스티브 코이와 팀 리버를 새로 영입하고 점점 상승세를 타게 된다.
에픽 레코드가 앨범을 릴리스하기 전의 마지막 곡.
1983년 6월 4일에《SOPHISTICATED BOOM BOOM》에 수록된 곡 Misty Circle을 발표한다. 이 노래는 Dead or Alive가 처음으로 에픽 레코드를 통해 릴리스한 노래지만 순위는 차트 100위권으로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다. 당시 멤버들의 포지션은 드럼을 스티브 코이, 베이스를 마이크 퍼시, 키보드와 색소폰을 팀 리버, 기타를 웨인 핫세가 담당하였다. 웨인 핫세를 제외하면 처음으로 전성기 시절의 라인업을 갖춘 곡이다.
1983년 10월 9일에《SOPHISTICATED BOOM BOOM》에 수록된 What I Want를 발표하는데 이때 처음으로 전성기 시절의 라인업을 갖추게 되었으며, 피트가 처음으로 보이 조지처럼 땋은 머리가 아니라 레게 머리를 선보인 곡이기도 하다. 가장 높은 순위는 UK차트 89위.
특유의 양성적인 이미지와 화장 때문에 컬쳐 클럽의 보이 조지와 비교를 받기도 했는데, 피트는 보이와의 비교를 거부하며 보이에 대한 독설을 늘어놓았다. 이에 대해 보이 역시도 You Spin Me Round를 따라하며 피트를 조롱하였다. 보이가 먼저 메이저 팝에서 유명세를 얻었기에 피트는 보이의 카피캣으로 오인당하는 수모를 겪었으나, 본인은 "난 1977년부터 이 모습을 하고 다녔다. 그러므로 난 결코 카피캣은 아니다."라고 주장하였다.[3]
또한 보이의 트레이드마크였던 거대한 모자와 땋은 머리는 사실 피트가 먼저 선보인 것이라 보이도 이를 인정하였다. 당시의 둘은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훗날 화해한 것으로 보이며, 피트가 사망한 후 보이가 피트에 대한 인터뷰를 하였고 피트의 장례식에도 서명하였다.
피트와 보이가 한창 활동하던 80년대에는 두 사람 모두 양성적인 컨셉이었지만 피트가 더 남성스럽고, 보이가 더 여성스러운 모습이었는데, 2000년대 이후로는 반대로 피트가 여성스러워지고 보이가 긴 머리를 단발로 바꾸는 등 남성스러워졌다.
1984년 1월 24일에 I'D Do Anything을 발표한다. 최고 기록은 UK 차트 79위. 이 곡도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로 활동을 마무리한다.
1984년 3월 17일에 KC 션샤인이 1975년에 발표한 That's The Way를 리메이크한다. 이 곡을 발표하고 나서 Dead or alive는 큰 인기를 얻는다. UK 차트 22위를 기록하며 대표 곡으로 자리매김하고 발표하고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Dead or Alive는 1번째 정규 앨범인《SOPHISTICATED BOOM BOOM》을 발표한다. 앨범을 발표하기 전에 웨인 핫세는 밴드를 떠났다.
2.2.1. 대히트
1984년 11월 17일에 Dead or Alive와 피트를 상징하는 노래이자 기념비적인 노래인 You Spin Me Round (Like a Record)를 발표한다. 프로듀서는 스톡 에이트켄 워터맨이 맡았고, 작사에는 멤버들이 전원 참여하였고 심지어 탈퇴한 웨인도 참여하였다.
노래는 이후 발매된 앨범《Youthquake》에 수록되었다. 이 노래는 Dead or Alive와 스톡 에이트켄 워터맨 둘 다 처음으로 UK 차트 1위를 석권한 곡이다. 순위는 top 40에서 2개월을 머물다 1985년 3월에 처음으로 1위에 올랐으며, 스위스, 독일, 캐나다 등에서 1위를 기록하고 빌보드 차트 11위를 석권하며 미국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다. 현재도 이 곡은 80년대의 명곡으로 언급된다. 이후 2006년에 피트가 CBB4 출연 후 큰 인기를 얻으면서 다시 UK 차트 5위를 기록한다.
2007년에 피트의 인터뷰에 따르면 노래는 Luther Vandross의 I Wanted Your Love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제작 도중 음반사가 노래에 대해 혹평하고 제작비를 지원하지 않아 2,500파운드를 직접 대출받아 앨범을 제작하였다고 한다. 스톡 에이트켄 워터맨도 음악 대출비를 완전히 갚을 날만 기다렸다고.
You Spin Me Round의 히트 후 밴드와 피트 모두 인기를 얻기 시작하는데 특히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기 사작했고, 이후 일본으로 진출하는 계기가 된다. You Spin Me Round는 1위를 물려준 뒤에도 인기가 식지 않고 수 개월을 Top 20에서 머물렀다.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어서인지 일본 방송에도 여러 번 출연하였다. 이후 30만장 이상을 판매하며 골든 레코드에 등록되었다.
대표곡이니 여러 번 리메이크되었고 Dead or Alive도 1996년과 2003년에 리메이크하였다. 그러나 이전처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하였고 2006년에 피트가 CBB4에 출연하여 인기를 얻으면서 UK 차트 5위를 기록한다.
You Spin Me Round의 대히트 후 스톡 에이트켄 워터맨이 제작한 밴드의 2번째 앨범《YouthQuake》2번째 타이틀 곡 'Lover Come Back (To Me)'을 발매한다. 장르는 신스팝과 하이에너지를 겸한 형태. You Spin Me Round의 인기에 힘입어 앨범은 UK 차트 11위를 석권하고, 남아공 3위, 아일랜드 6위 등 큰 인기를 얻었다. You Spin Me Round 이후 다음으로 발표된 앨범이라 큰 관심을 얻었다. 1985년 5월 4일에 그동안의 히트 곡을 모은 앨범인《YouthQuake》를 발매한다. 앨범은 대히트하고 UK 차트 9위, 일본 차트 31위를 기록한다.
2.3. 위기
1990년대에 접어들며 Dead or Alive는 큰 위기를 맞는다. 기타리스트인 마이크와 피아니스트인 팀이 탈퇴하면서 밴드는 스티브와 피트만 남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객원멤버를 영입한다. 여기에 음반사와의 마찰로 Dead or Alive의 앨범은 영국에서 발매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되자 일본에서만 앨범을 발매하는데, 다행히도 이전에 발표한 곡 Turn a round Count 2 Ten이 17주 연속 1위를 한덕에 하이에너지와 신스팝이 쇠퇴하던 시절인 90년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1990년 12월 13일에 5번째 정규 앨범 Fan The Flame(part 1)을 Epic Record에서 일본에서만 발매한다. 이 곡은 미국 투어 등 여러 행사에서 사용되었다. 피트는 자서전에서 이 앨범을 불법으로 유통한 업자들과 그것을 산 고객들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Your Sweetness (Is Your Weakness)'는 일본 차트 3위를 기록하고 Unhappy Birthday는 일본 차트 14위, Gone 2 Long은 18위를 기록하였다. 앨범은 일본 오리콘 차트 27위를 기록하였다.
2.4. 말년
1990년대에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채 활동하다 2001년 일본에 리믹스 앨범과 새 앨범을 발표하며 다시 주목을 받게 된다. 2003년에 대표곡 You Spiin Me Round를 리메이크하고 활동을 재개할 예정이었으나 2004년 입술 필러의 부작용으로 일상생활도 정상적으로 하지 못할만큼 건강이 악화되었다. 재건수술을 받아 간신히 이탈리아에서 요양하다 2006년 쇼 프로그램인 ‘셀레브리티 빅 브리더에 출연하며 성공적으로 활동을 재개하였다. 이후 독설 등으로 인기를 얻으며 TV 프로그램에 간간히 출연하였다.2016년 10월 23일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양성애자인 피트의 성적 지향과 성형 논쟁으로 불붙던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피트를 추모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매니저는 트위터로 피트의 부고를 밝히며 "우리는 우리의 특별한 스타를 잃었다. 그는 진정한 몽상가였으며,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였다."라 덧붙였고, 끝에는 피트의 전처인 린과 애인인 마이클, 그 외에도 함께한 멤버이자 절친인 스티브 코이의 이름을 담았다.[4]
3. 음악적 특징
[5]
마르고 양성적인 외모와 달리 80년대 상당수의 뮤직비디오에서는 마초적이고 굵은 발성을 보였다[6]. 블랙 유머가 섞인 묘한 가사를 자주 쓰는 것도 특징. 원래 사이키델릭 락 계열의 음악으로 활동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이에너지 계열로 선회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1집 Sophisticated Boom Boom 때만 해도 고딕 분위기가 섞여있었으나 2집 Youthquake부터 스톡 에이트켄 워터맨의 프로듀스를 받아 대중적인 사운드의 음악을 선보였다.
80년대 한 방송에서 기자를 상대로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앨범들을 소개했는데, 필 스펙터, The B-52's, 더스티 스프링필드 등의 레코드를 소개하며 자신의 음악적 감흥 및 앨범 표지와 헤어스타일에 대한 애착을 선보였다. 여기서 소개된 가수들은 모두 여자였기 때문에 기자가 의아함을 표했는데, 본인 말로는 남자 가수에겐 한 번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3.1. 라이브에서의 특징
- You Spin Me Round의 대히트 이전과 90년대 스타일 변화 이후에는 노래를 잘 불렀지만, 그 두 시기 사이 가장 인기가 많았을 때의 라이브 영상을 보면 거의 전부 립싱크를 한다.
- 마이크 받침대를 자주 활용하며, 두손으로 뒤집어 들거나, 받침대를 다리 사이에 두고 쪼그려 앉는다거나 한다.
- 공연 중 음주를 꽤 하는 편이다.
- 1980년대 초기엔 전문 댄서가 없다보니 본인이 춤을 출 때가 빈번한데, 아무래도 전문 댄서가 아니다 보니 팔을 휘두르거나 걷거나 상단에 설명했듯 마이크와 노는 정도. 이후 Lip It Up 활동 부터는 댄서 두명과 함께 공연을 다녔다.
- You Spin Me Round가 대히트를 치고, 일본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때의 라이브에선, 비록 립싱크를 했지만 특유의 머리흔들기를 자주 선보였다.
- 90년대 스타일 변화 이후 라이브에선 파격적인 노출이 많았다. 심지어는 중요 부위만 천으로 가린 티팬티 달랑 하나 입고 라이브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4. 외모
유년기의 피트. |
8살부터 거울을 보고는 스스로 얼굴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초등학생 시절 물감으로 얼굴울 칠하며 화장을 하다가 결국 학교를 자퇴하고 가수 활동을 시작하며 독특한 메이크업을 즐기다 80년대 초반 넘어지며 코가 약간 비틀어졌는데, 이후 돈을 벌면서 코를 성형하고 치아도 교정하였다.
그러나 코 수술은 완전히 실패하여 재수술을 하였고, 이걸 커버하기 위해 30대에 접어들며 점차 성형을 하는 횟수가 늘었다. 입술 필러, 광대뼈 보형물, 얼굴 윤곽술 등을 하더니 2000년대부터는 1주일에 2번씩 2년 가까이 크고 작은 성형을 하면서 80년대의 외모는 완전히 없어졌다. 그러다가 2004년 부작용으로 대규모의 재건 수술을 받고서는 재건 위주로 성형하였다.
도톰한 입술을 위해 필러를 자주 시술받았는데 그 결과물은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사실 피트 본인도 이렇게 성형을 많이 할 생각은 없었지만 자신이 원하는 얼굴상이 안 나타나고 항상 계획대로 된 적이 없어 본의 아니게 많이 하게 된 것. 하지만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한 것이기 때문에 외적인 결과에 크게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소회하였다.
1981년의 피트. |
성형 이전의 모습으로 눈에 렌즈를 착용한 상태이다.
1986년의 피트. |
코 성형과 치아 교정을 받은 후의 모습이다. 이때가 사실상 피트의 황금기. 피트가 이 모습으로 쭉 살았다면 어떨지 상상하는 팬들이 많다.
1989년의 피트. |
입술 필러와 눈, 코 성형을 추가로 받은 모습이다.
1995년의 피트. |
헤어스타일 변화와 조금씩 바뀐 외모. 몸은 근육질이 되었지만 얼굴은 비교적 여자라고 해도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2001년의 피트. |
가시적인 변화는 없었지만 입술 필러를 지속적으로 받았다.
2002년의 피트. |
얼굴 윤곽이 달라지고 전체적으로 얼굴이 인공적으로 변하였다. 이때부터 피트의 성형 중독도 덩달아 심해졌다.
2003년의 피트. |
실제로 그의 민낯은 심하게 망가진 상태지만 사진에서 짙은 화장과 포토샵으로 커버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화장을 하지 않은 모습도 있다.
2004년에는 얼굴 곳곳에서 멍이 들고 입술이 심하게 부풀어올라 고름이 터져나오는 등 부작용이 심각해져 재수술을 받은 뒤로는 재건 수술 위주로 성형을 하였다. 입술을 아예 제거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올만큼 상태가 심각했으나 일단 두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재건 수술은 이탈리아에서 받았으며, 회복 기간인 2년 동안 외출도 하지 못하고 식사도 빨대로 겨우 했다고 한다.
재건 수술을 받은 직후의 모습은 피트가 가장 여성스러웠던 시기였다. 이후 2009년까지 외모를 유지하였다. 그런데 같은 해 게이 바에서 애인인 마이클 심슨의 외도를 목격하고 그를 폭행했다가 두 달간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출소 후 신장 결석이 발견되어 제거수술을 받았고, 그는 입술 성형 부작용에 시달리다 수술을 맡은 의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45만 파운드의 손해 배상금을 받았다.
2010년의 피트. |
이 무렵에 진통제 중독으로 얼굴이 심하게 부어 부은 얼굴을 어느 정도 되돌려 놓았다. 2009년에 성형외과 의사로부터 보험금을 타는데 성공했으나 얼굴 복원 수술 및 자신의 물욕으로 이 보험금을 다 써버려 결국 2014년에 파산 선고를 받았다.
2016년 2월에 방송에 출연했는데 얼굴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이전에는 약간 얼굴이 울퉁불퉁하고 입술이 많이 부자연스러웠다. 또한 이전보다 얼굴을 움직이기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2016년의 피트. |
팽팽히 얼굴을 당긴 시술의 후유증인지 피부가 많이 상했으며 과거에 비해 체중이 엄청 늘어난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2016년 9월에 Celebrity Botched Up Bodies 2016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 얼굴을 단단히 고정시키던 필러 일부를 제거하며 얼굴이 자연스럽게 변하였다. 자연스러워졌다고 해도 과거의 얼굴로 돌아갔다고 보기에는 어렵지만, 심각하게 망가진 치아와 잇몸은 치료하는데 성공하였다.
메이크업을 지운 사진. |
5. 여담
- 16세에 처음으로 성관계를 가졌다고 밝혔다. 일생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이라고.
- 비비안 웨스트의 옷을 상당히 즐겨입는다. 이탈리아에서 Sex Drive 공연을 할 때 입었던 옷도 웨스트우드의 옷이다.
- 데드 오어 얼라이브의 멤버 중 탈퇴하고 나서 연락하는 멤버는 스티브 코이 뿐이라고. 나머지 멤버들은 뭐하고 사는지도 모른다고 밝혔다[7]. 피트의 사망 이후 키보드, 기타 연주자였던 Jason Alburey와 Tim Rever만이 피트의 부고를 듣고 애도를 표했다.
- 2010년부터 피어싱을 하거나 몸에 문신을 하는 등 몸을 꾸미는 것에도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성형하기 전에도 귀걸이는 간혹 착용하였고 문신은 1983년부터 일부 시작하였다.
- 어머니인 에바와는 별세할 때까지 각별한 사이로 유명하였지만 아버지와 형과는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형인 토니에 대해서는 2011년에 생사도 모른다고 밝혔고 아버지인 프란시스와는 1991년부터 연락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 2000년부터 가발을 쓰고 다니는 것 같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미 피트는 20대부터 많은 가발을 가지고 있었고 화려한 옷을 입는 것처럼 외모 치장을 위해 가발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피트는 짧은 원래 머리카락이 있었고 위에 가발을 착용하였다.
- 2000년대 중반 그와 그의 남자친구 마이클 심슨과의 섹스테이프가 유출된 적 있다.
- 여성에 가까운 화려한 패션과 제스처 때문에 게이로 여겨진 인물이지만 사실 피트는 양성애자였다.[8] 허나 피트는 인터넷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도 끊임없이 게이로 취급받은 인물. 북미 사람들이 생각하는 스테레오 타입적인 게이의 대표상이었다. 심지어 트렌스젠더라는 소문도 있었으나 호르몬 치료를 받은 적은 있지만 성전환은 한 적도 없고 자기를 남자로 생각하고 있다고 하였으니 트렌스젠더는 아니다. 뿐만 아니라 1996년에 본인이 직접 스스로가 남자라는 사실을 즐기며, 여성스러운 외모를 가지고 싶을 뿐 신체적으로 여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 1987년, 마돈나에게 콘서트 오프닝 출연 제의를 받았으나, 당시 에바 번즈가 위독한 상태였기에 매니저의 필사적인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를 고사했다. 이때 피트는 당시 밴드가 전성기였음에도 무려 열 달 간이나 활동을 하지 않으며 어머니를 병간호 하던 중이었는데, 치료 비용이 부족해지자 비용 마련을 위해 미국에서 투어를 돌았으나, 투어를 돌던 중 에바 번즈가 사망하는 안타까운 비극이 발생하고 말았다.
- 더 스미스의 보컬 모리세이와는 80년대에 절친으로 지냈으며, 둘의 우정을 다룬 기사가 'A Friendship Made In Heaven'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잡지인 Smash Hits에 실렸다. 그러나 훗날 피트가 2006년 유명 리얼리티 쇼인 Celebrities Big Brother에서 고릴라 모피로 만든 코트를 입었다가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퇴장당할 위기에 처하면서 둘의 사이는 틀어졌다.
- 퀸의 프레디 머큐리와 묘한 공통점이 있는데 일단 둘 다 다른 나라계 영국인에다가[9] 4인조 그룹의 보컬이라는 점, 무대 복장이 유난히 화려했다는 것과 공통적으로 양성애자다.[10] 각각 이성 친구/아내가 있었으나 동성 애인과 눈이 맞아 헤어진 것도 동일하다. 그리고 둘 다 각각 40대, 50대의 나이로 요절했다.
[1]
사인은
심장마비.
[2]
그가 입고 있는 옷에 마오쩌둥이 그러져 있다.
[3]
피트는 커리어 내내 보이 관련으로 굉장히 민감하였는데, 인터뷰 중에도 보이가 언급되면 기분 나빠하며 정색하였다.
[4]
그리고 스티브 코이도 피트 번즈가 떠나고 2년 후 같은 증세인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5]
The Mission, Sisters Of Mercy로 유명한 웨인 핫세가 이 당시 멤버로 활동했으며 영상에도 등장한다. 또한 앞서 서술된
보이 조지보다 먼저 선보였다던 거대한 모자와 땋은 헤어스타일의 패션이 본 영상에 등장한다.
[6]
다 그런 것은 아니었고,
Something in My House에서는 비교적 높고 카랑카랑한 보이스를 보였다. 90년대 후반 이후로는 목소리톤이 전체적으로 높아졌다.
[7]
만약 살아있다면 2024년 기준으로 76세인데 병사나 사고사만 아니면 고령이어도 살아있을 가능성은 비교적 높은 나이다.
[8]
이를 증명하듯 피트는 여성과도 결혼 해보고 남성과도 결혼을 해본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9]
프레디 머큐리는 인도계 피트 번즈는 독일계 유대계이다.
[10]
다만 프레디 본인은 공식적으로 자신의 성적 지향을 밝힌 적이 없고 팬들의 생각에 맡긴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