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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교황)/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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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출 직후2. 2분기3. 3분기4. 4분기

1. 선출 직후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인 2013년 3월 13일(현지시간 기준) 밤, 바티칸의 아르헨티나 담당자를 통해 고국 아르헨티나의 신자들에게 로마에서 열릴 즉위 축하 미사에 오는 대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로마에 올 여행비를 자선단체에 기부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교황 선출 직후인 3월 14일 오전 4시 33분에 트위터 Pontifex 계정이 부활했다. 첫 트윗은 "HABEMUS PAPAM FRANCISCUM(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선출되셨습니다)". 또한 아르헨티나 출신의 리오넬 메시가 자신의 웨이보 계정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취임을 축하하는 글을 올렸다. 교황 'Pope Francis' 명의의 개인 트윗이 올라오게 되었다.

3월 18일에는 첫 삼종기도를 바치며 대중들을 만나며 준비된 원고 없이 "주님은 우리를 용서하는 일에 지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용서의 기도를 구해야 합니다."라는 내용으로 즉석 강론을 했다.

3월 19일 오전, 132개국 정부 대표와 수십만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의 즉위 미사가 거행되었다. 이전보다 검소하게 진행된 교황의 즉위 미사에는 동서 교회 분리 이후 처음으로(햇수로는 960년 만에) 정교회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스 1세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으며, 교황은 미사 강론을 통해 약자를 감싸는 보호자의 소명을 강조했다.

3월 23일에는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같이 기도를 드렸는데, 전임 교황과 현 교황이 같이 기도를 드리는 것은 600여년 만이라 많은 신자들이 몰렸다고 한다.

3월 26일에는 당분간 교황 관저로 들어가지 않고 게스트하우스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계속 지내겠다고 발표했다. 식사도 게스트하우스에 거주하는 다른 사제들과 공동 식당에서 한다.

3월 28일에는 즉위 후 첫 성목요일 강론에서 사제들은 출세 욕심을 버리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자들을 위해 헌신하라고 촉구했다.

그리고 같은 날 성목요일을 맞이하여 거행한 발 씻김 예식에서 관례를 깨고 여성(소녀)의 발을 씻겨주는 파격적 행보를 보여 교회 안의 보수 세력들에게 많은 충격을 주었다. 전임 교황들도 발 씻김 예식을 거행했지만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에서 사제들의 (즉, 남성들의) 발을 씻어준 반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당 아닌 곳에서 여성의 발을 씻긴 것이다. 게다가 발을 씻겨준 대상에는 정교회 신자는 물론 이슬람 신자까지 포함되어 있어 더욱 파격을 선사하였다. 대주교 시절에도 비슷한 행보를 보인 적이 있는데 가톨릭 교회가 여성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페미니스트들에게 비난을 받은 것을 생각하면...[1]

4월 1일에는 성 베드로 대성당의 지하묘지(카타콤베)를 방문했는데 역대 교황 가운데 이 묘소에 방문한 교황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처음이다. 이것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또다시 역대 최초 기록을 세웠다. 물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로 역대 교황들은 모두 당대 기준으로 볼 때 '파격'을 만들어 나갔으며, 사회와의 친화를 표방한 공의회 정신을 계승하되 점진적으로 나아간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신임 교황이 직원들에게 관례적으로 지급하던 소액의 보너스를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교황청의 재정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예측 불가능한 지출을 늘릴 수 없다는 것이 교황청 대변인의 입장. 여기에 그동안 교황청 내부에서 언급을 기피해왔던 비오 12세 나치의 유착 의혹을 밝히기 위해 관련 자료를 공개하려는 의지를 밝히는 등 전방위에 걸쳐 개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2월 28일에 퇴위한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의 여름 휴양지인 카스텔 간돌포에서 바티칸으로 돌아와 5월 2일 마테 에클레시아 수도원에 거처를 정했다. 관련기사 교황 프란치스코가 콘클라베 직후부터 지금까지 줄곧 산타 마르타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고 있기 때문에 500년 넘게 역대 교황들이 거주한 사도 궁전은 여전히 비어 있다.

2. 2분기

5월 12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성식을 열었는데 한번에 815명을 시성하는 기록을 세웠다. 참고로 가장 많은 사람을 시성한 교황은 요한 바오로 2세로 재임기간 동안 480명을 시성했는데 이것을 한 큐에 깨버린 것. 이렇게 시성된 성인이 많은 이유는 1480년 오스만 투르크에 함락된 오트란토의 시민 813명을 시성했기 때문이다. 오트란토의 시민들은 이슬람교 개종을 거부했고 오스만 투르크는 안토니오 프리말도를 비롯한 시민 813명을 처형했는데 이들이 시성된 것. 시성된 나머지 2명은 콜롬비아 출신의 라우라 몬토야 수녀와 멕시코 출신의 마리아 과달루페 가르시아 사발라 수녀로 콜롬비아 출신 성인은 이번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콜롬비아의 마누엘 산토스 대통령이 직접 바티칸까지 찾아왔다.

5월 19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집전한 성령 강림 대축일 미사에서 교황이 퇴마 행위를 했다는 논란이 벌어졌는데, 교황청 대변인은 이를 부인했다.

5월 27일, 교황은 팔레르모의 주세페 "피노" 풀리시 신부(축일 10월 21일)를 시복하면서 마피아 강하게 비판했다. 피노 풀리시 신부는 마피아 반대 운동을 전개하면서 청년들이 마피아에 가입하는 것을 막다가, 자신의 생일인 1993년 9월 15일 마피아에게 살해당했다.

6월 17일,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수천 명의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와 운전자들을 축복했다. 할리 데이비슨 출시 110주년을 맞아 할리 데이비슨 모터 컴퍼니가 주관한, 6개국 11개 도시에서 진행하는 기념 행사의 일환이었는데, 교황은 미사 중에 이날 행사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에 할리 데이비슨 모터 컴퍼니에서는 교황에게 1585cc 다이나 슈퍼 글라이드 모델 한 대를 선물했고, '홀리 할리'라 이름 붙였진 이 흰색 할리의 연료통 측면에 교황이 직접 Francesco라고 썼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교황이 이 터프가이의 상징과 같은 할리를 타고 바티칸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로마 교구 가톨릭 구호재단에 기증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홀리 할리는 2014년 1월, 빈민 급식시설 공사비 마련을 위해 경매에 부친다고 알려졌다. 시세로는 15,000유로(약 2,164만 원) 정도인 모델이지만 낙찰가가 치솟을 것은 당연한 일. 2014년 2월, 경매 결과 241,500유로(약 3억 5,200만 원)에 낙찰되었다. 교황이 사인한 할리데이비슨 재킷도 57,500유로 (약 8,400만 원)에 팔려 시세를 훨씬 웃도는 낙찰가가 나왔다.

3. 3분기

즉위 후 교황의 첫 외부 방문지는 아프리카 이주자 수용소가 있는 람페두사 섬이 될 것이라고 교황청이 밝혔다. 당초 7월 말 브라질 방문이 첫 외부 일정으로 계획되었지만 람페두사 시장의 초청을 받고 일정을 바꿔 7월 8일 람페두사 섬을 찾기로 했다. 아울러 이번 여름 휴가 때는 역대 교황들의 휴양지인 카스텔 간돌포로 이동하지 않고 바티칸에 머물기로 정했다.

7월 5일, 첫 회칙인 '신앙의 빛(Lumen Fidei)'을 발표했다( 회칙 '신앙의 빛'의 개요 보기). 이 회칙은 본래 베네딕토 16세가 준비해 오다 물러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대신 완성한 것이다. 총 4장 82쪽으로 이루어졌으며, 1~3장까지는 베네딕토 16세 특유의 신학자적 스타일이 곳곳에 묻어 있고 4장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신념이 강하게 드러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시에 교황은 동성애에 대한 원론적인 반대 입장을 천명했으며, 20세기의 선대 교황들인 요한 23세 요한 바오로 2세 성인으로 추대한다고 밝혔다. 7월 8일, 람페두사 섬을 방문해 불법이주자 수용소를 찾은 교황은 모든 사람이 난민에 대해 형제 같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의 요청에 따라 이날 미사에 사용된 제단과 성서대는 불법이주자들이 타고 온 선박의 부재로 제작되어 눈길을 끌었다.

7월 16일, 교황청에서 칙령을 발표해 23일 브라질에서 열리는 가톨릭 세계청년대회에 참석하는 교황이 트위터, 텔레비전, 라디오를 통해 전대사를 내린다고 밝혀 논란이 일어났다.

7월 23일부터 28일까지 취임 후 첫 국제행사이자 남미 방문으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가톨릭 세계청년대회에 참석했다. 트위터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남길 정도로 교황과 신자들이 학수고대한 행사. 브라질을 방문해 세계청년대회 관련 일정을 시작한 교황은 100만 명이 운집한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교회도 거리로 나가야 하며, 불평등과 맞서 싸우라고 당부했다. 브라질 방문 기간 동안 자본주의의 폐해를 비판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인 참여를 촉구하는 등 교회와 신도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한 발언은 교황의 개혁적 성향과 맞물려 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일정을 마치고 29일 귀국한 교황은 전용기에서 진행된 기자 간담회에서 가톨릭이 동성애 행위를 죄악으로 가르치지만 사회는 동성애자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해 전임 교황보다 크게 완화된 시각을 드러냈다.

8월 11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진행된 삼종기도에서 무슬림은 존중해야 할 우리의 형제로 지칭하며 두 종교의 상호 존중 관계가 증진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교황으로서의 파격적인 행보도 이어지고 있는데 바티칸으로 순례를 온 10대 청소년들과 셀카를 찍어서 화제가 되었다. 이는 8월 28일 사진속 한 청소년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전세계에 확산되고 있다. 전임 베네딕토 16세가 학구파라서 책을 좋아했다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8월 30일에는 바티칸을 찾아온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와 라니아 왕비를 맞이하면서 교황이 왕비에게 허리를 숙이고 인사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불과 100여년 전까지만 해도 로마 제국 시절부터 이어진 유구한 전통에 따라 교황을 만나면 발에 입을 맞춰야 했는데, 이러한 점을 생각하면 놀라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압둘라 국왕과의 회담에서 교황은 시리아에 대해 군사공격보다는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을 해야 한다는 데 서로 공감했다.

교황은 시리아 문제에 대해 평화해결을 외치며 9월 7일을 시리아를 위한 기도의 날로 선포했다.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에 대해서는 비통한 일이고 심판이 있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군사개입을 해서는 안된다는 주장. 전임자인 베네딕토 16세가 이라크 전쟁에 반대했지만 되려 이라크 전쟁을 옹호했다고 비난을 들은 것과는 달리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장에는 공감하는 이들이 많은 듯하다.

9월 4일에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고향인 아시시를 방문해 성 프란치스코의 유해가 안치된 지하토굴에서 기도한 뒤 광장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가톨릭계 국제자선단체인 카리타스 관계자들을 만나 격려했다.

9월 19일 시빌타 가톨리카 지와의 인터뷰에서 동성애, 이혼, 낙태에 대해 교회가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발언한 것이 교회 내 보수파의 반발을 산 것으로 알려졌으나 교회 내 진보파와 일반 대중은 환영하는 분위기. 9월 22일 사르데냐 섬 칼리에리를 방문해 자본주의 세계화는 불공정한 시스템이라고 비판했다.

9월 30일에는 추기경회의를 거친 후 요한 23세 요한 바오로 2세의 시성을 2014년 4월 27일에 합동으로 거행한다고 발표했다. 역사상 유례 없는 교황 두 사람에 대한 합동 시성식은 교회 내 보수와 진보의 대립을 통합하려는 교황의 시도라는 평이 중론이다.

4. 4분기

10월 4일에는 지중해에서 벌어진 난민선 침몰 사고를 애도하는 한편, 국제 사회의 무관심을 정면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10월 26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가족의 날'을 기념하는 미사를 하던 도중 한 어린이가 제단에 난입(?)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주변에서 제단에서 내려보내려 해도 막무가내로 남아 있으려 하자 교황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달래주고, 자신의 다리를 끌어안고 있는 아이를 제지하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자신의 의자에 앉도록 하기까지 했다. 이날 교황은 성경의 구절을 인용해 "지치고 억압당하는 모든 이들이여. 내게로 오라. 내가 힘을 주리니"라는 내용의 연설을 하였다.

11월 19일 영국 데일리메일이 악성 종양으로 뒤덮인 외양의 남성에게 교황이 포옹과 키스로 인사하는 사진을 실었다. 그는 " 천국에 있는 것 같았다"고 당시 심경을 밝혔다.

11월 26일에 공개된 '사제로서의 훈계'에는 교황 즉위 이후의 연설과 강론 내용이 담겼는데, 통제받지 않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고 비판했으며 사제와 평신도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당부했다.[2] 이 발언은 2013년 가장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교황의 말로 꼽히며, "안온한 성전 안에 머물며 고립되는 교회가 아니라 거리로 뛰쳐나가 멍들고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를 원한다. 잘못을 침묵하는 상황을 걱정해야 한다"는 충고 또한 큰 반향을 얻었다. 이 발언으로 색깔론 논쟁(…)이 일어 교황이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왔고, 교황은 " 내가 말한 내용은 모두 기존 교회 교리에 들어있는 것이며, 마르크스주의는 잘못된 이데올로기다. 그러나 사람들이 나를 마르크스주의자라 불러도 화내지 않겠다. 나는 살아오면서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반감을 갖지 않고 있다"고 화답했다.

12월 5일 WTO 각료회의에서는 교황청 WTO 대표 실바노 마리아 토마시 대주교가 TPP FTA는 약소국의 권리와 경제주권을 훼손할 수 있다는 교황청의 성명을 발표했다.

12월 14일, 바티칸 인근 보호소에서 지내는 이민자 2천명에게 교황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냈다. 선물상자 안에는 교황이 서명한 성탄 카드, 일정 금액이 충전된 국제전화 카드, 우표, 로마 지하철 1일 이용권이 있었다고. 교황의 생일 12월 17일에는 로마 시내에 사는 노숙자 세 명을 아침식사에 초대해 함께 생일을 자축했다. 같은 날, 미국의 게이 잡지 어드보케이트가 교황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12월 25일, 첫 성탄 메시지에서 전쟁과 자연재해 등으로 상처 입은 이들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며, "하느님의 다정함과 자비로 인간의 마음이 평화를 향해 움직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전전임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 역시 1978년 교황 선출 후 첫 대중 연설과 이듬해 공산체제 하에 있던 모국 폴란드 방문 등의 순간에 '두려워 말라'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12월 31일,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 시절에 알고 지내던 수녀 3명에게 새해 인사를 하려고 스페인의 한 수녀원에 전화를 했는데 자동응답기가 작동하자 "교황입니다. 다음에 다시 걸죠 뭐"라는 메시지를 남겼다고. 말하자면 어디 독립중대 사서함에 합참의장이 부재중 메시지를 남긴 셈.

[1]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도 은근히 이런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을 반영해서 가톨릭 까기에 편승했다는 지적도 있다. [2] 이에 대해 그레고리 맨큐 교수는 교황의 발언에 반박하는 글을 자기의 블로그에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