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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ri |
Ford Capri
1. 개요
포드 유럽 법인에서 1969년부터 1986년까지 생산한 코티나 기반의 중형 FR 패스트백 쿠페이다.2. 1세대 (1969~1974)
1969년식 카프리 I
동 시기 포드 코티나의 앞 엔진 후륜구동 플랫폼을 기반으로, 미국 시장의 포드 머스탱에서 활용한 롱 노즈, 숏 데크 타입의 패스트백 쿠페 바디를 씌워 만들었다. 개발 단계에서 코드명인 "콜트"라는 이름을 사용하려고 했으나 미쓰비시 자동차가 자사 차종의 수출명으로 사용하고 있어 포드 콘술(Consul)의 스포츠 버전에서 쓰던 서브네임인 "카프리"를 재활용했다.
머스탱이 출시된 해인 1964년에 "콜트(Colt)"라는 코드명으로 개발을 시작했으며, 효율적인 개발과정을 위해 머스탱처럼 기존 승용차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스포티카를 만드는 방식[1]으로 개발했다. 또한 카프리는 영국 대거넘의 영국 포드, 독일 쾰른의 유럽 포드가 에스코트와 함께 두 번째로 공동개발한 차종으로, 영국에서 개발을 시작해 머스탱의 "포니카" 컨셉트를 유럽 시장에 맞게 이식, 1966년 7월에 개발 승인이 떨어진 이후 독일 포드와의 디자인 및 엔지니어링 협력을 키워 가며 효율적인 개발을 이어 나갔다. 1969년 1월에 벨기에의 브뤼셀 모터쇼에서 첫 공개하여 2월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파워트레인은 동 시기 유럽 포드에서 판매하던 에스코트, 코르세어에서 쓰던 부속들을 조합한 라인업을 준비했으며, 영국과 독일 생산분의 파워트레인이 달랐다. 영국 생산분은 대너검의 헤일우드(Halewood)[2]에서 생산하여 코티나와 코르세어에서 쓰던 1.3L과 1.6L 켄트(Kent) 엔진과 2.0L V4 엔진, 3.0L "에섹스(Essex)" V6엔진을 장착했으며[3] 독일 생산분은 자를루이(Saarlouis)와 쾰른(Cologne)에서 생산하되 영국 사양과 별도로 1.3L, 1.5L, 1.7L V4 엔진과 2.0L, 2.3L V6 엔진을 준비했다. 올 싱크로메시(all-synchromesh) 방식의 4단 변속기를 기본 적용하되 1.6L 라인업 한정으로 3단 자동변속기를 제공했고, 서스펜션 세팅 및 브레이크 세팅은 앞바퀴 / 뒷바퀴 기준 맥퍼슨 스트럿 + 디스크브레이크 / 리프 스프링 및 활축(Live axle) + 드럼브레이크 조합으로 구성했다.
초대 카프리는 머스탱처럼 출시되자마자 합리적인 가격대+빼어난 스타일의 스포티카[4]로서 유럽에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며, 브리티시 레일랜드나 루츠 그룹,[5] 오펠,[6] 르노,[7] 폭스바겐[8] 등에서도 카프리의 레시피를 모방한 경쟁차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 1969년 말에는 3.0L 에섹스 엔진이 들어가는 3000GT가 라인업에 추가되었다. 138마력(bhp 기준)의 최고출력에 96km/h까지 10초 미만, 최고시속 120mph(약 193km/h)을 기록하면서도 가격은 1천 파운드보다 약간 비싼 정도로 책정되었다.
- 1972년에는 서스펜션 세팅과 함께 인테리어를 업데이트하고, 기존의 V4 엔진과 켄트 엔진도 오버헤드 캠샤프트 기술이 적용되는 '핀토(Pinto)' 엔진으로 대체했다.
- 1973년에는 100만번째 카프리가 만들어졌다.
포드에서는 카프리의 상업적 성공과 함께 모터스포츠 활동에도 신경을 썼으며, 쿠겔피셔(Kugelfischer) 연료분사 시스템이 들어간 150마력(bhp 기준) 엔진과 전용 서스펜션 튜닝이 적용된 카프리 RS2600으로 유러피안 투어링카 챔피언십의 그룹 2 부문에 참여했고, RS3100으로 한 차례 업그레이드를 가했다. 단종 때까지 총 120만대의 1세대 카프리가 만들어졌다.
3. 2세대 (1974~1978)
1976년식 카프리 II 1600 GL
CAPRI II | |
제조사 | 포드 유럽 |
생산지/생산기간 | 영국 헤일우드/ 서독 쾰른, 1974~1978 |
이명 | 머큐리 카프리 |
엔진형식 |
1.3/1.6ℓ I4 크로스플로우 1.6/2.0ℓI4 핀토 2.0/2.3ℓ V6 쾰른 3.0ℓ V6 에식스 |
미션형식 |
3단
자동변속기 4단 수동변속기 |
구동방식 | FR |
전장 | 4,240-4,313 mm |
전폭 | 1,698 mm |
전고 | 1,357 mm |
휠베이스 | 2,559 mm |
카프리 마크 II는 1974년 2월 25일에 공개되었다. 1973년의 오일쇼크를 겪고 난 이후 포드는 카프리를 좀 더 실용적으로 바꾸고자 본넷 길이를 줄이고 캐빈을 넓게 뽑았으며, 해치백 형태의 트렁크와 분할형의 접이식 뒷좌석을 달게 했다. 트림별 라인업은 형제차 코티나를 따라 카프리 L, GL, 그리고 고급형 모델 기아(Ghia)로 구성하되 3000S, JPS 등의 특별 사양이 합류했다. 한편으로 1.3L 모델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모델엔 C3 3단 자동변속기가 들어갔는데, 기야 트림의 구매자들은 거의 3단 자동변속기를 고르고 출고했기 때문에 1976년형의 기아 트림부터는 3단 자동이 기본, 4단 수동이 옵션으로 달려나오게 되었다.
판매실적 면에서는 석유파동과 소형 해치백의 흥행, 핫해치로 인한 스포츠카 수요의 이동으로 인해 이전 세대보다 다소 부족했다.
4. 3세대 (1978~1986)
1979년식 카프리 III 3.0 기아(Ghia)[9]
1977년에 데뷔했으며, 프로젝트 카를라(Project Carla)라는 코드명 하에 2세대 모델의 단점들을 개선하고 스타일링을 현대적으로 보강했다. 2세대 모델의 업데이트판에 가까울 정도로 변경사항을 보닛, 후미등, 범퍼 등으로 최소화하면서도 전반적인 큐를 1970년대 트렌드에 맞추었다. 오펠 만타 등의 스포티카 고객들을 겨냥한 카프리 S가 인기를 끌었으며, 3.0L 엔진이 들어가는 고성능 사양도 실질적인 경쟁자가 없는 수준의 가격 대비 고성능을 무기로 판매했다.
그러나 1970년대의 핫해치 물결이 1980년대에도 계속되며 스포츠카 수요를 빼앗아가고 있었고, 포드도 에스코트나 피에스타의 핫해치 버전에 집중하느라 카프리도 예전같은 성공은 장담하기 어렵게 되었다.
- 1981년에는 에섹스 엔진을 쾰른 V6 엔진으로 대체했으며, 쾰른 V6 엔진이 들어가는 카프리 인젝션(Injection)을 라인업에 추가했다. 연료분사 시스템이 들어감으로서 96km/h까지 7.7초에 최고출력 160마력을 기록하여 카프리 계보상 최고성능 모델이 되었다.
말년에는 칼립소(Calypso), 카바레(Cabaret), 브룩랜즈(Brooklands) 등의 특별판으로 최소한의 관리만을 이어 갔으며, 1987년에 카프리라는 모델명 자체가 완전히 단종되었다. 이때까지 총합 180만대 이상의 카프리가 3세대 동안 만들어졌다.
유럽 포드에서는 카프리를 대신해 미국에서 만든 프로브를 유럽으로 수입했으며 프로브의 후속 모델로 개발된 글로벌 모델 쿠거, 그리고 유럽 현지형의 아랫급 모델인 퓨마를 만들었다가 쿠페 라인업에서 머스탱만을 남기고 모두 단종시켰다.
4.1. 카프리 작스피드 터보
5. 둘러보기
[1]
머스탱은 미국 포드의 엔트리급 컴팩트카인
팰컨을 기반으로 만들었다. 디자인 초안은 미국 포드에서 파견된 고든 맥레이(Gordon Mackray)가 제시하여 영국 포드의 닐 버틀리(Neil Birtley)가 디자인을 다듬어나갔으며, 특히 카프리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C필러 처리는 고객 클리닉 과정을 반영하여 뒷좌석의 갑갑한 분위기를 덜어내기 위해 후측면 창문을 키운 결과물이다. 이외에도 초기에는 머스탱 기본형 쿠페처럼 3박스 노치백 쿠페가 고려되기도 했다.
1세대 카프리의 디자인 시안들
[2]
현재는 재규어랜드로버 소속 공장으로 운영 중.
[3]
처음에는 2.0L V4엔진이 기함급이었고, 에섹스 엔진은 차후 라인업에 합류했다.
[4]
영국 사양의 보급형 모델인 카프리 1.3L 라인의 가격은
오스틴 맥시보다 100파운드 저렴한 895파운드(2019년 기준 약 1만 5천 파운드)에서 시작했다. 다만 성능은 96km/h까지 18.8초에 최고시속도 84mph(약 135km/h)로 숫자상으로는 빈약했다.
[5]
이후
심카와 함께 유럽
크라이슬러로 통합.
[6]
이때 나온 경쟁차가
오펠 만타로, 동 시기 오펠의 중형차 라인인
아스코나를 토대로 만들어 카프리의 레시피에 충실하게 개발되었다.
[7]
르노 15와
17이
르노 12를 토대로 개발되었다.
[8]
골프를 토대로 개발하여 체급은 카프리보다 작으나,
비틀을 토대로 한 2도어 쿠페인 카르만-기아의 후속으로
폭스바겐 시로코가 시장에 등장했다.
[9]
이탈리아의
카로체리아로, 포드에 인수된 이후에는 포드 차량들의 상위 트림명으로 사용되었다가 현재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있다. 당연하지만 이
기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