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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2 09:36:34

토지 제4부

토 지
土 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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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제4부
파일:external/www.maroniebooks.com/01000311_G.jpg
장르 대하소설
작가 박경리
발표 마당 1981년 9월호 (연재 시작)
마당 1982년 7월호 (연재 중단)
정경문화 1983년 7월호 (연재 재개)
정경문화 1983년 12월호 (연재 중단)
월간경향 1987년 8월호 (연재 재개)
월간경향 1988년 5월호 (연재 종료)

1. 개요2. 줄거리3. 주요 사건
3.1. 작중 사건3.2. 역사적 사건
4. 등장인물
4.1. 진주4.2. 만주4.3. 통영4.4. 동경4.5. 서울4.6. 평사리4.7. 지리산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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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의 전체 5부 중의 4부. 1981년 연재를 시작해 1988년 끝마쳤다. 연재 중단이 가장 많았던 시기로 연재 기간도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길다. 거의 8년에 걸쳐서 씌어졌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분량은 가장 적다. 최종 연재처였던 월간경향의 사정으로 1988년 5월 연재가 중단되면서 4부도 동시에 종결된다.

실제로도 박경리는 4부를 쓰기 시작하면서 4부가 다루고 있는 시기를 소설로 표현해 내기가 어려웠음을 밝히기도 했다.
4부를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사명이라는 동아줄에 묶이고 말았다. 그 동아줄은 전신을 칭칭 감았고 날로 강하게 나를 죄었다. 4부의 시간이며 무대 1930년에서 45년까지, 철저히 봉쇄되고 바닥까지 수탈당했으며 모든 것이 말살되었던 일제 침략의 말기를 살았던 마지막 세대인 나, 작가라는 멍에를 짊어진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뭔가에 의해 쫓기는 기분이었다. 강박이었고 초조, 불안이었다.

열 가닥의 씨올로 짠 피륙이 3부까지의 『土地』라면 4부는 삼십 줄 오십 줄의 씨올로 짜야 하는 베다. 내용도 나락같이 깊었지만 엄청난 양감 때문에 나는 망연자실했으며 어디서부터 허물어야 할지, 나를 비웃는 태산이었다. 만주사변에서 중일전쟁, 세계대전, 이미 민족의 수난이라는 테두리를 넘어서 인류의 수난으로 치닫는 전쟁의 광란, 어느 누가 환난을 피할 수 있을 것이며 인간은 소모품으로 파괴되고 영혼 육체가 참살되던, 일찍이 역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가공할 시기... 그 고통스런 작업의 포기를 나는 수없이 생각했다.

4부는 일본이 기둥이다. 철저한 일본의 분석 없이 작품의 진행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며 민족주의의 한 측면인 에고이즘에서 빠져나가야 했고 냉정히 통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감정, 수만의 신경이 바람에 전율하는 풀잎일지라도 무디게 뚫고 나가야, 내면은 아우성이며 포탄이며 전진이었다. 먼지 거미줄과 기록의 난무 속에서 나는 내가 황폐해가는 것을 느꼈다. 두 번이나 소설 연재를 중단했고, 다시 시작하여 겨우겨우 1938년 남경대학살에까지 왔는데 나는 기진맥진했다. 때맞추어 월간경향지는 사(社)의 사정으로 『土地』 연재를 중단했다. 작가생활 30여 년 게재지에서 작품을 중단하기론 이번이 처음이며 안으로 지쳤고 밖으로 중단의 고배를 마신 것이다. 사정이야 여하튼 나는 나를 추스려야 했다.

-1988년 시집 『못 떠나는 배』의 작가서문에서

2.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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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부터 1939년까지.

길상은 서의돈과 함께 계명회 사건에 연루되어 2년형을 언도받고 복역한다. 이에 서희는 서울을 왕래하면서 길상의 뒷바라지에 힘쓴다. 환국은 아버지 길상을 매우 존경하며, 그의 자질을 이어받아 그림에 소질이 있다. 그러나 어머니 서희의 뜻을 따라 와세다대학 법과를 지원한다.

김환이 죽고 길상이 수감된 후, 관수와 강쇠 등은 만주, 조선에 걸쳐 조직망을 엮는 데 힘쓴다. 관수의 아들 영광은 강혜숙과 편지로 교류하는 중 신분이 탄로나고 퇴학까지 당하자 가출한다. 이것이 한이 된 관수는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독립 운동에 더욱 매진하게 된다. 길상의 출옥 후를 생각하며 관수는 서울 출신의 소지감을 운동에 끌어들이고, 지감은 그를 통해 지리산의 강쇠, 해도사를 알게 된다.

한복은 아들 영호의 학생운동에 의한 수감으로 마을 사람들과 화해하게 된다.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굴레를 벗게 된 셈.

청년기의 환국과 윤국은 3·1 운동 후 학생 운동이 연이어 일어나는 가운데, 자신들의 풍족한 처지와 현실 사이의 괴리감으로 인해 방황과 고민이 깊어가고, 윤국은 가두 시위에 참가하여 감옥살이를 하고 무기 정학 처분을 받는다. 서희는 의식 있는 청년으로 성장한 아들들을 대견스럽게 생각하면서도, 자신들의 신분과 재산을 부담스러워하는 아들들[1]을 보며 공허감이 더욱 커져만 간다.

불행한 결혼 생활에 점점 황폐해져 가는 명희에게 조용하는 동생 조찬하와의 불륜을 이유로 이혼을 선언한다. 자신을 따르지 않던 명희로부터 항복을 받아내고 동생을 학대할 것을 의도했던 조용하였지만 명희는 순순히 이혼에 응하겠다며 자진해서 떠나 버리고, 조용하는 분노에 몸을 떤다.

일본 여인과 결혼한 조찬하는 일본에서 오가다란 일본인과 사귀게 되는데, 오가다는 명희의 제자인 유인실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는 코스모폴리탄이다. 조찬하는 그와의 대화에서 일본적인 것과 조선적인 것을 구명해 보려고 애쓴다.

가출한 명희를 불러들인 조용하는 자존심을 회복하려고, 명희의 마음을 되돌리려 애쓰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산장에 가두고 능욕한다. 모욕감에 자살을 기도하다 살아난 명희는 여옥을 찾아가 일자리를 부탁하고, 결국 시골 초등학교 교사 촉탁으로 일하게 된다. 조찬하는 유인실과 오가다와 함께 시골 학교의 명희를 찾아가지만 상처입은 짐승 같은 그녀의 경계에 놀라고. 그녀 역시 모멸감에 괴로워한다.

한편, 길상은 어느새 중요해진 자신의 위치를 종종 낯설어하고, 가족 사랑 속에서도 외로움을 느낀다. 그는 최씨 집안에서 같은 존재인 양현이 자신의 출신에 대해 자연스레 알아 나가기를 바라며 하동의 이부사댁으로 데리고 가기도 한다.

조국에 대한 사랑과 오가다에 대한 사랑으로 갈등하던 유인실은 오가다에게 ' 생명보다 소중한 것'을 바치고, 결국 그로 인해 아이를 얻게 된다. 그녀는 아무도 몰래 일본에서 아이를 낳아 조찬하에게 부탁하고, 독립 운동을 하러 중국으로 떠난다. 그 곳에서 그녀는 송장환을 찾아가고 그를 통해 윤광오를 만나게 되고, 찬하는 고민 끝에 아이를 자식처럼 기른다.

인실이 떠난 후 상실감과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오가다는 만주에 와 떠돌아다니다 토건 회사에 취직하게 되고, 여행을 하던 중 하얼빈에서 우연히 인실의 자취를 발견한다.

3. 주요 사건

3.1. 작중 사건

3.2. 역사적 사건

1930년 인도 전역에서 비폭력·불복종 운동 개시.
1931년 길림성 만보산에서 수로 공사 중 한·중 농민 충돌( 만보산 사건). 만주사변 발발.
1932년 이봉창, 윤봉길 의거. 만주국 성립.
1933년 히틀러 독일 총리 취임. 뉴딜정책 실시.
1934년 조선 농지령 공포.
1936년 손기정,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우승.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동아일보》 정간. 조선 사상범 보호관찰령 공포.
1937년 만주 동북항일연합군 보천보 주재소 습격( 보천보전투). 중일전쟁 시작. 남경대학살.
1938년 일본 국가 총동원령 선포. 독일, 오스트리아 합병.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 시작.

4. 등장인물

4.1. 진주

4.2. 만주

4.3. 통영

4.4. 동경

4.5. 서울

4.6. 평사리

4.7. 지리산

5. 관련 문서



[1] 환국은 사회적인 강자로서의 위치에, 윤국은 자산가로서의 부에 부담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