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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5 05:16:13

탈공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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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어: Decommunization
독일어: Dekommunisierung
폴란드어: Dekomunizacja
슬로바키아어: Dekomunizácia
체코어: Dekomunizace
프랑스어: Décommunisation
스페인어: Descomunización
포르투갈어: Descomunização
이탈리아어: Decomunizzazione
루마니아어: Decomunizare
우크라이나어: Декомунізація
벨라루스어: Дэкамунізацыя
러시아어: Декоммунизация
소련 공산주의 블록의 붕괴 이후 민주화된 국가들에서 전체주의 시절에 만들어진 관료적 기득권에 대한 청산, 강제 수용소를 비롯한 억압에 대한 역사 청산, 더불어 다시 공산주의 세력이 기득권을 잡지 못하도록 하는 여러 반공주의적 조치들.[1]

다만 이념적으로써의 공산주의, 사회주의와 대칭되는 개념은 아니다. 탈공산화는 정치적 개념이 강해서 공산화 과정에서 분배받은 (토지나 건물 따위의) 재산을 몰수하여 이전의 소유자에게 돌려주거나 하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2] 쉽게 말해 경제적 개념인 시장 자유화는 자본주의화, 정치적 개념인 탈공산화는 민주화라고 볼수 있다. 따라서 탈공산화가 시장 자유화, 신자유주의화, 자본주의화를 반드시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탈공산화의 일환으로 서유럽의 사회안전망을 모델로 부의 재분배를 확대하거나 공산당과 연관된 구 기득권들을 청산하고 부정부패를 퇴치하기 위해 경제활동에 더 많은 간섭을 부과할수도 있다.

다만 실제로는 탈공산화가 그리 엄격하게 진행되지 않는 경우는 많아서 공산혁명 관련 인물 동상을 철거하거나 문제되는 인원들 정도를 적당히 거르는 경우가 많고, 아예 관료조직 자체를 들어내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이렇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공산당원의 비율이 전체 인구수에서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거나[3] 공산당 혹은 공산당의 후신 정당들이 상당한 세를 얻는다거나 하는 사례들이 많아서 그렇다. 불가리아나 헝가리, 루마니아만 해도 민주화 직후에 이름만 싹 바꾸어서 민주주의 국가의 정당으로 활동하는 사례도 있다. 구 공산권 국가들의 정권이 루마니아를 제외하면 유혈사태 없이 붕괴했고, 결국 국가와 기득권들은 유지된 상태로 남았기 때문이다. 결국 공산권 붕괴 이후 탈공산화는 각국 구성원들의 몫인 셈이다. 우크라이나도 1991년 독립과 2004년 오렌지 혁명 모두 탈공산화가 매우 불완전했고 본격적인 탈공산화는 시민들이 총을 들고 나라를 뒤엎은 다음 전쟁까지 해야 할수있었다. 다만 러시아는 예외적으로 국민들이 소련에 대한 향수를 지니고 있음에도 공산당이나 공산당의 후신정당들이 집권한 적은 없다.[4]

2. 국가별 진행 과정

2.1. 폴란드

1998년 폴란드는 국가 기억 연구소(Instytut Pamięci Narodowej, Institute of National Remembrance)를 설립해 공산주의 정권 하에 있었던 범죄를 엄격하게 처벌했으며 공산정권 당시 집권정당이었던 폴란드 통일노동당 및 국가안전부(Służba Bezpieczeństwa, 보안국)의 고위공직에서 근무한 인사를 정부 요직에서 추방했다.

2.2. 독일

1990년 독일 재통일 이후 독일 정부는 동독에 남아 있는 공산주의의 잔재를 청산하기로 결정했다. 우선 동독의 지도자였던 에리히 호네커 베를린 장벽을 넘으려는 시민들의 사살명령을 내린 죄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으며 특히 악명높은 슈타지(Stasi, Ministerium für Staatssicherheit, 국가보안부) 관련 기록을 철저하게 조사해 슈타지 관련 인사들을 처벌하고 연방슈타지기록위원회(Der Bundesbeauftragte für die Unterlagen des Staatssicherheitsdienstes, BStU)에서 보관하고 있다. 1998년에는 SED-독재청산재단(Bundesstiftung zur Aufarbeitung der SED-Diktatur)이 독일 의회에 의해 설립되어 구 동독 공산독재를 청산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2.3. 체코

1991년 체코슬로바키아 정부는 공산정권 시절 비밀경찰이었던 국가보안경찰(Státní bezpečnost, StB)에서 근무한 인원을 체코슬로바키아 내 주요 정부 및 군, 경찰 또는 민간 요직에 진출할 수 없도록 했으며 체코슬로바키아가 해체된 후인 1995년에 체코 정부는 공산주의 범죄 기록 및 수사 사무국(Úřad dokumentace a vyšetřování zločinů komunismu služby kriminální policie a vyšetřování, ÚDV)을 창설해 공산정권 시절 일어난 범죄들을 기록 및 수사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레닌 동상은 시애틀로 수출되어 시애틀 시민들의 독특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되었다. 능욕 그러나 2017년 총선 이후로 체코에서 공산당이 연립정당의 형태로 정권에 참여하면서 퇴색하고 있기는 하다.

2.4. 슬로바키아

2003년 국가기록연구소(Ústav pamäti národa)가 설립되어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시절 경찰 기록들을 보관하고 있다.

2.5. 헝가리

헝가리는 1989년 헝가리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카다르 야노시의 사망 이후 개혁을 시작해 1990년에 민주화된 후 1956년 헝가리 혁명 당시 소련에 의해 처형당한 너지 임레를 복권시키는 등 공산정권 당시 일어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인사들을 복권시켰다. 1994년에는 헌법재판소에서 공산정권 시절 고위관료로 근무한 인사의 명단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5]

헝가리에서는 1993년에 공산주의를 포기한 후 낫과 망치를 금지한 적도 있으나 2013년 헝가리 헌법재판소에서 낫과 망치를 금지하는 법이 헝가리 헌법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폐지했다.

2.6. 루마니아

루마니아는 1990년 혁명 이후 본격적으로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시절 이루어진 살인 및 범죄를 수사하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루마니아공산범죄수사연구소(Institutul de Investigare a Crimelor Comunismului în România)를 설립해 공산정권 당시 일어난 범죄들을 기록, 수사했다.

2.7. 불가리아

2000년, 불가리아 의회가 불가리아의 공산주의 정권을 범죄로 선언하는 법(Закон за обявяване комунистическия режим в България за престъпен)을 통과시켰다.

2.8. 알바니아

2010년, 공산주의 범죄 및 결과 연구소(Instituti i Studimeve për Krimet dhe Pasojat e Komunizmit)가 알바니아 의회에 의해 설립되었다.

2.9. 세르비아

1944년 9월 이후 사망한 사람들의 비밀 무덤에 대한 국가 위원회(Државна комисија за тајне гробнице убијених после септембра 1944)가 설립되어 유고슬라비아 공산정권 시절 이루어진 사법살인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2.10. 발트 3국( 리투아니아 · 라트비아 · 에스토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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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빌뉴스 시에 있는 제노사이드 희생자 박물관, 통칭 KGB 박물관(출처: 위키백과)

1920년 타르투 조약으로 처음으로 독립을 쟁취했으나 1940년 독소 불가침조약으로 소련에 강제로 합병되었던 아픈 역사를 가진 발트 3국은 1991년 독립 이후 옛 소련 국가 중에서 가장 철저하게 소련 시절을 청산했는데 우선 1995년 자국에 남아있던 러시아군을 철수시켰다.

특히 발트 3국에서는 자국의 소련 시절을 괴뢰국으로 간주하며 소련이 강제 병합한 것으로 여기므로 소련으로부터 '독립'이라는 표현을 쓰는 대신 '국권 재회복'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오늘날 발트 3국에서 소련의 상징( 낫과 망치)을 공공장소에서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며, 실제로 경찰에 조사를 받을 수도 있다.


2015년 승리의 날 당시 라트비아 수도 리가에서 낫과 망치가 들어간 깃발을 휘날리다 실제로 연행된 사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는 더욱 가속돼서 빌뉴스에선 공공장소에서 대독승전일을 기념하는 것이 경찰에 의해 제지됐다.

2.11. 몰도바

2010년 미하이 김푸 몰도바 대통령에 의해 몰도바 공산주의 독재 연구 위원회(Comisia pentru studierea şi aprecierea regimului comunist totalitar din Republica Moldova)가 설립되었다. 해당 위원회는 소련 치하 몰도바에서 일어났던 범죄와 인권 침해를 연구하여 보고서를 작성했다. 2012년에는 몰도바 의회가 공산주의 상징물을 금지했다. #

2.12.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내 전체주의 상징 금지법

우크라이나의 탈공산화 과정은 조금 독특하다. 우크라이나에서 진행되는 탈공산화의 목적은 소련 시절의 유산 청산과 함께 러시아 제국 시절까지 청산하는 탈러시아화(De-russification)로, 이는 유로마이단 혁명,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돈바스 전쟁의 영향이 크다.

원래 우크라이나는 스탈린의 대숙청 홀로도모르 같은 사건을 겪으면서 소련에 대한 감정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독립 이후 공산당의 세력이 나름대로 상당했고 경제난으로 인해서 소련 시절에 대한 향수[6]가 제법 있었던지라 러시아와 친했던 편이라 여기에 대해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는 않았다.

특히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오렌지 혁명으로 집권한 친서방 정권이 시원찮은 모습을 보였고 미국발 금융위기나 테러와의 전쟁 등 서방진영도 열심히 죽쑤던 시기라 과반을 크게 넘는 국민들이 EU 및 NATO 가입에 부정적이였고 러시아에 대한 호감도가 높은 수치를 기록한 시기가 있었다. 그렇게 집권한 친러 성향의 야누코비치 정권과 러시아가 상식선에서만 행동했어도 우크라이나는 중립지대로 남았겠지만....

2013년에 EU 가입 정책 철회를 규탄하는 시위를 이유로 경찰의 인권 침해 합법화, 무제한적인 인터넷/언론 검열, 재판과 수사에서 피고인 배제, 집회및 결사 봉쇄, 입법부 무력화를 가능하게 하는 일명 "반시위법" 패키지를 불법으로 통과시키고[7] 특수부대와 어용 폭력단체, 장갑차, 저격총을 동원해서 반발하는 시위대를 진압하려고 시도하는 최악의 무리수를 두었다. 결국 민심을 완전히 잃어버린 친러 정권은 집단발포 후 분노한 시위대가 불어나고 혁명을 선언하자 대통령부터 정부 수반들까지 도망갔다. 지방정부, 군경, 의원 절대다수가 과도정부에 충성하면서 친러 정권이 붕괴됐다.

유로마이단 혁명 중 키이우에서의 레닌 석상의 철거를 시작으로[8][9] 전국에 위치한 레닌 동상이 철거되었는데 이는 Ленінопад(Leninfall, 레닌의 몰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기에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돈바스 지역에서 친러 세력에 의한 반란이 발생하면서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에 대한 감정은 혐오에 가까운 수준이 되었고, 무엇보다 자국의 러시아의 영향력에 대해 위협을 느낀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가 문화적, 사회적으로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는 소련, 러시아의 잔재를 청산하기 시작했다.

2015년 우크라이나 의회는 탈공산화법을 제정해 소련 시절 소련 공산당 및 KGB, GRU 등 고위급 간부로 근무한 인물을 우크라이나 정부기관에서 임용할 수 없도록 지정했으며 친러 보수 성향을 띄던 우크라이나 공산당[10] 및 3개 정당이 해산되었다.

또한 소련 시절의 인물들이 들어간 지역 이름이나 거리 이름을 바꾸는 작업도 진행했는데, 이로인해 바뀐 지명을 몇 가지 살펴보자면:
(굵은 글씨는 대도시)
하지만 정작 저들 도시 중 일부 지역(크라스노돈, 키롭스크, 스베르들롭스크, 스타하노프, 체르노보파르티잔스크 등)은 우크라이나 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지배지역이라 실효성은 없는 명목상의 개칭이다.

전술한 도시 이름이 전부는 아니어서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약 900여 개가 넘는 지명과 주소가 바뀌었고, 우크라이나 전역에 위치한 공산주의 시절 조형물이 다수 철거되었다.

다만 이런 탈공산화법의 초안을 만든 사람이 블라드미르 비아트로비치[26]가 하필이면 스테판 반데라가 만든 OURN을 옹호하는 책을 낸 사람이다 보니 러시아뿐만 아니라 폴란드와 체코, 슬로바키아 등 주변국과 이스라엘로부터 어그로를 팍팍 끌었다.(...) 폴란드와 체코, 슬로바키아도 러시아로부터 당한 게 많다지만 반데라가 폴란드인들과 유대인들을 학살한 인물인 데다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하는데 일조한 전적까지 있는데 하필이면 반데라를 옹호하는 작자가 법을 만든다고 하니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2019년에 중도 성향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집권하면서 정권이 바뀌고 유럽 국가화와 국민 통합으로 정책 기조가 바뀌면서 탈공산화 정책은 굳이 강조되지 않았으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다시 탈러시아화에 불이 붙어 추진되는 중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도망치지 않고 러시아에 맞섬에 따라 우크라이나인들은 서부와 동부 할 것 없이 전례없이 단결하여 러시아에 저항하고 있고, 이에 따라 탈러시아화 정책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며 전쟁 중인 지금도 정부와 시민들에 의해 레닌과 소련의 조형물이 계속 철거되고 있으며 지명이나 도로명도 계속 변경되고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의 방위산업체이자 BT 전차, T-34 전차를 시작으로 소련의 여러 주력 전차들을 만든 것으로 유명한 하리코프 모로조프 설계국은 아예 간판에서 수훈했던 소련 훈장 4종을 전부 다 떼 버렸고 남아있는 동상들은 우크라이나 국기 색 페인트로 칠해지거나 영화 스타워즈의 주인공 다스 베이더 조각상으로 재창조하는 등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도화지가 되고 있다.

다만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소련군으로 참전했던 노병들이 수훈했던 훈장과 메달을 계속 패용하는 것은 허용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노병들이 군 예복/정복이나 양복 위에 그대로 훈장을 패용하고 찍은 인터뷰 영상을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2014년 크리반도 합병 당시 노병들의 인터뷰 영상이라던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아주 오랫동안 살아오던 집이 무너진 한 우크라이나 할아버지도 여전히 소련 시절에 수훈한 훈장과 메달을 패용하고 있었다. 이는 이들이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헌신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지만 동시에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은 이들에게 엄청난 배신감을 안겨주었을 것이며 한때 지키고자 했던 조국이 갈라져서 총구를 겨누는 잔혹한 역사의 아이러니다...

2.13. 조지아

2010년 조지아 의회가 KGB 소련 공산당 고위직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의 고위직 진출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2.14. 러시아

1991년 8월 쿠데타 이후 러시아 공화국은 소련 공산당의 활동 금지 및 소련 공산당이 소유하던 재산을 몰수하였다. 물론 그 뒤 헌법재판소에서 공산당 활동의 금지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고 1993년에 소련 공산당의 후신을 자처하는 러시아 연방 공산당이 재건되었지만 몰수재산의 반환소송에서는 패소하였다.

페레스트로이카 말기 러시아 공화국에서 보리스 옐친을 비롯한 개혁파가 힘을 얻던 시절에는 공산주의 시절 인물들이 들어간 지역 이름이나 거리 이름도 바뀌었다. 예들 들어 레닌그라드, 고리키, 스베르들롭스크, 쿠이비셰프같은 대도시는 각각 상트페테르부르크 니즈니 노브고로드, 예카테린부르크, 사마라로 바뀌었다. 또한 수많은 도시에서 사회주의 시절 기념물들이 해체되었으며[27] 각종 기구들((예) 레닌 도서관: 러시아 국립 도서관, 사회주의 혁명 기념 역사 박물관: 러시아 역사 박물관)의 이름이 바뀌고 성격이 달라졌다.

소련 붕괴 이후 1990년대에는 동유럽과 유사한 탈공산화 시도가 있었다. 1996년에는 당시 국가두마 의원이었던 갈리나 스타로보이토바를 중심으로 청산법(Закон о люстрации)이 발의된 적이 있었지만 당시 제1당이었던 러시아 연방 공산당의 반발로 채택되지는 못했고[28] 이후 스타로보이토바는 옛 정보기관 출신 인사들과 대립하다가[29] 1998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자신의 저택에서 암살당했다. 이후 국가 차원에서 옛 공산당, 정보기관 및 군 인사들을 청산하려고 한 시도는 없었다.

러시아에서 탈공산화에 시큰둥한 가장 큰 원인은 민간 차원에서 공산주의 시절과 소련 체제에 대한 반감이 적었고 정치적으로도 공산당이 30년 넘게 야당 신세가 되다 보니 굳이 탈공산화 작업에 나서야할 동기가 약했기 때문이다. 다른 옛 사회주의권 국가와는 달리 러시아는 소련에서도 가장 핵심부였으며 러시아어는 소련 시절 연방 공용어로써 지위를 누렸다. 특히 소련 붕괴 이후 많은 시민들이 빈곤한 상태에 놓였고 사회적으로도 범죄율이 폭증하고 경찰이 한동안 도적처럼 행동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패도 극심했는데 이들은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있던 소련 시절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이 소련을 무너트린 옐친의 후원으로 대통령 자리에 올랐는데 당시 러시아에서 소련에 대한 향수가 만연했던 데다 푸틴이 대통령직에 오른 계기 중 하나가 제2차 체첸 전쟁에서의 강경한 모습을 보이면서 승리를 거두었다는 점이었다. 이후로도 푸틴이 미국과 서방을 상대로 외교적으로 강경한 모습을 보이면서 푸틴과 통합 러시아가 공산당의 지지층을 흡수하는데 성공했고, 그 결과로 통합 러시아는 옐친 당시의 리버럴 우파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푸틴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공산당은 지지율이 높아 봐야 20% 안팎에 그칠정도로 낮은 데다 적극적으로 반푸틴에 동참하기보다는 보신주의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지라 푸틴과 통합 러시아 입장에서는 굳이 돈을 써가면서 레닌 동상 철거 같은 탈공산화 작업을 할 필요가 없었다. 사실 탈공산화가 진행된 국가들은 역설적으로 공산당이나 공산당의 후신정당들이 강한 세를 차지하거나 한 적이 있는 나라들이라서 탈공산화 작업에 대한 욕구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지만[30] 러시아는 공산당이 세가 없고 노땅정당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대안도 못 된다는 것은 자신들도 알아서 협조적으로 나서는데 굳이 마찰을 빚어가면서 정통성을 높일 이유가 없던 것이었고 탈공산화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었던 때도 공산당이 집권 가능성이 높았던 보리스 옐친 때의 일이었다. 그래서 푸틴이 우크라이나에서 탈공산화 작업을 한다니까 그까짓 레닌 동상 같은 거 우리도 철거해 봤는데 우크라이나에서도 똑같은 거 한다고 러시아와 관계가 사라지거나 공산주의의 잔재가 없어진다면서 비아냥 거리는 반응을 내놓았던 바도 있다.

시민 사회가 주도하여 공산정권이 민주화되었던 동유럽 혁명과는 달리 러시아에서 소련 붕괴는 사실상 러시아 공화국 지도부가 고르바초프 및 공산당 보수파와 대결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옛 소련 체제에서 정권의 핵심이었던 노멘클라투라 실로비키 같은 인사들은 대부분 새로운 러시아에서 이전에 누렸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런 배경은 옛 KGB 출신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가 출범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정치적으로 우파 성향을 띄기는 했고[31] 경제정책에 있어서 사유화 정책도 펼쳤지만 동시에 소련 시절의 위상만큼은 그리워하는 반응을 보였다. 러시아에서는 소련에 반대한다는 것이 러시아 패권주의에 반대한다는 뜻이 전혀 아니라서 타 공산권 국가에서 생각하는 탈공산화와 거리가 먼 것도 큰 영향을 끼쳤다. 가령 러시아 정교회만 해도 소련 시절에 반동이라며 탄압받았던 적은 있지만 옐친과 푸틴에 의해 복권되고 국교급으로 위상이 격상되어서 소련 시절 국가에 몰수된 재산을 되돌려받는 등의 대우도 받았지만 그와 동시에 러시아 패권주의에는 적극적으로 찬동하고 있고 푸틴의 측근인 알렉산드르 두긴도 공산주의는 부정적으로 생각할지언정 러시아 제국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여 푸틴의 이념에도 반영되었다. 이런 이념적 성향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패권주의적 외교 행보에 큰 영향을 끼쳤다.

푸틴 정권의 출범 이후에도 러시아 야권에서는 지속적으로 탈공산화 노력을 펼쳤지만 러시아에서 야당을 지지한다는 사람들이 오히려 소련에 대한 향수가 더 강하기 때문에 이들은 소련의 위상에 대해 노골적인 향수를 드러내는 러시아 연방 공산당이나 러시아 자유민주당보다도 존재감이 낮고 총선에서도 차지하는 의석수가 얼마 안 된다. 애초에 집권여당인 통합 러시아도 러시아 패권주의를 시행할지언정 푸틴이 소련을 아예 비판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메드베데프처럼 대놓고 소련에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내는 인사들이 목소리를 내는 구조이기 때문에 통합 러시아와 포지션이 겹쳐서 차별화할 구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야블로코당이 소련과 푸틴 모두에게 비판적인 러시아 리버럴을 대변해 주는 정당이지만 당국의 직간접적인 탄압을 받는지라 목소리가 커지기는 힘들다. 대표적으로 러시아의 민간 기구인 메모리얼(Мемориал, Memorial)에서는 소련 시절 수용소나 국가 범죄, 그리고 재야의 반소 운동의 역사를 기록하고 널리 알렸으나 2022년 4월 러시아 정부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소련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준다는 이유로 정부에 의해 폐쇄되었다.[32]


[1] 공산주의 정당을 해산한다던가, 공산주의의 상징물을 금지한다던가 하는 [2] 간혹 성당 등의 종교시설이 다른 용도로 쓰이게 된 경우는 다시 몰수하여 종단에 돌려주는 경우가 가끔 있다. [3] 공산정권 시절에는 공산당에 입당하면 여러가지 혜택이 있기 때문에 공산당에 기를 써서 입당하는 풍조가 있었으므로 공산당원들의 비율이 상당한 편이었다. 거기에다가 공산당원들 가운데서 엘리트 계층들도 많기 때문에 함부로 짜르기 뭐한 경우도 많았다. 현재의 중국, 북한도 마찬가지다. [4] 집권할 뻔한 적은 있다. 겐나디 주가노프 참조. [5] 출처 [6] 주로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나타났다. [7] 국회를 기습적으로 열고 절차 무시, 월권, 날치기를 했으며, 표결은 거수(...)로 진행했다. [8] 철거되어 받침대만 남은 레닌 동상은 시민들에 의해 여러 행위예술의 재료가 되었다. [9] 여기에 푸틴과 러시아인들이 충격을 받았다고 하며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하기 직전 풀발기한푸틴의 연설에서 1시간에 걸쳐 이야기된다. 심지어 푸틴 이름으로 논문까지 만들었다(...). 이들의 망상에 가까운 마인드에서 레닌은 러시아의 정당한 영토인 우크라이나 지역을 자기 집권을 위해 민족주의자에게 팔아먹은 자인데 그 부산물인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이 레닌에게 감사하기는커녕 비난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사고방식이 다르다는걸 알수 있다. [10] 옛 소련 구성국에서 활동하던 공산당 계열 정당은 국제주의나 노동계급의 단결을 중점으로 하던 서유럽 좌익 계열과는 달리 옛 소련 시절에 대한 향수가 강하거나 애국을 강조하는 보수 성향이 강하다. 러시아 연방 공산당 문서 참조. [11] 이름의 유래는 펠릭스 제르진스키. 체카, 소련 비밀경찰의 수장이었다. [12] 이름의 유래는 혁명가 그리고리 페트롭스키. [13] 이름의 유래는 혁명가 야코프 스베르들로프. 스베르들롭스크는 예카테린부르크의 옛 이름이기도 했다. [14] 이름의 유래는 광부 알렉세이 스타하노프. 광부 시절 경이로운 석탄 채굴량을 기록하여 소련 당국이 공산주의 계획경제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존재로 신격화시켰다. [15] 카디이우카는 스타하노프가 커리어를 시작한 곳이었다. [16] 이름의 유래는 소련 혁명가 표도르 세르게예프. 정확히는 그의 별명인 아르툠 동무(това́рищ Артём) [17] 이름의 유래는 블라디미르 레닌의 원래 성인 울리야노프. [18] 소련의 혁명가. 스탈린을 지지했다가 숙청되었다. 러시아 남부에 위치한 도시인 블라디캅카즈의 옛 이름이었다. [19] 붉은(Червоно) 파르티잔(Партизан)이라는 뜻이다. [20] 이름의 유래는 역시 펠릭스 제르진스키. [21] 이름의 유래는 소련의 정치인 세르게이 키로프. [22] 이름의 유래는 역시 세르게이 키로프. 키로보흐라드 이전에는 그리고리 지노비예프의 이름을 딴 지노비예우시크였다. 처음에는 도시의 이전 이름이었던 엘리사벳흐라드로 바꾸려고 했으나 이 또한 러시아 제국 시절 옐리자베타 여제에서 딴 이름이라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23] 붉은 리만. [24] 붉은 돈이라는 뜻이다. [25] 이름의 유래는 붉은 군대. [26] 우크라이나의 역사가로 우크라이나 해방운동 연구소와 우크라이나 국립연구기념소 소장을 지낸바 있으며, 법을 만든 시점에서 유럽연대 소속으로 국회의원을 지내고 있었다. [27] 다만 도시 중앙에 위치한 레닌 동상은 아직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28] 공산당은 2003년 총선에서 통합 러시아당에게 1당을 내줄때까지 원내 1당이었다. [29] 당시 스타로보이토바와 대립하던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총리는 전직 KGB, SVR 의장을 거쳤던 중요 각료였다. [30] 우크라이나만 해도 공산당이 지역당과 연립정권에 참여하는 식으로 여러번 집권한 적이 있었고 폴란드도 사회민주노동당이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는 여러 번 집권할 정도로 힘이 셌으며 2005년 총, 대선으로 세가 크게 약해진 후에는 주요야당인 시민 연단과 협력하며 재기를 노리고 있다. [31] 애초에 푸틴 본인이 동독에서 KGB 첩보활동을 하면서 독일물을 맛본 사람이다. [32]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