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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4cdc7><colcolor=#000> 영국 찰스 3세의 왕비 카밀라 파커 보울스 Queen Camill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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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카밀라 로즈마리 파커 보울스 (Camilla Rosemary Parker Bowles)[1] |
출생 | 1947년 7월 17일 ([age(1947-07-17)]세) |
잉글랜드 런던 킹스 칼리지 병원 | |
학력 |
퀸즈 게이트 스쿨 (졸업) 몬 프로빌리 스쿨 (졸업) 런던 대학교 파리 캠퍼스 (프랑스어, 프랑스문학 / 중퇴) |
신체 | 167cm |
배우자 | 앤드루 파커 보울스 (1973년 결혼 / 1995년 이혼) |
찰스 3세 (2005년 결혼) | |
자녀 | 장남 톰, 장녀 로라[2] |
아버지 | 브루스 섄드 |
어머니 | 로잘린드 큐빗 |
형제 | 애너벨, 마크 |
종교 | 성공회 ( 잉글랜드 국교회)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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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초상화[3] |
[clearfix]
1. 개요
현 영국 국왕 찰스 3세의 왕비.찰스 3세가 왕세자였던 시절부터 관계를 이어오다가 각자 다른 사람과 결혼하고 자녀까지 낳았음에도 불륜을 지속했다. 결국 이혼을 통해 늦은 나이에 서로 결혼했고, 왕비가 된 인물이다.
2. 작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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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4] | 스코틀랜드에서의 문장[5] | 모노그램[]Camilla Regina(카밀라 왕비)라는 의미다. 공교롭게도 남편 찰스 3세의 모노그램 (Charles Rex III)과 이니셜이 같다.] |
- 웨일스 공비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Princess of Wales (2005년 4월 9일 ~ 2022년 9월 8일)
- 체스터 백작부인 Countess of Chester (2005년 4월 9일 ~ 2022년 9월 8일)
- 콘월 공작부인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Duchess of Cornwall (2005년 4월 9일 ~ 2022년 9월 8일)
- 스코틀랜드에서는 로스시 공작부인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Duchess of Rothesay (2005년 4월 9일 ~ 2022년 9월 8일)
- 캐릭 백작부인 Countess of Carrick (2005년 4월 9일 ~ 2022년 9월 8일)
- 랜프루 남작부인 Baroness of Renfrew (2005년 4월 9일 ~ 2022년 9월 8일)
- 아일스의 레이디 Lady of the Isles (2005년 4월 9일 ~ 2022년 9월 8일)
- 스코틀랜드의 공비 Princess of Scotland (2005년 4월 9일 ~ 2022년 9월 8일)
- 에든버러 공작부인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Duchess of Edinburgh (2021년 4월 9일 ~ 2022년 9월 8일)[7]
- 메리오너스 백작부인 Countess of Merioneth (2021년 4월 9일 ~ 2022년 9월 8일)
- 그리니치 남작부인 Baroness Greenwich (2021년 4월 9일 ~ 2022년 9월 8일)
- 왕비 폐하 Her Majesty The Queen (2022년 9월 8일 ~ 현재)
웨일스 공비 작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합의를 통해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웨일스 공비라는 칭호가 다이애나의 대표적인 작위였기 때문이다.[8]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는 각각 한 단계 낮은 작위인 콘월 공작부인과 로스시 공작부인이라고 불렸다.
2022년 9월 8일, 찰스 3세가 즉위하자 왕비 작위를 받게 되었다.[9] 그러나 선왕이 여왕이었던 관계로 왕비와 여왕을 구분하기 위해 왕의 배우자를 뜻하는 Consort를 붙여 'Queen Consort'로 불렸다. 이는 선왕과 구분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었기 때문에 2023년 5월 6일 대관식 이후부터는 Consort를 붙이지 않고 'The Queen'으로만 불리고 있다.
가터 훈장의 여기사,
씨슬 훈장의 여기사,
로열 빅토리아 훈장의 대십자 여기사,
대영 제국 훈장의 기사단장이자 대십자 여기사,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왕실 훈장의 수훈자,
찰스 3세 국왕 왕실 훈장의 수훈자,
국왕 폐하의 가장 영광스러운 추밀원의 일원이신 왕비 폐하 Her Majesty The Queen, Royal Lady of the Most Noble Order of the Garter, Extra Lady of the Most Ancient and Most Noble Order of the Thistle, Dame Grand Cross of the Royal Victorian Order, Grand Master and First and Principal Dame Grand Cross of the Most Excellent Order of the British Empire, recipient of the Royal Family Order of Queen Elizabeth II, recipient of the Royal Family Order of King Charles III, and a member of the Privy Council of the United Kingdom 공식 칭호[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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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유하고 있는 군 명예 직함은 다음과 같다.
- [ 펼치기 · 접기 ]
- *
호주군 왕립 군사 경찰대 대장 (2012년~)
- 캐나다 육군 여왕의 소총 연대 연대장 (2011년~)
- 영국 해군 의무 사령관 (2006년~)
- 영국 해군 HMS 애스터드 후원자 (2007년~)
- 영국 육군 제4소총연대 연대장 (2007년~)
- 영국 공군 RAF 할튼 명예 항공 준장 (2008년~)
- 영국 공군 RAF 리밍 명예 항공 준장 (2008년~)
- 영국 해군 HMS 프린스 오브 웨일스의 후원자 (2017년~)
- 영국 육군 라이플스연대 연대장 (2020년~)
- 영국 육군 특수수색연대 연대장 (2020년~)
- 영국군 근위대 그레네디어 가드 연대장 (2022년~)
- 영국 육군 왕립 창기병 연대 연대장 (2023년~)
- 영국 육군 군목부 후원자 (2023년~)
3.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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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 청년기 | 중년기 | 현재 (2024년) |
3.1. 어린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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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외삼촌 제레미 큐빗의 결혼식에서[11] |
카밀라는 상류층이기는 하지만 작위를 보유한 귀족은 아니었다. 카밀라는 남작의 외손녀로 작위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12], 백작의 딸로 레이디 작위를 가지고 있었던 다이애나보다 의전서열이 아래였다. 더군다나 다이애나의 친정은 일개 귀족 가문이 아니라 유구한 역사를 지닌 명문 스펜서 백작가[13] 출신이었다. 다만 영국의 귀족은 얼마 되지 않아 일반인이 남작의 외손녀를 만날 기회는 거의 없다.
카밀라는 외가의 귀족 혈통과 더불어 아버지 브루스 샌드가 사업[14]으로 축적한 재산으로 여타 귀족들과 다를게 없는 부유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당시 카밀라의 집에는 집안일을 하는 가정부와 정원사, 아이들을 키우는 보모까지 있었다. 또 매년 여름마다 집 안의 정원에서 가든 파티까지 개최했다. 어린 나이에 포니 클럽 캠프에 가입해 조랑말을 타며 승마를 배웠다. 아버지 브루스는 카밀라에게 매일 밤 책을 읽어줬는데, 이 영향으로 카밀라는 독서를 즐기게 되었다. 이외에도 그림, 원예와 같은 귀족적인 취미를 어릴 때부터 즐겼다.
5살 때부터 마을에 있는 남녀공학 학교에 다녔으며, 10살부터는 켄싱턴의 퀸즈 게이트 스쿨에 다녔다. 이 학교는 Private School에 해당하며, 주로 상류층 집안의 딸들이 다니는 학교였다. 학교 친구들은 카밀라를 내공이 깊고 자기 확신에 찬 남자아이(tomboy) 같은 여학생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고 하며, 당시는 Milla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또한 당시 친구들에게 "우리 증조할머니는 왕의 연인이었고, 따라서 나는 사실상 왕족이나 다름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1964년부터 스위스의 몬 프로빌리 학교에서 유학 생활을 했으며, 이후 프랑스로 건너가 런던 대학교 그룹 파리 분교에서 6개월 동안 프랑스어와 프랑스문학을 공부했다.
1965년, 사교계 데뷔 당시 |
이 무렵 카밀라는 한 사교계 파티에서 8살 연상의 앤드루 파커 보울스(1939~)를 처음 만났다. 앤드루는 왕립 기병대 장교로, 프린세스 로열 앤의 첫 남자친구이기도 했다. 1953년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 당시에는 시몬즈 자작의 명예 시동으로 대관식에 참여한 바 있다. 파티광이었던 두 사람은 급격히 가까워졌고, 이후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카밀라는 앤드루를 사랑했지만, 앤드루는 바람기가 심해 카밀라 뿐만 아니라 다른 여성들을 동시에 만나고 다녔다. 결국 두 사람은 곧바로 결혼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얼마 안 가서 헤어졌다.
3.2. 왕세자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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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첫 남편 앤드루 파커 보울스와의 결혼식 |
카밀라와 앤드루의 결혼식은 엘리자베스 2세, 프린세스 로열 앤, 마거릿 공주, 엘리자베스 왕대비가 참석하는 등, 당해 사교계에서 가장 큰 결혼식이었다.
하지만 "이때 찰스가 카밀라와 결혼하고 싶어도 못했을 것이다"란 이야기가 많다. 이는 당시엔 카밀라의 신분 자체가 왕세자와 결혼하기에는 적합하지 않게 여겨졌다고. 찰스 이전까지 영국의 왕위 후계자는 모두 왕족이나 귀족과 결혼했으니, 남작의 외손녀였던 카밀라가 왕세자비가 되기에는 한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게다가 당시 왕실에서는 왕세자비 자리에 순결한 처녀를 원했는데, 카밀라는 찰스와 만나기 이전에 이미 여러 남자와 교제했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18]
1984년, 가족들과 함께 버킹엄 궁전에서[19] |
카밀라의 결혼 이후 찰스와 카밀라는 친구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1979년 IRA 폭탄 사고로 찰스가 의지했던 루이 마운트배튼 백작이 사망하자 찰스는 카밀라에게 깊이 의존하게 되었고, 카밀라는 이미 자녀들이 있었음에도 불륜 행각을 계속 이어갔다. 심지어 찰스는 카밀라의 아들인 톰의 대부가 되어주기도 했다.
훗날 카밀라는 이 시기를 끔찍했던 시기라고 회상했는데, 2017년 데일리 메일과의 인터뷰에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을 되돌아보며 "매우 불쾌한 시간이었고 최악의 적이라도 그 시절을 겪게 하고 싶진 않을 정도였다"며 "가족이 없었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20]
3.3. 세기의 불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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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밀라는 내연남의 아내였던 다이애나 스펜서와 겉으로는 친근해보이는 관계를 유지했다. |
대신 찰스 왕세자는 사라의 여동생인 다이애나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왕실 어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다이애나가 왕세자비가 되었다.[22] 카밀라는 겉으로는 둘의 결혼을 적극 지지하는 척 했으며, 다이애나에게 찰스가 해외 순방을 갔을 때 함께 점심을 먹자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 그러나 이후로도 카밀라는 왕세자와 불륜을 지속하고 있었고, 왕세자 부부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심지어 찰스는 신혼여행에서 카밀라가 선물한 커프스 단추를 착용하기까지 했다.
사실 결혼 직전까지 다이애나는 찰스가 약혼자인 자신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을 보며 결혼을 몹시 망설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이미 찰스가 카밀라와 주고 받은 편지며 선물을 발견했고, 찰스의 일기장에서 카밀라의 사진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약혼이 발표된 상태였고, 온갖 기념품에 다이애나와 찰스의 얼굴이 인쇄된 이후였다. 왕실에서 파혼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고, 결국 다이애나는 찰스와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결혼한 후 겉으로는 잘 사는 듯했지만 찰스는 여전히 카밀라를 만나고 다녔다. 1989년에 다이애나는 한 생일 파티에서 카밀라를 만나 남편과 헤어져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카밀라는 오히려 "당신은 모든 걸 손에 넣었잖아요. 더 원하는 게 뭐죠?"라고 대꾸했다. 뿐만 아니라 카밀라는 왕실에 대해 잘 알고 왕실 어른들을 살뜰히 대우했기에 정작 엘리자베스 2세도 카밀라를 싫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국민들에게 맏아들 찰스보다 사랑받는 맏며느리 다이애나 스펜서를 견제했다는 말이 있다. 심지어 다이애나가 남편의 불륜 행각에 대해 시어머니에게 하소연하며 중재를 바랐을 때조차 엘리자베스 2세는 말로만 "찰스는 구제불능이구나."라고 할 뿐 아들의 불륜을 방관했다.
결국 다이애나는 아들들을 낳고 성실한 공무로 영국인들의 인기를 얻어 입지를 다지기 전까지 찰스의 불륜을 알고도 묵인하며 살아야 했다. 찰스와 카밀라는 조상들의 바람기 습성을 그대로 물려받아 대를 이어 간통 행각을 보였고, '세기의 사랑을 나눴지만 세간의 비난에 희생당한' 피해자 행세를 철저히 했다.
한편, 카밀라의 남편인 앤드루 또한 여러 여자들과 바람을 피우고 다녔다. 당시 카밀라와 앤드루의 결혼생활은 서로가 연인을 만나는 것을 묵인해주는 자유연애 형태에 가까웠다고 한다. 때문에 찰스도 앤드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카밀라와의 만남을 지속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90년대 들어서 찰스와 카밀라의 불륜은 사교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으며, 1991년 LA 타임스에는 '항상 찰스를 위로할 준비가 되어있는 카밀라(Camilla: Always Ready to Comfort Prince Charles.)'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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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다이애나의 폭로 인터뷰 다음날 영국 주요 신문 1면 |
그러다 1994년 찰스가 인터뷰를 통해 불륜 사실을 인정했고, 1996년에 다이애나가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찰스와 카밀라의 불륜 사실을 직접적으로 폭로하며 "우리의 결혼 생활에는 늘 셋이 있어서 좀 시끄러웠어요."라고 말했다. 어떻게든 이혼만은 막으려 했던 엘리자베스 2세가 포기하고 찰스를 불러들여 이혼을 지시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해 중순 찰스와 다이애나는 이혼하게 되었다. 겨우 자유를 되찾은 다이애나에게는 많은 동정과 응원이 따랐고,[25] 찰스와 카밀라에게는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카밀라 또한 폭로의 여파로 인해 1995년 남편 앤드루와 이혼했고 앤드루는 1996년 로즈메리 피트먼이란 이름의 여성과 재혼했다.[26]
다이애나와 이혼한 찰스는 카밀라와의 관계를 공식화하고, 국민들이 카밀라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했다. 1997년 7월 17일 카밀라가 50세 생일을 맞이하자 자신의 개인 별장인 하이그로브 하우스에서 생일 파티를 열었으며, 밸모럴 성의 여름 휴가에 카밀라를 초대해 왕실 가족들과 함께 휴가를 보낼 계획까지 세우기도 했다. 물론 겉으로는 재혼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그러나 이혼하고 고작 1년 뒤인 1997년 8월 31일에 다이애나가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급사하면서, 다이애나를 아꼈던 영국인들과 전 세계 사람들이 비통해하며 찰스와 카밀라를 더욱 비난했다.[27]특히 이 때 카밀라에 대한 비난 여론은 강렬했는데, 관계자들은 부인했으나 베이커리에서 카밀라를 알아본 사람이 빵을 던졌다는 소문도 퍼질 정도였다. 심지어는 당시에 카밀라와 찰스를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종이가면까지 출시되었다고 한다.
찰스가 몇십 년이나 카밀라와 불륜을 지속한 이유는, "카밀라와는 말이 잘 통해서"였다고 한다. 고등학교 중퇴였으며 왕족과는 어울리지 않은 성격의 다이애나와 달리 카밀라는 학구열 높은 찰스와 얘기가 잘 통할 정도로 교양이 있었다고 한다.
3.4. 콘월 공작부인
각종 스캔들로 망신살을 뻗친 카밀라는 찰스와 재혼하기 위한 계획을 본격적으로 세우기 시작했다. 1995년 카밀라는 유명 홍보 전문가인 마크 블랜드를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로 고용했으며, 이후 마크 블랜드는 1996년부터 2002년까지 찰스의 부비서관 직을 맡았다. 홍보 전문가였던 블랜드는 다이애나 스펜서와의 이혼으로 추락했던 찰스의 대중적 이미지를 개선하는데 큰 역할을 했는데, 20%까지 떨어졌던 지지도가 블랜드의 재임 기간동안 무려 75%까지 상승했다. 덕분에 찰스는 항간에서 돌았던 왕세자 교체설을 무력화시키고 차기 국왕으로서의 입지를 회복하고, 카밀라와 재혼하는 데도 성공했다.1999년, 런던 리츠칼튼 호텔에서 찰스와 함께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카밀라. |
2000년부터는 찰스의 공무에 동행하기 시작했으며, 2001년에는 국립 골다공증 협회의 회장으로 임명되었다.[28] 그리스 콘스탄티노스 2세 전 국왕의 60세 생일 파티에 찰스와 동반 참석해 엘리자베스 2세를 만나기도 했다. 이처럼 몇몇 민간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카밀라는 2002년 엘리자베스 2세의 재위 50주년 골든 주빌리 행사에 초대되어 왕족들이 앉는 로열박스에서 함께 콘서트를 관람했다. 2003년부터는 아예 클래런스 하우스에서 찰스와 동거 생활을 시작했으며, 개인 보좌관까지 고용해 사실상 왕세자비와 다름없는 생활을 이어나갔다. 이렇다 보니 찰스와 카밀라의 재혼을 지지하는 여론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약혼반지를 끼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카밀라. |
2005년에 치러진 찰스 왕세자와 카밀라의 결혼식. 왼쪽부터 해리, 윌리엄, 찰스, 카밀라, 로라, 톰 |
본래 영국 성공회에서는 살아있는 전 배우자를 둔 자의 재혼을 인정하지 않았고, 영국 왕족들은 이혼 후 재혼할 때 해당 교리가 없는 스코틀랜드 장로회에서 식을 올려 왔다. 대표적으로 카밀라의 시누이인 프린세스 로열 앤이 1992년 티머시 로런스와 재혼할 당시 스코틀랜드 장로회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물론 찰스는 이미 다이애나가 사망했기 때문에 해당되지 않았으나, 전남편인 앤드루가 생존해있는 카밀라가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 찰스와 카밀라의 재혼을 전후로 성공회에서 해당 규정을 폐지하면서, 성공회 교회에서 인정한 결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원래는 윈저 성의 세인트 조지 성당에서 결혼식을 하려고 했지만, 여론이 좋지 않아 윈저 성 바로 앞에 있는 공회당에서 결혼식을 치렀다고 한다. 다만 결혼식이 끝난 후 진행된 감사성찬례는 세인트 조지 성당에서 진행했으며, 이 장면은 텔레비전으로도 생중계되었다. 즉, 혼인 서약을 하는 장면만 공개되지 않았을 뿐 나머지 의식은 계획했던 대로 진행한 것이다. 직계 가족만 참석해 조촐하게 치렀으며, 성직자가 아닌 동네 공무원이 주재하는 시민의례 의식으로 결혼식을 했다. 당시 여왕 부부도 결혼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왕세자의 배우자이므로 전하(Her Royal Highness)의 경칭은 받았지만, 부정적인 여론 때문에 통상적으로 왕세자비가 사용하는 웨일스 공비(Princess of Wales) 칭호는 대외적으로는 사용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웨일스 공비라는 칭호가 다이애나를 대표적으로 의미하는 칭호여서 그런듯 하다. 대신 한단계 낮은 콘월 공작부인(Duchess of Cornwall)을 대외적인 칭호로 사용했으며, 스코틀랜드에서는 로스시 공작부인(Duchess of Rothesay)으로 불렸다.
재혼한 뒤에는 한동안 부적절한 처신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이 사치 문제. 명품 브랜드의 옷과 가방을 마구잡이로 구입하고, 한 번에 2만 5천 달러의 수당을 받는 헤어 디자이너를 고용한 것이 알려져 안 그래도 욕을 먹던 차에 몇 배로 더 욕을 먹었다. 대인지뢰 제거운동 등 활발한 사회 운동을 벌이며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 영국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다이애나 스펜서와 대조되며 더더욱 비난받았다.
2005년에 재혼하고 쭉 잘 사는 듯했지만 2015년부터 카밀라와 찰스와의 불화설이 간간이 돌았다. 다만 저 불화설이 사실이라 해도 "이제 와서 둘이 이혼할 리는 없다"는 견해가 정설이다. 다이애나와의 결혼 전부터 해온 불륜을 오랫동안 이어오며 결국 결혼까지 강행했는데 황혼이혼을 하면 둘 다 비웃음을 사고 망신살만 뻗칠 수밖에 없기 때문.
하지만 여러 논란은 2005년 4월 9일부터 2022년 9월 8일까지 17년간 카밀라가 왕세자비로서 여러 활동을 통해 모범적인 공무를 수행하고, 소탈한 성격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30]
3.4.1. 즉위 전 왕비 칭호 논란
재혼 후에는 찰스를 내조하며 왕실의 인정을 받기위해 노력했다 . 2011년 웨일스 공 윌리엄과 캐서린 미들턴의 결혼식 때 윌리엄의 사실상 의붓어머니이자 왕실의 일원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게 보인다는 평도 있었다. 결혼 7주년이 되는 2012년 4월 9일에 엘리자베스 2세가 로열 빅토리아 훈장(Royal Victorian Order)의 여성 최고 서열인 대십자 여기사(Dame Grand Cross)에 서임함으로써 왕실에서 카밀라의 입지가 한층 강화되었다. #한때 그녀는 결혼 계약에 의해 찰스가 왕이 되어도 왕비(Queen Consort)의 칭호를 받기는 하지만 위처럼 대외적으로는 한 단계 낮은 공비(Princess Consort)라는 칭호를 쓰도록 내정되었다. 역대 영국 역사상 공비라는 칭호를 받은 왕비는 없다. 공비의 용례 자체가 왕자나 공의 배우자를 위한 작위이기 때문이다. 여왕의 남편을 위해 만들어진 Prince Consort의 경우 앨버트 공 등에게 하사된 적이 있고, 빅토리아 여왕의 경우 이보다 높은 King Consort를 다시 하사하길 원했으나 거부된 적이 있었다. 앨버트 공이 독일인이었던 점이 감안된 문제였다. 배우자가 Queen Regnant라도 남편은 Prince일 수 있다는 문제였는데, 남편이 왕인 경우 역대 영국에서 왕비는 예외없이 Queen Consort였다.[31]
사실 헌법부에서는 " 찰스가 즉위한다면 카밀라가 왕비 칭호를 쓸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으나, # 일단 관습상으로는 문제가 없기에 실제로 찰스가 즉위하면 상황이 바뀔 가능성이 없진 않았다. 2018년에 Princess Consort를 사용한다는 부분에 대한 언급이 삭제되는 일도 있었으나, 2020년 3월 왕실 측은 "찰스가 왕위에 올라도 카밀라가 Princess Consort를 사용할 것"이라고 재확인하였다. #
2021년 11월에는 다수의 영국 언론을 통해 카밀라가 여왕이 정하는 공식 왕실 섭정으로 임명될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가 나왔다. 현행 법상 국왕의 배우자 및 부모를 포함한 21세 이상 왕족들 중 4명은 해외 순방이나 질병 등으로 인해 여왕이 직무 수행이 불가능할 경우 국왕 업무를 대신 수행할 수 있도록 왕실 섭정으로 임명되는데, 현재까지는 규정에 따라 찰스와 웨일스 공 윌리엄 그리고 서식스 공작 해리 왕자와 요크 공작 앤드루 왕자가 왕실 섭정으로서 임무를 수행해왔다. 하지만, 2021년을 기점으로 해리 왕자가 왕실에서 완전히 독립하여 해외인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거주하고, 요크 공작 앤드루 왕자는 성추문 사건으로 인해 공무에서 은퇴하면서 사실상 섭정으로서의 직무 수행이 어렵게 되었다. 따라서 공석이 된 왕실 섭정 자리를 바로 다음 순위인 요크의 베아트리스 공녀와 카밀라로 채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게 되었다. 카밀라가 왕세자비로서 다양한 공무를 수행해 나가며 입지를 넓히고 있는 중이었고, 어차피 찰스 왕세자나 윌리엄이 즉위한 이후에는 국왕의 배우자나 국왕의 명목상 부모 자격으로 왕실 섭정에 임명될 것이 거의 확실한 상황이기 때문에, 여왕이 카밀라를 미리 왕실 섭정에 임명시켜 왕실 일원으로서의 입지를 더 넓혀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
실제로, 2020년을 전후로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고령 및 건강 문제로 인해 엘리자베스 2세의 공무가 줄어들면서 카밀라의 공무가 이전보다 눈에 띄게 늘었다. 특히 여성단체 지원 활동이나 성폭력 피해자 지원 활동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으며, 문맹 퇴치나 동물 보호 활동까지 다양한 공무를 수행 중이다. 이 같은 활발한 공무로 인해 현재 영국 내에서는 카밀라의 팬층까지 생겼다고 한다.
2021년 12월 31일에는 여왕이 개인적으로 수여하는 최고 영예의 훈장인 가터 훈장을 받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
2022년 2월 6일 여왕의 재위 70주년 기념 성명에서 찰스가 왕위에 올랐을 때 카밀라가 Queen Consort( 왕비)라고 불리는 것이 여왕의 '진지한 소망'이라고 발표하였다. 이에 대해 "찰스와 재혼한 이후 17년 동안 큰 논란 없이 왕세자비로서의 의무를 충실이 이행한 카밀라에게 왕비의 자격이 주어져도 된다"는 여론이 나오고 있다.[32] 웨일스 공 윌리엄 또한 새어머니 카밀라가 왕비가 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향후 여론에 따라 카밀라가 왕비가 될 가능성이 충분해졌다.
영국 언론에서는 여왕이 향후 찰스가 왕위에 오른 이후 카밀라의 지위를 놓고 각종 구설에 오를 것을 우려해 미리 이 문제를 매듭짓고자 한다고 분석했다. 찰스의 즉위 초기에 이 문제로 인해 혼란이 발생할 경우, 자연스럽게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르는 것이 바로 다이애나 스펜서 스캔들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찰스로서는 큰 리스크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여전히 지지도가 견고한 여왕이 나서서 미리 교통정리를 한 것이다.
해당 성명이 나온 후, 카밀라가 왕비가 될 것이 거의 확실해지자 BBC를 비롯한 영국 언론에서는 카밀라를 '미래의 왕비(Future Queen)'라고 칭하기 시작했다. 비슷하게 남편 찰스도 웨일스 공 대신 '미래의 왕'이라고 칭하는 빈도가 높아졌다. 여왕의 이번 성명을 기점으로 미래 국왕으로서 찰스의 입지가 더욱 강화되었기 때문이다.[33]
2022년 6월, 가터 기사단 여기사로 임명된 카밀라 |
3.5. 영국 왕비
자세한 내용은 카밀라 파커 보울스/왕비 시절 문서 참고하십시오.2022년 9월 8일, 시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가 사망하면서 남편 찰스 3세가 즉위했고, 카밀라 역시 국왕의 배우자로서 왕비가 되었다.
4. 가족관계
남편 찰스 3세와 반려견 블루벨, 베스[34] |
전남편 앤드루 파커 보울스[35] |
자녀들과 함께[36] |
4.1. 조상
본인 | 부모 | 조부모 | 증조부모 |
카밀라 파커 보울스 (Camilla Parker Bowles) |
<colbgcolor=#fff3e4,#331c00> 브루스 섄드 (Bruce Shand) |
<colbgcolor=#ffffe4,#323300> 필립 모턴 섄드 (Philip Morton Sha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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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포크너 섄드 (Alexander Faulkner Sha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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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타 메리 코츠 (Augusta Mary Coat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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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스 마거리트 해링턴 (Edith Marguerite Harringt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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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우즈 해링턴 (George Woods Harringt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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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에디스 스틸맨 (Alice Edith Stillm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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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잘린드 큐빗 (Rosalind Cubit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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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대 애쉬콤 남작 롤란드 큐빗 (Roland Cubitt, 3rd Baron Ashcomb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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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대 애쉬콤 남작 헨리 큐빗 (Henry Cubitt, 2nd Baron Ashcomb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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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드 칼버트 (Maud Calve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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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아 로즈마리 케펠 (Sonia Rosemary Keppel) |
|||
조지 케펠 (George Kepp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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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에드먼스톤 (Alice Edmonstone) |
4.2. 자녀
자녀 | 이름 | 출생 | 배우자 / 자녀 |
앤드루 파커 보울스 (Andrew Parker Bowles) |
|||
1남 |
톰 파커 보울스 (Tom Parker Bowles) |
1974년 12월 18일 ([age(1974-12-18)]세) |
슬하 1남 1녀 |
1녀 |
로라 로프스 (Laura Lopes) |
1978년 1월 1일 ([age(1978-01-01)]세) |
해리 로프스 슬하 2남 1녀 |
전 남편 앤드루와의 사이에서 톰과 로라를 낳았다. 찰스 3세는 톰의 대부이기도 하다. 앤드루는 전 애인이었던 프린세스 로열 앤의 딸인 자라 필립스의 대부이다. 즉, 찰스와 앤 남매는 각자 과거 파커 보울스 부부와 연인 사이였고, 결별 이후에도 줄곧 친분을 유지하면서 각자 서로의 친자녀들의 대부가 된 것이다.
톰은 음식 평론가로 일하고 있다. 마스터 셰프의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한 적이 있었고, 유명한 고급 차 브랜드 포트넘 앤 메이슨와 합작하여 애프터눈 티 관련 책도 쓴 적이 있다. 그 밖에 영국의 요리 관련 TV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는 중이다. 카밀라가 재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했으며, 톰은 1남 1녀를 낳았고, 그 중 장남 프레디 파커 보울스는 대관식에서 카밀라 왕비의 명예시동으로 참석했다. 2018년부터는 아내와 별거에 들어갔다.
로라는 큐레이터다. 톰과 마찬가지로 카밀라가 재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했다. 로라는 2남 1녀를 낳았다. 그 중 장녀 일라이자는 윌리엄의 결혼식에서 신부 화동을 섰다. 쌍둥이 형제 거스 로프스와 루이 로프스는 찰스 3세의 대관식에서 카밀라 왕비의 명예시동으로 참석했다. 로라의 남편 해리 로프스는 19세기에 손꼽히던 미국 재벌 가문이면서 영국에 귀족 작위도 있는 애스터 가문의 외손자이자 부동산 투자자이며, 소싯적 켈빈 클라인 모델을 했을 정도로 미남이다.
카밀라가 왕비로 즉위하자 왕비의 자녀들인 톰과 로라 역시 작위를 수여받을 수도 있다는 예상이 나오기도 했으나, 당사자들은 이를 완강히 부인했다. 따라서 카밀라의 왕비 즉위와는 관계 없이 앞으로도 평민으로 조용히 살아갈 것으로 보인다.
5. 대중매체
주로 다이애나 스펜서가 주연인 작품에 등장하다보니 부정적인 시각에서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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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더 크라운 시즌 3~4에서는 에메랄드 페넬, 시즌 5~6에서는 올리비아 윌리엄스가 카밀라를 연기했다. 두 사람 모두 실제 카밀라와 비슷한 외모 싱크로율을 보여주어 화제가 되었다. 극중 찰스 3세와 불륜하는 모습으로 주로 등장하지만, 찰스의 연설문을 고쳐주거나 개인적인 고민 상담을 해주고 끊임없이 조언과 격려를 해주는 등 지성과 사려깊음을 갖춘 정신적 버팀목이자 잘 맞는 단짝으로 묘사되기도 한다.[37] 시즌 5에서는 다이애나의 폭로로 이혼 스캔들에 휩싸이자, 차기 왕비 자리에 대한 야망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시즌 6에서는 결국 여왕으로부터 찰스와의 관계를 인정받고, 최종회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찰스 3세와 카밀라의 관계가 가장 실제와 가깝게 묘사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카밀라 역시 이 작품을 시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카밀라는 에메랄드 페넬과 2022년 3월 국제 여성의 날 행사를 통해 실제로 만나기도 했다.
- 영화 스펜서에서는 배우 엠마 다르웰 스미스가 연기했다. 그러나 작중에서 대사는 없었으며, 단역으로 얼굴만 잠깐 지나갔다.
6. 여담
- 역대 영국 왕비들 중 군주와의 사이에서 자녀를 낳지 않은 유일한 왕비다.
- 찰스보다 1살 연상이다. 왕비가 국왕보다 나이가 많은 것은 조지 2세의 왕비 안스바흐의 카롤리네 이후 처음이다.
- 대학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는 최초의 왕비이다. 그 이전까지는 학교를 다니지 않고 가정교사로부터 개인 교습을 받은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밀라 역시 본교가 아닌 타 국가의 분교에 입학한 후 졸업은 하지 못해 학위는 없다.
- 웨일스 공 윌리엄의 자녀들은 카밀라를 '가가(GaGa)'라고 부른다. 첫째 웨일스의 조지 공자가 어렸을 때부터 가가라고 부르기 시작했으며, 자연스럽게 동생 웨일스의 샬럿 공녀와 웨일스의 루이 공자도 조지를 따라 가가라고 부른다.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카밀라도 모른다고 한다.
- 카밀라의 친구들과 가족들은 카밀라를 '로레인(Lorraine)'이라는 별명으로 부른다. 왕비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라 레인(La Reine)에서 유래한 것으로, 카밀라는 이 별명을 상당히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 반면 찰스는 이 별명을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38] #
- 2007년 3월에 자궁 적출수술을 받았다.
|
- 젊은 시절부터 계속 비슷한 헤어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사진을 잘 보면 약간의 변화만 있을 뿐, 같은 스타일을 그대로 쭉 유지하고 있다.
- 측근들에 의하면 카밀라는 아주 사려 깊고 참을성이 많은 성격이라고 한다. 성격 급하고 까다로우면서 외로운 찰스 3세를 어떤 경우에도 진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부드러워 보이지만 대단히 강단있는 성격이다. 여우사냥 대회에서 사진기자가 귀찮게 따라다니면서 촬영을 하자 “조심하지 않으면 내가 채찍으로 후려칠 겁니다”라고 위협을 가해 물러나게 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래서 측근들은 찰스를 감당하고 성격을 눌러 앉힐 유일한 인물이 카밀라라고 평한다. 찰스가 국왕으로 즉위한 2022년 10월 13일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인근 힐스버러성에서 즉위 선언문 서명 시 있었던 일화만 봐도 찰스가 카밀라에게 얼마나 의존하는지 알 수 있는데, 찰스가 서명을 하려고 할 때 탁자 위의 펜과 병 안의 잉크가 손에 묻었다. 이때 찰스가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자 카밀라가 옆에서 아주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사태를 수습해서 상황이 더 이상 번지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당시 장면은 전 세계로 중계되면서 찰스와 카밀라의 관계를 잘 말해 주었다. #
- 다양한 자선사업을 주관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골다공증 연구 및 인식 개선 사업과 문해력 향상 운동, 강간 및 가정폭력, 성폭력 피해 여성 지원 사업, 여성교육 운동, 승마 후원 활동, 아시아 코끼리 구하기 운동, 예술가 후원 활동, 노인 여가 활동 지원 사업 등을 직접 주관하고 있다. # 후원자나 회장으로 이름을 올린 자선 단체만 90개 이상이었다.
- 잭 러셀 테리어의 견주이다. 2017년 초에 입양한 블루벨과 베스라는 이름의 암컷을 키우고 있으며, 2마리 모두 유기견 출신이다. 특히 블루벨은 숲에서 피부병으로 인해 다 죽어가는 상태로 발견되었다가 구조된 후 극적으로 회복했다. 대관식 드레스에도 두 강아지의 자수가 수놓아져 있다.
- 여동생 애너벨 엘리엇은 유명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골동품 딜러이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미술을 공부했으며, 30년 넘게 인테리어와 골동품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2014년 데일리 텔레그래프에서 선정한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순위에서 5위로 꼽히기도 했으며, 찰스 3세 부부와의 친분을 바탕으로 여러 왕실 거주지의 디자인에 참여하기도 했다. 아들 벤 엘리엇은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영국 보수당의 후원회장을 역임했다. 언니인 카밀라와 외모가 매우 닮았는데, 언뜻봐서는 둘이 구분이 잘 되지 않을 정도이다. 카밀라 왕비의 대관식에 시녀 역할로 등장하기도 했다.[39]
- 친정이 상당히 부유했던 덕분에 찰스 3세와 결혼하기 전부터 상당한 재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결혼 이전 개인 순자산은 500만 달러 이상이었으며, 애쉬컴 남작이었던 외조부모로부터 66만 3천 달러의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았다.
- 젊은 시절에는 하루에 담배를 10개비씩 피우는 애연가였으나, 2001년에 담배를 끊었다.
- 왕비가 되기 전에는 개인 스타일리스트의 도움을 받아 스타일링을 했으나, 왕비가 된 후에는 헤어와 메이크업, 의상을 모두 본인이 직접 해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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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 생애 · 왕비 시절 | ||
재위 시기 | 왕비 시절 ( 대관식) | ||
가족 관계 |
가족관계 아버지 브루스 섄드 · 어머니 로잘린드 큐빗 · 배우자 찰스 3세 (의붓아들 웨일스 공 윌리엄 · 서식스 공작 해리 왕자) · 전 배우자 앤드루 파커 보울스 · 장남 톰 파커 보울스 · 장녀 로라 로프스 |
||
대중매체 | 더 크라운 · 스펜서 | ||
기타 | 영국 · 윈저 왕조 · 다이애나 스펜서 |
[1]
앤드류 파커 보울스와 결혼하기 전의 성씨는 Shand로, 이혼 후에도 전남편의 성을 그대로 유지했다.
[2]
모두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이다.
[3]
2024년
찰스 3세의 공식 초상화를 그린 화가 조너선 여의 작품이다.
[4]
왕비 즉위 후
성 에드워드 왕관이 튜더 왕관으로 변경되는 등 문장에 변화가 생겼으며, 왕비로서의 상징이 추가되었다.
[5]
사자 대신 스코틀랜드의 상징 동물인
유니콘이 들어갔으며, 튜더 왕관도 스코틀랜드의 왕권을 상징하는 스코틀랜드 왕관으로 바뀌어 있다. 또한
가터 기사단을 상징하는 문양 대신 스코틀랜드의 엉겅퀴 기사단의 상징이 들어가 있다.
[]
[7]
2021년 시아버지
필립 공의 사망으로 인해
찰스 3세가 에든버러 공작 작위를 받게 되면서, 카밀라 역시 에든버러 공작부인의 지위를 겸했다.
[8]
다이애나는
테크의 메리 이후로 약 80년 만에 웨일스 공비 작위를 받은 사람이었다. 때문에 당시 영국인이 기억하는 웨일스 공비는 다이애나 밖에 없었다.
[9]
당초 찰스의 즉위 이후 카밀라가 받을 작위로는 한 단계 낮은 'Princess Consort(공비)'가 내정되어 있었으나, 2022년 2월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 70주년 공식 성명문을 통해 카밀라가 왕비가 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고 이후 최종적으로 왕비 작위를 받았다.
[10]
위의 칭호가 모두 언급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왕비 폐하'로만 지칭된다.
[11]
이날 결혼식에서 카밀라는 여동생과 함께 화동을 맡았다.
[12]
카밀라의 어머니 로잘린드는 남작의 딸로 레이디(Lady)보다 한단계 낮은 아너러블(Honourable) 작위를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가 작위 없는 남성과 결혼했기 때문에 카밀라는 작위가 없었다. 영국 귀족 사회는 직계와 방계, 친가와 외가를 엄격히 구분한다.
[13]
조지아나 스펜서가 스펜서 가문 출신이다.
[14]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군에서 복무한 후 제대해 사업에 뛰어들어 막대한 유산을 축적했다. 와인 유통 업체인 'Block, Gray and Block'의 사업 파트너였으며, 전쟁 회고록을 집필하거나 잡지사에서 군사 서적 평론가로 일하기도 했다.
[15]
켄싱턴과 벨그라비아 모두
런던에서 손꼽히는 부촌이고, 카밀라의 동거 생활은 여느 사회초년생들의 동거 생활과 달랐다. 당시 벨그라비아에서 거주했던 아파트의 집주인은 4대 애버콘 공작의 딸이자,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에서 시녀를 맡았던 레이디 모이라 캠펠이었다. 함께 생활을 했던 친구 역시 6대 캐링턴 남작의 딸인 버지니아 캐링턴으로, 훗날
찰스 3세와 카밀라의 특별 보좌관을 맡았다.
[16]
이 당시 카밀라가 앤드루와 아직 연인 관계였는지, 아니면 앤드루와 헤어진 후 찰스를 만난 것인지는 확실히 알려진 것이 없다.
[17]
양가 부모가 모르는 사이 앤드루와 카밀라의 약혼 소식이
더 타임스에 먼저 보도되었고, 앤드루가 카밀라에게 청혼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이 있다.
[18]
본래 찰스의 유력한 신붓감은 부계로 그의 육촌인
루이 마운트배튼의 외손녀이자
제2대 버마의 마운트배튼 여백작 퍼트리샤 내치불의 딸 아만다였다. 매년 여름 휴가를 마운트배튼 백작의 별장에서 함께 보냈을 정도로 어릴 때부터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다. 이 때문에 찰스가 아만다에게 정식으로 청혼했을 정도로 꽤 진지하게 결혼 이야기가 오갔었다. 그러나 찰스가 아만다에게 청혼을 한지 몇주가 지난 후 IRA 폭탄 테러로 아만다의 외조부 루이 마운트배튼, 친할머니, 남동생이 살해당하여 가정이 파괴된 아만다는 왕실과 결혼할 생각을 접게 된다.
[19]
아들 톰이 훈장이 들어있는 상자를 들고있는 것으로 보아, 앤드루가 기병대 복무 당시 왕실로부터 훈장을 수훈받았고 가족들이 궁전을 방문해 촬영한 사진인 것으로 추정된다.
[20]
"It was a deeply unpleasant time and I wouldn't want to put my worst enemy through it," "I couldn't have survived it without my family."
[21]
이때 카밀라의 남편 앤드루는 기병대 장교로서 찰스와 다이애나를 호위하며 같이 입장했다. 카밀라 역시 하객으로 초청되어 아들 톰과 함께 결혼식에 참석했다.
[22]
참고로 다이애나는 초기에는 찰스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결혼식 준비 당시, 여러가지 요인들로 인해
거식증이 생길 정도로 상태가 좋지 못했다.
[23]
당시 찰스는 다이애나 없이 홀로
토스카나를 여행했는데, 이 기사에서는 카밀라가 이 여행에 동행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
[24]
1989년 둘 사이의 통화 내용을 녹취한 것으로, 한 시민이 첨단 스캐닝 장비를 시험해보다 우연히 통화 내용을 듣게되어 녹음한 것이다. 이후 언론에서 녹음 테이프를 입수했으나, 왕실로부터 소송을 당할 것을 우려해 1993년까지 공개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영국 정보기관이 개입되어 있다는
음모론도 있다.
#
[25]
다만 다이애나가 진짜로 이혼을 원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논란이 많다. 오히려
엘리자베스 2세가 이혼을 지시하기 전까지는 다이애나가 이혼을 거부했다는 말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혼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다이애나의
BBC 인터뷰 역시 다이애나가 원해서 성사된 인터뷰가 아니라, 기자의 사기와 협박으로 이루어진 인터뷰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26]
한편, 비슷한 시기인 1994년 7월에는 카밀라의 어머니인 로잘린드가
골다공증으로 사망했는데, 훗날 카밀라의 아버지인 브루스 샌드는 인터뷰를 통해 "이 시기가 딸의 인생에서 매우 힘든 시기였다"고 밝혔다. 물론 이혼 자체는 카밀라의 탓이 크다.
[27]
물론 죽음 자체는 찰스의 잘못이 아니다. 다이애나는
파파라치들의 추격을 피하려다 죽은 것이니 객관적으로도, 도의적으로도 죽음은 찰스의 탓이 아니다. 오히려 찰스는 아이들의 어머니이자 전 부인인 다이애나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몹시 비통해했으며, 전 배우자의 자격으로 프랑스로 가서 다이애나의 시신을 직접 인수해왔다. 또한 왕실 가족들이 장례식에 참석해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8]
현재는 카밀라가 왕실 후원자(Royal Patron)가 되면서 왕립 골다공증 협회로 명칭이 바뀌었다. 회장으로 임명되기 이전부터 이미 회원으로 활동중이었다.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모두 골다공증으로 사망해 해당 질병에 오래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29]
당장 찰스의 큰할아버지인
에드워드 8세도 이혼녀인
월리스 심프슨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포기해야 했다.
[30]
특히
다이애나 스펜서가 1997년에 사망한 후 20년 넘는 세월이 흐르며 찰스와 카밀라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어느정도 누그러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젊은 층은 다이애나가 사망했을 때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 나이였던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중장년층은 카밀라가 왕세자비로 활동하는 모습을 이미 십년이 넘게 지켜본 이후였다. 또한, 결혼 초창기를 제외하고는 불륜 당시만큼 큰 스캔들을 일으키지 않았다.
[31]
조지 4세의 왕비인
브라운슈바이크의 카롤리네도 즉위 당시 오랫동안 별거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왕비 작위를 받았다.
[32]
이후 시행된 여론 조사에서 55%의 국민들이 카밀라가 왕비가 되는것에 찬성한다고 발표했다.
#
[33]
사실 여왕의 성명과는 별개로, 이미 찰스와 카밀라의 이미지는 과거보다 많이 좋아진 상황이었다. 여왕이 해당 성명을 발표하게 된 배경에도 과거보다 여론이 상당히 좋아져 카밀라가 왕비가 되어도 큰 반발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분석이 많다.
[34]
2020년 결혼 15주년을 맞아 공개한 공식 사진이다.
[35]
카밀라는 현재도 전남편과 친구 관계를 유지하며 공식 행사 등을 통해 자주 만나고 있다. 자신의 대관식에 전 남편을 초대하기도 했다.
[36]
왼쪽부터 아들 톰 파커 보울스, 카밀라 파커 보울스, 딸 로라 로프스
[37]
카밀라가 줄곧 찰스의 사랑을 받았던 것도 그녀의 교양, 학식, 사근사근함 때문이었다.
[38]
2022년 이전까지 찰스는 자신이 즉위하더라도 카밀라는 'Princess Consort'에 책봉한다는 것이 공식적인 입장이었다. 그런데 이런 찰스의 입장과는 관계없이 카밀라의 지인들이 카밀라에게 왕비라는 별명을 붙여준 것이었다.
[39]
카밀라 왕비는
시녀를 따로 두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친구들이나 여동생을 공무와 공식 행사에 대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