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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자이언츠 2024 시즌 외야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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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노 히사요시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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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스태프 | 투수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 육성선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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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노 히사요시의 수상 경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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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B 일본시리즈 우승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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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2010년 일본 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최우수 신인 |
2011년 일본 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최고 타율 |
2012년 일본 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최다 안타 |
2011년 ~ 2013년 센트럴 리그 외야수 부문 베스트나인 |
2011년 ~ 2013년 센트럴 리그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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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d5a1e> 요미우리 자이언츠 No. 7 | |
초노 히사요시 長野久義 / Hisayoshi Chono |
|
출생 | 1984년 12월 6일 ([age(1984-12-06)]세) |
사가현 미야키군 키야마정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치쿠요가쿠엔고등학교(筑陽学園高等学校) - 니혼대학(日本大学) |
신체 | 180cm | 85kg |
포지션 | 외야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2009년 드래프트 1라운드 요미우리 |
소속팀 |
HONDA (2007~2009) 요미우리 자이언츠 (2010-2018) 히로시마 도요 카프 (2019-2022) 요미우리 자이언츠 (2023~) |
국가대표 |
WBC (
2013) 아시안 게임 ( 2006) |
등번호 |
7번[요미우리] 5번[히로시마] 34번[WBC] |
등장곡 |
P!nk - Today's the Day[홀수타석] Clean Bandit - Rockabye[짝수타석] |
응원가 |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히로시마 도요 카프 시절 |
연봉 | 2024년 / ¥40,000,000 |
가족 | 배우자 시모히라 사야카(下平さやか)[8] |
[clearfix]
1. 개요
|
|
Yomiuri Giants No. 7 |
일본 국적의 야구 선수.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우투우타 외야수이다.
2. NPB 데뷔 전
고교 당시부터 소속팀을 큐슈지역 4강에 올려놓으며 주목받았으나 니혼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니혼대학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 IBAF 인터콘티넨탈대회 대표,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대표로 선발이 되었는데, 이 대회에서 류현진에게 2타점 2루타, 오승환에게 끝내기 쓰리런 홈런을 치는 등 활약을 하면서 도하 참사의 주역이 되었다.[9][10] 그리고 오승환이 2014시즌부터 한신 타이거스에서 뛰게 되면서 리그 내 경쟁자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어쨌거나 대학시절의 활약으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로부터 드래프트 4위 지명을 받았으나, 어린 시절부터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동경해왔던 그는 " 요미우리 아니면 안 간다!!" 라며 지명을 거부하고 일본의 사회인야구팀 HONDA 야구부에 입단, 시즈오카 대회 신인왕, 최우수선수 등 사회인야구를 휩쓰는 대활약을 펼쳤다. 2년 후 다시 치바 롯데 마린즈의 2위 지명을 받았고, 바비 발렌타인 감독이 HONDA 야구부까지 직접 찾아왔으나 본인은 아예 동석하지도 않고 "요미우리 아니면 안 간다고!!!!"라며 이번에도 지명을 거부[11], 결국 2번이나 드래프트 지명을 거부한 뒤 2009년 드래프트에서 요미우리에 1위로 지명됨으로써 꿈에도 그리던 요미우리 입단을 달성한다.
3.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데뷔시즌인 2010년부터 타율 .288 19홈런 52타점을 달성하며 센트럴리그 신인왕을 달성한 초노는 이듬해인 2011년에는 소포모어 징크스? 그거 먹는 건가요? 하는 모습을 보이며 타율 .316으로 센트럴리그 수위타자에 오르며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주축 외야수가 되었다. 저반발 통일구로 인한 극도의 투고타저가 계속되었던 2012년에도 173안타[15] 타율 .301 14홈런 60타점 20도루의 호성적을 거두며 요미우리의 일본시리즈 우승에 공헌하였다.2013년에는 WBC에도 대표로 뽑혔으나 부진에 빠지며 별 활약은 하지 못했다. 시즌초에도 슬럼프가 이어졌으나, 전년도에 이어 전경기에 출전하며 타율 0.281 19홈런 65타점의 성적을 남겼다. 3년 연속 베스트나인과 골드글러브 수상은 덤.
2014년에도 0.297 13홈런 62타점으로 꾸준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2015년에는 0.251 15홈런 52타점으로 프로 데뷔 이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요미우리의 물타선화에 일조했다.
2016년에는 전 경기에 출장했고 타율도 작년과 비교하면 많이 끌어올렸는데, 정작 홈런과 타점에서 커리어 로우를 찍어버리면서 만족스러운 시즌이 되지는 못했다. 시즌 성적은 0.283 163안타 11홈런 42타점. 국내 FA 자격을 얻었지만, 1년 계약을 맺으며 요미우리에 잔류했다. 구단에서는 다년 계약을 제시했음에도 초노 본인이 단년 계약을 요구했다고 한다.
2017년에는 134경기에 출장, 타율은 전년에 비해 하락했으나 출루율과 장타율은 조금 올라가며 타율 0.261에 16홈런 46타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팀이 4위에 머무르며 클라이맥스 시리즈 도입 이래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고 본인의 성적도 썩 좋은 편은 아니라 전년에 비해 3500만엔 삭감된 1억 9천만엔으로 연봉계약을 갱신했다.
2018년엔 시즌 초반 극도로 부진한 탓에 선발에서 제외되는 일이 많았고, 시즌 후반에 타격 페이스를 되찾았지만 결국 데뷔 이래 처음으로 규정타석 도달에 실패했다. 성적은 타율 .290/ 출루율 .359/ 장타율 .433에 13홈런 52타점. 전년도보다 타출장 비율이 상승했고 타점도 조금 늘었지만 규정타석에 미달한 상태의 수치이고 홈런도 더 감소해 버렸기에 매우 아쉬운 시즌이 되었다.
하지만 시즌 종료 후 더 충격적인 소식이 초노와 팬들을 기다렸으니..
4. 히로시마 도요 카프 시절
4.1. FA 보상선수 이적
2018년 시즌 종료 이후, 카프의 에이스 타자 마루 요시히로의 FA 보상선수로 선택되어 히로시마 도요 카프행이 결정되었다. 스즈키 히로시마 구단본부장은 '리스트에 있는 선수 중에서 가장 좋은 선수를 골랐고, 3번 타자로 쓰는 게 제일 좋겠다' 라며 영입 배경을 설명했다. 스포츠호치에 의하면 초노 본인에게는 1월 7일 오전 보상선수 행이 통보되었다고 하며, 당일 오후 3시에 공식적으로 히로시마 이적이 확정되었다.이 이적도 상당한 논란거리였던 게, 스미타니 긴지로의 FA 영입 보상선수로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이적이 결정된 우츠미 테츠야[16]에 이어 요미우리에 대한 강한 애정을 공공연히 드러내며 긴 시간 팀에 공헌한 프랜차이즈 스타를 다른 방식도 아닌 FA 보상선수로 내보낸 거라 팬들에게 많은 충격과 분노를 일으켰다. 최초로 기사를 낸 곳이 찌라시 남발로 유명한 도쿄스포츠라 기사가 처음 나올 땐 신뢰성이 의심되었으나 얼마 후 아사히 신문 등 복수 언론이 크로스체크 등으로 오피셜을 내며 스토브리그의 최대 이변으로 확정되었다.
애초에 순혈만 가능한 요미우리 감독이나 원클럽맨의 길이 단번에 물거품이 된 건 둘째 치고, 보호명단 제외 + 보상선수 명단에 들었다는 것 자체가 이후에 FA자격을 취득해서 요미우리로 돌아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동안 하라 감독의 지휘하에 유망주나 최상급 FA들을 사서 내외야 가리지 않고 중용하는 리빌딩에 들어가기 때문에 초노 돌아와도 자리없다가 될게 뻔하다는 것. 그러나 오 사다하루, 나카하타 키요시, 쿠도 키미야스 등 요미우리를 벗어난 OB 감독 및 지도자들이 2000년대 이후 일본프로야구의 명지도자로 성장하고,[17] 최근 10년간 코칭스태프 구성으로 볼 때 요미우리의 순혈주의도 조금씩 옅어지고 있어서 히로시마 이적이 커리어패스에서 또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최근 오타 타이시 등 요미우리 출신 선수들이 탈G효과를 미친듯이 선보이는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사례도 있고.
이에 요미우리 팬들은 초등학교 문집에 요미우리 선수가 된 꿈을 글로 써 실을 정도로 3수까지 해서 요미우리에 들어와 팀의 우승에도 기여했던 충성도 높은 베테랑을 보상선수로 내보낸 구단의 결정에 강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으며[18] 일본 야구팬들은 요미우리 입단 전 닛폰햄, 롯데 지명을 거부한 짤빵, 영상을 공유하면서 충격을 표하고 있다.[19]
히로시마 팬들은 의외로 카프 유니폼이 잘 어울린다면서 클래스가 있는 선수인 만큼 선전을 기원하며 아사무라 히데토를 맞이한 센다이의 라쿠텐 팬들처럼 갑작스런 요미우리 출신 스타선수의 이적에 당황하는 모습. 카프 입장에서도 마루 다음의 주축 국내 FA 후보인 키쿠치 료스케, 아이자와 츠바사, 노무라 유스케가 떠나기 전에 우승을 꼭 해야겠다는 의지로 1년만 쓸 수도 있는 초노를 영입한 거라 망하면 나름 타격이 있는 보상선수 지명이다. 그리고 금전보상까지 생각한다면 실질적으로 2019년 초노에게 쓰는 돈이 마루 작년 연봉의 거의 반값. # 또한 초노의 이적으로 1번부터 8번까지 거를 수 없는 지뢰밭 타선이 구성될 전망. #
초노 본인은 9년 동안 함께 해준 요미우리 코칭스태프, 선수, 팬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 3연속 리그 우승을 기록한 히로시마에 가게 된 게 영광이라면서 히로시마의 우승에 공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
참고로 2018년 시즌 초노의 히로시마전 타율은 0.308이었는데, 9월 달에는 도쿄돔에서 끝내기도 쳤다.
초노의 히로시마 이적 확정 후, 카프의 광역연고지 주고쿠권의 대표신문인 주고쿠신문은 당일 카프 초노 획득으로 호외를 발행하였고, 초노 본인도 이적하자마자 히로시마의 모처에 화환을 보냈다. #
한편 오가타 코이치 히로시마 감독은 이전에 초노와 본인의 고향인 사가현의 야마구치 요시노리 지사에게 "내일 재미있는 선수를 얻어올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 선수가 초노였으니 스포일러가 성공한 셈. #
여담으로 헤이세이 시대 마지막 보상선수가 되어버렸다.
근데 2019년 초노는 역대급으로 말아먹으며 아예 100경기도 못 나오고 커리어로우를 압도적으로 갱신해버렸다(...) 결국 요미우리의 승리로 끝난 셈.
사실 보상선수 지명 당시부터 냉정하게 갈 만한 선수이긴 했다. 전성기에 타격왕까지 먹던 선수라 그렇지, 전성기 이후 근 몇년 간 하락세가 완연해서 공격에선 2할대 중반, 10+홈런 정도의 그저그런 성적에 수비에선 UZR이 -를 찍는 부진한 모습을 보여줬음에도 2억엔 대의 고액연봉을 받으며 계속해서 주전 우익수를 지켰기 때문. 아예 폐급으로 전락한 것은 아니고 약팀이라면 울며 겨자먹기로 쓰거나 플래툰을 돌릴 정도의 성적은 되지만 예나 지금이나 스타군단인 쿄진에서는 주전을 보장할 수 없는데 그럼에도 왕년의 이름값으로 연봉은 많이 받아서 연봉 생각하면 안 쓰기에도 뭣한, 쓰기도 그렇고 안 쓰기도 그런 애매한 선수라 전성기 이후의 초노는 전형적인 이름값으로 야구하는 쿄진 비효율 야구의 대표격 선수였다.
과거엔 타격왕까지 먹어본, 얼굴도 잘생긴 스타로서 쿄진에 입단하려고 드래프트 3수한 사실이 유명한 인기좋은 스타선수가 쿄진에게 FA 보상선수라는 형태로 버림받아서 화제가 된 것이지, 야구 내적으로만 보면 외야 보강하려고 FA를 사는데 나이 30대에 플래툰 수준의 성적에 노쇠화가 완연한 고액연봉 외야수를 푼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다.
반면 카프는 현재 올스타급으로 키워낸 스즈키 세이야와 오세라 다이치 등의 주전들이 줄줄이 FA를 앞두고 있어 이 자원들이 FA로 나가고 크리스 존슨 등 현재 전성기 후반기인 베테랑들이 노쇠화가 찾아오기 전 베스트 전력이 유지되는 3~4년 안에 쇼부를 보겠다는 윈나우 모드라서 2019 신인지명도 전국구 유망주인 사사키 로키나 오쿠가와 야스노부보다는 즉전감이라고 평가되는 메이지대학 출신 모리시타를 1차 지명하는 등 말 그대로 뒤가 없이 달리는 중이라, 언제 쓸 수 있을지 기약없는 유망주보다 연봉값은 좀 못해도 1군에서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베테랑 초노를 데려오는 것도 당연한 무브먼트였다. 정작 초노는 마루의 빈 자리를 못 메워서 팀의 B클래스 추락에 일조했으나 이건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이야기.
그래도 2020년에는 좋은 타격감을 보여주며 리바운딩에 성공한듯. 8월 초부터 3번 좌익수로 고정되어 선발로 출장중이며 3할 3푼대의 타율에 적절한 장타력도 보여주며 옛 초노의 모습을 엿보게 하고 있다. 95경기 출장 .285/.355/.468 10홈런으로 어느정도 리바운딩에 성공했다.
그러나 2021년에는 답이 없는 타격으로 재차 망해버려서 팀의 3년 연속 B클래스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결국 2할은 간신히 채웠으나 71경기 타율 .216에 2홈런이라는 안 좋은 성적에 그쳤다.
2022년도 작년과 거의 비슷한 성적으로, 58경기 .211에 3홈런으로 이제 은퇴할 때가 다 된 성적을 냈다.
5. 요미우리 자이언츠 2기
11월 2일 무상 트레이드로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복귀했으며, 마츠다 스타디움을 방문해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 카프 팬들에게 "정말로 가족같이 반겨 주셔서, 좋을 때도 나쁠 때도 항상 말을 걸어 주셔서, 4년 동안 정말로 감사했습니다"라는 코멘트를 남기며 눈물로 히로시마 팬들과 이별하게 되었다. 히로시마 팬들 사이에서는 좋은 인성으로 4년 동안 팀에 잘 적응하고[20], 베테랑 역할을 잘 다해주는 와중 팬 서비스도 잘 해주고 가서 고맙다고 하고 있다.이미 노쇠화가 완연한 선수라, 이제 윈나우가 끝나고 리빌딩에 들어간 카프에 있어 봤자 안 쓰는데 연봉은 1억 엔이 넘게 먹어치워서 카프 입장에서는 짐덩이인데, 이런 연봉은 높고 성적은 낮은, 가치가 거의 최저점인 선수를 트레이드로 팔려고 해 봤자 쓸만한 유망주는 어차피 데려올 수도 없고 요 몇년간 성적을 보면 보내봤자 부메랑으로 돌아올 확률도 거의 없으니 그냥 연봉 부담이나 덜자고 인심 한번 쓴 것.
교진 입장에서는 그렇게 교진에 충성심이 강한 왕년의 스타를 허무하게 보냈던 만큼 말년에 다시 교진 유니폼을 입혀 은퇴식이라도 해 주자는 뜻으로, 교진은 팬을 만족시키고 카프는 샐러리 덤핑 목적을 이룬 윈윈 무상 트레이드. 카메이 요시유키 코치는 '(초노가) 베테랑으로서 아주 필요하다'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등번호는 7번으로 왕년의 번호를 다시 찾았으며, 연봉은 2천만엔으로 거의 최저연봉에 가깝게 깎이며 사실상 친정팀에서의 은퇴를 위한 마지막 동행에 가까운 형태의 계약이다.
여담으로 같은시간대에 세이부 야마다 하루카가 닛폰햄으로, 닛폰햄 사토 류세이가 세이부로 트레이드 되었다. 문제는 4년 동안 좋은 워크에씩을 선보이고 간 초노와는 다르게 전자는 아내가 겐다 소스케와 배우자 에토 미사를 비방하는 글을 남겨 물의를 일으키고, 후자는 과속으로 집행유예가 뜬 케이스라 초노와 훨씬 안 좋은 의미로 비교되었다.
놀랍게도 개막 1군 멤버에 드는 데 성공. 주로 대타요원으로 나오고 있다. 성적은 역시 작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2할을 간신히 치는 수준이지만, 득점권타율이 .375나 되며 말년을 불태우는 중...이었는데, 7월에 득점권타율이 아니라 월간타율 .375를 찍으며 대폭발해 버리더니 8월에도 타율 .270 OPS .858에 3홈런을 치며 아예 1번타자 좌익수 자리를 차지해버렸고 쵸노의 무상 트레이드는 미친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특히 득점권타율 .318에 11타점으로 팀의 궁합이란 게 있는 건지, 사람의 동기부여가 얼마나 중요한지 제대로 보여주는 중.[21]
결국 75경기 .259 6홈런 OPS .760의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고, 대부분 올해를 끝으로 은퇴를 예상하였으나 예상을 멋지게 뒤집고 연봉도 2배 인상된 4천만엔에 재계약을 하며 부활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2024년은 시즌초 기회를 얻었으나 살리지 못했고 다시 대타요원으로 내려갔다. 그래도 대타로는 좋은 성적을 보여주며 꾸준히 출장하고 있다. 2할3푼대의 타격은 모자라 보일 수 있으나 이번 시즌의 미친 투고타저를 감안하면 대타로서는 충분히 합격점으로 좋은 백업요원으로 말년을 불태우는 중.
6. 여담
-
테레비 아사히 아나운서인 시모히라 사야카[22]와 교제하고 있었으며, 2015년 3월에 결혼을 발표했다. 사실 프로 거인 입단 직전 2009년에 주간지에
차에서 키스를 나누는 장면이 실리기도 하는 등 꾸준히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도 '밤의 제왕'으로 불릴 정도의 초노를 꾸준히 보살펴 주었다고 한다. 이후 주간지 사진이 터지기 1년 전부터 지인의 결혼식에서 만나 애정을 키워왔다고 고백하기도 하였다.
7년간 키잡2014년 초노가 부상으로 장기 입원하면서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 가끔 초노의 한자인 長野를 번역기로 돌리면 초노가 아닌 나가노로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나가노의 한자어 역시 長野로 똑같기 때문이다.
- 사인을 거절하지 않을 정도로 팬서비스가 좋은 선수로 유명하고, 매년 어려운 야구선수들을 위해 아베 신노스케, 사카모토 하야토 등 동료 선수들과 함께 야구 용품을 보내주기도 한다. 요미우리 팬들에게는 기록은 물론 기억에 함께 남을 선수.
- 선수들 사이에서도 인품이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미담[23] 다르빗슈 유가 초노의 이적과 함께 올린 트위터 글에 따르면 선수들 사이에서 진짜로 평판이 좋다고 한다. # 심지어 닛폰햄에서 뛰었던 모리모토 히초리 선수도 격려 트윗을 보내기도 했다.
- 2013년 센트럴리그 우승 당시의 일기가 공개되었다. # 초노가 야구에 임하는 자세를 알 수 있는 글.
- 또 하나의 미담으로는 히로시마 이적 직후의 일이 있는데, 카프 구단에서는 등번호 9번을 제의했지만 ' 노마가 나중에 썼으면 한다'라고 말하면서 정중하게 거절하고 5번을 달게 되었다.[24]
- 2024년 05월 11일 박석민선수 은퇴식 영상메세지에 나왔다. 그의 한국어 발음이 좋았다. https://x.com/BrownLe55833864/status/1789210264652644708/
- 교진팬들의 자부심을 채워줄 수 있는 선수 개인의 스토리가 있고, 결국 교진으로 돌아와 부활했기에 비록 성골은 아닐지라도 6두품 이상의 대우를 받으며 본인이 그토록 원하던 OB회 등에서 활동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25]
7. 연도별 기록
초노 히사요시의 역대 NPB 기록 | |||||||||||||||||
<rowcolor=#fe5a1d> 연도 | 소속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WAR |
2010 |
요미 우리 |
128 | 459 | 124 | 24 | 3 | 19 | 66 | 52 | 12 | 25 | 72 | .288 | .330 | .491 | .821 | 2.2 |
2011 | 140 | 578 | 164 | 20 | 4 | 17 | 58 | 69 | 19 | 48 | 85 | .316 | .379 | .468 | .847 | 6.8 | |
2012 | 144 | 653 | 173 | 29 | 2 | 14 | 84 | 60 | 20 | 75 | 100 | .301 | .382 | .432 | .815 | 7.0 | |
2013 | 144 | 642 | 166 | 21 | 3 | 19 | 82 | 65 | 14 | 48 | 101 | .281 | .336 | .424 | .760 | 3.7 | |
2014 | 130 | 523 | 140 | 29 | 1 | 13 | 67 | 62 | 8 | 42 | 75 | .297 | .356 | .445 | .801 | 2.0 | |
2015 | 130 | 479 | 109 | 20 | 3 | 15 | 49 | 52 | 3 | 34 | 81 | .251 | .310 | .415 | .725 | 1.9 | |
2016 | 143 | 618 | 163 | 28 | 4 | 11 | 58 | 42 | 8 | 33 | 78 | .283 | .326 | .403 | .729 | 1.4 | |
2017 | 134 | 516 | 121 | 20 | 3 | 16 | 52 | 46 | 6 | 46 | 98 | .261 | .334 | .421 | .755 | 1.4 | |
2018 | 116 | 426 | 111 | 16 | 0 | 13 | 49 | 52 | 3 | 41 | 69 | .290 | .359 | .433 | .792 | 2.3 | |
<rowcolor=#ffffff> 연도 | 소속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WAR |
2019 |
히로 시마 |
72 | 197 | 45 | 7 | 1 | 5 | 13 | 20 | 0 | 15 | 40 | .250 | .310 | .383 | .693 | -0.4 |
2020 | 95 | 299 | 76 | 17 | 1 | 10 | 30 | 42 | 1 | 29 | 61 | .285 | .355 | .468 | .823 | 2.1 | |
2021 | 71 | 139 | 27 | 3 | 0 | 2 | 6 | 13 | 1 | 14 | 29 | .218 | .302 | .290 | .612 | -0.5 | |
2022 | 58 | 134 | 26 | 5 | 0 | 3 | 11 | 15 | 2 | 10 | 34 | .211 | .269 | .325 | .594 | 0.0 | |
<rowcolor=#fe5a1d> 연도 | 소속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WAR |
2023 |
요미 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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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 |||||||||||||||||
<rowcolor=#373a3c>
NPB 통산 (13시즌) |
1505 | 5664 | 1445 | 239 | 25 | 157 | 625 | 590 | 97 | 460 | 924 | .281 | .343 | .429 | .772 | 30.0 |
8. 응원가
8.1.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응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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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응원가 가사 |
【前奏】 オーオーオーオーオーオオオー 君よこの歌と 君よこの声に今 共鳴起こせ (長野!) 오-오-오-오-오-오오오- 키미요 코노 우타토 키미요 코노 코에니 이마 쿄메이 오코세 (초노!) 오-오-오-오-오-오오오- 그대여 이 노래와 그대여 이 목소리에 지금 공명을 일으켜라 (초노!) 【本編】 一筋貫く 夢の弾道 히토스지 츠라누쿠 유메노 단도오 한 줄기로 뻗어가는 꿈의 탄도 飛ばせ長野 放て長野 オオオオオオ (オイ!) ここまで 토바세 초노 하나테 초노 오오오오오오 (어이!) 코코마데 날려라 초노 쳐라 초노 오오오오오오 (어이!) 여기까지 |
8.2. 히로시마 도요 카프 시절
히로시마 도요 카프 시절 응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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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응원가 가사 (2019년) |
前だけを見据えて 新たなステージで 마에다케오 미스에테 아라타나 스테에지데 앞만을 바라보며 새로운 스테이지에서 強靭な敵に今 立ち向かえ長野 쿄오진나 테키니 이마 타치무카에 강인한 적에 지금 맞서 싸워라 초노 |
히로시마 응원가 가사 (2020년 ~ 2022년) |
歓声を背に受け 頂をみつめて 칸세이오 세니 우케 이타다키오 미츠메테 환호성을 등에 지고 정상을 바라보며 紅一筋に 突き進め長野 쿠레나이 히토스지니 츠키스스메 초노 붉은 색의 한 길로 달려나가라 초노 |
[입단거부]
[입단거부]
[요미우리]
[히로시마]
[WBC]
[홀수타석]
[짝수타석]
[8]
1973년생,11살 연상
[9]
초노가 오뎅 장사를 하던 사회인대표라는 이야기는 한 네티즌의 장난에서 비롯된 것으로 낭설이 퍼지던 당시 이미 신인 드래프트 우선지명을 받아놓은 상태였다. 때문에 괜히 오승환만 오뎅환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류현진 오승환은 메쟈를 갔다 다만 일본 사회인야구 기업팀 중 일부 회사는 정말 반찬을 판다거나 하기 때문에 카츠키 료지(전 롯데)처럼 사회인야구 시절
고로케 튀기기가 본업이었던(…) 사례도 있다.
[10]
그리고 오뎅장수라는 별명이 붙은 초노는 2019년부터는
우동이 유명한
마쓰다 줌줌 스타디움 히로시마로 가게 되었다.
[11]
그해 NPB 전체 지명자 중 유일한 입단거부
[12]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재수, 삼수하는 수험생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13]
여담으로 치바 롯데는 이해 3위 닛폰햄과 불과 반게임차로 4위에 머물며 CS 진출에 실패한 것과, 대놓고 입단 거부가 예상되는 선수를 강행 지명했다는 이유로 전부터 계속되던
바비 발렌타인 감독과 구단 프런트와의 갈등이 결국 선을 넘어 폭발해 버렸고 결국 발렌타인 감독은 2009년 시즌 전부터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는 끝에 결국 5위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친 후 경질된다. 자세한 뒷이야기는
치바 롯데 마린즈 항목 참고. 사실 치바 롯데는 그 전에 소프트뱅크 입단이 기정사실화됐고, 본인도 소프트뱅크 이외 팀에는 입단 거부 의사를 밝혔던 오오미네 유타를 1라운드로 강행지명한 후에 등번호 11번과 어마어마한 계약금, 스프링캠프 장소마저 오오미네의 고향으로 변경하겠다는 엄청난 특혜를 주고 꼬셔서 입단시킨 전력이 있다. 그래서 그걸 믿고 찔러본 걸지도.
[14]
미국에서 종종 있는 지명순위 끌어올리기용 드래프트 재수와는 비슷한 듯 다른 케이스로, 어찌보면 굳이 프로야구를 안 가도 사회인야구만으로도 먹고는 살 수 있으며 기나긴 마이너리그를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미국과 달리 입단 1~2년차부터 평생 먹고살 돈 다 벌 수 있는 일본야구 특유의 환경하에서 생겨나는 모습이다. 실제로 마이너리그의 경우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 이내에 들지 못할 경우에는 평균 연봉이 2022년 기준 4만 5천달러 수준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야구만으로는 못 먹고 살기 때문. 그나마 2024년을 기준으로는 구단에서 시즌 중에는 숙소 정도를 제공해줘선지 환경이 좀 나아졌다고는 한다.
[15]
사카모토 하야토와 함께 센트럴리그 최다안타.
[16]
우츠미도 조부가 요미우리 선수 출신이었고 본인도 요미우리 입단을 강하게 원했는지라 2002년 요미우리 입단 이전 2000년의 고등학교 졸업시즌 드래프트 때 오릭스의 지명을 거부했었다.
[17]
나카하타는
DeNA 감독 재임 시절 성적은 썩 좋지 않았지만,
츠츠고 요시토모,
야마사키 야스아키,
카지타니 타카유키 등 팀의 기둥뿌리를 키워내고, 특유의 쇼맨십으로 패배주의에 젖어 있던 팀 문화를 바꿔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DeNA 인수 전부터 모든 것이 망가져 있던 팀을 되살려야 했기에 성적만으로 평가하긴 어려운 감독.
[18]
그 와중에 일부 요미우리 팬들은 카프 팬들에게 "히로시마 출신 오타케 칸 돌려 드릴 테니 초노는 제발"이라고 외치기까지 했다.
[19]
닛폰햄은 특히 초노,
스가노 토모유키 지명 거부의 트라우마가 있어서 2013 시즌 이전부터
오타니 쇼헤이를 어떻게든 데려오기 위해 전방위로 협상 전략을 짜고 커리어패스 관련 보고서를 만드는 등 총력전을 다해 준비하여 입단을 이끌어내는 결실을 맺었다.
[20]
특히 인간관계 면에서도 이적 초에는 불안했지만, 돌이켜보면 4년간 배로 신뢰할 수 있는 친구들을 만든 것이 제일 좋았다는 코멘트를 남겼다.
[21]
애초에 초노의 인생에서 요미우리는 그 어떤 가치보다도 중요한 존재였으며, 젊은 시절을 3년 이상 날리고 지명거부도 2번이나 해가며 기어이 요미우리에 갔었다. 그러다가 그 요미우리에서 토사구팽을 당하자 멘탈이 아예 바스라져 회복이 불가능했다가 다시 요미우리가 손을 뻗어주자 멘탈이 회복된 경우라고 보는것이 타당하다. 즉, 히로시마에서의 부진은 에이징커브도 있겠지만 심리적인 문제도 있었다는 뜻.
[22]
1973년생으로, 초노보다 무려 11살 연상이다.
스즈키 이치로와 동갑.
[23]
은퇴선수 송별회를 주최하는 사람도 언제나 초노였고, 원정경기 후 기숙사에 돌아올 때 관리직원(수위, 조리사, 사감)에게도 기념품을 사온 사람은 초노가 유일하다고 한다. 초노를 나쁘게 말하는 선수가 아예 없다고. 찌라시에 의하면 경기 끝나고 밤에 놀러다닐 때 본인이 주도적으로 동료와 후배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계산서가 나오면 거의 본인이 쏘는 걸로 유명하다고도 하며 그러니 동료나 후배들이 고마와할 수 밖에. 밤의 제왕이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히로시마 이적 후 새 동료가 된 카프 선수들을 데리고 히로시마에서 벌써 한번 쐈다고 한다.
[24]
히로시마에는 레전드 선수들이 은퇴 이후 번호를 임시로 결번한 이후, 그 선수가 맘에 드는 선수가 나타났을 때 번호를 직접 물려주는 번호 보관제라는 제도가 있다. 노마는
오가타 코이치 前 감독이 입단 당시에 직접 자신이 현역 신인 시절에 달았던 37번을 물려주었을 정도로 애착을 가지고 있던 선수였고, 9번은 오가타의 전성기 때 달았던 번호로, 초노는 노마가 오가타처럼 훌륭한 선수로 대성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배려했던 것. 결국 9번은 메이저에서 리턴한 前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아키야마 쇼고가 달았다.
[25]
특히 최근 유망주들의 교진 기피현상이 심각한지라 그 꼬장꼬장하던 OB들도 꽤 위축된 상황이며 교진 지명에 대한 자부심을 다시 찾아야한다는 의견도 강해진터라 초노를 꽤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