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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3 08:56:22

창원시/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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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농구3. 야구 : NC 다이노스
3.1. NC 다이노스 창단 이전3.2. NC 다이노스 창단3.3. 아마야구3.4. 비판3.5. 창원에서 KBO 타구단을 응원하는 경우3.6. 사건사고
4. 축구 : 경남 FC, 창원 FC5. 핸드볼6. 그 외 종목7. 인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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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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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와 마찬가지로 광역자치단체는 아니지만 경제력과 인구수는 광역시 소리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기에 스포츠가 발달된 지역이다. 한국에서 프로화가 된 4개 종목 중 배구를 제외한 3개 종목 팀이 창원시를 연고지로 삼고 있다. 배구도 마산시 시절에 잠깐이나마 가져본 적은 있다.

2. 농구

2.1. KBL 창원 LG 세이커스

{{{#!wiki style="margin: -5px 0; display: inline-table" <tablebordercolor=#fff,#1f2023><tablebgcolor=#fff,#1f2023>
파일:창원 LG 세이커스 엠블럼.svg
창원 LG 세이커스
Changwon LG SA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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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창원 실내체육관 창원 LG 22-23 시즌 모습.jpg
창원실내체육관

창원시 전체 역사를 통틀어 첫 번째로 생긴 창원 연고 프로스포츠 팀으로서 역대 KBL 구단 중 유일하게 연고지, 모기업, 팀명이 모두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사례[1]다.

1997년에 프로농구가 정식 출범하게 되면서 LG그룹 LG전자 공장이 있는 창원시를 연고로 하여 창원 LG 세이커스를 창단했다. 처음 참가한 1997~1998 시즌에는 경남 LG 세이커스라는 이름으로 프로농구에 뛰어들었다가 두번째 시즌부터 창원 LG 세이커스라는 이름이 확정된다.

창원지역 최초 프로스포츠 팀이라는 점과 창단 시즌에 정규리그 2위라는 호성적을 이뤘다는 점에 힘입어 창원 LG 세이커스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고 이는 농구도시 창원의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현재는 프로농구의 인기 자체가 시들해지면서 예전만한 관중 흥행을 보여주진 못하지만 그래도 KBL에서 연고지 내 인기가 가장 강한 팀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을 것 같았지만.....자세한 내용은 아래 참고.

KBL 프로농구에 있어서 지역연고가 가장 강한 연고는 원주시의 나래 블루버드-해커스와 TG삼보 엑서스였고 그 후신인 원주 동부 프로미-원주 DB 프로미다. 이미 원주도 농구도시로 유명한데 모기업의 지원과 원조는 창원 LG 세이커스였다.

과거 KBL 프로농구 첫 부산광역시 연고팀이자 KBL 원년 97 시즌 통합우승을 달성했던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허재, 김유택, 강동희, 김영만[2]으로 흥행몰이는 하는 시점에서 1997-1998 시즌 정규리그 2위의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2000-2001 시즌에는 조성원 조우현으로 인해 창단 첫 KBL 파이널에 진출하면서 창원 LG를 창원시민과 농구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었는데 우승을 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2001-2002 시즌 대구 동양 오리온스의 창단 처음이자 유일의 KBL 통합우승으로 인해 위기를 맞는 듯 했으나 관중은 지키고 있다.

추가로,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의 IMF 매각으로 인해 모기업 변경과 연고이전까지 겹치면서 인근의 부산에는 2년간 농구팀이 없기도 했으며 후신으로 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를 매각한 부산 KTF 매직윙스가 2년만에 부산 연고 프로농구팀으로 돌아오는 등 이미 창원의 농구열기는 부산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KBL 프로농구 두번째이자 전 부산광역시 연고팀인 부산 KTF 매직윙스는 2003-2004 시즌 중 전신팀에서 매각 이후 첫 시즌과 2005-2006 시즌까지 부산금정체육관에서 보낸 이후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의 옛 홈이자 2002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영광이 있는 장소인 사직체육관으로 홈을 이전한 2006-2007 시즌을 맞이하며 고비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이로인해 KTF-KT를 합병한 부산 kt 소닉붐이 2009-2010 시즌과 2010-2011 시즌까지 2년간 호성적으로 인해 연간관중에서 넘어서는 위기도 맞이했다.

심지어는 2010-2011 시즌을 끝으로 2011년 대구 오리온스 고양시로 연고이전을 하더니 2020-2021 시즌을 끝으로 2021년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또한 모기업인 전자랜드와 고려제강의 경영난 속에 18년의 인연을 정리하고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에 인수되면서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가 되었다. 연고도 인천을 뒤로하고 한국가스공사 본사가 있는 대구로 변경했다. kt 소닉붐 또한 클럽하우스와 형제야구를 이유로 부산에서 수원으로 연고이전을 단행하며 수원 KT 소닉붐이 되고 말았다. 이제는 KBL에서 창단 이래 모기업-팀명-연고지가 둘 다 바뀌지 않은 유일한 팀이 되었다. [3]

이런 굴곡 속에도 불구하고 2013-2014 시즌 창단 17년 만에 KBL 정규리그 우승을 하면서 농구도시 창원을 절정으로 만들어냈다. 이 시즌 성탄절 경기와 정규리그 우승 경기는 거의 역대급 관중이 창원체육관을 찾았다. 그리고 챔피언결정전에서는 업셋을 당했다.

2018-2019 시즌에는 12월 31일 송구영신 경기를 펼치고 1월 20일에는 창원에서 처음으로 KBL 올스타 게임을 개최했다. 해당 시즌 LG는 정규시즌 3위를 기록하면서 4년만에 봄농구 즉 벚꽃농구를 만끽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클럽하우스는 그동안 연고지와는 전혀 동떨어진 경기도 이천시에 위치해 있어서 연고지 밀착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지역 팬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2020년 9월에 클럽하우스와 사무국을 모두 창원실내체육관으로 이전하면서 연고지 정착 문제도 완전히 해결되었다.[4] 기존의 이천시 소재 클럽하우스는 2군 전용으로 사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다가 창단 20주년이었던 2016-2017 시즌 플레이오프 탈락 이후 세이커스에는 큰 위기가 찾아오게 된다. 형제야구단인 LG 트윈스는 2019 시즌부터 매시즌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는 등 과거 10년 암흑기 시절이었던 6668587667에서 탈출하면서 강팀이 되어가고 있으나 반대로 못해도 6강 플레이오프는 꼬박꼬박 갔던 그 모습 대신 창단 이후 최악의 암흑기를 맞이하게 된다. 2017-2018 시즌과 2019-2020 시즌 구단 역대 최저성적인 17승(54경기 기준)과 불운의 16승으로 인해 예능으로 홍보했지만 지도자 경력이 전무한 현주엽 감독의 처참한 실패로 인해 형제 야구는 커녕 지역 야구에서 인기를 내줄 위기에 놓였다.

특히 같은 동네 야구단이 1군 진입 8년만에 정규시즌에서 우승한 데 이어 한국시리즈까지 우승하면서 같은 창원시 연고는 물론이고, 경상남도 연고 프로구단 최초 우승을 달성하면서 20년 넘게 1군에 있었음에도 우승을 한 번도 하지 못한 세이커스와 비교되고 있다. 또한 시청률, 직전해 관중 동원 등이 모두 NC에게 몇 배나 밀리고 있다.[5]

만약 LG가 올해에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면 8년만에 우승을 한 NC와 더욱 비교되고 놀림감이 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NC 창단 이전의 리그 최고의 인기는 고사하고 남아있는 팬들까지도 대부분이 NC로 떠나버릴 수 있어 창원시의 최고 인기 구단 자리를 되찾는 것은 고사하고 KBL의 대표적인 인기 구단이라는 자리까지도 위험해질 수 있는 위기에 처했다.[6][7] 세이커스가 이전의 인기를 되찾고 진정한 창원의 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빠른 시간 안에 반드시 좋은 성적을 거두어야 할 것이다.

결국 암흑기 도래와 함께 2017년부터 현재 2022년까지 감독이 세번이나 바뀌면서 KBL판 감독의 무덤이라는 굴욕과 함께 2020-2021 시즌에는 창단 첫 꼴찌의 수모를 당해버렸는데 팀 내 선수로 뛰었던 현주엽 조성원은 모두 감독으로서는 사실상 낙제점을 받아 불명예 퇴진했다. 결국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코치-감독이었던 조상현 감독을 신임 감독으로 선임하면서 팀을 제정비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 다만 조상현 또한 오리온 코치로 우승경혐이 있지만 사실상 프로농구 감독은 처음이고 대한민국 농구 대표팀 감독으로 그렇게 좋은 성적을 못 냈기에 팀 내 선수 출신으로 창원 LG 세이커스의 상위권 진입을 성공할지는 의문부호가 남아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수비 늪농구를 바탕으로 하는 속공을 팀컬러로 8년 암흑기를 끊게 된다. 이 공과 함께 조상현 감독은 팀을 2년 연속 정규리그 2위로 이끌면서 농구도시 창원의 농구열기 회복만 아니라 형제야구의 29년만에 우승기운을 이어받아 정상에 도전하고 있다. 2023-2024 시즌에는 1년전 2022-2023 시즌부터 성적을 회복하며 다시 연간전체관중 겸 리그 전체관중 2위로 회복하며 농구도시 창원의 농구열기를 이어가고 있다.

2021-2022 시즌을 앞두고 대구 동양 오리온스의 야반도주 이후 10년만에 대구 연고 프로팀으로 공기업으로 인수 이후 창단된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로 인해 LG 팬들의 원정만 아니라 영남권 농구 팬들의 볼거리가 추가로 늘어나고 있다.

2023년에는 2년전 kt가 부산에서 수원으로 야반도주를 선택하면서 특례시 더비로 바뀌었으나 전주 연고였던 KCC가 부산으로 오게 되어 새로운 낙동강 더비가 다시 생겨났다.

21세기 홈팀의 우승 경험이 없는 KBL 연고를 가진 유일한 도시다.

2020년대에는 2022-2023 시즌과 2023-2024 시즌 모두 2년 연속 정규리그 2위를 기록했으며 2024-2025 시즌을 앞두고 선수단을 또 개편하면서 분위기를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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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아마농구

아마농구는 대표적으로 마산고가 있다. 기아 엔터프라이즈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동부 프로미의 코칭스태프였던 김영만과 KTF-kt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상징이었던 송영진 그리고 명지대학교 감독과 고향팀 감독을 맡았던 성리학자 강을준 등을 배출했다.

최근에는 KCC 이지스의 다문화 출신으로 몽골에서 귀화한 슈터인 이근휘의 고향이기도 하다.

다만 최근 들어서는 LG 세이커스 농구단이 창원시내 이벤트와 유소년을 돕고 있지만 창원시 출신을 포함한 경남권 농구인들이 수도권 학교로 전출하고 있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다. 물론 이는 창원뿐만이 아닌 비수도권 모두의 문제다.

3. 야구 : NC 다이노스

파일:external/www.xportsnews.com/1400492423262.jpg
마산야구 100주년을 기념한 NC 다이노스의 기념 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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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NC 다이노스 홈 엠블럼.svg
NC 다이노스
NC DINOS
}}}
파일:창원NC파크.jpg
창원 NC 파크

현재 KBO 리그 팀 중 수원시 kt wiz와 더불어 기초자치단체에 연고지가 있는 팀이다. 물론 광역시 승격이 막힌 상황이라서 승격을 못하고 있을 뿐이지 두 도시 모두 광역시 승격 자격은 갖추고 있는 대도시이기 때문에 야구단이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8]

[ 2014년, 마산야구 역사 100년의 해 ]
(상) 일본을 이기는 힘
(하) 마산의 자부심

마산시 지역의 경우 야구 역사가 상당히 깊다. 1914년 창신학교[9]에서 마산지역 첫 야구부를 창단하며[10] 야구가 뿌리내렸다. 1982년 KBO 리그 창설 이후 부산· 경남 광역 연고구단이던 롯데 자이언츠 제2 홈구장 소재도시로 지정돼 줄곧 야구 인기가 상당히 높은 동네로 알려져 있다. 옛 마산 지역은 시민들의 야구 사랑이 워낙 유별나서 그로 인한 에피소드도 많은데 자세한 내용은 마산아재 문서 참조.

진해 또한 1920년대 김종세[11]가 고향으로 돌아와 야구 보급을 시작하면서 야구 역사 또한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 KBO 리그 출범 초기 각 구단이 해외 전지훈련을 떠나지 못하던 시절에는 진해가 전지훈련지로 각광을 받기도 했다. 다만 진해공설운동장 내 야구장은 현재 시설이 심각하게 낙후돼 프로구단이 도저히 써먹지 못할 수준이다.

NC 다이노스의 역사는 다른 팀에 비해서 짧은 편이고, 연고지 인구도 가장 적다는 약점 때문에 소위 흥행참패동맹으로 불리는 비인기구단으로 분류되고 있으나, 연고지에 오랜 야구 역사를 지니고 있어 적어도 지역 내에서는 '우리 팀'이라는 인식이 박혔다.[12]

2015년 창원시민과 지역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NC 다이노스 누비자 LG를 제치고 창원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선정될 정도. "창원시 대표기업 '두산중공업'…대표브랜드 'NC'"

심지어 2015년 아마추어 E스포츠 대회에서 경남 대표팀은 NC 다이노스 티셔츠를 입고 참가해 화제를 불러모았는데 이들은 'NC 다이노스가 경남을 대표하는 스포츠 팀'이라는 이유로 NC 다이노스 티를 맞춰 입었다고 한다. ##

이후 2020년 한국시리즈에서 경남을 연고로 하는 프로구단 최초로 최종 우승을 차지하게 됨으로서,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하던 일부 창원시민들만 아니라 일부 부산시민들 그리고 부산과 창원 인근의 김해시민들 조차 NC 다이노스로 응원팀을 변경하는 사례도 늘게 되었다. 여전히 창원에도 LG 트윈스,두산 베어스,KIA 타이거즈,삼성 라이온즈,한화 이글스,SSG 랜더스를 응원하는 팬들이 있지만 이들은 갈아타지 않아도 롯데 자이언츠 팬들은 이탈조짐까지 드러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고.

추가로 MZ 세대와 함께 스포츠 응원문화의 세대교체까지 이루어지며 2023년에는 2년간의 성적부진을 딛고 호성적을 내면서 창원NC파크도 매진행렬에 가세했다.

3.1. NC 다이노스 창단 이전

현재의 창원 지역에 프로야구단을 만들려는 최초의 시도는 1980년대 말에 있었다. 프로야구 제8구단 창단 작업에 마산을 대표하는 향토기업이었던 한일합섬[13] 경남 연고의 새 구단을 만들겠다고 뛰어들었다. 하지만 8구단 창단을 놓고 경쟁관계에 있던 쌍방울이 미원(현 대상그룹)과 컨소시엄을 형성하고 전라북도 연고 구단 창단을 추진하면서[14] 한일합섬은 돌연 창단 포기를 선언했고 결국 미원과 결별한 쌍방울이 제8구단을 창단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한일합섬이 쌍방울 구단보다 먼저 무너졌고 쌍방울 구단도 1997년 외환 위기의 여파를 넘지 못하고 결국 2000년 1월 문을 닫았다.

1982년 마산 야구장이 건립되면서 롯데 자이언츠 제2 홈구장 자격으로 1년에 6~9경기 정도 경기를 하러 왔었다. 여기서 그 유명한 마산아재가 탄생.

3.2. NC 다이노스 창단

2010년 창원시가 마산, 진해를 통합하면서 시민 통합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 창원시에서는 이에 대한 방안으로 프로야구 구단 창단을 모색하게 되고, 프로야구 9구단 창단과정을 통해 결국 창원시를 연고로 한 NC 다이노스를 창단하는데 성공한다. 1980년대 말 실패했던 프로야구 구단 창단이 20여년 후에야 비로소 결실을 맺은 셈. 창원시는 NC 다이노스에 마산구장 리모델링, 신구장 건설 등의 파격적인 지원을 약속했고, 이에 시의회의 반발 등 진통이 있었으나 결국 이러한 지원방안을 담은 창단협약이 2011년 6월 시의회를 통과하여 지원에 문제는 없게 되는 것으로 보였다.

3.3. 아마야구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마산고 마산용마고가 지역 내 대표 고교야구 라이벌로써 지역 내 아마야구를 주도하고 있다. 두 고교의 라이벌 구도는 부산의 부산고 경남고[15]의 구도로 보면 이해하기 쉽다.

다만 예나 지금이나 야구판을 주도하는 윗 문단에 있는 부산의 두 학교와는 다르게 창원의 두 학교는 긴 역사에 비해서는 별 두각을 못 드러내고 있다. 흔히 말하는 고교야구 메이저 대회[16] 우승 경력이 2021년에야 처음 나왔을 정도. 물론 전준호 장원삼, 조정훈 KBO 리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창원 출신 야구인들도 있으나 절대적인 숫자는 다른 지역에 비해 미미하다. 결국 경상남도내 고교야구부의 메이저 대회 우승은 창원이 아닌 김해에서 먼저 나왔다.

그나마 NC 다이노스 창단 이후로는 구단의 지원으로 용마고가 성적도 잘 나오고, 우수한 선수도 많이 배출하고 있으나 우승까지는 요원하다. 게다가 항목을 보면 유급 문제로 연고구단인 NC가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지라 이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다. 결국 2023년도 신인 드래프트부터 전면 드래프트로 다시 전환되었지만 이 과정에서 다소 뒷맛이 개운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17]

대학교 야구부로는 경남대학교 야구부가 있다. 권희동이 이 학교 출신.

3.4. 비판

이 비판은 구단이 아닌 창원시에 관한 비판이다.

창원시는 NC 다이노스 창단 이후 창단 당시의 약속을 사실상 파기하고, 철저히 이기주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역 토호주의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언제는 105만 창원시민이 통합해야 한다더니, 분열을 자초하고 있다.

신구장 부지를 정치적 논리에 따라 교통편이 불편한 진해구로 선정한 뒤 마산으로 정정하고, 시민 선호도 조사와 명칭선정위원회 등의 결정을 무시하고 마산 토호들의 주장대로 신구장 명칭을 이상하게 정하였다. 여기에 사용료 협상에서의 태도까지 겹쳐져 야구팬들은 창원시에 대해서 절대로 좋게 보지 않는다. 결국 NC가 330억을 납부하기로 했으나, 애초에 창단 당시 창원시는 사용료 면제 공약을 내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30억을 내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후 창원시 지역 정치권에서는 "300억도 부족하다. 400억을 내라." "창원시가 협상 내내 NC에게 끌려다녔다(...)" "지역 발전 지원금을 내놓으라."는 등 지역 언론까지 동원하여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창원시가 창단 당시 내놓았던 공약은 다음과 같다.
저 중에서 문제가 되는 공약은 사용료 면제 약속으로, 분명히 창원 NC 파크를 대상으로 한 공약임에도 논란이 되자 마산 야구장 사용료를 얘기한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게다가 NC는 2군 구장으로 사용하는 마산 야구장의 사용료로 연 8,500만 원을 내기로 창원시와 합의했으이 밝혀졌는데, 이는 창원시의 주장과 모순된다. 창원시가 야구단을 유치한 이유가 그 공약들 덕분임을 생각하면, 사실상 야구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프로스포츠 전체를 농락한 것이다. NC 다이노스뿐만 아니라, 창원시를 연고로 하고 있는 창원 LG 세이커스나 창원에 홈 구장이 있는 경남 FC에게도 똑같은 문제가 나올지도 모른다.[20]

3.5. 창원에서 KBO 타구단을 응원하는 경우

수도권만큼은 아니지만 연고팀인 NC 다이노스가 아닌 타 팀을 응원하는 창원시민들이 있다. 신생 도시이자 공업 도시였고, 그에 따라 외지인 유입도 많은 의창구 성산구에 주로 이런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는 프로야구단을 가지고 있는 모기업의 공장 등 사업 시설이 창원시에 많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응원하는 팀은 옛 연고팀이었던 주로 롯데 자이언츠가 많고[21], 서울 잠실 두 팀인 LG 트윈스 두산 베어스도 주도를 하면서 인천 문학의 팀인 SK 와이번스- SSG 랜더스도 따라가고 있다. 이외 전국구 인기팀인 KIA 타이거즈, 삼성 라이온즈, 한화 이글스도 포함되어 있다.

NC를 제외한 야구 팬덤을 보면 롯데가 가장 앞서있고 잠실 두팀인 LG와 두산도 만만치 않으며 기삼롯한이라는 KIA, 삼성, 한화도 따라붙고 있다. 이외 NC와 함께 흥행참패동맹의 3팀 중 SK-SSG가 가장 경쟁력이 있다. 다만 하나 알아야 할 것은 롯데팬을 제외하고는 어디까지나 이런 야구팬들도 소수나마 있다는 수준이다. 그리고 마산아재 문서를 보다시피, 예전부터 이런 기업의 영향을 받아서 응원하는 사람들은 야구장에 단체 관람을 와도 기업 임원이 자리를 뜨는 5회쯤부터는 죄다 롯데팬으로 탈바꿈하는(...) 경우가 많았다. NC 창단 이후로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창원으로서의 정체성도 강해졌고, 소속 기업의 스포츠단을 무조건 응원해야한다는 인식도 줄어든지라 대부분 연고팀을 응원한다. 게다가 NC는 창원에서 자리잡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고, 한국시리즈 우승 등 성적도 꾸준히 잘 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롯데의 암흑기가 지속되고 있어 창원과 경남에서 주도권을 잡는 것뿐만 아니라 부산, 울산에서까지 롯데만 아니라 인근의 삼성과 함께 팬덤을 양분하는 형태로 갈 수도 있다.

3.6. 사건사고

3.6.1. NC 다이노스 홈구장 부지 선정 논란

2013년 1월 신규 야구장( 창원 NC 파크)의 위치가 정치적 논리에 의해 진해구 육군대학 부지로 결정되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진해를 신축구장 부지로 선정한 박완수 시장이 도지사 출마를 위해 퇴임하여 의사 결정권자가 없는 상황에서 1년 넘게 표류하다가, 2014년 9월 신임 안상수 시장이 구단의 요구와 시민 여론에 따라 마산으로 입지를 변경하여 일단락되는듯 했다.

그러나 시의회에서 진해구 출신의 김성일 시의원이 안상수 시장에게 계란을 던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시의원이 구속된 후 안상수 시장과 공무원들은 시의원의 석방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하였고, 김성일 시의원은 집행유예로 풀려났으나 2015년 9월 최종적으로 당선무효형이 확정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NC 다이노스 홈구장 부지 선정 논란 항목 참조.

3.6.2. 창원 새 야구장 명칭 선정 논란

2018년 11월 2일, 창원시는 새 야구장의 명칭에 대한 시민 선호도 조사를 11월 5일부터 9일까지 시행했다. 그러나 마산 지역 토호들이 새 야구장 명칭 후보에 '마산'이 빠진 것에 반발했고, 표를 얻고자 하는 정치인들까지 거세했다. 애초에 야구장 명칭에 시의 이름을 넣는 것 자체가 구단의 연고지를 알린다는 의도이기 때문에 마산회원구와 마산합포구에만 남아있는 '마산'이라는 지역명을 집어넣을 이유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야구팬들은 정치적 행보라고 평가절하하며 좋게 보지 않았다.

하지만 반발이 계속되자 2018년 11월 20일 창원시는 시민들의 여론 수렴을 위해 총 13명으로 이루어지는 새야구장 명칭선정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러나 이번 논란에 대해 가장 주도적인 행동을 보인 마산야구장 명칭사수 대책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인물이 마산합포구 시민대표로 선정되는 등 조작 논란까지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위원회는 한 달 동안의 토론과 활동을 갖고 새 야구장의 명칭을 창원 NC 파크로 정했으나, 창원시의회는 이를 뒤집고 창원NC파크 마산구장이라는 명칭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시 차원에서만 이런 이상한 이름을 쓰지, 언론이나 지도 등에서는 창원NC파크라고만 한다. 자세한 것은 창원 새 야구장 명칭 선정 논란 참고.

4. 축구 : 경남 FC, 창원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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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경남 FC 로고.svg
경남 FC
GYEONGNAM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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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창원축구센터.jpg
창원축구센터

창원에서는 1990년대 초 창원종합운동장이 완공되면서 투어 형식으로 프로축구 경기가 창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리기도 했다. 이후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경남도청이 있는 창원시를 포함한 범 경상남도 지역을 연고로 하는 K리그 소속 도민구단 경남 FC와, 창원시 한 곳만을 연고로 하는 한국 내셔널리그 소속 창원시청 축구단이 출범했다. 경남 FC의 주경기장은 창원축구센터지만 엄밀히 말해 창원시가 아닌 경남을 연고로 한 구단이기 때문에[23] 은근히 창원시와는 껄쩍지근한 관계였는데, 이는 창원시 측에서 경남 FC보다 자신들의 구단인 창원시청 축구단을 우대해줬기 때문. 실제로 조광래 감독은 창원시의 찬밥대우를 성토하며 연고이전을 운운하기도 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24] 지금은 최대한 둘이 안겹치게 일정을 조율하며 서로 불필요한 감정싸움을 피하고 있다.

성적은 두번째 시즌인 07시즌부터 안정적인 궤도에 들어가 중위권을 꾸준히 유지했다. 조광래 감독하에서는 이용래, 김동찬 등 젊고 뛰어난 유망주들을 많이 키워내며 '조광래 유치원'이라는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그러나 조광래 감독이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불려가게 되면서[25] 잠시 김귀화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을 맡다 최진한을 새 감독으로 선임했다. 2012년까지는 어느 정도 성적을 거뒀지만 2013년 시즌 초반 성직 부진으로 자진 사퇴하였다. 2013시즌 남은 기간은 세르비아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바 있는 일리야 페트코비치 감독이 지휘했으며 2014시즌을 앞두고 부산 대우 로얄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이차만 감독을 영입했으나, K리그에 15년만에 복귀한 이차만 감독은 변화한 K리그 지형에 익숙하지 못했던데다가 성적마저 나아지지 않으면서 몇 달 지나지 않아 사임했다. 그리고 팀은 그 해 12월 2부 리그로 강등되었고, 2015년에 출범한 박성화 감독 체제에서도 그렇게 좋은 모습을 보이지는 못하면서 예전의 실력과 인기를 회복하기 어려워진 상황. 당시 구단주의 해체설과 여러 잡음들이 계속해서 퍼지면서 이 팀은 예전의 시민구단의 모범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없을 만큼 바닥으로 떨어져버렸다. 당장 내년 시즌이 걱정일 정도. 하지만 2016년 김종부 체제에서 망가진 팀을 잘 추스리고 2017년에는 압도적인 1위로 클래식에 승격했다. 그리고 2018년 현재는 1부리그 2위에 있어서 창단 첫 AFC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할 가능성도 보인다. 결국 11월 25일 수원과의 경기에서 이기고 울산이 제주와의 경기에서 지면서 아챔 본선에 진출했다.

하지만, 창단 처음으로 AFC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했던 2019년에는 K리그1과의 경기를 병행하면서 문제점을 드러냈다. 빡빡한 일정에 따른 스쿼드 안배에 실패하면서 성적이 곤두박질을 치더니 다시 원래의 자리로 DTD를 당했다.

특히 2019 시즌 38 라운드 홈 최종전에서 K리그 생존왕이라는 별명이 붙은 인천 유나이티드의 생존경쟁에서 희생양이 되더니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낙동강 더비 부산 아이파크에 패하면서 2년만에 K리그2로 강등되었다. 1년뒤 부산 아이파크 마저 2020 K리그1에서 최하위로 다이렉트 강등을 당하면서 K리그2에서 다시 부산 아이파크와의 낙동강 더비가 재개되면서 험난한 K리그1 승격경쟁을 하고 있다. 이로인해 창원의 축구 팬들은 예전 창원과 진주에서 경기를 했던 FC 서울을 포함해서 부울경에서 가장 명가라 불리는 울산 현대를 더 응원할 정도이며 근거리로 인해 일부 축구 팬들 중 같은 영남권 시도민구단인 대구 FC를 응원하고 있다.

한편 세미프로팀인 창원시청 축구단은 2020년부터 새로이 개편된 대한민국 3부 축구리그인 K3리그에 참가한다.

5. 핸드볼

5.1. 경남개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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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경남개발공사 원형 로고.svg
경남개발공사 여자 핸드볼단
Gyeongnam Development Corpo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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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창단한 핸드볼 구단이다. 핸드볼 H리그 여자부에 소속되어 있다. 2020년 이후로 마산체육관에서 경기가 열리지는 않지만, 훈련은 여전히 마산체육관에서 하고 있을 정도로 두산에 비해 연고지 색채가 두드러지는 편이다.

2011년, 2018년, 2022년 전국체육대회에서 3위에 올랐지만 H리그의 전신인 SK핸드볼코리아리그서는 5위(2019-2020 시즌)가 최고 성적이다.

5.2. 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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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두산 로고.svg
두산 핸드볼단
Doosan Handball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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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볼 H리그 남자부 소속 핸드볼단으로 자타공인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핸드볼단이다. 리그에서 1번 빼고는 우승을 놓친 적이 없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보유한 구단.

1991년 11월 강원도 희석식 소주 제조업체 (주)경월의 실업팀으로 창단하였다. 그야말로 남자 실업팀으로는 국내 최초의 핸드볼단이다. 이후 1993년에 두산그룹이 경월을 인수하면서 자연스럽게 두산 소속이 되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연고지 색채가 그리 강하지 않다는 것. 2017년에 연고지를 서울에서 창원으로 옮길 당시에는 창원에서 활발한 지역 마케팅을 하기도 하였으나, 현재로서는 아예 창원에서 핸드볼 경기마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창원시에서 별다른 연고지 연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6. 그 외 종목

국내 최초로 국제 모터 스포츠를 유치하기도 한 곳이 창원인데, 1999~2003년까지 창원 시가지 서킷에서 열렸던 F3 코리아 그랑프리[26]가 그것. 지방 주도의 국제 행사 가운데서도 상당히 성공적인 행사로 꼽혔고 금전적으로도 흑자를 기록했지만, 문제는 서킷이 위치한 창원 스포츠 파크의 주변이 죄다 주거 지역이었던 탓에 대회 기간마다 소음 민원이 빗발쳤던 것. 지역주민과 언론에서 한목소리로 거센 비난 여론이 일었고 결국 창원시와 경남도는 03년을 끝으로 F3 개최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한편, 99년 대회에서 2위에 올랐던 젠슨 버튼은 이듬해 F1에 데뷔하여 09년 월드 챔피언이 되기도 했다.

그 뒤 2005년 프로배구 V-리그가 출범하면서 남자부 한국전력 배구단, 상무 배구단과 여자부 현대건설 그린폭스가 옛 마산시를 연고로 하였으나[27] 엄청난 이동거리로 인해 결국 1년 뒤, 한국전력과 현대건설은 수원시로 연고지를 옮겼으나 상무는 홈경기 개최권을 포기하고 무연고 상태로 2010년까지 원정경기만 치르다 2010-11시즌에야 성남시에 새 둥지를 틀었다.

창원시청 씨름단, 창원시청 사격단, 창원시청 볼링팀, 창원시청 육상부가 있음.

2018 ISSF 세계 사격 선수권 대회 개최 도시이기도 하다.

7. 인프라

주요 스포츠 시설로는 창원스포츠파크, 창원축구센터, 창원종합사격장, 창원시립테니스장, 늘푸른전당, 시민생활체육관, 의창스포츠센터, 마산야구센터, 진해공설운동장, 진해국민체육센터, 해양레포츠스쿨 등이 있다.

[1] 물론 세세하게 따진다면 첫 1년은 경상남도 전체를 연고로 하면서 경남 LG 세이커스라고 불리기는 했지만 어쨌든 창원도 경상남도에 속한 곳이니 큰 차이라고는 할 수 없다. [2] 지역연고 출신 스타 [3] LG 세이커스 외에 팀명은 바뀌었지만 원년에 자리잡은 연고지를 그대로 유지한 팀은 원주 DB 프로미 안양 KGC인삼공사가 있다. 나머지 7개 구단은 한 차례 이상 연고지 이전을 감행한 바 있다. 수원 KT 소닉붐의 경우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이후 10년만의 연고이전으로 농구팬들에게 큰 비판을 받았다. [4] 이 때문에 2020년 9월 전까지는 이천 LG 세이커스라는 별명이 있었으며 이천시로 옮기기 전에는 한술 더 떠 서울특별시(!!!) 송파구 방이동 LG전자 체육관에 클럽하우스가 있었다. 사실 LG 뿐만 아니라 다른 팀들 역시 연고지와 숙소가 다른 곳에 위치한 팀이 있는데 자세한 것은 한국프로농구/문제점을 참조. [5] 물론 경기 수가 야구가 2배 이상 많고, 한국에서는 야구가 농구보다 몇 배나 인기가 높으며, 작년 NC의 신구장 개장 등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인기의 차이는 있다. [6] 같은 리그, 종목에선 다른 팀으로 갈아타는 것이 어렵지만, 서로 다른 종목끼리는 그냥 농구를 덜 보고 야구를 더 보면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쉽다. 아니 애초에 갈아탄다는 표현까지 쓰지 않아도 된다. 그냥 농구를 적게 보고 야구를 더 본다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7] 이는 LG처럼 오랜 기간 우승을 못 하고 NC에 성적이 뒤떨어지고 있는 롯데 자이언츠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롯데와 LG 모두 늦게 창단한 근처의 다른 구단이 훨씬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자신들은 한 번도 달성하지 못한 들을 훨씬 빠르게 달성하면서 최근의 너무 낮은 성적 때문에 팬들이 그 팀으로 옮겨가 인기가 크게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롯데는 NC 창단 전에는 KBO 최고 인기구단이었으나, NC의 창단과 1군 진입 이후 점진적으로 경남의 파이를 잠식당해 KBO 최고 인기구단의 자리를 KIA 타이거즈에 내주게 됐다. 이 같은 일이 LG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것. 자세한 내용은 낙동강 시리즈 문서 참고. 어째 LG가 이 LG 같다. [8] 1999년을 마지막으로 해체된 쌍방울 레이더스의 경우 전주종합운동장 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삼긴 했지만 당시는 도시연고제가 아니라 광역연고제였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자면 전라북도라는 광역자치단체를 연고로 삼은 구단이지 전주시만의 구장은 아니었다. [9] 현 창신고등학교 [10] 2014년에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마산야구 100주년 기념 행사를 가지기도 했다. [11] 진해 출신으로 1923년 서울 휘문고보 시절 전조선학생야구선수로 뽑혀 일본에서 열린 '전일본중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에 투수로 출전하기도 했다. [12] 창원 아이돌로 불리는 나성범은 KBO 리그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로 성장했다. [13] 무학소주와 몽고간장에 이은 3대 마산 향토기업 중 하나였다. 마산 야구장 창원 NC 파크 앞에 있는 창원 메트로시티가 옛 한일합섬 마산공장 터였다. [14] 물론 이 컨소시엄은 얼마 못 가서 해체됐고 쌍방울이 단독으로 팀을 창단하게 된다. 훗날 알려진 바로는 쌍방울의 자금력이 다소 부족해 미원의 이름을 빌렸다고 한다. [15] 경남지역의 학교가 아닌 부산 서구의 일반계 고등학교다. 서울에 경기고등학교가 있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과거 일제강점기에는 서울과 부산이 각각 경기도, 경상남도에 속해 있었다. [16] 대통령배, 봉황대기, 청룡기, 황금사자기, 협회장기. [17] 김종문 당시 NC 다이노스 단장이 2018년 6월 25일 1차 지명 선수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해당 1차 지명 선수가 있는 가운데 전면 드래프트 재도입 주장을 했기 때문이다. 해당 선수가 입단 1년 만에 방출되면서 결과적으로 이는 결례가 되어버렸다. [18] 이것도 실제 창원시가 쓴 비용은 820억에 불과하며, NC 다이노스도 구장 건설에 100억을 냈다. [19] 네이밍 마케팅은 구단이 원하지 않아 무산되었다. [20] 이미 NC에게 300억 상당의 돈을 얻었는데, 다른 팀이라고 못 할까? [21] 이쪽은 의창구 성산구 그리고 진해구에도 있지만 야구 열기가 강한 마산회원구 마산합포구에도 옛 팀으로 인해 만만치 않은 팬덤이 있다. [22] 부친이 LG전자 창원공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본인도 LG 트윈스의 팬이었다고 밝혔다. [23] 그래서 창원 외에도 경남의 다른 지자체들인 진주시, 거제시, 양산시 등지에서 순회 경기를 했지만, 2010년대 이후로는 창원에서만 하고 있어 명목상으로만 경남이지 실질적으로는 창원의 구단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다. [24] 그러나 이건 이해가 되는게 주 연고지인 창원을 소재로 하는 고등학교과 유스팀 협약을 하다가 창원시의 항의로 전부 실패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 그래서 경남은 조광래 감독의 모교인 진주고등학교와 유스 협약을 맺게 된다. 조광래 감독도 학연 이야기 듣기 싫어서 진주고와 협약을 안하려고 했지만 창원시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하기도 했고. [25] 원래는 경남 감독직도 겸임할 예정이었으나, 구단과 상의 끝에 결국 사임했다. [26] 구글 어스로 과거 사진을 보면 경기장을 볼 수 있다. [27] 이 지역과 전혀 연고가 없는 한전, 상무, 현대건설이 마산을 연고지로 삼은 것은 당시 KOVO 초대 총재이자 민선 1~3기 경상남도지사를 역임했던 김혁규의 입김 때문이었다는 설이 있다. [28] 그래서 2019년 1월 24일 허성무 창원시장은 기존 보조경기장 자리에는 유소년 야구장을, 실내체육관은 야구문화센터로 바꾸고, 야구장 바로 뒤에 위치한 반월산에도 정원을 조성하며 야구장 주변 거리는 특화 거리로 만든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2027년까지 총 755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될 예정이다. 이름값 하나 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거금이 들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