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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02:01

진호(후백제)

眞虎
? ~ 926년 음력 4월

1. 개요2. 대중 매체에서의 진호

1. 개요

후삼국시대 후백제의 인물. 견훤의 외생(外甥)[1]으로 925년 10월의 조물성 전투가 무승부로 끝나자 고려 태조 왕건 사촌 동생 왕신과 맞교환되어 고려에 볼모로 파견되었으나, 이듬해 4월 급사했다. 볼모로 파견된지 6개월 만이었다.

견훤은 진호가 급사한 것을 고려 측의 암살로 간주하여 그 보복으로 왕신을 처형했고, 아울러 고려의 취약지구이자 옛 백제의 도읍인 웅주를 공격하면서 다시 삼한을 전운 속으로 몰아넣는다.

2. 대중 매체에서의 진호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후에 드라마 정도전에서 심효생 역을 맡았던 배우 박유승이 연기했다. 왕후 박씨 집안의 사람으로 나오는데, 태조 왕건에서는 둘을 혼합한 듯한 왕후 박씨 조카 설을 채택했다. 왕신 달리 이전까지 극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이후 볼모 교환과 화친으로 인해 고려는 손발이 묶여있는 상황이었는데 후백제는 자유롭게 신라를 공격하는 상황에 분개한 왕건의 의형제들과 복지겸이 최응, 왕식렴 등과 모의해 진호를 독살해버렸고, 태조 왕건에서는(152화) 이 음모론을 채택해 최응의 기획 하에 왕식렴이 진호를 어쩔수 없이 독살한 것으로 묘사했다.[2] 이후 이를 의문사라고 덮은 채 견훤에게 보낸다. 견훤은 분노하면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3] 의원 훈겸을 시켜 시체를 부검하게 하였고, 그 결과 독살이라는 것이 밝혀져 화친은 깨지고 왕신 역시 자결을 택하면서 양국은 다시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4] 조물성 전투 이후 진호가 고려에 볼모로 파견된다는 소식을 들은 박씨는 '우리 집안을 우습게 봤다. 승평부인 집안이었으면 이렇게 했겠냐'며 나중엔 진호의 사망 소식까지 듣게 되니까 심사가 뒤틀려하는 모습을 보이며 이후 신검의 정변에 대한 복선을 쌓는다.


[1] 처의 형제 혹은 시집 간 여동생( 대주도금)이 낳은 아들. 일반적으로는 외조카를 뜻한다. 중고한어 기준으로 견훤의 성씨인 甄과 眞은 모두 tin으로 발음된다. [2] 다만 신하들과는 달리 왕건은 매우 당황하면서 펄쩍뛰는 모습을 보였다. [3] 위에도 언급되었듯 화친이 깨지면 손해보는 쪽은 견훤이었다. [4] 정확히는 왕신의 목을 베려고 했으나 왕신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자신의 사촌형님이자 군왕인 왕건에게 마지막 하직인사를 올리게 해달라 요청하여 허락받은 후 유언을 남기자마자 마차 수레바퀴에 스스로 머리를 부딪쳐 자살하자 견훤은 진호의 시신을 운반해온 고려인들에게 화친은 이제 깨졌다는 소식을 왕신의 시신과 함께 고려로 전하라고 하며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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