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FFB200><colcolor=#670000> 고려 의조의 손자
왕신 | 王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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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연대 미상 | ||
사망 | 926년 4월 (향년 미상) | ||
후백제 | |||
묘소 | 안화선원(安和禪院) | ||
재임기간 | 고려 원윤 | ||
925년 ~ 926년 4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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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B200><colcolor=#670000> 본관 | 개성 왕씨 | |
휘 | 신(信) | ||
조부모 |
조부
의조 조모 원창왕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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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 | 동생 왕육 | ||
직위 | 원윤(元尹) → 대광(大匡)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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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信
(877년 이후 ~ 926)
1. 개요
고려의 왕족. 태조 왕건의 사촌동생이며 왕식렴의 동복형제로 추정된다.2. 생애
918년 왕건의 역성혁명에 가담해 그 공으로 925년 원윤(元尹)에 오르나 같은 해 10월의 조물성 전투가 무승부로 끝나자 후백제왕 견훤의 조카 진호와 교환되어 후백제에 볼모로 갔다. 그러나 이듬해 4월, 진호가 고려에서 의문사하자 이것을 왕건의 음모로 간주한 견훤에 의해 살해당했다. 왕신의 시신은 이듬해에 돌아왔고 왕신의 동생 왕육(王育)이 시신을 맞이한다. 사후에 대광(大匡)으로 추증되고 안화선원(安和禪院)에 모셔졌다.3. 대중매체에서
- 2000년 KBS 드라마 < 태조 왕건>에서는 배우 김광영이 연기했다. 왕식렴과 같이 왕평달이 데리고 있던 자식으로 왕건의 가까운 친척이라 초반부터 나오며 나중에 조물성 전투 2차 때 휴전 협상 이후 후백제에서 인질로 온 진호가 장군(유금필, 박술희)들의 청을 받아들인 왕신을 아끼던 형인 왕식렴의 결단에 의해 독살당하여 시체로 돌아오자 훈겸에 의해 사인이 판명된 후 이에 노한 견훤이 왕신을 죽이려 하고 이때 "마지막으로 아국의 황제 폐하께 인사를 올릴 시간을 달라."며 절을 올리는데 절을 하며 마지막 인사까지 하고서 곧바로 혀를 깨물고 소 달구지에 머리를 박아 그대로 자결한다. 이에 견훤은 "과연 고려 왕의 아우답다. 미련을 남기지 않고 사내답게 죽었구나."라며 감탄하고는 고려에서 진호의 시신을 보내주었듯이 자신도 왕신의 시신을 돌려주며 화친은 깨졌다고 전하게 한다. 왕건은 크게 슬퍼하며 책임이 있던 왕식렴과 함께 “나라의 모두가 왕신을 죽인 책임이 있다”고 통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