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6a25, #009b3a 20%, #009b3a 80%, #006a25); color: #fedf00;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초대 | 제2대 | 제3대 | 제4대 |
데오도루 다 폰세카 | 플로리아누 페이쇼투 | 프루덴치 지 모라이스 | 캄푸스 살리스 | |
제5대 | 제6대 | 제7대 | 제8대 | |
호드리기스 아우베스 | 아폰수 페나 | 닐루 페사냐 | 에르메스 다 폰세카 | |
제9대 | 제10대 | 제11대 | 제12대 | |
벤세슬라우 브라스 | 데우핑 모레이라 | 에피타시우 페소아 | 아르투르 베르나르지스 | |
제13대 | 제14대 | 제15대 | 제16대 | |
와싱톤 루이스 | 제툴리우 바르가스 | 조제 리냐리스 | 에우리쿠 가스파 두트라 | |
제17대 | 제18대 | 제19대 | 제20대 | |
제툴리우 바르가스 | 카페 필류 | 카를루스 루스 | 네레우 하무스 | |
제21대 | 제22대 | 제23대 | 제24대 | |
주셀리누 쿠비체크 | 자니우 쿠아드루스 | 하니에리 마질리 | 주앙 굴라르 | |
제25대 | 제26대 | 제27대 | 제28대 | |
하니에리 마질리 | 카스텔루 브랑쿠 | 아르투르 다 코스타 이 시우바 | 에밀리우 가하스타주 메디시 | |
제29대 | 제30대 | 제31대 | 제32대 | |
에르네스투 가이제우 | 주앙 피게이레두 | 조제 사르네이 | 페르난두 콜로르 | |
제33대 | 제34대 | 제35대 | 제36대 | |
이타마르 프랑쿠 | 페르난두 카르도주 |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 지우마 호세프 | |
제37대 | 제38대 | 제39대 | ||
미셰우 테메르 | 자이르 보우소나루 |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 ||
추증 | ||||
페드루 알레이시우 · 탄크레두 네베스 | ||||
}}}}}}}}} |
|
|
<colbgcolor=#009B3A><colcolor=#FFD700> 출생 | 1918년 1월 15일 |
브라질 합중 공화국 리우데자네이루 | |
사망 | 1999년 12월 24일 (향년 81세) |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 |
재임기간 | 제30대 대통령 |
1979년 3월 15일 ~ 1985년 3월 14일 | |
경력 |
육군 장관 ,(1969~1974), 브라질 국가정보국 국장 ,(1974~1978), 브라질 제30대 대통령 ,(1979~1985), |
복무 | 브라질 육군 |
1935년 ~ 1979년 |
[clearfix]
1. 개요
브라질의 제 30대 대통령. 군사정권 시절의 마지막 대통령이다.2. 생애
포르투갈계 혈통으로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군인이 되는 것을 꿈꿔왔고 그리하여 군인이 되었다. 처음에는 군 사관학교에서나 활동하던 그저 평범한 군인이었으나(...) 1964년 군사정권이 들어선 후 정치인이 될 수 있는 길을 마련한다.1978년 당시 유일 합법여당이였던 국가개조연맹(ARENA)에 가입했고 이 당은 이듬해 브라질 사회민주당으로 개편되었다. 1979년 대통령 선거에 형식상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오랜 군사독재로 주민들의 반발은 극에 달했고 이미 전직인 에르네스투 가이제우 정권 때부터 민주화를 위한 작업이 서서히 진행 중이었다. 피게이레두는 이 때 민주화로 뛰어들었고 재야인사들의 정계 진입을 허락하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민주화라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1984년 대통령 선거에서 재야인사인 탄크레두 네베스가 당선되었다. 퇴임 후에는 고향으로 내려가 조용히 생활했고 1999년 향년 81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페르난두 카르도주 대통령 하에 국장이 치러졌다.
물론 여기까지만 보면 마냥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비록 당선되는 방식은 결함이 많았어도 민주화를 추구하였으니 더할 바 없이 좋긴 하다. 아무리 당선되는 방식이 좋았어도 나라를 말아먹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그런데 이렇게만 문서를 끝낼 거라면 이 문서를 서술할 이유 자체가 없다. 왜냐하면...
3. 독재
대한민국으로 치면 노태우 쯤은 되는 포지션. 다만 노태우는 제6공화국이라는 새로운 민주적 헌법 하에 일했던 대통령이었는데 반해 피게이레두는 철저한 기존의 군사정권 시대의 대통령이고 따라서 철저히 구 헌법을 따랐던 대통령이었다. 이해가 안 가면 노태우가 제5공화국의 대통령을 지냈다, 라고 생각하면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괜히 노태우 얘기를 꺼낸 이유는 사실 피게이레두가 민주화를 추구했다는 그 이면과는 달리 한쪽에서는 철권통치를 강행했다는 점이다. 물론 비교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전두환스러운 살벌한 이면도 피할 수 없다. 피노체트, 갈티에리 등 남미의 다른 군사정권과 각별하게 지내면서 콘도르 작전을 진두지휘 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처럼 브라질의 제4공화국도 철저한 반공 및 군사독재 체제였는데, 당연히 공산주의자는 그야말로 탄압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피게이레두가 민주화를 추구하면서 다른 야당은 다 풀려났는데 정작 공산당은 풀려나지 못했다.
그리고 애당초 '군인'이라는 신분 자체가 매우 거슬리지만 그가 민주화를 추구한 것도 사실은 그가 재야성향이라서가 아니라 주민들이 계속 반발하니깐 어쩔 수 없이 들어준 것이었다. 참고로 대선을 간선에서 직선으로 전환한 것도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한 위화감이 있고, 진정 본인이 추구했던 바는 아니었다. 애당초부터 대통령의 임기가 5년이었으니 1979년 이후로는 1984년에 치러야 맞는 것인데 이것을 1년 미뤄 1985년에 치렀다는 것은 아마도 내가 니네들 요구를 들어줄테니 대신 나는 1년 더 해먹겠다는 의도로 추측된다. 여하튼 연임불가로 이듬해에는 자신의 오른팔인 파울루 말루프를 내세웠지만, 결국 탄크레두 네베스에게 패했다.
그리고 그가 저지른 최악의 행동이 있었다. 그가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였고 다음 대선에서 여당이 패했으니 본인도 처벌을 받는 등 사회적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있었다. 당장 비슷한 케이스인 노태우가 퇴임 후 처벌을 받은 것을 생각해보자. 처음에는 정권 연장을 핑계로 대선도 1년 미룬 것도 모자라 야당의 대선 참여를 막으려는 시도까지도 했었는데 죄다 소용 없었다. 그러자 군사정권 시절의 기밀문서 상당수를 파기했고, 결국 본인은 처벌을 면하고 평화롭게 천수를 누리다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