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드위트 John DeWit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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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존 레슨 드위트 John Lesesne DeWitt |
출생 | 1880년 1월 9일 |
미국 네브래스카주 포트 시드니 | |
사망 | 1962년 6월 20일 (향년 82세) |
미국 워싱턴 D.C. 글로버파크 | |
복무 | 미합중국 육군 |
최종 계급 | 미국 육군 대장 |
복무 기간 | 1898~1947 |
학력 | 프린스턴 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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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네브래스카주 포트 시드니에서 준장까지 오르는 캘빈 드위트의 아들로 태어났고 프린스턴 대학교에 진학 중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으로 자퇴 후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이후 미국-필리핀 전쟁, 베라크루스 원정에도 참가했다.1차 대전 당시 무지개 사단으로 알려져있는 제42보병사단 사단본부 참모로 복무했다.[1] 전시 계급 대령까지 진급했으며 육군수훈장을 수여받았다. 전후 소령으로 환원되었다.
1920년 중령으로 진급했으며 참모, 군수에서 복무하다가 1930년 소장으로 진급해 1932년 뒤늦게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졸업장을 받았다. 1937년 야전으로 복귀해 필리핀 사단을 이끌었다. 1939년 중장으로 진급해 제4군사령관, 서부방위사령관이 되었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일본놈들은 일본놈들이다. 절대 서류따위로 바꿀 수 없으며 나는 그들을 원치 않는다."라고 발언하고 프랭클린 루스벨트대통령에게 일본계들을 모두 모아 수용소에 수감해야 한다고 말하고 루스벨트는 이 제안에 서명했다. 이 것이 백악관 행정명령 9066호이다.
이에 모든 일본계는 중서부 7개 주[2]에 있는 수용소에 갇혀야만 했다. 이후 알류샨 열도 전역에 참가했고 서부전선에서 참모직을 수행하다가 종전을 맞이했고 1947년 중장으로 제대했다. 1954년 예비역 대장이 되었고 1962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1]
당시
더글러스 맥아더,
윌리엄 J. 도너번이 있었다.
[2]
캘리포니아, 아칸소, 유타, 애리조나, 콜로라도, 아이다호, 와이오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