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6-06 14:26:26

조정(전진)

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fff> 1권 「전조록일(前趙錄一)」 2권 「전조록이(前趙錄二)」 3권 「전조록삼(前趙錄三)」 4권 「전조록사(前趙錄四)」
유연 · 유화 유총 유총 유총 · 유찬
<rowcolor=#fff> 5권 「전조록오(前趙錄五)」 6권 「전조록육(前趙錄六)」 7권 「전조록칠(前趙錄七)」 8권 「전조록팔(前趙錄八)」
유요 유요 유요 유선 · 유성 · 유익 · 유윤
<rowcolor=#fff> 9권 「전조록구(前趙錄九)」 10권 「전조록십(前趙錄十)」 11권 「후조록일(後趙錄一)」 12권 「후조록이(後趙錄二)」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석륵 석륵
<rowcolor=#fff> 13권 「후조록삼(後趙錄三)」 14권 「후조록사(後趙錄四)」 15권 「후조록오(後趙錄五)」 16권 「후조록육(後趙錄六)」
석륵 석홍 석호 석호
<rowcolor=#fff> 17권 「후조록칠(後趙錄七)」 18권 「후조록팔(後趙錄八)」 19권 「후조록구(後趙錄九)」 20권 「후조록십(後趙錄十)」
석호 석세 · 석준 · 석감(鑒) 석민 {{{#!folding [ 펼치기 · 접기 ]
<rowcolor=#fff> 21권 「후조록십일(後趙錄十一)」 22권 「후조록십이(後趙錄十二)」 23권 「전연록일(前燕錄一)」 24권 「전연록이(前燕錄二)」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모용외 모용황
<rowcolor=#fff> 25권 「전연록삼(前燕錄三)」 26권 「전연록사(前燕錄四)」 27권 「전연록오(前燕錄五)」 28권 「전연록육(前燕錄六)」
모용황 모용준 모용준 모용위
<rowcolor=#fff> 29권 -2l 「전연록칠(前燕錄七)」 30권 「전연록팔(前燕錄八)」 31권 「전연록구(前燕錄九)」 32권 「전연록십(前燕錄十)」
모용위 토욕혼· 모용한· 모용인· 모용각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rowcolor=#fff> 33권 「전진록일(前秦錄一)」 34권 「전진록이(前秦錄二)」 35권 「전진록삼(前秦錄三)」 36권 「전진록사(前秦錄四)」
부홍 부건 부생 부견
<rowcolor=#fff> 37권 「전진록오(前秦錄五)」 38권 「전진록육(前秦錄六)」 39권 「전진록칠(前秦錄七)」 40권 「전진록팔(前秦錄八)」
부견 부견 부비 부등
<rowcolor=#fff> 41권 「전진록구(前秦錄九)」 42권 「전진록십(前秦錄十)」 43권 「후연록일(後燕錄一)」 44권 「후연록이(後燕錄二)」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모용수 모용수
<rowcolor=#fff> 45권 「후연록삼(後燕錄三)」 46권 「후연록사(後燕錄四)」 47권 「후연록오(後燕錄五)」 48권 「후연록육(後燕錄六)」
모용수 모용보 모용성 모용희
<rowcolor=#fff> 49권 「후연록칠(後燕錄七)」 50권 「후연록팔(後燕錄八)」 51권 「후연록구(後燕錄九)」 52권 「후연록십(後燕錄十)」
모용운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rowcolor=#fff> 53권 「후진록일(後秦錄一)」 54권 「후진록이(後秦錄二)」 55권 「후진록삼(後秦錄三)」 56권 「후진록사(後秦錄四)」
요익중 요양 요장 요흥
<rowcolor=#fff> 57권 「후진록오(後秦錄五)」 58권 「후진록육(後秦錄六)」 59권 「후진록칠(後秦錄七)」 60권 「후진록팔(後秦錄八)」
요흥 요흥 요홍 {{{#!folding [ 펼치기 · 접기 ]
<rowcolor=#fff> 61권 「후진록구(後秦錄九)」 62권 「후진록십(後秦錄十)」 63권 「남연록일(南燕錄一)」 64권 「남연록이(南燕錄二)」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모용덕 모용초
<rowcolor=#fff> 65권 「남연록삼(南燕錄三)」 66권 「하록일(夏錄一)」 67권 「하록이(夏錄二)」 68권 「하록삼(夏錄三)」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혁련발발 혁련창 혁련정
<rowcolor=#fff> 69권 「하록사(夏錄四)」 70권 「전량록일(前涼錄一)」 71권 「전량록이(前涼錄二)」 72권 「전량록삼(前涼錄三)」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장궤 장실 장준
<rowcolor=#fff> 73권 「전량록사(前涼錄四)」 74권 「전량록오(前涼錄五)」 75권 「전량록육(前涼錄六)」 76권 「촉록일(蜀錄一)」
장중화 · 장령요 · 장조 장현정 · 장천석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이특
<rowcolor=#fff> 77권 「촉록이(蜀錄二)」 78권 「촉록삼(蜀錄三)」 79권 「촉록사(蜀錄四)」 80권 「촉록오(蜀錄五)」
이류 · 이웅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rowcolor=#fff> 81권 「후량록일(後涼錄一)」 82권 「후량록이(後涼錄二)」 83권 「후량록삼(後涼錄三)」 84권 「후량록사(後涼錄四)」
여광 여소 · 여찬 여륭 {{{#!folding [ 펼치기 · 접기 ]
<rowcolor=#fff> 85권 「서진록일(西秦錄一)」 86권 「서진록이(西秦錄二)」 87권 「서진록삼(西秦錄三)」 88권 「남량록일(南涼錄一)」
걸복국인 · 걸복건귀 걸복치반 · 걸복모말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rowcolor=#fff> 89권 「남량록이(南涼錄二)」 90권 「남량록삼(南涼錄三)」 91권 「서량록일(西涼錄一)」 92권 「서량록이(西涼錄二)」
독발녹단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이고 이흠
<rowcolor=#fff> 93권 「서량록삼(西涼錄三)」 94권 「북량록일(北涼錄一)」 95권 「북량록이(北涼錄二)」 96권 「북량록삼(北涼錄三)」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저거몽손 저거무건 {{{#!folding [ 펼치기 · 접기 ]
<rowcolor=#fff> 97권 「북량록사(北涼錄四)」 98권 「북연록일(北燕錄一)」 99권 「북연록이(北燕錄二)」 100권 「북연록삼(北燕錄三)」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풍발 풍홍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1. 개요2. 생애

1. 개요

趙整[1]
생몰연도 불명

전진의 인물. 자는 문업(文業). 진주(秦州) 약양군(略陽郡) 청수현(清水縣) 출신. [2]

2. 생애

18세가 되었을 때, 전진 조정에 임관하여 저작랑을 지내다가 황문시랑, 무위(武威) 태수, 비서시랑을 역임하였다. 조정은 환관이었으나, 아는 것이 많고 기억력이 좋았으며, 글재주도 있어서 상소를 올리거나 천왕 부견의 면전에서 간언한 것이 50여 차례나 되었다고 한다.

건원 5년(369년) 11월, 전연의 오왕 모용수가 당시 전연의 전권을 잡고있던 태부 모용평과 불화하여 전진으로 망명해오니, 천왕 부견이 그를 관군장군으로 삼았다. 그때 모용수는 부인 단씨(叚氏)와 아들을 데리고 전진으로 왔는데, 단씨를 본 천왕 부견은 그녀가 마음에 들어하며 총애하였다. 한번은 천왕 부견이 단씨를 불러 마차에 태우고 궁중 뒷뜰에서 함께 노니는 모습을 본 조정은
"참새가 제비집에 들어오는 것은 보지 못했으나, 단지 뜬구름이 대낮을 가리는 것만 보일 뿐이로다."
라 노래하였다. 천왕 부견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조정에게 즉시 사과한 뒤, 단씨에게 명하여 마차에서 내리게 하였다.

건원 10년(374년) 12월, 어떤 자가 황궁에 침입하여 명광전(明光殿)까지 들어와 크게 소리치기를
"갑신(甲申: 384년), 을유(乙酉: 385년)년에 양과 물고기가 사람을 잡아먹으니 슬프도다! 다시는 남는 것이 없겠구나!"
라 하였다. 천왕 부견은 당장 그 자를 체포하라 명했지만, 끝내 잡을 수 없었다. 이때 양(羊)과 물고기(魚)를 합치면 선비족(鮮)을 뜻하는 한자가 되었기에, 조정은 비서감 주융과 함께 전연이 멸망하면서 항복했던 선비족들을 모두 죽일 것을 진언하였으나, 천왕 부견이 따르지 않았다.

건원 14년(378년) 9월, 천왕 부견이 여러 신하들과 술을 마시면서 주융을 주정(酒正)으로 삼고, 사람들로 하여금 완전히 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라 명하였다. 그러자 조정이 즉석에서 《주덕가(酒德歌)》를 지어 불렀다.
地列酒泉天垂酒池
땅에 주천(酒泉)이 늘어서고, 하늘에 주지(酒池)가 드리우니,

杜康妙識儀狄先知。
두강(杜康)은 묘한 지식이 있었고, 의적(儀狄)은 이를 먼저 알았네.

紂喪殷邦桀傾夏國
주(紂) 은나라를 잃었고, 걸(桀) 하나라를 기울였으니,

由此言之前危後則。
이로부터 말하자면, 앞날의 위험은 후대에 교훈이 되리라.
이에 천왕 부견이 크게 기뻐하며 조정의 《주덕가(酒德歌)》를 주계(酒戒)로 삼았고, 매번 연회가 열릴 때면 예법에 따라서 세 잔만 마셨다.

건원 16년(380년) 7월, 전진이 세워진 이래로 저족의 여러 부족들이 번성하여 인구가 겉잡을 수 없이 늘어가자, 천왕 부견은 이들 500,000호를 나누어 삼원(三原), 구종(九嵕), 견(汧), 옹저(雍氐), 무도(武都)로 분산시키고, 여러 종친들을 보내 각기 다스리게 하였다. 장락공 부비가 저족 3,000여 호를 거느리고 업(鄴)으로 향하면서 파상(灞上)에 이르렀을 때, 졸지에 부모, 형제와 헤어져 이산가족 신세가 된 자들이 모두 슬피 울었다. 조정은 이를 듣고 훗날 연회에 참석하여 거문고를 타며 노래하였다.
阿得脂阿得脂
아득지, 아득지,[3]

博勞舊父是仇綏尾長翼短不能飛。
왜가리는 천적을 만나도 꼬리가 길고 날개가 짧아 날지 못하는구나.

遠徙種人留鮮卑一旦緩急語阿誰!
종족을 멀리 보내고 선비(鮮卑)를 남기면,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누구를 불러야 할까!
부견은 비록 그 뜻을 알고 미소를 지었으나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부견의 치세 말기에 선비족들을 더욱 총애하게 되어 정사를 게을리 하였다. 이에 조정은 다시 부견 앞에서 거문고를 타며 노래하였다.
"듣자하니 과거 맹진(孟津)의 강은 천리길을 굽이 흐르면서도 강물을 스스로 맑게 하였는데, 누가 이를 탁하게 어지럽히려 하는가!"
이를 들은 부견이 음악을 중단케 하고 물었다.
"이는 짐에게 하는 말인가?"
그러자 조정이 다시 노래를 이어갔다.
北園有一棗布葉垂重蔭。
북쪽 정원의 대추나무 한 그루, 천 같은 잎으로 어두운 그늘을 드리웠도다.

外雖饒棘刺內實有赤心!
바깥의 가시는 비록 두터우나, 안으로는 실로 정성된 마음이 있구나!
노래를 다 들은 부견이 웃으며 말했다.
"역시 조문업(趙文業)이로다."
조정이 말로 사람을 풍자하는 재치가 모두 이와 같았다. 이후 관중 일대에 불교가 융성해지자, 조정은 부견에게 출가하여 승려가 되기를 청했으나, 부견이 그를 아껴 불허하였다.

건원 21년(385년) 8월, 비수대전에서 패망한 부견이 후진 요장에게 피살당하니, 조정은 마침내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그리고 이름을 도정(道整)이라 고치고, 상락산(商洛山)에 은거하면서 경률(經律)을 연구하였다. 훗날 동진의 옹주자사 치회가 그 기풍을 흠모한 나머지 도정을 핍박해 동진으로 데려갔고, 도정은 이후로 양양(襄陽)에 거주하다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0세.


[1] 또는 정(正). [2] 또는 제음군(濟陰郡) 출신. [3] 아무 의미없는 단순한 여음구다. 린타오현 지방 방언인 "아드(阿得)"에서 파생된 표현이라는 주장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