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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07 12:25:41

제4대 대통령 선거

제4대 대선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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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제4대 대통령 선거 및 제5대 부통령 선거였으나 선거 중 부정으로 4.19 혁명을 촉발하였던 1960년 3월 15일의 선거에 대한 내용은 3.15 부정선거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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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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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 6월 15일 제3차 개헌으로 부통령직 폐지
** 2014년 7월 24일 헌법재판소가 국민투표법 제14조 제1항 내용 중 일부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으나 이후 법률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2016년 1월 1일자로 효력을 상실하여 시행 불가능
}}}}}}}}}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 선거
파일:4대윤보선.jpg
당선자 윤보선 대통령의 취임식
{{{#!wiki style="margin: -7px -12px" 1960년 3월 15일
4대 대선
5대 부선
1960년 8월 12일
4대 대선
1963년 10월 15일
5대 대선
}}}
투표율 98.48%[1] ▲ 1.47%p
선거 결과
후보 [[민주당(1955년)|
민주당
]]
윤보선
[[무소속|
무소속
]]
김창숙
득표율
79.09% 11.03%
득표수 208 29
대통령 당선인
파일:President_PSY.jpg
민주당
윤보선

1. 개요2. 결과

[clearfix]

1. 개요

파일:60윤보선당선_동아일보.png
대통령 당선 확정을 알리는 동아일보 기사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 취임식 영상
제53조

대통령은 양원합동회의에서 선거하고 재적국회의원 3분지 2이상의 투표를 얻어 당선된다.
1차투표에서 당선자가 없을 때에는 2차투표를 행하고 2차투표에서도 당선자가 없을 때에는 재적의원 3분지 2이상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투표를 얻은 자를 당선자로 한다.
대통령은 정당에 가입할 수 없으며 대통령직외에 공직 또는 사직에 취임하거나 영업에 종사할 수 없다.
대한민국헌법 제4호 제53조

3.15 부정선거에서 제4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승만이 당선을 포기해 제4대 대통령을 다시 선거해야 했는데, 6월 15일 허정 대통령 권한대행 제2공화국 헌법을 공포해 대통령 선거가 간접 선거로 바뀌어 3.15 때와 달리 제5대 국회의원 선거로 구성된 국회의 간접 투표로 제4대 대통령을 뽑게 되었다.

제2공화국 의원내각제를 선택하였으며, 이에 따라 대통령 선출은 국민직선제가 아닌 의회에 의한 간선제로 이루어졌다. 당시 상·하원이던 민·참의원 합동투표에 의해 치러졌으며, 3분의 2 이상의 득표자가 없을 경우, 다시 2차 투표를 진행하고, 2차 투표에서도 당선자가 나오지 않으면 양원 의원들 3분의 2 이상의 출석으로 과반을 득표한 자가 당선되는 방식의 선거였다.

후보 등록 절차 같은 건 없고 국회의원이 아무나 맘에 드는 사람 이름을 써내는 일명 교황 선출 방식이었다.[2] 당시 민주당은 당권을 잡고 있던 신파와 8월 4일 분당을 선언한 구파로 분열돼 있었는데, 구파는 국무총리 김도연, 대통령에 윤보선을 내세운 반면 신파는 국무총리로는 장면을 밀되 분당을 막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은 윤보선을 지지한다는 전략이었다. 신파에서도 윤보선을 지지한다는 소식에 구파는 윤보선 대신 김도연을 대통령으로 밀 것을 고려하고, 이 소식을 들은 신파 역시 윤보선 지지 철회를 고려하는 등 두 파벌 간에 웃지 못할 눈치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양원 의석의 절대 다수를 점하고 있던 민주당의 두 파벌이 결과적으로 모두 윤보선을 대통령으로 지지하면서 대통령 선거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선거 결과 윤보선이 압도적으로 당선되자 민주당 신파 및 중도파는 분당 무산을 기대했지만 구파는 얼마 뒤 신민당을 창당한다. 이때 윤보선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유의미한 득표를 한 것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김창숙 성균관대학교 초대 총장으로, 일부 무소속 민의원의원들이 '정국이 일당제로 흘러가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비민주당 후보가 필요하다'며 출마 선언을 한 적도 없는 김창숙을 지지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주목되는 무소속 결속... 29표 출현으로 기압권을 형성, 총리 인준에 새 협상 기도

2. 결과

당선되려면 재적 의원 263명(민의원의원 220명, 참의원의원 43명)의 2/3인 176표를 득표해야 했다.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 선거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당락
윤보선(尹潽善) 208 1위


79.09% 당선
김창숙(金昌淑) 29 2위


[[무소속(정치)|
무소속
]]
11.03% 낙선
백낙준(白樂濬) 3 3위


[[무소속(정치)|
무소속
]]
1.14% 낙선
변영태(卞榮泰) 3 3위


[[무소속(정치)|
무소속
]]
1.14% 낙선
김도연(金度演) 2 5위


0.76% 낙선
허정(許政) 2 5위


[[무소속(정치)|
무소속
]]
0.76% 낙선
김병로(金炳魯) 1 7위


[[무소속(정치)|
무소속
]]
0.38% 낙선
김시현(金始顯) 1 7위


[[무소속(정치)|
무소속
]]
0.38% 낙선
나용균(羅容均) 1 7위


0.38% 낙선
박순천(朴順天) 1 7위


0.38% 낙선
유옥우(劉沃祐) 1 7위


0.38% 낙선
이철승(李哲承) 1 7위


0.38% 낙선
선거인 수 263 투표율
98.48%
투표 수 259
무효표 수 6

[1] 국회에서의 간접선거. [2] 원래 국회에서 선거를 할 때는 보통 다 이런 식이다. 예를 들어 지금도 국회의장 선거를 할 때 분명히 출마하겠다고 한 적이 없는 사람이 표를 받곤 하는 것도 이런 이유. 국회의원 자신이 원하면 자기 엄마 이름을 써내도 유효표가 되는 이 시스템의 부작용은 당선자가 사실 그 직책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인데, 실제로 1951년 제2대 부통령 선거에서 김성수가 선출됐을 때도 인촌 본인이 거부해 수락을 설득시키는 데 고생해야 했다. 결국 인촌은 부통령직을 수락한 대신 자신을 각하로 부르지 말아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