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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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 문서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신기하거나 우습고 놀라운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있다. 대부분 인터넷 각지에서 돌던 것을 발췌하여 각 진영과 전선별로 분류하였다.이 중 일부는 실제 사실로 확인된 것도 있지만 상당수는 지어낸 이야기거나,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도시전설에 불과한 일화들도 있기 때문에, 사실이라고 직시된 일화를 제외하면 그냥 믿거나 말거나 정도로 보는 게 적절하다. 다만 이 에피소드들이 도시전설이 아닌 실제 있었던 전쟁사적 사료로 입증되어 사실로 확인된 경우, 정확한 출처가 되는 전투명과 함께 사료를 링크 바란다.
2. 서부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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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 생포
프랑스 전선. 독일 포로 생포를 맡은 프랑스군 병사가 재빠르게 독일 포로를 여럿 붙잡아 왔다. 프랑스군 장교가 이번에는 독일군 장교를 생포해 오라고 하자 다시 기어가서 혼자 있던 독일군 장교를 생포. 당황한 독일군 장교가 먹고 있던 빵을 주자 프랑스군 병사가 그 빵만 먹고 그냥 돌아오고 영창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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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보트와 미 해군 구축함의 주먹싸움
독일군 잠수함 U-66가 보급을 위해 해수면에 있을때 미군 초계기에 발견되었고 곧 버클리급 호위구축함 USS 버클리가 접근했지만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함장은 달빛의 반사를 이용해서 유보트를 발견, 곧 포격전이 벌어졌다. 하지만 유보트의 대공포 사수들은 전사했고 USS 버클리는 충각공격을 감행해 유보트에 걸쳐 올라갔고 유보트 승조원들이 버클리에 승선해서 주먹싸움이 벌어졌다.
그때 한 미군 수병이 수류탄을 유보트에 투척, 유보트는 침몰하고 유보트 승조원들은 포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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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속도
역시 프랑스 전선. 프랑스군 조종사가 전투 중 콕핏 안에 벌레 한 마리가 날아다니고 있어 손으로 그 벌레를 잡았는데, 손을 펴 보니 놀랍게도 그 벌레는 독일군의 기관총탄이었다. 우연의 일치로 독일 총알은 발사된 지 시간이 좀 지나 속도가 전투기 속도 엇비슷한 수준까지 떨어졌고, 때마침 총알과 평행으로 날고 있던 프랑스 조종사가 그 총알을 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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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차 오함마술
이것도 프랑스 전선. 독일군 1호 전차가 프랑스군의 호치키스 H35 전차를 마주쳤다. 하지만 기관총이 고작이었던 1호 전차로 호치키스[1]를 부술 수는 없었기에 독일 전차장은 망치 하나를 들고 전차에서 내려 호치키스에 올라타 조준경과 잠망경을 망치질로 부수려 하다 달리던 전차에서 추락해 목이 부러져 죽었다.
➜ 사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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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군 오폭
노르망디 폭격 도중 폭탄을 떨군 미군 폭격기가 바로 아래서 편대 비행하던 아군 폭격기를 맞혔고 아래쪽 폭격기는 그 자리에서 공중 폭발했다.
➜ 사실. 유럽 항공전 당시 미군 폭격기들은 추축국 전투기들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뭉쳐 다니는 경우가 많아서 저런 사고가 가끔 발생했다.[3]
위에서 투하한 폭탄이 꼬리날개를 부숴버린 사진 해당 기체는 Miss Donna Mae II라는 기체로 저 손상이 원인이 되어 추락했고 승무원 11명은 전부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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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부대 복불복
미군 공수부대가 네덜란드 전역에 낙하했다. 1개 소대는 독일군 병력 한가운데 낙하했고 또 다른 소대는 지뢰밭으로 낙하.
➜ 일부 사실. 네덜란드는 아니고 프랑스에서 벌어진
노르망디 상륙 작전 당시 발생한 사건이다. 미군
제82공수사단과
제101공수사단 병력 중 적지 않은 수가 저런 상황에 빠져서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임기응변으로 흩어진 병력들이 따로 뭉쳐서나마 용감히 싸운 덕에 독일군 교란과 상륙군의 교두보 확보에 한몫했다. 다만 네덜란드에 강하한
마켓 가든 작전의 경우 공수 자체는 순조롭게 진행했다. 그 다음에 낙하한 폴란드 공수부대는 문제였지만. 비슷한 경우로 같은 지점에 서로 다른 부대가 거의 같은 시간에 공수된 경우가 있었다. 먼저 독일군이 공수되고 바로 그 후 영국군이 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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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도 막지 못한 소개팅
2차 대전 초기 마을 하나를 두고 공방전을 벌이던 독일군과 영국군 장교가 단 둘이서 하나 밖에 없는 우물에서 마주쳤다. 독일군 장교가 잡혔으나 여동생을 소개시켜 준다는 조건으로 풀려났다. 그 후 2차 대전 끝나고 둘은 처남 매부 사이가 되었다.
➜
사실과 약간 다르다.
마켓 가든 작전 시기 있었던 일인데, 영국 제1공수사단 소속의 병사가 정찰중 비무장의 독일 장교를 발견하여 생포하였으나 장교는 풀어주면
여동생을 소개시켜 준다고 했다.
병사는 제안을 승낙, 전후 독일 퓌센에서 실제로 만났고 장교의 여동생과 2년간 열애 후, 1947년에 결혼한다. 1952, 1955년에 두 딸을, 1959년에 막내아들을 낳았고 현재도 영국 웨일스의 카디건 지방에서 잘 살고 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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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린탄에 격파된
티거 2
제 507 중전차대대 3중대의 티거 2 10대가 미군 기갑부대와 지근거리에서 조우해 괴멸적인 피해(셔먼 17대, 하프트랙 17대, 3대의 트럭, 1대의 M36 GMC 등)를 입힌 사례가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게 뭐가 특이한가 싶지만 특이한 점은 이 전투에서 3대의 티거 2 완전 손실이 보고 되어 있는 점이다. 그것도 그중 2대는 76mm 셔먼도, 보병의 바주카도 아닌 초기형 포인 75mm 셔먼이 백린탄으로 격파했다고 한다!
➜ 사실. 미군 기갑부대가 언덕 위와 숲 방향에서 갑툭튀한 티거 2들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와중에 75mm형 셔먼 한 대가 숲 방향에서 나타난 티거 2 3대를 향해 돌진을 감행하여 지근거리에서 백린탄으로 사격을 가해 발생한 연기와 화염으로 티거 2의 전차병들이 자신의 전차에 포탄 피격에 의한
화재가 발생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전차를 버리고 탈출하게 만들었다. 그것도 연달아 두 대나. 이 용감한 셔먼은 결국 다른 한대의 티거 2에게 격파당했지만 76mm도 아닌 75mm로 도저히 상대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는 강력한 중전차를 상대하며 승무원의 기지만으로 상대를 전투불능으로 만들어버린 뜻깊은 사례. 해당 티거 2들이 소속된 제 507 중전차대대 3중대의 기록에선 해당 전투에서 티거 2 세 대의 완전 손실(이중 한대는 다른 셔먼들이 티거 2에게 두들겨맞는 동안 농가에 숨어들어 측면을 노리고 매복 공격을 가한 76mm 셔먼의 전과로 확인됨)이 보고되어 있어 백린탄에 의한 티거 2 격파는 사실로 인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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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막왕
야크트티거
종전 직전(또는 아르덴 대공세), 독일 영내를 진군하던 어느 미군부대가 버려진 채 길을 떡하니 막고 있는 야크트티거 하나를 발견했다. 버려진 물건이라서 그다지 큰 위험요소는 아니었기에, 미군은 이 녀석을 공병대를 불러 치우도록 했다. 그러나 워낙 덩치 크고 무거운 녀석이라 근처에 있는 불도저를 비롯해 미군이 가진 각종 차량으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에 결국 차체 밑에 폭약을 잔뜩 밀어넣고 날려 버리려 했으나, 그것조차도 구덩이만 더 파일 뿐 소용이 없었다. 결국 2주 후, 미군 부대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찾아냈는데, 바로 새 길을 만들어 우회하는 것이었다. 톱과 다이너마이트, 불도저로 우회로를 만드는 데는 30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문제의 괴물은 2년 후 완전히 해체하고 나서야 그 자리에서 치울 수 있었다 한다.
➜ 진위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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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순양함을 오사한 수송선
여객선을 개조한 영국의 수송선 RMS 퀸 메리가 항해 도중 대공 경순양함 큐라소의 호위를 받는다. 근데 서로 기동이 엉켜서 결국 큐라소가 보이지 않자 퀸 메리는 계속 운항하였는데 얼마후 뿌지직 소리가 나면서 경순양함 큐라소가 두 동강 났다. 이 사고로 큐라소는 침몰해서 239명이 사망했지만 퀸 메리의 피해는 함수가 약간 손상된 수준이었다.
➜ 사실.
큐라소호 침몰 사고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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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최후의 공성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리(Lee)대위가 이끄는 미군, 강글 소령이 이끄는 독일 국방군, 그리고 성에서 휴양 중에 있던 무장친위대 장교였던 시라델이 이끄는 이터성의 프랑스 고위 포로들이 성을 지키던 무장친위대를 상대로 전투를 벌인 적이 있다.
➜ 사실. 상세는
이터 성 전투 항목 참조.
- B-17을 살려준 독일군 조종사
➜ 사실.
프란츠 슈티글러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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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가 종전을 돕다
영국이 암호학자(cryptogramist)를 징집하는 와중에 얼떨결에 함께 징집되어 끌려간 영국 자연사박물관의 어느 식물학자(cryptogamist). 늘 랩에서 해조류 생태만 연구하던 과학자에게 뜬금없이 전선의 암호 해독을 맡긴 꼴이 된 병맛스러운 상황이었지만, 기적적인 일이 벌어졌다. 전쟁 중에 침몰시킨 독일 U보트 잔해에서 암호 해독 문서가 발견되었는데, 바닷물에 쩔어 있어서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과학자가 원래 하던 일이 바로 손상된 해조류를 바다에서 건져낸 뒤 원상복구하는 것이었고, 그는 암호 해독 방법이 적힌 종이를 해조류처럼 말리고 복원해서 읽을 수 있게 만들었다! 이 방법으로 연합군은 암호 해독 문서를 고스란히 살려내서 나치 독일의 전략을 전부 파악하고 대처했으며, 결과적으로 종전 시점을 크게 앞당기는 데 공헌했다고.
➜ 일부 사실. 영국 자연사 박물관 홈페이지에도
한때 게시되었던 내용으로[5] 이 거짓말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은 조프리 탠디(Geoffrey Tandy)이다.
#관련문서1
#관련문서2 한편 그가 징집되던 해는
1939년으로 알려졌는데, 자연사박물관 홈페이지에서도 실제로 해조류 연구실이 1939년에 없어졌던 기록이 확인된다고 한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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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지뢰 역할한 어떤 의미에서의 지뢰
프랑스 지역에서 연합군의 공격으로 퇴각하는 독일군을 추격하던 연합군 병사가 독일군이 머물렀던 참호 안의 독일군이 싸놓은 똥을 밟고 넘어져 뒤통수가 깨졌다. 그 후 치료받고 제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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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타의 위엄 (서부전선편)
1944년 노르망디에서 독일군의 쾨니히스티거 세 대가 미군의 셔먼 전차 1개 대대와 맞붙어 적 전차 예순두 대 중 마흔세 대를 격파하고 퇴각했는데 이들 티거의 피해는 헤드라이트 두 개가 깨진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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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괴 발견
2차대전 말기 1945년 1월, 미군 제1 보병사단의 수색대는 독일 본토의 어느 은행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는데 뒤이어 들이닥친 독일군 기갑부대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단 57명만이 은행으로 돌아가서 방어준비를 하던중 어떤 병사가 잘못 터트린 수류탄에 금고 문이 열리면서 안에 있던 금괴가 드러났다.
미군 수색대장은 독일군 기갑부대의 6호 전차 티거에 백기를 들고가서 우여곡절을 말하고 금괴 두덩어리와 티거 전차를 맞바꿨다. 뒤이어 전차를 포획한 수색대는 금괴를 들고 희희낙낙 하던 독일군들의 뒷통수에 포탄과 기관총탄을 쏴서 박살을 냈으나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금괴는 멀쩡했다.
➜ 거짓.
켈리의 영웅들이란 유명한 전쟁영화의 내용을 각색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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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샷 투킬
프랑스 레지스탕스인 한 남자가 박격포로 허공에 심심해서 발사했는데 비행하려던 전투기를 명중시키고 그 전투기가 추락하던 중 막 이륙하려던 폭격기와 부딪혀서 폭격기도 파괴되었다.
➜ 당연히 거짓.
박격포 항목에도 나와있듯 박격포의 체공 고도는 생각만큼 높지 않다. 더구나 아래에서 날던
폭격기와 부딪쳤다는 걸 봐선 폭격 고도에서 날고 있었다는 뜻인데... 박격포가 거기까지 날아갈리가 없지 않은가(...) 근데 글에서는 비행하려던이라는 것으로 보아 활주로에다가 쏜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폭격기는 아마 활주로 옆에 대기중인 것이니 가능은 하다.
다른 것보다도, 군인이 그것도 모든 물자가 부족한 레지스탕스가 중요한 전략물자인 박격포를 그저 심심해서 발사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되지 않는다. 레지스탕스가 아니라 일반 군인이라도 그딴짓 하면 징계받는다. 심지어 전시에![7]
다른 것보다도, 군인이 그것도 모든 물자가 부족한 레지스탕스가 중요한 전략물자인 박격포를 그저 심심해서 발사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되지 않는다. 레지스탕스가 아니라 일반 군인이라도 그딴짓 하면 징계받는다. 심지어 전시에![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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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덴에서의
크리스마스 휴전
아르덴 대공세 당시 벨기에와 독일의 국경 근처에서 부상당한 미군 두 명이 우연히 오두막을 발견하고 그 집 주인에게 부탁하여 머무르게 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역시 부상당한 독일군 네 명이 우연히 이 오두막을 발견했다. 그래서 잠시 머물려고 했는데, 서로를 보는 순간 총을 겨누자 집주인이 말하길, "이보세요.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에요. 모두 내 아들 같은 사람들인데, 지금 여기서 총을 쏘면 하느님이 과연 좋게 생각할까요? 게다가 양쪽 모두 크게 다쳤잖아요?"라고 말했고 양쪽 군인 모두 눈물을 흘리며 총을 내려 놓았고 그들은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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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이여, 다윗의 별을 달아라!
나치 독일이 홀로코스트를 시행할 당시 덴마크의 국왕 크리스티안 10세가 고민하던 중, 덴마크 국민들에게 전부 다윗의 별을 달라고 명령한다. 다음날, 기가 막힌 독일 대사가 따지자 본인도 다윗의 별을 단 국왕은 "우리 덴마크 국민의 절대 다수가 유대인 혈통이 섞여 있다오."라고 자신만만하게 웃어보였다.
➜ 거짓. 크리스티안 10세가 반나치 성향으로 덴마크 내 유대인들을 적극적으로 숨겨주고 나치의 손이 닿지 않은 다른 나라로 피신시키도록 지원한 일화 자체는 명백한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위의 미담과 정반대로 유대인들이 다윗의 별을 달지 않아도 되게끔 해주었다. 하지만 이 미담은 널리 퍼져서
미국에서 동화로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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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전에 졸전에 졸전을 더해서
2차 세계대전 동안 이탈리아군은 용감히 싸운 부대도 없지 않았지만, 에티오피아 침공부터 종전 때까지 우습고도 어이없는 실수를 세트로 저지르고 다녔다.
➜ 사실도 있고 거짓도 있으며, 진위 불명인 일화도 상당하다.
이탈리아군의 졸전 기록/일화 문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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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가성비
또 이탈리아 전선. 미군 모 포병대가 독일군에게 포화를 쏟아붓던 와중 임무 교대를 위해 잠시 쉬던 포병들은 잡담을 하다 심심한 나머지 봉급, 포탄 가격, 대포 가격 등 자신들과 대포가 여기까지 오는 데 든 돈을 모두 더한 후 독일군 한 명을 죽이는 데 얼마나 들지 대충 어림잡은 독일측 병력 수로 총액을 나누는 식으로 계산을 했다. 그 결과 포격으로 독일군을 전멸시키더라도 한 명당 25,000달러, 현재 원화로 4억 원 정도의 거금이 들어간다는 결과가 나왔다. 미국 시골 출신인 젊은 병사들로서는 평생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금 앞에 모두 벙쩌 있는 가운데 한 병사가 진지하게 말하길 "장담컨대 산 위에 있는 제리들한테 그 돈을 나누어 주고 집에 가라 하면 놈들도 납득 안 하고 못 배긴다."
➜ 진위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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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전선의 중세인
한 영국군 장교는 2차대전 내내 총과 폭탄 대신 검을 들고 싸웠고, 종전 때까지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검으로 적을 여럿 사살하는 전적까지 세웠고, 2차 대전에서 유일하게 활과 화살로 적을 사살한 기록도 세웠다.
➜ 사실.
잭 처칠이라는 사람의 이야기이며, 교차 검증도 되어 있다. 전쟁 후반부에는 태평양으로 배속되었는데, 이때 일본군과 싸울 수 있길 고대한 이유가 무려
칼 대 칼로 싸울 수 있는 상대를
마주할 수 있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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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킬러
독일 서부 민간인 집에 있던 연합군 2명이 독일의 슈츠슈타펠 특전 여자 부대(10명)을 전멸시켰다. 한 연합군 병사가 벌거벗고 있던 중, SS 대원들이 들이닥침. SS 여자 대원이 놀라서 있던 중 밖에 있던 다른 연합군 병사가 SS 대원들을 모두 사살했다.
➜ 거짓. 나치당은 여성에게 건강한 게르만인을 양육하는 어머니의 의무를 강조했기에 여성의 군입대를 허락하지 않았다. 물론 전쟁말기에 국민 돌격대로 입대하게된 여성들도 있었지만 정예부대였던 SS에 입대할 수 없었으며 비서나 전화교환수 등 비전투 사무직
군무원으로만 채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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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링,
폭탄 받아라!
1940년 영국 본토 항공전, 독일군 폭격기를 상대로 공중전을 치르던 두 대의 RAF 숄트 스털링 폭격기[8][9]는 총알이 다 떨어지자 기체 뒷쪽에 그물이 있는 것을 발견했고 독일군 폭격기 밑으로 가서 떨어지는 폭탄을 모두 그물에 받아서 활주로에 착륙했고, 며칠뒤 그 두대의 스털링 폭격기는 전날 주워 모은 폭탄을 가득 싣고 모두 베를린에 떨어뜨렸다.
3. 동부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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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찰 무승부
소련과 독일이 전선에서 교전 중 당시 독일이 소련군의 눈을 피하면서 게릴라전을 하기 위해서 독일 군복이 아닌 소련인의 복장을 했다. 문제는 그 때 소련군도 독일군과 똑같은 생각으로 소련 군복이 아닌 독일인의 복장을 한 것. 그러면서 두 진영의 군대가 서로를 보았지만 자국의 사람으로 착각하고 서로가 지나쳤다.
➜ 반쯤 사실.
헤르베르트 브루네거 참고.[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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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우라돌격
참고로 이긴 쪽이 독일군이고 진 쪽이 소련군이다. 당시 저자가 속해 있던 부대는 일부만 남아 있었는데 당시 소대장이었던 그뤼테 SS소위가 병사들에게 아무거나 쥐어 주면서 돌격시켰다. 갑작스런 공격에 당황한 소련군은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고 패주했다. 참고로 이 공격을 이끈 그뤼테 소위는 식물학자이자 대학교수로 나중에 하리코프에서 전사했다.
➜ 사실. 위 인물의 회고록인 '폭풍 속의 씨앗'에서 언급된 실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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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34의 활약
티거 1이 아직도 위용을 떨치던 1944년 여름, 티거 2가 데뷔전을 하러 나타났으나...매복해 있던 전차 중대의 T-34-85 1대가 3대의 티거 2를 그 자리에서 격파했다. 대 굴욕의 데뷔전.
➜ 사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1944년 8월, 독일 국방군 제501중전차대대는 비스와 강을 도하하는 소련군의 교두보를 분쇄하기 위해 교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이때 벌어진 일이다. 맹수사냥꾼의 이름은
알렉산드르 오스킨으로, 이 공로로
소비에트 연방 영웅 칭호를 받았다. 게임
월드 오브 탱크의 업적에 그의 이름을 딴 훈장이 있다. 그 외에 위키피디아
티거2 문서에서 combat history 항목 참조.[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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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의 대공무기 열전
당시 소련군 일부 부대에선 적기 출현 시 대공화기만이 아니라 소총이나 기관단총, 권총 등을 하늘을 향해 쏘기도 하는데, 여기서 끝나면 소련군이 아니지. 대전차소총은 물론 전차도 대공사격에 써먹었다.
➜ 거의 사실. 실제 당시 소련군 전차병들은 적기 출현 시 주포나 동축 기관총, 포방패 기관총도 동원해서 사격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제대로 된 대공포에 비하면 효율은 꽝. 어디까지나 대공포가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써먹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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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킬
동부전선 독일군 저격수가 자리 확보를 위해 밖으로 던진 돌덩이에 전방으로 정찰 나온 소련의 소령급 장교가 사망했다. 저격수 1계급 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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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폴란드 침공 당시 독일 국방군은 적의 매복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눈이 안보이는 시각장애인에게 군복을 입히고 매복에 의심되는 지역으로 보냈다. 의심대로 폴란드군의 매복이 있었고 그 시각장애인에게 탄환이 무자비로 쏟아졌다. 그러나 탄환은 다 빗나가고 시각장애인은 당당히 지팡이를 짚으면서 돌아왔다.
➜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폴란드 침공 기간 동안 독일군이 폴란드 민간인을 고기방패로 삼은 적은 상당히 많다.[12] 하지만 만일 저 정도로 쏘면 실제로 그 시각 장애인은 살아남지 못했을 게 뻔하다. 폴란드 대전차 기병돌격설처럼 이 일화도 독일군이 폴란드군을 제대로 전쟁준비도 안하고 훈련도 안된
당나라 군대처럼 선전하려고 지어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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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로 인한 분대 전멸
당시 독일군 6호 전차 티거 1대와 판처슈렉 보병 3명으로 소련군 보병대를 제압하던 중 독일군 대전차 보병이 판져슈렉을 반대로 들고 쏴서 1대 남았던 독일군 티거 전차를 파괴했다. 독일군은 전멸.
➜ 거의 거짓.
티거 2 항목에 나와있는 내용이 와전되었을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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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겐트 소년의 대박 엉덩방아
1945년 5월 패전 직전 독일에서 한 히틀러 유겐트 소년병이 소련 전차가 쏜 포탄에 숨어 있던 건물이 무너지면서 그 아래로 떨어졌으나 때마침 지나가던 소련군 지프 위에 떨어져 '소년은 살고 그 지프에 타고 있던 소련군 사단장이 목뼈가 부러저 즉사했다.
➜ 거짓. 이런 기록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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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타의 위엄 (동부전선편)
1945년에 헝가리 어느 마을에선 쾨니히스티거 달랑 2대가 T-34와 IS-2를 합쳐 전차 40여대를 파괴.
➜ 사실. 다만 정확히 어느 전투에서 이런 일이 있었는지 명시하기는 어려운데, 비슷한 사례가 너무 많아서 이것만으로는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
티거 2의 성능과 물량 면에서 현격한 열세를 보인 독일군의 현실을 동시에 알 수 있는 에피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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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붙이라우!
독일군이 지리적 요점을 잡기 위해서 높은 산을 차지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소련군은 미리 산 정상부분에 탱크, 대공포, 보병지원차량을 닥치고 있는대로 정상 부분에 꽉꽉 배치를 시작하였으나, 독일군들은 그걸 모르고 엄청나게 물밀듯이 밀려오고 소련군은 올라오는 독일군을 향해 탱크를 산 아래로 무조건 전진시켰다. 독일군들 대부분이 깔려 죽어서 전멸했다. 어이없는 건 당시 소련군은 탄환을 준비하지도 않은 채 그냥 돌격시켰다.
➜ 완벽한 거짓. 소련군과 독일군 기록 어디에서도 이런 내용이 없다.
-
오마니 로씨야 동무들의
장판파
소련군의 한 부대가 독일군에게 포위당하자 사령부는 즉각 퇴각을 명하고 그 부대는 퇴각을 하는데 갑자기 병사 일곱 명이 미친 듯 독일 진영으로 달려갔다. 갑작스런 상황이라 소련군은 어이없어하였고 독일군은 멍하니 바라보고 일곱 병사는 총을 들고 닥치는 대로 돌격하기 시작했다. 독일군의 부대는 혼란에 빠지기 시작하였고 일곱 병사는 자신의 총이 망가지거나 탄환이 다 떨어져도 주변에 있는 독일군의 총을 노획하며 무조건 전진했다. 닥치는 대로 다 죽이자 독일군은 겁을 먹어서 후퇴했고 이 사건으로 독일군 500명이 전사하고 200명이 부상당했으며 소련 병사 일곱 중 네 명이 약간의 부상을 입었을 뿐 소련 측은 무사히 퇴각했다.
➜ 일곱 병사의 일화 자체는 사실이되 전과는 매우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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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차 도끼
독소전 초기, 소련군 취사병 하나가 전우들을 기다리며 혼자서 야전 취사장에서 식사를 준비하다 독일군 경전차가 지나가자 몸을 숨겼다. 전차병들이 상황 파악을 위해 취사장 앞에서 내리자마자 취사병은 도끼를 들고 고함을 지르며 달려나왔고, 놀란 독일 전차병들은 전차 안으로 숨었지만 취사병은 도끼로 전차를 두드리고 실제로는 없는 동료에게 '수류탄으로 땅크를 까부수라우!' 하고 소리치는 등 계속 고함을 질러 겁에 질린 전차병들을 포로로 잡았다.
➜ 사실. 실제 우크라이나 출신 조리병인
이반 파블로비치 세레다가 겪은 일이다. 그리고 세레다는 조리병에서 정찰병으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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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전차 티거
소련 공군의 Il-2가 언제나 같은 시간, 같은 고도, 같은 방향에서 매일 날아오는 것을 지켜보던 독일의 티거 전차장이 다음날 적당한 지점에 매복했다. 얼마 뒤 Il-2가 또 어제처럼 지나가자 전차포를 발사, 결국 Il-2를 격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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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배끼리 박지 맙시다.
아드미랄 히퍼급 중순양함 프린츠 오이겐이 항해 도중 경순양함 라이프치히에 충돌했다. 덕분에 프린츠 오이겐은 함수가 날아가 버렸고 꼼짝 못하게 된 두 척의 함선은 다른 배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얼마후 프린츠 오이겐은 수리받았지만 라이프치히는 항구에 계류되어 항구로 몰려오는 소련군을 향해 끝까지 발악했다.
➜ 사실. 실제로 있었던 일로, 1944년 10월 15일에 충돌 사고가 발생해 라이프치히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류 신세가 되었고 라이프치히는 종전 후 연합군에게 인계되다가 폭발 사고로 침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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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내가 알던 나치가 아니네?
독소전에서 어느 소련군 장교가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혔다. 죽음을 직감한 그 장교 앞에 독일군 장교가 웃으면서 그 포로의 밧줄을 풀어주었다. 어안이 벙벙해하는 그 포로는 그 장교에게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난 살인자가 아니요. 난 그저.... 군인일 뿐이죠."[13]
➜ 사실. 실제로
하인츠 드로셀이라는 장교의 실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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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망치질
스탈린그라드 전투 중, 한 루마니아군 장교가 죽기살기로 소련군 T-34에 올라타 망치질을 했더니 전차병들이 망치 소리를 듣고 전차가 대전차포 사격을 받고 있다고 착각하고 후퇴하였다.
➜ 진위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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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코프의 창고털이
1943년 8월 20일 오전, 약 200대 가량의 T-34를 이끌고 소련군 제5근위전차군과 티거, 4호 전차를 주축으로 이룬 독일 기갑사단이 부딪쳤다. 이 전투는 며칠간 이루어졌는데 창고는 하리코프 서북쪽 25k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이 창고엔 독일군이 관리하는 (프랑스서 가져온) 와인, 브랜디, 담배 등과 도시 하나를 반 년은 먹고 살릴 수 있는 식료품이 있었다. 소련군은 밀어닥치고 있고 시간은 없고 해서 독일 제3기갑군단 병참부장은 "가져가 주세요" 라고 주변 사단에 연락을 하였다. 그 후 비록 수송트럭은 없었지만 각 사단에서 수송트럭을 잔뜩 보내와서 창고를 단 하루만에 싹쓸이 해버렸다. 이후 소련군이 이 창고를 접수했을 때 독일군이 가져가지 않은 보드카 때문에 진격은 3일간 늦춰져야 했다.
➜ 거의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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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샷
1941년 소련에서는 독일 병사 두 명이 T-34를 보고 더 이상 공격할 무기가 없자 절망적인 심정으로 권총을 쐈는데 그게 소련군 전차에 달려 있던 기관총의 총구로 들어가 기관총이 폭발, 뒤이어 연료탱크에 불이 붙어 내부 유폭으로 전차 격파되었다.
4. 태평양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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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는 눈, 돌격에는 돌격
일본군이 미군과 싸울 때 미군은 당연히 승세로 보아하나 자신들이 이길 거라고 생각하였으나 갑자기 일본군이 총을 버리고 칼이나 죽창을 들고 돌격을 시전하였다. 미군은 당연히 황당해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군 역시 M1 개런드와 화염방사기를 들고 돌격했다.
➜ 사실. 일본군의 비상식적인 반자이 돌격과, 미군 역시 필요할 때는 (반자이 돌격과는 다른 정상적인 의미의)보병 돌격을 실시한 예를 결합한 이야기이다. 몸싸움으로 붙게 되어도 체격이 큰데다 정신력까지 우수한 미군 앞에서 일본군은
버틸 수가 없었다.
존 바실론의 경우도 혼자서 중화기를 들고 무쌍을 벌인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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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함 럭키샷 - 연합군편
미군이 태평양에 있는 일본군을 칠 때 폭격기 파일럿 한 명이 실수로 폭탄을 오발시켰다. 문제는 그 오발된 폭탄이 전부 일본의 전함에 적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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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번 5형제 이야기
항목 참조. 유명한 전쟁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원작이 된 일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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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달카날 전투의 연합군 팀킬
과달카날 전투시 경순양함 애틀랜타는 운좋게 히에이에 접근하여 6인치 포탄을 날리고 있었다. 애틀랜타 역시 집중 다굴을 당하고 있었지만 그럭저럭 건재했다. 전함 히에이 역시 꽤 큰 피해를 입고 있었는데 갑자기 등장한 기함 샌프란시스코가 애틀랜타를 향해 두번의 8인치 주포를 일제 사격, 팀킬하여 결국 애틀랜타는 침몰.
➜ 사실과 약간 다르다. 샌프란시스코가 애틀랜타의 상부 구조물을 박살낸 건 사실이고, 그 결과로 애틀란타에서 지휘를 하던 스코트 제독 및 애틀란타의 지휘부를 박살내버렸다(팀킬로 확인사살). 허나 애틀랜타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입힌 것은 일본 구축함 아카츠키의
산소어뢰였다. 그리고 히에이는 샌프란시스코의 포격과 폭격대의 공격에 큰 피해를 입어서 복구 불능 판정을 받고 전원 퇴함. 이후 가라앉았다.(히에이가 가라앉는 모습은 미군과 일본군 어느 쪽에도 목격되지 않았다.)[15] 마지막으로
애틀랜타급 경순양함의 주포는 5인치 양용포다. 6인치 함포는 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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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씨, 옆에 있는 당신 물 좀 쓸게요.
역시 과달카날 전투의 이야기로 어떤 구축함 한 척이 함수에 어뢰를 맞는다. 구축함에게 어뢰는 치명적이었고 대화재가 함수 부분을 뒤덮었다. 그때 구축함의 함장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고 옆에서 항해 중이던 전함 사우스다코타에 접근하여 물을 뒤집어쓰고 불을 진화하였다고 한다.
➜ 사실과 약간 다르다. 정확히는 해당 구축함 USS 스미스는 일본기의 자폭 공격에 얻어맞고 불이 났는데, 불 덕분에 근처를 지나던 어뢰가 유폭해 막장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그 이후 물을 뒤집어써 불을 진화했다는 것은 사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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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다가 철분 심어주기
또 과달카날 전투. 미국의 고속전함들은 지상 포격 지원 임무를 받았는데 포술장교들은 함대전에는 익숙했지만 지상포격에 대해서는 꽤 당황해했다. 결국 수많은 16인치 철갑탄을 지상에다 쏘는 삽질을 하였고 흙 좀 패이고 마는 수준이라서 수병들은 "땅에다가 철분을 심어준다" 라고 비아냥거렸다. 결국 구식 석탄 전함들이 바톤을 이어받고 지상포격임무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 사실과 약간 다르다. 실제로 일어난 건
사이판 전투 때의 일이다. 상륙함대가 도착하기 전에 먼저 도착한 항모 기동부대 소속 고속전함들이 사이판, 티니안의 지상시설에 포격을 가했지만, 상술한 바와 같은 이유로 실질적인 전과는 거두지 못했다. 결국, 다음 날 상륙함대와 함께 도착한 구형 전함들이 제대로 된 포격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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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잠
감자
1943년 일본군 잠수함 로34를 발견한 미 해군 플레처급 구축함 USS 오베넌이 곧장 들이받으려 했으나 기뢰부설중일지도 모른다는 판명 아래 선회하였고 이 기회를 노려 일본 잠수함에서 포를 쏘려 승조원들이 갑판으로 나왔다. 다급해진 미군들은 근처에 있던 감자를 꺼내 일본군에게 던졌는데… 문제는 일본군이 감자를 수류탄으로 착각해 배 밖으로 버리느라 포를 운용하지 못했고 결국 그동안 제대로 전투 준비를 마친 오베넌 함에 의해 잠수함은 격파되었다.
➜ 거짓.
USS 오베넌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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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사진
미군이 필리핀 전투 당시 어느 병사가 어머니 사진이 담긴 윗옷을 떨구고 만다. 당황한 병사는 물에 뛰어들어 그 윗옷을 건져 냈다. 그러자 상관이 "자네는 왜 내 말을 어기고 바다에 뛰어들어갔는가?"라고 질책하자 어머니의 사진을 꺼내며 "어머니의 사진이 들어있었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상관은 눈물을 흘리며 병사를 안아 주었다.
➜ 진위 불명. 다만 이런 일은 흔했을지도 모른다.
미국-스페인 전쟁이나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이야기 내용은 똑같은 바리에이션이 많으며, 심지어는 상관이
더글러스 맥아더인 버전, 사진을 떨어뜨린 병사가 사관생도 시절의
체스터 니미츠인 버전도 있을 정도이다![17] 80년대 초등학생 대상 교훈집이나 교회 설교 등에서 많이 인용되었다.
TV동화 행복한 세상에서도 각색하여 방영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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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도 포를 못 쏘고 유폭으로 침몰한 전함 무츠의 최후 - 해당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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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가미급 중순양함의 팀킬 전설
태평양전쟁 극초반부인 바타비아 만 해전[18] 중에 미군 중순양함 USS 휴스턴(CL/CA-30)을 격침하는 등 쏠쏠한 활약을 올렸다. 다만 휴스턴을 향해 발사한 모가미의 산소어뢰가 그대로 휴스턴을 지나쳐, 그 뒤에 있던 육군 소속 양륙함 신슈마루(神州丸)에 명중하고 말았다. 신슈마루 한 척에만 맞춘 거라면 모를까, 신슈마루를 뒤따르던 수송선 두 척과 병원선 한 척, 소해정 한 척도 어뢰를 맞아 큰 대미지를 받았다. 더구나, 신슈마루에는 상륙전을 지휘하던 육군 중장 이마무라 히토시(今村均)가 좌승하고 있었다. 모가미에는 다행히도 이 사건은 어물쩍 넘어갈 수 있었다.
이후 주로 통상파괴작전에 참가한 모가미는 수송선, 유조선 등을 격침하는 전과를 올렸다. 운명의 1942년 미드웨이 해전 당시에는 제 7전대에 소속되어 미드웨이 섬의 미군 비행장을 포격하러 가는 제 2전대를 호위하게 되었다. 그러나 미드웨이로 향하는 도중, 약 90해리를 앞둔 지점에서 작전 취소 명령이 하달되어 그대로 복귀하게 됐다. 일단 제 2전대와 합류하기 위해 항로를 잡고 철수를 시작하려는데, 제 7전대의 선두에 있던 자매함 쿠마노(熊野)가 정면에서 미군 잠수함 USS 탬버(SS-198)를 발견, 좌측으로 45도 변침을 명령했다. (당시 모가미는 모가미형 중순양함 4척으로 구성된 전대의 세 번째였다.) 전대가 일제히 변침을 할 때 쿠마노는 미리 90도 변침을 하면서 다시 45도 변침을 하라고 명령했다. 이 때문에 쿠마노와 스즈야가 하마터면 충돌할 뻔한 사건이 있었는데, 뒤따르던 모가미와 미쿠마는 이걸 보느라 정작 자기들이 충돌하게 됐다. 모가미는 충돌로 인해 함수가 12미터 줄어들었고 미쿠마의 옆구리에는 구멍이 뚫려 연료가 샜다. 결국 두 함선은 본래 항속속도였던 28노트에 크게 못 미치는 12노트로 도망치다가 미군 항공기에 포착되었고, 미드웨이에서 이륙한 미군기의 집요한 공격을 받은 끝에 미쿠마는 탑재한 어뢰가 유폭을 일으켜 침몰했다. 모가미는 어찌저찌 살아날 수 있었다.
일본군의 패색이 짙어진 1944년, 레이테 만 해전에서는 니시무라 함대에 속해 참전했다. 다른 함선과 함께 수리가오 해협으로 돌진한 모가미는 니시무라 함대가 어뢰 및 미 함대의 집중포화를 받아 무너지는 와중에 주포탑에 포탄이 직격, 화재가 발생했다. 함대가 전멸에 가까워지자 모가미의 함교 안에서는 함장과 항해장의 논쟁이 벌어졌는데, 말인즉 배를 포기하자는 함장과 배를 사수하며 계속 싸워야 한다는 항해장의 의견차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논쟁은 미 함대의 포탄이 모가미의 함교에 직격, 함교가 날아가 버리며 승자 없이 종료(...) 지휘부가 순식간에 날아간 가운데 지휘권을 인계받은 포술장이 일단 되는 대로 살아남으려는 발악을 하는 사이, 화재가 발생한 모가미가 멈춘 줄 알고 그대로 진입한 중순양함 나치(那智)가 모가미의 앞을 지나쳐 나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사실 모가미는 여전히 느리게나마 움직이고 있었다. 딱 7노트 속력으로. 결국 이번에는 나치를 들이받았다.
그럼에도 모가미는 끝끝내 살아남아 구축함 아케보노(曙)의 호위를 받으며 해역을 이탈하려 했으나, 미군기의 공격을 받자 생존자를 아케보노로 옮긴 후 자침 처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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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영을 탄식하게 만든 엉터리
삼식탄
일본의 전함들은 삼식탄이라는 것을 이용하여 주포를 대공포처럼 이용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특히 야마토급 전함에서 이 삼식탄은 하이라이트라고 대본영은 생각했지만, 훈련도중 야마토의 자매함 무사시가 삼식탄을 발사하였고 결과는 바로 포신이 고장났다.
➜ 반쯤 사실. 게다가 탄의 성능 자체도 대공탄으로 쏘기엔 매우 비효율적이어서 쓰지 않는 게 더 나았다. 지상공격용으로라면 그럭저럭 쓸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단, 무사시의 포신이 고장난 건 훈련중이 아니라 레이테에서 무사시의 수병들이 전투중에 신관의 시간을 잘못 세팅해서 포신 내에서 발화했기 때문이지 삼식탄 자체의 문제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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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호의 유폭 침몰
전쟁 후기 일본 해군은 기름부족으로 제대로 정제하지 않은 중유를 사용. 어쨌든 다이호는 각종 폭탄에 견딜수 있게 설계된 장갑항모였지만 첫 출전에서 재수없게 어뢰를 맞는다. 그후 복구반이 수리하였지만 정제가 덜된 중유에서 나온 휘발성 가스 냄새가 솔솔 났고 통풍기를 틀었지만 역효과가 나서 가스가 함의 곳곳에 퍼졌고 몇시간후 대폭발이 일어나며 다이호가 무력화. 복구반은 황급히 복구에 나섰지만 2차 대폭발이 일어나며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항공유 유폭으로 1발에 격침된 불쌍한 항모.
➜ 사실. 항공유가 원인을 제공한 게 맞고
다이호 문서와
필리핀 해 해전 문서를 참고하면 함선 연료유 이전에 항공유가 통풍 시설이 감당을 못할 정도로 퍼져나가서 1차 엔진 스파크로 인해 인화하면서 2차적으로 함선 연료유의 유증기까지 인화한 것이다. 그 결과로 다이호는 폭발 엔딩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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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 명중률의 비극
자바 해 해전 당시 일본 함대는 4번에 걸친 전투에서 8인치 포탄을 난사하여 재고량의 2/3에 가까운 1619발을 발사. 그러나 결론은 명중탄이 꼴랑 네 발(...) 그나마 세 발은 불발탄이었다고(...) 이 명중률을 단순 비율로 환산하면 무려 0.2%의 명중률을 기록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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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함 럭키샷 - 추축군편
인디펜던스급 항모인 프린스턴은 일본군 함재기들의 공습을 받았다. 미 함대는 거의 모든 것을 저지했지만 딱 한 대의 D3A 급강하 폭격기가 떨군 250kg 폭탄이 프린스턴에 명중. 안에 있던 어벤져 뇌격기 4대에 맞아서 유폭되었다.
옆에서 클리블랜드급 경순양함 버밍햄이 화재를 진화하고 있었는데 프린스턴이 갑자기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며 화염이 버밍엄을 덮쳤다. 그리고 버밍햄은 프린스턴보다 훨씬 많은 전사자를 내고 말았다. 결국 D3A의 럭키샷 때문에 프린스턴이 격침된 셈.
➜ 사실과 약간 다르다. 사건이 일어난
레이테 만 해전 당시 해당 배가 소속되어 있던 미 3함대는 공습을 저지하는 데 실패했다.[19] 프린스턴은 유폭되기 훨씬 전인 9시 38분에 폭탄에 맞았다. 유폭된 건 15시 23분. 버밍햄은 폭탄을 맞은 프린스턴의 화재를 진화하던 도중 피해를 입었다. 또한 버밍햄의 함장이 전신에 중화상을 입고 사망하긴 했지만 훨씬 많은 전사자를 내진 않았고 승조원들이 필사적으로 배를 수습해 살아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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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이카쿠의 위장: 효과는 굉장했다!
태평양 전쟁 중반, 일본의 항공모함 전력이 바닥을 치자 유일하게 남은 정규항모 즈이카쿠는 생존성을 위해 연장로켓포를 달고 함체를 녹색으로 칠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대형 수송선으로 위장했다. 이 위장은 상당히 성공했다. 얼마냐 성공했냐면 미군 뿐만 아니라 같은 일본군 전투기가 항모가 아니라고 착각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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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도의 대인배 폭격 편대
1942년 4월, 일본군 폭격 편대가 호주 포트 모르즈비를 공격한 후 세 개의 상자를 포트 모르즈비 비행장에 투하했는데, 처음에는 일본군의 부비트랩인 줄 알고 아무도 안 열었지만 한 병사가 접근해서 겉에 영어로 쓰여진 "이 상자를 본 사람은 누구든 포트 모르즈비 육군 사령부에 연락 바람"이라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결국 사령부에서 폭발물 제거반까지 동원해서 깐 상자의 내용은... 라바울 전역에서 포로로 수감된 호주 군인이 쓴 200여통의 편지였다.[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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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필 1943
1943년 3월 31일에 B-24 한 대가 임무를 수행하던 중 일본군 제로의 공격으로 기체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제로는 비상탈출하는 승무원들을 공격해서 두 명을 죽였다. 그런데 살아남은 승무원 중 한 승무원이 M1911 권총을 뽑아들어 제로를 향해 쏘자 제로는 멈추더니 아래로 떨어졌고(!), 그 승무원은 무사히 지상에 내렸지만 일본군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일본인들은 그에게 할복을 권했지만 승무원은 거부했고, 전후에 무사히 돌아왔다. #
➜ 진위 불명.
오웬 바게트라는 사람의 이야기인데, 이 사건에 대해 일본 측에서는 그날 그 지역에 출격한 전투기는 A6M이 아니라 64전대의
Ki-43 하야부사였으며, 64전대의 기록에 따르면 인명손실은 없었다고 한다. 반대로 미국 측 기록에서는 머리에 45구경 탄환이 박힌 조종사 시체가 언급되어 격추 가능성이 없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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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아이스크림
미국 해병전투기 중대가 펠렐리우 섬에 주둔할 당시, 엄청난 무더위로 해병들이 고생하자 편대 사령관 J. 헌터 레인부르크가 머리를 굴린 끝에 전투기에 아이스크림 재료를 담은 통을 묶은 뒤 높은 고도로 날아올라 얼려 버리는 방법을 떠올렸다. 첫 시도는 아이스크림이 엔진 바로 옆에 있어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후 요리조리 궁리한 끝에 세 번째 시도에서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21]
➜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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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특공
이오지마 전투에서, 일본군은 자돌폭뢰의 개념을 확대해 경전차 두 대에 자돌폭뢰를 달고 미군 셔먼 전차에 충돌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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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함에 자기 전투기를 들이받는 것이 제식 전술이었던 일본군
일본군은 이 제식 전술로 무려 3,600기의 전투기를 소진했지만 구축함 3척과 호위항모 1척밖에 격침시키지 못했다. 사실 여기 있는 항목 중 가장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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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잠자리
이것 역시 카미카제 이야기. 카미카제 조종사가 적 함대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콕핏에 벌레 한 마리가 보였다. 순간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은 조종사는 기수를 적 함대가 아닌 다른 데로 돌리려고 했지만 연료 부족으로 바로 인근의 무인도에 불시착한 후 그 벌레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그 카미카제 조종사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 거짓. 정확히는 전후 지어진 노사카 아키유키(반딧불의 묘의 원작자)의 반전동화 내용이다. 동화의 이름은 '고추잠자리'. 당시 일본 해군은 카미카제에 내보낼 비행기가 부족해지자 구닥다리 복엽기인 K5Y 93식 연습기(연합국 코드명은 윌로우)까지 카미카제에 내보냈는데 93식 연습기는 주날개가 복엽기로 4장인데다 연습기이므로 고시인성 주황색으로 칠해져 있어 별명이
고추잠자리였다고.[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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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을 두 번 맞은 사람
히로시마에 핵무기가 떨어진 후, 많은 사람이 혼란 속에서 히로시마를 빠져나갔다. 그런데 그 중에는 나가사키로 향한 사람이 소수 있었다.
➜ 사실. 공식적으로 핵을 두 번 맞은 사람은
야마구치 쓰토무 한 명뿐이지만 야마구치의 두 동료를 포함해 핵을 두 번 맞았다고 증언하는 사람은 백오십 명 정도 있으며, 나가사키에서 죽은 히로시마 피난민들을 고려하면 더 많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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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종전 시점에서 태평양의 여러 섬에는 일본군 패잔병들이 다수 남아 있었다. 그 중 일찍 죽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몇십 년 후까지 전쟁이 끝난 줄 모르고 전의를 불태우며 살아남아 있다가 미군에 의해 구조된 사례도 있다.
➜ 사실. 실제로
오노다 히로오와 같이 자국의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이 파병된 곳에서 끝까지 홀로 전투를 이어가다가 수십년 후에야 항복한 사례가 여럿 있다.
5. 중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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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의 시작을 알린 급똥
루거우차오 사건 당시, 일본군은 실종된 병사 하나를 수색한다는 명분으로 사건을 촉발시켰다. 정작 해당 병사는 실종은커녕 갑자기 복통이 와서 화장실에 가는 바람에 점호에 참여하지 못했던 것이다.
➜ 진위 불명. 용변 외에도 점호 시 집계 실수, 실족으로 인한 기절 등의 가설들이 있지만, 현재는 원인 불명이 정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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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아더 코리안
당시 일본이 중국에 대한 야심을 확실히 드러내면서 침략을 시행하고 수 많은 조선인들을 강제로 징집하여 일본군(일본인+조선인)으로 편입시켜 대규모적인 돌격을 감행, 이에 대응하여 중국 측[23]은 당시 내국에 있던 조선의 여러 독립군과 결의하여 중한군(중국인+조선인)으로 편입하여 이에 대응했으나 일본과 중국은 자국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일본군은 조선인들만 구성된 군을 편입시켜 강제로 돌격을 시키고 중국도 비슷한 이유로 조선인들로 구성이 된 군을 편입시켜 돌격시켰다.
그래서 두 진영의 조선인들은 서로가 같은 민족임을 알게 됨 서로가 합세하여 일본군 진영으로 돌격해서 여러 진영을 붕괴시켰다.
➜ 거짓. 일본군은 조선인들로만 구성된 군을 만들지 않았다. 한두 명도 아니고 아예 조선인들로만 구성된 군대라면 당연히 위 루머처럼 배반할 공산이 크다. 그리고 양측에 소속된 조선인들이 서로 토벌하는건 만주에선 흔한 일이었다.
간도특설대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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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국신민 코스프레
중일전쟁 당시 중국군인(국부군?)들이 어떻게든 피해가기 위해서 머리를 쓰기 시작했는데 옷을 평복으로 갈아입고 일장기를 두 손으로 번쩍 들면서 텐노 헤이카 반자이!!를 외치면서 미친 듯이 서쪽으로 달렸고 이를 본 일본군은 자국군으로 착각하고 검문을 지나쳐도 그냥 지나쳤다.
➜ 거짓.
관동대지진 때 일본어 발음의 차이로 조선인과 중국인을 구별해서 학살했을 정도인데 중국인이 급하게 일본어를 한다고 일본인으로 착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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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어이없는 내기
두 일본군 장교가 누가 먼저 사람 백 명의 목을 베는지 내기를 했다.
➜ 사실. 이 사건에는
100인 참수 경쟁이라는 이름도 있다.
6. 전선 불명/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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꽐라의 기적
마을 동쪽에는 연합군이 서쪽에는 독일군이 있던 마을에서 술에 취한 연합군 사병이 독일군 장교 숙소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무사히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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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본능적으로 달렸을 뿐인데...
연합군 두 명이서 정찰하던 도중 발각되어 독일군에게 쫓기던 중 둘 다 전사했다. 사망원인은 목뼈 골절. 뒤에서 날라오는 총알에 쫄아서 눈을 감고 뛰던 도중 부서진 전차의 기다란 포에 머리를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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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특한 부실벽
벽에 기대서 쉬던 연합군 사병이 기대고 있던 벽이 무너지면서 반대편에서 쉬고 있던 독일군 10명의 사병과 고위급 장교가 죽었다. 사병은 즉시 소위로 진급.[24] 영화 '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오기는 한다만 여기선 벽에 깔려 죽은 게 아닌 서로 항복하라며 기싸움하다가 2층에 있던 미군의 기습에 독일군 전원이 사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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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했던
전투 곰
➜ 사실. 버려진 아기 곰이 폴란드 병사들에게 길러져서 탄약을 나르고 실제 사람과 같은 행동을 하면서 지냈다고 했다. 후에는 1963년 동물원에서 사망. 자유 폴란드군 22수송중대에서 활약했던 하사 보이텍(Wojtek)이다. 참전용사 보이텍 / 영문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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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조국 부대 엠블럼 흑역사
➜ 사실. 1930년대 미 45 보병사단의 엠블럼이 다름아닌
하켄크로이츠였다. 다만 아메리카 원주민의 전통문양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 마름모에 빨간 바탕, 갈고리십자는 노란색으로 되어있는 게
본고장과의 차이점.[25]
결국 1939년 5월 역시 아메리카 원주민의 전통문양에서 따온 천둥새 모양으로 디자인 변경. 이 사단은 후일 이탈리아 전선과 프랑스 전선에서 독일군과 혈투를 벌였고, 한국 전쟁에도 참전했다.
결국 1939년 5월 역시 아메리카 원주민의 전통문양에서 따온 천둥새 모양으로 디자인 변경. 이 사단은 후일 이탈리아 전선과 프랑스 전선에서 독일군과 혈투를 벌였고, 한국 전쟁에도 참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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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개인열차
이름이 Amerika였다. 결국 전쟁 발발 후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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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 리액션
2차 대전 당시 심심해하던 독일군 저격수가 마을의 종탑을 쏘았는데 총알에 의해 벽돌 하나가 빠지면서 종탑이 무너졌고 연합군의 퇴로가 차단되었다.
➜ 거짓에 가깝다. 저격수의 역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심심해서 총을 쏘는' 저격수는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7. 관련 문서
[1]
경전차였지만, 주조 장갑과 독일 전차의 경무장 등으로 인해 2차 대전 초기 전차 중에는 방어력이 강한 편에 속했다.
[2]
출처:
전격전의 전설 P.380. 원출처: Jeffrey A. Gunsburg "The Battle of Belgian Plain, 12 - 14 May 1940: The First Great Tank Battle", The Journal of Millitary History 56, no 2 (1992) PP. 234 ~ 235
[3]
영국군은 독일군 전투기들의 위협을 감소시키는 방안으로 야간폭격을 선호했지만 미군은 일명 박스 편대라는 형태를 꾸려 정밀타격을 하는 것을 선호했고, 결과적으로 독일군은 연합군 폭격기 편대에게 밤낮으로 시달리게 되었다.
[4]
정확히는 2008년 자료까지 생존이 확인되며 그 이후는 불명이다. 2023년 기준 영국군 병사는 106세, 아내는 101세, 독일군 장교는 108세로, 지금까지 생존해 있을 확률은 낮다.
[5]
2019년 현재 해당 웹 페이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6]
하지만 이 이야기는 알려진 것만큼 극적인 것은 아니다. 예컨대, 조프리 탠디는 '
철자를 잘못 읽어 엉뚱하게 소집당한 유능한 과학자' 가 아니었으며, 이미 1차대전 당시에 참전해서 군복무를 했던 경력이 있었다. 그의 본업 역시 엄밀한 과학적 연구를 하는 역할이라기보다는 시료의 보존처리 및 장기 관리를 하는 쪽으로 특화되어 있었다. 영국 정부는 자신들이 획득한 첩보 자료를 읽을 수 있도록 분석할 수 있고 장기 보존할 수 있는 전문가를 원했고, 이를 위해
자료관리 전문가나
법학자들 등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의도적으로 불러모았다. 당시는 인류 역사상 첩보전의 여명기였기에 첩보자료 전문가라는 개념이 딱히 없었던지라, 그래도 최대한 접점을 갖는 사람들을 모으고 모은 결과가 그것. 물론 탠디가 암호 문서의 식별 및 복원 업무를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전부 당초의
계획대로였다. 따라서 '의도치 않은 우연' 이라거나 '거짓말 같은 기적적인 일' 인 것이 아니라, 그만큼
영국이 첩보 자료의 중요성에 대해서 일찍 생각이 깨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물론 거기서 일하던 사람들도 cryptogramist와 cryptogamist의 철자의 유사성을 인식하고 있었으므로 이걸로 농담도 많이 했을 거라고 한다.
#관련자료1
#관련자료2
[7]
다만 베트남전에서
AC-47이 야간비행 중 우익에 북베트남군의 박격포탄을 맞고 격추 직전까지 간 사례가 있긴 하다. 문서 참고.
[8]
'폭격기가 왠 요격?'이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한데, 사실 전문 야간 전투기가 없는 국가들은 폭격기에 무장을 추가하여 야간 전투 임무를 맡기기도 하였다. 특히
브리스톨 보파이터를 배치하기 전의 영국 공군은 블레넘 폭격기의 하부에 기총포드를 장착하여 야간 공중전에 투입하는 등, 폭격기의 야간 전투기 전용이 가장 활발했던 공군이기도 했다.
[9]
다만 스털링이라는 점은 좀 이상한데 스털링은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4발 중폭격기다. 물론 스털링의 원형기인
숄트 선더랜드는 공중전을 하곤 했지만 스털링은 그러기엔 좀 아깝지 않나?
[10]
사실 이런 일은 다른 전쟁사에서도 종종 있었는데, 한국전쟁 당시에도 아예 북한군 자주포 승무원들과 트럭에 탑승하고 있던 국군이 접촉한 적이 있었는데,
쌍방이 서로 노획한 적군의 장비와 군복을 쓰고 있던 아군인 줄 알고 같이 추진해 온 식사를 했던 에피소드까지 있었다고 한다.
[11]
좀 더 자세하게 서술하자면 기습으로 3대 중 한 대의 포탑 옆면을 관통하여 화재로 전투불능. 두번째 전차는 포탑링에 맞아 유폭되면서 격파. 세번째 전차는 도망가다가 후방피격. 이는
모에! 전차학교 제 7권에 자세하게 서술된다.
[12]
예를 들어 모크라(Mokra)전투, 므와바(Mlawa) 전투. 독일 점령 이후의 일이긴 하지만
바르샤바 봉기에서도 이 짓거리를 했다.
[13]
바리에이션으로 "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라고 하는 말도 존재한다.
[14]
물론 총구에 총알이 들어가지 못하리란 법은 없다.
판처파우스트 문서 초입에 있는 친위대원의 인용문에도 총안구에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를 걸고 전차에 총을 쏘기도 했다고 쓰여 있다. 그러나 거의 불가능한 건 매한가지고 그걸로 기관총이 폭발할 가능성도 적을 뿐더러 그게 폭발해서 연료탱크 폭발을 일으킬 가능성도 없다.
[15]
출처-연합함대 그 출범에서 침몰까지
[16]
본문처럼 어뢰 잔뜩 실은 불난 구축함이 불끄려고 전함에 다가가는건 그냥 쉽게 말해서 잘못하면 일본군 대신 카미카제 해주는 꼴이다.
[17]
심지어 필리핀 전투 당시 적군이었던 일본군 이야기에서조차 발견되기도 한다.
[18]
バタビア沖海戰/Battle of the Sunda Strait
[19]
저지하는 것 자체는 거의 성공했으나 딱 한 대라는 표현은 너무 과장된 셈.
[20]
다만 당시 일본이
그 때 일본이니 만큼 (만약 사실이라면)당연히 검열을 통해 프로파간다성이 짙거나, 적어도 자신들 일본 측에 불리한 내용을 담지 않은 편지('일본군이 매우 친절하다'라던가, '일본군 이놈들이 무섭고 대단한 놈들이더라'라는 내용이 담겨져 있던가 등...)를 선정해 보냈을 확률이 높다.
[21]
정작 레인부르크는 상관에게 깜박하고 아이스크림을 안 줬고 이 때문에 꾸중을 들어야 했다.
[22]
참고로 일본에서는 잠자리가 앞으로만 날아간다고 여겼기 때문에 오직 앞으로만 돌진하는 사무라이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오늘날의 각종
검도용품에서도 곧잘 잠자리 문양을 볼 수 있다.
[23]
정황상 팔로군일 가능성이 높다.
[24]
출처가 필요하다. 미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전시 임관이 자주 있었다곤 하나 일병이나 상병이 갑자기 소위가 되고 그런 일은 없다.
시모 해위해라면은 모를까.... 아무래도 일계급 특진했다는 말이 과장된 듯 하다. 누구 말대로 히틀러를 암살하는데 성공하면 몰라도…
[25]
하켄크로이츠 또한 이미 존재하던 여러가지 문양들에 영감을 받아서 만든 것이니 비슷한 문양이 있다고 해도 이상할건 없다. 당장 불교의
卍자만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