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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7 10:21:49

제15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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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第15回参議院議員通常選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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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율 65.02%
선거 결과
파일:1989년참원선결과.png
<rowcolor=#2D3865,#CFA547> 정당 지역구
비례대표
총합
(기존의석 포함)
비율


21석 15석 109석 49.4%

26석 20석 66석 17.2%

4석 6석 20석 5.10%
1석 4석 14석 8.18%
[[민주개혁연합|
연합
]]
11석 0석 12석 6.82%

1석 2석 8석 3.63%
세금당
1석 1석 3석 1.56%
'''
이원클럽
'''
0석 1석 2석 0.59%

0석 1석 1석 0.45%
'''
샐러리맨 신당
'''
0석 0석 1석 0.45%
'''
제파
'''
1석 0석 1석 3.02%


[[무소속(정치)|
무소속
]]
10석 0석 15석 12.94%
1. 개요2. 선거 전 상황3. 선거결과
3.1. 정당별3.2. 지역별3.3. 비례대표
4. 선거 이후

[clearfix]

1. 개요

1989년 7월 23일에 치러진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로 일본사회당이 처음으로 개선1당이 되었다.

2. 선거 전 상황

1986년 자민당과 나카소네 내각 경제호황과 야권분열 등으로 제3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와 함께 치러진 14회 참의원 선거에서 총 443석 (중의원 300+참의원 143)이라는 과반수에 20석 가까이 늘어난 대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러나 그 뒤로의 앞날은 순탄치 않았다. 1987~1988년에 걸쳐 농산물 수입 자유화 이슈가 크게 일어나면서 자민당 지지층의 한 축인 농민쪽에서 지지이탈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1988년에 터진 리크루트 사건에 전임 총리인 나카소네 야스히로와 현직 총리인 다케시타 노보루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다케시타 내각과 자민당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케시타 총리는 큰 폭탄을 일본에 또 투척했다. 전임 총리였던 나카소네 총리를 자리에서 내려오게 만들고 야당, 국민 대다수도 강한 반감을 드러냈던 소비세 제도를 경제 안정화[1]를 이유로 관철시키면서 소비세 도입이 확정되었다. 이 결단으로 인해 다케시타 총리는 당 내에서도 비난을 받게 되었다.

결국 리크루트 사건에 현임 다케시타 노보루 총리가 연루된 것이 확실해지면서 내각 총사퇴를 하게 되었고, 당 내 주류였던 나카소네-다케시타 파는 당 내에서도 비난과 소외를 받게 되면서 정치적 식물인간 상태에 빠지게 된다. [2]

전국적으로 자민당 심판 분위기가 심하게 불면서 모든 이목은 몇 개월 뒤 치러지는 참의원 선거에 집중되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후임 총리로 지명된 우노 소스케가 게이샤 스캔들로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되었고, 참의원 선거 2개월을 앞두고 자민당은 완벽한 수세에 몰리게 되는 위기에 빠졌다.[3]

한편 사회당 등 야당은 소비세 폐지와 리쿠르트 사건, 우노 총리의 스캔들 문제를 집중 추궁했고, 전국 곳곳에서 야권 무소속 연대가 이루어지는 등 자민당의 실책을 발판 삼아 기세를 올려가고 있었다.

3. 선거결과

선거일 1989년 7월 23일
선거내용 지역구( 소선거구제, 중선거구제 혼합) 73명 + 전국 비례대표 48명
선출인원 126명
투표율 65.02%
의석 구성
여당[4] - 102석 (27.3%) 야당[5][6] - 124석 (72.6%)
정수 : 252석

3.1. 정당별

정당 지역구 비례대표 개선
의석
비개선
의석
총합 선거이전의석 증감
여당 자유민주당 17,466,406 30.70% 36 15,343,455 27.32% 15 36 73 109 142 -33
야당 일본사회당 15,009,451 26.38% 46 19,688,252 35.05% 20 42 24 66 22 +24
공명당 2,900,947 5.10% 10 6,097,971 10.86% 6 10 10 20 22 -2
일본공산당 5,012,424 8.81% 1 3,954,408 7.04% 4 5 9 14 17 -3
연합 3,878,783 4.30% 11 불출마 불출마 불출마 0 1 12 신당 +11
민사당 2,066,533 3.63% 1 2,726,419 4.85% 2 3 5 8 11 -3
세금당 889,633 1.56% 1 1,179,939 2.10% 1 1 1 3 2 +1
이원클럽 337,250 0.59% 1 1,250,022 2.53% 1 1 1 2 2 -
스포츠평화당 불출마 불출마 불출마 993,989 1.77% 1 0 0 0 신당 +1
샐러리맨 신당 256,678 0.45% 0 872,326 1.55% 1 1 1 1 1 -
제파 1,718,805 3.02% 0 4,064,547 7.24% 1 0 1 0 2 -1
무소속 7,362,723 12.94% 10 - - - 10 5 15 4 +6

3.2. 지역별

범례 사회 (46) 자민 (36) 연합 (11) 공명 (4) 공산 (1) 민사 (1) 세금 (1) 제파 (1) 무소속 (10)
도쿄1 아이치1 효고1 오사카1 홋카이도1 치바1 사이타마1 도치기1 가나가와1
도쿄2 아이치2 효고2 오사카2 홋카이도2 치바2 사이타마2 도치기2 가나가와2
도쿄3 아이치3 효고3 오사카3 홋카이도3
도쿄4 이바라키1 시즈오카1 교토1 홋카이도4 군마1 후쿠시마1 니가타1 나가노1
이바라키2 시즈오카2 교토2 아오모리 군마2 후쿠시마2 니가타2 나가노2
히로시마1 구마모토1 오카야마1
히로시마2 구마모토2 오카야마2
후쿠오카1 이와테 아키타 야마가타 야마나시 도야마 이시카와 후쿠이 미에
후쿠오카2 나라 와카야마 돗토리 시가 시마네 고치 야마구치 카가와
후쿠오카3 도쿠시마 사가 나가사키 에히메 오이타 미야자키 가고시마 오키나와

3.3. 비례대표

범례 사회 (20) 자민 (15) 공명 (6) 공산 (3) 민사(2) 이원클럽 (1) 세금 (1) 스포츠 (1)

4. 선거 이후

4.1. 자민당

투표일 다음날 우노 총리는 선거 참패의 패배의 책임을 지고 퇴진을 표명했다. 당시 자민당 간사장이었던 하시모토 류타로가 개표방송 시청 중 처참한 결과가 나오자 분노를 삭히지 못하고 칙쇼라는 말을 한것이 카메라에 잡혔을 만큼 자민당 입장에서는 선거의 대참패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결국 자민당은 참의원 선거에서 대패[7]하면서 과반수는 물론, 많은 의석을 잃게 된다. (143석 → 109석) 결국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우노 소스케 총리가 내각 총사퇴를 선언하면서 자리에서 물러났다.

자민당은 총리 인준에 관련해서 참의원 의결에서는 야당에게 밀렸지만 중의원 의결에서 가이후 도시키가 총리로 임명되는데 성공하면서 당 역사상 최고의 고비는 겨우 넘길수 있었다.

4.2. 일본사회당

1986년에 열린 중·참원 동시선거에서 최악의 참패를 당한 사회당은 이시바시 마사시가 위원장직에서 사임한 후 일본 정치 역사상 최초의 여성 당수인 도이 다카코를 사회당 위원장으로 선출하고 원래 사이가 나쁜 편이었던 민사당, 공명당과 협조에 나서는 등 대대적인 쇄신에 나섰다.

그 결과 80년대 일본 버블경제로 요약되는 호경기였을 때였음에 불구하고 1987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매우 선전하기 시작했고 이 기세가 이어진 1989년 참의원 선거에서는 리크루트 사건과 소비세 도입 문제, 우노 총리의 스캔들 문제로 자민당에 대한 지지여론이 악화되며 드디어 자민당을 제치고 55년 체제 출범 이후 처음으로 개선 1당이 되는데 성공한다.

이때 차지한 개선 46석 기록은 이후 2004년에 민주당이 개선 50석을 확보하며 기록을 경신할 때까지 15년동안 55년 체제 이후 비자민 야당의 최고 개선의석 확보 기록이 되었다.

이때 일본 최초의 여성 당수 도이 다카코 위원장은 개표 방송에 출연하여 산이 움직였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도이 위원장은 이른바 "마돈나 열풍"을 타고 여성 최초로 참의원으로부터 내각 수반 지명을 받는 등[8] 자민당을 꺾고 총리 자리에 오를수 있는 유력한 정치인으로 꼽혔다.

4.3. 이외 정당

일본의 노동조합 단체인 렌고(연합)는 참의원 선거에서 사회당-민사당-공명당과 별개로 지역구에 공천을 냈고, 총 11석의 당선자를 내면서 큰 선전을 거두었다.

사회당을 제외한 주요 야3당 ( 공명당, 일본공산당, 민사당)은 사회당과 연합의 돌풍 속에 의석수가 소폭 줄어드는 출혈이 있었고[9], 그밖에는 신당인 스포츠평화당이 선전해 프로레슬러인 안토니오 이노키가 처음으로 당선되어 국회에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1] 1989년은 일본 버블경제의 정점이자 끝이었던 시점이다 [2] 당시 자민당 간사장이자 총리 1순위였던 아베 신타로도 여기서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게 된다. [3] 결국 우노 소스케는 참의원 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총리직 사퇴를 했다. [4] 자유민주당 [5] 일본사회당, 연합, 공명당, 일본공산당, 민사당, 세금당, 제2원클럽, 스포츠평화당, 샐러리맨 신당 [6] 무소속, 제파 포함 의석 [7] 개선 의석 126석 중 36석 획득 [8] 중의원의 선출을 받은 자민당 가이후 도시키 총리에게 밀려 지명 받지 못했다. 하지만 자민당에 무려 41년만에 처음으로 양원 지명 불일치로 인한 중의원 우월권 발동이라는 나름의 불명예를 선사했다. [9] 이 현상은 이듬해 치러진 제3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되풀이되었다. 특히 사회당에 표가 쏠리면서 효율적인 표 배분에 실패하면서 자민당의 득표율이 1983년과 비슷한 수준임에도 자민당이 과반을 훌쩍 넘는 의석을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