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39:55

제주 삼일절 발포 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요2. 상세3. 사망자4. 대중매체5. 둘러보기

1. 개요


[1]
미군정 시기인 1947년 3월 1일 3.1절 기념식 행사 직후 기마 경찰이 어린이를 치고 조치 없이 달아나자 성난 시민들이 경찰서에 몰려갔고 항의하던 시민을 경찰이 폭도로 오인하여 발포한 사건. 제주 4.3 사건의 발단이 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다수가 일제강점기 경찰 출신으로 그들에게는 해방조국의 시민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여전히 통제와 감시의 대상으로 인식하던 것이 이 사건의 원인이었다.

2. 상세

파일:3.1 대시위.jpg 파일:발포.jpg
강요배 화백 - 3.1 대시위 강요배 화백 - 발포
파일:피살.jpg
강요배 화백 - 피살

1947년 3월 1일에 제주북 국민학교에서 삼일절 기념 제주도 대회가 열려 25,000~30,000여 명의 주민이 모였는데 이날 행사를 끝낸 군중들이 가두 시위에 들어갔다.
시위대는 제주북국민학교 주변에 남로당, 민주주의민족전선, 민주주의청년동맹, 부녀동맹, 인민위원회에서 동원한 17,000명의 군중과 제주읍, 애월면, 조천면 등에서 모여든 주변 주민들, 학생들 8,000명으로 구성됐다. 경찰은 제주 경찰 330명과 육지에서 파견된 응원 경찰 100명 등 430명으로 주변 경비 활동을 하였다.[2]

시위대가 미군정청과 경찰서가 있던 관덕정을 지나가고 200명 정도의 군중이 시위행렬을 구경하던 중 사건이 터졌다. 오후 2시 45분경 기마경관 소속의 임영관(任永官) 경위가 시위를 막기 위해 군중들을 헤치다가 제북교에서 관덕정으로 들어서는 길 모퉁이를 돌려고 할 때 고빗길에서 서성대던 어린이가 타던 말의 발굽에 채였는데 경찰이 이를 모르고 지나가 버린 것이다.[3] 분노한 군중들이 경찰을 비난하며 몰려들었고 기마경찰은 황급히 도망쳤다.[4] 군중들은 도망가는 기마경찰을 향해 돌을 던졌다. 돌팔매질과 더불어 거리가 난장판이 되기 시작하자 경찰서에 있던 경찰들은 군중이 경찰서를 습격하는 줄 알고 응원경찰들과 함께 관덕정 주변의 사람들에게 발포하기 시작했다.[5] 이 일로 6명이 죽고 8명이 부상을 입었다.[6]

경찰에게 돌을 던진 건 잘못이긴 하지만 이에 대응한 경찰의 발포엔 분명 문제가 있었다. 이 날 시위에 참여한 사람 가운데 사망자는 하나도 없었고 경찰서와 상당히 떨어진 곳에서 희생자가 발생했기 때문이었으며 "사망자 6명 중 5명이 등 뒤에서 총을 맞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사망자들이 시위와 관련이 없으며 경찰의 발포가 과잉 대응이었음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그러나 경찰은 관덕정 앞에서의 발포가 치안을 위한 정당방위라고 주장하였으며 3월 1일의 군중들이 경찰서를 습격하려고 했다는 미확인 정보를 사실인 것처럼 흘렸다. 3월 1일 저녁부터 제주도에 통행금지령이 선포되었고 다시 수백 명의 응원경찰이 육지로부터 파견됐다. 여기에 3월 1일의 시위와 관련하여 여러 명이 경찰에 끌려가자 제주도의 민심은 크게 동요했다.[7]

파일:CC-white.svg 이 문단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1402
, 2.1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단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1402 ( 이전 역사)
문서의 r ( 이전 역사)

3. 사망자

거주지는 사건 당시 지명으로 표기한다.
이름 나이 성별 직업 거주지
송덕윤 49세 농부 제주읍 도남리(현 제주시 이도2동)
김태진 38세 농부 제주읍 도남리(현 제주시 이도2동)
양무봉 49세 농부 제주읍 오라3리(현 제주시 오라동)
오문수 34세 농부 제주읍 아라리(현 제주시 아라동)
허두용 15세[8] 학생[9] 제주읍 오라1리(현 제주시 오라동)
박재옥[10] 21세 [11] ? 제주읍 도두리(현 제주시 도두동)

4. 대중매체

5. 둘러보기

대한민국의 경찰 관련 사건 사고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1960년대 이전
제주 삼일절 발포 사건(1947)Na P 영암사건(1947)Na 저놈 잡아라!(1948)F P 제주 4.3 사건(1948)Na P 서울 홍제리 집단총살 사건(1950)Na P 여경 소년 고문 의혹 사건(1956)P ? 김주열 열사 사망사건(1960)Na P 1.21 사태(1968)O P 이용선 피살 사건(1968)D P
1970년대
춘천 강간살인 조작 사건(1972)I P 유네스코 지하다방 인질사건(1974)O P YH 사건(1979)F P
1980년대
우순경 사건(1982)D M P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1986)I P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1987)F I P 남양파출소 경관 피살사건(1988)O 화성 초등생 실종사건(1989)I 5.3 동의대학교 사태O
1990년대
대흥동 국교생 살인 누명 사건(1991)I P 김준영 순경 총기난동 사건(1991)P 온보현 사건(1994)D 잠실파출소 경관 피살사건(1996)O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2000년대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2000년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F I P
2001년
2002년 백선기 경사 피살 사건O ? 청주 물탱크실 주부 살인 사건D
2003년
2004년 이학만 경찰 살해 사건O
2005년
2006년
2007년 창원사태I
2008년 명박산성Na
2009년 용산4구역 철거현장 화재 사건F Na O P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2010년대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2010년 강남경찰서 형사 의문사 사건?
2011년 경찰 간부 모친 보험 사망 사건P
2012년 수원 토막 살인 사건D P 경찰관 업어치기 사건F P
2013년 군산 경찰관 내연녀 살인 사건P
2014년 전북대병원 로비 여중생 살인사건D P
2015년 구파발 검문소 총기사건H O 민중총궐기 과잉 진압 논란F P
2016년 관악경찰서 황산 테러 사건O 죽왕파출소 엽총 난사 사건O 오패산터널 총격 사건O P 학교경찰관 여고생 성관계 사건P 경찰관 합의금 사건O P
2017년 부산 여중생 집단 폭행 사건D P 오산 청소년 테이저 진압사건O 옥수역 시민 폭행 사건F P 함양 테이저건 사망 사건P
2018년 광주 데이트 폭력 강압수사 사건F P 영양 경찰관 살인사건O
2019년 버닝썬 게이트I Na 서울 대림동 여경 논란D 화성동탄경찰서 성매매 단속 경찰 업소 운영 사건M 태백경찰서 집단 성희롱 사건H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2020년대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2020년 이천 경찰 자살 사건O 재인산성Na 중앙경찰학교 교육생 학교폭력 폭로 사건H
2021년 제주경찰 태성시인 불법감금협박 논란P 인천 층간소음 흉기난동 사건D P 2021년 대한민국 경찰청 임기제 직원 대량해고 논란Na
2022년 경찰 실시간 해킹 도입 추진 논란Na 101경비단 실탄 분실사건? 행정안전부의 경찰 통제 강화Na 전국 경찰서장 회의Na 여수 파출소 총기 난사 사건O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논란D P 부산 파출소 방화 미수 사건O 경찰 간부 성관계 요구 사건M P 오산 테이저건 사망 사건P 강동 중학생 경찰서 난동사건O
2023년 101경비단 실탄 분실사건 관련 인터넷 압수·수색 논란P 혼성기동대 블라인드 글 논란M 중앙경찰학교 교육생 집단괴롭힘 사건H 거창군 공무원 여경 성희롱 사건H 예비 검사 경찰 폭행 사건O 경찰 간부 공연음란행위 사건M 의정부 금오동 칼부림 오인 신고 및 경찰 과잉진압 사건F P 용산 아파트 경찰관 추락사 사건M 사건 브로커 사건M 2023년 울산 고교생 강압수사 사건F 천안 중학생 경찰서 난동사건O
2024년 아산 경찰관 자살 사건? 제주 경찰관 칼부림 사건O 초임 검사 경찰관 폭행 사건O 화성동탄경찰서 성범죄 누명 사건F 하동 순찰차 40대 여성 사망 사건D P 용인 전단지 제거 중학생 재물손괴죄 송치 사건P
}}}}}}}}} ||
D: 부실대응 및 직무유기 / F: 과잉진압 및 강압수사 / H: 경찰내 가혹행위 / I: 부실수사 및 증거 조작 / M: 경찰관 일탈행위 / Na: 국가조직 연루 및 개입 / O: 경찰관 피해 / P: 민간인 피해 / ?: 사건 경위 불명 }}}}}}}}}


[1] 여담이지만 애니에 등장하는 우생당서점은 70여년이 지난 현재에도 현대식 건물에 입주한 채 같은 자리에서 영업하고 있다. [2]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2003) 107~109쪽. [3]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는 자신의 유튜브 영상에서 말에 채인 아이가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생이라고 주장했다. [4] 여기에 대해 아이가 말에 채인 사건 자체가 없었고 좌파 분자에 의한 선동으로 경찰서 습격 시도가 발생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이 사건은 목격자가 엄연히 존재하며 시위 중에 벌어진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피해자 무덤까지 있다. 하술할 허두용의 묘비를 찍은 사진이 제주4.3평화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5] 당시 육지에서 온 응원경찰들이 경찰서에 있었는데 아마 이들은 대구 10.1 사건 같은 봉기를 겪으면서 신경이 꽤나 곤두서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날 발포로 인한 부상자들이 제주도립병원으로 몰려왔는데 마침 교통사고를 당한 순경을 경호하고자 병원에 온 경찰들이 이에 놀랐는지 군중에게 발포해 민간인 3명이 다치기도 했다. [6] 부상자 수에 대해서는 자료마다 5, 6, 8, 10명으로 각각 다르게 나온다. 2003년 정부보고서는 8명으로 규정하고 있다. [7] 공교롭게도 3.1절 발포 사건이 일어난 날에서 불과 하루 전날인 2월 28일은 대만판 4.3 사건이라고 불리는 2.28 사건이 일어난 날이기도 했다. [8] 사망자 중 최연소자. [9] 사망 당시 시위대의 집결 장소였던 제주북 국민학교에 5학년으로 재학 중이었다. [10] '상세' 문단에 등장하는 그림의 모델이다. [11] 사망자 중 유일한 여성. 사망 당시 젖먹이를 안고 있었다. [12] 교복을 자세히 보면 칼라에 로마 숫자 II(2)를 새긴 배지가 부착되어 있다. [13] 서문로터리를 기점으로 관덕정과 중앙로터리를 지나 동문시장을 종점으로 하는 약 687m의 도로로 1968년 8월 15일, 도로개편으로 관덕로라는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14] 김달삼도 사건 당시에 중학교 교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1부만 봐서는 이 남자가 김달삼으로 보일 수 있으나 2부 에필로그에서 같은 배우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에 이 남자는 김달삼이 아니라 이덕구가 맞다. [15] 이때 사망자를 비추는데 어린 딸은 어머니인 박재옥을 붙잡고 울고있고 교복을 입은 허두용이 총을 맞고 쓰러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