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晉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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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張禕(? ~419)
동진의 인물. 양주 오군(吳郡) 출신.
2. 생애
안제 사마덕종의 아우인 사마덕문이 낭야왕으로 있을 때, 장의는 사마덕문의 낭중령으로 있었다. 이후 동진에서는 권신 유유가 사마덕문이 병에 걸린 틈을 타 사마덕종을 살해하고 사마덕문을 제위에 올렸다.유유는 장의가 사마덕문이 낭야왕일 때 그의 부하였기에 사마덕문과 친하다는 것을 알고, 장의를 이용하여 사마덕문을 독살할 계획을 세운다. 유유는 장의에게 독주 한 병을 주고 사마덕문을 독살하게 하였는데, 장의는 유유에게 항의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황제 폐하를 독살하고 살길을 찾으면, 내가 무슨 낯으로 세상에 살 수 있겠소! 이것은 죽느니만 못한 것이오!
장의는 결국 유유가 내린 독주를 스스로 마시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이후 유유는 420년 선양을 통해 제위에 올라 유송을 건국하였고, 421년에 사마덕문을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