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0ad73>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960420, #b82642 20%, #b82642 80%, #960420); min-height: calc(1.5em + 9.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
제214대 심환지 |
제215대 이시수 |
제216대 이병모 |
제217대 서매수 |
|||
제218대 이병모 |
제219대 김재찬 |
제220대 서용보 |
제221대 한용구 |
|||
제222대 김재찬 |
제223대 남공철 |
제224대 이상황 |
제225대 심상규 |
|||
제226대 이상황 |
제227대 조인영 |
제228대 권돈인 |
제229대 정원용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제229대 정원용 |
제230대 조인영 |
제231대 권돈인 |
|||
제232대 김흥근 |
제233대 김좌근 |
제234대 정원용 |
||||
제235대 김좌근 |
제236대 정원용 |
제237대 김좌근 |
}}} | |||
제237대 김좌근 |
제238대 조두순 |
제239대 이경재 |
제240대 김병학 |
|||
제241대 정원용 |
제242대 김병학 |
제243대 홍순목 |
제244대 이유원 |
|||
제245대 이최응 |
제246대 서당보 |
제247대 홍순목 |
제248대 김병국 |
|||
제249대 심순택 |
제250대 김병시 |
제251대 김홍집 |
||||
}}}}}}}}} |
이시수 관련 틀
|
|||||||||||||||||||||||||||||||||||||||||||||||||||||||||||||||||||||||||||||||||||||||||||||||||||||||||||||||||||||||||||||||||||||||||||||||||||||||||||||||||||||||||||||||||||||||||||||||||||||||||||||||||||||||||||||||||||||||||||||||||||||||||||||||||||||||||||||||||||||||||||||||||||||||||||||||||||||||||||||||||||||||||||||||||||||||||||||||||||||||||||||||||||||||||||||||||||||||||||||||||||||||||||||||||||||||||||||||||||||||||||||||||||||||||||||||||||||||||||||||||||||||
|
<colbgcolor=#b82642><colcolor=#f0ad73> | |
출생 | 1745년( 영조 21) |
사망 | 1821년( 순조 21) |
묘소 |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쌍학리 산40-23 |
재임기간 | 제215대 영의정 |
1802년
11월 22일 ~
1803년
2월 13일 (음력 순조 2년 10월 27일 ~ 순조 3년 1월 22일) |
|
시호 | 충정(忠正) |
본관 | 연안 이씨[1] |
자 | 치가(稚可) |
호 | 급건(及健) |
붕당 | 소론 (탕평당, 시파) |
부모 |
부친 - 이복원(李福源, 1719 ~ 1792) 모친 - 순흥 안씨 안수곤(安壽坤)의 딸 |
[clearfix]
1. 개요
조선의 문관 관료. 최후의 소론 영수 중 한명으로 평가받는다. 할아버지는 병조판서를 지낸 이철보(李喆輔)이고, 아버지는 좌의정을 지낸 이복원(李福源)이다. 더 거슬러올라가면 6대조는 이명한, 7대조는 월사 이정구이다. 동생은 대제학과 6조의 판서를 모두 지낸 이만수이다.당시 권신들을 일컫는 말로 천생오태사(天生五太史)라는 단어가 있다. 이는 연안이씨 이만수, 안동김씨 김조순, 의령남씨 남공철, 청송심씨 심상규, 대구서씨 서영보를 일컫는 말로 이 시기에 정계를 움직인 핵심 인물들이다. 천생오태사(天生五太史)는 권세가 막강하여 감히 견제하기 어려워 이들의 권력을 빗대어 표현한 말로 하늘이 내린 다섯 태사라는 뜻이다.
2. 생애
1773년( 영조 49) 문과에 급제하였다. 성균관 대사성, 사간원 대사간, 이조 참의, 황해도관찰사, 개성부 유수, 한성부판윤, 공조판서, 병조판서, 호조판서 등을 지냈다. 정조 때 우의정을 역임하였고, 순조 때에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을 역임하였다. 사후 순조의 묘정에 배향되었다.1804년( 순조 4) 정순왕후의 재수렴 시도를 저지했다.
3. 여담
큰할아버지 이길보(李吉輔)와 할아버지 이철보(李喆輔)가 함께 기로소에 들어간 데 이어서 아버지 이복원(李福源)과 이시수(李時秀) 본인도 모두 기로소에 들어갔다. 이는 조선시대 최초의 삼세입사이다.
[1]
소부감판사공파(小府監判事公派)-월사공파(月沙公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