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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7 18:06:21

만물여혐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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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페미니즘 기호 화이트.svg 페미니즘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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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대중문화 검열 및 규제론과의 관련성4. 원인과 문제점
4.1. 강박 관념과 이로 인한 오해4.2. 선정적인 개념과의 연결4.3. 맥락을 고려하지 않음
4.3.1. 침소봉대와 답정너
4.4. 트라우마4.5. 공격적 선민의식과 독단적 강요4.6. 아이돌 팬덤 간 경쟁4.7. 이중잣대 모순
5. 만물여혐설이라고 지적받는 사례6. 관련 문서

1. 개요

파일:EEg3snuXYAEI5m5.jpg
▲ 세상은 어떻게 보이는가?
페미니스트에게 세상은 어떻게 보이는가?[해석]

만물여혐설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일어나는 현상들을 여성혐오와 연결시키는 행태를 비꼬는 용어다. 어원은 만물일베설이며, 프로불편러의 하위 범주로 볼 수 있다. '여혐 몰이'나 '여혐 무새' 혹은 ' 창조여혐'이라고도 한다.

역설적으로 여혐몰이를 너무 많이 당해서 여자를 진짜 혐오하게 되는 사람도 있다.

2. 상세

만물여혐론자들은 어떤 창작물이나 사회 현상을 다양한 관점으로 보며 의견을 나눌 의지가 전무하다. 이들은 오로지 여성혐오성 요소가 있는지 없는지에만 관심을 가질 뿐 그 어떠한 다른 해석과 관점에도 귀를 기울일 생각이 없다. 세상 모든 사소한 행동이나 현상들까지도 모두 여성혐오성 요소로 보인다고 주관적으로 판단하여 비판 대상의 개선 및 해결책 제시 여지마저 강제적으로 봉쇄한다.

이 문서 전체에 모순되는 발언들이 무수히 많이 나열된 것을 볼 수 있듯이, 이들의 말은 객관적인 논리가 아예 없이 모순덩어리라 정답이 없다. 아예 자신들 자체가 논리 따지는건 여혐이라고 논리를 아예 부정하며, 논리없이 그저 자기 기분에 따라 감정적인 발언만을 내뱉고, 이 모든 개인의 투정에 불과한 징징거림들을 전 세계가 하나하나 전부 다 들어줘야 하는걸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심각한 정신병 수준이다.

만물여혐설을 내세우는 사람들 중에서 정말 심각한 방향으로 발전하는 사람들은, 고정관념의 지적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자기가 기분 나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일단 여혐이라 주장하고, 근거는 나중에 어떻게든 끌어다 붙이는 인간들로 변모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영화에서 여성이 죽으면 다짜고짜 여혐이라는 식이다.[2] 그러고나선 안티젠더니 뭐니 자기 딴에는 어려워보이는 말을 이것저것 가져다 붙이면서 말도 안되는 궤변을 늘어놓는데, 이쯤 가면 여성에 대한 가벼운 고정관념에 대한 지적조차도 아니며 그저 "나 기분 나쁘다"를 어떻게든 포장하려 할 뿐인, 추악한 발악이다. 문자 그대로의 여혐무새가 탄생하는 것이다.

만물여혐설은 크게 두 가지 믿음에 의해서 유지되는데, 하나는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과 같이 사소한 문제도 '혐오'이다"라는 것. 둘째는 "강자에 대한 혐오는 성립하지 않는다"라는 것. 첫 번째 믿음을 근거로 본인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소한 모든 것을 여혐이라 칭할 수 있게 되며, 그것의 논리적 모순을 지적하면 두번째 믿음을 근거로 오히려 그 지적마저 여혐의 사례라 판단하거나 여혐론에 상충되지 않는 사례로 치부하는 것이다.

사회의 모든 것을 가부장제 + 여성을 억압하고 피해를 주는 것며 여성혐오적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희생자 페미니즘(빅팀 페미니즘)에서 주장하는 사례와도 유사하다. 애초에 희생자 페미니즘과 레디컬 페미니즘은 (레디컬 쪽이 인지도가 매우 높고 희생자 페미니즘은 그에 못 미치지만) 그 내용에 관한 연관도가 높은 편이다.

하지만 이런 여혐론자들의 논리는 치명적인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간다. 성 역할의 고착화, 여성에 대한 시각에 대해 너무나 많은 제약과 설정을 걸어놓은 나머지, 자신들 스스로가 여성성의 '바람직한' 형태, 사회에서 여성이 해야 할 '올바른' 역할에 대해 규정하며 고착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혐', '만물여혐설' 등의 주제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여혐에 대한 규정엔 일정한 기준이 결여되어 있다. 그저 '우리가 하는 말이니 옳다' '페미니즘이 곧 진리다' 같은 사이비종교 같은 전제가 깔려 있는 경우도 있다.

여혐론자에 따르면 '올바른' 여성은 아무리 위험해도 남자에게 보호받느니 죽음을 택해야 하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남자에게 뭔가를 배워서도 안되며 결혼은 당연히 해선 안되며 연애도 남자를 꽉 잡고 살아야 하며 주변에는 자신의 '명령'을 들어줄 남성이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애들이 있다고 한다. 아마 이것도 여혐론자들이 꼬투리를 잡으려면 얼마든지 여혐요소를 갖다붙일 수 있겠지만,[3] 위 케이스를 여혐론자들이 꿈꾸는 여성상이라 가정한다면, 반대로 저기에 속하지 않는, 단 한 가지라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모든 여성들은 다 명예남성 내지는 '이단자'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현실의 극단주의 종교들이 점점 몰려가는 상황처럼 몇몇 여혐론자들도 자연스럽게 사회로부터 고립화되고 그들만의 리그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만물여혐설에 대한 반발로 인해 여성혐오 자체의 실체가 없다거나 여성혐오가 과잉된 뇌피셜이라는 쪽의 의견도 있다. 이런 식의 진영논리는 실재하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들을 덮거나 악화시키게 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남녀들이 건설적인 토론 끝에 합의에 이르는것도 아니고 단순무식한 디스전만 반복하는 무의미한 남녀 성대결이 커지면 커질수록, 정작 진짜로 성범죄를 당하는 무고한 여성들이 도움을 못 받고 의심부터 받거나 하는 부작용이 일어나게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4]

중요한 것은,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 왜 그런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싸잡아서 남녀차별이나 비하로 몰아가며 비판자들에 대해서 내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으니 너 여혐 (원천봉쇄의 오류 + 흑백논리 + 진영논리...) 이란 식으로 대화를 차단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내로남불 또한 필수 요소다. 이들은 문맥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파악할 생각도 없는 채 '여성에 대한 매우 자그마한 고정관념'조차도 여성혐오라고 단정짓지만, 남성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해서는 강자에 대한 혐오라는 건은 존재하지 않거나, 혐오라고 하기에는 부적절하므로 남성혐오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5]
남성들은 겪지 않거나 피해를 받지 아니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들만이 겪어야 하거나 피해를 받는 문제가 여성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어느 회사에서 여성 근로자들이 극심한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하더라도, 만일 그 회사의 남성 근로자들도 동일하게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면 이는 노동문제는 될 수 있지만 결코 여성문제는 될 수 없는 것이다.
노진곤, 류정희, 여성학, 信星, 1997, 10쪽
아이러니한 것은 분명 1997년의 여성학 책에서도 여성들 문제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라면 여성문제는 될 수 없다면서 맥락을 무시한 확대해석과 남용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저것 다 여성문제로 갖다붙여서 비화하지 말라는 이들의 경고는 이후 20년 동안 별다른 효과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3. 대중문화 검열 및 규제론과의 관련성

알고 보면 여혐이란 단어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이런 도덕적 검열의 경향은 존재했다. 80~90년대에 등장한 대중음악 비판론에서 그 조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식의 고압적인 검열주의적 태도는 오늘날의 여혐몰이에도 그 잔재가 내려오고 있다. 《Professing Feminism》 과 같은 몇몇 내부고발성 서적들에 근거하자면, 여성학 연구자들은 자신들의 이론과 개념, 용어들을 정교화하고 발전시키며 현실을 더 잘 설명하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그저 누가 더 페미니즘의 근본 정신을 잘 체화하고 있으며 누가 가부장제의 옛 버릇을 벗어던지지 못했는가를 판별하는 데 집중하고, 학술연구에 이바지하기보다는 강성 운동가를 더 많이 양성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한다. 서구의 젠더학자이자 철학자인 패트릭 홉킨스(P.D.Hopkins)는 이들이 (적어도 그들 중 일부는) 가히 모든 영역에서 숨겨져 있는 가부장제와 남성성을 폭로하고, 비판하고, 제거하는 데 목숨을 걸고 있다고 말하면서, 미국 문화 전반에 '만연해 있는' 여혐 성향을 "적발" 하려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근본주의 개신교인이 미국 문화 전반에 '만연해 있는' 타락한 세속 문화를 "적발"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며 씁쓸해했다. 결국 극과 극은 통한다는 것.

당시 일부 언론에서는 주현미의 <신사동 그사람>, 태진아의 <거울도 안 보는 여자>가 매춘을 미화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당시 이들 노래는 어린이들도 즐겨 부를 정도로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성인층을 겨냥한 노래였음에도 문제 삼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주류 매체에는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큰 화제가 되지는 못했고, 평범한 대중들은 그런 쪽으로까지 해석하진 않았기 때문에 이 노래를 부르는 어린이들을 나무라는 어른들도 없었다.

그러나 21세기에 이러한 편향된 주장이 일부 대중음악 연구자에 의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영미의 저서 <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에 언급되었는데, 이를 비판하는 독자의 주장이 있어 소개한다.
P245-중간부를 보면 이영미 저자의 편향된 노래가사 해석이 또다시 등장한다.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문희옥은 <여기는 남서울 영동 사랑의 거리 (중략)언제든지 찾아오세요>라고 노래하여 이른바 영계를 연상시키기도 했다"고!
나중에 하다하다 문희옥이 여고생시절에 이 노래를 불렀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영계가 불법으로 있는 성매매업소나 유흥업소를 노골적으로 시사하고 있다.또 주현미의 <신사동 그사람> 노래가사를 들먹이며 저자는 이렇게도 적었다.가사를 보면
"<시간은 자정넘어 새벽으로 가는데> 신사동에서 남자를 기다린다면 이 주인공의 직업은 뭘까?" 라며 예상하건대 유흥업소(성매매업소)종사자라는 뉘앙스로 표현하고 있다.[6]
저자 같은 독선적인 관점이라면 일반 평범한 연인끼리는 신사동이나 유흥업소 밀집 지역 근처에서는 만나자고 말도 해서는 안될 듯 싶다.성매매 타령만 늘어놓으니 말이다.
저자와 같은 시각으로 가요가사를 해석하려 든다면 만약 귀여운 미취학 여자 어린아이가 이 노래를 앙증맞게 불렀다면 내 생각에 저자는 이렇게 주장하지 않을까 싶다.<로리타>취향의 퇴폐적인 노래라고 말이다.
물론, 이러한 노래가 등장한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 당시 강남권이 놀기 좋은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건 사실이고, 임진모 평론가도 이러한 시대상과 연결지어 해석했지만, 노랫말 속 상황을 성매매라고 단정지은 것은 아니었다.

또한 이원복 먼나라 이웃나라에도 이러한 트로트 노랫말이 농담처럼 자주 인용되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도서이지만, 이 정도는 어린이에게 악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보았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트로트가 어린이에겐 적절치 못하다고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으나, 이왕이면 동요를 권장하자는 것이었지, 아이들 앞에서 금지해야 할 정도로 막장스런 상황을 다루었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금의 아이돌 노랫말보다 훨씬 건전하다는 게 기성세대들의 인식이다.

원래 성적인 확대 해석은 주로 기독교 계통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한 예로, 90년대 말에 나온 기독교 잡지 <낮은울타리>[7]에서는 아모레의 백화점 화장품 브랜드 헤라의 용기 디자인을 문제 삼았다. 당시 헤라의 용기 디자인은 정사각형와 원형이 결합한 형태였으며 리필 형식이었다. 정사각형 받침에 시험관 형태의 리필 용기를 끼워 쓰는 방식이었던 것. 지금은 사진을 찾을 수 없지만, 이 사진과 유사한 형태였다. 링크 디자인 콘셉트는 하늘과 땅의 결합이었다. 정사각형은 땅이고 원형은 하늘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기독교계에서만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었고 금욕적인 운동권이나 여성 단체들도 성에 대해 누구보다도 보수적이었기 때문에 솔직하게 사랑을 표현하는 대중음악이 주로 마녀사냥 검열의 대상이 되었다. 앞서 소개한 이영미의 주장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8]

당시 마광수가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라고 주장한 것도 여성 단체의 보수적인 태도를 강화하는 계기였다. 즉, 여자가 야해지는 것은 남자만 좋으란 것이니 무조건 정숙하게 행동하는 것이 여성을 지키는 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트페미들의 주장과는 정반대 입장이긴 하다. 트페미의 경우, 현아로 대표되는 노골적인 섹시 콘셉트는 걸 크러시로 받아들이는 반면, 청순 소녀 콘셉트로 활동하는 걸 그룹들은 롤리타 콘셉트라고 매도하는 경향이 있는데(예를들어 여자친구 Apink) 20~30년 전 여성 단체 관점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전자는 여성을 싸구려로 만드는 성 상품화이지만, 청순 소녀 콘셉트는 소고 건전하다며 바람직하게 보았던 것. 다만 현재 트페미들도 섹시 콘셉트야말로 노골적인 성 상품화라고 비난하는 경우가 주류로 보일 정도로 많으니 이 역시 성향이 딱 정해진 건 아니다.[9]

이처럼 확대 해석이 많다는 점에서 이들의 주장은 지금의 만물여혐설의 원조격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 포르노그래피》 의 저자이자 포르노 규제론의 핵심 인물이었던 페미니스트 안드레아 드워킨(A.Dworkin)의 경우 본인은 래디컬 페미니즘에 속했지만 그 주장은 문화에 대한 도덕적 검열을 한다는 점에서 보수주의와 다를 것이 뭐냐는 비판도 많이 받았다. 보호해야 할 가치가 기독교적 가치에 입각한 미풍양속이냐 아니면 여성의 인권이냐 하는 차이만 있을 뿐, 본질적으로는 기독교 우파와 다를 게 뭐냐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2010년대 후반부터 영미권에서 이런 고압적인 검열주의적 태도를 지닌 자들을 (SJW) Puritan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여기서 Puritan은 청교도 금욕주의자를 의미한다. 한편 한국에서는 "유교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유교는 설명이 불필요할 것이다.

이는 서구권에서도 설득력을 잃고있는데, 대표적인 예로 오징어 게임 지우학이 처음 공개당시 한국에서 여혐몰이를 당해 공격 당했지만 서구권에선 문제없이 받아 들이는 등, 한국의 페미니즘은 발상지인 서양 기준에서도 매우 심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4. 원인과 문제점

4.1. 강박 관념과 이로 인한 오해

사람이 하나에 집착하게 되면, 어떠한 것을 보더라도 전부 자신의 그 강박관념에 끼워맞춰서 보게 되는, 이른바 색안경 낀 시선으로 보게 된다. 이런 이들은 자신이 가진 피해의식 때문에 결국 트페미, SJW, 프로불편러, 페미나치 등으로 진화하기도 한다.

심리학에서는 사람이 어떤 특정 아이디어나 개념을 떠올리기 용이한 정도를 가리켜서 접근성(accessibility)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어떤 개념이 먼저 떠올랐다면, 그것과 연결되어 있는 다른 개념들에 대한 접근성이 대폭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의사를 떠올린 뒤에는 간호사가 쉽게 떠오르지, 보험회사가 쉽게 떠오르기는 어렵다. 초등학생들은 연필을 떠올린 직후에 지우개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접근성은 상황에 따라 바뀐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접근성이 반복적으로 떠오르다 보면 아예 '고정되는', 혹은 '굳어지는'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흔히 강박관념이라고 말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소위 정치병 걸렸다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특징이 바로, 그 사람과 함께 무슨 주제의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결국에는 " ○○○ 개새끼" 소리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낚시 이야기를 해도 이야기가 4대강으로 흘러가면서 이명박 욕이 나오고, 날씨 이야기를 해도 이야기가 미세먼지로 흘러가면서 문재인 욕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운동권에서 소위 골수분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무슨 얘기를 해도 자본가 욕으로 돌아가고, 소위 독실하다고 소문난 종교인들은 무슨 대소사에 대해 얘기해도 신의 섭리라고 해석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만성적으로 현저한"(chronically salient) 접근성이라고 말하는데, 이렇게 된 접근성을 떨어뜨리려면 적당히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다. 메타 수준에서의 체계적인 사고 훈련을 거치지 않으면 벗어나기가 정말 힘들다.

위에서 설명한 주화입마(…)가 페미니즘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아니, 페미니즘은 특히나 인식론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매우 전형적이고 극적인 양상을 보여준다. 제대로 사고하는 훈련을 받지 못한 평범한 여성들이 어느 날 페미니즘 도서 몇 권을 읽고 불현듯 깨달음(?)을 얻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렇게 높아진 접근성은 그 이후 자신이 겪는 경험을 모두 '여성에 대한 남성의 억압' 이라는 프레임워크를 통해서 인식하고 해석하게 만든다. 페미니즘은 인식론이기 때문에 개인은 자신이 어떤 인식의 렌즈를 사용하는지 성찰하지 못한 채, 이걸로 꽤나 잘 설명된다는 걸 발견한다. 그저 " 전엔 몰랐는데 이것도 여혐이었어! 나 방금 소름돋았어!" 만 반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은 것은 이것도 여혐, 저것도 여혐이라며 신나게 써먹는 일만 남았다.[10] 결과적으로 이들의 '여성억압' 개념에 대한 접근성은 만성화된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그런 상태를 " 매트릭스의 빨간 약을 먹었다" 면서 도리어 흡족해한다. 심지어 ''자가 들어가는 단어가 있으면 무조건 여혐단어로 몰고보는 부류도 있다.

물론 어떤 학술적 인식론이 일반 대중에게 전파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특히 사회과학 분야에서 논의되고 수행된 담론을 일반인 차원으로 전파하고 대중에게 알리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의미 있는 학술활동이 될 수 있다. 그것이 사회학일 경우 일반인들이 사회학적 분석을 시도하는 것은 공공사회학(public sociology)이라고 부르며, 시민과학(citizen science)의 일부로서 개인과 타인의 삶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낸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앞서 암시했듯이, 일반인들은 메타 수준에서의 체계적인 사고 훈련을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나 사회현상에 대한 분석은 가치가 개입되어 중립을 잃기가 쉽고, 동일한 현상에 대해 다수의 이론적 조망이 서로 경쟁하는 관계에 있으며,[11] 매사에 수학처럼 답이 딱 떨어지지 않는 편이고, 미시적 분석수준에서 작용하는 효과와 거시적 분석수준에서 작용하는 효과를 구분하기가 극도로 어려운, 그야말로 (비전공자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불지옥급 난이도의 학문에 가깝다. 이것도 여혐이네 저것도 여혐이네 하면서 이것저것 재단하고 다니는 사람들의 생각보다도,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세상 만사가 전부 '여성억압' 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다 설명되는 것이 아니며, 여성혐오라는 것이 모든 사회현상을 평가할 수 있는 만능 시약이 절대 아니다.

그렇다면 결국 이런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공인된 학위가 있는 사람들, 즉 여성학 전공자들이어야 한다. 체계적인 사고의 훈련을 통해, 개인적, 집단적, 생태적, 사회구조적으로 서로 다른 방향에서 작용하는 수많은 힘들을 조심스럽게 분리해 내야 하는 것이다.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 " 이거 나만 불편해?" 라고 말할 때, 이들은 그것에 대해 개인 간의 특수성으로 설명되는 부분, 그 집단의 특수성으로 설명되는 부분, 지역사회 범위의 특수성으로 설명되는 부분을 모두 제거해 내고, 그러고서도 남은 비하나 차별에 대해 "...그리고 이만큼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반성해야 할 구조적 모순입니다" 라고 설명하는 것이 정상이다.[12] 이렇게 보면, 오히려 여성학 전공자들이야말로 작금의 여성혐오를 둘러싼 혼란을 진화해 주고 교통정리를 해 줄 전문가들이다.

물론 이들의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억압받는 뭇 여성들의 일상적 삶의 경험을 자꾸 분석하고 재단하고 필터링하려는 시도 자체가 벌써 또 다른 억압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자신들의 울분에 찬 목소리를 낼 때, 그것을 있는 그대로 긍정해 주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진정으로 여성들의 분노를 생산적인 방향으로 바꾸고자 한다면, 일반인들이 길을 잘못 들거나 자중지란에 빠졌을 때, 혹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한 방향으로 그 울분을 표출하고 있을 때만큼은 그들보다 더 체계적인 사고의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는 정당한 자격으로 개입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결국 이 모든 혼란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효과적이고 건설적인 방식으로 사회의 변화 동력으로 변화시키지 못한, 그러면서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수수방관한 여성학 전공자들에게 그 책임이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여성들은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 거나 "역시 페미니즘은 정신병이다" 와 같은 (그들이 그렇게나 없애려 하던) 기존의 인식을 더욱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사실, 페미니즘의 역사 속에서 선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케이트 밀렛(K.Millett)을 비롯한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참정권 획득 이후 50여 년 동안 서구 페미니즘이 침묵기에 빠졌던 것을 두고 "여성해방 운동이 효과적으로 진행되지 못한 탓에 모두가 기진맥진해져서, 그저 참정권을 획득하는 선에서 만족하고는 제풀에 지쳐 주저앉았다" 고 설명한다. 이런 식으로라면 결국 사회는 더 많은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적당한 무언가를 내놓으려 할 것이고, 지쳐 버린 남녀들은 그냥 그것만으로 축배를 들고자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페미니즘은 인류 보편의 인권운동이 아닌, 여전히 변방의 ' 불편하신 분들' 이나 관심을 갖는 신세로 남을지도 모른다.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는 갈등이 종식되니 나쁜 일은 아니겠지만, 페미니스트들은 현명하지 못했다는 비웃음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4.2. 선정적인 개념과의 연결

이러한 용어를 사용하면서 여혐몰이를 위해 많이 사용하는 수단은, 본인의 자의적인 '싫음'을 사회적으로 나쁜 이미지가 구축된 용어로 끌어다 놓는 것을 거리끼지 않는 것이다. '여성혐오'나 '성 불평등', '젠더 감수성' 등의 '학술적'인 용어를 사용할 경우도 있지만 이러한 경우 강렬한 효과를 위해서 '소아 성애' '(시선/언어)강간'[13] 등의 사회 보편적으로 나쁘다고 여겨지는 단어에 자신이 두들기고 싶은 현상을 강제로 연결시키는 일이 많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 등지에서 '이런 것도 소아성애' '이런 것도 시선강간' 이라고 툭툭 던져지는 문장들을 보면 실제로 심각한 일, 실제 주의가 필요한 사건도 몇몇 가지가 있지만 굳이 더 강렬한 표현을 사용하여 임팩트를 주려고 한 일, 해당 주제와 관련이 없음에도 비논리적으로 연결된 일 등이 혼재하여 있다. 마지막 경우에 이르러서는 내(=여성)가 싫으므로 여혐을 띄고 있다, '방송/CF/인터넷에서 귀여운 척을 한다 = 귀여우면 어리다 = 어리다는 것을 매체에 표출=매체의 의도는 이성에 대한 성적 어필 = 소아성애' 와 같이 완전히 별개의 판단을 적용해야 하는 문제에까지 자신이 사용하는 '가장 충격적'이고 '사회적 파급력이 큰' 단어와 연관지으려는 시도를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이러한 프레임을 씌우다보니 정작 보호받아야 할 성폭력/성범죄 피해 여성들, 소수집단의 사회활동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하다.

4.3. 맥락을 고려하지 않음

원래 단어는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사전적으로는 욕설이라도 실제로는 애정 표현이거나 단어 자체로는 칭찬이지만 실제로는 돌려 까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런데 만물여혐설은 특정 단어가 부정적인 맥락에서 쓰인 사례에만 초점을 맞춰, 그 단어 자체가 본래 여성에 대한 차별을 담고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논란이 되는 것이다. 이는 문맥 같은 언어적인 맥락뿐만 아니라 상황적 맥락도 포함된다.

예를 들면, 처음엔 왜 사람들이 저런 막말을 하면서 비난하나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욕 먹어도 싼 사람인 경우가 그렇다. 실제로 어떤 작은 기업체의 사례를 소개하자면, 그 회사의 남직원이 평소 특정 여직원을 다방 레지에 비유하면서 비하 발언을 자주 하였다. 처음에는 이를 여성 비하라 여겼지만, 알고 보니 그 여직원은 사장의 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전횡을 일삼았고, 파벌을 만들어 직원들 사이를 이간질했으며, 자기가 찍은 동료 여직원을 괴롭히기까지 했다. 그 남직원은 이러한 실체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으나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바로 폭로하지 못했고, 나름대로 순화한 표현이 다방 레지였던 것이다. 사실, 그 남직원은 직원을 제외한 다른 여직원들은 예의를 갖추어 대했다. 즉, 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나름대로 저항을 한 것이므로, 이러한 말을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평소 여성 전체를 비하한다거나 특정 직업군에 있는 사람을 낮춰 본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전후관계를 고려하지 않는 페미니스트들의 대표적인 패턴 중 하나는, 열렬히, 극도로 '부분'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어떤 이야기에서 여성에게 함부로 대하던 인물이 종국에 파멸을 맞이한다고 해도, 그리고 이야기 내내 부정적으로 묘사된다고 해도 그런 건 상관없다. 여성에게 나쁘게 대하는 그런 장면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그 이야기 전체가 여혐이 된다. 대표적으로 데스노트 야가미 라이토를 들 수 있다. 그는 아마네 미사 타카다 키요미 등의 여성을 이용해먹으며 군데군데 그들을 무시하거나 조롱하는 독백을 한다. 하지만 라이토의 정의관에 찬성하고 안 하고를 떠나, 이런 언행이 들어가는 장면은 결코 긍정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라이토 특유의 썩소나 이기적인 사상을 곁들이며 '비뚤어진 인간'임이 줄기차게 드러나고 있으며, 무엇보다 라이토는 자신의 야망을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며 결국엔 아버지까지 희생시킬 정도의 패륜아다. 그리고 이는 다른 캐릭터에 의해서 비판까지 받게 된다. 그의 인격은 여성관 이전부터 문제점 투성이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요소들은 싹 배제하곤, 부분적인 장면, 대사만 쏙 빼와 '라이토는 여성혐오자, 데스노트는 여혐 만화'라고 규정한다. 아무런 공신력도, 권위도, 전문성도, 심지어는 숫자조차 확인되지 않는 집단이.

또한 본래는 만물여혐설과 무관한 주장이었지만, 페미니스트들이 메시지를 오독하여 아전인수격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여성을 예쁘다고 하는 것은 칭찬이 아니다" 라는 발언이 그러한 예인데, 본래는 ① 입에 발린 칭찬으로 여성에게 접근하여 성희롱이나 사기 등의 범죄를 저지르는 남자들을 비판하거나 ② 여성이 어떤 사회적 성취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신체적 미모만 집중적으로 부각하면 그 사람이 '예쁜 것 외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 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의도가 있었다.[14] 따라서 친밀한 사이가 아니라면 저런 발언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고, 사실 이러한 생각은 부모들도 기본적으로 한다. 그런데 이런 맥락을 무시하고 "예쁘다고 하는 것은 칭찬이 아니다"라는 문구만 퍼뜨려 놓으니, 외모를 칭찬하는 것 자체가 잘못인 것처럼 전달된 것이다. 인간의 다양성, 인격 형성 과정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이 없이 그 사람이 왜 이런 성향을 가졌는지는 철저히 무시하고, 그 존재 자체를 죄악시하며 배척할 뿐이다. 남성은 물론, '여혐'의 범주에 속하는 현존 여성들까지도. 무언가를 여혐으로 판명하는 객관적이거나 합의된 잣대조차도 없다보니 자신들끼리도 서로간의 해석이 다르므로 '어느정도까지를 여혐으로 삼아야 하는가'를 주제로 싸우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여성 전투기 조종사가 등장한 것을 보고 "여자가 이런 것도 하다니 대단하네요"라고 감탄하는 것과 "여자가 감히 전투기를 몰겠다고 설쳐?"라고 하는 것은 비록 둘 다 성평등에 매우 어긋나는 관점이긴 하지만, 차이는 있다.

전자와 같은 태도를 보이는 사람은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여성이 남성만 있었던 영역에 진출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으며 오히려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외국인이 김치를 먹는다거나 국악을 한다고 신기해 하는 것이 외국인 비하는 아니지 않은가? 단지 평소에 자주 보지 못한 상황을 보고 감탄한 것일 수도 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전투기 조종사는 절대다수가 남성이었고, 이것은 어떤 논리를 가져와도 부정할수 없는 사실 그 자체다. 이런 현실을 보고 있다가 여성 전투기 조종사 같은 매우 드문 예를 보니까 그저 신기함을 표출하는 것일 수도 있다.따라서 이같은 사례가 계속 늘어난다면 전투기 조종은 남성의 역할이다라는 고정관념 또한 자연히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후자는 말 그대로 남성만 있었던 영역에 진출하는 여성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은 여성이 기존에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직종에 진출하는 것에 반감을 갖는다. 전자와 다르게 후자는 정말로 명백한 '여혐'일 수 있다.

따라서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달라야 한다. 전자의 경우는 그게 왜 고정관념인지를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것으로도 충분하지만, 후자의 경우라면 세게 나올 필요가 있다. 즉, 평화적인 대화로 의견 차이를 좁혀야 할 사람과 단호하게 대해야 할 사람은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부류를 모두 이른바 여성혐오라 뭉뚱그려버리면, 가벼운 고정관념만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당혹감을 느껴 페미니즘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또한 가벼운 고정관념까지 여성 비하로 치부할 경우, 남성에 대한 고정관념도 남혐으로 분류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남자가 음식을 예쁘게 플레이팅했다거나, 청소를 깨끗이 하는 것, 자수를 섬세하게 놓는 것을 보고 남자가 이런 걸 하니 놀랍다고 감탄했다면 이것은 남혐이 되어야 한다.[15] 물론 이런 말을 듣는 남성들에겐 이것이 칭찬 아닌 칭찬으로 불편하게 다가오겠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말을 하는 사람들을 남성혐오자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그렇게 얘기하면 그 사람은 또다시 여성혐오자로 몰리지 않겠는가? 그러나 소위 말하는 여혐론자들은 이에 대해 기적의 논리를 덧붙이는데 "강자에 대해서는 혐오가 성립하지 않는다"라는 것.[16] 당연히 사회 전반적 경향과 상관없이 여성이 상사고 남성이 부하인 등 상황 따라 강자와 약자는 바뀔 수 있는 것이므로 물론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페미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땅콩회항 사건에 대해서도 성별만으로 박창진이 강자고 조현아가 약자라고 주장할 정도. 사실 이건 당연한 일이다. 페미니스트들에게는 항상 여성은 약자고 피해자여야 하는데, 그게 자신들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 이 때문에 오히려 "남자가 이런 걸 하니 놀랍다" 라는 고정관념도 여혐이라고 주장한다. 남자가 하니 놀랍다는 건 여성이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는 것이기 때문. 즉 여성에게 고정관념이 있어도 여성 비하이고 남성에게 고정관념이 있어도 여성 비하이다. 거꾸로 얘기해서, 이들의 논리에 근거하자면, 여성에게 고정관념이 있어도 남성 비하이고 남성에게 고정관념이 있어도 남성 비하다. 아닐 이유가 뭐가 있는가? 그럼 또다시 '강자는 혐오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사실, 페미니즘 철학계에서도 이미 이런 문제에 대한 우려는 제기된 바 있었다. 《 혐오와 수치심》 이라는 유명한 책의 저자로 유명한 마사 너스바움(M.Nussbaum)은 1995년에 이미 자신의 논문에서[17]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언급하면서, 어떤 발언이 여성을 대상화하는 것인지 아닌지 판단할 때에는 "맥락이 가장 중요하다"(context is everything)고 언급한 적이 있었다. 해당 문헌을 읽어보면 가상의 한 사례를 들고 있는데, 예컨대 어떤 여성이 중요한 채용 면접을 앞두고 마을 밖으로 출타해야 하는 상황에서, 다른 남성이 "뭐 하러 거기까지 가? 그냥 네 얼굴 사진만 보내." 라고 말하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이를 두고 "여성의 가치가 외모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이거 여혐이다!" 라고 주장하는 요즈음의 페미니스트들과는 달리, 너스바움은 매우 신중한 태도를 취한다. 만일 이 남성이 여성과 사적으로 친하지 않은 사이라면, 실제로 여혐일 가능성이 높다. 만일 사적으로 친하다면, 어떤 경우에는 여혐일 수 있고, 이때는 친하지 않은 남성이 같은 말을 할 때보다 여성에게 더 큰 피해를 끼칠 수 있다.[18] 하지만 다른 경우에는 여혐이 아닐 수 있는데, 멀리까지 나가서 어려운 면접을 치러야 하는 자신의 애인을 남성이 진심으로 걱정해서 한 말일 수도 있으며, 혹은 이 여성이 지원하려는 직종이 모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논문이 쓰인 지 10년이 지난 후의 페미니스트들은 이만한 신중함을 보이지 못하거나, 보이기를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그냥 무시하는 걸지도.

이처럼 맥락이 무시된 채로 여혐이라는 비난만 남는 상황은 심지어 상대방이 남성 페미니스트이거나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는 정치인들이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는 경우에도 나타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 여성 인권을 챙기다" 라는 표현이 있다. 이 표현은 얼핏 페미니즘에 호의적인 듯 보이지만 정작 여성학계에서는 젠더 권력의 불평등을 암시하는 언어적 징후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19] 이 표현이 듣기 메스꺼운 일각에서는 이 표현이 나왔다 하면 상대방의 진심이나 본의는 무시한 채로 무조건 비난하기도 한다. 예컨대 어떤 정치인이 " 아니, 여성 인권도 챙기긴 해야겠지만, 일단은 경제부터..." 라고 말했다면, 이 맥락 속에서는 페미니스트들의 도덕적 비난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남성 정치인이 "젠더 불평등한 사회 속에서, 저는 여성 인권까지 함께 챙깁니다!" 라고 유세를 한다면, 전후 맥락에 비추어 볼 때 이 사람은 어떤 '젠더 위계' 속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설혹 이런 언어적 표현들로 인하여 우리 사회 전체의 젠더 감수성이 급락하는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적어도 이 정치인의 선의만큼은 진심이며, 여혐이라고 욕을 먹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표현 하나가 맥락으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저거 봐, 여성 인권을 감히 '챙긴대'! 저거 나만 불편해?"라며 꼬투리를 잡히기 시작하면, 그 하나를 단서로 하여 그 사람 자체가 여혐론자로 낙인찍히게 된다.

4.3.1. 침소봉대와 답정너

어떤 가수가 음반에 달달한 발라드와 트렌디한 댄스 음악을 같이 넣어 발매했다고 하자. 이런 경우 발라드곡 가사는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주제로 잡고 섬세한 감정 표현에 중점을 두지만, 댄스 음악은 가사가 다소 야한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전자는 건전하다는 평가를 받으므로 남녀노소가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지만 후자는 호불호가 엇갈린다.

그런데 만물여혐설의 경우는 같은 가수의 노래 중, 후자의 경우에만 포커스를 맞춰 그 가수가 그러한 노래만 부른 것처럼 매도한다. 일반적인 반응과 다른 점은, 일반 대중들의 경우 전자에 해당하는 노래를 주로 소비하고, 후자는 외면하는 정도로 그치지만, 만물 여혐설의 경우는 후자에 해당하는 작품이 그 가수 음악 세계의 전부인 것처럼 본질을 호도한다는 것이다.

또한 앨범 수록곡 중에 배신한 연인을 주제로 한 곡이 한 곡이라도 있으면, 특정 성별을 매도한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남자 가수의 노래 중에 여자 친구가 자신을 속이고 양다리를 걸쳤다거나 비싼 선물을 요구하는 것을 비난하는 내용이 있다면 모든 여성을 김치녀로 매도한다는 식으로 확대해석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과거 연인을 비난하는 노래는 여가수의 노래 중에도 많이 있었고, 일부에서 이를 불편하게 여기는 경우도 있다. 성재기 백지영의 노래를 남성 비하라고 문제 삼은 것이 그러한 케이스. 또한 렉시의 대표곡 <애송이야>도 일부에서는 요즘 남자들 다 애송이야라는 부분 때문에 거부감을 보이기는 했지만, 전반적인 여론은 아니었다. 당시 렉시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고, 물론 남팬들도 많았기 때문. 저 당시에는 그냥 도도하게 섹시한 콘셉트나 쎈 언니 콘셉트 정도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20]

물론 문예 분야에서 같은 작품이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채만식 치숙이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독립운동가를 조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독립운동가를 조롱하는 사람을 풍자하는 내용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교과서에 등장하는 문학작품은 권위 있는 연구자의 해석이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오독될 여지가 적다. 하지만, 유명하지 않은 작품의 경우,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오독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치숙은 단순히 친일파만 돌려 까는 게 아니라, 여성을 착취하는 입진보도 까는 모두까기식 작품으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다.

뿐만 아니라 대중음악의 가사도 다각도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데, 에미넴의 경우 에미넴의 전처를 모델로 한 노랫말 때문에 당시에 여혐 논란이 거셌지만, 페미니즘 성향의 여성 리스너 중에서도 이 가사를 단순히 여혐으로만 볼 수 없다는 지적이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폭력성의 이면에 감춰진 자학 심리도 묘사되어 있는데 그 점을 비평가들이 간파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드러난 에미넴의 개인사에 비추어 보면 후자의 해석도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는 시인 중에서도 에미넴 가사의 패드립을 모친에 대한 진한 애증 심리라고 해석한 사람이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에미넴의 가사는 그저 여혐이 아니라, 나름대로는 문학성을 갖춘 텍스트인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등장하는 여혐 논란은 이런 복합적인 측면을 고의적으로 무시하고 표면적인 것에만 주목한 1차원적인 해석이 많으며, 그 해석을 정설이라고 강요하는 여론몰이에 목적을 둔 경우가 많다.

해당 문단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대중문화 검열 및 규제론과의 관련성 문단 참조.

4.4. 트라우마

실제로 잘못된 사회 구조로 인한 피해를 경험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게 되는 경우이다. 프로불편러, 진지병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다만 이 경우는 일종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이므로 조롱이나 비난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 사실, 사회적 차별은 은밀하고 교묘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겉보기에는 문제 없어 보이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을 모두 피해망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추미애를 비판하면서 미친년 하나 때문에 고생한다라고 발언하는 남성이 있다면 이란 표현 자체에 강한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추미애가 노처녀 히스테리를 부린다라는 막말을 들었다면, 미스추란 평범한 단어를 들었을 때도 그러한 상황을 자동적으로 연상하기 쉽다. 또한 '오빠가~'라고 말을 꺼내며 치근덕거리는 남자들한테 시달린 경험이 있다면 오빠라는 단어만 봐도 진저리 칠 것이고, 똥군기가 강한 집단에서 시달렸던 사람이라면 '형님'이란 단어도 끔찍하게 들릴 수 있다. 특히 평소 행실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발언을 해도 그 의도가 부정적으로 여겨지게 마련이다. 문제는 발언을 누가 했는지, 어떤 상황에서 나온 발언인지를 고려하지 않고 '~라고 말하면 무조건 여혐'이라고 딱지를 붙인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것과 똑같이 여혐이라고 낙인찍혀서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 역시 나오고 있다.[21] 그런데 이 경우에도 PTSD로 인해 트위터 페미니즘 자체에 대한 반감을 가질 수 있는데, 문제는 페미니스트들은 자신의 트라우마로 인한 반감은 조롱이나 비난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지만 자신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에 대해서는 "조롱의 대상이 되어도 문제없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결국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극단에 빠진 사람들만 양산되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중이다.

한국의 치안 수준은 세계 상위권임에도 불안감은 높은 것에 대해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와 가짜 뉴스 탓이라는 분석이 있다. # 이수정 교수는 이런 문제에 대하여 한국의 페미니즘이 피해자학에 매몰되어 "피해망상적 페미니즘"으로 변질되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

4.5. 공격적 선민의식과 독단적 강요

우선 한국어 '여성혐오'와 영어 'misogyny'는 완전히 같은 뜻이 아니다. 한 언어의 단어와 다른 언어의 관계는 크게 '번역어'와 '대역어'로 나뉘는데 '번역어'란 뜻이 완벽하게 동일한 경우, 가령 영어 Apple(과일)과 한국어 사과(과일)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대역어'는 완벽하게 뜻이 동일한 단어가 존재하지 않아서, 다른 언어에 있는 단어중 가장 뜻이 적합한 단어를 뜻한다. 여성혐오도 '대역어'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 국립국어원의 판단에 따르면, 2016년 7월 27일 작성된 공개 질문글에서 국립국어원은 여성혐오는 여성을 싫어하고 미워한다라는 뜻이라고 정의했으며 # 2016년 10월 3일 국립국어원이 우리말 샘에 추가한 # '여성혐오'의 단어 데이터를 보아도 '여성을 병적으로 싫어하고 미워하는 일.' 라고 정의하고 있으며, misogyny는 번역어가 아닌 대역어라고 판단하고 있다. #

국가기관인 국립국어원의 판단이나 단어사전, 국어적 근거들이나 맥락을 일체 무시한 채 특정 계층에서만 언어의 뜻을 왜곡하여 사용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명백하게 언어의 사회성을 위반하는 행위다.

최소한, 여성혐오라는 용어는 그저 여성학에서 사용되는 학술적인 용어일 뿐이며, 적어도 한국에서는 사회 통념적으로나 표준적으로 정착된 말이 결코 아니다. 마치 물리학에서 사용하는 이라는 용어의 정의가 다른 사회과학 학문에서 통용되지 않으며 철학에서 애매와 모호를 구분지어 쓰는 것과 달리 일상에서는 완전히 동일한 의미로 쓰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 볼 수 있다. 이것 자체는 학문의 발전 과정에서 어디서나 어느 정도씩 나타나는 경향이기는 하나, 문제는 이 개념의 찬동자들이 이 말을 보편적으로 다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합의된 용어인 양 사용하려 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용어를 무조건 여성학에서의 정의대로만 사용해야 할 이유는 없으며, 여성학에서의 정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부할 자유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여성혐오'나 '미소지니'의 뜻들은 페미니스트들이 일방적으로 해석하여 강요하는 것에 불과하며, 이에 대해선 아무런 국어적 근거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그러나 누군가가 이런 독단적이고 강압적인 언어의 전용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거나 기존에 합의된 방식으로 언어를 사용하면 오히려 상대방을 윽박지르고, 훈계하며, 조롱하고, 결국 당신은 배울 생각도 없는 거라며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이런 난맥상 속에서 최소한 듣는 이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두 용어가 그 용례상 "어째서 다른지" 설득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몰라도, 그런 지식조차 갖추어져 있지 않을 때에는 전혀 신빙성이 생기지 않게 된다.

사실, 일본에서도 여성혐오의 어원인 '미소지니' 역시 그 용어가 들어올 당시 가타가나로 음역했으며, '여성+혐오'와 동일한 단어로 보지 않는다. 자세한 내용은 여성혐오 문서 참조.

게다가 앞의 요소들을 보면 알겠지만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뭉뚱그려 표현하기에 언어적으로 모호성까지 겹친다. 당장 여성혐오란 단어만 성차별적, 혹은 성 고정관념에 종속된, 이 정도로만 단어를 바꿔줘도 크게 불평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뿐더러 혼동을 줄일 수 있다. 당장 여초 커뮤니티에도 남성혐오는 말 그대로 혐오면서 여성혐오는 저런 포괄적으로 쓰이는 이유에 대해서 질문하는 유저들이 많다.

페미니스트들이 "이 단어는 이러이러한 뜻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 전혀 국어학적인 맥락을 따르고 있지 않다는 것은 이들의 지적 배경에서 보더라도 추론이 가능하다. 굳이 학술적인 계보를 말하자면 프랑스 쪽 언어 철학이나 포스트콜로니얼리즘 배경의 사회학, 정신분석학 (특히 라캉철학) 분야 등을 배경으로 하여 문예비평, 문화비평, 사회비평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맥락을 따르고 있다. 이들이 바라보는 '혐오' 란 결국 정동(affekt)이라는 개념화가 가능한데, 본래 이는 철학 용어였다. 국내의 유명한 페미니스트인 손희정 평론가가 영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윤김지영 연구전임교수는 프랑스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들이 이런 학력을 내세우면서도 (엄연히 사회과학의 영역에 속하는) 사회현상에 대한 평론활동을 하는 현실은 이 바닥에서는 전혀 놀랍거나 드문 일이 아니다.

더 많은 내용은 정동 문서도 함께 읽어보자.

4.6. 아이돌 팬덤 간 경쟁

한 마디로, 여혐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여혐을 빌미로 상대방을 궁지에 몰기 위해 억지로 논란을 만드는 경우이다. 남자 연예인에게 여혐 논란이 생겼을 때 그 연예인의 인기에 타격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을 이용하여 이런 식으로 루머를 퍼뜨리고 갈등을 조장하여 불필요한 논란을 유발하는 것이다. 따라서 라이벌 팬덤에서는 이러한 효과를 노리고 일부러 논란을 창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포털에 올라온 아이돌 기사 댓글들을 보면 저런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막장성이 심하기로 악명 높은 일부 여초 커뮤니티에서 저런 논란이 심하다.

예를 들어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내용의 노래를 부른 가수라면 "헤어졌으면 구 여친을 위해서 깨끗이 잊어야지 구질구질하게 못 있느냐, 이건 집착을 담은 노래이니 성폭력이다" 라는 논리로 공격한다. 여기서 집착이란 스토킹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며, 마음속으로만 그리워하는 상황을 그렸다 할지라도 마음으로는 이미 변태같은 스토킹을 했다는 논리를 내세워 여혐으로 몰고 간다.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대학 시절 여자친구를 창작의 모티브로 삼아 수많은 곡을 써 온 싱어송라이터 신승훈, 정석원도 여혐이란 결론이 나온다. 사실 이들은 구 여친이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정석원은 <그녀의 딸은 세 살이에요>라는 곡까지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엔 농담조이긴 하지만 구 여친 입장이 참 난처했겠다는 얘기가 나오긴 했다. 하지만 정말 진지하게 이들을 여혐이라 비난하는 사람들은 없고, 대개 이런 논란이 어린 팬층을 타깃으로 한 아이돌 가수에게만 따라 붙는 것을 보면 팬덤 간 견제일 가능성이 높다.

더 클래식의 마법의 성은 왕자가 공주를 구해 주는 내용이지만, 당시엔 이것을 젠더 불평등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렇다고 저 당시에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의 수동성에 대한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법의 성은 동심을 담은 동화 같은 내용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대다수여서 21세기에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애청되는 편이며, 물론 논란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 반면 아이돌 노래 가사의 경우에는 이에 대한 논란이 심하다.

아이돌 팬덤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렇게 억지 논란을 만들어내는 사례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다만, 이것은 같은 여초 커뮤니티 안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나쁜남자 캐릭터를 좋아하는 여성팬도 있고, 이러한 팬층을 겨낭해서 너를 망쳐 주겠어라는 식의 노랫말도 나오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 페미니즘 관점에서는 논란이 될 수 있지만, 최근에는 이런 취향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 기사를 참조하자.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저런 논란을 제기하는 팬덤이 좋아하는 가수 또한 윤리적인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범죄 사실이 확인되어 물의를 빚은 아이돌의 팬들이 타 가수를 타깃으로 여혐 논란을 제기한다거나(...). 이런 경우, 여혐 논란에 휘말리는 쪽은 적어도 범죄에는 연루되지 않았기에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는 찻잔 속의 태풍 논란인 경우가 많다. 즉, 애초에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문제 삼을 수가 없기 때문에 새 시대의 윤리라는 명분으로 논란을 창조하는 것이다.

사실, 어느 시대에나 무개념 팬들은 존재했고, 팬덤의 규모가 클수록 저런 사람도 많이 생겨나는 법이기에, 과거 무개념 팬들 중에 일부가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저러는 경우는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더군다나 나이 부심까지 더해져서 뻔뻔하게 행동한다는 게 문제.

4.7. 이중잣대 모순

페미니즘이 비판 받기 가장 쉬운 근거가 될 수 있다. 대표적으로는 핑크택스이다. 대략적으로 비교적 여성이 많이 사는 물품은 무조건 비싸다. 왜냐하면 효과적으로 여성들의 돈을 빼앗는 식의 상술이라는 주장인데, 쉬운예시로 마카롱이 있다. 마카롱은 재료도 계란과 설탕만 들어가기 때문에 재료값에 비해 비싸고, 그이유가 상대적으로 여성이 많이 사먹는 간식이기에 그렇다는 주장이 있었다. 하지만 또다른 예시로 한때 돈까스를 무한리필로 제공하는 식당에서 남성에 비해 여성들은 적게 먹으니 여성들의 값은 덜 받는 다는이유로 이것이 여성을 무시하는 여혐이라며 주장하기도 했다. 대부분 이런식으로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무작정 여혐으로 몰아가는 식인데, 정반대의 상황에서 조차도 여혐몰이를 하는것은 이중잣대라는 의견이 있다.

또다른 예는 다음과 같다.

파일:15ba0a58f0f48b87b.jpg

결국 이 상황에서 여혐이 되지 않으려면 남자가 당나귀를 타고 여성이 그 당나귀를 탄 남성을 타고(...) 갈 수밖에 없다. 물론 그것마저도 여자가 스스로 걸을 수 있다는 걸 무시하여 여혐이 될 여지가 있다. 아니면 남성이 여성과의 신체 접촉을 통해 성폭력을 하는 것이라서 여혐이라는 논지도 가능하지 않을까?

불행한 현실이지만, 만물여혐설에서 이른바 여성혐오인 것은 매우 간단하다. 다른 건 모두 덮어놓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 여성혐오다. 여혐무새의 모순을 정리한 지식in 답변 참고.( 아카이브) 굳이 자세하게 적자면 아래와 같다. 그리고 몇몇 상반되는 예시로 확인할 수 있듯 심지어 서로 반대되는 명제조차도 여성주의적 사고에 기반한, 그때그때 전혀 다른 이유로 여혐으로 모는 것이 가능하다. 쉽게 말해서 이래도 여혐, 저래도 여혐이 되기 때문에 세상 모든 것이 다 여혐이라는 논리이다. 루이스의 법칙을 참고하면 좋다.

암소고기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음식점마저 여혐으로 취급하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그러나 쇠고기 돼지고기든, 수컷 고기는 근육량으로 인해 육질이 질기고 누린내가 나기 때문에 암컷이 더 맛있다는 것은 축산업 전문가나 도축업자가 아닌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퍼진 상식이다.' 이 때문에 축산물의 경우 암컷 고기의 품질을 더 높게 쳐주고, 암소고기 전문점의 존재도 당연한 결과인데, 이들에게는 그런 일반적인 상식조차도 없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저들의 논리대로라면 여성들에게 누린내 나는 수컷 고기를 먹으라고 하면 그것도 여혐이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그 정도가 심해지면 심해지지 나아지진 않아서 그저 여자캐릭터가 치마를 입고있거나 머리카락이 길다는 이유로 성편견을 가지냐며 욕하거나 여혐이라고 우기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이는 등 정도가 매우 잦아졌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여자가 바지를 입거나 머리카락이 짧아도 성편견이라는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즉 그들의 논리를 따르면 어떤 캐릭터든 아예 만들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논리는 모순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은 정도가 아니라, 모든 것이 모순으로 사실상 그 어떠한 주장도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니 자가당착을 하나하나 실생활에 대입해 보면 삶은 곧 여성혐오이며, 모든 인간은 여성혐오자가 된다. 심지어는 같은 여성조차 여성혐오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으며, 더불어 발제자조차도 여성혐오자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상단에서 소개했던 철학자 패트릭 홉킨스는 이래도 여혐이고 저래도 여혐일 수밖에 없는 페미니스트들의 논쟁에 대해, 문헌의 71페이지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례를 들고 있다. 페미니스트들의 엄격한(?) 기준에 비추어 본다면, 페미니즘의 역사 속에서 제기된 바 있는 사실상 모든 종류의 주장들이 전부 여혐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13번 각주에서 그는 페미니즘 전반에 대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지 말아 달라고 주의를 당부하긴 했지만, 본질적으로 이런 종류의 논쟁이 근본주의적이고 오소독스한 시각에서 볼 때 그 어떤 것도 여혐으로 몰리기 시작하면 헤어나올 구멍이 없다는 것을 잘 볼 수 있다.
※ 발제: 여성이 신체적으로 연약하다는 사회적 인식에 저항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여자 보디빌더들이 있지 않은가? 이들은 자기 힘을 키우고 육체적인 단련을 하면서 남성들이 부여한 여성성에 저항한다!
→ 아니다! 힘과 육체적 단련에 대한 집착 자체가 남성의 가치가 아닌가? 당신은 여성들에게 남성의 이상을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 그 여성들이 전통적인 남성성의 가치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자신의 몸을 관리하고 자기실현을 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 아니다! 자신의 몸을 소유한다는 개념 자체가 남성의 가치가 아닌가? 당신은 여성들에게 남성들의 가치관을 내면화하게 만들고 있다!
→ 당신이야말로 남성 가치를 내면화한 명예 남성이다. 남성의 가치관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여성의 자기 정체성의 가능성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 다 틀렸다. 자기 정체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남성적인 것이다! 우리 여성들은 공동체와 상호 간 유대에 관심을 갖지만, 남성들은 타인과 분리된 자아 및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에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 그 생각이야말로 여혐이다. 여성들이 타인을 위한다는 통념 자체가 전체를 위해 개인을 기꺼이 희생시키는 남성들의 논리에 봉사하기 때문이다!

논쟁이 이런 식으로 흘러갈 경우, 페미니즘 내부에서는 자체적으로 이러한 비생산적인 '정통 논쟁' 에 브레이크를 걸 장치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을 타당하게 설명하기보다는 누가 더 자신들의 이념에 철저한가에만 골몰한 끝에 아예 학문분야 단위로 주화입마를 해 버릴 수 있는 것이다.[22] 이런 총체적 난국 속에서 자신의 도덕적 지위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자신이 공격받기 전에 상대방을 먼저 공격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혼란이 한바탕 지나가고 나면 한때 페미니스트였던 (혹은, 한때 여성혐오를 하지 않는다고 여겨졌던) 수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여성혐오자로 재탄생하는 모순이 일어난다.

결국, 일점 일말이라도 "가부장적" 내지는 "여혐적" 이라는 비난의 여지를 허용하지 않는 완벽하게 평등한(?) 아이디어나 발언, 태도, 사상이라는 것은, 페미니즘 내부에서 통용되는 논의들까지 전부 포괄해서 검토한다고 쳐도, 존재하기 어렵다. 모든 주장이 사실상 전부 특정한 합리화 논리로 인하여 여혐이라고 얼마든지 몰릴 수 있다. 결국 위의 2.4. 단락에서도 누차 밝혔듯이 "김 비서, 예쁘네?"[23] 같은 말들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 전후상황과 맥락을 전부 신중하게 검토해 보아야 하지만, 이런 주장의 페미니스트들은 그 모든 맥락을 무시하고 진공 속에 놓인 특정 대상을 향하여 토끼몰이식 마녀사냥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맥락맹(-盲)", "탈맥락화", "맥락으로부터의 탈각(脫却)" 을 목놓아 호통치며 사회를 준엄하게 훈계하려 하는 사람들이 바로 페미니스트라는 것이다.

5. 만물여혐설이라고 지적받는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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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관련 문서


[해석] 왼쪽부터 《 비만 혐오, 성희롱, 가부장제에 의한 남근 상징물, 팔려간 사육사, 미래의 강간범, 맨스플레인, 거식증, 쩍벌남, 인터넷에서 성희롱 중》 [2] 그렇다면 앞으로 영화 시장에서는 성별이 없는 캐릭터들만 내야 할지도 모른다. 또는 영화 안에서 아무도 피해를 입지 않고 평화로운 내용만 지속되다가 끝날 지도. 그런데, 그게 영화인가? 우리가 영화를 보는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이건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조차 없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남성캐릭터가 죽으면 이제 남혐 성향을 드러내는 영화인가? [3] 실제로 여혐론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남자가 여자를 보호하려 하는건 여혐이지만, 남자가 여자를 보호하지 않는 것도 여혐이다.(...) 그리고 자신의 '명령'을 들어줄 남성이라는건 여성숭배이므로 여혐이다.(...)뭘 해도 지랄 [4] 페미들이 '성범죄 당한 사실'을 성대결의 무기로 활용하려 한 예가 이미 몇건이나 적발되었다. 스스로의 존엄성은 물론 여성들이 성범죄를 당할때마다 받는 억울한 편견(자기가 잘못해서 당한거다, 꽃뱀이다 등)을 없애기 위해 그동안 다른 여성단체들이 피나게 노력해온걸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린것은 둘째치고, 그것조차 진짜로 성범죄를 당한게 아니라 허위로 조작했기 때문에 더더욱 죄질이 심각하다. [5] 다만 위와 같은 문제는 '혐오'라는 말의 부정확한 개념 때문인 면이 있다. '장애인 혐오', '외국인 혐오' 등 사회적 차별을 이야기할 때 '혐오'라는 말은 싫어하거나 반감을 가졌다는 뜻 외에도 차별, 고정관념, 아래로 보는 행위 등을 포괄적으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 많은 사람들이 여성혐오의 '혐오'를 전자의 의미로 이해하는 데 반해 페미니스트들은 후자의 의미로 사용하기에 벌어지는 논쟁인 경우가 많다. [6] 이 노래가 발표된 시점은 1988년이다. 아무리 당시가 지금보다 보수적이었다고는 하지만, 심야 통금은 이미 80년대 초에 폐지되었으니, 한창 사랑에 빠진 평범한 남녀일 가능성도 있다. [7] 사탄은 마침내 대중문화를 선택했습니다라는 모음집을 낸 저자가 펴낸 월간지였다. [8] 더군다나 운동권 출신이 쓴 대중문화 평론은 대중문화를 소재로 한 정치 비평에 가까웠다. 지금은 폐간된 <코리아>라는 영화 잡지가 그런 케이스였는데 일반적인 관점에선 프로불편러라고 생각될 부분이 많다. 관심사는 다르지만 논리 구조가 놀랄 만큼 흡사하다. 즉 정치병, 진지충의 여성판이 만물여혐설이란 얘기. [9] 보통 이들이 말하는 걸 크러시란 자유분방에다가 여성우위, 최소한 남성에게 전혀 꿇리지 않는다는 식의 이미지를 보여줘야 하는 거지 단순히 섹시미만 보여준다고 걸크러쉬라고 하는 게 아니다. 단순히 섹시미만 보여주는 경우에는 성상품화라고 매도된다. 당장 똑같은 노출이라도 팜므파탈스러운 펑크식의 복장을 하고 강렬한 '반항적'이고 거세보이는 메이크업을 한 모습과, 그런거 없이 단순히 노출만 많고 조금이라도 '순종적'으로 보이는 메이크업을 한 모습은 트페미들로부터의 평가가 180도 달라진다. [10] 트위터 상에서 싸구려 라이터 하단의 작은 기름주입구를 두고 몰카 구멍 아니냐고 난리가 났던 해프닝은 유명하다(…). 이건 하도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오히려 지능적 여혐러 내지는 "한남" 아니냐는 소리도 나왔다. 당사자는 극구 부정하지만. [11] 당장 페미니즘과 경쟁하는 유명한 이론적 조망이 바로 진화심리학에서 쓰는 진화론이다. [12] 물론 매사 이렇게 접근하는 건 극도로 힘들다. 그 사건이나 주제에 대해 모든 특수성을 띠는 정보가 다 가용한 것도 아니고, 매번 각 분석수준의 효과들이 수치적으로는 택도 없거니와 서수적으로도 엄밀하게 확인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 그러다 보니 자꾸 가장 간단한 측정 수준, 즉 YES or NO 수준의 "여혐이다 아니다" 논의밖에 안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남들보다는 그래도 이런 식의 사고를 더 잘 하라는 차원에서 우리 사회가 일부러 여성학이라는 특수한 코스워크를 마련한 것이 아니던가? [13] 시선 강간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말도 안 되는 모순이 있는 단어이다. [14] 이에 대해 "그럼 여성한테 '참 못생겼네요' 라고 말하라는 말이냐" 는 항변이 있으나, 이상의 의도를 고려하면 이 역시 맥락을 반영하지 못한 항변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아름다운 여성일수록 지적으로는 멍청하다" 는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더욱 예민한 편이다. 그리고 이 고정관념 때문에 자기 이미지에 가장 심하게 손해를 봤던 인물이 바로 저 유명한 마릴린 먼로다. [15] 편견은 맞아도 혐오는 아니란 뜻이다. [16] 혐오라는 단어의 뜻만 생각해봐도 강자에겐 혐오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말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소리인지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전 세계에서 인정하는 초강대국이지만, 그에 반해 미국을 혐오하는 반미주의 국가들도 많다. 러시아 역시 초강대국이지만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러시아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다.또 역대 대통령들이 국민의 하수인을 자처하긴 해도, 그들은 국민 개개인보다는 강자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욕을 더 많이 먹고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즉 여성이 사회적 약자이므로 남성혐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헛소리에 가깝다.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성 소수자들이 강자의 포지션에 속하는 이성애자를 향해 내비추는 헤테로포빅은 엄연히 혐오로 규정되고 있다. 이건 사실상 '혐오'라는 단어를 통해 젠더간 권력차를 비판할 권리는 오로지 여성만이 가지겠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따지면 젠더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가진 여성은 젠더퀴어의 존재를 정면부정하는 것이 되므로 이들은 젠더퀴어 혐오를 하는 것이지만[30] 젠더퀴어에게 어떠한 혐오를 당해도 내가 여성혐오를 당하고 있다고 입밖에도 낼 수 없어야 한다. 젠더퀴어는 엄연히 여성보다 약자에 속한다. 약자인 젠더퀴어가 강자인 시스젠더 여성을 혐오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런 움직임에서조차 지정성별 남성인 젠더퀴어는 제외하려는 움직임이 보이는데 젠더 디스포리아를 생각해본다면 이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 알아야 한다. [17] Nussbaum, M. C. (1995). Objectification. Philosophy & Public Affairs, 24(4), 249-291. [18] 특히 이는 그 여성이 예컨대 대학 교수직을 지원한 경우에 더욱 그렇다고 한다. [19] 한 예로, 이화여자대학교 인권위원회 대자보에서는 "누군가의 권리를 '챙긴다' 는 말 자체가 모종의 위계에서 상대를 아래에, 나를 위에 위치지어야만 할 수 있는 말" 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페이스북 [20] 사실, 렉시가 활동한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여혐, 남혐 논란이 이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인터넷 커뮤니티의 막장화가 가속화되고 sns의 발달로 파생 논란이 확산하면서 남녀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지고 있다. 만약 렉시가 지금 이런 곡으로 컴백한다면 오히려 남혐 논란에 시달릴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보여주는 행동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나름대로 상관없을 수도 있다. [21] 서울대 성폭력 대책위 사건 때 학우들의 분쟁을 중재하려다가 2차 가해자로 낙인 찍힌 유수진 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게다가 해당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 사건은 페미니스트가 아닌 상식적인 시선에서는 성폭력 사건으로 다루기엔 무리가 있는 사건이었다. [22] 국내에서도 한때 운동권에서는 점점 이념에만 몰입하고 근본주의화된 끝에 누가 무슨 발언이라도 할라치면 사방에서 벌떡 일어나 연사에게 삿대질을 하며 "수정주의자!", "개량주의자!", "부르주아의 개!", "자본주의의 앞잡이!", "미제파쇼의 프락치!" 같은 고함을 질러대던 시절이 있었다는 흉흉한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사실 "○○몰이" 라는 표현이 나오게 된 모든 집단들은 사상을 막론하고 그 이면에 근본주의화되고 과격화된 독선이 깔려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23] 이게 정말 단순히 "오늘 스타일이 좋다"라는 의도에서 한 말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를 품고 말했는지에 대해서 짚어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24] 아이러니하게 해당 사건의 대처로 남성 게이머들의 지지를 받던 클로저스는 훗날 친 메갈 성향으로 돌아선다. [25] 단, 보지 + 하이루로 직접 언급하지 않았긴 하지만. [26] 이거야말로 진짜 여성혐오에 해당된다. [27] 그리고 메갈을 지지하는 남페미들을 향해서는 '정육점(혹은 도살장)을 섬기는 돼지'라는 일침을 가했다. [28]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타액 발언은 괴랄하게 들릴 수는 있으나 연인 간의 키스에 대한 환상을 독특하게 표현했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 키스도 상대방의 타액을 마시는 행위이기 때문. [29] 심지어 본사 대표와 해당 점포 점주분이 전부 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