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내 경험상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자신감이 넘쳐서 정면 대결을 일삼는 사람은 유독 한쪽 성에 많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그리고 다른 여자들을 가르치려 든다.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든 모르든. 어떤 남자들은 그렇다. 여자라면 누구나 내 말을 이해할 것이다. 이런 현상 때문에 여자들은 어느 분야에서든 종종 괴로움을 겪는다. 이런 현상 때문에 여자들은 나서서 말하기를 주저하고, 용감하게 나서서 말하더라도 경청되지 않는다.
—《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레베카 솔닛, p.15
맨스플레인(Mansplain)은 남성(man)과 설명하다(explain)의 합성어로, 여성들이 어떤 사안에 대해 잘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남성들이 무턱대고 아는 척 설명하려고 하거나 가르치려고 드는 태도를 잘 나타낸 단어이며, 주로
남자가
여자에게 권위적인 태도로, 아랫사람을 훈계하듯이 설명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관련 기사.—《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레베카 솔닛, p.15
2010년 뉴욕 타임스에서 올해의 단어로 선정되었고, 2012년 미국 언어 연구회 선정 가장 창의적인 단어로 선정되었다. 2014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선정한 올해의 단어 최종 후보 중 하나로 뽑힌데 이어 옥스퍼드 온라인 사전에 등재되었다. 관련 기사 옥스퍼드 온라인 사전에 따르면 맨스플레인은 동사로 '(남성이) 어떤 것에 대해 다른 이(주로 여성)에게 거들먹거리거나 잘난 체하는 태도로 설명하는 것'을 뜻한다.
이 단어의 영향으로 비슷한 맥락을 가진 "화이츠플레인(whitesplain)", "라이츠플레인(rightsplain)" 같은 단어도 생겨났다. 일부 논평자들은 이 단어가 널리 남용, 과용되면서 본래의 의미를 잃게 되어, 일부 실제 사례 중에서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2. 상세
이 말을 유행시킨 사람은 미국의 페미니스트이자 저술가 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이다.솔닛은 어느 날 한 남자를 만났는데 상대 남성에게 자기가 영국 태생의 사진작가인 에드워드 마이브리지(Eadweard Muybridge, 1830년 4월 9일~ 1904년 5월 8일)에 관한 책을 썼다고 하자 "최근 마이브리지에 대한 중요한 책이 나왔다"면서 솔닛에게 그 책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솔닛의 친구가 그 책의 저자가 (바로 앞에 있는) 솔닛이라고 몇 번이나 말한 후에야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후에 알고 봤더니, 남자는 책을 읽어본 것도 아니고 신문기사의 서평을 읽은 것뿐이었다.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리뷰에 기자가 간단하게 쓴 걸 그 책의 저자에게 아는 척하며 그대로 말했다.
솔닛이 이런 일화를 신문에 싣자 공감한다며 비슷한 반응이 쏟아졌다. 이 일로 2010년대초부터 맨스플레인이란 단어가 조금씩 나오고 유행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오빠가 전문이야", "오빠가 알려줄게"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일부 여성들과 여성주의 운동가들은 맨스플레인이라는 표현을 '남성이 여성에게 잘난체하는 태도로 설명하는 것'과 더불어 남성이 여성에게 갖고 있는 편견과 남존여비 사상을 가르치는 태도로 은근히 강요하는 것을 조롱할 때도 사용한다. 남성이 관습적으로 '여자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정해놓고, '여자가 어떠한 행동을 하면 남자가 싫어한다.'라고 여성 차별을 행하는 것을 비꼬기 위해 사용하는 식이다. 글자 그대로만 읽으면 조언처럼 들리지만 그 말의 진의가 정말로 호의를 갖고 그 여성이 잘되기를 바라서 조언하는 것인지 아니면 돌려까기인지는 말하는 투와 표정만 봐도 아주 잘 알 수 있다. 그냥 '여자인 니가 감히 이러는 게 남자인 내게 꼴뵈기 싫으니까 당장 그만해라'라는 말을 돌려서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
맨스플레인과 유사하지만 다른 것으로 맨터럽팅(manterrupting)이 있다. 이는 여성이 대화의 주도권을 잡고 있을 때 남성이 시시각각 말을 끊으면서 그 주도권을 자신에게 돌리려고 하는 행위를 말한다. 또 다른 표현으로 백인이 비백인에게 설명하는 화이츠플레인(whitesplain) 등의 파생도 있다.
이들의 문제는 상대방의 의사는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설명을 한다는 것과 더불어 상대방이 자신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깔고 들어간다는 점이다. 자기가 주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비주류는 자신보다 상식이나 지식이 부족할 것이라는 편견을 드러내는 것이다. '너 이거 모르지? 내가 설명해줄게'라고 했는데 상대는 사실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면, 상대는 '뭐야 이 사람? 내가 이 정도도 모를 거라고 생각한 건가? 날 얕잡아본 거야?'라고 생각하며 기분이 나빠진다. 즉 무의식중에 상대를 자신보다 열등한 존재로 본(차별하는) 것이다.
문제는 '남자가 여자에게 설명을 한다'는 것 그 자체가 아니다. 설명을 잘하는 건 대단한 능력이지만, '친절한 설명'과의 결정적 차이는 맨스플레인을 하는 남자는 여자가 '그거 나도 안다' 혹은 '내가 그 분야의 전문가다'라고 밝혀도 의식·무의식적으로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여자니까' 잘 모를 거라는 단정은 남성이 태어나면서 자동으로 얻은 사회적 권력이라는 사실, 말하는 남성이 그 사실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간에 그가 그런 권력으로 여성의 전문성이나 지식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일 뿐이다. 앞서 말한 솔닛이 해당 책의 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상대 남성이 마치 솔닛이 그에 대해 모른다는 것처럼 설명한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예를 들어, 맨스플레인이라는 용어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맨스플레인은 남자를 공격하기 위해 만든 단어가 아니라, “이거 좀 이상하지 않아? 이런 현상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이유가 뭘까?”라는 문제 제기에 가깝다고 주장하고 있다.
솔닛은 해당 에세이를 《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에 수록하면서 에세이를 기고한 후 있었던 반응에 대한 부분을 추가하며 남성들이 '여성 스스로가 겪는다고 말하는 피해를 기각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며 비판적으로 논했다.
반면, 주목받았던 당시와는 달리 시간이 지난 2023년 시점에서는 단어의 오남용과 용어 자체의 차별성이 크게 지적되고 있다.
3. 비판
3.1. 왜 '맨스'플레인인가
성 대결을 고발하는 신조어인데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 이미 올바르지 못한 차별적 의미를 담았기에 단어 선정이 잘못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상대를 가르치려고 드는 태도는 남성만에게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며 이를테면 출산 경험이 있는 여자가 사교 모임에서 만난 출산 경험이 없는 미혼 산부인과 의사에게 상대의 직업을 모른 채 출산의 고통에 대해서 모를 거라고 가정하고 이것저것 설명하려 드는 모습을 들 수 있다. 이렇게 특정 성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경우에 일어날 수 있는 설명충 현상을 두고 맨스플레인이 아니라 파워스플레인(powersplain)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하기도 한다.이에 대해 여성이 처한 현실적 문제를 가시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임의의 명칭을 부여한 것이기에 단어에서 성별을 삭제하는 것은 "이러한 현상이 남녀 관계에서 많이 일어난다"는 것을 묵살하는 행위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하지만 이는 현실과는 다르다. 여성 입장에서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것처럼 느끼는 건 어디까지나 본인이 여성이기 때문이며, 남성 입장에서는 정반대로 여성에게 억압당한다고 느껴질 수 밖에 없다는 상대적인 차이를 무시하고, 근거도 없이 자신의 주장을 절대적인 것마냥 호도하는 격이다. 결과적으로 후술할 남성의 발언권 그 자체를 봉쇄하는 시도의 일환으로서 '맨스'플레인이라는 신조어로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백보 양보하여, 실제로 남성이 상대 의견을 묵살하는 화법을 여성보다 더 자주 사용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어떤 집단이 어떠한 잘못을 더 자주 저지른다고 해서 그 잘못을 그 집단만의 특색으로 치부하는 것을 우리는 차별이라고 부른다. 김여사 같은 단어가 왜 성차별적인지 생각해 보자. 남성은 무개념적인 운전을 '전혀' 하지 않는가? 무개념 운전으로 피해를 주는 것은 성별을 막론하고 잘못이며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성별과 연관짓는 것이 성차별이다. 다른 예를 들어서 어떠한 특정한 인종(예를 들면 황인)이 특정한 범죄(예를 들면 시험부정행위)를 다른 인종보다 많이 저지른다는 것이 통계적 사실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고 해서 시험 부정행위를 아시안 치팅 따위라고 부른다면 이것은 완벽한 인종차별이 된다. 따라서 파워스플레인을 남성이 더 많이 저지른다는 것이 사실이라 해서 그것을 '맨스'플레인이라 부르고 남성 특유의 행위라 치부한다면 그것 역시 성차별에 해당된다.
3.2. 단어의 오남용
어느샌가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가 남성의 발언 그 자체를 봉쇄하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소통의 가능성 자체가 박살이 나는 것이다.맨스플레인 자체는 '상대방이 모를 것을 전제하는 상황'을 가정하지만, 만일 이 개념을 '상대방이 아는 것을 전제하고 제기하는 건설적 조언이나 충고, 설명'에 대해서도 들이대려고 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즉 제대로 된 진정성 있는 피드백 — 상대의 전문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닌 합리적이고 타당한 주장 — 에 대해서도 "맨스플레인이야"라고 반응함으로써 "안 들려, 안 보여, 나는 듣기 싫어!"를 시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성학이나 소수자 담론 등을 건드릴 때 항상 유의해야 하는 부분이다.
실제로 맨스플레인 개념은 주로 (남성) 페미니스트가 시스젠더 남성들, 경우에 따라 지정성별 남성 집단 전부를 대상으로 '여성, 혹은 여성 문제'에 대해 발언할 권리 자체를 봉쇄하는 용도로서 쓰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페미니즘에 대한 모든 비판에 '남자가 페미니즘을 뭘 안다고 논하냐' 식으로 말하는 것으로, 메갈리아를 비판하는 남자들에게 남녀 페미니스트들이 진보언론에 기고하는 기사에서도 저런 주장을 종종 하기도 한다. 특히 메갈리아로 대표되는 대한민국의 여성 페미니스트들이 이러한 경향이 매우 심하다. 상대를 남성우월주의자, 여성혐오자로 단정하고는, 상대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자신이 '왜 억울한지 설명하는 것을' 맨스플레인이라며 "봐! 맨스플레인 하는 거 보니 역시 여성혐오자였어!"라며 더더욱 몰아붙이는 경우가 매우 많다. 위에서 설명되었지만, 맨스플레인은 어디까지나 '여성이 특정 문제를 모를 것이라고 간주하여 상대의 의견을 묵살하며 설명, 가르치려는 잘못된 태도'를 비판하는 용어이지, '남자가 설명하는 행위 그 자체'를 문제삼는 용어가 아니다. '남자가 설명하니까 맨스플레인'이라는 논리는 초등학생 수준도 안 되는 우기기에 불과하다.
젠더 문제에 대해서 '우먼스플레인'만 허용되어야 하고 '맨스플레인'은 금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애초에 젠더 문제는 모두의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고, 그런 식의 논리는 군대 문제에 대해 여성이 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 등의 배타적이고 억압적인 담론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특정 집단 바깥에서 겪어보지 않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조심스러워 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특정 집단 내부의 담론만을 절대시하는 것 역시 문제가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18년에 발생한 워마드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 도촬 사건에 관련한 2018년 6월 1일 리얼뉴스 권보경 기자의 기사에서 이러한 페미니스트들의 '맨스플레인이라 몰며 타당한 페미니즘 비판을 원천 봉쇄하는 행태'가 지적되었다. 기사에서 권보경은 페미니즘에 대한 정당한 비판마저 백래시라는 낙인으로 재갈 물리는 페미니스트들(남성 포함)의 맨스플레인인 우먼스플레인(위민스플레인) 혹은 페미니스트스플레인을 비판했다.[1]
- 2018년 6월 1일 리얼뉴스: 우리는 페미니즘의 옳고 그름을 이야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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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래시'라는 재갈과 당신들의 맨스플레인
지금 당장 현실에서 피와 살을 가진 한 인간의 구체적인 삶이 유린당하고 있는데도 당신들은 남성혐오는 없다고, 페미니즘을 더 공부하라고, 내 삶에 실재하는 도덕감정은 무지에서 비롯된 착각일 뿐이라고, 근사한 말들로 자꾸만 가르치려고 한다.
필자는 당신들이 보여주는 '맨스플레인의 전형성'이 지긋지긋하다. 도대체 누가 무슨 권력으로 페미니즘을 시민윤리의 '예외'로 결정했는가. 도대체 누가 무슨 자격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을 억압하는가. 필자는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하고 비판할 권리가 있다. 지금 퇴행(백래시)이라는 낙인으로 입에 재갈을 물리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중략)
전문가의 말이니 옳다 믿으며 제 몫의 윤리적 판단을 포기하고 '명백한 부정의'에 침묵으로 동조하는 일은 인문학의 태도도 페미니즘의 태도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지난 세기 우리가 뼈아프게 알아야 했던 '평범한 악의 얼굴'일 뿐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대중의 '오해'에 과연 페미니스트들이 반성해야할 지점은 하나도 없는가. 지금 페미니즘에 필요한 것이 진영논리인지 자기성찰인지, 당신들은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아집을 벗고 시민윤리와의 관계 설정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시작하기를. 이 모든 날선 말은 아직 페미니즘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어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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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6일 세계일보 기자 김주영의 기사에서는 실제 페미니스트들의 이러한 문제에 대해 페미스플레인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라는 내용이 나왔다.
기사에서는 한국 페미니즘이 성역이 돼 가고 있어 합당한 근거가 있거나 상식적인 비판을 제기해도 '여혐'이란 낙인을 찍어대고, 논쟁이 붙어도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오라”는 말만 반복하는 '그녀'들 때문에 '페미스플레인'(남자가 언제나 가르치려 든다는 '맨스플레인'에 빗댄 표현)이란 신조어도 등장했다고 한다. 즉 페미니스트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잘 모르면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와라”라는 말은 페미니즘 비판글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글에 반박을 하고 싶어도 논리적으로 막히거나 딱히 쓸 말이 없을 때 주로 쓰이며, 그 결과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선 이를 가리켜 페미스플레인(페미니스트에 설명을 뜻하는 '익스플레인'을 합한 단어)이란 신조어가 사용되기도 한다고 했다.
이에 관해 오세라비 작가는 세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과거 한 페미니스트가 말했듯, 페미니스트들의 최대 무기는 '혀'”라며 “페미니즘 열풍이 불면서 언어 권력을 쥔 그들이 자신들에게 동조하지 않는 사람을 여혐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여혐 낙인과 페미스플레인 모두 '페미니즘은 항상 옳다'는 독선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특히 페미스플레인의 경우 한 때 워마드에서 유행처럼 올라온 '학력인증'과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오는데, 자신의 학벌에 대한 자신감으로 반대론자들을 찍어누르려고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교수는 이를 “자신감이라기보단 열등감이 발현된 결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고 한다.
- 2019년 1월 6일 세계일보: [페미 논란] ②'완장' 찬 페미니스트들, '페미스플레인'도 등장-비판하면 '여혐' 낙인… 할말 없으면 “공부하고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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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페미니즘이 성역이 돼 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합당한 근거가 있거나 상식적인 선에서 비판을 제기해도 '여혐'이란 낙인을 찍어대는 탓에 '페미니스트들이 완장을 차고 다닌다'는 표현이 생길 정도다. 논쟁이 붙어도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오라”는 말만 반복하는 '그녀'들 때문에 '페미스플레인'(남자가 언제나 가르치려 든다는 '맨스플레인'에 빗댄 표현)이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찍히면 남·녀 불문 '여혐' '적폐' 몰이
(중략)
여혐 낙인에는 성별도 없다. 산이 외에 대표적인 사례가 원로 여성운동가인 오세라비(본명 이영희) 작가다. 오 작가는 저서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를 통해 남성 혐오를 일삼는 온라인 커뮤니티 '워마드'와 일부 페미니스트의 행태를 비판하고 남성들이 받는 역차별을 언급했다가 여혐 낙인은 물론 '적폐'란 말까지 들어야 했다. 그는 이런 결과를 어느 정도 예상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오 작가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과거 한 페미니스트가 말했듯, 페미니스트들의 최대 무기는 '혀'”라며 “페미니즘 열풍이 불면서 언어 권력을 쥔 그들이 자신들에게 동조하지 않는 사람을 여혐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각오한 것보단 반응이 약했다”며 “(페미니스트들이) 처음엔 나를 애써 무시하려고 했고, 책을 거의 읽지 않아서 제대로 반박을 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입버릇처럼 “모르면 공부해”란 말만
페미니스트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잘 모르면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와라”라는 말을 두고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페미니즘 비판글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글에 반박을 하고 싶어도 논리적으로 막히거나 딱히 쓸 말이 없을 때 주로 쓰인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선 이를 가리켜 페미스플레인(페미니스트에 설명을 뜻하는 '익스플레인'을 합한 단어)이란 신조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이 같은 페미스플레인은 온라인 공간에만 국한되는 현상이 아니다. 대학생 권모(24)씨는 “동아리 활동을 하다가 만난 한 친구와 술자리에서 '홍익대 누드모델 몰래카메라 사건'이나 워마드의 '성체 훼손' 같은 사안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넌 아무 것도 모르는구나', '공부 좀 해라'란 말을 들었다”며 “범죄자는 처벌을 받아야 된다는 게 페미니즘과 무슨 관계인지 잘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여혐 낙인과 페미스플레인 모두 '페미니즘은 항상 옳다'는 독선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페미스플레인의 경우 한 때 워마드에서 유행처럼 올라온 '학력인증'과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신의 학벌에 대한 자신감으로 반대론자들을 찍어누르려고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교수는 이와 관련해 “자신감이라기보단 열등감이 발현된 결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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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등지에선 이런 오남용이 심각한 상태이며, 여성 문제나 페미니즘 등과 전혀 무관한 객관적인 사실에 대한 지적까지 맨스플레인이라며 우물에 독타기 오류를 벌이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실제 SNS에서 보틀에 따라 와인의 맛이 결정된다면서 직각에 가까운 병에 담긴 와인의 맛을 특정한 한 여성에게 다른 남성이 직접 반례를 제시하며 부정하자, 여성이 성기를 나타낸 비속어를 써가며 맨스플레인이라 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 여성은 여자가 아는 거 얘기하는 꼴은 눈 뜨고 못 보는 게 한남 종특이라고까지 했다. 2018년 10월 발생한 술 좆문가 VS 소믈리에 사건
한편 페미스플레인의 존재와 맨스플레인의 존재 여부는 상관이 없다. 페미스플레인은 맨스플레인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맨스플레인 오남용의 폐해를 지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페미스플레인을 통해 맨스플레인의 단점과 폐해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맨스플레인 자체를 부정하는 자라고 낙인 찍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맨스플레인과 페미스플레인은 무조건 대립적 관계나 반대 개념으로 볼 수도 없으므로, 둘의 우열을 비교하는 것 역시 적절하지 못하다.
한편으로 맨스플레인이나 페미스플레인 모두 일방적 태도에서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제는 성별을 떠나 상대에 대한 이해와 서로간의 배려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4. 외부 링크
- 쩍벌남·맨스플레인 말고도 더 있다… '남성백과사전'
- '비정상회담' 캐나다와 미국의 금기 '맨스플레인'이란?
- 강림한 한국 페미니즘 대모의 부흥회 … 그녀는 자꾸 같은 질문만 받았다 - 신조어 '맨스플레인' 유행시킨 리베카 솔닛
- "오빠가 알려줄게" 맨스플레인, 기자도 예외없다
- 스웨덴 최대 노조는 왜 '맨스플레인 핫라인'을 열었나
- '맨스플레인'을 '맨스플레인'하다
- 나사 우주인도, 천체물리학자도 가리지 않는 '맨스플레인' 이제 그만
5. 관련 문서
[1]
참고로 이 기사를 쓴 권보경은 2017년 말에 있었던
유아인 사이버 불링 사건 사건 때
2017년 12월 1일 오마이뉴스 [주장] 젠더 권력의 프레임은 언제부터 근의 공식이 되었는가 - 유아인을 지지하며 누가 나를 '가짜 여성'으로 규정하나 기사를 써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리얼뉴스 기사에서 권보경은 처음 이 글을 오마이에 올리려고 했으나 오마이뉴스의 페미니즘 성향에 반하는 이 기사를 정식 게재하는데 실패한 것을 리얼뉴스에서 받아줬다고 했다.
[2]
맨스플레인으로 유명해진 에세이를 다른 저작들과 묶어서 출판한 책으로, 이 책에서 맨스플레인이라는 신조어가 나온 것이 아니라, 맨스플레인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 기원이 된 에세이가 이 책의 1장에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