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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26 21:55:16

안락의자 탐정

파일:Armchair detective.jpg
애거서 크리스티가 창조한 탐정 에르퀼 푸아로

1. 개요2. 특징3.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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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락의자 탐정(Armchair detective)이란, 사건 현장에서 직접 수사에 참여하며 증거를 관찰하거나 수집하고 범인을 추적하는 것보다는, 준비된 인적·물적 자원을 토대로 자신의 직관과 추리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창작물 속 탐정의 한 유형이다.
If the art of the detective began and ended in reasoning from an arm-chair, my brother would be the greatest criminal agent that ever lived. But he has no ambition and no energy. He will not even go out of his way to verify his own solution, and would rather be considered wrong than take the trouble to prove himself right.

만약 팔걸이의자에 앉아서 추리하는 게 수사의 전부라면, 내 형은 역사상 최고의 범죄 수사관이겠지. 하지만 그 사람에게는 야망도 정력도 없어. 형은 자기가 낸 답을 확인하러 나서지도 않을 테고, 그게 정답임을 증명하겠다고 수고를 들일 바에는 그냥 자기가 틀린 셈 치고 말 거야.
셜록 홈즈, < 그리스어 통역관>에서, 자신의 형 마이크로프트 홈즈에 대해서

수사를 하지도 않고 추리가 가능한 인물은 실존하기 어렵고, 이 때문에 행동하는 추리를 중요시하는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에서는 '사건 현장은 안 보고 안락의자에나 앉아서 추리한다'며 탁상공론 추리라고 비꼬는 의미로 쓰이기도 했으나, 지금은 가치판단적 의미는 사라지고 특정한 탐정의 타입을 칭하는 분류로만 남아 있다. 탐문 수사는 배제하고 본인의 머릿속 추리만으로 진상을 꿰뚫어보는 식이 대부분이다. 혹은 탐정 본인은 움직이지 않고, 대리인이나 조수에게 탐문을 맡기는 설정도 흔하다.

2. 특징

안락의자 탐정은 상술했듯 엄밀하게 현실적이지는 않으나, 픽션에서는 상당히 인기 있는 주인공에 속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탐정의 위치는 독자와 가장 가까운 캐릭터가 되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의 독자는 사건 현장을 직접 볼 수 없고 다른 사람이 가져온 정보만 갖고 추리해야 하므로, 안락의자 탐정은 독자의 대리인이 되는 것이다.

사실 탐정 캐릭터 안에서 분리되어 나온 유형이라기보다, 오히려 이 안락의자 탐정이 창작물 속의 탐정이라는 캐릭터리티의 프로토타입이라고 보는 것이 더 옳다.[1] 당장 최초의 근대식 탐정이라고 할 수 있는 오귀스트 뒤팽도 안락의자 탐정이다. 또 현대에 흔히 탐정 캐릭터 또는 추리물의 특징으로 꼽는 여러 요소들[2]을 가진 고전 작품이나 전설, 설화에 자주 나오는 '지혜로운 판관' 이야기도 원시적 형태의 추리물이라 볼 수 있는데, 이 판관 캐릭터들은 시대적 특성상 당연히 왕이나 그에 준하는 높으신 분들이므로 백성들이 고하는 증언을 들을 뿐이지 발로 뛰는 인물들이 아니다. 예컨대 탈무드에 나오는 솔로몬 왕의 지혜에 관한 이야기나[3] 소포클레스의 비극 주인공인 오이디푸스[4] 등이 바로 안락의자 탐정 유형의 기초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행동파 탐정' 캐릭터가 현실 사회의 경찰에 대응한다면, 안락의자 탐정들은 경찰이 아니라 재판관의 역할을 변형하여 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말 그대로 법정 안에서만 양측의 진술을 듣고 그 사람이 유죄인지 무죄인지 판단해야 하는 판사의 일을 여기에 대응하면 꼭 맞아떨어진다. 이른바 '진실을 밝혀내는' 역할이 현대적 의미의 탐정 = 경찰의 몫으로 주어진 것은 제대로 된 증거가 잡히기 전에 함부로 시민을 체포할 수 없게 된 근대 이후의 일이고, 전근대에 억울하게 누명을 쓴 자를 풀어주거나 거짓말이나 발뺌하는 죄인을 추궁해 죄를 백일하에 드러내는 역할을 맡은 것은 재판관, 즉 왕이나 영주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의 여러 민담을 봐도 백성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상대는 일개 포졸이나 형방이 아니라 해당 지역의 총괄자인 수령 즉 사또다. 요컨대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체계화, 전문화하면서 고위 지배층이 하던 해결사 역할(안락의자 탐정)이 현장에서 발로 뛰는 하급 관리층(행동파 탐정)으로 옮겨간 것이 문학작품에도 반영된 것. 현대 창작물에서도 안락의자 탐정이 지니는 '고상한', '귀족적인' 느낌은 이러한 모티프의 연원에서 기인하는 바도 있을 것이다. 당장 현대에도 재판관은 수사관보다 훨씬 상급자이고.

한편 서사 장르의 변천사를 염두에 두어 보면 안락의자 탐정은 본격 추리물 이전 시대 탐정의 전통적 역할을 계승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탐정에 해당하는 해결역의 캐릭터가 주인공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사건을 정리하기 위한 마무리 장치로서의 역할을 담당했기에, 현장 수사나 증거 수집 같이 필연적으로 '탐정 중심의 드라마'로 진행되는 수사과정이 서사에서 별 의미가 없었다. 그보다는 어느 제한된 장면 안에서 빠르고 논리정연하게 사건을 풀이하고 완결짓는 것이 더 깔끔할 뿐 아니라 탐정 캐릭터의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좋은 효과도 지닌다. 그러나 탐정 캐릭터가 본격적으로 한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고, 장편소설이나 영상화 등 장르적 특성까지 가미되면서 '혼자 머릿속으로 사고를 정리해서 대사만 읊는' 안락의자 탐정의 드라마는 한계를 맞을 수밖에 없었으므로 수사, 탐문, 함정, 범인과의 대결 등이 포함되는 행동파 탐정의 존재가 필요해진 것이다. 그러므로 '탐정' 캐릭터가 지니는 역할이 논리적 해설역에서 스토리를 이끄는 주도적인 주인공으로 승격하는 과정에서 드라마적 재미를 위해 사고가 아닌 행동의 플롯이 대두되고, 이로 인해 그 이전의 '전통적 해설역'의 성격을 지니는 탐정 캐릭터가 '안락의자 탐정'이라는 부분집합으로 분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종합적으로 볼 때, 안락의자 탐정은 탐정 캐릭터의 역사에서 가장 전통적·귀족적이며, 체제 옹호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는 경우가 많다. 이는 캐릭터의 연원이 되는 전근대의 서사, 곧 서사시 로망스가 철저하게 귀족적인 장르며, 주인공은 통치자거나 고귀한 혈통의 영웅으로 그 시대 상류층의 보편 가치관을 따르고 수호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근대에 들어 개인이라는 개념이 발달하고 그 개인과 세계(非我)의 갈등을 핵심으로 하는 소설이라는 시민문학(부르주아문학)이 대두되었고, 소설의 주인공들은 체제가 높이 평가하는 미덕을 옹호하기보다 비판 혹은 조롱하고, 체제 자체에 비판을 가하지만 압도적인 힘의 차이로 결국 실패하는 소시민적 인간상들이다. 긴 문학의 역사에서 유구히 등장해온 '탐정' (혹은 유사 탐정) 캐릭터들을 이러한 장르에 따른 세계관의 스펙트럼 속에 배치해보면 매우 인상적인 특징이 드러나는데, 해당인물이 전통적-안락의자 탐정에 가까울수록 사회 질서와 체제의 미덕에 긍정적이며 주인공이 사회에 대해 지니는 영향력(권력)도 강하고, 반대로 행동파 탐정에 가까울수록 사회비판적이고 권력이 약하며 범인과의 힘의 격차에서 열세를 차지한다는 것이다.[5]

안락의자 탐정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지혜로운 임금님' 캐릭터는 당연히 그들 자신이 체제의 수호자이자 국가권력 자체인 인물들이고, 그 반대급부로 범인들은 꼼짝없이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나쁜 백성'에 불과하다. 범인은 압도적으로 강한 권력자인 탐정을 몰아붙이거나 위기로 몰아넣을 능력이 없는 것이다. 그러다 고전 추리소설 시대의 주인공들[6]로 오면 이들은 현장 조사를 통해 증거물을 얻기도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논리적 사고에 기반한 추론능력과 통찰력으로 사건을 풀어내며, 그들 자신이 권력자는 아닐지라도 공권력과 협조적이거나(홈즈, 푸아로 등) 적어도 한 지역사회 안에서는 명망을 갖춘 인물들(미즈 마플, 브라운 신부 등)이다. 이들 작품은 범죄에 어떤 드라마적 요소를 넣기도 하지만 결국 죄를 심판하고 체제가 지지하는 가치를 수호하며, 범인은 탐정과 대결을 벌이기도 하지만 마침내 패배하고 심판된다. 그러나 안락의자 탐정의 대극에 있는 하드보일드 탐정에까지 이르면[7] 탐정은 뒷골목을 구르며 얻어맞기도 하고 온갖 더러운 짓까지 해가며 정보를 캐는 3D 직업이 된다. 이들은 기존 탐정의 '지적인 논리 게임'보다는 그저 가능한 많은 정보를 뽑아내고, 미행이나 사기를 치기도 하고, 끄나풀을 고문하는 과격한 짓도 서슴지 않으며 아무튼 '진실'에는 도달하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잘해봐야 프리랜서 노동자인 이들에 비해 범인은 갱단 등의 조직이거나 기업, 심지어 공권력이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주인공이 근본적으로 승리하기가 어렵다. 더구나 이들은 경찰 등 공권력과도 마찰과 반목을 빚으며 사회 체제와 체제의 미덕을 모욕, 냉소하고 때로는 정의 자체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하드보일드 탐정들 중에는 마피아나 갱단에 고용되어 살인을 은폐하거나 누군가를 미행하는 임무를 맡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결론적으로, 보다 전통적인 작품일수록 탐정은 체제의 힘을 대행하여 체제가 수호하는 가치를 지키는 권력자가 되는 반면 행동파에 가까울수록 탐정은 사회비판적이고 미덕과 전통적 가치에 냉소적인 노동자에 가까워진다. 이는 서사시 - 로망스 -소설로 이어지는 고대 - 중세 -근대의 서사문학사(史)의 특질과도 연계하여 살필 수 있으며, 각 문학관이 바라보는 세계-자아인식이 탐정 캐릭터에 반영되어 드러남을 보여주고 있다. 안락의자 탐정은 그 중 전통적인 탐정의 역할을 계승하며, 지적이고 귀족적인 판관 캐릭터의 현대적 변형태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3. 목록




[1]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탐정물'이라는 장르가 등장하기 이전 탐정 노릇하던 전통적 해결사 캐릭터의 역할을 그대로 간직한 채 고유의 캐릭터성을 부여받은, 가장 전통적인 탐정이라고 할 수 있다. [2] 본격적인 이야기 전개 이전에 이미 발생한 사건, 또는 범죄의 범인을 추적하는 플롯을 가진 작품, 비범하고 뛰어난 통찰력과 재치를 지닌 주인공(탐정). [3] 범죄의 유형으로부터 범인의 특성을 미리 그려본 뒤 용의자들을 슬쩍 떠봄으로써 범인을 밝혀내는 심리파 탐정. 대표적으로 세 친구가 함께 한 자리에 보관한 돈자루를 한 명이 몰래 빼돌린 이야기가 있다. 여기서 솔로몬은 '사랑을 위해 약혼자와 파혼한 여인이 자신을 납치한 강도에게 "위자료도 없이 나를 포기해준 옛 약혼자"의 이야기를 해 그를 감동시켜 풀려난 이야기'를 세 친구에게 들려주고 감상을 물어봤는데, 홀로 '위자료도 안 받고 헤어진 약혼남도 몸값도 안 받고 풀어준 강도도 이해가 안 된다'는 발언을 한 한 명을 '사람의 감정이나 의리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저 돈으로만 판단하는 네놈이 바로 범인이다'라고 지적한다. [4] 이쪽은 사건 관련자들을 한 사람씩 소환해서 그들의 진술을 받고 조금씩 조금씩 사건의 본질에 근접해가는 보다 수사물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심지어 밝혀진 범인이 바로 탐정 자신이라는 반전까지.... [5] 물론 당연한 얘기지만 100%는 아니다! 특히 현대에 만들어진 무수한 탐정 캐릭터 중에는 소시민 안락의자 탐정도 있고 상류층 하드보일드 탐정도 당연히 있다. 어디까지나 전체적인 경향성이 그렇다는 것. [6] 오귀스트 뒤팽, 셜록 홈즈, 에르퀼 푸아로 등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탐정 캐릭터의 대부들. 뒤팽은 기본적으로 안락의자형이지만 도둑맞은 편지에서는 직접 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7] 미국 펄프 픽션등에서 볼 수 있는 탐정 유형. 필립 말로가 대표적. [8] 지나가던 행인의 내력에 대해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셜록이 하나 놓친 부분을 마이크로프트가 잡아냈다. 셜록은 행인이 유아용품을 사 들고 가는 걸 보고 아이가 하나 있다고 생각했지만, 마이크로프트는 행인이 산 물건이 딸랑이와 그림책이라는 점에서 갓난아이와 조금 큰 아이로 최소 둘 이상이라는 것을 간파해 냈다. [9] 다만 움직일 필요가 있으면 확실하게 움직인다. 동생이 모리어티 교수를 피해 유럽으로 떠날 때는 본인도 새벽같이 일어나서 마부로 변장하고 몸소 말을 몰아 왓슨을 안전하게 태워 주었고(왓슨은 마부를 못 알아봤지만 나중에 홈즈가 알려준다), 군사 기밀이 유출된 중대한 사건 때는 경찰까지 대동하고 베이커 가를 찾아와서 사건을 의뢰했으며 수사에 필요한 중요한 정보를 알아봐 주었다. 애초에 직업 자체가 영국의 공무원이라는, 수수하지만 대단히 중요한 직종인 만큼, 그의 귀차니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안 움직이는 게으름이라기보단 자기 일이 아닌 것에 상관하기 싫어하는 무관심에 더 가까울 듯하다. [10] 구석의 노인의 패러디로 추측된다. [11] 사실 '입술 삐뚤어진 사나이'에서도 셜록 홈즈는 여전히 탐문 수사를 벌이고 나중에 정리만 안락의자에서 한 것이므로 완전한 안락의자 탐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글로리아 스콧 호 사건'이 더 안락의자 탐정의 정의에 걸맞지만 이 사건에서 홈즈는 어디까지나 사건 자체는 나중에 알게 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조금 애매한 편. 이 사건에서 홈즈가 한 일은 홈즈의 친구 아버지가 어떤 인물인지 추리로 알아낸 것밖에 없다. [12] 사실 그 이전에 홈즈는 안락의자 탐정으로서 면모는 거의 보여준 적이 없다. 워낙 홈즈 자체가 활발한 사람인 데다가 과학 수사를 근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발품을 팔면서 증거를 수집하고 다니기 때문이다. '입술 삐뚤어진 사나이'편에서도 그렇듯 추리는 안락의자에서 할 수 있어도 그 이전의 빌드업(증거 수집)은 다 자기 발로 뛰어서 모은 것이다. [13] 정확히는 은퇴라기보다는 경시청 내부 파벌 싸움의 피해자. 알력 다툼에 휘말려 지위와 명예를 모두 잃고 실각한 일로 충격을 받아 한때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는 작중 언급이 나온다. 이후 한동안 실종 상태가 되어 어딘가에서 자살했다는 소문까지 돌았을 정도로 철저하게 행방을 숨기고 지냈다. [14] 미츠기의 직업이 신문기자다. [15] 미이라의 신부나 미로의 3인 등 몇몇 작품에서 휴양지에 있다가 우연한 계기로 사건에 개입하게 되는 일이 많다. [16] 4개의 시계에서는 푸아로가 안락의자 탐정을 자처한다. 실제로 등장인물인 콜린 램( 배틀 총경의 아들)이 가져다주는 증거만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17] 다만 화요일 클럽의 살인이나 기타 단편집을 제외하면 완전한 안락의자 탐정이라고 보기 어려운 구석도 많다. 의외로 직접 범인을 체포하러 다니거나 경찰에 협력하는 경우도 많은 편. 예를 들어 서재의 시체에서는 경찰과 협력하고 증인에게 심문을 하거나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돌아다닌다. 움직이는 손가락에서는 아는 사람으로부터 의뢰를 받고 사건을 조사하기도 하고 예고 살인에서는 범인을 잡기 위해 미끼를 사용하며 복수의 여신에서는 직접 범인과 대결하기도 한다. 심지어 잠자는 살인에서는 범인에게 물리적인 공격을 해서 물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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