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아이티
중앙아메리카 및 카리브해의 경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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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의 경제 정보 | ||
인구 | 1,163만 7,398명 | 2023년[1] |
경제 규모(명목 GDP) | 198.5억 달러 | 2023년[2] |
경제 규모( PPP) | 381.8억 달러 | 2023년[3] |
1인당 명목 GDP | 1,705.8달러 | 2023년[4] |
1인당 PPP | 3,281.2달러 | 2023년[5] |
경제성장률 | -1.9% | 2023년[6] |
소비자 물가 인플레이션 | 36.8% | 2023년[7] |
고용률 | 55.8% | 2023년[8] |
실업률 | 14.6% | 2023년[9] |
1. 개요
카리브해 히스파니올라 섬의 서쪽 절반을 차지하는 국가 아이티는 2024년 IMF 통계 기준으로 1인당 GDP는 1,941달러, 195개국 중 150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짐바브웨, 케냐보다 1인당 GDP가 낮은 아메리카의 유일한 최빈국이다. 니카라과(141위, 2,589달러)와 베네수엘라(130위, 3,640달러)보다도 낮은 수치다.[10]2. 경제사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이끄는 탐험대가 히스파니올라 섬을 발견했다. 현지의 타이노족 원주민들은 스페인인이 옮긴 전염병과 착취로 인해 거의 멸족되었다. 17세기 말 프랑스가 레이스베이크 조약에 따라 스페인으로부터 히스파니올라 섬의 서반부를 할양받아 생도맹그(Saint-Domingue)라는 이름의 식민지로 지배하게 되었다. 프랑스는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들을 수입하여 광대한 플랜테이션을 경작했다.혁명 직전인 1788~89년 8,000개에 달하는 플랜테이션 가운데 793개는 사탕수수, 3,154개는 인디고, 3,117개는 커피, 789개는 목화 재배용이었다. 또한 전체 경작지 중 14%가 사탕수수, 22%가 인디고, 50%가 커피, 목화가 5%에 투입되었다. 플랜테이션의 숫자와 경작지 면적에서 사탕수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작았지만 단위면적당 이익은 사탕수수가 훨씬 컸고 노동 투입도 훨씬 많았다. 다른 작물은 일반적으로 15~30명의 노예를 부린데 반해 사탕수수는 평균 300명의 노예를 부렸으며 가장 거대한 플랜테이션은 1,400명을 부렸다. 18세기 후반 세계 커피 생산량의 60%와 설탕 생산량의 50%가 생도맹그에서 나왔다. 1791년 이 노예들이 극소수의 프랑스인 지주들에 맞서 혁명전쟁을 일으키고 1804년 끝내 독립국을 건설하니 이것이 아이티의 수립이다.
프랑스는 샤를 10세 치세인 1825년에야 아이티의 독립을 승인했다. 그러나 그 대가로 함대를 파견해 독립 배상금으로 5년간 매년 3천만 프랑씩, 총 1억 5천만 프랑을 지불할 것을 강요했다. 연 세입의 30배가 넘는 이 천문학적인 금액을 감당할 여력이 되지 못한 아이티는 우선 첫 해의 배상금을 지불하기 위해 3천만 프랑을 빌렸고, 1838년 배상금을 9천만 프랑으로 깎고 만기도 30년 이상으로 늘렸다. 원금과 그 이자의 총액을 지불한 것은 1883년이었고, 지불금을 갚기 위해 프랑스와 미국에서 빌린 차관까지 모두 갚은 것은 1947년이었으며 그때까지 지불금은 총 1억 1,200만 프랑에 달했다. 프랑스가 아이티에게 강요한 배상금은 아이티의 잠재적 성장을 크게 저해했다.
프랑스의 배상금만 아이티의 성장을 방해한 것이 아니었다. 혁명전쟁으로 인한 인프라의 파괴와 투자의 중단, 관리자의 부재와 노동력의 급감은 그것만으로도 경제에 치명적이었으며, 독립 이후 백인 세력의 재침에 대비하기 위한 막대한 군비, 연이은 내전, 플랜테이션 경제의 해체와 자급경제(subsistence economy)로의 이행은 경제의 재건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11] 프랑스인 지주의 착취에 시달리던 해방노예들의 트라우마, 그리고 흑인 국가의 수립을 두려워한 프랑스와 영국, 미국, 스페인의 경제봉쇄는 아이티의 지도자들이 환금작물보다 식량작물의 생산에 관심을 갖게 만들어 자급경제로의 이행을 더욱 촉진했다.
독립 후 아이티는 공화국인 남부와 제국인 북부로 분단되었는데, 남부 정권의 지도자인 알렉상드르 페시옹이 1809년 토지분배를 시작하면서 남아있는 플랜테이션들은 분할하여 가족단위의 소규모 농장으로 분할했다. 그의 뒤를 이은 장피에르 부아예(Jean-Pierre Boyer)가 남북통일을 이룩한 뒤 북부에도 토지분배를 실시하여 결과적으로 아이티 전역에서 플랜테이션이 사라지고, 국민의 대부분이 자급농(subsistence farmers)으로 남아 자기 자신 또는 가족들이 먹기에 충분한 식량작물만 공급하게 되었다. 이들 농민들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한 경작지는 그대로 버려졌다. 1910년대 말 아이티의 인구는 식민지 시대의 4배로 증가했지만 당시 경작지는 식민지 시대의 2/3에 불과했다. 자급농들의 토지는 상속을 거치면서 분할을 거듭하여 잘게 쪼개졌다. 1950년 조사결과에 따르면 전체 농장의 94%가 6.5헥타르 미만의 필지로 이루어졌고, 전체 농지의 70%가 6.5헥타르 미만의 필지에 분배된 상태였다. 토지 분할이 반복될수록 환금작물이 경작지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필연적으로 작아질 수밖에 없었는데 경작지의 24%가 환금작물 생산에 투입되었으며 사탕수수는 5%에 불과했다.
프랑스의 축출로 이미 황폐화된 플랜테이션이 해체되고 자급경제가 정착하면서 플랜테이션과 같은 규모의 경제에 전적으로 의존해야만 했던 설탕의 생산은 사실상 절멸되었다. 아이티의 설탕 생산량은 1789년 1억 3,861만 6,494파운드(62,875톤)에서 1818년 600만 파운드(2,722톤)로 감소하고 다시 1826년 3만 2천 파운드로 감소했다. 1842~43년 생산량은 6천 파운드(2.7톤)에 불과했다. 설탕이 경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었다. 반면에 기존 플랜테이션을 유지한 주변국들은 20세기 초 설탕 붐으로 호황을 맞이했다. 수요 증가에 대응해 정제기술에 혁신이 일어나고 재배지도 확장되면서 설탕 수출이 급격히 증가했다. 1900~1960년 쿠바 수출의 76%, 도미니카 공화국 수출의 51%, 푸에르토리코 수출의 46%, 자메이카 수출의 26%가 설탕이었다. 같은 시기 아이티 수출에 설탕은 단 5%만 기여했고 특히 1900~1918년 사이에는 설탕 수출이 아예 없었다. 1950년 푸에르토리코와 도미니카 공화국의 설탕 수출은 각각 아이티의 35배, 14배에 달했다. 결국 아이티는 주변국이 누리던 설탕 붐의 달달함을 전혀 누리지 못했으며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본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
설탕을 대신해 커피가 최대 수출품이 되었다. 이것은 설탕과 달리 규모가 작은 가족농으로도 생산 가능하므로 설탕만큼 생산량이 급격히 줄진 않았기 때문이다. 커피는 19세기 수출의 84%, 1900~1960년 수출의 63%를 기여했다. 그러나 커피 역시 플랜테이션에서 가족농으로 생산단위가 축소되었으므로 생산량과 생산성 모두 혁명 이전과 비교할 수 없었다. 커피 생산량은 1789년 7,628만 6,530파운드(34,603톤)에서 1822년 3,719.8만 파운드(16,873톤), 1826년 3,200만 파운드(14,515톤)로 감소했다. 1842~43년에는 3,500만 파운드(15,876톤)로 생산량을 약간 회복했는데 단순 노동력 투입 증가로 회복한 것이지 1인당 생산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었다. # 그 동안 커피 농업도 다른 경쟁자들이 치고 올라와 아이티의 자리를 먹어치웠다. 한 통계자료를 보면 아이티는 1886~1890년까지 중앙아메리카와 카리브해를 통틀어 최대 커피 생산국이었다. 그러나 1891~1895년부터 과테말라를 시작으로 역내의 다른 국가들이 아이티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1881~1885년과 1956~1960년(둘 다 5개년 평균) 사이 엘살바도르의 커피 생산은 9.8배, 코스타리카는 3.4배, 과테말라는 4.6배, 온두라스는 13.0배, 니카라과는 5.8배 증가한 반면 아이티는 0.91배로 감소했다. # 결국 플랜테이션 경제의 해체로 아이티의 잠재력이 말살되고 만 것이다.
19세기 중반부터는 무역 재개로 수입품에 대한 의존이 크게 증가하면서 극소수의 물라토 수입업자에게 부가 집중되었다. 이들은 20세기 초 주요 거래소, 통신 및 운송 인프라를 독점하였다. 정치 엘리트들은 물라토 경제 엘리트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는 댓가로 정치적 지원을 보내는 폐쇄적이고 후견주의적인 시스템을 구축했다. 예를 들어 대통령들은 1910년대부터 외국계 상업자본이 반강제로 출자한 국내 대출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이들 외국계 자본들은 정부의 공식적인 출자 요구에 응하는 대신 방해를 당하지 않으면서 영업하고 관세를 면제받았다. "파파 독" 프랑수아 뒤발리에도 1958년 부유한 기업가들에게 "충성심을 보일 것"을 요구했으며, 1960년대 외국인 소유 회사와 부유층들은 정부가 발행한 채권에 출자하여 정권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했다. 물론 파파 독도 경제 엘리트에게 독점적 사업권을 넘겨주는 등 은혜를 베푸는 것을 잊지 않았다. 파파 독을 계승한 "베이비 독" 장클로드 뒤발리에 축출 직전인 1985년에는 단 19개 가문이 아이티에서 소비되는 대부분의 품목에 대한 수입 권한을 독점했다. #
1970년대는 아이티 역사에서 몇 안되는 짧은 호황기였다. 아이티 정부는 자유지대(zòn franch)를 설치하고 외국 투자자에게 세제 혜택을 비롯한 각종 인센티브를 부여했고, 외국 투자자들은 아이티의 풍부한 저가, 저숙련 노동력에 이끌려 아이티에 투자했다. 곧 의류, 장난감, 전자기기 제조업과 건설, 공공 유틸리티 부문이 급성장했다. 특히 야구공을 많이 생산해서 1970년대 미국에서 사용된 야구공 대부분이 아이티산이었다고 한다. # 1966년 13개사에 불과했던 제조업체는 1973년 67개사, 1978년 127개사, 1980년 200개사로 급증했으며 같은 해 거의 6만 명을 고용했다. 그러나 저가 노동력에 의존한 보세가공 산업은 정세 불안, 경쟁 심화, 투자 감소와 같은 국내외적인 악재로 1980년대부터 위기에 봉착했다. 1980년대 내내 정체한 경제는 1991년 쿠데타를 겨냥한 국제사회의 제재로 결정타를 맞아 붕괴되었다. 예를 들어 1988~1994년 사이 제조업 생산액은 절반 넘게 감소했다. 또한 한 추정에 따르면 1990년대 초 의류 제조업은 최소 10만명을 고용했으나 1994년이 되면 1만 5천~2만명만 고용하였다고 한다. # #
1994년이 되자 아이티의 경제는 총체적인 붕괴에 놓였다. 같은해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가 퇴진하고 아이티 주둔 미군이 질서와 안정을 뒷받침하면서 느리게나마 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하지만 2010년 20만 명의 사망자를 낸 대지진으로 가뜩이나 빈곤하던 이 나라의 인프라가 완전히 파괴되었고, 2018년부터는 당시 대통령 조브넬 모이즈의 퇴진 문제로 촉발된 정치적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역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2021년에는 조브넬 모이즈가 암살되고 대지진이 발생했다. 비슷한 시기 전 국토에 갱단이 번성하고 자기 구역에 할거하면서 국가 전체가 내전에 내몰리고 있으므로 아직도 경제성장은 요원한 것이 현실이다.
3. 산업
중앙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전체를 통틀어 1차산업의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이다. 농업, 임업, 축산업, 어업은 GDP의 18.2%(2023)를 기여한다. 제조업, 건설, 광업 및 전기·가스·수도는 GDP의 31%(2023)를 기여하고 그 가운데 제조업은 24.5%를 기여한다. 서비스업은 47.8%(2023)를 기여한다.주요 작물은 바나나, 플랜틴, 강낭콩, 옥수수이며 축산업은 염소와 육우, 양돈이 중요하다. 오늘날 경제활동 인구의 절반 가량인 45.5%(2022)가 1차산업에 종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식량을 원조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아이티는 원조식량으로 인구만 늘었으니 원조가 끊기면 기아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특히 인구 부양을 위해 삼림마저 모조리 벌목/개간한 탓에 국토의 황폐화가 가속되고 있다. 실제 구글어스로 아이티를 보면 왜 화성 취급을 받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아이티가 그나마 해안가에 플랜테이션이 풍부하게 가능했던 것은 배후 삼림이 존재했기 때문인데 목재와 개간지를 구하기 위해 그걸 다 베어버렸으니 그나마 되는 플랜테이션 농장도 가동이 점점 더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여러 문제도 야기되고 있다. 경제의 근간이었던 설탕도 1970년대 말부터 순수입국(net importer)으로 바뀌었다. 한국의 경우 원조로 인한 식량자급률 감소를 인구증가(식량소비량 증가)를 통해 다른 산업을 발전시키고, 그 수익으로 해외 식량을 수입하는 방식으로 극복했지만, 아이티는 실패했다. 농업이 황폐화된 아이티에서는 산림 벌채로 숲들도 사라졌고, 2008년에는 식량부족 사태로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번 지진에도 빈민들이 슬럼가의 판자촌에 몰려 살면서 피해가 더욱 커졌다.
주요 제조업은 의류 산업으로, 본 산업은 아이티 수출의 대부분을 기여하고 있다. 해외의 의류생산 기업들은 낮은 인건비와 풍부한 노동력, 최대 의류시장인 미국의 무관세 혜택에 주목하여 아이티에 투자하고 있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아이티의 의류 수출액은 2배 증가했으며 2018년 전체 상품수출의 85%를 기여했다. 2020년 3~6월 사이에 수행된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 이전 전체 33개사[12]가 총 50,377명을 고용했다. 16개사는 편물, 6개사는 직물, 9개사는 편물과 직물 모두 생산한다고 응답했으며[13] 이들 31개사의 월간 생산량은 총합 4,893만 4,400벌에 달했다. # 의류 외에는 제분, 시멘트 등의 제조업이 있다. 광업은 보크사이트, 구리, 금, 대리석 등을 생산한다.
그밖에 해외에서 일하는 아이티인들의 송금과 ODA가 경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해외교포의 송금액은 2023년 GDP 대비 18.9%에 달하며, 2011~2021년 국제사회의 아이티 원조액은 총합 130억 달러에 달했다. 해외교포의 송금과 해외원조에 경제가 크게 의존하고 있으므로 취약국가지수(국가 불안정 지수)의 '외부 의존 및 개입' 지수가 10점 만점에 9.6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 그나마 받아온 해외원조도 집행이 어떻게 되는지 불투명하며 부패로 인하여 누군가의 뒷주머니로 들어갔을 확률이 매우 높다[14]. 2020년 반정부 시위의 원인 중 하나도 이러한 수십억 달러의 국제 원조자금의 착복논란이었다. 그래서 시위대는 조브넬 모이즈 정권의 퇴진을 외쳤지만 # 사실 정권이 바뀌어도 아이티에 딱히 유능하고 깨끗한 정권이 들어설 것이라는 기대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4. 무역
주요 수출품목은 의류이고 최대 수출대상국은 미국이다. 미국은 아이티산 의류에 대해 무쿼터·무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주요 수입품목은 섬유, 의류제품 원자재, 가전제품, 자동차, 플라스틱 제품 등의 공산품, 그리고 곡물, 육류, 야채 등의 식료품이다. 수입이 수출의 몇 배나 되어 무역역조가 심각하다. 아이티는 카리브해 지역의 무역 블록인 카리브 공동체의 회원국이지만, 다른 회원국들과의 경제 교류는 해당 국가에 이주한 아이티인 노동자들의 송금 위주로 굴러간다.5. 가난과 기아
2008년에는 폭풍 4개가 나라를 아예 갈아엎는 바람에 식량 원조도 제대로 받지 못하여 진흙쿠키가 나돌 정도로 식량난이 고조되고 있다. MBC 프로그램이던 W에선 한국인 취재진[15]이 아이티 보건부장관한테 국민들이 진흙 쿠키를 주식으로 먹는다는 사실을 물어보자, "건강에 진흙 쿠키가 유해하다는 증거는 없으며, 앞으로 그런 게 외국인들 눈에 보일 경우 조치를 취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다가 기생충이 많은 진흙[16]이라는, 초등학생이라도 손쉽게 떠올릴 법한 반박거리를 꺼내어 이야기하자 말문이 막혔는지 바쁘다면서 퇴장해버렸다.이러한 상황 덕분에 2010년 비슷한 시기에 지진이 난 칠레는 막상 피해가 적었는데, 아이티는 혼자 무슨 거대괴수라도 습격한 양 박살났다. 칠레는 피해를 금방 복구했으나 이 나라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피해복구는 엄두를 못 내는 판이며, 오히려 2021년에 또다른 지진까지 겹치게 되었다. 또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17]
2022년 10월 14일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아이티 인구의 거의 절반인 470만여 명이 기아에 직면해 있으며 180만 명 가까이는 식량안보 단계(IPC) 4단계인 '비상' 상태[18]에 처했다고 밝혔다. 뒤이어 WFP는 포르토프랭스 시내 빈민가 시테 솔레이에 사는 주민 약 1만 9천 명의 기아 상태는 '치명적인 수준'이라며 5세 미만 영유아 10만 명가량은 심각한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
2023년 7월 UNICEF와 FAO 등이 공동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0~2022년 기간 영양부족에 시달리는 아이티인이 인구의 45%에 달한다고 하는데, 아이티보다 영양부족 인구 비율이 높은 나라는 마다가스카르(51.0%), 소말리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48.7%), 레소토(46.0%), 북한(45.5%) 이렇게 5개국밖에 없으며, 영양부족 인구 비율이 40%를 넘긴 나라는 이들 6개국이 전부다. pdf 178~191쪽에 2020~2022년 기준 영양실조 인구 비율이 나온다. 그런데 2016년 CIA '더 월드 팩트북' 기준 아이티의 비만율은 22.7%라고 한다.[19] 2012년 기준 아이티의 지니 계수는 0.411로 필리핀보다 높은 수준이다.[20]
물가도 살인적으로 비싼 수준이다. 근로자들의 평균 수입은 적은데 기본적인 생활용품부터 수입해오기 때문에 최빈국답지 않게 물가가 비싸다. 아이티의 물가가 어느정도인가 하면, 그 진흙쿠키가 하나당 30원, 밀가루+기름(마가린)+소금으로 만든 그나마 먹을 수 있는 쿠키가 100원을 좀 넘는데, 들어가는 재료를 생각하면 선진국인 한국 입장에서 봐도 결코 싼 가격이 아니다. 애초에 한국에서 주변에 쉽게 볼 수 있는 불량식품들의 가격이(지금은 좀 올랐지만) 소매상을 통해 구매해도 정말 싼 건 100원인 걸 생각해보자. 아이티의 1인당 GDP는 한국의 1.5%가 조금 넘는다. 더불어 빈부격차는 한국과는 비교가 민망할 수준으로 매우 심각하다. 그나마 먹을 수 있는 밀가루 쿠키는 100원을 좀 넘고, 무기물을 제외한 영양소가 거의 없는 진흙쿠키조차 30원이니 아이티에서 진흙쿠키조차 거의 사치에 가까운 음식인 것이다. 심지어 진흙쿠키의 가격이 현재 150원 가량을 상회한다고 한다.
IMF와 세계은행에 따르면 2019년에 아이티의 물가상승률이 무려 20%라고 한다. 그런데 더욱 한심한건 경제성장률이 0.9%밖에 안된다는 사실이다. 거기에 더해 2020년에는 코로나 19로 경제성장률이 -3.7%인데 물가상승률은 25.18%라고 한다. 경제가 고도성장함에 따른 인플레이션은 어쩔 수 없다지만 그것도 아니면서 물가는 허구헌날 천정부지로 치솟기만 하니 정말 생지옥이 따로 없다. 외교부 국가정보
[1]
https://data.worldbank.org/country/haiti
[2]
https://data.worldbank.org/country/haiti
[3]
https://data.worldbank.org/indicator/NY.GDP.MKTP.PP.CD?locations=HT
[4]
https://data.worldbank.org/country/haiti
[5]
https://data.worldbank.org/indicator/NY.GDP.PCAP.PP.CD?locations=HT
[6]
https://data.worldbank.org/country/haiti
[7]
https://data.worldbank.org/country/haiti
[8]
https://data.worldbank.org/indicator/SL.EMP.TOTL.SP.ZS?locations=HT
[9]
https://data.worldbank.org/country/haiti
[10]
니카라과는 그래도 치안, 정치, 사회는 아이티에 비교하면 훨씬 좋은 수준이며 베네수엘라도 왕년에는 나름대로 잘나갔던 나라라서 1가구 1자동차를 보유할 정도는 되기에 아이티보다는 상황이 훨씬 낫다. 베네수엘라의 경우 향후 국제 경기 변동에 따라 얼마든지 바닥에서 치고 올라올 여지가 충분하다는 점은 덤.
[11]
독립영웅
투생 루베르튀르와
장 자크 데살린도 플랜테이션이 해체되면 경제가 답없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플랜테이션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노예들이 가진 트라우마는 상상 이상이었다. 아이티가 잠시 남북으로 분단되었을 때 북부 정권의 지도자
앙리 크리스토프가 사실상의 강제노동으로 플랜테이션을 꾸렸는데 그래서 주민들의 불만이 극심했다고 한다. 결국 앙리 크리스토프가 죽은 뒤 북부 정권은 남부에 흡수통일되었다.
[12]
공공산업단지 소재 12개사, 민영자유지대 및 민영산업단지 소재 15개사, 기타 자유지대 및 산업단지 6개사
[13]
2개사는 명시하지 않음
[14]
사실 아이티의 부패는 뒤발리에 부자의 집권 이전에도 극심했는데, 그 심각성을 알려주는 일화가 하나 전해진다.
1937년에
도미니카 공화국의 대통령
라파엘 트루히요의 명령 하에 도미니카군이 아이티 국경 인근 지역인 시바오(Cibao)에 살던 1만 2천여명의 아이티인을 학살하는 일이 일어나자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 정부가 합의를 맺어 학살 생존자들에게 1인당 30달러(2023년 환율로 약 640달러)의 배상금을 지불할 예정이었는데, 아이티의 관료들은 이 배상금을 거의 모두 빼돌리고는 생존자들에게 배상금이라고 1인당 2센트를 지급했다. 이는 2023년 환율로 환산해도 처참한 학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500원짜리 동전 하나 던져준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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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직접 파는 진흙 쿠키를 사먹어봤는데 먹는 순간 흙이 씹혀서 도저히 더 이상 삼키지도, 씹지도 못하고 뱉어버렸다. 재료는 진흙 절반에 기름 약간, 밀가루 약간, 소금 약간. 이 정도로 넣지만 그마저도 넣지 못한 것들 또한 수두룩하다. 주성분이 흙이다 보니 구우면 그릇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땅바닥에 반죽을 펼쳐서 말리는 게 조리과정의 전부이며 그래서 종종 식중독의 원인이 되곤 한다. 가격은 1개당 한국 돈으로 30원 정도. 그냥 밀가루와 기름, 소금만 넣어 구운 건 100원이 넘는데 이건 맛이 없다고 해도 최소한 병 걸릴 걱정 없이 먹을 수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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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흙을 빵에 넣는다든지 양을 속인 건 과거
유럽에서도 있었는데 주로 흉년 때 이랬다고 한다.
펄 벅의
대지에서도 흉년 속에 아이들이 굶주림에 못이겨 흙을 퍼먹는 게 나오며
우크라이나 대기근 때도 아이들이 이러는 것을 목격한 사례가 있다. 그래도 다들 오래 전 이야기인데 아이티는 이것이
현재진행형이라는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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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3.3%)을 제외하면 -1%대 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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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은 식량 위기의 심각성 정도에 따라 '정상(Minimal)-경고(Stressed)-위기(Crisis)-비상(Emergency)-기근(Famine)' 등 5단계로 분류하고 있으며 3단계 이상을 '급성 식량 위기'(acute food insecurity)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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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룩셈부르크,
독일,
핀란드,
스웨덴,
프랑스 같은 유럽 선진국들보다도 높은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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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처참한 아이티 현실을 잘 보여주면서도 의외로 그만한 수준은 아니다. 막장인 나라꼴을 보면 빈부격차가 극단적이어야 하지만 0,4에서 0.5 구간은 그저 소득격차가 상당히 크다 수준으로 0.5대인 남미, 북한보다도 낮다. 그러나 동시에 아이티 같은 나라에서 겨우 0.4대라는 점에서 그만큼 부자가 적음을 알 수 있다. 아이티의 경우는 애초에 부 자체가 사실상 없다시피한 수준이라 빈부격차가 다른 후진국들마냥 그렇게 심화되지 않았다는 뜻. 비만율은
미국,
나우루마냥 운동도 못하고
정크푸드나 먹게 된 사람들이 많을 수 있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